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쉰다는 것은

마음 비우며 위암의 고통 이겨낸 대검찰청 수사관 송기현

2006년 나에게는 절실히 휴식이 필요했다. 당시 나는 큰 사건 하나를 맡아 몇 개월간을 밤낮으로 수사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지쳐 있었다. 사건이 해결되고, 잠시의 휴식. 하지만 또다시 사건은 밀려왔다.

스물아홉, 처음으로 수사관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치밀하고 과학적인 수사를 통해서 진실을 밝혀내는 작업은 흥미로운 것이었고 적성에도 잘 맞았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모두 자신들 입장에서 유리하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에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수사한 결과, 진실을 밝혀냈고, 양쪽의 누구도 승복하지 못하겠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도 없었다.

하지만 10년 이상 수사관으로 일하며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 보는 것이라고는 인간의 흉한 모습들. 화가 나고 짜증 날 때도 많았고 이게 인간으로서 할 일인가, 이게 내 인생의 전부인가, 이게 과연 행복한 삶인가, 고민이 많았다. 집에서나마 훌훌 털어버리고 싶었지만 퇴근 후에도 미해결된 수사에 대한 압박은 이어졌다. 특히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있을 땐 더욱 심했다. 제대로 한번 쉴 새 없이 곧 또 다른 사건이 이어졌고, 하루 24시간, 일주일, 한 달…. 오직 범죄 수사라는 생활 속에 빠진 삶이었다.

그러던 작년 중순이었다. 몸의 상태가 이상했다. 먹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속이 아프면서 토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위암 말기였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쌓이고 쌓이다 보니 위암으로 발전했던 거였다. 결국 나는 위의 70%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해야 했다. 어리석게도 이렇게 되기까지 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것이다.

수술을 하며 두려움보다는 한편으론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쉬고 싶었는데 이제야말로 정말 쉴 수 있겠구나 하는. 내가 만약 마음수련을 몰랐더라면 엄청난 불안감에 휩싸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고통의 와중에 나에게 떠오른 것은, 10년 전 친구 소개로 경험했던 마음수련이었다. 마음을 비우며 경험했던 더없는 편안함과 행복, 그리고 감사함. 일에 쫓겨 오랫동안 잊고 살고 있었지만 나는 그때의 마음을 너무도 그리워하고 있었다. 위암이라는 병도 오랫동안 스트레스가 쌓이고 쌓여 생긴 병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알 수 있었고, 내 마음을 비우면 이 병의 뿌리도 사라질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병가를 내고 바로 마음수련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마음을 비워보자고 결심했다. 내 삶의 필름을 돌리며 사진 한 장 한 장을 버렸다. 버리면서 보니 세상에 나처럼 자존심이 센 사람이 없었다. 자존심 때문에 어떤 수사도 완벽하게 해내야 했고, 더 높은 직위에 올라야 했고, 나보다 더 잘한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더 열심히 하려 했다. 그것은 열등감이었다. 초라해 보이는 내 자신을 잘나 보이게 하고 싶어, 지키고 싶어 그토록 자존심을 부렸던 거였다. 열등감, 자존심, 자만심, 비교하는 마음, 일 걱정, 집안 걱정이 나의 숨구멍을 막아가고 있었다. 나보다 높아 보이는 사람과 늘 비교하고, 움츠러들었던 거짓된 나의 삶, 꾸며진 나의 삶, 포장된 나의 삶….

내 스스로 갑옷을 입었고 무겁다고 생각하면서도 벗을 줄을 몰랐던 것이다.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잘 보여야 된다, 잘해야 된다…. 그렇게 내가 만들어놓았던 기준, 규범, 관념, 관습의 틀들을 놓으면 놓을수록 마음이 너무 가벼워졌다. 비로소 숨을 쉴 수 있었다. 이제 정말 숨 쉬는 거구나, 그게 너무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났다.

어느 순간 내 병의 뿌리까지도 싹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아픈 사람들은 다 아픈 이유가 있다. 속이 아픈 사람은 속이 아픈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고 산다. 내가 살아왔던 과정들이 모두 다 병을 만든 뿌리였다. 내가 집착으로 만들어놓은 병은 그 집착을 놓는 순간 후루룩 빠져나가버렸다.

수사관으로서 항상 진실을 찾아 헤맸건만 진실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버려도 버려도 남아 있는 것, 영원히 변치 않는 것, 그것이 진리였다. 그것은 내 스스로 비빔밥처럼 만들어놓은 그 복잡한 마음을 비웠을 때라야 나타나는 생명의 자리였다.

그 자리에 가니 정말 자유로웠다. 그리고 그냥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보는 사람마다 사랑스러워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미소가 나왔다. 나에게는 너무 큰 변화였다.

근접하기 힘든 사람, 그것이 수사관으로서 어느새 만들어진 나의 모습이었다. 그런 내가 잘 웃으니 사람들은 “바람이 쌩쌩 불더니, 정말 너무 많이 바뀌었다”며 놀라워했다. 갑옷을 벗어버린 나의 모습은 내가 봐도 참 좋아 보였다. 환골탈태한 듯 얼굴이 어린아이처럼 바뀌었다는 것도 느껴졌다. 참 놀라운 변화였다.

9개월간의 긴 휴식을 마치고 지난 5월 다시 복직했다. 예상대로 병원에서도 이제 더 이상 걱정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휴식이란 내 몸이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이 어디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 있는 거였다. 내 마음이 근본에 가 있을 때, 내가 쌓아온 마음에서 벗어나 그 본래의 마음에서라면 똑같은 생활 속에서도 저절로 쉬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지금은 머리를 쓰는 시대가 아니라 마음을 여는 시대다. 산을 가든 바다를 가든 복잡한 마음의 상태에서는 절대로 쉴 수 없다. 진짜 쉬는 것이 무엇인지 그 환희와 평화를 맛보고 싶다면 꼭 한번 마음을 비워보시라 권하고 싶다. 진정한 휴식이란 ‘수고하고 짐 진’ 나에게 해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송기현님은 현재 대검찰청 검찰방송팀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검찰 직원, 가족과 국민들을 대상으로 진실을 알리는 방송인데, 그 취지가 좋아 검찰청 직원들 대상으로 직원을 모집했을 때 지원하여 일하게 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