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엄마를 잊는 법

  시현이는 미술 시간에 수채화를 반도 못 그렸다.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가고, 숙제 일기 안 해온 친구들도 남아서 숙제 일기를 하고 벌 청소까지 다 마쳤는데, 시현이는 아직도 수채화 작업 중이다. 이제 교실에는 우리 둘뿐. 녀석은 속도를 좀 내려는지 양손에 붓 하나씩 들고 채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것은 내 눈총을 의식한 동작이 아니라 그렇게 하면 더… Continue reading

어른들을 위한 동화

글 백일성 저희 동네에 제가 형님으로 모시는 결혼 19년 차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그날은 형수님 생일이었습니다. 평소에는 토요일 출근도 안 하시는 형님이 갑작스럽게 출근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늦은 오후에 퇴근하며 집에 계신 형수님한테 평소 잘 부르지도 않던 이름까지 불러가며 전화를 하셨다고 합니다. “은숙아~ 주차장으로 좀 내려온나.” 3층 집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형수님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3층 계단을… Continue reading

미움도 원망도 놓아버리자 더없는 평화가 찾아왔다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의 진심 어린 이야기들입니다.

큰 슬픔을 아름다운 용서로 승화시킨 분들을 떠올리며 변종만 상당초등학교 교사. 충북 청주시 상당구 용암1동 시내 변두리 고향을 지키며 농사일만 하던 외삼촌이 계셨다. 그때 외삼촌은 매일 아침 오토바이 뒤에 매달린 리어카에 채소를 가득 실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밖에 몰라 온몸에서 흙냄새가 나던 분이셨다. 벌써 10년도 훨씬 전의 일이다. 그런 외삼촌이 교통사고로 응급실에서 사경을 헤매다… Continue reading

시아버지께 배우는 느림의 미학

늘 신경이 쓰이던 돌무더기가 있었다. 보고 다니면서 눈에 영 거슬렸다. ‘이걸 어떻게 정리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당연히 포크레인 같은 기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가며 포크레인을 부르기엔 그리 아쉬운 게 아니어서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답답해하면서….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그곳을… Continue reading

어느 날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애들아, 선생님, 동생들, 사정이 있어서 휴대폰을 이제 안 쓸 거야!!! 헤어지려니까 눈물이 나오네 ㅠㅠㅠㅠ  이제 문자는 못 하지만 연락처는 삭제하지 마라죠. 나도 전화번호 다 적어 노을 테니까!! 답은 안 해죠도 되…. 이제….ㅠ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게 저장되지 않는 번호였다. 우리 반 아이 같은데 대체 무슨 상황일까. 나는 갑자기 당황했다. 답을 보내려… Continue reading

얼마 전 결혼한 후배 화니에게

글 백일성 조금 전에 새색시와 포장마차에서 대합탕에 소주 한잔 한다며 전화했었지. 그렇게 한참 깨 볶을 신혼인 너한테 결혼 17년 차 인생 선배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하나 해줄게…. 그냥 며칠 전 있었던 내 하룻밤 사이의 평범한 일상이야. 언뜻 들으면 뭐가 슬퍼? 하겠지만, 너도 세월이 흐르고 잘 곱씹어 보면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들어둬. 우리 부부 며칠… Continue reading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여행책 장혜진 31세. 은행원.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대학 졸업반 때 취업에 성공해 24살부터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무도 나를 구속한 사람은 없었으나 취직과 동시에 묘한 해방감(?)에 사로잡혀 여행 적금을 만들어서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국내외 가릴 것 없이 열심히도 다녔다. 주로 시간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하지만 왠지 허전했다. 그제야 가족 생각이 났다. 40여 년간… Continue reading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보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엄마의 유물 놋대접과 인두 김동진 시인, 수필가. 중국 길림성 훈춘시 우리 집의 놋대접과 인두는 엄마가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남겨놓은 유품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엄마가 보물처럼 아끼시던 물건인데 내가 엄마의 유물로 남겨놓은 것이다. 엄마의 놋대접은 간장 종지처럼 앙증스럽게 생긴 작고 깜찍한 것으로서 나의 유년 시절의 지정 밥그릇이었다. 엄마의 말씀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돌이 방금… Continue reading

면목동 최고의 오지랖, 최경자 여사

  나는 우리 면목동의 아름다운 마담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 마담을 소개하자면 면목시장 내에서 미용실을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면목동에서 제일 오지랖이 넓은 분이다. 나 또한 면목동 토박이로 이 시장에서 20년 이상 사진관을 운영하며 알게 된 분으로, 이분을 앞에 놓고 인정(人情)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마담(애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른 아침 출근해 양은… Continue reading

안녕, 당나귀

오랜 세월 잘 버텨온 내 차가 주저앉았다.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에 갔더니 사장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엔진을 바꾸든지 폐차를 시키든지 하란다. 일찍이 가난한 집에 와서 고락을 함께한 정든 당나귀처럼, 헤어지려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에 주말마다 시골 어머니 집에 가야 할 일도 난감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급작스러운 사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면 편하고 궁하면 통한다….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