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당나귀


오랜 세월 잘 버텨온 내 차가 주저앉았다.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에 갔더니 사장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엔진을 바꾸든지 폐차를 시키든지 하란다. 일찍이 가난한 집에 와서 고락을 함께한 정든 당나귀처럼, 헤어지려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에 주말마다 시골 어머니 집에 가야 할 일도 난감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급작스러운 사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면 편하고 궁하면 통한다. 나는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하고, 토요일 오후 기차를 타고 어머니 집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열차에 몸을 싣고 창밖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느리지만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순천역에 도착해서 미리 계획한 대로 시민공영자전거 거치대로 갔다. 그곳에 있는 전자판에 회원정보를 입력하니 잠금 쇠가 딸깍 열렸다. 그리고 노란 자전거 한 대가 선물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가로질러 변두리에 있는 마지막 공영자전거 거치대에 도착하였다.

공영자전거를 반납하고 이제 걷는 일이 남았다. 논길과 둑길을 하염없이 걷자 하니, 폐차장으로 간 내 당나귀가 그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튼 허위허위 그 긴 여정 끝에 시골집에 도착해서 어머니 밭일을 거들었다.

다음 날, 나는 미리 계획한 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창고에 있는 낡은 자전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자전거를 타고 어제 그 마지막 공영자전거 거치대로 갔다. 나는 또 회원정보를 입력하고 노란 시민공영자전거를 빌렸다. 이제 두 대를 한꺼번에 몰고 집으로 왔다가, 집 자전거를 창고에 넣어둔 다음, 노란 공영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면 성공이다.

나는 집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한쪽 손으로 노란 자전거의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서히 페달을 밟았더니 두 대의 자전거는 의좋은 형제처럼 나란히 굴러갔다. 아! 내가 봐도 대단한 기술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그 묘기를 아무도 봐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집 자전거를 창고에 넣어 두고, 역을 향해 출발하려는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우산을 펼쳐든 채 노란 자전거에 올랐다. 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 노란 자전거의 한쪽 페달이 없다! 원래 고장 난 것인지, 아니면 아까 몰고 올 때 페달이 빠져버렸는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또 나 홀로 묘기 대행진을 벌였다.

일단 성한 한쪽 페달을 밟고 나서 발등으로 그 페달을 되감아 올린 다음, 다시 밟기를 반복해 보았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이번에는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 양다리를 길게 늘어뜨려, 캥거루처럼 두 발로 땅바닥을 힘껏 차보았다. 자전거는 빌빌거릴 뿐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한 발과 두 발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결국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털레털레 끌고 갔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 않았다. 얼마 안 가서 기적처럼 길에 나뒹굴고 있는 자전거 페달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비에 젖은 그 페달을 얼른 주워 돌로 꽝꽝 박아 조립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달렸다. 아!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멀리 어머니가 서 계셨다. 칠순 노모는 오십 대 아들의 희한한 자전거 행진을 줄곧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개천 다리 밑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이 해괴한 상황에 노심초사하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벌써 순천역에 도착했느냐고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막 도착했다고 뻥을 쳤다. 어머니의 감격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우리 아들 장허다. 용감허다. 우리 아들!”

전화를 끊자마자 자전거에 올랐다. 나는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다시 죽어라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날 그렇게 한바탕 자전거 쇼를 벌이고 나니, 떠나보낸 당나귀에게 조금 덜 미안했다. 무엇이든 정들다 헤어지면 그런 이별 의식이 필요한 모양이다.

최형식 & 일러스트 유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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