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전인 교육의 시대

흔히들 정부의 교육 부처에서는 전인 교육에 관하여 많이들 말해 왔다. 학교에서는 전인을 지덕체예(智德體禮)라고 써놓기도 하고 토의하는 시간도 있었다. 중국에서는 전인을 지인용(智仁勇)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한국말로는 지덕체인 것이다.

전인이라고 하면 완전한 사람을 의미한다. 완전한 사람이란 참인 진리인 사람이고 또 참영혼이 죽지 않는 사람일 것이다. 이 사람이 성인인 것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참사람이 구호에만 그치지 말고 되어 살아야 바른 삶을 살 것이다. 사람이 미완성이고 또 거짓이라 사람은 이 전인에 관하여 갈구하고 전인이 되려고 많이 노력하였지만 전인 되기는 쉽지가 않았다. 완전하다는 것은 죽음이 없고 살아 있어야 완전한 것이다.

인간이 의인이 되고 인간이 바르게 되려면 인간의 마음 구조부터 알아야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의 것을 사진 찍는 사진기인 것이다. 세상에 사는 줄 아나 인간은 세상을 봄과 동시에 자기의 마음속에 사진을 찍어 사진 속에 자기가 살고 있어 허인 것이라. 세상과 사람의 마음이 겹쳐져 있기에 사람은 세상 사는 줄 착각하고 사는 것이라.
자기가 경험한 일체가 자기의 마음속에 있지 않는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말하고 감각 있었던 것이 자기의 마음에 새겨져 있지 않는가. 인간의 마음은 세상에서 있었던 일과 세상을 복사하는 복사기와 같은 것이다. 인간마음이 세상을 복사하는 복사기다. 인간은 세상 사는 줄 아나 세상 살지 않고 자기의 마음속에 살고 있기에 전인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인간이 완성인 전인이 되려면 더하기만 하던 자기의 마음세계에 빼기를 해야만 완성의 길로 갈 수가 있다. 거짓인 사진이 버려진 만큼 참이 나타날 것이다. 거짓인 인간이 참이 되는 것이 완성인 것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의 삶에서 더하기만 하고 살아왔다. 그러나 거짓인 자기 마음속의 사진을 빼고 거짓세계에 살고 있는 자기를 버리면 완성이 될 수가 있고 본성을 회복할 수가 있다.

본성이란 본래의 성품이다. 본래의 성품이란 신의 마음인 진리의 마음이다. 인간이 복사한 그 마음이 없으면 본성을 찾을 수가 있다. 복사하기 전의 원본이 바로 세상인 본성인 것이다. 이 세상에 ‘나’가 있는 것은 바닥인 지구가 있어 있고 지구는 본바닥인 하늘이 있어 있다. 이 하늘의 마음이 되는 것이 본성 회복인 것이다. 거짓인 인간마음과 인간이 다 죽으면 진리인 이 하늘마음만 남아 인간이 본성 회복이 될 수가 있다.

이 하늘인 본성에서 다시 나면 진리인 바른 나라에 난 자라 죽음이 없을 것이고, 세상 자체라 세상의 이치를 다 알 수가 있어 지혜 자체의 사람이 될 수가 있고, 순리의 삶을 살아 도둑이 없고 나쁜 사람이 없어 세상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 될 것이다.

지금의 지식 공부는 먹고살기 위한 공부지만 완성인 인간이 되고 먹고사는 공부를 시키면 세상의 이치를 알아 더 공부도 잘하고 더 잘 살 수가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야말로 본성 회복의 시대에 먼저 이 본성을 회복시키는 나라가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마음수련회는 본성 회복하는 곳이기에 또 실제로 되는 곳이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본성을 되찾기 위하여 모이고 또 많은 이가 본성을 회복하였다.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시인, 저술가, 강연가입니다. 2002년 인간 내면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UN-NGO 산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평화 대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저서로 <세상 너머의 세상>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등이 있으며 그의 저서 중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의 영역본은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5개 국제도서상 2013 LNBA, NIEA, IBA, IPPY Awards, 2012 eLit Awards에서 영성, 정신, 철학 분야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최근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의 영역본이 2014 에릭 호퍼 북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하는 등 마음과 비움, 깨침에 대한 우 명 선생의 철학이 전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내 친구 뚱땡이

따르릉 따르릉~ 아침이면 휴대 전화가 울린다.
안부를 묻는 내 친구 뚱땡이의 전화다. 꼭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다. 나에게 전화를 해야 하루가 돌아간다고 한다.

그 친구는 얼마나 뚱뚱한지 별명이 뚱땡이다. 뚱땡이는 마음이 바다처럼 넓고 깊다.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풍족하지는 못해도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간다. 봄이면 산에 올라가서 고사리, 취나물 뜯어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는다. 고사리 꺾으면서 손도 얼굴도 새까맣게 타도 마냥 좋아한다. 가을이면 농사지은 쌀을 나눠주고 떡국을 뽑아서 나누어 먹는다.

겨울이면 텃밭에서 도라지, 당근을 캐 나누어 먹고, 김치를 담아서 홀로 사시는 독거노인들께 드린다. 나에게도 늘 준다. 아이들 고시원에도 보내주고. 시어머니 드시라고 맛있는 음식도 가져다준다. 친구의 마음속에는 ‘사랑’이란 샘물이 펑펑 솟아나온다. 바다처럼 모든 것을 수용하고, 항상 싱글벙글 콧노래를 부르며 다니는 뚱땡이를 너무 좋아한다.

내 친구 뚱땡이, 김부임을 만난 지는 벌써 10년이 넘었다. 당시 조그만 개인 회사에 다닐 때 알게 되었다. 펭귄처럼 뒤뚱뒤뚱 걸으며 밝게 웃는 낙천적인 성격의 부임이가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성격도 잘 맞아 금세 친해졌다. 나는 구례, 부임이는 순천에 산다. 일을 그만두고도 계속 전화로 연락하고 만나며 지내고 있다.

부임이는 몇 년 전부터 요양보호사를 하고 있다. 하루에 세 집을 다니면서 청소도 해주고 빨래도 해주고 음식도 해주며 할머니들을 보살핀다. 봄이면 쑥을 뜯어 쑥국을 끓여드리고 미나리 부침개 부쳐서 냠냠 함께 먹으면서 작은 봉사를 하는 뚱땡이가 부럽다.

할머니 마음도 잘 어루만져준다. 웃음 치료사같이 말도 잘한다. 할머니가 시름시름 아파하면 깡충깡충 노래도 불러주고, 치매 예방에 좋다며 10원짜리 화투도 같이 쳐드린다. 그렇게 해드리니 “요양보호사 선생님 최고다, 뚱땡이 선생님 최고다” 한다.

살다 보면 사람 때문에 힘들 때가 너무 많이 있다. 그럴 때는 사람이 싫어서 피하고만 싶어진다. 하지만 곧 깨닫게 된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 또한 사람으로 인해서 치유받는다는 것을. 그걸 부임이를 통해 배웠다.

추운 어느 겨울날 따르릉~ 뚱땡이의 전화다. 꼭 만날 일이 있다 하였다. 튀김집에서 만나서 튀김 먹고 어묵 먹고 까르르~ 깔깔. 춥지만 둘이서 거리를 걸으면서 원 없이 웃었다. 이상하게 그날따라 뚱땡이가 내 주머니에 손을 꼭 넣고 다녔다. 추워? 물었더니 친구는 “아니여~ 너 호주머니 얼마나 따듯한가 보려고” 한다.

한참을 걷다 지나가는 택시가 오니까 가야겠다며 호주머니 속에서 손을 얼른 빼고서 택시를 탔다. 허 가시내가~ 하면서 혼자서 웃었다. 그런데 보니 내 주머니 속에 봉투를 넣고 간 거다. 속을 보니까 5만 원이 들어 있었다. 요게 뭐당가? 나중에 물어보니 친구가 말한다.
“그 돈 말이여. 너에게 용돈 주는 거야. 하하~ 맛있는 거 사 먹거라.”

봉급 타면 어떤 핑계를 대서든 용돈을 준다. 자기는 애들도 다 결혼시키고, 나보다 편한 조건이라며 그렇게 챙겨준다. 그렇게 다 퍼주면 어떻게 사나? 걱정될 정도지만 오히려 더 잘산다. 마음씨가 좋아서 그런지 하늘이 보살펴주는 거 같다.

‘꽃보다 당신’이라는 코너에 꼭 소개하고픈 친구였다. 부임에게는 그랬다.
“나가 진짜 글을 열심히 써서 채택되면 책 선물을 할게. 할머니들 읽어주라.”
이렇게 소개가 되니 너무 좋다. 부임아 뚱땡아. 세상에 태어나서 니같이 좋은 친구를 얻어서 고맙다. 늘 예쁜 마음씨 베풀어주어서 고마워. 사랑한다. 뚱땡아.

글 고욱향 58세. 전남 구례군 구례읍

‘내 친구 뚱땡이 뿌임아 항상 고맙고 사랑한데이.’
고욱향님의 마음을 담은 문구와 함께 김부임님께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나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그 사람’을 소개해주세요.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도 좋습니다.
소개된 분께는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여행이라는 과정 속에서 새로운 나와 만나고, 새로운 사람과 만났던 소중한 순간의 이야기

엄마랑 여행하길 정말 잘했다

김윤호 27세. blog.naver.com/kimyuenho

울 엄마는 충청남도 시골 땅에서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났다. ‘맏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옛말에 매우 충실하게도, 어려서부터 살림 밑천 노릇을 톡톡히 하셨단다. “예쁨받아도 모자랄 국민학생의 손으로 동생들의 기저귀를 갈거나 산속에서 땔감을 주워 와야 했다.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수가 없더라.” 울 엄마의 아버지는 젊고 건장했지만, 가정적이지는 못했다. 살림 밑천을 충분히 활용하셨고, 가정사에는 충실하지 않으셨다.

울 엄마는 가방끈이 짧다.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동생들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일찍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울 아빠랑 결혼하고도 삶은 그리 넉넉지 못해, 그 흔한 해외여행 호사 한 번 못 누려봤다. 그런 울 엄마는, 그래도 항상 긍정적이다. 매사에 부정적이고, 불만 많은 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해준다.

혼자만의 긴 여행을 가려고 준비하는 내게 엄마가 “100만 원이라도 보태줄게, 돈도 없을 텐데…”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엄마의 말이 나에게는 ‘엄마도 가고 싶다’라고 들렸다. 평생 희생만 하며 사신 엄마에게도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엄마, 같이 갈래?” 울 엄마 입가에 퍼지던 완연한 미소, 대답으로 충분했다. 비행기 예약을 마치고 여행을 준비할 때였다. 예기치 않게, 외할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셨다.

나는 ‘외할아버지는 엄마를 끝까지 붙잡는가 보다…’ 싶었다. 그러나 그때 이미 나의 여행은 엄마와 함께하지 않으면 큰 의미가 없는 여행이 되어버렸기에, 여행을 3주 늦추면서까지 외할아버지의 차도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다르게 외할아버지께서는 쉽게 일어나지 못하셨고, 장기전으로 돌입했다.

장녀로서 아버지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쉽사리 여행을 결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감사하게도, 엄마의 형제들과 외할머니가 적극 지지해주었다. 게다가 엄마가 감당해야 할 모든 일들을 아빠가 대신 해주겠다고도 하셨다. 덕분에, 엄마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외할머니께서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엄마에게 편지와 함께 여비까지 주셨다.

‘사랑하는 우리 딸, 외손자랑 여행 잘 다녀오너라.’ 그 짧은 글을 읽는데 왜 이리 가슴이 먹먹한지 모르겠다. 그렇게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작년 연말 60일간의 남미 여행에 오를 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도 아들과 여행 가는 게 마치 꿈꾸는 거 같다고 말하던 엄마.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매 순간 순간이 생생하지만, 내가 엄마랑 여행하길 참 잘했다고 느꼈던 에피소드 하나가 있다.

남미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여행 전부터 익히 들어왔던 터라, 우리는 항상 긴장하고 다녔다. 특히 볼리비아에서 만난 한 여행자가 택시 강도를 당했다는 말에 택시보다는 로컬 버스를 이용했다. 그러나 페루의 쿠스코는 버스 시스템이 전무한 수준이라, 부득이하게 다음 도시인 리마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버스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데 긴장이 풀렸던 탓일까? 짐을 내리고 버스터미널로 향하는데, 어머니께서 짐 하나를 두고 내린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그랬다. 어머니는 급하게 내리느라, 가방 하나를 놓고 내렸고, 공교롭게도 그 안엔 가장 중요한 여권과 귀중품들이 들어 있었다.

어머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셨고, 나는 메고 있던 배낭을 바닥에 팽개치고, 택시를 쫓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일단 호스텔로 다시 돌아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버스 일정도 변경해야 했고, 여권을 찾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했기에, 심신이 지친 어머니를 호스텔에 두고, 잠시 다녀오겠노라 하고 홀로 시내로 나섰다. 한인 식당 사장님이 나를 위로해주며, 방법을 알려주었다. 여권 재발급을 받기 위해 경찰 리포트를 받고, 여행사 사장한테도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등 모든 조치들을 취하다 보니, 어머니와 약속한 시간보다 상당히 늦어졌다. 밤늦게서야 호스텔에 들어가니, 어머니가 촉촉한 눈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시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하시면서 손을 잡으시는데, 얼마나 긴장하셨던지 손에 땀이 흥건하셨다. 어머니는 여권보다 귀중품보다, 나를 가장 많이 걱정하고 계셨던 것이었다. “네가 왔으니 됐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 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시는데, 여행 일정과 잃어버린 돈만 걱정했던 내 마음도 그제야 풀리기 시작했다. 물론, 어렵고 힘든 일을 당했지만, 어머니와 함께하기에 쉽게 이겨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지금도 엄마와 나는 여행 가서 있었던 추억을 나누곤 한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함께했던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마다 행복해지는 엄마와 나. 아, 엄마랑 여행하길 정말 잘했다!

강예신 작.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
89×130cm. Oil on canvas. 2011.

그리움이 쌓이는 히말라야

김인식 46세. 자영업. 대구시 남구 대명3동

아마도 중학생 때였지 싶다. 놀자고 부르는 친구도 없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 애꿎은 텔레비전만 이리저리 틀어대다 어느 한 장면에 꽂혀 한참을 꼼짝 않고 앉아 들여다봤다. 거대하게 펼쳐진 설산, 그 산을 오르려고 애쓰는 등반가들의 거친 숨소리.

‘어? 우리 동네 뒷산(가야산)이 제일 높은 줄 알았는데… 저건 무슨 산이지?’ 그렇게 히말라야는 까까머리 중학생의 마음을 강하게 흔들어 놓았고 강렬한 그날의 인상은 가슴 한켠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면 꼭 히말라야에 가봐야지’ 하는 다짐과 함께.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그동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무던하게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온 시간들이었다. 작지만 온 열정을 다해 가꿔가는 일터가 있고 건강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있고 소중한 나의 반쪽이 있음에 늘 감사했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문득문득 마음이 허전해져 올 때가 있었다. 앞만 보고 사느라 그간 잊고 지낸, 가슴 한켠에 묻어둔 내 작은 꿈의 꿈틀거림이었으리라. 텔레비전이 아닌 진짜 히말라야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씩 조금씩 피어올랐고 눈을 감으면 거대한 산 앞에 서 있는 내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그즈음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히말라야에 대한 간절함에 강하게 불을 지핀 이가 있었으니 오랫동안 알고 지낸 지인이었다. 간만에 만나 이야기를 하던 중 히말라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더니 본인은 수년 전에 다녀왔고 꼭 한번 권하고 싶은 여행지라는 말에 나는 큰 용기를 내게 되었다.

이것저것 생각하면 못 갈 이유가 더 많은 게 현실인지라 비행기 표부터 끊어 놓으면 어떻게든 가게 된다는 지인의 말에 2012년 12월 31일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일찌감치 8월 초에 끊어두고 우리 가족은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 준비에 들어갔다.

생애 첫 해외여행인 데다 여행사를 통하지 않는 자유 여행이다 보니 여권부터 시작해서 언어, 중간 경유지의 숙소 예약 및 트레킹 준비물 등 준비할 것들이 아주 많았다.

그리고 트레킹을 위한 체력 단련도 필수였기에 틈틈이 운동과 산행도 병행해야 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아내는 나에게 종종 이렇게 묻곤 했다. “여보, 우리 말야…. 네팔에 도착은 할 수 있을까?” 그러면 나는 “갈 수 있지. 걱정하지 말고 나만 믿고 따라와”라고 큰소리는 쳤지만 내심 불안하고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여행은 원래 그런 거 아닐까? 늘 동경의 대상이지만 막상 어디론가 떠나려고 하면 설렘과 불안을 동시에 동반하는 거. 그러기에 영혼을 살찌우고 마음을 훌쩍 자라게 하고플 땐 여행이 최고의 명약인지도 모른다.

5개월여의 기간 동안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차근차근 준비한 덕분에 우리 가족은 17일간의 네팔 여행 및 히말라야 트레킹을 무사히 마치고 올 수 있었다.

간절하게 보고 싶던 히말라야를 원 없이 보았고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은 참으로 작은 존재라는 것도 느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해 걷는 11일 동안의 트레킹에서는 고산 증세로 가족 모두가 힘든 순간들도 있었지만 고통을 동반한 대가로 얻게 되는 자연의 고귀한 선물들을 많이도 받았다.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관이었던 푼힐의 일출, 창을 열면 눈앞에 펼쳐지던 설산의 파노라마, 머리 위로 쏟아질 것 같던 밤하늘의 별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이어지던 돌계단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네팔 친구들과 좋은 여행객들.

음식과 고산 증세로 힘들 때도 있었지만 여행 막바지로 접어들자 일정을 좀 더 길게 잡을 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온 뒤 한참 동안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고 기르며 네팔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그리움 한 자락을 히말라야에 두고 왔다.

문득 히말라야가 미친 듯이 그립고 다시 가고픈 마음이 강하게 이는 순간이 있다. 까까머리 중학생이 막연하게 품었던 꿈처럼 다시금 히말라야를 가슴 한켠에 품었다. 머지않아 나는 또다시 히말라야를 보러 갈 것이다. 히말라야는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에.

강예신 작.
<얼룩얼룩 꿈꾸기>
60×45×4cm. Mixed media. 2013.

모르는 이들의 집과 차를 나누다, 공유 여행

신기철 26세. 대학생. 경기도 광명시 철산3동

작년 여름 우연히 공유 여행과 관련된 공모전을 알게 되었다. 평소 여행을 자주 다녔던 나는 여름 방학을 이용해 공모전에 지원했다. 운 좋게 여행 지원금을 받아 4명의 대학 친구들과 함께 공유 경제를 활용한 전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공유 경제의 사전적 의미는 ‘물품을 소유가 아닌 서로 대여해 주고 차용해 쓰는 것으로 경제 활동을 하는 것’이다. 쉬운 예로 ‘카풀’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원을 남과 함께 나누어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 여행은 한마디로 모르는 사람과 집과 차를 공유하며 떠나는 여행이었다. 나와 친구들 역시 처음으로 해보는 것이었기에 과연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차근차근 계획을 짜나갔다. 모두 호텔관광경영학을 전공하는 같은 과 친구들이라 여행의 테마는 ‘축제’로 했다. 작년 여름 축제가 계획돼 있는 도시를 중심으로, 서울-제주-부산-대구-여수-순천-서울로 돌아오는 6박 7일 일정을 계획했다.

출발 전 ‘비앤비히어로’ 사이트를 통해 각 여행지마다 숙소를 모두 예약해 놓고 마음 편히 제주도로 출발하였다. 비앤비히어로란 여행지 주민이 제공하는 숙소를 연결해주는 사이트다. 개인 소유의 집부터 기존 게스트하우스 등의 남는 공간을 여행자들이 쉽게 검색하고 예약, 결제할 수 있다. 제주 공항에 도착했을 때 주인아주머니께서 직접 마중을 나오셨다. 아들처럼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제주도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과 곳곳의 숨은 맛집에 대한 고급 정보도 상세히 알려주셨다.

제주도에서 다시 공항으로 이동할 때는 ‘티클’을 이용했다. 티클은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같이 이동할 수 있도록 ‘카풀’을 중개해주는 서비스이다. 티클을 통해 제주에서 근무하는 어느 여성분의 차를 얻어 타게 되었다. 공항 가는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외에도 대구에서 홀로 사시는 할머니 집에서의 하룻밤, 4명의 따님을 모두 서울로 보내신 후 떡집을 운영하시는 여수의 딸 부잣집, 축제 홍보위원이었던 한 아주머니네 으리으리한 펜트하우스에서 묵기도 했다. 모두가 자식들을 타지로 보내신 정 많은 부모님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관계 맺는 일을 좋아하는 분들이었다.

“이왕 사는 김에 조금 더 샀다”며 4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먹을 양의 고기를 구워주시기도 하며 친자식처럼 살뜰히 챙겨주시던 분들.

공유 여행은 단순히 저렴한 비용으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한다는 가치를 넘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정’을 나누는 것이었다. ‘모텔이나 펜션을 예약하고, 렌트카를 탔더라면 돈만 더 쓰고 좋은 사람도 못 만났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선지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순간의 기억들과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잊히질 않는다. 그 후 함께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은 모두들 공유 기업을 적극 활용하고 있고 주변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있다.

여행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삶의 한 부분이 되었다. 이제는 새로운 목적지보다 여행을 통해 어떤 생각을 하고 느끼고 배우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테마와 방식으로 여행을 해보면 비슷한 장소라도 전혀 다른 여행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지금, 공유 여행을 계획해보는 건 어떠신지.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직도 좋은 분들이 많구나, 따듯한 정을 많이 느낄 것이다.

강예신 작.
<히치하이크-나를 데려가줘>
89×130cm. Oil on canvas. 2011.

SNS 시인, ‘시팔이’ 하상욱

SNS에 시를 써서 스타가 된 ‘시스타’가 있다. 뛰어난 재치, 촌철살인의 통찰력, 감성을 뒤흔드는 시들로, 수많은 네티즌의 마음을 사로잡은 하상욱(33) 작가다. 한순간에 평범한 직장인에서 인기 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스스로를 ‘시를 팔아 먹고산다’며 ‘시팔이’라 부른다. ‘웃고 있는데 왠지 슬픈’ 공감 백배, 웃음 백배인 그의 시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단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 김혜진 & 사진 최창원

하상욱 작가를 알게 된 건 페이스북에서였다. 평범한 일상사를 짧고 간단히 정리한 시 안에는 재기 발랄함을 넘어 촌철살인의 삶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었다. 재미와 웃음, 그리고 한번쯤 생각해보게 되는 글들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가 낸 첫 전자시집 <서울 시>는 1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와 함께 인기에 힘입어 두 권의 종이책으로도 발간, 15만 권 이상 팔렸다.

검은색 뿔테 안경에 꽃무늬 넥타이를 매고 하상욱씨가 인터뷰 장소로 들어섰다. 재밌는 사람일 거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그는 내내 진지했고, ‘고민’이란 단어를 일상 용어처럼 반복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지내다가 이젠 당당히 전업 작가로 살아가고 있는 그에겐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여전히 고민 중이라는 이 남자, 우리로 하여금 ‘드라이아이스’를 보며 새삼 고마운 인연을 생각해보게 만든 사람, 시자이너 하상욱씨에게 요즘 기분부터 물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거 같아요.

사실 힘들어요. 처음엔 제 SNS에 친구 공개로 시를 올린 거였거든요. 그러다가 전자책으로 내게 되고, 독자분이 재미있다고 올리면서 인터넷에 퍼져서 여기까지 온 건데 사람들은 제가 유명세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어요.

저부터 인간관계나 일적인 면에서 30년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적응이 안 되죠. 기존에 저를 알던 사람들과 편한 관계로 남고 싶으니까 말 하나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돼요. 가령 누군가가 부탁했을 때 부득이하게 거절하면 ‘떴구나~’ 해버리니까 답이 없어요. 뭔가 이상해져버린 느낌, 근데 이해는 가요. 이 상황을 어떻게 풀까 걱정이죠. 특히 저를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게 가장 견디기 힘들어요. 대화를 하면 ‘야, 그래도 너는…(유명해져서 돈 잘 벌면 성공한 거 아니야?)’ 그 말이 그렇게 듣기가 싫어요. 사실 저는 잃은 것도 상당히 많아요. 그게 많이 슬프고 아프기도 해요. 그다음에 내가 뭘 해도 참 힘들겠다 생각하죠. 어떤 상황에서도 그 시각으로 보니까요. 이 생활이 언젠가 끝날 텐데 다음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많이 되죠.

사람들이 막연히 갖고 있는 고정 관념에 대해서 깨주고 싶은 게 많겠어요.

너무나 깨주고 싶어요. 고정 관념이 결국 자기를 힘들게 해요. 지금은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들이 예전처럼 부러워 보이지 않아요. 불쌍하다는 느낌도 많이 들고, 저는 아이돌 가수들이 요즘 되게 측은해요. 어렸을 때부터 이런 걸 겪으면서 살아왔을 텐데 제가 힘든 것과는 비교도 안 되잖아요. 보통 강인함을 갖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겠구나 싶어요.

새삼 ‘웃기려는 게 아니라 울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고 하신 말이 다가오네요. 콘텐츠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서울 시>를 패러디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어요. 그 안에 나름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했는데, 결국 표면만 보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구나. 안타까운 것은 글에 편견을 담아 재미를 주거나 외모를 소재로 쓴다거나 너무 비판적인 글을 쓴다거나…. 그런 식으로 되는 건 슬퍼요. 형식은 빌리더라도 저와 또 다른 이야기를 하면 좋을 텐데 하죠. 깊은 고민이 담겨 있다는 느낌은 못 받았거든요.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여느 철학책 못지않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름대로 철학서라고 생각하고 쓰고 있어요. 사실은 눈물 나게 하고 싶어요. 정말 슬픈 것은 웃기면서 슬픈 거잖아요. 저는 작은 얘기에도 큰 얘기가 똑같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쓴 글 중에 ‘아닌데? / 맞는데? / 쌩얼’ 이란 글이 있어요. 제가 강연 때 쌩얼이 어떤 거냐고 물어보면 기준이 다 달라요. 결국 우리가 겪는 갈등의 대부분이 기준 문제인 게 많거든요.

<서울 시>에 있는 작가 소개란.
하상욱씨의 재치가 돋보인다.

“책은 <서울 시>인데 연고도 없는 부산경찰 SNS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는 하상욱씨.

가까이에 있는 사람끼리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정말 달라지겠죠.

그 정도만 돼도 상당히 많이 바뀌죠. 사회가 바뀌기 위해선 정책이나 법이 중요한데 그것은 사람들의 의식이 만들어주는 거니까요. ‘저 사람도 저래? 나만 그런 게 아니네’ 알게 되면 상대를 이해할 수 있고, 상대를 배려할 수 있겠죠. 사실 모든 문제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하지 못해 생기는 게 아닐까요. 공감이라는 평범한 사람들의 특권을 재밌게 누렸으면 좋겠어요.

원래는 웹디자이너 일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러다 시를 쓰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처음에 시를 올렸을 때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 그 재미로 했었죠. 그리고 디자이너다 보니까 이미지가 아닌 글로도 재미를 찾아보고 싶었거든요. 규칙을 만들고 싶었는데 디자인하는 습관이 글에도 담기더라고요. 그래서 시자이너란 말을 쓰기도 했고요. 일단 길게 쓰는 게 싫었고 짧게 압축하면서 쓰는 게 재밌더라고요. 페이스북의 영향이 컸어요. 디자인의 첫 번째 원칙은 단순화거든요. 어떤 작품에서 한 요소를 더 빼면 타인이 내 의도를 못 알아보는 시점이 있는데, 그때까지 모든 것을 단순화시키죠. 좋은 디자인은 ‘더 이상 뺄 게 없는 디자인’인데, 똑같은 개념을 글 쓸 때도 대입시켰죠.

<서울 시>를 읽으며 디테일한 감정을 잘 포착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고민을 많이 해요. 말을 하고 나서 괜히 불편할 때가 있잖아요. 다들 아는데 애써 말하지 않는 것들…. 가령 일을 하다가도 ‘아까 커피숍에서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지?’ 곰곰이 생각하는 거죠. 가령 인터뷰를 하다가도 인터뷰가 끝나면 할 말이 없잖아요. 그런 어색한 상황은 왜 생길까. 이모티콘을 쓰는 게 나은가 안 나은가 그런 고민들을 깊게 해요. 그런 디테일한 감정들을 알아가는 게 재밌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말실수가 없는 편이에요.

사실 상대방과 말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상처 줄 때가 많잖아요.

그런 경우가 많죠. 저는 왜 이렇게 마르셨어요, 살 좀 찌세요. 그런 말을 되게 많이 듣거든요. 근데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이 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 대화 속에는 마치 좋은 말처럼 포장되어 있는 말들이 있어요. 오히려 진짜 가까운 사람들은 살 좀 찌라고 안 하거든요, 그냥 존중해주죠. 사소하게 던지는 말, 긍정적인 말에도 공격적인 말이 상당히 많아요. 그런 것들을 되새겨 보기 위해 글 쓸 때 고민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 글 대부분이 관계에 대한 글이 많아요. 우리 관계가 왜 이렇게 됐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 거죠.

글을 쓸 때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 쓰시는지 궁금해요.

사람에 대한 따듯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그래서 조사 하나, 1인칭, 3인칭 시점 등을 많이 생각해요. 그리고 내 이야기처럼 쓸 때 맘이 더 편하겠다, 남의 이야기처럼 쓸 때 맘이 더 편하겠다 구분하면서 써요. 가령 강한 비판이 담긴 글은 내 이야기처럼 써요. 그래야 맘이 더 편하니까. 남을 비판하는 것처럼 쓰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굉장히 되바라진 느낌이거든요. 가령 얼마 전에 쓴 글인데 ‘진짜 친구가 아니라며 실망만 했네 / 진짜 친구가 되어주려 하지 않고’ 이런 글들은 내 이야기로 쓰죠. 이걸 반대로 쓰면 굉장히 불쾌한 글이 돼요. ‘왜 진짜 친구가 아니라고 뭐라고만 하니 / 진짜 친구가 되어주진 않고’ 이렇게 글을 쓰면 고민하지 않게 돼요. 내가 아닌 남이 나한테 잘못한 거니까. 결국 내 탓일 때 돌아보게 되거든요. 뉘앙스 하나가 사람한테 생각하게 하느냐 마느냐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거 같아요.

쉽게 쓴 글처럼 보이는 면도 있었는데 그렇게 섬세했구나 싶어 놀랍네요.

쉽게 한두 편은 쓸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고민이 없었다면 5, 6백 편의 글들이 욕을 먹어도 진작 먹었을 거예요. 저는 공감만큼 사람을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해주는 게 있을까 싶어요. 사실 <서울 시>에 담은 글은, 저는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질문을 던지는 글이에요. 이왕이면 우리가 좋아하는 감정들, 찐한 웃음, 슬픈 눈물 속에서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개인의 판단에 맡기는 거죠. 누가 누구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생각 안 해요.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글 중 하나가 ‘계기가 없는 걸까, 의지가 없는 걸까’예요. 누군가가 나를 바꿔줄 거란 기대는 안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거든요.

‘시팔이’ 하상욱님은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자책 전문 회사에서 기획자 겸 에디터로 활동했습니다. SNS에 우연히 올린 글이 인기를 끌면서 2012년 전자시집 <서울 시>를 발표했으며 이후 <서울 시> 1, 2권을 출간,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가 있나요?

20대 분이었는데 나중에 자기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했던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서울시 1, 2권에서 슬픔을 느끼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어요. 지금의 바람은 제 글들이 몇 년 후에 봤을 때는 공감이 안 되는 게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어떤 생각을 만드는 글이 됐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는 그런 글이 되면 어떨까’라고 하셨죠. 사실 창작자라면 자기 작품이 오래 남길 바랄 텐데, 그런 마음까지 내려놓으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나요?

어떤 게 비호감일까 생각해보면 대부분 욕심이 많은 사람들이에요. 물론 누군가는 저도 그런 사람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었다면 예능 프로를 여러 개 하고 있었을 거예요. 전 그런 생각을 해요. ‘나는 언젠가는 떠날 사람이다, 영원히 머물 사람처럼 행동하면 이게 다 내 것처럼 행동하면 내려놨을 때 살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오늘 하루 잠깐이라도 그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그것도 큰 가치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누군가 어떤 일을 했을 때 그 사람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랬듯이 누구나 평범함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거니까요.” 누군가의 성공을 쫓아가기보다는 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먼저 사랑하게 되길 바란다는 하상욱 작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타인과 세상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가 평범한 우리들에게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

병산서원, 자연이 살아 숨 쉬는 공간

입교당에서 만대루를 바라보다

외국인들에게 우리 건축의 특징을 알려주고 싶을 때, 나는 하회마을 언저리에 있는 병산서원으로 안내한다. 병산서원은 건축물로만 따지면 참으로 별 볼 일 없는 건축이다. 결구방식이나 규모, 장식 등은 흔하고 엉성하기까지 한데도, 이 작은 건축은 늘 감동을 준다. 처음만이 아니다. 몇 번을 찾아가도 그렇다.


만대루는 자연을 매개하는 프레임으로서의 건축을 보여준다

서양 집과 우리 옛집의 다른 점 가운데 중요한 것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이다. 서양은 외부나 자연은 나를 해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들에게 자연은 정복하기 위한 대상이고 외부 공격으로부터의 은신처일 뿐이어서 자연과 적대적 위치에 있는 건축이 건축 역사의 근간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우리의 옛 건축을 보면 그냥 자연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대청이나 툇마루 같은 공간은 내부인지 외부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어떻게 보면 자연 속에 집이 던져져 있는 모습이다. 우리 선조들에게 자연은 공존해야 하는 가치였으며, 섬김의 대상이었고, 받아들여야 할 운명이었다. 따라서 집은 앞산과 뒷산을 연결해주는 매개적 역할을 할 뿐이었으니, 집 자체의 모양보다 공간의 배열이 더 큰 과제였다.
병산서원은 이에 대한 좋은 보기이다.

병산서원은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모시는 사액서원으로, 지리적으로 안동 시내와는 물론 하회마을과도 절벽 같은 너들대벽을 두고 떨어져 있다.
남쪽으로는 병산屛山이 우뚝 솟아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그 밑으로 낙동강 줄기가 유유히 흐르는 고요한 곳이다.
특히 우리의 관심은 강의동 건축이 구성하는 공간의 아름다움이다. 강의동은 네 개의 건물로 이뤄지는데 맨 위에 강의를 하는 입교당, 그 앞에 좌우로 학생들이 기거하는 동재와 서재 그리고 남쪽 아래 누각인 만대루晩對樓가 있어 50여 평 크기의 가운데 마당을 감싸고 있다.

밖에서 보면 중첩된 기와지붕이 만드는 풍모가 경사진 지형과 잘 어울려 있지만 가만히 보면 만대루라는 누각의 길이가 다른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과도하게 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이랬을까. 이 의문은 마당에 들어가 입교당에 앉아 보면 절로 나오는 탄성과 함께 풀리게 된다. 앞산 병산이 만대루에 가득 들어와서 마당의 한쪽 벽면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만대루는 기둥만 남기고 스스로를 비움으로써 병산을 그 속에 채울 수 있게 되어 있다. 따라서 그 크기가 마당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길이여야 하는 까닭에 긴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건축은 오로지 자연 속에 걸터앉아 있지 자연을 막거나 닫거나 그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 기둥에 의지하고 걸터앉아 다시 병산을 보면, 이름 그대로 병풍 속에 닫힌 듯 펼쳐져 있고 시시때때로 물안개가 그 풍경을 변화시킨다. 사계절의 절경은 그 속에 갇힌 고요한 마당을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이 된다. 건축은 프레임으로서만 존재하며 자연을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진 황진수 & 글 승효상 건축가

사진가 황진수님은 2007년부터 왕가제례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으로 <신의정원, 조선왕릉>(2009) <한국정원> (2012) 등 정원 연작 작업을 해왔으며, 서울을 주제로 한 사진집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건축가 승효상님은 15년간 김수근 문하를 거쳐 1989년 건축사무소 이로재 개설 후 자신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바탕으로 수졸당, 대전대 혜화문화관 등을 지었으며, 저서로 <건축, 사유의 기호>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은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의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출발점, 병산서원’에서 발췌하였습니다.

모기 앞에선 투명 인간 ‘카이트 모기 패치’

● 이름은?
카이트 패치Kite Patch. 연(Kite) 모양의 작고 네모난 패치 스티커로 옷이나 소지품, 아기 유모차 등에 붙이면 모기로부터 48시간 동안 보호해준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말라리아, 황열병 등 모기 관련 질병으로 세계 인구의 절반이 위협받고 있으며 특히 남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남미 지역은 모기를 퇴치하는 것이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그래서 4년 전 세계적으로 모기 관련 질병 퇴치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과학자, 디자이너, 엔지니어, 공중보건전문가 등이 모여 연구가 시작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리버사이드에서 과학적 연구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미국국립보건원의 지원이 있었다.

● 제품의 원리는?
모기는 사람의 이산화탄소를 추적하여 다가오는데, 카이트 패치 물질이 모기의 이산화탄소 추적 능력을 방해한다. 그래서 모기에게는 마치 투명인간처럼 느껴지게 된다. 이 물질은 일반적인 모기약에 들어 있는 독성 물질은 전혀 없이, 음식의 맛과 향에서 나오는 화합물로 만들어졌다. 크기는 1.5인치 정도로 작지만 크기에 비해 넓은 공간을 모기로부터 차단시켜준다. 모기가 많은 지역에서는 보통 독성 물질 스프레이로 모기를 죽이는데 그것은 인간에게도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 바르거나 뿌리는 퇴치제 또한 사용하기에 번거롭고 피부에도 좋지 않다. 어떤 지역에서는 모기장 하나를 쳐놓고 할아버지, 엄마, 아기가 한데 모여 자기도 하는데 그것도 완전한 대안은 아니다. 우리는 기존에 나온 모기 퇴치제의 가장 완전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한다. 그리고 전 세계의 기후 조건과 모기의 종류에 가장 적합한 제품을 계속해서 연구 중이다.

● 제품의 상용화 계획은?
현재로서는 제품을 살 수는 없다. 정부의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작년 여름, 우간다에서 있을 1차 현지 테스트를 위해 인터넷으로 대중들의 자금을 모았고 모두 11,254명이 기부해, 목표 금액 7만 5천달러의 7배가 넘는 55만 7천 달러가 모였다. 기부자들에게는 미국 환경보호청(EPA) 승인 후 패치가 배송될 예정이다. 현재는 우간다 현지 테스트를 하고 있다. 이후에는 모기가 생명에 위협적인 영향을 미치는 많은 나라에 우선 배포될 예정이다. 다른 국가에서도 정부의 규제 절차를 통과하면 배포 지역을 확장할 것이다.

만든 사람 ieCrowd 사, 올팩터 연구소(Olfactor Laboratories, Inc.)

풍림화산!

풍림화산(風林火山)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빠르게 하고, 나아가지 않을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있고,
공격할 때는 불처럼 맹렬히 하고, 적으로부터 지킬 때는 산처럼 묵직해야 한다.”
(故其疾如風, 其徐如林, 侵掠如火, 不動如山)
 
고대 중국의 병법서 <손자병법(孫子兵法)> 군쟁(軍爭)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후 이 말은 종종 인생은 한 편의 전쟁 드라마와 같다는 비유와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위기가 다가오고 어려움이 닥칠 때,
지금 빨라야 하는지, 고요해야 하는지, 맹렬해야 하는지, 묵직해야 하는지….
잘 판단하고 싶습니다.
그런 지혜로운 자가 되어, 때로는 주변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묻게 됩니다.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이런 시험 과목이 있었다면

시험 기간인 중3 딸아이가 공부하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를 않습니다. 야단을 치고 압수도 해봤지만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또 들려 있습니다. 한 손에는 프린트물 정리해 놓은 걸 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신 문자를 하고 있습니다. 시험 기간만이라도 휴대폰을 압수할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시름시름 앓다가 파르스름한 입술과 창백한 얼굴로 하직 인사할까 봐 놔뒀습니다. 내일 시험 과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영어와 도덕이랍니다. 도덕의 의미와 도덕적 실천에 대해 주절거리더니 이내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립니다.

상상 속으로 빠져봅니다.

“송이야, 내일 시험 뭐냐?” “웅 내일 시험은 카톡하고 인기가요예요~” “둘 다 네가 취약한 과목이구나? 열심히 해라~ 근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카톡 공부 열심히 해야지 왜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어? 카톡 공부할 때는 제발 책 좀 내려놓고 하랬지? 아빠가 책 압수한다!” “알았어요! 아빠. 카톡은 아무리 해도 모르겠어요. 카톡 너무 어려운 거 같아. 며칠째 밤새 이렇게 휴대폰만 붙잡고 카톡 공부만 하고…ㅜㅜ” “송이야, 아빠가 너 기분 모르는 거 아닌데 좀만 참자. 시험 기간 끝나면 책 맘껏 밤새도록 읽어도 아빠가 아무 말 안 할게. 하지만, 며칠만 제발 책 좀 멀리하고 휴대폰에만 신경 써라! 제발~~ 일단 아빠가 책은 압수한다.”

두어 시간 후 TV에서 인기가요를 합니다. 휴대폰과 씨름하는 딸아이를 불렀습니다.

“송이야, 인기가요 한다. 얼른 나와서 봐라. 시험 기간이라고 특별히 총정리해주나 보다. 얼른 나와서 봐~”

“아빠, 지금 두 시간이나 쉬지 않고 카톡 하고 있는데 30분만 책 좀 읽다가 인기가요 보면 안 돼요?”

“송이야. 네가 30분 동안 책 읽으면서 놀고 있으면 지금 이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인기가요 보면서 너보다 얼마나 앞서 나가겠니? 지금 앞부분에 한참 중요한 신인 그룹들 나올 시간이란 말이야. 너 요즘 신인 아이돌 너무 신경 안 쓰더라. 조금만 신경 안 쓰면 금방 뒤처지는 게 인기가요 과목인 거 몰라? 기존 아이돌 지식으로는 6월 첫째 주 가요 판세를 모른단 말이야. 전체적인 아웃라인과 흐름을 파악하려면 첫 주가 제일 중요하단 말이야.”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일단 휴대폰은 좀 쉬어도 되죠?”

“송이야, 인기가요 과목은 눈과 귀로 하고 아빠 욕심에는 그래도 휴대폰은 손에 좀 쥐고 있으면 안 될까? 책 같은 건 좀 멀리하고 항상 휴대폰은 가까이하는 버릇을 들여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아빠가 다음 달에는 최신 기종으로 바꿔줄게. 태블릿 PC 기능이 강화된 게 나왔다네.” “아빠~~~ 이 휴대폰 산 지 두 달밖에 안 됐어요. 최신 기종 싫어요. 책 산 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현대문학전집 산다는데.”

이때 고2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옵니다.

“아빠~~~ 오늘 시험 끝났어요.” “오늘 마지막 과목이 뭐였지?” “서든 어택 저격수 과목하고 이성 교제요.” “잘 봤냐?” “서든은 맵이 조금 까다롭게 나왔는데 그래도 망치지는 않았고요. 이성 교제는 저번 달 수행평가가 워낙 좋아서요. 만점 받았어요~”

장하다, 우리 아들. 수행평가 점수가 좋았구나. 그랬구나. 중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잘하더니. 장하다… 장해.

 

글을 쓰면서 왜 자꾸 눈물이 날까요? 그냥 상상인데. 점심 먹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그냥 쓸데없는 상상 한번 해봤는데. 왜 이리 울컥하죠?

학부형님들 힘내세요.^^

백일성(44)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하늘의 뜻

하늘이란 여기도 하늘이고 저기도 하늘이고 이곳저곳이 모두가 하늘이라. 하늘의 참뜻은 이 세상 전체가 빈 하늘이 있어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라. 이 우주 전체가 빈 하늘이 있어 우주의 천체가 존재하고 지구의 만상이 존재하는 것이라. 우리가 사는 것은 지구가 있어 있듯이 지구와 천체도 빈 하늘이 있어 있는 것이라. 이 세상에 있는 물체의 전부는 모두가 본바닥이 있어 있는 것이라.

이 세상의 천체와 만상이 또 물질의 어떤 것이 없어도 빈 하늘은 있을 것이다.
또 있어도 빈 하늘은 물질 안에 스스로 존재할 것이다.
이 세상의 이치는 물질이 온 곳이 이 빈 하늘이고 물질이 있다가 없어져도 빈 하늘이라. 온 곳이 빈 하늘이고 갈 곳이 빈 하늘인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우리가 세상 났다가 가도 빈 하늘이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만들어놓고 그 속 사니 사람은 세상에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본뜬 허상인 자기의 마음속에 있기에 사람은 죽고 마는 것이라. 인간은 이 마음의 세상을 지우고 빈 하늘의 마음과 하나가 될 때 인간은 이 빈 하늘에서 이 세상과 자기가 하늘에 진리인 이 영혼으로 다시 나며, 그렇게 다시 나지 않고는 살 자가 없는 것이라.

천국도 사람의 마음에 어디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의 천국이고 실제 진리로 존재하는 빈 하늘에 나는 것만이 영생이라는 단어가 성립이 될 것이고 이것이 하늘 난 자는 하늘에 산다는 뜻이다.

빈 하늘이 진리고 하나님 부처님 한얼님 알라이시다. 이 자체는 정과 신, 성령 성신, 보신불 법신불로 존재한다. 일체가 비어 있고 그 자체에 일신이 존재한다. 비어 있는 존재가 우주의 몸인 영이고 일신이 우주의 정신인 혼이다.

이 세상의 물질 일체가 환경인 조건에서 나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 이 일체가 하나인 우주의 정신이 물질로 표출이 된 것이다. 이 빈 하늘의 모양이 이 세상에 있는 물질의 일체다.

빈 하늘은 물질이 아닌 비물질적인 실체인 것이다. 이 존재는 물질이 아니라 세상의 물질 일체에 그 안에 존재하지 않는 곳이 없고 이 빈 하늘은 창조주이기에 아니 계시는 곳이 없다. 이 진리이시고 창조주이신 본바닥인 하늘에 나려면 자기를 세상에서 다 지우고 이 빈 하늘이 자기의 마음이 되어 이 재질로 다시 거듭나야만이 인간은 살아서 천국에 갈 수가 있고 영원히 살 수가 있다.

이것은 빈 하늘의 주인만이 빈 하늘에 부활시킬 수가 있을 것이다. 이 자체가 구원일 것이다. 살아 있는 빈 하늘이 있어 별 태양 달 지구가 있고 또 지구에 만상과 인간이 있다. 이 빈 하늘이 창조주인 것이다.

이 빈 하늘의 주인이 사람으로 왔을 때만이 이 빈 하늘에 세상과 인간을 나게 할 수가 있어 이 우주가 있는 것을 살리는 완성이 되는 것이다. 사람 속에 갇혀 죽은 세상을 사람마다의 마음속에 부활하게 하고 거기에 난 자는 그 세상의 주인이라 그 세상에 백성을 모을 것이다. 또 하늘 난 자는 하늘에 살 것이고 하늘 일 할 것이라.

하늘의 뜻이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없고 뜻조차 넘어서 존재하나 스스로 그때에 참이 행하여지는 것이 하늘의 뜻이다. 이제는 이 세상이 하늘에 나는 때다. 또 자기도 하늘에 나는 때다. 이것이 하늘의 뜻이고 이때에 우리는 하늘에 들어 영원히 살아야 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이유와 목적은 이때에 하늘 나서 영원히 살기 위함이다.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시인, 저술가, 강연가입니다. 2002년 인간 내면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UN-NGO 산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평화 대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저서로 <세상 너머의 세상>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등이 있으며 그의 저서 중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의 영역본은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5개 국제도서상 2013 LNBA, NIEA, IBA, IPPY Awards, 2012 eLit Awards에서 영성, 정신, 철학 분야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최근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의 영역본이 2014 에릭 호퍼 북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하는 등 마음과 비움, 깨침에 대한 우 명 선생의 철학이 전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대학생 정혜선씨

대학교 2학년,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 일상생활이 힘들었다는 정혜선(25)씨. 횡단보도를 건너려면 식은땀이 나고, 차 소리만 들어도 소스라치게 놀랄 정도로 교통사고 ‘외상 후 스트레스’가 그녀를 괴롭혔다.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어떤 것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깨달은 어느 날, 그녀는 마음수련을 만나게 된다. 과거의 기억에 끄달리는 좀비 같은 인생에서 이제야 탈출했다며 환하게 웃는 풋풋한 여대생의 마음공부 이야기다.  정리 & 사진 김혜진

대학교 2학년 때였어요. 수업에 들어가려고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 차 한 대가 오더라고요. 차가 멈추는 걸 확인하고 건넜는데 갑자기 그 차가 저를 치는 거예요. 순간 당황한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엑셀을 밟아서 저는 보닛을 타고 옆으로 떨어졌죠. 조금만 늦게 일어났어도 버스에 치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어요. 전공 책은 산산조각처럼 흩어지고 온몸의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게다가 “나는 바쁘니 보험 회사하고만 연락하라”는 가해자의 태도에도 화가 났었죠.

그렇게 열흘간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이상하게 무서운 기분이 드는 거예요. 이게 뭐라 설명이 안 돼요. 특히 밤에 혼자 있으면 불안하고 두려웠어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거 같고. 저는 차가 저를 칠 줄 몰랐거든요. 일단 멈춰 있었고, 횡단보도여서 믿고 건너가다가 치이니까 더 큰 충격이었죠. 그런데다 상대가 안하무인으로 나오니까 더 안절부절못하고 불안했던 거 같아요.

그때부터 차에 대한 노이로제가 생겼어요. 처음엔 혼자 길을 건너려고 몇 번을 시도하다가 너무 떨려서 포기하고 돌아온 적도 많아요. 일주일이 지나서야 횡단보도를 겨우 건너고. 몇 번을 기다렸다가 횡단보도 앞에 사람들이 무리 지어 많이 모이면 같이 옆에 붙어서 가고. 유난스러웠죠. 언제든지 방향을 틀어서 나를 칠 수가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항상 차를 주시했어요. 게다가 차 소리에도 민감해져서 차 시동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만 들려도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걷고, 끽~ 소리만 나도 자지러졌고요. 그때 알았어요. 세상천지에 차 없는 곳이 없구나.

성격도 예민하게 바뀌었어요. 그냥 웃고 넘길 말에도 짜증이 확 나고. 분명 말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에요. 내가 바뀐 건데 그게 컨트롤이 안 돼요. 결국 학기 말에 휴학을 했어요. 평범했던 일상생활이 어려워지고, 내가 계획한 것들이 일그러지니까 가해자에 대한 분노가 엄청 났죠.

그 교통사고가 진짜 원망스러웠어요. 사고가 나지 않았더라면…. 정말 늪과 같아요. 생각 안 하려고 해도 어느 순간 하고 있고 떨쳐내기가 어려웠죠. 사고가 나기 전의 나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 어떤 것도 그 이전으로 되돌려주지를 못하는 게 저를 더 힘들게 했던 거 같아요. 가족들, 친구들의 위로조차도 제겐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하더라고요. 심지어 부모님의 ‘이젠 잊고 힘내라’는 말에도 굉장히 화가 나는 거예요. 누구보다 자식의 고통에 가슴 아파서 해주신 말씀이신데도, 부모님까지 원망할 정도로 제 마음은 피폐해져 갔습니다.

교내 사고라는 이유로 법적으로 보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자, 세상에 대한 원망도 커져갔습니다. 결국 나는 내가 지켜야 하는구나…. 그래서 저한테 최선을 다했어요. 혹시나 우울증이 심해질까 봐 극복하려고 긍정적인 생각도 하고, 친구들도 열심히 만나고, 하루에 3시간씩 운동을 하고…. 근데 1년 넘게 했는데도 바뀌질 않으니까 점점 지쳐가는 거예요. 그때 좀 막막했어요. 탈출구도 없고 답도 없는데 계속 필사적으로 뛰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그러던 와중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마음수련이 생각나서 집 근처 지역수련회에 찾아갔어요.

마음수련은 기억을 떠올려 버리잖아요. 처음엔 그게 참 힘들었어요. 그때의 내 모습이 싫고, 상황을 떠올리는 순간 운전자 얼굴, 망해버린 내 인생, 절망감과 분노가 뒤섞이면서 힘든 마음들이 올라오니까. 그런데 떠올리지 않으면 버릴 수도 없으니까 조금씩 떠올려 버리는데 생각보다 너무 빨리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면서 조금씩 벗어났던 거 같아요. 정말 세포 하나하나에도 마음이 담겨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버려지는 과정에서 그때처럼 똑같이 아파왔어요. 그렇게 한 장면 한 장면 떠올려 버리는데 고통도 같이 버려지는 기분이었어요. 늘 온몸이 무거웠는데 너무 가벼워지고 체력도 점차 좋아지고. 교통사고로 인해 생겼던 트라우마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살아오면서 쌓아온 온갖 마음들까지 돌아보고 버릴 수 있었죠.

돌아보니 어떤 사건, 그 기억이 인생의 한순간을 빼놓지 않고 계속 영향을 준다는 게 참 무섭더라고요. 마음의 사진을 찍고 그 속에 살아간다는 게 참 무서운 거구나, 평생을 그 사건의 노예처럼 끌려다니면서 살겠구나. 정말 나라는 건 과거 사진의 집합체더라고요. 그게 너무 끔찍했기에 정말 열심히 버려나갔어요.

그러다가 우주가 나임을 깨달았을 때 모든 것이 정리된 느낌이었어요. 그때의 감정은 형용할 수가 없어요. 이런저런 사연 속에 사는 게 내가 아니라, 이 세상이 나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정말 후련했거든요. 그리고 희망이 생겼어요. 그 마음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으니까요. 아, 되는구나. 마음이 놓였죠.

신기한 건 어느 때부터인가 짜증을 안 낸다는 거예요. 저는 항상 짜증 날 준비가 되어 있었거든요. 그때 사고를 떠올려도 화도 안 나고, 어쩌다 사고 얘기가 나와도 덤덤하고요. 특히 차 소리가 났을 때 제 변화를 많이 느꼈어요. 예전엔 끽~! 소리만 나도 소스라쳐서 도망쳤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길을 걷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세상이 골고루 눈에 들어와요. 거리, 풍경, 친구 얼굴…. 일상이 편안해진 거죠.

친구들은 저보고 용 됐대요. 눈빛이 달라지고 성격도 유해지고…. 무엇보다 감사한 건 나를 힘들게 한 사람들을 이해하게 됐다는 거예요. 덕분에 내 인생이 달라지고 진짜 의미 있는 삶이 뭔지 알게 됐으니까요. 언젠가부터, 용서라는 말 이전에 용서가 돼 있더라고요. 더욱이 고맙기까지 했어요. 세상에 대한 화, 원망 등 부정적인 감정이 없어지니까 일단 제가 좋아요. 마음이 너무나 자유로우니까요.

꽃다워야 할 20대 초반을 좀비같이 보냈지만, 이제라도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느끼며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해요. 마음을 비워내야만 세상이 보이고 힘든 내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