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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담 풍 선생

교육도 생물이다.
못난 스승이 ‘바담 풍’이라 가르쳐도, 슬기로운 제자들이 ‘바람 풍’이라고 알아서 깨치는 일도 있다.
이른바 청출어람. 선생치고는 좀 어리버리한 내겐 가끔 있는 일이다.

사춘기 초입 열세 살 인생들에게 젊은 교생 선생님은 그야말로 로망이다. 실습 기간 불과 2주일 만에 아이들은 제가 가진 도토리를 몽땅 드릴 만큼 가까워져, 마침내 헤어지는 날 교실 풍경은 가랑잎 분교 졸업식장을 방불케 한다.

몇 해 전, 교생 실습 마지막 날도 그랬다. 젊은 교생 선생님들이 손을 흔들며 골마루 끝으로 사라지자, 아이들은 정든 선생님들이 건네준 편지를 꺼내 읽으며 또다시 흑흑거렸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모든 아이들이 교생 선생님의 편지에 감동해서 우는데, 딱 한 아이만 편지를 받지 못해서 울고 있었다. 착한 그 아이는 야속한 교생 선생님들이 떠날 때까지 내색 못 하고 있다가 뒤늦게 눈물을 흘리다 짝꿍한테 들켰다.

총명하고 마음씨 고운 교생 선생님들이 그럴 리가 없다. 그래서 찬찬히 그 원인을 찾아보니…. 아! 내 불찰이었다. 애초에 교생 한 명당 여섯 명씩 아이들을 배정하여 아동 관찰과 생활 지도를 부탁했는데, 내가 작성한 배정 명단에 그 착한 아이 이름이 없었던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일단 아이한테 다가가 온전히 내 실수였음을 고백하고 사과했다. 그리고 문화상품권 한 장을 건네며 궁색하게 위로하였다. 다행히 아이도 칠칠치 못한 담임을 용서하는 듯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수업을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다 떠나간 후, 우연히 교사용 책상 한쪽에 네모반듯하게 접어놓은 종이 한 장을 보았다. 무언가 싶어 펼쳐보니 그 안에는 아까 그 문화상품권과 아이가 쓴 짧은 편지가 있었다.

아찔했다.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열세 살 아이의 숨겨진 마음고생이 자괴감으로 몰려왔다. 못난 담임이 텅 빈 교실에서 혼자 그렇게 심란하게 한숨 쉬고 있던 바로 그 시간, 우리 학교 운동장에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 모여 축구를 하던 우리 반 아이 몇 명이, 때마침 강당에서 교육 실습 퇴교식 일정을 마치고 나가던 교생 선생님 한 명을 발견하였다. 아이들은 미주알고주알 그 일을 교생 선생님에게 말하였고, 교생 선생님은 재빨리 휴대폰 문자를 날렸다. 그리고 교문을 나서서 뿔뿔이 흩어졌던 다섯 명의 교생 선생님들이 순식간에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다섯 명의 예비 교사들은 운동장 한쪽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 모여 한 아이를 위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아, 누가 교사를 꿈꾸지 않으랴.

다음 날 아침 조회 시간, 무려 다섯 통의 편지가 착한 그 아이한테 전해졌다. 젊은 선생님들의 편지 봉투와 편지지는 왜 그렇게 세련되고 예쁜지. 편지를 받아들고 쑥스러운 듯 웃음 짓는 착한 아이의 표정이 반짝거렸다. 나는 어제 그 대견스러운 문화상품권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쉽사리 남을 원망하지 않으며 어울리지 않는 선물을 기꺼이 사양할 줄 아는 멋진 그 친구를 위해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최형식 일러스트 유기훈

우리들의 어느 여름

사진, 글 김선규

새1 : “덥다 더워, 물 좀 마셔야지.”
새2 : “나두, 나두.”
새3 : “야, 새치기는 안 돼. 줄 서.”
새2 : “칫! 난 그럼 샤워부터 할래.”

아마도 이런 대화가… ^^
서울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2008년 7월
뜨거운 어느 여름, 새들의 대화

참새들이 비를 피하고 있습니다

평소엔 조그만 먹을 것 가지고도 아등바등 싸우던 녀석들이 온몸이 젖어들자 서로에게 기대며 추위를 달래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비 내리는 날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가 그리워지는 건 비단 참새만은 아니겠지요.

서울숲. 2006년 7월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공원에는 뭐하러 가냐며 시큰둥하던 아들 녀석이 분수대에서 뿜어 나오는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비로소 얼굴이 환해집니다. 어느덧 아빠 키만큼 훌쩍 커버린 아들을 덥석 안는 아빠의 모습이 물줄기보다 더욱 싱그럽고 벅차 보입니다. 저 수많은 물방울들처럼 행복은 늘 그렇게 우리 옆에 있나 봅니다.

서울숲. 2006년 8월

더위를 피하는 방법

법정 스님은 더위를 피하는 방법은 “내가 더위가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더우니까 곡식이 익고 여름이 있으니 가을이 있는 법. 가을만 돼도 쓸모가 없어지는 선풍기, 에어컨은 한때의 더위만을 피하려는 인간의 집착에서 나온 것이라고도 하셨지요.

전북 순창 강천산 계곡. 2006년 8월

김연아의 키스&크라이

곽지영 문화칼럼니스트, 사진 제공 SBS

‘키스&크라이’ 첫 방송 때, 요즘 ‘대세’인 가수 아이유는 빙판 위에서 자신의 히트곡을 열창했는데요, 이에 대한 심사 평은 ‘노래는 잘 들었다’였습니다. 가수가 아닌 스케이터로서 은반 위에 섰지만 스케이팅으로는 심사할 것이 없었지요. 이는 ‘키스&크라이’의 첫인상을 대변해주는 대목이었습니다. 피겨 영웅 김연아가 진행한다기에 시작 전부터 큰 화제를 모았지만, 실제로 빙판 위에서 선보인 것은 부족해 보였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아이스쇼나 올림픽 장면만 보다가 이들의 초보적인 모습은 낯설기까지 했습니다. 바쁜 연예인들이 굳이 이런 걸 해야 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지요.

하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느끼게 됩니다. 13살 진지희부터 50대의 박준금까지, 그리고 상당한 재능을 갖춘 유노윤호에서부터 막 스케이트를 배운 아이유나 김병만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출연진들은 서로 다른 운동 신경과 전혀 다른 환경을 가졌지만 각기 전문 스케이터와 짝을 이뤄 발전해가는 모습이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유노윤호의 경우, 해외 공연 등 바쁜 스케줄 탓에 연습을 거의 못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스케이트를 타야 할 의미를 새롭게 다졌습니다. 당초 이 프로그램에 나온 목적은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이제 피겨는 자신만의 목표일 수가 없음을 깨달은 거지요. 그의 파트너 클라우디아 때문입니다. 한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스위스 국적을 포기한 이 15살 소녀는 1등을 하여 8월에 있을 아이스쇼에 참가하고자 하는 열망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유노윤호가 함께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지요.

40살의 ‘피겨맘’ 이아현과 36살 김현철씨 커플 역시 인상적입니다. 힘겨웠던 개인사를 극복하고자, 몰입할 무언가가 필요했다는 이아현은 첫 방송부터 열정을 다해 임하고 있지요. 그녀의 파트너 역시 청춘의 못다 한 꿈에 대한 보상을 기대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겼습니다. 서로간의 성격이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요.

이아현은 완벽한 무대에 대한 욕심으로 손짓 하나 표정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하지만 상대는 그저 느긋해 보일 뿐입니다. 그래서 불만을 토로하고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정말 서로에게 화난 듯 불편한 기색도 노출됐습니다. 하지만 이아현은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상대방을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 커플 스케이터들은 연인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며, 티격태격하고 힘들어도 결국 서로가 온전히 마음을 공유하지 않으면 최고의 무대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거지요.

이렇듯 서로 다른 꿈과 성격, 환경,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때론 갈등하기도 하고 때론 감동하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무대가 더욱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이들의 동작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사연과 열정 그리고 고민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어설프고 낯설었던 무대가, 이들의 드라마로 더욱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이들이 만나 꿈을 공유하고, 성격과 가치관을 맞춰가는 과정은 비단 스케이팅에 한정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곽지영님은 1976년 생으로 대학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작년부터 ‘비춤’이라는 이름으로 부부가 함께 블로그를 운영하며 드라마와 예능의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점자 신용카드 Braille Credit Card

만든 사람: 김영석 30세. 홍익대학교 국제디자인전문대학원 2학년

이름은?

Braille Credit Card. 점자 신용카드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평소 스타일링 위주의 디자인보다 장애인, 노인, 어린이 등 소수를 위한 디자인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우연히 쇼핑몰에서 사람들이 거스름돈을 확인하는 것을 보고, 일반인들도 거스름돈을 잘못 받아 손해를 볼 때가 있는데 과연 시각장애인들은 어떻게 거스름돈을 확인할까? 궁금증이 생겼다. 한 설문 조사를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76.2%가 지폐를 구분하지 못해 손해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불편함을 개선해보고자 시도하였다.

중점을 둔 부분은?

시각장애인들은 촉각과 청각을 이용하여 세상과 소통하기 때문에 일반인보다 더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점자’와 ‘소리’ 이 두 가지 요소를 접목시켜 새롭게 디자인했다. 물론 일반 신용카드처럼 휴대성과 사용성이 뛰어나야 한다는 점도 중요시했다.

사용 방법은?

일반 신용카드와 같다. 기존에는 결제 금액을 점원이 알려주거나 휴대폰과 연결된 서비스를 통해서만 알 수 있었는데 이것은 불편하기도 하고 완전히 신뢰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단점을 보완하고자 ‘점자’와 ‘소리’를 이용했다. 핵심적 기능은 신용카드에 내장된 전자 자동 점자(Electric automatic braille)를 처리하는 체계와 스피커인데 카드의 전자 신호에 반응하여 금액을 점자로 표시해주고 내장 스피커는 금액을 소리로 알려준다.

하고 싶은 말은?

사실상 이 제품은 콘셉트 디자인으로, 당장 시장에서 상용화하긴 힘들 것이라 생각된다. 만약 양산된다면 신용카드가 아닌 하나의 전자 제품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실제 사용자인 시각장애인들과도 충분한 테스트를 거쳐 편리성을 확보하고 싶다. 또한 기존 카드사와의 협력 방법도 더 연구해야 할 것 같다.

천사의 미소, 피막이풀

싱그러운 모습이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는 피막이풀은 우리나라 곳곳의 풀숲에서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말 그대로 ‘피를 막아준다(멈추게 한다)’는 뜻으로 지혈초(止血草) 역할을 하는데요,
실제로 피가 나는 곳이나 심하게 고름이 잡힌 상처에 잎을 찧어 붙이면 효과가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천사의 미소’라는 유통명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 귓불에다 대고 후욱~ 하고 뜨거운 한숨을 내뿜는 것 같은 더운 여름철.
피막이풀 위에 손바닥을 얹어보세요. 차가운 기운이 있어 시원한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번식력도 좋아서 넓은 화분 한쪽에 심으면 금세 전체가 싱그러운 ‘천사의 미소’로 가득해진답니다.

햇빛 직사광선을 피한 양지나 밝은 음지에 두세요.

물주기 손가락으로 뿌리 부분의 흙을 만져보아 말랐을 때 흠뻑 줍니다. 구멍을 뚫지 않은 항아리 뚜껑에 화초를 심을 경우에는 뿌리 전체가 젖을 만큼만 주세요.

번식 뿌리를 나누세요. 꺾꽂이나 휘묻이도 아주 잘된답니다.

글, 사진 성금미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의 저자

몸의 열을 식히고 갈증을 잡아주는 녹차말이밥

여름철 땀이 나고 갈증이 심할 때 오히려 따듯한 녹차를 마시면 몸의 열도 식고 갈증도 잡힙니다. 여름에 입맛 없을 때 차가운 보리차에 밥을 말아 먹기도 하지만, 이렇게 종종 녹차에 밥을 말아 짭짤한 굴비와 장아찌를 얹어 먹기도 한답니다. 녹차말이밥은 일본의 ‘오차즈케’라는 요리에서 응용한 것인데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고추장아찌 외에도 더덕장아찌나 오이장아찌를 올려 먹어도 맛있어요.

이양지 자연요리연구가

재료 준비

밥 2공기, 녹차 3컵, 굴비 1마리, 고추장아찌 2개, 오이 1/4개, 깻잎 2장, 대파 흰 부분 조금, 김(김밥용) 조금

만들기

① 굴비는 노릇노릇하게 구워 식힌 다음 살만 발라낸다. ② 고추장아찌는 얇게 송송 썰고 오이와 깻잎, 대파는 얇게 채를 썬다. 김은 가위로 가늘게 썬다. ③ 그릇에 밥을 담고 뜨거운 녹차를 붓고 굴비와 ②의 재료들을 올려 먹는다.

자료 제공 <우리 가족 면역력 높이는 103가지 레시피>(도서출판 소풍) 자연요리 전문가인 이양지씨가 모든 병을 예방해주는 영양소들은 우리가 늘 먹는 식재료에 들어 있다는 요리 철학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http://www.macrobiotics.co.kr

진짜 쉰다는 것은

마음 비우며 위암의 고통 이겨낸 대검찰청 수사관 송기현

2006년 나에게는 절실히 휴식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큰 사건 하나를 맡아 몇 개월간을 밤낮으로 수사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지쳐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고, 잠시의 휴식. 하지만 또다시 사건은 밀려왔다.

스물아홉, 처음으로 수사관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서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은 흥미로운 것이었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모두 자신들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수사한 결과, 진실을 밝혀냈고, 양쪽의 누구도 승복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수사관으로 일하며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 보는 것이라고는 인간의 흉한 모습들. 화가 나고 짜증 날 때도 많았고 이게 인간으로서 할 일인가,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이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나마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퇴근 후에도 미해결된 수사에 대한 압박은 이어졌다. 특히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있을 땐 더욱 심했다. 제대로 한번 쉴 새 없이 곧 또 다른 사건이 이어졌고,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 달…. 오직 범죄 수사라는 생활 속에 빠진 삶이었다.

그러던 작년 중순이었다. 몸의 상태가 이상했다. 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속이 아프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위암 말기였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이다 보니 위암으로 발전했던 거였다. 결국 나는 위의 7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야 했다. 어리석게도 이렇게 되기까지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이다.

수술을 하며 두려움보다는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 이제야말로 정말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내가 만약 마음수련을 몰랐더라면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통의 와중에 나에게 떠오른 것은, 10년 전 친구 소개로 경험했던 마음수련이었다. 마음을 비우며 경험했던 더없는 편안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함. 일에 쫓겨 오랫동안 잊고 살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의 마음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위암이라는 병도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생긴 병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 수 있었고, 내 마음을 비우면 이 병의 뿌리도 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병가를 내고 바로 마음수련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마음을 비워보자고 결심했다. 내 삶의 필름을 돌리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버렸다. 버리면서 보니 세상에 나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어떤 수사도 완벽하게 해내야 했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야 했고, 나보다 더 잘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 했다.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초라해 보이는 내 자신을 잘나 보이게 하고 싶어, 지키고 싶어 그토록 자존심을 부렸던 거였다. 열등감, 자존심, 자만심, 비교하는 마음, 일 걱정, 집안 걱정이 나의 숨구멍을 막아가고 있었다. 나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과 늘 비교하고, 움츠러들었던 거짓된 나의 삶, 꾸며진 나의 삶, 포장된 나의 삶….

내 스스로 갑옷을 입었고 무겁다고 생각하면서도 벗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잘 보여야 된다, 잘해야 된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놓았던 기준, 규범, 관념, 관습의 틀들을 놓으면 놓을수록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숨 쉬는 거구나, 그게 너무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났다.

어느 순간 내 병의 뿌리까지도 싹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픈 사람들은 다 아픈 이유가 있다. 속이 아픈 사람은 속이 아픈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고 산다. 내가 살아왔던 과정들이 모두 다 병을 만든 뿌리였다. 내가 집착으로 만들어놓은 병은 그 집착을 놓는 순간 후루룩 빠져나가버렸다.

수사관으로서 항상 진실을 찾아 헤맸건만 진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버려도 버려도 남아 있는 것, 영원히 변치 않는 것, 그것이 진리였다. 그것은 내 스스로 비빔밥처럼 만들어놓은 그 복잡한 마음을 비웠을 때라야 나타나는 생명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 가니 정말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냥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보는 사람마다 사랑스러워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미소가 나왔다. 나에게는 너무 큰 변화였다.

근접하기 힘든 사람, 그것이 수사관으로서 어느새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내가 잘 웃으니 사람들은 “바람이 쌩쌩 불더니, 정말 너무 많이 바뀌었다”며 놀라워했다. 갑옷을 벗어버린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좋아 보였다. 환골탈태한 듯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는 것도 느껴졌다. 참 놀라운 변화였다.

9개월간의 긴 휴식을 마치고 지난 5월 다시 복직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도 이제 더 이상 걱정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휴식이란 내 몸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 있는 거였다. 내 마음이 근본에 가 있을 때, 내가 쌓아온 마음에서 벗어나 그 본래의 마음에서라면 똑같은 생활 속에서도 저절로 쉬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지금은 머리를 쓰는 시대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시대다. 산을 가든 바다를 가든 복잡한 마음의 상태에서는 절대로 쉴 수 없다. 진짜 쉬는 것이 무엇인지 그 환희와 평화를 맛보고 싶다면 꼭 한번 마음을 비워보시라 권하고 싶다. 진정한 휴식이란 ‘수고하고 짐 진’ 나에게 해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송기현님은 현재 대검찰청 검찰방송팀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검찰 직원, 가족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실을 알리는 방송인데, 그 취지가 좋아 검찰청 직원들 대상으로 직원을 모집했을 때 지원하여 일하게 됐다고 한다.

쉼, 신이 주신 축복의 시간

글, 사진 김민수 50세. 들꽃교회 목사

그 어디에도 ‘달려가자!’라는 구호만 있지 ‘쉼’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가던 길 멈추고 하루에 한 번씩 하늘을 봅시다.” 혹은 “봄이 오면 꽃님들과 눈맞춤합시다.” 이런 이야기는 없고 “무한 경쟁 시대를 살아가니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면 열심히 뛰어갑시다” 하는 유의 이야기들만 넘쳐납니다. 그런 이야기에 벌써 숨이 찹니다.

우리는 ‘쉼’의 가치를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그렇게 인식되어 쉼의 시간조차도 남들이 먼저 자기를 앞질러 갈까 봐 불안해하면서 온전한 쉼을 누리지 못합니다.

쉬지 않고 날아가는 새가 없고, 쉼 없이 날아다니는 나비가 없습니다. 쉼의 시간을 통해서 다시 기력을 회복하고, 또 다른 하늘을 날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햇볕 따가운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맥문동, 그들도 오랜 쉼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 어느 해의 여름날처럼 보랏빛 꽃밭을 만들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기들이 곤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부쩍 자라듯이, 자연은 겨울이라는 쉼의 계절이 있어 더욱 풍성해집니다.

직장인들이 ‘강박증’처럼 자기 계발을 하고 있어도 항상 부족함을 느끼고, 쉴 때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한다는 조사 결과가 있었습니다. 쉼의 시간에도 오로지 일 생각뿐인 사람들.

‘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닙니다. 쉼을 통해서 떠밀려 살아가는 삶에서 나 스스로 걸어가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내 안에서 혁명전야와도 같은 꿈틀거림이 용솟음치는 것입니다.

‘쉼’이란 부담이 없어야 합니다. 천천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곳이라면 더 좋고, 먼 길을 가더라도 남들이 가는 길을 따라나서는 일은 피해야 합니다. 그 쉼의 장소가 때로는 재래시장일 수도 있고, 도심 한복판일 수도 있습니다.

‘쉼’은 자연인인 자신과 하나 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고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잃어버린 지금 여기에서의 삶, 쉼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것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쉬는 날만 되면 흙을 만지러 시골로 갑니다. 가끔은 그야말로 뼈 빠지게 일을 하고 돌아오기도 합니다.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 앉아 머리로만 살아갔으니 몸을 움직여주는 것이 쉬는 것입니다. 육체노동을 통해서 흘린 땀방울 속에 나를 위협하는 독소들이 하나 둘 땀방울과 함께 빠져나감을 느낍니다.

남들이 보기에 편안한 쉼보다는 자신이 가장 편안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쉼입니다.

삶이란 여행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배편을 이용하는 것이 볼거리가 많고, 차편을 이용할 때보다는 도보로 여행할 때 더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천천히 도보로 여행하려고 작정을 하면 많은 짐을 가지고 떠날 수가 없습니다. 그만큼 여행길이 가벼워진다는 것이지요. 삶이라는 여행길에서도 이러한 법칙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느릿느릿 가면 다 빼앗길 것만 같고, 낙오될 것 같지만, 빨리빨리 가는 이들이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는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제 휴가 계획이 아닌 쉼의 계획을 세워 보십시오. 하루에 한 번쯤은 자신을 위해 쉬는 시간을 계획표에 넣어 보십시오. 그러면 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쉼의 시간, 그것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입니다.

한 번쯤 쉬어가 보세요, 새로운 삶이 열립니다

이희택 35세. 중도일보 기자

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높은 곳만 바라보며 달려왔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 저렇다, 이런 소린 절대 듣지 말아라!”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입니다. 그 말들은 열등감과 욕심의 뿌리로 자리 잡았습니다. 강하게, 더욱 강하게, 나를 담금질하며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약해 보이면 안 되기에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무엇이든지 잘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갔지만 남는 건 ‘지독한 외로움’뿐이었습니다. 유년 시절부터 쌓여온 열등감은 자만심과 오만함, 독선의 탈을 쓰고 나를 뒤덮기 시작했고, 친구들조차 내 곁을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무언가를 하고 있어도 허무하고 공허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도 웃지 못하지?’ 탁 트인 하늘, 멀리 보이는 산자락, 솔 향을 맑게 풍기는 소나무들….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가 지어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곳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즈음 누나가 마음수련을 이야기했습니다.

언제나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수용하지 못하고 살아왔던 내 모습. ‘욕심’ 때문에 스스로 괴롭혀왔던 내 삶을 돌아봤습니다. 굳이 가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배우며, 철옹성 같은 나의 벽들도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몸과 마음이 쉴 수 있었던 시간, 처음으로 가졌던 그 휴식은,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었습니다.

시무룩하거나, 굳어 있거나, 혹은 비판하고 있던 내가, ‘분위기 메이커’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발굴해야 하고, 마감시간에 맞춰야 하는 기자생활. 당연히 스트레스를 받았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주일간의 마음 비우기는, 진짜 최선을 다해 산다는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었습니다.

“너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배우고 싶다” 는 동료들. 결국 세상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은 ‘얻음과 높음’이 아니라 ‘버림과 낮음’이었던 겁니다. 자신을 버릴 줄 알고, 낮은 곳에 설 줄 알 때, 세상은 저절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가파른 인생길에서 한 번쯤 쉬어가기 그리고 비워보기, 그 진정한 휴식은 우리 삶을 새롭게 바꿔줍니다.

청년 소셜 벤처 여행사 ‘공감만세’ 고두환 대표

렌터카보다는 현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 업체를 이용한다, 현지 음식을 먹으며 여행 경비의 대부분을 그 지역에 돌려준다. ‘나’만의 세계에 빠지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는다….

일곱 명의 20대 청년들로 구성된 ‘공감만세(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가 진행하는 공정한 여행 프로그램의 기본이다.

공감만세 대표인 고두환(28)씨가 ‘공정여행’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제대 후였다. 태국과 필리핀에서 해외 통신원, 시민단체 활동 등의 경험을 쌓는 동안 관광에 경제의 큰 부분을 의지하는 나라들의 폐해를 직접 목격하게 된 것. 또 관광객들은 대자본이 만들어낸 시설 속에서 즐기다 돌아가니, 지역 경제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2009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뜻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공정여행을 기획하고 꾸리는 ‘공감만세’를 시작했다. 공정여행의 첫 장소로 필리핀 이푸가오주의 작은 마을 바타드를 선택했다. 그곳에는 세계 8대 불가사의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계단식 논이 있었고, 그 절경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곳 역시 개발과 관광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했다. 고두환씨는 마을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구했다.

“‘관광객이 여러분의 논을 밟아 무너뜨릴 때가 있으니, 그것만큼은 복원하고 가겠다’ ‘외부인의 산장 대신 당신들의 집에서 지내고 숙박비를 마을에 기부하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죠. 처음엔 말도 잘 통하지 않고, ‘사기꾼’인 줄 알았다는 분들도 있었다더라고요.”

2010년 1월, 마침내 공정여행의 첫 발을 내딛었다. ‘젊음, 열정으로 복원하는 세계문화유산 대학생 공정여행 캠프’라는 주제 아래 7박 8일간 16명이 함께한 여행이었다. 이푸가오족에게 그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듣고, 발루이(baluy)라 불리는 전통 가옥에서 머물며, 이푸가오족의 먹을거리로 식사를 했다. 경치를 보고 즐기느라 파괴된 계단식 논의 복원 작업에도 참가하고, 도와주고 안내해준 주민들과 바타드식 전통 축제도 벌였다.

그렇게 모든 여행 일정이 끝났을 때였다. 마을의 토박이 한 분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네가 처음 이곳에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고 했을 때, 긴가민가했는데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다. 공정여행이 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또다시 만날 수 있을 테지, 친구?”

이후 그해 필리핀은 물론, 서울 북촌과 충남 공주 등 국내까지 모두 26차례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또한 한국 사람 10명이 떠날 때 현지인 1명이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나눔여행’도 기획했다. 빈민촌 지역을 배회하던 필리핀 소녀 조나는 나눔여행 프로젝트에 선정되어 여행을 다녀온 후, 빈민촌 공부방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주민들의 추천으로 장학생이 되어 대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여행이 그녀에게 꿈을 심어준 것이다. 이렇게 여행 수익금의 일부로 정서 치유와 더불어 여행의 기회를 준 그 지역 사람이 2010년 한 해만 26명에 이른다.

‘공감만세’를 이끌어오는 일년 반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는 고두환씨. 그는 그렇게 계속해서 공정여행을 향해 ‘go~’ 할 계획이다.

취재 최창원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이미향, 고두환, 이영민, 이선희, 이성용, 조수희, 이후성씨.

‘공감만세’는 그동안의 활동을 인정받아 2010 고용노동부 소셜벤처 경연대회 우수상,

2010 한국청년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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