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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열을 식히고 갈증을 잡아주는 녹차말이밥

여름철 땀이 나고 갈증이 심할 때 오히려 따듯한 녹차를 마시면 몸의 열도 식고 갈증도 잡힙니다. 여름에 입맛 없을 때 차가운 보리차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하지만, 이렇게 종종 녹차에 밥을 말아 짭짤한 굴비와 장아찌를 얹어 먹기도 한답니다. 녹차말이밥은 일본의 ‘오차즈케’라는 요리에서 응용한 것인데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고추장아찌 외에도 더덕장아찌나 오이장아찌를 올려 먹어도 맛있어요.

이양지 자연요리연구가

재료 준비

밥 2공기, 녹차 3컵, 굴비 1마리, 고추장아찌 2개, 오이 1/4개, 깻잎 2장, 대파 흰 부분 조금, 김(김밥용) 조금

만들기

① 굴비는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힌 다음 살만 발라낸다. ② 고추장아찌는 얇게 송송 썰고 오이와 깻잎, 대파는 얇게 채를 썬다. 김은 가위로 가늘게 썬다. ③ 그릇에 밥을 담고 뜨거운 녹차를 붓고 굴비와 ②의 재료들을 올려 먹는다.

자료 제공 <우리 가족 면역력 높이는 103가지 레시피>(도서출판 소풍) 자연요리 전문가인 이양지씨가 모든 병을 예방해주는 영양소들은 우리가 늘 먹는 식재료에 들어 있다는 요리 철학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http://www.macrobiotics.co.kr

진짜 쉰다는 것은

마음 비우며 위암의 고통 이겨낸 대검찰청 수사관 송기현

2006년 나에게는 절실히 휴식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큰 사건 하나를 맡아 몇 개월간을 밤낮으로 수사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지쳐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고, 잠시의 휴식. 하지만 또다시 사건은 밀려왔다.

스물아홉, 처음으로 수사관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서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은 흥미로운 것이었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모두 자신들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수사한 결과, 진실을 밝혀냈고, 양쪽의 누구도 승복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수사관으로 일하며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 보는 것이라고는 인간의 흉한 모습들. 화가 나고 짜증 날 때도 많았고 이게 인간으로서 할 일인가,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이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나마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퇴근 후에도 미해결된 수사에 대한 압박은 이어졌다. 특히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있을 땐 더욱 심했다. 제대로 한번 쉴 새 없이 곧 또 다른 사건이 이어졌고,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 달…. 오직 범죄 수사라는 생활 속에 빠진 삶이었다.

그러던 작년 중순이었다. 몸의 상태가 이상했다. 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속이 아프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위암 말기였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이다 보니 위암으로 발전했던 거였다. 결국 나는 위의 7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야 했다. 어리석게도 이렇게 되기까지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이다.

수술을 하며 두려움보다는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 이제야말로 정말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내가 만약 마음수련을 몰랐더라면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통의 와중에 나에게 떠오른 것은, 10년 전 친구 소개로 경험했던 마음수련이었다. 마음을 비우며 경험했던 더없는 편안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함. 일에 쫓겨 오랫동안 잊고 살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의 마음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위암이라는 병도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생긴 병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 수 있었고, 내 마음을 비우면 이 병의 뿌리도 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병가를 내고 바로 마음수련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마음을 비워보자고 결심했다. 내 삶의 필름을 돌리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버렸다. 버리면서 보니 세상에 나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어떤 수사도 완벽하게 해내야 했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야 했고, 나보다 더 잘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 했다.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초라해 보이는 내 자신을 잘나 보이게 하고 싶어, 지키고 싶어 그토록 자존심을 부렸던 거였다. 열등감, 자존심, 자만심, 비교하는 마음, 일 걱정, 집안 걱정이 나의 숨구멍을 막아가고 있었다. 나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과 늘 비교하고, 움츠러들었던 거짓된 나의 삶, 꾸며진 나의 삶, 포장된 나의 삶….

내 스스로 갑옷을 입었고 무겁다고 생각하면서도 벗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잘 보여야 된다, 잘해야 된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놓았던 기준, 규범, 관념, 관습의 틀들을 놓으면 놓을수록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숨 쉬는 거구나, 그게 너무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났다.

어느 순간 내 병의 뿌리까지도 싹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픈 사람들은 다 아픈 이유가 있다. 속이 아픈 사람은 속이 아픈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고 산다. 내가 살아왔던 과정들이 모두 다 병을 만든 뿌리였다. 내가 집착으로 만들어놓은 병은 그 집착을 놓는 순간 후루룩 빠져나가버렸다.

수사관으로서 항상 진실을 찾아 헤맸건만 진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버려도 버려도 남아 있는 것, 영원히 변치 않는 것, 그것이 진리였다. 그것은 내 스스로 비빔밥처럼 만들어놓은 그 복잡한 마음을 비웠을 때라야 나타나는 생명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 가니 정말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냥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보는 사람마다 사랑스러워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미소가 나왔다. 나에게는 너무 큰 변화였다.

근접하기 힘든 사람, 그것이 수사관으로서 어느새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내가 잘 웃으니 사람들은 “바람이 쌩쌩 불더니, 정말 너무 많이 바뀌었다”며 놀라워했다. 갑옷을 벗어버린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좋아 보였다. 환골탈태한 듯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는 것도 느껴졌다. 참 놀라운 변화였다.

9개월간의 긴 휴식을 마치고 지난 5월 다시 복직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도 이제 더 이상 걱정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휴식이란 내 몸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 있는 거였다. 내 마음이 근본에 가 있을 때, 내가 쌓아온 마음에서 벗어나 그 본래의 마음에서라면 똑같은 생활 속에서도 저절로 쉬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지금은 머리를 쓰는 시대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시대다. 산을 가든 바다를 가든 복잡한 마음의 상태에서는 절대로 쉴 수 없다. 진짜 쉬는 것이 무엇인지 그 환희와 평화를 맛보고 싶다면 꼭 한번 마음을 비워보시라 권하고 싶다. 진정한 휴식이란 ‘수고하고 짐 진’ 나에게 해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송기현님은 현재 대검찰청 검찰방송팀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검찰 직원, 가족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실을 알리는 방송인데, 그 취지가 좋아 검찰청 직원들 대상으로 직원을 모집했을 때 지원하여 일하게 됐다고 한다.

쉼, 신이 주신 축복의 시간

글, 사진 김민수 50세. 들꽃교회 목사

그 어디에도 ‘달려가자!’라는 구호만 있지 ‘쉼’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봅시다.” 혹은 “봄이 오면 꽃님들과 눈맞춤합시다.” 이런 이야기는 없고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니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어갑시다” 하는 유의 이야기들만 넘쳐납니다. 그런 이야기에 벌써 숨이 찹니다.

우리는 ‘쉼’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인식되어 쉼의 시간조차도 남들이 먼저 자기를 앞질러 갈까 봐 불안해하면서 온전한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쉬지 않고 날아가는 새가 없고, 쉼 없이 날아다니는 나비가 없습니다. 쉼의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또 다른 하늘을 날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햇볕 따가운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맥문동, 그들도 오랜 쉼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어느 해의 여름날처럼 보랏빛 꽃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기들이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부쩍 자라듯이, 자연은 겨울이라는 쉼의 계절이 있어 더욱 풍성해집니다.

직장인들이 ‘강박증’처럼 자기 계발을 하고 있어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쉴 때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쉼의 시간에도 오로지 일 생각뿐인 사람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쉼을 통해서 떠밀려 살아가는 삶에서 나 스스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 혁명전야와도 같은 꿈틀거림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쉼’이란 부담이 없어야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고, 먼 길을 가더라도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나서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 쉼의 장소가 때로는 재래시장일 수도 있고, 도심 한복판일 수도 있습니다.

‘쉼’은 자연인인 자신과 하나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잃어버린 지금 여기에서의 삶, 쉼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쉬는 날만 되면 흙을 만지러 시골로 갑니다. 가끔은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 앉아 머리로만 살아갔으니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육체노동을 통해서 흘린 땀방울 속에 나를 위협하는 독소들이 하나 둘 땀방울과 함께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남들이 보기에 편안한 쉼보다는 자신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쉼입니다.

삶이란 여행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볼거리가 많고, 차편을 이용할 때보다는 도보로 여행할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천천히 도보로 여행하려고 작정을 하면 많은 짐을 가지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여행길이 가벼워진다는 것이지요. 삶이라는 여행길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느릿느릿 가면 다 빼앗길 것만 같고, 낙오될 것 같지만, 빨리빨리 가는 이들이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휴가 계획이 아닌 쉼의 계획을 세워 보십시오. 하루에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쉬는 시간을 계획표에 넣어 보십시오. 그러면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쉼의 시간,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입니다.

한 번쯤 쉬어가 보세요,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이희택 35세. 중도일보 기자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높은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 저렇다, 이런 소린 절대 듣지 말아라!”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입니다. 그 말들은 열등감과 욕심의 뿌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하게, 더욱 강하게, 나를 담금질하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약해 보이면 안 되기에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무엇이든지 잘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갔지만 남는 건 ‘지독한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쌓여온 열등감은 자만심과 오만함, 독선의 탈을 쓰고 나를 뒤덮기 시작했고, 친구들조차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허무하고 공허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웃지 못하지?’ 탁 트인 하늘, 멀리 보이는 산자락, 솔 향을 맑게 풍기는 소나무들….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즈음 누나가 마음수련을 이야기했습니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내 모습. ‘욕심’ 때문에 스스로 괴롭혀왔던 내 삶을 돌아봤습니다. 굳이 가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배우며, 철옹성 같은 나의 벽들도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몸과 마음이 쉴 수 있었던 시간, 처음으로 가졌던 그 휴식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습니다.

시무룩하거나, 굳어 있거나, 혹은 비판하고 있던 내가, ‘분위기 메이커’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발굴해야 하고, 마감시간에 맞춰야 하는 기자생활.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주일간의 마음 비우기는, 진짜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너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 는 동료들. 결국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얻음과 높음’이 아니라 ‘버림과 낮음’이었던 겁니다. 자신을 버릴 줄 알고, 낮은 곳에 설 줄 알 때, 세상은 저절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가파른 인생길에서 한 번쯤 쉬어가기 그리고 비워보기, 그 진정한 휴식은 우리 삶을 새롭게 바꿔줍니다.

청년 소셜 벤처 여행사 ‘공감만세’ 고두환 대표

렌터카보다는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 업체를 이용한다, 현지 음식을 먹으며 여행 경비의 대부분을 그 지역에 돌려준다.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

일곱 명의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공감만세(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가 진행하는 공정한 여행 프로그램의 기본이다.

공감만세 대표인 고두환(28)씨가 ‘공정여행’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제대 후였다. 태국과 필리핀에서 해외 통신원, 시민단체 활동 등의 경험을 쌓는 동안 관광에 경제의 큰 부분을 의지하는 나라들의 폐해를 직접 목격하게 된 것. 또 관광객들은 대자본이 만들어낸 시설 속에서 즐기다 돌아가니, 지역 경제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공정여행을 기획하고 꾸리는 ‘공감만세’를 시작했다. 공정여행의 첫 장소로 필리핀 이푸가오주의 작은 마을 바타드를 선택했다. 그곳에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이 있었고, 그 절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곳 역시 개발과 관광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했다. 고두환씨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다.

“‘관광객이 여러분의 논을 밟아 무너뜨릴 때가 있으니, 그것만큼은 복원하고 가겠다’ ‘외부인의 산장 대신 당신들의 집에서 지내고 숙박비를 마을에 기부하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죠. 처음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사기꾼’인 줄 알았다는 분들도 있었다더라고요.”

2010년 1월, 마침내 공정여행의 첫 발을 내딛었다. ‘젊음, 열정으로 복원하는 세계문화유산 대학생 공정여행 캠프’라는 주제 아래 7박 8일간 16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이푸가오족에게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듣고, 발루이(baluy)라 불리는 전통 가옥에서 머물며, 이푸가오족의 먹을거리로 식사를 했다. 경치를 보고 즐기느라 파괴된 계단식 논의 복원 작업에도 참가하고, 도와주고 안내해준 주민들과 바타드식 전통 축제도 벌였다.

그렇게 모든 여행 일정이 끝났을 때였다. 마을의 토박이 한 분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네가 처음 이곳에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긴가민가했는데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공정여행이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또다시 만날 수 있을 테지, 친구?”

이후 그해 필리핀은 물론, 서울 북촌과 충남 공주 등 국내까지 모두 26차례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한 한국 사람 10명이 떠날 때 현지인 1명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눔여행’도 기획했다. 빈민촌 지역을 배회하던 필리핀 소녀 조나는 나눔여행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여행을 다녀온 후, 빈민촌 공부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주민들의 추천으로 장학생이 되어 대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여행이 그녀에게 꿈을 심어준 것이다. 이렇게 여행 수익금의 일부로 정서 치유와 더불어 여행의 기회를 준 그 지역 사람이 2010년 한 해만 26명에 이른다.

‘공감만세’를 이끌어오는 일년 반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고두환씨. 그는 그렇게 계속해서 공정여행을 향해 ‘go~’ 할 계획이다.

취재 최창원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미향, 고두환, 이영민, 이선희, 이성용, 조수희, 이후성씨.

‘공감만세’는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2010 고용노동부 소셜벤처 경연대회 우수상,

2010 한국청년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http://cafe.naver.com/riceterrace

-?理の者が?理の生を生きる -?で永遠に生きるのか、心で永遠に生きるのか


?理の者が?理の生を生きる

生とは、存在していることであり

生とは、自らの役割を果たすことにある

人の役割とは、?理の人となり

本?の世界で?と光になることである

本?の世界のために生きる者が役割を全うする者だ

だから自己中心的な生活を

?理を中心とする生活に?えるべきなのだ

その?に福を積み

その?に?を蓄えるべきなのだ

そうした生き方のみが「存在している」ということであり

そうした生き方のみが?理の生だ

人を生かすことが福の中の福である

多くの人が、あらゆる人が生きられるようになることほど素晴らしいことはないではないか

人間の人生と人間が抱えている一切が?像であるのを悟った者だけがそのように生きるだろう

?理となった者はそのように生きるだろう

?で永遠に生きるのか

心で永遠に生きるのか

この世に存在するあらゆる物質の中で、永遠なものは一つもない。現に今この瞬間にも宇宙では星が消滅したり、また誕生したりしている。最も長い?命を持つとされる星でも、その?命は50億年から140億年だという。この地球も星であり、月も太陽も同じである。

つまり、いつかは無くなるものである。

人が永遠に生きるのを確認した者はいるのだろうか。動物が永遠に生きるのを確認した者はいるのか。万象も山川草木もみな移ろい、いつかは無くなることが?理ではないか。

この世に生まれた万象万物がその姿形のままで永遠に生きる方法。それは、?理である大宇宙の心と?に生まれ?わることである。そうしてのみ、その?と魂が、宇宙本?の存在の?で永遠に生きられるようになる。この?が無くなることは?理であり、永遠に生きられるのは?理となった宇宙の心と?だけなのだ。

非物質的??である創造主の?と魂に生まれ?わった者のみが永遠に生きられるだろう。

非物質的??である本?の?で本?とひとつになった者のみが?理だ。だから永遠に生きられることだろう。

本?の?魂のみが永遠に生きられるのである。

文と? ウ?ミョン

ウミョン(禹明) 韓?にて生まれる。長年にわたって生と死、人生について深い考察を重ね、1996年、?理に?して心の目を開く。同年、「マウンスリョン」を創始。現在はアメリカを中心に世界各?でセミナ?、講演等を精力的に行なっている。著書に「この世界に生きずに、永遠なる幸福の?へ行って生きよう」「本物になれる所が本物だ」「生きて天の人になる方法」他多?。

-도전하는 삶이 아름답다, 작지만 위대했던 우리들의 도전 -실패가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울렁증 극복하고 사람들 앞에서 사회 보기

지난해 연말 동호회 모임에서 송년회 사회를 부탁해왔다. 남들 앞에 서는 것 자체가 크나큰 벌처럼 느껴졌던 내겐 참으로 난감한 제안이었다. 회사에 입사해서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자리에서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손은 땀으로 범벅되고 심장 소리가 온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해야 했다. ‘한번 나를 내던지고 도전해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하지만 살면서 하기 싫다고 무섭다고 피하다가는 나 자신을 넘어설 수 없다는 걸 수없이 느껴왔기에 큰 결심을 하고 사회를 맡게 되었다. 처음엔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고 얼굴이 굳어갔지만, 작은 말 한마디에도 따뜻한 박수와 함성으로 큰 힘을 실어주시는 동호회 분들 덕분에 나도 몰랐던 잠재된 끼가 나오기 시작했다. 송년회가 끝나고 ‘혹시 전에도 사회를 본 경험이 있느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고, 무척이나 기뻤다. 그때의 경험은 마치 누군가가 날개를 달아줘서 강 하나를  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누군가가 새로운 것에 도전할 때면 격려해주려고 한다. 그 격려와 위로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줄을 알기에.

이기용 41세. 회사원. 인천시 부평구 삼산동

‘슈퍼스타K2’ 탈락의 상처 극복하고 재도전 결심하다

대학 동기가 같이 하자고 해서 얼떨결에 참여하게 된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2. 한 달간의 힘든 촬영이었지만 꿈같은 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열심히 밤을 새가며 음악하면서 한 단계씩 오를 때마다 뿌듯했다. 7~8살 어린 꼬마들의 도전도 자극이 되었고, 노래에 대해 객관적으로 심사 위원분들의 평가를 받으면서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도 했다. 그렇게 24인 안에 들었지만 거기까지였다. 생각보다 탈락의 아쉬움은 컸다. 친구들이 “얼굴이 많이 안 나왔다”고 할 땐 많이 속상했다. 마음수련을 시작했다. 탈락으로 인해 힘들었던 마음, 주변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 등 내 안에 남은 ‘마음사진’들을 버리자 점점 홀가분해졌다. 탈락이 곧 실패라고 생각한 나머지 위축이 많이 됐었는데 다시 도전하고 싶은 자신감도 생겨났다. 처음엔 얼떨결에 참여해서 많이 긴장했지만, 이번엔 진짜 제대로 준비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 후회 없이!

선지혜 24세. 대학생. 동아방송예술대학 영상음악과

고소공포증 이겨내고 암벽등반에 도전한 남편

남편과 함께 쉬는 날이면 산을 찾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등산 교실에 들어와서 가장 기본적인 등산 상식과 정보들을 배우면서 등산도 학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새롭게 암벽등반을 할 때는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높은 바위 벽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누르고 한 발 한 발 올라서 성공했을 때의 그 느낌. 특히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남편에겐 한마디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으리라. 산행 도중에 높은 직벽 계단이나 가파른 바위를 만나면 오금이 저려서 제대로 건너질 못했던 남편이었다. 그랬던 그가 바위 벽을 손과 발을 의지해 올라갔고 죽느냐 사느냐의 심각한 자기 갈등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해냈을 때, 그는 어안이 벙벙해했다. 한 번 해냈다는 성취감이 그에게 두둑한 배짱을 선물했나 보다. 자꾸만 바위 벽을 타고 오르내렸다. 두려움과 불안을 누르고 용기 있게 해냈다는 자기 극복, 이것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한계를 지레 긋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마음을 준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도전은 젊음의 특권만이 아니다. 우리 인생길, 그 자체가 도전이고 모험에 찬 길이 아닌가.

이명화  48세. 경남 양산시 물금읍

실 패 가   두 려 워   도 전 하 지   못 하 는   이 들 에 게

스탠퍼드대학 심리학 교수인 캐럴 드웩의 오랜 관심사는 사람들이 실패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였다. 그녀는 그 연구의 일환으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10세 전후의 학생들에게 쉬운 퍼즐을 풀게 한 다음 매우 어려운 퍼즐을 제시하여 그 반응과 태도를 지켜본 것이다.

그녀는 실패는 똑똑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실험 반응을 보고서 큰 충격을 받는다.

일부 아이들은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전혀 움츠러들거나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어려운 문제 앞에서 오히려 의자를 바짝 잡아당기고 입맛을 다시며 “전 도전을 좋아해요!”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그리고 답을 찾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낙담하지 않았다. 실패했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실패라는 인식조차 하지 않고 다만 자신들이 배우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패마저도 배움으로 받아들이는 이 아이들은 캐럴 드웩의 롤 모델이 되었다.

어린아이일수록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라는 생각 자체가 없다. 그렇기에 잘하든 못하든 스스로 해보려고 한다. 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따지고 시작하지 않는다. 안 되면 마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시도해서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그리고 해내고 만다. 뒤집고, 앉고, 걷고, 뛰고, 신발을 신고, 자전거를 타고, 단추를 잠그는 것 등 아이들은 결국 하나씩 하나씩 터득해 나간다. 그것이 바로 성장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실패와 성공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없이 그 모든 것이 배움의 연속이고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실패마저도 사랑했던 아이들은 점점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간다. 집과 학교와 사회에서 ‘틀려도 괜찮아!’ 대신에 ‘잘못하면 큰일 나!’와 ‘틀리면 안 돼!’를 되풀이해서 배우고 또 배우기 때문이다. 게다가 승자독식으로 이어지는 과잉 경쟁 속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계속 커져만 간다. 그러한 두려움은 우리의 삶을 주저앉히고 현재의 삶에 안주하게 만든다. 있는 것을 지키려 할 뿐 도전은 피하게 만든다.

도전 없이 안주하는 삶! 그것이 바로 삶이 성장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우주비행사를 뽑을 때에는 계속 성공만을 한 사람들은 뽑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실패나 시련을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한 사람들을 뽑는다고 한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런 실패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을 신뢰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실패를 하고 후회를 할 수 있기에 우리는 개선을 이루어내고 성공을 만들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마음이다. 그것이 바로 성장하는 사람들의 특성이다.

출처 <그로잉(내 안의 성장 본능을 깨워라)>(문요한 저 | 웅진지식하우스)

정리 편집부

서울 양천구 김구이 봉사단 ‘김 굽는 아줌마들’

김종순, 박종득, 이춘희, 이청미씨 (왼쪽부터)

취재 김혜진 사진 홍성훈

“형편이 어려운 어르신들에게 반찬 배달을 한 적이 있었어요. 제일 편하게 드실 수 있는 반찬이 뭘까 생각하다가 복지사 선생님한테 제안한 게 김이었어요.” 김구이 봉사단의 맏언니, 이춘희(64)씨는 매주 금요일이면 서울 양천구 신정동에 위치한 자원봉사센터로 향한다. 그렇게 봉사자들이 속속 모이면 이내 고소한 김 굽는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고, 한쪽에선 김을 굽고, 한쪽에선 포장을 하느라 분주해진다.

다섯 아줌마로 구성된 ‘김구이 봉사단’은 매주 금요일 오후 1시부터 3시간 동안 김을 굽는다. 이렇게 구운 1,000장의 김은 해누리 푸드마켓을 통해 양천구의 기초생활수급권자 4,000가구에 전달된다. 해누리 푸드마켓은 서울시와 양천구가 운영하는 곳으로, 한 달에 한 번 기초생활수급권자들에게 4~5가지의 식료품을 무상으로 지급하는데, 김구이 반찬은 쌀, 라면과 함께 인기 품목으로 꼽힌다고 한다.

3년째 김구이 봉사단을 하고 있는 맏언니 이춘희씨는 “50대에 들어서며 자식들을 다 키우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생각한 것이 봉사”였다고 말한다. 그 후 7여 년간 어르신들을 위한 이동 목욕, 반찬 배달 등을 하면서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웠다는 그녀는 자원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김종순(58)씨와 김구이 봉사단을 처음 만들었다.

“김을 구울 때면 혼자 지내시는 어르신들, 결손 가정 어린이들이 떠올라서, 다들 맛있게 드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한 장 한 장 굽죠.”

김을 구워야 하는데 비라도 오는 날이면 김이 눅눅해질까 봐 난로를 피면서 굽고, 몸이 아파서 못 나오면 대체할 봉사자를 찾는다. 박종득(59)씨의 경우도 2년 전 아파서 못 나오게 된 분을 대신해서 왔다가 김구이 봉사단에 합류했다.

“봉사도 하며 살아야지 하면서도 엄두가 안 나잖아요. 문턱을 넘기가 참 힘들었는데 아픈 분 대신 왔다가 계속하게 됐어요. 봉사는 돈도 시간도 여유가 있는 사람만 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만 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이웃과 함께하는 기쁨은 삶의 변화로 이어졌다. 박종득씨는 수요일엔 봉사단에서 만난 김종순씨와 함께 장애인 복지관에서 어르신들 안마도 해드리는 등 점점 봉사가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갔다 한다. 그런 데엔 김구이 봉사단의 가족 같은 분위기도 한몫했다.

금요일 오전 요양보호사 일을 마치고, 바로 출근하는 그녀를 위해 도시락을 챙겨주는 언니들. 서로 알뜰살뜰 챙겨주는 반가운 얼굴들을 자주 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는 그이다.

김종순씨 역시 봉사를 하면서 갱년기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한다.

“봉사한 지 벌써 11년째예요. 항상 나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오다가 주변에 어렵게 살아가시는 분들을 뵈면서 감사하는 마음도 배우고 나를 돌아보게도 되었지요.”

거창하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면서 삶에 자신감도 얻었다고 한다.

김을 구우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 가정의 대소사나 남편, 자식, 시댁 이야기 등 속에 묻어둔 것들을 털어놓으니 마음도 가벼워지고, 좋은 일을 한다는 기쁨도 있으니 ‘일석이조’ 아니겠냐는 김구이 봉사단 아주머니들.

푸드마켓의 소장인 이청미(53)씨가 주부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다.

“집 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나와서 움직이면 나이가 거꾸로 가는 기분이 들어요. 나누고 살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건강해져요.”

-하늘 난 자 하늘 살고 땅에 난 자 땅에 산다-진리라야 진리를 되게 할 수 있다

하늘 난 자 하늘 살고

땅에 난 자 땅에 산다

하늘이란

인간이 볼 때에는

구름이 있고 또 텅 비어 있고

또 파랗다고도 보고

보는 것이 여러 가지나

참 하늘은 살아계시는 성령과 성혼이신

대영혼 자체이시다

일체가 아무것도 없는 자리가 성령의 자리고

없는 가운데 일신이 존재하는 것이

성혼의 자리라

우리말에 신령스럽다는 말은

이 존재가 살아계시어서

천지 만물만상을 창조하시니

살아계시기에 신령스러운 것이다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

세상을 복사한 자기가 만든 땅을 그 마음에 가지고

그 마음속에 사니

땅에 난 자는 땅에 사는 것이라

하늘 난 자란

진리이신 성 영혼으로 거듭난 자는

하늘에 난 자라

하늘 일하며 하늘 산다는 뜻이라

허상이고 가짜인 자기가 일체 없는 자라

이 나라에 날 수가 있고

이 나라의 주인이 사람으로 왔을 때만이

사람이 하늘 날 수가 있고

또 사람이 참이 될 수가 있고

또 그 나라 나서 살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글, 그림 우명

진리라야 진리를 되게 할 수 있다

세상에서 참의 원래 존재는 천지 만물만상이 있기 이전의 자리인 빈 하늘이 본래의 참이고 또 참에서 나온 천지 만물만상도 참이다.

본래 참의 존재는 물질이 아닌 영과 혼이다. 이 비물질적 실체는 전지전능하여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다.

 

각 종교에서는 재림 예수님이 오신다, 또 미륵불이 온다고 했다.

언젠가는 이 참의 존재가 사람으로 왔을 때 인간도 참이 될 수가 있을 것이다.

콩이 있어야 콩이 나오고 쌀이 있어야 쌀이 나오듯이 참이 있어야 참이 나올 것이다.

진리인 참의 존재가 세상에 왔을 때 인간은 참이 될 수가 있다.

사람이 허가 무엇인지 참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것은 허 속에서 살고 있기에 자기 의식이 죽어 있어 모른다.

참의 존재가 있어야 참을 만들 수가 있고 허인 사람이 참이 될 수가 있다.

 

우리 마음수련회는 허를 참으로 만드는 곳이다.

가짜인 자기를 다 버리고 진짜인 우주의 몸 마음으로 다시 나는 것이다.

구원도 허가 참 되는 것이고 다시 나고 거듭나는 것도 이 참의 세상 사람만이 되게 할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참의 세상 사람만이 참세상으로 데리고 갈 것이다. 이유는 인간세상에는 참이 없어서이다.

우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외에 영역판 <World Beyond Worl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등 다수가 있습니다.

버리고 비우는 웰빙라이프의 지혜 (10)

버리고 비우는 웰빙라이프의 지혜 (10)

전도유망한 해양지질학자가 있었습니다.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세계적인 학자들과 연구를 하던 그는 과학자이면서 탐험가였지요.

그가 한창 일할 나이인 45세 되던 해였습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과 공동으로 야외 지질 조사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중

머나먼 미국 땅에서 차량이 전복되는 사고를 당하고 맙니다.

사고 3일 후 의식은 회복했지만 눈만 껌뻑일 수 있을 뿐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3주가 지나면서 겨우 입을 떼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만

몸은 꼼짝할 수 없는 전신 마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비관하거나 우울해하며 현실을 부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그는

놀랍게도 6개월 만에 일상생활에 복귀합니다.

전동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학교로 향했고,

노트북과 연결된 마우스로 프로젝터 스크린을 입으로 작동하며 강의와 연구를 하였습니다.

마우스를 빨면 왼쪽 클릭, 불면 오른쪽 클릭이 되는 식입니다.

“이 정도만 다쳐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그는 스스로 ‘행운아’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일밖에 모르던 내가 사고 후에 오히려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고 덕분에 나는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고 집착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사고 전보다 더 주목받는 학자가 됩니다.

“자신에게 닥친 사고를 불운의 시작이라고 보지 말고, 몰랐던 다른 세계를 볼 수 있는

새로운 인생 방향의 전환이라 생각”하라며 장애인 학생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어 주는 사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이상묵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성공이란 어려움이나 실패가 없는 상태가 아니라

역경과 시련을 극복해낸 상태를 말한다 합니다.

행복한 일보다는 어려운 일이 많다고 느껴지는 우리의 삶,

자잘한 일상 속 수많은 스트레스와의 싸움….

그 모든 것이 나를 단련시키고 키워주고 있음을 인정하고 먼저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성공한 사람입니다.

방사능 물질과 환경 공해

우리 몸 위협하는 독소 빼내기(1)

정리 문진정

최근 15년간, 알레르기 질환을 앓는 청소년의 숫자가 비염의 경우 두 배, 아토피 피부염은 세 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향은 최근 20~30년간의 생활 속 유해 물질 증가를 주요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 산업화 이후 화석 연료의 과다한 사용으로 대기는 심각하게 오염되었고 구제역 대란으로 전국의 토양과 지하수까지 안심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지난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우리나라의 빗물 속에서도 방사능 물질이 검출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독성 물질들이 공기, 물과 토양 속에서, 그리고 집까지 스며들어 우리의 몸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법은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독을 최대한 차단하는 것, 그리고 들어온 독소를 빨리 밖으로 배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원자력 발전과 화학 연료 사용을 점차 줄여, 혹시나 일어날지도 모를 재해의 불씨를 미리 없애는 것이다.

현재의 재앙이 인간의 욕심과 이기심이 자초한 인재임을 깨닫고, ‘어쩔 수 없다’며 행해왔던 생활 방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사고방식은 훗날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자손들에게 더 큰 불행으로 진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포를 파괴하는 방사능 물질

방사능 물질은 원자핵이 다른 원자핵으로 바뀌면서 방출되는데, 세슘, 방사성 요오드, 스트론튬 등이 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피해가 장기적이라는 것이다. 한번 우리 몸에 들어오면 그 양에 따라 백혈병이나 암으로 사망하거나, DNA를 공격해 수년 혹은 수십 년이 경과한 뒤 갑자기 다양한 괴사 세포가 생겨나기도 한다.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원료인 요오드가 몸에 부족할 경우 방사성 요오드를 흡수해 갑상선 암을 유발하고 칼륨이 부족한 경우는 세슘을 칼륨처럼 인식하여 전신 세포에 다양한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방사능 물질이 사라지는 데는 수십 년, 수백 년의 시간이 걸리므로 피해는 장기적이고 현재 진행형이며 범위와 그 심각성도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 많다.

방사능 물질 피해 줄이려면

① 원전 사고 이전에 생산된 천일염, 다시마, 김 등의 해조류, 미네랄 생수와 생야채즙을 통해 천연 미네랄을 다량 섭취한다. 몸속에 필수 미네랄이 충분하면 불필요한 미네랄(세슘, 방사성 요오드 등)이 체내로 들어와도 결합할 상대가 없기 때문에 배출하기도 쉽다. ② 바다를 통해 방사능 물질이 농축될 수 있으므로 한동안 해산물류는 피하는 게 좋다. ③ 빗물에는 대기 중에 흩어져 있던 방사능 물질이 섞이므로, 비가 올 때는 우산과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비닐 소재의 옷을 입는다. ④ 황태, 죽염, 유황 오리 등은 특히 방사능을 해독하는 데 뛰어난 음식이므로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집과 직장, 유해 물질의 온상

하루 중 대부분을 보내는 집과 직장의 인테리어 마감재, 가구, 집기, 가전제품, 카펫, 환기 시스템 등은 미세 먼지와 중금속, 유해가스, 곰팡이, 박테리아 등 각종 오염 물질을 방출해 천식, 피부염 등 알레르기성 질환을 유발한다. 따라서 직장인과 전업주부의 경우에 만성 두통, 무기력증, 불임 등의 피해가 심각하다.

실내 유해 물질 빼내려면

① 새집의 가장 큰 문제는 목재와 합판의 포름알데히드 성분. 기본적으로 유해 물질이 없는 자연 친화적인 소재를 쓰는 것이 가장 좋다. 또 새집에 입주하기 전이나 인테리어 공사를 한 경우에는 입주 전 7일간, 하루 8시간 이상 보일러 온도를 30도 이상으로 높여서 화학 물질을 방출시켜야 한다.

② 새집에 입주 후 24시간 동안 환기를 하지 않으면 화학 물질의 농도가 5배 이상 높아진다. 날씨가 더울 경우 농도는 10배 이상 높아지고 최소 5~6년간은 미량의 유해 물질이 계속 나오므로 무엇보다 환기를 자주하는 것이 중요하다.

③ 습도가 높으면 곰팡이, 진드기가 늘어나고 습도가 낮으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활동이 늘어나므로 40~60% 정도의 적정 습도를 유지한다.

참고 도서 <방사능과 암을 극복하는 면역요법> 백승헌 / 다문

<환경의 역습> 박정훈 / 김영사

남자에 대한 적대감을 버리다

이서현 43세.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

나에게 남자란 경쟁자였다. 학창 시절부터 남자에겐 꼭 이겨야 했고 직장에서도 남자 동료의 제안은 듣는 둥 마는 둥했다. 남자는 쓸데가 없는 존재라 믿고 살았다.

그러다 2년 전, 우연히 방송에서 탤런트 이수나씨가 마음수련 후 남편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졌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마음수련을 하게 됐다.

수련의 첫 단계는 내 마음에 사진처럼 찍혀 있는 기억을 버리는 과정이었다. 어릴 적의 아침 식사 풍경이 떠올랐다. 밥상 위에는 귀한 조기 한 마리가 올라왔고 내가 생선을 집는 순간 “어디서 계집애가 젓가락을 먼저 대냐!”는 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당시 부모님은 마흔이 넘어 나를 낳으셨고, 나는 2남 1녀의 막내였지만 남존여비 사상은 그만큼 강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먹는 걸로 차별을 하다니….’ 나는 크게 상처를 받았고 한동안 생선을 먹지 않았다. 그 후로 그 경험에 비추어 모든 것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오빠의 행동도 부모님의 사랑도 남녀 차별로 왜곡이 되었고 내가 원하는 게 안 되면 오빠들 때문에 혜택을 받지 못해 그렇다며 부모님을 탓했다. ‘마음사진’들을 걷어내자 점점 진짜 내 모습이 드러났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선한 사람으로 살아온 것 같았지만 마음 밑바닥에는 사랑받지 못했다는 피해의식이 있었고 특히 남자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고 적대시한 거였다.

그런 마음들을 버리고 보니 남자다, 여자다가 없이 모두가 세상의 일부이자 귀한 존재였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늦둥이 막내딸을 애지중지 아끼셨던 부모님의 사랑도 알게 됐다. 이제 비로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다.

탈모 증세를 고치다

류득배 41세. 경남 밀양시 가곡동

30대 후반, 직장을 그만두고 가구 사업을 시작했다. 자금도 넉넉지 않고 전문 지식도 부족한 상태였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머릿속에 뭔가 꽉 들어찬 것처럼 묵직하고 두통이 심해졌다. 하지만 건강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정신없이 6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다. 문득 거울을 보는데, ‘앗! 갑자기 왜 이렇게 되었지?!’ 이마부터 정수리까지 머리가 빠져 훤~했다.

모발 관리를 받아볼까 생각했지만 오랜 기간 시술받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사업은 계속 꼬여만 가고 일년 만에 돈도 머리숱도 점점 없어졌다.

2007년 초, 결국 사업을 접고 마음수련을 해보기로 했다. 수련을 하며 가만히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사업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머리로만 바쁘고 생각만 많았던 날들이었다. 혼자만의 완벽함의 기준을 만들고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었다. 머릿속을 메우고 있던 계획, 일이 생기기도 전에 걱정부터 하는 조급함, 완벽주의, 실수는 용납 못 하는 꼼꼼하고 소심한 성격. 그렇게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 내 모습들을 버려갔다.

2007년 가을, 오랜만에 아는 형님을 만났을 때였다. “야~ 머리가 엄청 났구나! 십 년은 젊어 보인다~”

그러고 보니 탈모 관리 회사에서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부분까지 까맣게 머리가 나 있었다. 뾰족한 수가 없어 포기하고 있었던 탈모도 스트레스를 버리니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것이다. 두피의 열도 내리고 만성 두통도 사라졌다. 이제는 동창 모임에서도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마음부터 아름답게 하는 마음수련이 나의 동안 비결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