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명품 가방 몇 개 사줬냐고?

온 가족이 티비를 보다 명품 가방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고1 아들 녀석이 대뜸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빠는 엄마 명품 가방 몇 개 사줬어?”

갑자기 훅~~ 들어오는 몇 개라는 말에 막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죽을래?” 아들 녀석이 기죽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합니다. “한 개는 사줬겠지?” 옆에 앉은 아내의 코웃음을 보며 아들 녀석에게 침착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형우야… 명품 가방이란 게 얼만지 아냐? 네가 생각하는 뭐 몇 십만 원짜리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건 아빠도 선물해줬어. 적어도 저런 티비에 나오는 명품 가방은 몇 백은 하는 거야 알았냐! 짜식아.”

아들 녀석의 등을 토닥이며 대화를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데 아들 녀석이 또 훅~~ 하고 들어옵니다. “나도 알아 몇 백 하는 거, 그래도 결혼 생활 17인가 18년인가 하면서 좀 모아서 사주지 그랬어요.”

아들 녀석이 제 눈을 똑바로 쳐다봅니다. 제 눈동자의 떨림을 보았는지 훅~~~ 들어와서 비틀기까지 합니다. “하루에 천 원씩만 모았어도 어……… 대충 한 5백은 됐잖아요.” 갑자기 목이 타서 음료수 잔을 드는데 컵 속에 음료수가 바르르 진동을 합니다.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휴대폰의 진동인지 알았는데 그냥 제 손의 떨림이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광고 하나만 하고 가겠습니다.~~

 

전국에 계신 여성분들에게 제 아들 녀석을 사윗감이나 남편감으로 적극 추천합니다. 이 사람은 결혼을 하면 하루에 천 원씩 모아서 나중에 아내에게 명품 가방을 선물할 아주 성실하고 로맨틱한 새낍니다. 안양 모 고등학교에 다니는 백형우라는 이름을 꼭 기억하셨다가 나중에 명품 가방 꼭 선물받으시기 바랍니다.

음료수 한 잔을 다 마시고도 목이 타서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옆에서 흐뭇한 미소만 짓고 있던 아내가 벌떡 일어나서 아들 녀석 손을 꼭 잡으며 말합 니다. “오메 내 새끼… 너 운동화 떨어졌다며? 내일 사러 가자. 뭐 특별히 봐둔 거 있어? 오메 내 새끼 예쁜 거… 엄마 속이 다 시원하다, 내 새끼 쪼~~옥.”

도저히 눈 뜨고는 못 볼 광경이라 그냥 몇 발자국 옆에 소파 끝에 걸터앉아 창밖만 바라봤습니다. 뭐 생각해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긴 들었습니다. 그때 아까부터 방과 거실을 오가며 학원 숙제를 하던 중학교 2학년 딸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송이야.” 딸아이 이름을 부르고 한숨을 한번 쉬었습니다. “송이야… 넌 꼭 너희 오빠 같은 인간이랑 결혼해라. 아빠 같은 인간하고 결혼하면 명품 가방 한번 못 들어본다. 너희 오빠같이 하루에 천 원씩 모을 수 있는 인간하고 꼭 결혼해라.” 저의 촉촉한 눈망울을 느꼈는지 딸아이가 제 눈을 한 번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아직도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는 아들 녀석에게 한마디를 합니다.

“오빠야… 오빠도 중학교 때부터 하루에 영어 단어 하나씩만 외웠어도 아빠 가슴 아프게 하는 영어 점수 안 받아오지.” 천사의 속삭임과 같은 딸아이의 목소리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딸아이는 다시 총총히 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저는 출근길에 딸아이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봄방학이라 침대에서 꿀잠에 빠져 있는 딸아이 귓가에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아빠가 베개 밑에 3만 원 넣어뒀다. 앞에 레드 미용실 모닝파마 2만 5천원이라고 써 있더라. 아침에 좀 빨리 일어나서 방학 동안에 하고 싶다던 파마 꼭 해라. 예쁜 내 새끼 쪽~~.”

백일성(44)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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