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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일까?

누구나 상실을 경험합니다. 14살까지 평균 5가지, 어른의 경우 10~15가지의 상실을 경험한다는군요. 아무리 단련이 되어도 누군가를 잃은 고통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란 어렵습니다.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도 어렵기만 합니다. 그저 괜찮은 척 슬픔을 억누르거나, 혼자 극복해보려고 애를 쓸 뿐입니다. 혹은 ‘슬퍼하지 마’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될 거야’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강해져야지’ 등의 말을 건네 보지만 과연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위로를 잘하는 사람일까요? 우리가 겪는 슬픔, 그리고 치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주

2006년, 7살 나이에 아빠를 잃은 영국 소녀 밀리(Milly)는 9살에 슬픔을 위로하는 책을 썼다. 책의 제목은 <아빠가 세상을 떠납니다(My Daddy Is Dying)>. 밀리의 아빠 사이먼 벨은 36세의 나이에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밀리는 4개월간 아빠의 고통스런 투병 생활을 지켜보며 큰 상실과 슬픔을 느꼈다. 그래서 비슷한 아픔을 겪는 아이들을 위로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스스로 찾아낸 슬픔을 견디는 방법을 책에 담은 것이다. 책에는 상실감을 극복하는 놀이, 상상하는 법, 죽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그림과 함께 표현했다.

밀리의 Tips
① 물감 마구 칠하기를 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물감을 마구 칠해서 종이 위에 쓰여 있는 아빠 이름을 감추곤 한다.
② 행복한 케이크에 대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만들고 그것을 그린다. (‘행복한 생각’이라는 재료를 추천한다!)
③ 하루의 기분이 슬펐는지 행복했는지 아니면 평범했는지 각 감정의 색을 정하고 칠해서 감정 차트를 만든다.
④ 아빠가 돌아가실 때 나는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았다. 그래서 소녀가 꽃 위를 날아가는 그림을 생각하고 이것이 나의 걱정들을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다.
⑤ 내 인생의 주기, 그리고 식물과 나무들이 어떻게 살고 죽는지를 그림을 그리며 이해했다.


“자신과 대화하십시오! 당신이 당신과 대화하기 시작하고, 그게 완성되면, 그 누구도 당신을 이길 수 없습니다. 당신이 당신을 모르기 때문에 긴장하거나 슬퍼하거나 고독한 겁니다. 당신과 친해지십시오!”
– 가수 김태원 KBS <남자의 자격> 중에서


진정으로 위로하는 법

“내가 6살에 뇌종양에 걸려서 수술을 받아야 했을 때, 내가 바란 것은 위로였어. 그런데 사람들은 위로는커녕 6살 아이한테 용기를 강요했어. 잔인하게. 괜찮아 영이야. 수술은 안 무서울 거야. 괜찮아 넌 이길 수 있어. 사람들이 그 말밖에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냐고? 안 괜찮아도 돼. 영이야 안 괜찮아해도 돼. 무서워해도 돼, 울어도 돼. 만약 사람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난 하루 이틀 울다가 괜찮아졌을 거야. 근데 그때 못 울어서 그런가 지금도 난 6살 그때만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나.” _ SBS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노희경 작. 2013) 중에서.

오영(송혜교 분)이 가짜 오빠 오수(조인성 분)에게 보통 많은 사람들은 슬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을 느끼고 내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배운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위로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다. 너무나 무섭고 두려웠을 6살 어린 영이에게 그렇게 이성적인 말을 해준 사람들처럼, 실직, 질병, 파산, 심지어 아이의 죽음 등으로 지독한 상실감을 겪어 힘든 사람들에게 그저 “슬퍼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이외에는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른다.

그런 이성적인 말이 아니라 “얼마나 무섭니, 얼마나 힘드니,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인정하고 이해해주는 말. 피하지 말고 그 슬픔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큰소리로 울어도 괜찮다고, 어떤 감정도 다 표현하라고 말해주고 무엇이든 받아주자. 때로 너무 지쳐 있어 무슨 말을 하기 어려워하는 상황이면, 말을 걸기보다 가만히 옆에 있어주거나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진정으로 위로를 받은 사람은 누군가 이성적으로 앞으로 이떻게 해야 해, 하고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감정의 앙금 없이, 새롭게 일어설 힘을 받게 된다.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① 위로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심리 상태에 큰 영향을 줍니다. 평소 신뢰가 돈독한 관계라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됩니다.
② 어설픈 말과 행동보다 진심 어린 마음으로 공감하고 조용히 곁에서 함께 있어주세요. 슬퍼할 때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면서 그 슬픔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③ 사고 관련 뉴스와 영상에 장기간 노출되면 직접 사고를 겪지 않았더라도 대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 있으므로 주의합니다.
④ 내가 알지 못했던 나의 콤플렉스, 상처, 아픔, 집착 등 부정적 감정들을 빼내는 훈련을 꾸준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음속에 어두운 요소가 줄어들수록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힘도 커지게 됩니다.
⑤ 평소에 즐거운 마음을 유지시킬 수 있는 취미 활동과 산책, 등산을 권장합니다. 또한 기쁨은 배로 나누고 슬플 때 위로받을 수 있는 좋은 인간관계를 잘 유지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⑥ 자신의 입장에서 경솔하게 위로를 하거나, 꿋꿋이 견뎌내 빨리 예전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기대를 준다면 오히려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슬픔을 억누르게 만듦으로 주의해야 합니다.
– 김재환, 목포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글쓰기나 일기 쓰기 등 문학을 통해 고통스러운 감정을 해소한 후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대화하는 등 사회성이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러한 글쓰기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누구의 검열이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에서 지극히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써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막지 않도록 문법, 글씨체 등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글은 슬픈 감정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된다. 저널 치료의 대가 캐슬린 애덤스는 상실의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 쓰기를 제안한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상황에서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함으로써 고통스런 감정에서 해방될 수 있고, 잃은 사람과의 미완성이었던 관계 부분을 완성할 수 있으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면서 자신의 위치에 대한 보다 깊고 명확한 인식이 가능하도록 도와준다.
– 참조 도서 <내 마음을 만지다>(이봉희 | 생각속의집)

‘보내지 않는 편지’를
써보세요


9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겨울 방학 무렵이었다. 학교에서 일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고 갑작스런 남편의 교통사고 소식이 전해졌다. 전화기 소리가 멀리 아득해지고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남편은 매사에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반면 난 생각이 많고 부정적이고 남 탓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남편의 사고가 모두 다 나의 잘못으로 주어진 벌인 것만 같았다. 매일 자책하며 슬픔에 빠져 울었다.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다가, 부엌에서 밥을 하다가, 자다가 일어나서, 밤이고 낮이고 눈물만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화장실에서 울고 나오는 내 앞에 10살 아들이 다가서며 말했다.
“엄마, 엄마가 그럴 때마다 동생이랑 내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제야 아이들도 아빠를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세상과 마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두렵고 낯설고 부끄러워 죄인처럼 느껴졌다. 마음을 다스리는 책을 읽고 또 읽고 종교에도 의지해 봤지만 두렵고 우울함은 견딜 수 없었다. 혼자가 되면 더 깊은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마음수련 교원 직무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수련을 하며 살아온 내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악몽 같은 교통사고, 남편에게 잘못했던 일, 나를 괴롭혔던 기억들을 계속 버려나갔다. 어느 순간 그런 것들이 지워지면서 마음이 안정이 되고 혼자가 되었다는 두려움과 슬픔에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내 안의 고통스런 감정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했던 남편도 임형주의 노래처럼 ‘천 개의 바람 되어’, 세상이 되어 언제나 함께 있고 변함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마음속 인생 드라마 한 편씩 만들어 가지고 있다. 나도 내 마음속의 내가 만든 드라마 속에서 살며 고통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즐길 줄 안다. 세상에 감사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에 감사한다.
– 빈경남 50세. 필리핀 클락 거주


누구나 힘들고 지칠 때면 자신만의 조용한 아지트를 찾게 마련이다. 나에게 도자기 작업은 그런 나만의 고백이고 휴식이고 즐거움이다.
내가 도자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십 년도 훨씬 더 전의 일이다. 집 주변에 공방이 있었는데,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하면서도 선뜻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모든 일에는 조건과 때가 있듯이 나에게 도자기가 다가오는 데는 몇 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로부터 3년 후쯤 알고 지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는 일이 일어났다. 좋게만 지내왔던 모든 것들이 허상이고 위선이었다 생각하니 나를 추스릴 수 없을 정도로 혼돈스러웠다. 누구에게 말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 위로받고 싶었지만 막막하고 그저 눈물뿐이었다.
그때 간절하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도자기 작업이었다. 저것만 하면 비로소 숨구멍이 트일 것 같았다. 그렇게 인연이 된 도자기는 벌써 15년 동안 나를 돌아보게 하는 소중한 아지트이자 비밀스런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가만히 혼자서 흙을 만지다 보면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겨운 것들도 그저 연속극의 이야기같이 가벼워진다.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느낄 때, 한바탕 마음속의 눈물을 쏟아내고 싶을 때, 항아리를 만들어 마음을 담아둔다. 힘들고 지칠 때면 울퉁불퉁 모난 구석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마음이 평화로울 때는 도자기의 형태나 선도 아주 부드럽고 평화롭다. 그렇게 만든 도자기에는 전부 나의 마음과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도자기들을 통해 나를 챙겨보고 되돌아보는 시간이 좋다. 어쩌면 이런 게 흔히 말하는 힐링이고 치유의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도자기가 그러했듯이, 삶이 절박해질 때면 무엇에든 집중해 보시라 권하고 싶다. 요리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노래가 되었든…. 그것이 곧 치유를 해줄 터이니.
– 박환순 47세. 경북 상주시 모동면

저는 도자기를 만들었습니다

사람은 힘들어서는 안 망한대요. 위로를 못 받으면 망한대요. 연인도,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랍니다. 살다가 어떻게 안 힘들겠습니까? 그런데 힘든 일을 겪고 나서 위로를 받은 연인, 친구들은 오래가고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보다 7년 오래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여자는 술이라는 매개체가 없이도 대화가 가능하고 위로가 가능하대요. 근데 남자들은 술 없이는 어렵죠.
여러분, 한국 남자들 불쌍하게 생각해 주세요. 한국남자가 제일 잘하는 거는 일이래요. 제일 힘들어하는 건 다른 사람을 칭찬하거나 위로하는 것이래요. 이걸 왜 그렇게 힘들어하나 봤더니 자기 아버지가 그렇게 하는 걸 본 적이 없답니다. 칭찬하거나 위로하는 걸 싫어하거나 할 마음이 없는 게 아니라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해하고 그러다 보니까 반복이 된답니다.
그래서 저는 남자분들이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색하지만 “힘들지?” 이야기 해보고, 여자분들은 저 남자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런 언어를 배우지 못했구나,하고 이해해준다면 어떨까요.
– CBS TV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김창옥 서울여대 교수의 강연 중에서


자매 분쟁 완전 해결

옛날 옛날에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못한 슬픈…이 아니고, 언니를 절대 언니라고 부르지 않았던 화난 동생이 있었습니다. 언니에게 ‘야, 자’는 기본. 거친 언어도 서슴지 않고 날렸던 그녀. 하지만 3년 전 온 가족이 마음 빼기를 하면서 언니와의 관계가 급속도로 좋아졌고 지금은 누구보다 잘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언니와의 십여 년간의 지겨운 싸움을 끝내고 드디어 철이 들었다는 동생의 고백을 들어봅니다.

언제부터 언니랑 사이가 안 좋았나?   

중학교부터였던 것 같다. 언니는 나에게 완전 친구 ‘급’이었다. 기본적인 존중이나 예의, 그런 건 전~혀 없다. 언니가 뭐라고 하든 말든 ‘너’라고 불렀다. 언니로 대우해준 게 하나도 없었다. 과자가 있으면 “내가 다 먹을 거야!” “아니야, 내가 더 많이 먹을 거야” 싸우고, 어쩌다 툭 밀었다간 “왜 때려?!” 하면서 또 때리고 “왜 더 세게 때려?!” 하면서 더 때리고 더 맞고, 그러다가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신기하게도 우리는 초, 중, 고, 대학교까지 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집에서도 같은 공부방, 같은 침실을 쓰니, 같이 자고 같이 먹고 같이 등하교를 했다. 그러다 보니 갈등이 없을 수가 없었다. 몰래 책상 어지럽히고, 베개에 침 뱉고… 언니는 아직까지 모르는 복수들도 많이 했다. (언니 미안… ㅠ.ㅠ)

싸울 일도 아닌 것 같은데, 넘 유치한 거 아닌가?   

원래 자매 사이가 그렇다.ㅎㅎ 보통 옷 때문에 제일 많이 싸운다. 내일 입을 옷은 그 전날 코디를 해놓는데 그게 겹치는 경우 비극이 시작된다. “나 내일 이거 입을 거야!” “싫어, 내가 산 거니까, 입지 마!” “먼저 얘기했으니까 니가 딴 거 입어!” 그러다가 머리끄덩이 붙잡고 하이킥 날리고 옷걸이 집어던지고 손톱으로 막 할퀴고 꼬집고… 지금도 흉터가 남아 있다. 거의 일주일에 서너 번은 심하게 싸웠다. 어쩌다가 언니가 내 얼굴을 치게 되면 나는 안경이 날아가고 눈에 보이는 게 없다. 흥분하고 막 욕하면서 “미친… 죽여버린다~~!!” 다시 하이킥! 딱 한 번만 참아도 안 싸웠을 텐데 서로 손톱만큼도 양보가 안 되니까 사태가 점점 심해졌다.

언니가 그렇게 미웠나?   

사실 언니가 그렇게 이상한 사람은 아니었고 묘한 질투가 있었다. 언니는 첫째라고 할머니께 세뱃돈도 많이 받고 엄마도 언니를 더 많이 챙겼다. 예쁜 옷도 더 사주고 학원도 더 보내고 어릴 때부터 언니가 머리가 좋다~ 아이큐도 높게 나왔다~ 등 언니 칭찬을 많이 하셨다. 초등학교 때는 집에 오시는 미술 선생님이 계셨는데 언니가 미술에 재능이 있었다. 나랑 같이 그림을 그려도 언니 그림만 다들 칭찬을 했다. 그런 언니가 얄미웠다. 워낙 자주 다투다 보니까 언니를 그냥 보기만 해도 머릿속에서 짜증이 끓어올랐다. 나한테 잘해주면 ‘아, 웬일이지? 뭘 시키려고 그러지?’ 선의가 선의로 안 느껴지고 전부다 삐뚤게만 생각했다. 언니가 엄마한테 용돈을 받아가도 ‘아, 진짜 왜 이렇게 돈을 막 써? 자기가 돈 벌어? 엄마도 힘든데.’ 어쩔 때는 “왜 태어났냐? 언니 다 필요 없다. 동생 있는 게 차라리 낫겠다”고 한 적도 있다.

지켜보는 부모님도 답답하셨겠다.   

그러셨을 거다.ㅎㅎ 벌도 세우고, 혼도 내고, 매질도 하셨는데 사이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언니와 나에게 마음수련을 권하셨다. 짧으나마 나의 인생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잘해주셨던 엄마한테도 내 맘에 안 들면 짜증 내고 심지어 때리고, 남 생각은 안 하고 살았다. 언니한테도 그동안 욕하고 모질게 대했던 게 정말 많았다. 나는 진짜 철딱서니 없고 동생 같지도 않은 동생, 까불고 대들기만 하는 동생이었다. 언니에 대해 짜증이나 미운 감정을 계속 갖고 있으니까 만나는 사람마다 불편해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상대는 마치 거울처럼 내 마음을 보여준다. 왜 굳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힘들어야 했을까 싶었다.

제일 많이 버린 게 뭔가?   

고집이 좀 셌다. 내가 해야겠다고 하면 무조건 해야 했다. 양보 절대 안 하고 배려 안 하고 먹기 싫은 건 죽어도 안 먹었다. 내가 별로 안 입고 싶었던 옷도 언니가 막상 입겠다고 하면 “싫어! 내가 입을 거야!” 하는 그런 똥고집?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 새로운 것도 시도해보고 수용한다. 사람들을 어려워하고 낯가리는 것도 없어졌다. 생각 자체가 긍정적으로 바뀌어서 뭐든 하면 되겠다.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도전하게 된다.

요즘에는 옷 때문에 안 싸우나?   

싸울 일이 없다. 만약에 같은 옷을 입고 싶으면 “나는 이 신발 신고 갈게, 언니가 이 옷 입어” 하면서 조율하거나 양보한다. 언니는 내가 늦게 들어오면 걱정도 해주고, 주말에는 같이 맛집 탐방도 다니고 쇼핑도 다닌다. 내가 무언가를 사거나 선택할 때마다 언니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오빠나 동생이라면 느끼지 못했을 것 같은 소소한 기쁨이다.

언니가 이제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나?   

언니를 보면서 맏이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많이 느낀다. 월급 받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친척들까지 일일이 챙기는 언니. 손재주가 좋아서 직접 액세서리도 만들어 엄마랑 이모한테 선물을 하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운다. 언니의 착한 행동들을 삐딱하게 보지 않고 인정하게 된다. 언니가 남자 친구랑 사진을 찍어 와도 예전에는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세트로 꼴불견’이었지만 지금은 ‘와 예쁘다~ 잘 나왔다~프사(프로필 사진)감이다~’ 얘기가 자연스레 나온다.

마지막으로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말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것 같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우리 둘 다 어엿한 성인이니까 각자 위치에서 항상 배려해주고 그런 착한 언니, 동생으로 잘 지냈으면 좋겠다. 여자 형제는 나이가 들면서 더 친해지고 끈끈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쭉~ 영원히 지금처럼 평생 붙어 다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언니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정말 좋고 감사하다. 언니 그동안 미안했고, 사랑해~♥

대학생 정혜선씨

대학교 2학년,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일상생활이 힘들었다는 정혜선(25)씨.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식은땀이 나고, 차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교통사고 ‘외상 후 스트레스’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어느 날, 그녀는 마음수련을 만나게 된다. 과거의 기억에 끄달리는 좀비 같은 인생에서 이제야 탈출했다며 환하게 웃는 풋풋한 여대생의 마음공부 이야기다.  정리 & 사진 김혜진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수업에 들어가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차 한 대가 오더라고요. 차가 멈추는 걸 확인하고 건넜는데 갑자기 그 차가 저를 치는 거예요. 순간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밟아서 저는 보닛을 타고 옆으로 떨어졌죠.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버스에 치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전공 책은 산산조각처럼 흩어지고 온몸의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게다가 “나는 바쁘니 보험 회사하고만 연락하라”는 가해자의 태도에도 화가 났었죠.

그렇게 열흘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이상하게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게 뭐라 설명이 안 돼요. 특히 밤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거 같고. 저는 차가 저를 칠 줄 몰랐거든요. 일단 멈춰 있었고, 횡단보도여서 믿고 건너가다가 치이니까 더 큰 충격이었죠. 그런데다 상대가 안하무인으로 나오니까 더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차에 대한 노이로제가 생겼어요. 처음엔 혼자 길을 건너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너무 떨려서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많아요. 일주일이 지나서야 횡단보도를 겨우 건너고. 몇 번을 기다렸다가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무리 지어 많이 모이면 같이 옆에 붙어서 가고. 유난스러웠죠. 언제든지 방향을 틀어서 나를 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항상 차를 주시했어요. 게다가 차 소리에도 민감해져서 차 시동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걷고, 끽~ 소리만 나도 자지러졌고요. 그때 알았어요. 세상천지에 차 없는 곳이 없구나.

성격도 예민하게 바뀌었어요. 그냥 웃고 넘길 말에도 짜증이 확 나고. 분명 말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에요. 내가 바뀐 건데 그게 컨트롤이 안 돼요. 결국 학기 말에 휴학을 했어요.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내가 계획한 것들이 일그러지니까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엄청 났죠.

그 교통사고가 진짜 원망스러웠어요.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늪과 같아요.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하고 있고 떨쳐내기가 어려웠죠. 사고가 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 어떤 것도 그 이전으로 되돌려주지를 못하는 게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거 같아요. 가족들, 친구들의 위로조차도 제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부모님의 ‘이젠 잊고 힘내라’는 말에도 굉장히 화가 나는 거예요. 누구보다 자식의 고통에 가슴 아파서 해주신 말씀이신데도, 부모님까지 원망할 정도로 제 마음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교내 사고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자, 세상에 대한 원망도 커져갔습니다. 결국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그래서 저한테 최선을 다했어요. 혹시나 우울증이 심해질까 봐 극복하려고 긍정적인 생각도 하고, 친구들도 열심히 만나고, 하루에 3시간씩 운동을 하고…. 근데 1년 넘게 했는데도 바뀌질 않으니까 점점 지쳐가는 거예요. 그때 좀 막막했어요. 탈출구도 없고 답도 없는데 계속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마음수련이 생각나서 집 근처 지역수련회에 찾아갔어요.

마음수련은 기억을 떠올려 버리잖아요. 처음엔 그게 참 힘들었어요. 그때의 내 모습이 싫고, 상황을 떠올리는 순간 운전자 얼굴, 망해버린 내 인생, 절망감과 분노가 뒤섞이면서 힘든 마음들이 올라오니까. 그런데 떠올리지 않으면 버릴 수도 없으니까 조금씩 떠올려 버리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금씩 벗어났던 거 같아요. 정말 세포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그때처럼 똑같이 아파왔어요.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려 버리는데 고통도 같이 버려지는 기분이었어요. 늘 온몸이 무거웠는데 너무 가벼워지고 체력도 점차 좋아지고. 교통사고로 인해 생겼던 트라우마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온 온갖 마음들까지 돌아보고 버릴 수 있었죠.

돌아보니 어떤 사건, 그 기억이 인생의 한순간을 빼놓지 않고 계속 영향을 준다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마음의 사진을 찍고 그 속에 살아간다는 게 참 무서운 거구나, 평생을 그 사건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면서 살겠구나. 정말 나라는 건 과거 사진의 집합체더라고요. 그게 너무 끔찍했기에 정말 열심히 버려나갔어요.

그러다가 우주가 나임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정리된 느낌이었어요. 그때의 감정은 형용할 수가 없어요. 이런저런 사연 속에 사는 게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 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후련했거든요. 그리고 희망이 생겼어요. 그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요. 아, 되는구나. 마음이 놓였죠.

신기한 건 어느 때부터인가 짜증을 안 낸다는 거예요. 저는 항상 짜증 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때 사고를 떠올려도 화도 안 나고, 어쩌다 사고 얘기가 나와도 덤덤하고요. 특히 차 소리가 났을 때 제 변화를 많이 느꼈어요. 예전엔 끽~! 소리만 나도 소스라쳐서 도망쳤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길을 걷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이 골고루 눈에 들어와요. 거리, 풍경, 친구 얼굴…. 일상이 편안해진 거죠.

친구들은 저보고 용 됐대요. 눈빛이 달라지고 성격도 유해지고….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는 거예요.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지고 진짜 의미 있는 삶이 뭔지 알게 됐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용서라는 말 이전에 용서가 돼 있더라고요. 더욱이 고맙기까지 했어요. 세상에 대한 화,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지니까 일단 제가 좋아요. 마음이 너무나 자유로우니까요.

꽃다워야 할 20대 초반을 좀비같이 보냈지만,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느끼며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마음을 비워내야만 세상이 보이고 힘든 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풍림화산!

풍림화산(風林火山)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공격할 때는 불처럼 맹렬히 하고, 적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해야 한다.”
(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고대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孫子兵法)> 군쟁(軍爭)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후 이 말은 종종 인생은 한 편의 전쟁 드라마와 같다는 비유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기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닥칠 때,
지금 빨라야 하는지, 고요해야 하는지, 맹렬해야 하는지, 묵직해야 하는지….
잘 판단하고 싶습니다.
그런 지혜로운 자가 되어,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묻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하늘의 뜻

하늘이란 여기도 하늘이고 저기도 하늘이고 이곳저곳이 모두가 하늘이라. 하늘의 참뜻은 이 세상 전체가 빈 하늘이 있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라. 이 우주 전체가 빈 하늘이 있어 우주의 천체가 존재하고 지구의 만상이 존재하는 것이라. 우리가 사는 것은 지구가 있어 있듯이 지구와 천체도 빈 하늘이 있어 있는 것이라. 이 세상에 있는 물체의 전부는 모두가 본바닥이 있어 있는 것이라.

이 세상의 천체와 만상이 또 물질의 어떤 것이 없어도 빈 하늘은 있을 것이다.
또 있어도 빈 하늘은 물질 안에 스스로 존재할 것이다.
이 세상의 이치는 물질이 온 곳이 이 빈 하늘이고 물질이 있다가 없어져도 빈 하늘이라. 온 곳이 빈 하늘이고 갈 곳이 빈 하늘인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우리가 세상 났다가 가도 빈 하늘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만들어놓고 그 속 사니 사람은 세상에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본뜬 허상인 자기의 마음속에 있기에 사람은 죽고 마는 것이라. 인간은 이 마음의 세상을 지우고 빈 하늘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인간은 이 빈 하늘에서 이 세상과 자기가 하늘에 진리인 이 영혼으로 다시 나며, 그렇게 다시 나지 않고는 살 자가 없는 것이라.

천국도 사람의 마음에 어디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의 천국이고 실제 진리로 존재하는 빈 하늘에 나는 것만이 영생이라는 단어가 성립이 될 것이고 이것이 하늘 난 자는 하늘에 산다는 뜻이다.

빈 하늘이 진리고 하나님 부처님 한얼님 알라이시다. 이 자체는 정과 신, 성령 성신, 보신불 법신불로 존재한다. 일체가 비어 있고 그 자체에 일신이 존재한다. 비어 있는 존재가 우주의 몸인 영이고 일신이 우주의 정신인 혼이다.

이 세상의 물질 일체가 환경인 조건에서 나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 일체가 하나인 우주의 정신이 물질로 표출이 된 것이다. 이 빈 하늘의 모양이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의 일체다.

빈 하늘은 물질이 아닌 비물질적인 실체인 것이다. 이 존재는 물질이 아니라 세상의 물질 일체에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이 빈 하늘은 창조주이기에 아니 계시는 곳이 없다. 이 진리이시고 창조주이신 본바닥인 하늘에 나려면 자기를 세상에서 다 지우고 이 빈 하늘이 자기의 마음이 되어 이 재질로 다시 거듭나야만이 인간은 살아서 천국에 갈 수가 있고 영원히 살 수가 있다.

이것은 빈 하늘의 주인만이 빈 하늘에 부활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자체가 구원일 것이다. 살아 있는 빈 하늘이 있어 별 태양 달 지구가 있고 또 지구에 만상과 인간이 있다. 이 빈 하늘이 창조주인 것이다.

이 빈 하늘의 주인이 사람으로 왔을 때만이 이 빈 하늘에 세상과 인간을 나게 할 수가 있어 이 우주가 있는 것을 살리는 완성이 되는 것이다. 사람 속에 갇혀 죽은 세상을 사람마다의 마음속에 부활하게 하고 거기에 난 자는 그 세상의 주인이라 그 세상에 백성을 모을 것이다. 또 하늘 난 자는 하늘에 살 것이고 하늘 일 할 것이라.

하늘의 뜻이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없고 뜻조차 넘어서 존재하나 스스로 그때에 참이 행하여지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이제는 이 세상이 하늘에 나는 때다. 또 자기도 하늘에 나는 때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고 이때에 우리는 하늘에 들어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이유와 목적은 이때에 하늘 나서 영원히 살기 위함이다.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시인, 저술가, 강연가입니다. 2002년 인간 내면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UN-NGO 산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평화 대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저서로 <세상 너머의 세상>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등이 있으며 그의 저서 중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의 영역본은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5개 국제도서상 2013 LNBA, NIEA, IBA, IPPY Awards, 2012 eLit Awards에서 영성, 정신, 철학 분야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최근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의 영역본이 2014 에릭 호퍼 북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하는 등 마음과 비움, 깨침에 대한 우 명 선생의 철학이 전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저보고 팀장하래요!?

제 고민은요?

저희 팀 팀장님이 이직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팀장 자리가 몇 달간 공석이었는데, 최근 근무 연수가 제일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팀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동료들과 나이대도 비슷하고 경력도 비슷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며 허물없이 지냈는데 갑자기 팀장이 되고 보니 되게 어색합니다. 팀장입네 나서기도 애매하고… 일은 해야 하는데 뭔가 불편하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제 생각은요!

저도 오랜 직장 생활을 해봤지만, 직급이 올라갈 때는 마치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낯설고 어렵고 두렵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의 나와는 달라져야 한다는 혼돈스러운 그런 마음. 우선, 당연히 겪어야 할 단계라고, 마음을 굳게 먹으세요. 공석으로 인해 팀장이 되었다면, 내가 할 일이 아니지 않을까 피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데, 그럼 더 혼돈스러워집니다. 나에게 주어진, 당연히 해야 할 새로운 경험이라고 즐겁게 도전해 보세요. 두 번째, 팀원에 대해서 내가 윗사람이니 명령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 서로 도움이 되어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한, 조율자이자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보세요. 같이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이니 각자의 특성이나 장단점을 잘 아시는 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세 번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세요. 직급이 올라갈수록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주어집니다. 그럴 땐 주변에 물어보며 도움을 받고, 좋은 결과는 함께 나누고 나쁜 결과는 내가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해나가신다면, 모두가 행복한 팀이 될 것입니다. 홧팅! 정영옥

팀원들과 솔직하게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님이 팀장이 된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님께서 느끼는 어려움도 털어놓아 보세요. 님이 팀장이라는 자리가 어색하듯, 팀원들도 님을 팀장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마음의 준비나 충분한 업무 경험 없이 팀의 리더 역할을 하는 것이 분명 쉬운 일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건 그 자리에 가면 아무래도 그만큼 더 많이 고민하게 되고 움직이기 때문이겠지요. 업무 경험이나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는데, 사실 팀장 역할이라는 게 팀원보다 업무 자체를 잘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팀 운영과 관리를 잘해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역할이 더 중요합니다. 이제는 팀원으로서의 버릇은 버리고, 한 차원 높은 곳에서 팀 전체가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고민해보세요. 어느새 님을 보는 팀원들의 시선도 달라져 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과연 회사에서 가장 오래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팀장으로 임명 했을까요? 그건 아닐 겁니다. 때로 부족해 보일 때도 있지만 내가 어떤 자리에 있는 것은,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사에서는 이미 님께 신뢰를 보내고 있음을 믿고, 자신 안의 능력을 긍정하며 더욱 힘내세요. 김미진

3년째 팀 막내 직장남입니다. 솔직히 아직 그런 경우는 없지만, 저와 같이 입사한 동기가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플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차가 가장 오래되신 분이 팀장이 되는 건 여러모로 당연해 보입니다. 그러니 너무 어색해하거나 미안해하지 마세요.
제가 좋아하는 팀장님은 우리 팀이 추진해온 일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결과가 안 좋거나 팀원들이 실수할 때도 책임감 있게 받아주시면 업무에 자신감이 생기고 팀장님에 대한 믿음도 생기지요. 그리고 진심으로 팀원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힘들다고 얘기하면 저를 ‘불만 많은 문제 사원’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수평적인 관계에서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거죠. 조언을 할 때도 조직의 미래만 생각하기보다, 팀원 개인이 성장할 수 있는 방향을 이야기해주면 나 자신을 위해서도 팀을 위해서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답니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좋은 사람이 결국엔 좋은 팀장 같아요. 내가 좋은 사람이었는지, 자아비판의 시간도 가끔은 가져보시면서(^^;;) 팀원들의 의견을 진심으로 귀담아듣고 조율해 나간다면 주변에서도 다들 도와줄 겁니다. 강동철

 

지금 고민 중이신가요. 혼자
힘들어하지 마시고 함께 나눠보아요.
고민과 의견이 실리신 분께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엽서, 이메일 edit@maum.org
SNS 관련 게시글의 댓글로도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다음 고민입니다.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갔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된 후 요즘 들어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내 친구 누구는 엄마가 이런 걸 사줬대, 내 친구 아빠는 한 번 심부름을 하면 10만 원을 준대.’ 헐~! 한 번 심부름했다고 9살 아이에게 10만 원을 주다니. 참 문제구나 싶지만, 그런 친구들과 자꾸 비교하는 아이를 보며 주눅 들까 걱정입니다. 행복은 그런 데서 오는 게 아니라고 설명도 해주지만, 그 말을 얼마나 받아들일지. 자꾸 친구들과 비교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고민입니다.

남자들은 죽어도 모르는 여자들 이야기

퇴근길에 동네 형님을 만나 간단하게 술 한 잔을 하게 됐습니다. 집에 있던 형수도 부르고 오늘 일찍 퇴근해서 미장원에 들른다던 아내에게 전화했는데 받지를 않았습니다. 형수님이 도착하고, 나오는 길에 아내와 통화를 했다며 이제 미장원에서 출발한다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오후 3시에 퇴근해서 미장원에 들른다는 아내가 7시가 다 되어서 끝이 났나 봅니다. 저에게는 분명 앞머리만 살짝 다듬는다고 했는데 마음이 변해서 큰 공사를 한 모양입니다.

안주가 나올 때쯤 아내가 왔습니다. 미스코리아 사자머리까지는 생각 안 했지만 그래도 뭔가 크게 달라진 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변한 게 없었습니다. 그냥 아침에 출근했던 그대로였습니다. 아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동네 친구 사이인 형수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어머야~~ 나 엉치뼈 아파 죽는 줄 알았다. 4시간 앉아 있는데 배도 고프고….” 형수가 두부김치 한 쌈을 싸서 아내의 입에 넣어주며 맞장구를 쳐줍니다. “고생했다 가시나야. 어머, 옆머리 많이 잘랐구나. 훨씬 낫다 얘~~~ 그 정도 라인에서 끊어주니까 내 말대로 컬이 살잖아. 어머, 너무 예쁘다 얘~~”

두부김치 한입을 입에 물고 아내가 신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괜찮니? 어머, 난 너무 올린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지. 요기 밑에 라인까지만 하려다가, 너 말 생각나서 요기까지 올렸잖니, 요기까지 한 번 더 올리려고도 생각했는데, 그럼 이쪽 웨이브가 어중간하다고 담에 끝 부분을 한 번 더 말아주라고 하더라고.”

형수가 아내의 소주잔에 술 한 잔을 채워줍니다. “어머야~ 잘했어~~ 맞아, 지금 길이가 딱 좋아. 어! 윗머리도 폈구나?” 아내가 소주잔을 들었다 다시 놓으며 정수리를 테이블 쪽으로 들이밉니다. “머리가 너무 뜨는 거야. 그래서 머리 뿌리 부분만 스트레이트 했어. 이게 시간이 너무 걸린 거야. 사람도 많고 나 숱 너무 많잖아.” “어머야! 그러니까 밑에가 산다 얘~~ 밑에 볼륨이 사니까 훨씬 어려 보인다. 얘~~”

형수가 아내의 머리끝을 살짝 만져 보는가 싶더니, “영양도 했구나!” 아내가 머릿결을 한번 쓰다듬고, “요즈음 머리가 너무 푸석한 거야.” 이후 전혀 옮겨 적지도 못할 전문적인 언어가 둘 사이를 오고 가나 싶더니, 아내가 얘기하다 말고 문득 형수의 옆머리를 들어 올리나 싶더니, “어머, 지지배 귀걸이 너무 예쁘다. 저번에 귀걸이 아니네. 샀어? 너무 예쁘다.”

형수가 웃으며 옆머리를 귀 뒤로 쓸어 올리고 나서야, 귀에 붙은 코딱지만 한 귀걸이를 전 봤습니다. 앞에 형님과 둘이 소주 한 병씩을 다 비울 때까지 두 아줌마는 연신 서로 예쁘다는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청룡영화제 대기실에서 만난 전지현과 김태희도 서로 저렇게 예쁘다고 칭찬을 주고받진 않았을 겁니다.

 

간단한 술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자주 먹이를 주던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아내가 늘 가방에 준비하고 다니는 먹이를 하나 꺼내 들고 고양이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봤습니다.

그때야 아내의 머리 모양이 눈에 조금 들어왔습니다. 저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내가 뒤를 돌아보며 소주 한잔에 빨갛게 된 건지 쌀쌀한 날씨에 빨갛게 된 건지 모를 볼에 두 손을 살짝 올리며 한마디 합니다. “예뻐서 그러는구나? 이제 둘만 있으니까 예쁘다고 얘기해도 돼.” 질문만 하고, 대답도 안 듣고 아내가 집을 향해 걸어갑니다.

울타리 밑에서 아내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당당이가 울음소리를 냅니다. 아내가 지어준 길고양이 이름입니다. 얼굴에 큰 점이 있고 참 못생겼는데 온 동네를 당당하게 걸어 다닌다고 해서 아내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당당이에게 눈인사를 하며 저도 아내 뒤를 따르다 당당이에게 나지막이 한마디 했습니다. “너도 당당이지만………… 쟤도 44살 먹은 당당이야. 너만 알아….”

백일성(44)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카셰어링, 쏘카

취재 문진정

아이들과 함께 외출할 때, 무거운 짐을 옮겨야 할 때, 내 차처럼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나눔 서비스가 있다. 개인의 소유물이었던 자동차를 공공의 재화로 만든 카셰어링 기업 ‘쏘카’다. 일 년에 한두 번, 특별한 날 하루 종일 빌려 쓰는 것이 렌터카라면 쏘카는 10분 단위로 예약할 수 있는, 나의 출퇴근, 장보기, 데이트 시간을 함께하는 일상 서비스이다.

쏘카는 2012년 초 제주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제주도에는 집집마다 자동차가 두세 대씩 세워져 있다. 김지만 대표는 잠깐씩 필요할 때만 쓸 수 있는, 함께 쓰는 차가 생기면 경제적 부담도 줄고 에너지 절감, 환경 보호 등의 많은 이점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 하이브리드 자동차 30대를 구입, 카셰어링 서비스를 시작했다. 3개월 만에 제주도민과 여행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고 2013년 2월부터는 서울시 공식 ‘나눔 카’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 부산, 대구, 울산, 제주 등 전국 420여 곳에서 쏘카존이 운영되고 있으며 통합 회원은 9만 명, 차량은 540대를 돌파할 정도로 고속 성장하였다.

이제는 비싼 관리비, 보험료, 주차비를 걱정하면서 ‘내 차’를 굳이 사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우리 집에서 5분 거리에 나와 너의 차, 우리의 쏘카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쏘카, 이용 방법

① 쏘카 홈페이지(Socar.kr)에 접속해 회원가입 후 쏘카 회원카드를 발급받는다.

② 우리 동네 쏘카존을 검색하여 원하는 차를 예약한다.

③ 쏘카존으로 가서 차를 사용한 후 다시 지정된 쏘카존으로 돌아온다.

주유는 차량 내부에 비치된 주유카드로 해결. 시간과 주행 거리에 따라 사용 요금과 주유비가 자동으로 결제된다. 1시간 이용 시 요금은 4~6천 원 선.

쏘카의 나눔 활동

‘나눔 보따리’는 ‘아름다운가게’에서 매년 소외 계층에 생필품과 쌀을 배달하는 봉사 활동이다. 지난겨울에는 쏘카에서 차량을 무상 지원하여 회원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 외에도 성금을 모아 양말을 제작, 배달하는 등 다양한 나눔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쏘카 마케팅팀 홍지영씨 이야기

카셰어링이란 것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대단하고 특별한 행위라기보다, 아주 일상적이고 현실적인 서비스로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한번 쏘카를 타보면 ‘재미있다’ ‘합리적이다’ ‘쿨해 보이는데?’ 등 카셰어링의 재미를 느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는 ‘한 줄 댓글’이라고 해서 차마다 그 차를 이용한 사람들만 볼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어요. 이 차를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썼는지, 이용 노하우도 공유하고 차를 나눠 쓰는 사람끼리 친밀해지면서 서로 배려하게 되고 정도 쌓이는 곳이죠.

‘차에 CD를 놓고 왔는데 그냥 들으세요.’ ‘지난번에 깜빡하고 쓰레기를 못 치워서 미안합니다. 대신 음료수 넣어놨어요.’ ‘쏘카로 늘 데려다주던 여자 후배랑 사귀게 되었어요.’ 등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많이 나누시는데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연말 파티, 봉사 활동 등 기회가 생길 때마다 회원분들과의 모임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실제 이용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차종도 반영하고, 차량을 편도로 대여하는 서비스도 실행하게 되었고요.

올 상반기에는 차량도, 회원도 지금의 두 배 정도 늘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더 합리적이고, 일상적이고, 건강한 서비스, 그리고 자동차를 더 똑똑하게 쓸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저희의 최종 목표입니다.

중환자실에서 만난 잊지 못할 보호자

재작년 9월, 서울의 한 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할 때였다. 당시 중환자실 8명의 환자를 2명의 보호사가 돌보았다.

첫날, 저녁쯤 한 환자분의 딸이 엄마를 보러왔다. 4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었는데, 회사 일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것이다. 첫인상은 좀 차갑다 할까, 말도 별로 없고 되게 까다로운 분이겠거니 했다. 다음 날도 비슷한 시간쯤 딸이 찾아왔다.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딸은 어김없이 병원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뭐 며칠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계속 반복되니까 뭔지 모를 감동 같은 것이 밀려들었다. 알고 보니 엄마가 입원한 지 1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를 보러 왔다고 했다!

딸은 오면 우선 물을 떠다가 엄마 얼굴도 씻기고, 손발도 닦아주고 로션도 발라주었다. 우리들이 다 했다고 해도 “해드리고 싶어서 그래요” 하며 엄마를 챙겼다.

그리고 욕창 환자들이 쓰는 베개도 네 벌씩 사다놓고 모든 면에서 엄마가 편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엄마, 내가 어렸을 때 오빠가 50원 준 거 엄마한테 말 안 하고 썼다고 엄마가 혼냈었잖아, 기억 나?” “엄마, 오늘 오빠가 승진했대. 오빠 잘했지?” 그리고 엄마의 손을 꼬옥 잡고 지나간 추억 이야기며 손자들 자라는 이야기, 집안 이야기 등을 해드리곤 했다.

비록 못 움직이고, 말도 못하고, 밥도 코로 연결된 줄을 통해 겨우 드셔야 하는 중환자이시지만, 그렇게 딸이 있을 때면 눈빛도 얼굴색도 활짝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루는 날씨도 춥고 비도 내리고 무척 궂은 날이었다. 오늘도 올까? 했는데 어김없이 딸은 나타났다. “이런 날은 좀 쉬지. 내가 있잖아요. 나도 엄마한테 최선을 다해드리는데.” 그렇게 말하자 딸이 한마디 했다. “저도 알지요. 그런데 엄마가 기다릴 거 같아서요. 왔다 가야지 마음이 편해요.”

그렇게 정성을 다하니 우리도 감동을 받아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게 되었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도 많이 났다. 사실 나도 효녀 소리 들었지만, 그 딸처럼 하지는 못했다. 애들 낳고 살림한다고 자주 찾아뵙지도 못했고, 엄마 돌아가실 때도 옆에서 하루밖에 못 있어드렸다. 그걸 생각하면 지금도 한스럽다.

“어떻게 그래요? 엄마가 참 잘 키웠나 보네.” 첫인상은 차가웠지만 보면 볼수록 정이 많은 그 딸에게 한번은 이렇게 물었다.

자식들 키우느라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그렇게 고생을 하신 엄마라고 했다. 자기 아들들도 엄마가 다 키워줬는데, 이제 좀 쉬실 만할 때 쓰러지셨다고. 너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할머니가 키워줬다던, 이제 대학생이 된 손자들도 자주 와서 꼭 엄마처럼 할머니에게 하고 갔다. 얼마나 사랑을 많이 줬으면 손자들까지 그렇게 할까 싶어서 부럽기도 했다.

“바쁠 텐데 싫다고 안 하고, 할머니 보고 싶어서 왔어?” 물으면 손자들은 “당연히 와야죠. 우리 할머니인데요” 하고 대답을 했다. 역시 자식들은 보고 배우는 것일까.

5개월 후 내가 다른 병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그 환자하고도 헤어졌다. 지금도 그때 당시의 짝궁 보호사를 통해 소식을 듣는데 그 따님은 여전히 매일같이 엄마를 찾아온다고 한다.

비록 말은 못하지만 그 엄마는 참 행복하실 것이다. 중환자실의 의식 없어 보이는 환자들도 다 느낀다. 우리는 안다. 좋으면 웃는 게 느껴지고 어떨 때 눈물을 흘리는 모습도 본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보호자를 본다는 것은 참 드문 일이라, 지금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그 딸 이야기를 하곤 한다. 최고의 효도는 뭘 해드려서가 아니라 얼굴을 자주 보여드리는 것이다. 부모에겐 맨날 봐도 보고 싶은 게 자식이다.

박승금 67세. 요양보호사

‘주변을 감동시켰던
그 따님’에게 박승금 님의
마음을 담아 꽃바구니를
보내드립니다.

‘나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그 사람’을 소개해주세요.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도 좋습니다.
소개된 분께는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제라늄’을 소개합니다

외국의 멋진 풍경을 보면 집집마다 건물마다 창가를 풍성한 꽃으로 장식한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꽃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보다 더 큰 이유는 꽃을 이용한 ‘방충망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 꽃들 중에서도 어딜 가나 만날 수 있는 가장 흔한 꽃이 바로 ‘제라늄’입니다.
사실 가격도 저렴한 편인 데다 여름철의 과습만 주의하면 일 년 내내 예쁜 꽃을 보여주는 아주 바람직한 성격의 소유자가 바로 이 제라늄이에요. 꽃 시장에서는 ‘구문초(驅蚊草: 몰구, 모기 문, 풀초=모기를 몰아내는 식물)’라 불리는 ‘로즈 제라늄’이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제라늄에서 나는 독특한 향기는 해충을 쫓아주는 효과가 있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꽃과 잎에서 풍기는 강한 향이 싫다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비린내가 섞인 듯한 동물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냄새가 역하다는 것이지요. 나중에 제라늄의 향기가 해충을 쫓아준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생각을 조금 달리하기도 합니다만.^^ 더구나 모기에 물려 가려울 때 제라늄 잎을 잘라 문질러주면 금세 진정이 되는 것을 보고는 “어, 이거 괜찮은데!”라는 소리를 절로 하게도 되지요. 살다 보면 이런 경우 정말 많습니다. 뒤늦게 깨닫게 되는 것들 말이에요. 나의 입장에서만 보면 ‘이런 건 없었으면 좋겠다’ ‘저건 불필요한 것이다’라고 생각되는 것이 우주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분명 어딘가에 도움이 되고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것. 문득 노자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한테 예쁘고 좋은 것만 선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바로 잘못된 생각이다.”

글 & 사진 성금미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의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