"에세이"

사랑하는 아내와 연리지처럼

참으로 박복하여 저는 생후 첫돌 즈음 그만 생모를 잃었습니다. 때문에 제아무리 공활하고 맑은 날의 파란 하늘일지라도 그걸 도화지 삼아 어머니의 그림은 원초적으로 그릴 수조차 없습니다. 삭막하고 모진 세월의 풍상이 휩쓸고 지나간 빈자리를 메운 건 제 나이 십 대 말에 만난 아내입니다. 첫눈에도 코스모스보다 더 곱고 잠자리처럼 연약한 몸매였지만 제 눈엔 그녀가 이몽룡이가 춘향이를 본 순간,… Continue reading

가을 남자

            가을이 석류의 계절인 이유는, 석류알 같은 선홍빛 추억이 가을 속에 송송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날 시내 다방에서 독서회 정기 모임을 마치고 우리는 근처 포장마차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토론을 벌이다가 늦은 밤 헤어졌다. 나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마음을 바꾸어 혼자 걸었다. 무심하게 스치는 차량 불빛을… Continue reading

때론 아름답게, 때론 따듯하게, 때론 아프게 다가왔던, 그 뒷모습에 대한 이야기들.

483 우리 가족의 뒷모습은 김은선 14세. 학생. 부산시 북구 만덕3동 안녕하세요. 저는 14살의 여학생입니다. 태어날 땐 정상이었는데 6살 때부터 다리가 굳어가는 근육병에 걸렸어요. 그때부터 치료를 받았으면 지금쯤 걸어 다녔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도 3년 늦게 들어가 중학생 1학년일 나이에, 지금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여러 분들의 도움으로 전동 휠체어를 타고 학교생활도 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치료도… Continue reading

때론 아름답게, 때론 따듯하게, 때론 아프게 다가왔던, 그 뒷모습에 대한 이야기들.

484 잊지 못할 두 뒷모습, 아버지 그리고 준하 형 최종훈 34세. 연기자. tvN <롤러코스터2> ‘푸른거탑’ 말년병장 역 나는 내 인생 가장 기억에 남는 두 뒷모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하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평생 농사를 지으셨던 아버지의 옷에는 항상 흙먼지가 묻어 있었다. “아버지, 일을 하셔도 좀 깔끔하게 입고 하세요”라고 말이라도 하면, “야, 사람이 깨끗하면 됐지, 옷이… Continue reading

남자 셋이 술 먹으면서 무슨 얘기해?

글 백일성 퇴근하는 길 동네 후배에게서 술 한잔하자는 연락을 받고 약속을 정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게 동네 선배에게도 퇴근하는 대로 전화 달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아내와도 통화하고 저녁 8시 정도에 후배와 마주 앉아 소주 한 잔을 입에 넣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고 12시 정도쯤 집에 도착한 거 같습니다. 아내가 자리에 금방 누웠는지 인기척에 바로 일어나 눈살을 찌푸리면서 묻습니다…. Continue reading

사랑스런 정자씨

사랑스런 정자씨를 만난 지 거의 20년이 되어간다. 당시 나는 B여중의 교사로 근무했는데, 수업 중에 유난히 주위가 산만한 여학생이 있었다. 선생님들에게는 이런 학생이 가장 골칫거리다. 결국 어머니가 불려왔고 나는 정자씨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아이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니 종합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한번 받아보면 어떠냐고 권하였다. 어디선가 성장기 아이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산만한 경우, 몸에 이상이 있어서일 수도… Continue reading

서면시장 칼국수

서면시장 뒷골목에 가면 30년 전 나를 만난다. 나는 금속 공장 2교대 야간 근무를 마치고, 구청 앞 낡은 건물 4층에 있는 독서실로 갔다. 월 이용료를 끊고 그곳에서 씻고 자고 공부하고, 매일 점심때가 되면 독서실 계단을 내려와 서면시장 먹자골목으로 갔다. 그때 내 나이 스물둘이었다. 서면시장 뒷골목 칼국수 집에는 뜨내기손님보다 단골손님이 더 많다. 내 단골집 아줌마는 배신을 모르는… Continue reading

창간 8주년,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으로 삼고 싶습니다.

462 우리 공장 ‘토토’ 이야기 박소연  37세. 자영업. 충남 논산시 상월면 작년 겨울, 도시에서 시골로 공장을 운영하기 위해 올라온 나는 자연의 신선함을 느끼면서 이 땅에서 동물을 키워봤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다 우연히 강아지를 주겠다는 이웃 언니 집에 가게 되었다. 반가운 맘에 날아갈 듯 찾아간 집 마당에서는 어미 개가 새끼들에게 젖을 주고 있었다. 통통한 어린 새끼들이… Continue reading

창간 8주년, 무한한 가능성의 씨앗으로 삼고 싶습니다.

463 “웬만한 삼류 소설보다 재밌다” 그 칭찬 한마디 최규화  31세.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 중학교 1학년 때 특별 활동으로 문예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문예반엔 스무 명 남짓 있었는데, 사실 ‘문예’에 대한 관심보다는 그저 축구반이나 농구반에 지원했다가 가위바위보에 져서 ‘밀려’ 들어온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런 아이 중 하나였다. 그때 문예반 담당은 조미향 선생님이었는데, 선생님은 특별… Continue reading

노인이 노인에게

        콩 이파리 물결치는 텃밭 속에서, 홀로 콩 이파리를 따는 저 노인처럼, 나 또한 기꺼이 세월 속에 있으리라. 바람도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바람이 지나가는 골목 어귀에 여름 내내 할머니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었다. 오랜 세월 한동네에 도란도란 살고 있는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나누는 일보다 지나가는 행인을 물끄러미 보고 있을 때가 더 많다….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