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지금 당장 해줄 수 없는 선물일지라도 그 마음만은 잊지 말고 전해보면 어떨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선물을 하며…

원성룡
72세. 전남 광양시 광양읍

운동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정도가 아니라 훌륭한 치료법이다. 나는 공기 맑고 하늘이 드높게 펼쳐지는 백운산에 산책을 간다. 걷는 운동을 하고 생수를 꼭 떠온다. “생수 배달이요~ 생수요~” 생수를 떠와 이웃들에게 골고루 선물해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수를 배달한 후 넓은 텃밭에다 채소를 심는다. 마늘을 파종하자 싸늘한 날씨에도 싹을 틔웠고 축 처진 양파는 서서히 일어나 당당하게 세상과 마주했다. 신기하고 신비로운 일이다. 시금치 생강과 마늘은 기본이고, 상추, 부추, 배추, 무, 당근 등등. 텃밭에서 수확한 작물들은 모두 친척들에게 선물한다. 남에게 퍽퍽 퍼주어야 마음이 편해져오니 나 자신도 모르게 주는 기쁨으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봄이 찾아오니 요즘은 너무 바쁘다. 넓은 텃밭에 씨앗을 뿌릴 준비 작업을 해야만 한다. 여름이면 풀과의 전쟁이다. 뽑아도 뽑아도 또 올라오는 풀을 매야 하고 또 매야 하고 무공해 채소를 가꾸기가 정말 힘이 든다. 그래도 계속 일을 하는 이유가 무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하하 웃음이 나온다. 내가 먹기보다 친척들에게 무공해 채소를 선물하기 위함인 것이었다. 힘은 들어도 농약 없이 채소를 가꾸어가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무공해 채소를 선물하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행복해지는 마음, 그 누가 알리요?

친척들의 “감사해요, 고마워요~, 이걸로 동네 잔치했어요.” 그 따듯한 말 한마디에 힘든 몸이 위로받는다. 작년 겨울에는 너무 많이 아파서 다시는 텃밭 일을 안 해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하지만 봄이 찾아오니 내 발걸음은 다시 텃밭으로 줄달음치고 있었다.

못 말리는 내 자신이여. 아들딸들은 이제 좀 쉬라며 일을 못 하게 한다. 나는 알았어, 알았다, 대답만 하고 열심히 텃밭에서 봄을 맞고 있다. 힘이 닿는 한 계속할 생각이다.

그래야 나도 사람들에게 뭔가를 해주는 기쁨을 계속 얻지 않겠는가.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채소를 가꾸며 마음의 대화를 나눈다. 무럭무럭 크거라. 꼭 자식을 돌보는 기분이다. 따지고 보면 이 모든 게 자연이 주는 선물들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자연은 아무런 대가 없이 그냥 준다. 그런 자연에 비하면 자꾸만 더 가지려 하는 인간들의 욕심이 부끄럽다. 들판의 꽃들이 화려하게 피어 활짝 웃는다. 나도 따라 웃어본다. 힘들어도 괜찮아, 괜찮아~ 스스로를 위로해 보며 이 글을 쓴다.

정일 작.
<선물>
60.6×72.7cm.
Oil on canvas. 2013.

선유 천사, 네가 우리에겐 가장 큰 선물이란다

정용희
37세. 자영업. hyeyoung0308.blog.me

2012년 2월 2일 새벽, 우리 부부에게 작고 아담한 그리고 앵두 같은 입술과 백옥 같은 피부를 가진 공주님이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 6개월 뒤 우리 공주님은 SMA(척수성근위축증)이란 희귀병을 진단받았습니다. 몸의 근육이 점차 소실되는 병이었습니다. 왜 하필 우리 부부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슬프고 절망적이었습니다. 병명을 검색하면 암울한 글들뿐이었습니다. 이후 좋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다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1년이 넘게 중환자실에 있는 날들은 계속됐고, 기관절개수술과 위루관수술 등으로 아프고 쓰린 상처만이 몸에 남았습니다.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중환자실에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면 우리 부부의 가슴은 찢어질듯 아프고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점차 환우 모임들을 알게 되면서 우리는 많은 위안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끔 힘들다 털어놓는 말 한마디에 응원 댓글을 달아주는 사람들…. 새삼 마음을 터놓고 함께할 수 있는 이웃들이 있다는 게 참 감사했습니다.

우리 부부에겐 슬퍼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모르는 선유 천사 덕분에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선유 천사는 길게 잠을 못 잡니다. 잘 때도 침을 계속 흘립니다. 침을 삼킬 수 있는 근육이 없기 때문입니다. 침이 기도로 넘어갈까 봐 밤잠을 설쳐가며 번갈아가면서 보살펴도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짜증 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줄까 늘 생각하고 연구했습니다. 선유 천사에게 꼭 필요한 재활 치료도 열심히 받고, 필요한 보조기는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늘 누워만 있는 선유 천사를 위해 지루하지 않게 쉬는 날이면 전시회관이나 마트 그리고 놀이공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선유 천사에게 맞는 놀이 기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몇 번의 고비가 찾아왔지만, 우리 부부와 선유 천사는 꿋꿋이 이겨나갔습니다.

지금 선유 천사는 27개월이 되었습니다. 이젠 아침에 일어나면 엄마가 스트레칭과 호흡기 재활 치료를 해주고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만화를 보고 신나는 몬테소리 수업을 합니다. 눈짓과 얼굴 표정으로 엄마와 이야기합니다. 우리 동네에서 최고로 부지런한 엄마를 만들어버리는 우리 선유 천사님….

우리 가정은 항상 바쁘고 항상 북적북적거리고 항상 행복해서 웃음이 떠나지 않습니다. 마치 누군가 조용히 놓고 간 선물 같은 우리 선유 천사님 덕분에 우리 부부는 제2의 인생을 산다고 할 정도로 삶이 180도 바뀌었습니다. 선물에는 항상 의미가 있다고 하죠.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왜 선유를 보내주셨을까…. 우리 부부는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선유 천사를 돌보며 나는 정말 사랑이 없고, 미성숙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부족한 사람임을 매일매일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주위에 아픈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고, 한 번도 눈여겨본 적이 없는 다른 사람들의 눈물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의 아픔에 눈물 흘리고 공감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가 서로 도우면서 살아야 하는지…. 이 모든 것이 선유 천사를 통해 받은 선물들입니다.

우리 부부는 희귀병으로 고통받는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고, 선유 천사의 병을 알려나갔습니다. 블로그엔 같은 처지의 엄마들이 많이 찾아오면서 응어리진 마음들을 푸는 창구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그 인연으로 우리 부부는 천안에 사는 가족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유 천사와 같은 병을 앓는 아이가 있는데, 외출하는 건 엄두를 못 내고 있다기에, 직접 유모차를 태우고 외출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을 열고 세상에 한 걸음 내딛는 그 가족을 보며 기쁨이 밀려왔습니다.

우리 부부는 소망합니다. 지금도 어디선가 장애아로 인해 힘들어할 가족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삶이 버겁고 힘들겠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그 아픔조차도 하늘이 준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모두에게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그래서 우리 부부는 늘 내일이 가슴 뛰게 기대됩니다. 앞으로 있을 선유 천사와 함께할 많은 날들에 또 어떤 선물 보따리를 받게 될지 말입니다.^^

정일 작.
<기다림>
22×27cm.
Oil on canvas. 2013.

어느 해 오월, 아들이 건넨 카네이션

이현주
50세. 주부. 경기도 화성시 진안동

어느 해 오월, 근심의 나날을 보낸 적이 있다. 작은아들이 잘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피시방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낮과 밤이 바뀌어 생활하고 있었다. 아침이 되면 퇴근하듯 들어와 하루 종일 잠만 잤다. 누군가 한동안 그러다가도 지치면 그만두겠지! 그러니 믿고 기다려보라는 이야기만 했다. 하지만 속상하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모든 부모가 그렇듯 절대로 우리 아이들은 방황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중학교 때까지 공부도 잘했고, 친구들에게 인기도 많았다. 원하지 않던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공고에 가고 싶어 했다. 입학해 두 달도 채우지 않고 그만둔 것이다. 그리고 아들의 방황이 시작되었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어보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만 자는 아들을 보면 화가 났다. “그럴 거면 나가라”며 윽박지르고 짜증을 냈다. 아들은 엄마, 아빠의 눈치도 살피지 않았다. 하루는 현관 입구에 벗어 놓은 슬리퍼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슬리퍼를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한쪽이 달랑달랑 떨어진 채로 끌고 다니는 슬리퍼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잠에서 깬 아들은 또 외출을 하려는지 슬리퍼를 찾았다. 쓰레기통에 넣었다고 했다. 화가 난 아들은 “나도 버리지!” 그리곤 쓰레기통을 뒤져 슬리퍼를 다시 꺼내는 것이 아닌가? 어이없고 기가 막혔다. 화가 난 아들은 더욱 그 슬리퍼를 신고 다녔다.

그렇게 힘들고 괴롭고 전쟁 같았던 1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부터 잠만 자던 녀석이 점심만 되면 일어나 어디론가 급하게 나가버렸다. 그러다가 피곤에 쌓인 모습으로 들어와 코까지 골며 잠을 잤다. 도대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궁금했다. 잘 가는 피시방 근처에서 몰래 숨어 살폈다. 그 순간, 아들이 보이고 아들 친구들도 여럿 보였다. 무슨 일일까? 가슴이 뛰고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과 말을 하고 웃기도 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좌판에 펼쳐 놓은 꽃을 팔고 있었다. 용돈을 벌자며 꽃집 알바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후 어버이날이 되었다. 남편이 출근을 하려는데, 현관문이 열렸다. 아들은 웃으며 한 손에 카네이션이 담긴 꽃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엄마, 아빠 선물이라며 건네준다.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우리를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아들의 어깨를 두들겨주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출근했다. 나는 속으로 엄청 울었다. 방황만 한 줄 알았던 아들은 그동안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왔던 거다. 그동안 모은 알바비가 100만 원이 되었다며 좋아했다. 엄마 옷도 사 입으라며 10만 원을 준다. 그날 너무 놀라고 미안해서 아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너한테 공부해라 뭐 해라 아무 말 안 할게. 엄만 너를 믿을게.”

아이를 내 뜻대로 인문계 고등학교로 보낸 후 얼마 안 되어 아들이 “이제라도 공고로 옮겨 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조금 지나면 괜찮겠거니 하고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때 조금만 아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더라면 아이가 행복했을 텐데. 늘 엄마 마음대로 아이를 키우려 했구나 싶어 참 미안했다. 다행히도 나와는 달리 남편은 언제나 아이를 그냥 지켜봐주었다. 그래도 그런 아빠가 있어서 아이가 이렇게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 후, 아들은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갔다. 믿어주는 만큼 아이는 스스로 알아서 했다. 군 생활도 마치고 지금은 복학을 해서 멋진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믿고 기다리면 결국은 자기의 길을 찾아가는 거 같다.

처음으로 아들에게 받았던 카네이션 선물. 지금도 카네이션만 보면 설렌다. 너무도 행복해서다. 카네이션 바구니에 작은 아이비 화분이 꽂혀져 있었는데 6년이 지난 지금도 잘 크고 있다. 아이비가 크는 만큼 우리 아들도 이렇게 커가는구나 싶다. 아이비는 겨울이 되면 잎이 다 떨어지고 노랗게 마르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새순이 돋아난다. 온실이 아니라 바깥에서 바람이나 햇볕을 골고루 받으면 더 잘 성장한다. 사람도 똑같은 거 같다.

“그때 우리가 왜 그랬지?” 한번은 아이가 친구들과 이런 대화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팽팽한 삶의 인생에서 사춘기라는 순간이 있는 것처럼, 방황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선물이 된다.

정일 작.
<푸른빛 산토리니>
61×93cm.
Oil on canvas. 2013.

지금 당장 해줄 수 없는 선물일지라도 그 마음만은 잊지 말고 전해보면 어떨까요.

한밤의 라디오에 나를 위한 노래가 나왔을 때

나운영
42세. 주부. 일본 치바현 거주

주는 이와 받는 이의 당시 마음을 되짚어 볼 수 있다면 선물은 그 좋은 징표이자 증거일 것이다. 사십 평생 살아오면서 주는 이의 입장에 서서 건넨 선물이 받는 이의 입장에서 받아든 선물보다 많았더라는 사실을 새삼 추억해 보니 처음엔 손해 보고 살았나 싶었다가,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잘한 것 같아 입가에 잠깐 미소가 번진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물 중 하나는 한밤에 듣던 라디오방송에 사연을 보낸 일이다. 고3 시절 특이한 친구 한 명이 있었다. 다들 공부하는데 그 친구는 맨날 음악을 들으며, 좋은 곡은 녹음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빌보드 차트 순위 같은 것을 가르쳐주는 아이였다.

하루는 그 친구와 함께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방송을 그날 밤 꼭 들으라고 당부를 했다. ‘친구 나운영 님을 위해 들려드립니다’ 알고 보니 나를 위해 노래 사연을 보낸 거였다.

그렇게 나를 위한 팝송을 듣던 날, 처음으로 웃으면서 잠들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라디오에 내 이름 석 자를 나오게 했던 그 추억의 선물이 너무도 큰 감동과 행복함을 맛보게 해주었다.

이후 대학에 들어가 나도 최고의 행복을 맛보게 해주고 싶어, 한 친구를 위해 사연과 음악을 신청하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디제이에게 뽑힐 수 있을까 고민 고민해서 보낼 때의 설렘과 떨림이란. 물론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방송 매체에 자신의 이름이 나온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했던 우리들! 지금은 보통 휴대전화의 뒷번호로 소개되는 사연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내게 사연을 선물해 주었던 친구는 지금 소식이 끊겼고, 내가 사연을 선물했던 친구는 페이스북이며 카톡 덕분으로 가끔 소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연결 고리는 갖게 되었다. 그 친구 역시 아직도 그 선물을 두고두고 이야기한다고 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세 아이라는 선물을 하나님께 받아 잘 키우고 있다. 국경은 넘더라도 나이는 밑으로 넘지 말자,라고 웃는 소리로 했던 슬로건이 그야말로 그대로 적중해 국경을 넘어 일본인 남편과 일본에서 터를 잡고 살고 있다.

내겐 매일같이 해외여행처럼 느껴지는 일본 생활. 한국에서 갈고 닦은 일본어 실력을 십분 활용하고 입에서 쉰내가 날 정도로 원 없이 일본어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일본어를 전공할 때만 해도 인생이 이렇게 진행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은 신의 선물의 연속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좀 심술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힘든 고비를 넘고 또 넘고 보니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게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특별한 선물이었다.

사실 돌아보면 선물을 줄 때의 마음은 내가 얼마나 당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주오~’가 많았던 거 같다. 그렇지 않으면 섭섭해하고.

하지만 신의 선물은 그렇지 않다. 그 사람에게 딱 맞는 것을 그냥 주고 계신다. 받은 선물을 어떻게 잘 쓸지는 자기의 몫이다.

하루하루라는 선물! 아이들이라는 선물, 남편이라는 선물, 일본이라는 선물! 그 종합 세트를 손에 들고 있는 이는 바로 나임을 늘 각성하며 오늘 하루도 파이팅을 외쳐본다.

정일 작.
<푸른 여행>
24.5×34cm.
Oil on canvas. 2014.

사장님께 받은 장미꽃 쉰여덟 송이

박만춘
57세. 주부. 충남 보령시 지장골길

딩동~, 누구세요? 네, 꽃 배달입니다. 순간 스쳐가는 생각. 꽃을 배달해 줄 사람이 우리 집에는 없다. 아이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프리지아 작은 꽃다발을 선물한 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이야기나 들어보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와, 붉은 장미 쉰여덟 송이가 예쁘게 장식된 꽃바구니다! 카드도 있었다. “결혼기념일을 축하드립니다.” 보내신 분은 놀랍게도 남편이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세상에, 하늘같이 높은 사장님께서 직원들의 결혼기념일을 챙겨주시다니. 고맙기도 하고 남편 직장에 대한 자부심에 기뻐서 두둥실 떠오르는 풍선이 되었다.

남들은 고가의 명품 가방과 옷 신발 등을 사들이며 자랑으로 여기지만 우리 같은 서민은 명품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뿐더러 생일이면 쇠고기 듬뿍 넣은 미역국을 끓여 먹으며 가족 간에 감사의 정을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꽃은 마음의 꽃으로 대신한다. 생일 맞은 주인공을 가족들이 차례대로 안아주며 생일 축하와 함께 건강한 덕담을 나눈다.

퇴근하는 딸이 거실을 환하게 밝혀주는 장미꽃 다발을 보며 “아주 탐스럽고 멋진 꽃다발이네요. 엄마가 사셨을 리는 없고 누가 사오셨어요?” 하고 묻는다. 카드를 보더니 “퇴직을 앞둔 아빠를 위로하는 꽃다발인가 봐요?” 하고 묻는다.

그렇구나! 3월 17일 결혼기념일도 축하할 겸 퇴직 기념 꽃다발이구나. 남편은 3월 27일 38년간 다니던 발전소 엔지니어 일을 마감하게 된다. 58세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게 된 것이다. 늘 그 모습 그대로고 마음만은 이팔청춘이건만 이제 회사 일은 그만하라니 섭섭하다. 그렇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어서 한 자리라도 내어주는 것이 원활한 순환을 위하는 것이리라!

여보,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교대 근무 하면서 때로 잠도 설치고 밤에 일 나가야 할 때는 안쓰러운 적도 많았어요. 혹시나 위험한 일이 있을까 마음 졸이기도 했고요. 그래도 늘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일한 당신이 존경스럽습니다. 38년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제는 당신 좋아하는 산도 실컷 다니며 좀 쉬세요. 앞으로 더 재밌게 살아봐요.

발전소 사장님 감사드립니다. 빠알간 빛의 장미 향기처럼 남에게 도움을 주고 기쁨을 선물하는 멋있는 가족으로 행복하게 지낼게요. 남편의 평생직장이었던 발전소 또한 사고 없이 더 좋은 직장이 되길 바랍니다.

정일 작.
<story garden>
62×93cm.
Oil on canvas. 2005.

한결같이 선물을 주던, 선물 자체였던 그 아이들

이지은
26세. 부산시 영도구 청학로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 또는 준다는 것은 참 특별한 일이다.

선물 하면, 내게 2년간이나 선물을 주었던 그들이 떠오른다. 어느 날엔 꽃을, 언제쯤은 편지를, 또 다른 날엔 그림을, 또 갑자기 인형을…. 어쩌면 한결같이 변함없이 선물을 주던지. 그 덕분에 언제나 마음은 봄처럼 설렘 가득했다.

내 나이 24살, 처음으로 어린이집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 늘 주눅 들고 살아서, 나는 그렇게 안 하리라 다짐하며 유아교육과를 갔다.

아이들을 정말 긍정적으로 밝게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매일매일 밝게 웃으며 “사랑해” “좋아해”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언제나 내가 준 것의 몇 배 이상을 돌려주었다. 이틀 주말을 지내고 오면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드라마 대사같이 달달한 말들을 눈을 반짝거리며 해온다.

출근해 어린이집 현관에서 신발을 벗는 그 순간, 저만치서 토끼마냥 깡충깡충거리며 달려와 품에 쏘옥 안긴다. 그러면 또 다른 아이가 또 다른 아이가 대롱대롱 일곱 마리 아기 양들처럼 품속에 파고든다. 아이들과 따스한 포옹, 그것이 나에겐 선물이었다.

자연에서 키우자는 모토를 가진 곳이라, 매일 숲에 갔다. 봄에는 벚꽃 잎이 흩날리는 그 길을, 여름에는 수풀 우거진 그 길을, 겨울에는 싸리눈 내리는 그 길을 같이 걸었다. 아이들은 강아지마냥 뛰어가며 좋아한다. 표정이 어떻게 저렇게 밝을 수 있을까. 계절을 마음껏 느끼는 아이들이 나에겐 선물이었다.

한번은 한여름 숲속 나들이길. 한 아이가 내 허리를 톡톡거린다. 뒤돌아서 아이를 바라보았더니 무언가를 내민다. 숲길을 걸으며 이건 양지꽃, 이건 강아지풀, 저건 아카시아잎 하며 가르쳤던 내게, 그 꽃들을 하나씩 모아 손바닥만 한 꽃다발을 만들어 건넨 것이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꽃다발을 받은 나는 행복한 선생님이었다.

어느 날은 내 생일이었다. 아이가 엄마 손을 잡고 등원하면서 아침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어머님께서 “선생님, 생일이시죠?” 하는 말을 듣더니, 아이가 다시 밖으로 뛰어가 자기가 타고 온 차에서 무언가를 가져온다. 손때가 묻어 노랗게 빛나는 아기 곰 인형을 부끄러운지 발간 볼을 하고 내민다. 아이가 아끼며 놀던 그 곰 인형. 유독 짓궂게 굴었던 아이가 줬던 거라 더 감동적이었다. 이 인형에게 빨래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빨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인형은 아직도 내 침대맡을 지켜주고 있다.

길 가다 선생님 생각이 났다며 주운 예쁜 모양의 돌, 나뭇잎, 구슬, 아끼는 색종이. 심지어 비비탄 총알…. 아이들이 준 선물들은 무궁무진하다. 한 아이는 매일매일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차를 그려서 선물을 해주었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 “불꽃이 센 자동차” “엔진이 무려 3개나 달린 자동차”라면서. “내가 어른이 되면 차 사줄게요. 스포츠카!” “집 사줄게요.” 아이들의 약속만 지켜지면 난 집도 차도 참 많은 사람일 것이다.

아이들은 뭐든지 주려고 한다. 아이들은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한다. 뒤끝도 없다. 때로 혼을 내도 돌아서면 다시 다가온다. 그래서 동심으로 돌아가라 하나 보다.

아이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서 경청과 격려를 해왔던 수많은 시간들. 처음 만난 아이들과 있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나에겐 선물이었다. 잊지 못할 그 선물 말이다.

정일 작.
<Story garden>
260×194cm
Oil on canvas. 2005.

생일 선물로 받은 수학 문제집

한나경
20세. 대구시 달서구 진천동

요즘 나의 하루는 늘 똑같다. 그래서 다행이다. 만약 지금 내가 흥미진진하고 매일 새로운 일상을 살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왜냐하면 나는 재수생, 아니 일명 죄수생이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 5시 30분에 기상. 잠에 취해 이리저리 머리를 흔들며 가는 버스 안. 학원. 아침 특강. 수업. 밥. 수업. 밥. 자습. 조금은 답답하지만 이런 생활이 내게 바람직하기에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3월 3일, 그날만큼은 조금 울적했다. 바로 내 생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재수생에게 생일은 무슨 생일, 의미 없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같이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축하받기는커녕 말 걸기도 미안한 상황이라니. 사실은 많이 외로웠다. 하지만 금방 잊어버리고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살고 있는데, 평소랑은 조금 다른 일이 일어났다.

이제 대학생인 친구가 나의 재수 학원 쉬는 시간에 맞춰 찾아온 것이다. 손에는 간식과 문제집을 가득 들고서 말이다. 유난히 수학에 약한 나를 위해 자신이 전에 보던 수학 기본서들뿐만 아니라 서점에 들러 또 몇 권의 수학 문제집들을 더 사온 것이다.

“생일 선물로 문제집 주는 거는 좀 이상한 거 같아서 다른 거 살까 했거든? 근데 이게 지금 니한테 제일 필요한 거 아이가.”

마음속으로는 감동 먹어서 눈물 나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진짜 많다며, 이걸 언제 다 풀겠냐며 괜히 장난스럽게 말했다. 사실 수학울렁증이 있는 나에게는 약간(?) 많은 양이기는 했다. 내가 샀더라면 어쩌면 또 작년처럼 풀다가 지쳐 ‘수학은 내 인생의 걸림돌이야!’ 하고 책을 덮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다. 책을 덮고 싶어도 친구의 얼굴이 떠오를 테니 말이다.

오랜만에 만났기에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았지만 우리가 얼굴을 보고 이야기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은 고작 15분이었다. 15분을 위해 버스로 왕복 1시간이 넘는 이곳까지 와 준 친구. 그 친구가 내게 선물한 것은 문제집이나 수학 점수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내가 얻은 건 믿음, 가장 못생기고 초라한 지금의 나를 여전히 사랑해주고 아껴주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믿음이었다. 그 친구가 다녀간 후에도 몇몇 친구들이 학원으로, 집으로 찾아와 선물과 응원을 안겨주고 갔다. 또한 내 휴대폰은 진심이 가득 담긴 축하 문자와 전화들로 가득 찼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대학을 가서 즐거운 삶을 살고 있다면 이러한 축하와 선물들이 지금만큼 고마웠을까? 내가 이렇게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을까? 고작 스무 해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 삶을 돌이켜보니 참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매일 집에 가면 “오늘도 고생 많았지. 우리 딸~” 하며 꼬옥 안아주는 부모님, 서로 밥 사주겠다며 아옹다옹하는 친구들, 너라면 꼭 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라며 말해주셨던 친척들, 언니가 짱이라는 사촌 동생들과 후배들, 그 외에도 나를 믿어주시는 분들, 그 모든 사람들이 내 인생의 선물이다. 그들을 생각하니 나는 더 이상 혼자 밥을 먹어도, 혼자 공부하고, 혼자 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어도 외롭지가 않다. 열~심히 해서 1년 뒤에는 그들에게 받았던 응원, 격려, 사랑을 다시 되돌려줘야겠다.

정일 작.
<그리움>
45×54cm
Oil on canvas. 2012.

나는 왜 야행성일까?

 

OECD 국가 중 가장 수면 시간이 짧은 나라 한국. 우리는 일 중독자로, 수험생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밤잠을 잃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유전적으로 타고난 올빼미형 인간은 열 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은 자기에게 맞지 않는 반쪽 올빼미형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아침형 인간을 동경하고 있지요. 과연 나에게 맞는 수면 패턴은 무엇일까요? 내일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 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편집자 주

 

가장 오래된 시계,
우리 몸의 생체시계

생체시계는 모든 생물이 가지고 있는 시간의 리듬이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졸리는 것, 배가 고픈 것 또한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비롯된 인간의 생체시계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 몸에 프로그래밍된 이 리듬은 인체의 기관이 순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런데 사실 우리의 생체시계는 하루를 24시간이 아니라 25시간에 가깝게 인식하여 현실 시계와는 1시간 정도 차이가 벌어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 몸은 이런 시간 차이를 앞당기기 위해 눈을 통해 빛의 양을 인식함으로써 수면을 유도하는 멜라토닌 호르몬 분비량을 조절하는 등 현실 시계에 맞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렇기에 햇빛은 물론 인공조명은 생체시계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평소 충분한 햇빛을 쐬어야 하며, 만약 동굴에서 살아가거나 눈을 다치는 등 빛을 인식하지 못하면 생체시계의 재조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안 맞는 시계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 EBS 다큐멘터리 <생체시계의 비밀> 중에서

밤샘 근무자들을 위한
숙면 TIP

· 근무할 때는 실내 조명을 최대한 밝혀서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한다.
· 밤샘 후 아침에 퇴근할 때는 선글라스를 착용하여 햇볕을 차단한다.
· 잠자리에 들 때는 차광 커튼을 쳐서 최대한 햇볕을 차단한다.
· 자기 전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 체온을 떨어뜨려 숙면에 도움이 된다.
· 밤샘 작업 다음 날 오전에는 푹 자지 말고, 가볍게 잠을 청하자. 낮에는 평소처럼 활 동하고 밤에는 조금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면, 수면 리듬이 깨지지 않고 평소의 패턴으로 금방 돌아올 수 있다.
· 주간 야간 교대 근무자의 경우에는 생체 리듬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적응하기 쉬우므로 주간 근무, 야간 근무, 심야 근무, 새벽 근무 순으로 근무 시간을 조정하는 방법을 추천한다.

나는 왜 야행성이
되었을까?

① 모태 올빼미형
· 해외 출장 시 시차 적응에 무리가 없다.
· 아침 식사는 거의 하지 않는다.
·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너무 힘들다.
· 오후 5시 이후의 컨디션이 좋으며 저녁 8시부터는 기분이 아주 좋다.
→ 무리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면 오히려 몸이 상할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 맞는 시간에 일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극단적인 올빼미형의 경우에는 태양의 리듬에 어긋나서 생활하기 때문에 건강을 해칠 위험이 더 높다. 지속적으로 밤을 새면 노화 억제, 면역 기능을 강화시켜주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분비량이 줄어들게 돼 노화가 빨리 오고, 면역력이 약해 감기나 알레르기성 비염 등에 쉽게 걸린다. 또 야식으로 인해 비만이 될 위험도 있으므로 스스로 위험 요인을 잘 인지하고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

② 잘못된 생활 습관형
· 매일 1시간 이상 낮잠을 잔다.
· 커피나 홍차 등 카페인 음료를 하루에 5잔 이상 마신다.
· 매일 밤 10시 이후에 저녁 식사를 한다.
· 습관적으로 야근을 하거나 퇴근 후 어딘가에 들렀다가 귀가한다.
· 인터넷 서핑, 심야 TV 프로그램 시청 등으로 시간을 보낸다.
· 자기 전에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한잔하는 시간이 좋다.
→ 잠자리에 들기 3시간 전부터는 술을 삼가자. 갈증이나 요의를 느껴 한밤중에 깨기 쉽다. 니코틴, 카페인 섭취는 뇌를 각성시켜 깊은 수면을 방해하므로 자제한다. 컴퓨터, TV 시청, 한밤중에 편의점에 가는 것을 자제하자.

③ 체내시계 고장형
· 일어나는 시간이 늘 다르고 지각을 자주 한다.
· 피곤한데도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는다.
· 차라리 야간 근무가 가능한 곳으로 이직하고 싶다.
· 잠자는 시간대가 점점 늦어지고 있다.
→ 잠들기 2시간 전부터 조명을 어둡게 해 빛이 눈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한다. 매일 아침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도록 하고, 일어나면 바로 커튼을 열어 아침 햇살을 듬뿍 받는 것이 좋다.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거나 점심시간에 산책을 하는 등 야외 활동을 늘리고 햇볕을 쬐어 생체시계가 재조정될 수 있도록 하자.

④ 스트레스 긴장형
· 잠들기 전 항상 고민이나 근심이 많다.
· 최근 직장이나 가정생활에 변화가 생겼다.
· 대인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
· 업무를 집에까지 가져오는 일이 많다.
→ 스트레스가 되는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아무리 피곤해도 바로 눕기보다는 느긋하게 목욕을 하거나 명상,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긴장을 푸는 시간을 갖자. 흥분된 신경이 가라앉고 휴식 모드로 전환되어 숙면을 취할 수 있다.
참조 도서 <수면 습관이 건강을 좌우한다>(카지무라 나오후미 | 삼호미디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대관령으로 귀촌한 지 십 년이 흘렀다. 솔직히 1년 365일 중 야근하는 날보다는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다 늦게 귀가하는 날이 훨씬 많았다. 또 집에 가서 아무리 피곤해도 텔레비전을 켜놓고 애국가가 흘러나와야지만 잠을 청했던 것 같다.
늘 머리가 무겁고 잠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많았다. 그러다 직장을 그만두고 대관령에서 펜션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곳은 가로등도 없고, 차 소리도 나지 않는 고지 800미터의 시골이라 해만 지면 깜깜한 암흑이다.
그러다 보니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일찍 잠들고, 아침 5시 30분이면 눈이 저절로 떠지는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난 후 가장 큰 변화는 하루가 길어지고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아침의 여유로운 시간 동안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나, 여러 가지 핑곗거리를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나에게 아침은 혼자 있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 생각을 정리하거나 사진을 찍어 블로그, SNS로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새로운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굳이 귀농이 아니더라도 24시간 중에서 단 1시간은 정말 하고 싶은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할 수 있을 때 나의 인생 전체를 리드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한 달에 한 번쯤은 과감히 생활에서 떠나보았으면 좋겠다. 일 때문에 안 되고, 아이 때문에 안 되고 이런저런 이유들을 다 놓고 떠나보면 실제 아무 지장이 없구나를 느끼게 된다. 여유 있는 마음으로 어디에서든 자기를 돌아보고 계발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박동일 53세.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

습관성 올빼미에서 벗어나다

청소년기에는 뇌가 다른 어느 시기보다도 더 빠르게 발달하고 변화하고 정보를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시기보다 더 많은 수면이 필요하다. 호르몬 변화로 인해 생체시계가 뒤로 밀리는 청소년기에는 특히 늦게 잠들게 되고 아침 일찍 일어나기도 어려워진다. 이러한 청소년들의 충분한 수면을 위해서 스위스와 미국, 덴마크 등 여러 나라에서는 ‘늦은 등교’ 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은 최근 발표한 연구에서 학교를 늦게 시작할수록 학생들의 정신 건강과 교통사고율, 출석률, 성적 등이 크게 개선되었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등교 시간을 1시간 이상 늦춘 5개 학군의 학생 9천 명의 수면 시간을 분석한 결과, 7시 30분 등교 시에는 30%의 학생들이 8시간을 잤지만 1시간 늦춘 이후에는 60% 이상이 8시간 이상 자는 것으로 나타났다.
잠을 덜 잔 학생들은 우울증과 카페인·알콜 섭취와 마약 사용률 등이 잠을 많이 잔 학생보다 높았던 반면에, 수업 시간을 7시 30분에서 8시 50분으로 늦춘 와이오밍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한 해 학생들이 일으키는 교통사고가 23건에서 7건으로 크게 줄었다.

생체시간 밀린 청소년기,
아침에 못 일어나는 것 당연
스위스, 미국, 덴마크
‘늦은 등교’ 운동 추진

한때 ‘아침형 인간’ 신드롬이 일면서 우리나라 직장인의 70%가 아침형 인간이 되길 원한다는 설문 조사 결과가 발표되었다. 유명 인사 가운데는 나폴레옹,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빌게이츠가 아침형 인간으로 꼽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올빼미형 인간의 장점도 속속 연구로 밝혀지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의 연구진은 10대 청소년 1,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올빼미형 인간이 아침 종달새형 인간보다 문제해결 능력, 귀납적 추론 능력, 개혁적인 사고 능력 면에서 더 우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 공군 지원자들에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해 문제를 해결하는 수평적 사고 능력에서 올빼미형 인간이 우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저녁형에는 예술가나 외향적 사업가 등 창조적인 직업군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찰스 다윈, 윈스턴 처칠, 엘비스 프레슬리 등이 꼽힌다.

올빼미형은
창조적 예술가 타입

 

나의 소원은 늘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생각일 뿐이었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학창 시절부터 늘 지각하는 게 일상이었다. 마음을 졸이며 헐레벌떡 뛰어가서 겨우 하루를 시작하고 나면, 늘 후회가 밀려오곤 했다. 5분만 일찍 일어나면 됐을 텐데…, 밤에 일찍 잘 걸…. 하지만 일찍 잔다고 해도 일어나는 시간은 엇비슷했고, 그러다 보니 늘 밤까지 해야 할 일들을 다 해놓고 자는 버릇은 이어졌다.
다행히 그런 습관을 가진 나였지만, 밤에 열심히 해서인지 남들이 알아주는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원에도 갔다. 그리고 정말 정말 다행히 야행성 인간인 나에게 딱 맞는, 출퇴근이 비교적 자유로운 직장에 취직도 했다. 나는 직장에서도 비교적 밤 시간에 일하는 게 훨씬 잘되어서 야행성 패턴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20년 넘게 야행성으로 살아왔음에도 내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아침형 인간에 대한 부러움이 있었다. 고쳐보려고도 했지만 여전히 똑같아지는 이 패턴이여.
그런 어느 날 내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보다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나는 아침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한다, 나는 잘 못 살고 있다… 그런 관념들이 나를 묶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동경해 마지않았던 아침형 인간이 됐어도, 나는 또 밤 시간을 잠으로 보낸 나를 한탄했을지 모르겠다. 왜 그래야 하지? 그게 나한테 잘 맞는 생활 방식인데 왜 나는 항상 문제 있다고만 생각했지? 그다음부터는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나는 뜨는 해는 보지 못해도, 휘영청 중천에 뜬 달은 본다.ㅋ 남들이 잠든 사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일을 한다. 더 성과도 많이 낸다.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자 나 자신에 대해서 훨씬 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더 당당해졌다. 뭐 또 상황이 바뀌면 생활 패턴이 바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유에서 어떤 패턴으로 살아가든, 잘못됐다, 못하고 있다는 생각은 빼고 내 조건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오늘 밤에 떠 있는 달은 얼마나 예쁠까.
최정원 37세. 서울시 도봉구 창동

 

 

 

 

 

 
나는 아침형 인간이
부러웠다

한 여교사의 살벌했던 학교생활 적응기

학생들이 너무 무서웠다는 한 여교사가 있습니다. 드세고 까칠한 요즘 ‘고딩’들을 작은 체구로는 상대하기 어려워 굳은 표정으로 잔소리 고문을 해댔다는 그녀. 방학 때마다 이직을 준비했다는 그녀가 마음 빼기를 한 후 교육의 참 보람과 기쁨을 알아가고 있다는군요. 이제 아이들 자랑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행복한 13년 차 교사. 그녀와의 유쾌한 빼기 토크입니다.

어렸을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나?

아니다.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갔는데 어쩌다 보니 하게 되었다. 근데 막상 되고 보니까 진짜 내 길이 아닌데 싶었다. 스트레스가 심해서 면역력도 떨어지고 하루하루가 피곤했다.

잉? 다들 부러워하는 직업 아닌가?

선생은 방학도 있고 잘릴 걱정도 없다고 부러워하는데 알고 보면 17일(월급날)이 있으니까, 방학이 있으니까, 참고 견딘다. 처음엔 ‘선생님 같다’는 말도 싫었다.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가 꼼꼼하고 보수적이고 재미없고 그러니까. “직업이 선생님이세요?” 하고 누가 물어보면 “네? 제가요? 왜요? 선생님처럼 보여요?!” 하면서 정색을 했다.(웃음) 또 요즘 애들은 선생님을 친구보다 더 쉽게 생각하고 무시를 한다.

근무하는 곳은 어디인가?

농업계 고등학교에 있다. 가정에 결손이 있거나 부모님으로부터 방치된 애들이 많다. 친구들과 술 먹고 담배 피고, 그런 애들을 전혀 이해 못 했다. 도무지 인생에 대책이 없어 보이고 너무 막 사는 것 같고 솔직히 무슨 가르치는 재미가 있겠나 싶었다. 입학식 날부터 슬리퍼에 추리닝에 껌 씹고, 퇴근할 때 보면 낮술 먹고 취해 유리를 깨고 팔에 피를 철철 흘리면서 뛰어가고 있고. 아, 진짜 멘붕. 너무 암담했다. 무섭게 보이려고 인상도 팍팍 쓰고 절대 웃지 않았다. 태권도 학원도 등록했다. 근데 이걸 가지고는 애들을 제압하는 데 써먹을 수는 없겠다 싶어 그만뒀다. 나중에 애들이 얘기하더라. 하나도 안 무서웠다고.

평소 꿈꿔왔던 학급 분위기는 어땠나?

애들은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고, 좋아하는 선생님께 음료수도 드리는 그런 훈훈한 분위기? 선생님은 여유롭게 시험 문제 내고 감독하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수업보다 업무가 더 많고 생활 지도 할 것도 많고, 일이 나한테만 오는 것 같았다. 마치 몸 안에 시계가 있어서 재깍재깍거리는 것같이 잠시도 쉬지 못했다. 나름 등산 동호회 활동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면서 ‘삶을 컨트롤하는 괜찮은 사람’인 척 살았다. 하지만 주말 행복은 잠깐이고 학교에 돌아오면 여전히 스트레스였다.

마음수련 하고 학교 생활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었나?

교직 생활 5년 차에 마음수련을 시작했는데, 5년이란 짧은 기간인데도 권위 의식이 대단했다는 걸 알았다. 말투나 행동이 내 기준에 맞지 않으면 거슬려 하고 ‘내가 선생인데~’ 하면서 대접받으려 하고. 그런 기준과 틀을 다 버렸다. 모범적인 척, 긍정적인 척 행동하면서 힘들었던 마음, 일하기 싫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마음도 버렸다. 그러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억지로 강해 보일 필요도 없었다. 내 마음이 넓어지니까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장점을 먼저 보게 되었다. 우리 학교 애들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순수하다. 거칠게 보이지만 솔직해서 좋다. 또 자기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집안일도 돕고 친구들한테도 잘하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현재를 즐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많이 배우게 되었다.

그럼 요즘은 학교에서 인상 안 쓰나?

완전 반대다. 맨날 바보처럼 웃고 다닌다. 스트레스가 전~혀 없다. 만약 나한테 막말을 했던 아이가 있다면 아이에 대한 안 좋은 마음을 싹 버린다. 그러면 다음 날 깨끗하게 포맷된 마음으로 언제든지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가 있다. 아이에 대한 감정이 남아 있으면 객관적으로 생각도 못 하고 지도도 잘 안 된다. 아이도 선생님이 미우니까 반성하기 싫을 거다. 근데 서로 감정이 없다는 걸 알면 혼을 내도 쿨하게 끝나고 아이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온다. 애들한테 ‘학교 다니는 이유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서도,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너희들이 행복하려고 학교에 다니는 거다.’ ‘나만 생각하다 보면 힘들어진다. 주변 사람들이 원래 다 ‘나’니까 친구들을 배려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준다.

학생들도 선생님의 변화를 바로 알아차렸나.

2년간 담임을 맡았던 한 아이는 보호시설에 살았는데 마음이 닫혀 있고 자기표현을 전혀 안 했다. 그런데 졸업 때쯤 이런 말을 했다. “다른 선생님들이 선생님은 참 한결같다고 하던데, 진짜 그런 것 같아요. 애들이 힘들게 해도 맨날 웃고. 피곤할 텐데 왜 그래요? 나는 쌤처럼 되기 싫지만 또 쌤처럼 되고 싶어요.” 그렇게 까칠했던 아이가 눈물을 보이며 그 말을 하는데, 참 뭉클했다. 교육이란 게 2년 3년 그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래야 효과가 나타나는구나, 선생님들이 얘는 안 된다고 포기해서는 안 되고 인내하고 꾸준한 사랑을 표현해야 되는구나 느낀다. 그러면 애들은 저절로 바뀌는 것 같다.

오, 좀 감동임다. 요즘은 반 분위기도 엄청 좋겠다.

솔직히 우리 반은 더 좋은 것 같다. 왜냐하면 아이들도 짬짬이 마음 버리기를 하니까. 10대에는 친구가 인생의 전부인데 왕따를 당하거나 부적응해 버리면 자퇴한다면서 곧 죽을 것같이 힘들어한다. 그때 어른들 입장에서 대수롭지 않게 시간이 가면 나아지겠거니 그대로 놔두면 애들은 어떤 돌발적인 행동을 할지 모른다. 그때 마음 빼기를 하게 하면 금방 마음이 버려지면서 그 지옥 같다,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온데간데없어져 다시 웃으면서 학교생활을 하는 걸 종종 본다.

이직을 고민하는 선생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물론 세상에는 정말 훌륭한 스승님도 많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왜 학교를 다니는지 애들한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모른 채 종 치니까 수업 들어가고 방학까지 참고 버티면서 사는 선생님들도 많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선생이라면, 참 스승으로서 학교와 학생에 대해서 비전을 가져야 한다. 또 나부터 행복해야 학생들도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학교에 한번 들어온 이상 멈추지 못하고 그냥 Go~ 하기 쉬운데 잠깐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에 보람을 느끼면서 스트레스 없는 교직 생활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항아리를 채우는 방법

 
 

한 교수가 교탁 위에 항아리 하나를 올려놓더니, 주먹만 한 돌들로 가득 채웠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교수가 묻자 학생들은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교수는 빙긋 웃더니, 모래를 한 그릇 꺼내 항아리에 쏟아부었습니다.
그는 돌 사이로 모래가 골고루 잘 들어가도록 항아리를 흔들고는 물었습니다.
“자, 이제 가득 찼습니까?”
“…….”
무슨 뜻일까? 학생들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 아무 대답도 못 했습니다.
교수는 이번에는 항아리 가득 잘 스며들게 물을 부었습니다.
“자, 이제 드디어 항아리가 다 찼습니다.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준 것들이 무얼 의미하는지 아나요?”
학생 중 한 명이 손을 들었습니다.
“아무리 스케줄이 꽉 찬 것 같아도, 언제든지 비어 있는 시간을 이용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수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실험을 통해 배워야 할 것은,
가장 큰 돌을 먼저 넣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 돌은 넣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큰 돌이란 가장 먼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을 말합니다.
살다 보면 쉽고 사소한 일에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일은 미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요?
가장 정확한 답을 알고 있는, ‘내 마음’에 물어봅니다.
그리고 실행합니다.

 
 
 
 
 
 
 
 

마음이란

인간은 원래가 세상 나면서부터 미완성인 인간의 자식으로 나서 인간의 마음이 있다.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원죄가 있다고 한다. 자범죄란 자기가 세상 살면서 인간의 마음에 세상의 것들을 사진 찍어 만든 세계와 그곳의 감정인 관념 관습이 있어 자기의 마음이 된 것이다.
사람은 자기 마음속에 가진 그 마음에 자기 것만 맞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이것은 실이 아닌 사진이라 다 가짜인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이 사진의 세상에 살아서 가짜의 세상 살아도 사는 줄 모르고,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러나 참세상에 난 자만 인간세상에 사는 자들이 허임을 알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세상과 세상이 겹쳐져 있어 세상 사는 줄 아나 자기의 마음속 살아 인간이 죽어 있는 것이다.

참이고 진리인 참세상은 자기와 자기의 마음의 세상을 다 없애고 넘어간 세상이다.
이 세상은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이고 죽음이 없는 세상이라. 진리의 근원은 이 세상에 있는 일체를 다 없애면 진리인 본래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우주에 있는 형상을 다 없애고 나가 죽고 없는 자리가 본정신인 창조주의 자리다.

이 존재는 물질이 아니라서 인간들은 없다고들 하나 이 존재는 분명히 존재하고 없어지지 않는 살아 있는 존재다. 이 존재만이 진리인 것이다. 이 존재로 사람이 다시 나지 않고는 영원이란 단어가 붙을 수도 없고 영원히 살 수도 없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것은 다 이 존재의 표상인 것이다.

삼라만상의 일체는 진리인 이 존재에서 와서 이 존재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이 세상과 인간이 구원이 되는 것은 이 나라에 다시 나지 않고는 영원히 사는 방법이 없을 것이다. 진리는 이것밖에 없으니 그러한 것이다.

인간이 자기의 마음속에 살면 이것이 가짜세계인 지옥이고, 신의 세상이고 진리의 세상인 참세상에 다시 나서 살면 이것이 부활이고 영생이고 천극락인 것이다.
사람이 살아서 죽음이 없이 이 나라 나서 사는 자는 살아 부활이 되어 천극락에 난 자이다. 살아서 천극락에 간 자라야 천극락에 살 것이다.

천극락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가 아닌 자기 마음이 진리가 된 자가 진리의 재질로 다시 난 자가 사는 나라는 자기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
자기 속에 부활된 자, 신인 진리의 뜻에 사는 자는 부활된 자기가 살 것이고, 인간 자기의 뜻에 사는 자는 신이 죽고 허상인 자기가 살 것이다. 모든 영광도 진리에 돌리면 진리 된 자기가 살 것이고 자기가 했다고 하면 허상인 귀신인 자기가 살 것이다.

마음수련이 위대한 것은 자기의 가짜인 마음을 다 버리는 방법이 있어서이고 참마음이 되어 참의 재질로 다시 나 영원히 살 수가 있어서이다.
미완성 시대에는 진리도 말로만 했지 진리가 되지 못했다. 진짜가 안 되면 아무리 좋은 진리도 말로 해서는 자기가 완성인 진리가 되지 않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각 종교에서 마음을 비우라고도 하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다’라고도 했다. 이것을 할 수가 있는 곳이 마음수련이다.

이제는 미완성의 시대가 아닌 완성이 되는 완성의 시대다. 그러나 자기가 완성이 되는 방법이 있고 또 천국 가는 방법이 있어도 자기가 그 방법을 안 따르고 잘못된 자기의 상식으로 진리를 외면하면 영원히 죽고 말 것이다.
진리가 되어 진리 안에서 사는 것만이 자유고 해탈이고 말만 듣던 성인이 될 것이다.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시인, 저술가, 강연가입니다. 2002년 인간 내면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UN-NGO 산하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으며 세계 평화 대사로도 활동 중입니다. 저서로 <세상 너머의 세상>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등이 있으며 그의 저서 중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의 영역본은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에서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데 이어, 5개 국제도서상 2013 LNBA, NIEA, IBA, IPPY Awards, 2012 eLit Awards에서 영성, 정신, 철학 분야 금메달을 수상하였으며, 최근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의 영역본이 2014 에릭 호퍼 북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하는 등 마음과 비움, 깨침에 대한 우 명 선생의 철학이 전 세계의 관심과 공감을 얻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재밌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제 고민은요?

직장 생활 10년 차가 되어가는 30대 여성입니다. 요즘 저의 최대 고민은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겁니다. 요즘에는 남자 여자 상관없이 재밌는 사람이 인정받잖아요. 꼭 인정을 원하는 건 아닌데 재밌는 사람이 주변에 에너지를 주고 흥을 돋우는 걸 보면 부러워요. 저 같은 경우는 소심해서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고, 회식 자리 같은 데 가서도 뻘쭘하게 아무 말도 못하고, 돌아와서 후회를 하곤 합니다. 코미디 프로를 보고 따라해 보려고 해도 어색하고 쉽지 않더라고요. 유머 감각도 후천적으로 키워질 수 있는 걸까요?

제 생각은요?

언젠가 MBC 무한도전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씨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인기가 많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는 막 대학에 들어가는 신입생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먼저 친구들을 좋아해야 친구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을까요. 잠을 많이 자면 잠이 늘잖아요. 욕을 많이 하면 욕이 늘어요. 밥을 좋아하면 밥이 늘죠. 저는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 정말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친구들이 웃는 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친구들을 웃기기 위해서 수업 시간에 아는 답도 틀리게 대답해서 친구들이 웃으면 그렇게 좋았어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자꾸 들으려고 하면 그 사람이 어떻게 나를 안 좋아할 수 있겠어요.”

사실 사회생활하다 보면 님 같은 고민 하는 분들 많을 거예요. 저도 한창 그런 고민 하고 있을 때여서인지 이 이야기가 마음에 다가오더라고요. 정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자꾸 들으려 하고, 연구하고, 시도하다 보면 어느새 재밌는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요. 마음을 쏟은 만큼 느는 법이니까요. 김수영

저도 소심한 성격인데요, 모임에서 제가 주목받게 된 건 리액션을 아주 잘해서입니다. 제가 직접은 못해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정말 재밌을 땐 물개박수도 치며 크게 웃는데 이런 제 모습을 아주 좋아하는 거예요. 상대방은 반응 좋은 저를 쳐다보며 말을 하게 되고, 저 역시 상대의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줄 수 있으니 같이 신이 나고요. 결혼하며 아줌마 타이틀을 달고부터 리액션 수준은 더욱 도가 텄지요. 이것이 저만의 소심하지만 주변인들에게 ‘얘기가 통하는 재밌는 사람, 모임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평가받게 된 방법이랍니다. 덧붙여서 제 소심한 정도를 말씀드리면, 5살 때 하도 방구석에서만 놀아서 대문 앞에 내다놓고 나중에 문 열어보면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던 아이가 저였답니다. 점점 크면서 이런 성격을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중학교 때부턴가 용기를 냈던 거 같아요. 제일 명랑한 아이의 행동을 잘 살펴본다던지, 친구들에게 나는 소심해서 걱정이야~라며 솔직히 말을 꺼냈지요. 그러자 친구들이 ‘그래도 너는 말을 참 잘 들어줘서 좋아’라고 하는 거였어요. 그 후 대학을 다니면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보니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건 참 좋은 거더라고요.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추임새도 넣어주는 거예요. 예를 들면 유행어 같은 것들요. 그러다 보면 분위기도 좋아지고 같이 즐거워집니다. 우선은 재밌는 사람이 하는 말을 잘 듣고 자연스런 리액션부터 시작해보세요. 요즘 유행어들도 좀 연구하면서요. 그러다 보면 조금씩 재밌는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파이팅~! 서혜정

저 역시 내성적이라 나서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특히 주목받는 걸 무척 싫어하는 성격이었어요. 어쩌다 유머를 던져 봐도 괜히 저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지고는 했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이런 성격이 저를 힘들게 하더라고요. 저를 근본적으로 바꿔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만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마음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저를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어요. 제가 깜짝 놀랐던 게 세상을 향한, 주변 사람들을 향한 저의 마음이었어요. 세상은 나를 미워한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거다, 불만과 불평 같은 마음들이 너무 많았더라고요. 사람들에게 쉽게 이야기를 건네지 못하는 것도 무시당하지나 않을까, 괜히 상처받지 않을까 하는 자존심 때문이란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마음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그런 만큼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편안해져갔습니다. 이제는 제법 분위기에 어울리는 말들도 생각나고 한마디를 던져도 유머가 돼서 사람들이 웃을 때면 신기하답니다. “너 참 많이 변했다” “니가 그렇게 재밌는 사람인지 몰랐다”는 소리도 종종 듣습니다.

님께서도 한번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부터 돌아보심 어떨까 싶어요. 그러면서 자신감을 가지고 남의 시선 신경 쓰지 말고 표현해보고 싶은 걸 해보는 거예요. 사람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답니다. 유머 감각, 위트, 예능감 있는 사람 되기, 그리 어렵지 않아요~~ 조금만 더 용기를 내보세요. 박희주

 

지금 고민 중이신가요. 혼자
힘들어하지 마시고 함께 나눠보아요.
고민과 의견이 실리신 분께는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엽서, 이메일 edit@maum.org
SNS 관련 게시글의 댓글로도
참여 가능합니다.

함께 나누고 싶은 다음 고민입니다.

저희 팀의 팀장님이 이직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팀장 자리가 몇 달간 공석이었는데, 최근 근무 연수가 제일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저를 팀장으로 임명하였습니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는 나이대도 비슷하고 항상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의논하며 허물없이 지냈습니다. 경력도 엇비슷하고요. 그런데 갑자기 팀장이 되고 보니 되게 어색합니다. 팀장입네 나서기도 애매하고…. 일은 해야 하는데 뭔가 자리가 어색하고…. 이런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지 고민입니다.

엄마 명품 가방 몇 개 사줬냐고?

온 가족이 티비를 보다 명품 가방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고1 아들 녀석이 대뜸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빠는 엄마 명품 가방 몇 개 사줬어?”

갑자기 훅~~ 들어오는 몇 개라는 말에 막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죽을래?” 아들 녀석이 기죽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합니다. “한 개는 사줬겠지?” 옆에 앉은 아내의 코웃음을 보며 아들 녀석에게 침착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형우야… 명품 가방이란 게 얼만지 아냐? 네가 생각하는 뭐 몇 십만 원짜리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건 아빠도 선물해줬어. 적어도 저런 티비에 나오는 명품 가방은 몇 백은 하는 거야 알았냐! 짜식아.”

아들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아들 녀석이 또 훅~~ 하고 들어옵니다. “나도 알아 몇 백 하는 거, 그래도 결혼 생활 17인가 18년인가 하면서 좀 모아서 사주지 그랬어요.”

아들 녀석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봅니다. 제 눈동자의 떨림을 보았는지 훅~~~ 들어와서 비틀기까지 합니다. “하루에 천 원씩만 모았어도 어……… 대충 한 5백은 됐잖아요.” 갑자기 목이 타서 음료수 잔을 드는데 컵 속에 음료수가 바르르 진동을 합니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의 진동인지 알았는데 그냥 제 손의 떨림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광고 하나만 하고 가겠습니다.~~

 

전국에 계신 여성분들에게 제 아들 녀석을 사윗감이나 남편감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이 사람은 결혼을 하면 하루에 천 원씩 모아서 나중에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할 아주 성실하고 로맨틱한 새낍니다. 안양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백형우라는 이름을 꼭 기억하셨다가 나중에 명품 가방 꼭 선물받으시기 바랍니다.

음료수 한 잔을 다 마시고도 목이 타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흐뭇한 미소만 짓고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서 아들 녀석 손을 꼭 잡으며 말합 니다. “오메 내 새끼… 너 운동화 떨어졌다며? 내일 사러 가자. 뭐 특별히 봐둔 거 있어? 오메 내 새끼 예쁜 거… 엄마 속이 다 시원하다, 내 새끼 쪼~~옥.”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광경이라 그냥 몇 발자국 옆에 소파 끝에 걸터앉아 창밖만 바라봤습니다. 뭐 생각해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들었습니다. 그때 아까부터 방과 거실을 오가며 학원 숙제를 하던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송이야.” 딸아이 이름을 부르고 한숨을 한번 쉬었습니다. “송이야… 넌 꼭 너희 오빠 같은 인간이랑 결혼해라. 아빠 같은 인간하고 결혼하면 명품 가방 한번 못 들어본다. 너희 오빠같이 하루에 천 원씩 모을 수 있는 인간하고 꼭 결혼해라.” 저의 촉촉한 눈망울을 느꼈는지 딸아이가 제 눈을 한 번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직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들 녀석에게 한마디를 합니다.

“오빠야… 오빠도 중학교 때부터 하루에 영어 단어 하나씩만 외웠어도 아빠 가슴 아프게 하는 영어 점수 안 받아오지.” 천사의 속삭임과 같은 딸아이의 목소리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딸아이는 다시 총총히 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출근길에 딸아이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봄방학이라 침대에서 꿀잠에 빠져 있는 딸아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아빠가 베개 밑에 3만 원 넣어뒀다. 앞에 레드 미용실 모닝파마 2만 5천원이라고 써 있더라.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서 방학 동안에 하고 싶다던 파마 꼭 해라. 예쁜 내 새끼 쪽~~.”

백일성(44)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21세기자막단

취재 문진정

일 년 동안 국내에서 개최되는 영화제가 무려 100여 개. 크고 작은 영화 축제마다 많게는 100명이 넘는 제작진들이 고군분투하며 전 세계 영화들을 알리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영화제들은 대개 열흘 남짓한 기간 안에 끝나기 때문에 영화제 제작진들은 또 다른 일자리를 찾아서 흩어진다. 20대 초반부터 영화제 자막 팀에서 일해 온 김빈(38)씨 역시 이런 현실과 맞닥뜨렸다. 하지만 그녀는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가는 대신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했다. 영화제 자막을 제작하는 사회적기업 ‘21세기자막단’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영화라도 자막 없이는 무용지물. 기본적인 줄거리 전달 외에도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언어, 다른 문화권의 사람이 볼 때는 전혀 생뚱맞은 영화로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자막이다. 그렇기에 자막단 멤버들은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또 보고, 관객의 수준에 딱 맞는 단어를 찾기 위해 며칠을 고민하며 1년에 350편이 넘는 영화 자막을 만든다. 이들이 본업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숨겨진 명작들을 발굴해 이웃과 나누는 일이다. 그냥 묻어두기에는 아까운 훌륭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과 위안이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매달 사무실 옥상에서, 혹은 전국 곳곳의 기관을 직접 찾아다니며 무료 상영회를 진행해왔다.

환경 다큐멘터리에 푹 빠진 갯벌의 아이들, 갑작스런 정전에도 꼼짝 없이 앉아 영화를 기다리는 네팔 사람들까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보며 오히려 활력을 얻게 되었다는 김빈 대표. 스크린 앞에 모여 앉아 울고 웃으며 따듯한 공감의 순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는 것, 그리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꿈이자 자막단을 운영하는 이유이다.

지난해까지 ‘21세기자막단’ 사무실 옥상에서 매달 2번 이상 루프탑 활력상영회를, 매달 1번씩은 ‘찾아가는 활력상영회’를 열어 국내는 물론 인도, 네팔 등 해외의 관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올해는 사회적기업을 위한 사회적 경제 관련 영화들을 자료화하여 상영하는 방안, 그리고 다문화 이주민들에게 고국의 언어로 자막을 제작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21stcentury.co.kr

김빈 대표 이야기

자막단을 만들기 전부터 팀원들과 공유해오던 생각이 사회적 활동을 하자는 거였어요. 정말 열심히 만든 영화, 의미 있고 재미있는 영화가 많은데 영화제에 가지 않으면 보기 어렵고 아예 이런 영화가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싶었죠. 그러다가 우연히 폐교될 위험에 처한 벌교 낙성초등학교 소식을 접했고 힘들어할 그 아이들을 위해 2012년 겨울, 제1회 ‘찾아가는 활력상영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문화 소외 계층이라는 것이 경제적인 개념을 넘어서 어르신들, 서울에서 먼 곳에 사는 사람들, 서울에 살더라도 부모가 너무 바빠서 문화생활을 함께할 수 없는 아이들 모두를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과 의미 있는 영화를 나누면서 문화 편차를 좁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감사하게도 저희의 취지에 공감해주시고 무료로 영화를 지원해주시는 영화감독님들도 많이 계세요. 어렵게 연락이 닿은 외국 감독님의 경우에는 오히려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하십니다. 그래서인지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싶고, 좋은 문화 콘텐츠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자막단을 하는 동안 이런 저희의 진심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게 저의 목표이자 다짐입니다.

‘여보, 앞으로 잘할게’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

여보, 그동안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

처음 만날 때부터 나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인(?) 습성 때문에 당황하던 당신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재미있구먼. 헐렁헐렁한 청바지에 꽉 끼는 빨간 티셔츠를 입고 빗질도 하지 않은 채 당신을 처음 만났지. 당신을 처음 만나자마자 차 한 잔을 꿀꺽 들이마시고는 다짜고짜 커피숍은 답답하니까 스릴 있는 좋은 장소가 있다며 나가자고 했지.

“야호!” 소리를 지르며 신나게 바이킹을 타면서 당신이 무서워할라치면 보호해준다는 미명하에 얼른 손도 잡았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골인을 하게 되었지. 참, 지금 생각해봐도 내가 너무 불도저같이 밀어붙였던 것 같아.

같이 살면서 참 마음고생을 많이 시켰지. “저, 아주머니, 104호 문 앞에 어떤 분이 누워서 자고 있는데 아저씨 같아요.” 경비 아저씨와 함께 축 늘어진 나를 집까지 끌고 오느라 동네 망신당하게 하질 않나.

최근에는 술 취한 내게 증거를 보여주어야 한다면서 음주 동영상 촬영하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어. 눈을 비비면서 투덜대고 있는 내게 “자, 이것 보여. 눈 있으면 똑바로 봐. 지금부터 당신의 어젯밤 만행을 공개하겠어”라며 내 술버릇을 고치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각서도 쓰게 하고 동영상 촬영까지 하는 당신에게 입이 열 개라도 정말 할 말이 없어.

지난번에는 궁금해서 잠깐 동영상을 보고 있노라니 내 자신이 얼마나 한심한지 부끄러워서 부리나케 동영상을 꺼버렸어. 잔뜩 술에 취해 속옷만 입은 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는 내 모습이 무슨 괴물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야.

“당신, 이리 앉아봐. 이 동영상 어떻게 할까? 당신이 제일 좋아하는 형님께 보내드릴까?”

당신의 협박에 속으로는 간이 콩알만 해졌지만 당당한 것처럼 연기하느라 너무 힘들었어. 그동안의 전과(?)가 너무 화려했기에 당신이 제시한 용돈 중지와 40일 새벽기도를 따를 수밖에 없었지. 40일 동안 고난의 행군을 하고 나니 그래도 당신에게 속죄했다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편했어.

여보, 구제 불능 남편을 만나 지금까지 고생만 한 당신에게 너무 미안하고, 이혼 안 하고 살아준 것 정말 고마워. 더구나 천사 같은 장인 장모님까지 만났으니 나는 복이 터진 놈 같아. 두 손자 녀석 키워주느라 고생하시고, 당뇨에 고혈압, 갑상선으로 편찮으신 장모님, 식도암으로 항암 치료를 받으시면서도 “우리 손주, 보고 싶다”며 손주 바보를 자처하신 장인어른까지 늘 든든한 우리의 후원자이시지.

여보, 남자가 나이 먹고 힘이 빠지면 믿을 게 아내밖에 없다는 말을 요즈음 실감하고 있어. 지난번 교통사고와 신종플루로 고생했을 때 어깨 허리 주물러주고 찜질해주는 등 온갖 지극정성을 다했던 당신에게 감동 먹었어. 남자가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의지하고 싶은 편안한 상대가 마누라밖에 없다는 것을 이번 병원 치료를 통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어.

젊었을 때 젊음 하나 믿고 방탕했던 나 때문에 마음고생했을 당신에게 ‘에구, 그때 좀 더 잘할 걸…’ 하는 후회도 정말 많이 들어. 사람이 죽을 때 “~껄, ~껄” 하며 후회한다는데 나도 예외는 아닐 성싶어. 역시 내 곁에는 당신밖에 없어. 앞으로는 프로포즈했던 날과 같은 설레는 마음으로 당신에게 잘할게. 한 번 기대해 봐.

– 2014년 3월 당신의 영원한 반쪽으로부터

조원표 50세. 부천시 원미구 역곡2동

‘사랑하는 나의 아내 최윤정에게’

남편 조원표님의 마음을 담은

글귀와 함께 아내분께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나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그 사람’을 소개해주세요.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도 좋습니다.

소개된 분께는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