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이런 시험 과목이 있었다면

시험 기간인 중3 딸아이가 공부하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를 않습니다. 야단을 치고 압수도 해봤지만 그때뿐이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또 들려 있습니다. 한 손에는 프린트물 정리해 놓은 걸 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신 문자를 하고 있습니다. 시험 기간만이라도 휴대폰을 압수할까 생각했지만 그랬다가는 시름시름 앓다가 파르스름한 입술과 창백한 얼굴로 하직 인사할까 봐 놔뒀습니다. 내일 시험 과목이 뭐냐고 물었더니 영어와 도덕이랍니다. 도덕의 의미와 도덕적 실천에 대해 주절거리더니 이내 다시 휴대폰을 만지작거립니다.

상상 속으로 빠져봅니다.

“송이야, 내일 시험 뭐냐?” “웅 내일 시험은 카톡하고 인기가요예요~” “둘 다 네가 취약한 과목이구나? 열심히 해라~ 근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냐? 카톡 공부 열심히 해야지 왜 한 손에 책을 들고 있어? 카톡 공부할 때는 제발 책 좀 내려놓고 하랬지? 아빠가 책 압수한다!” “알았어요! 아빠. 카톡은 아무리 해도 모르겠어요. 카톡 너무 어려운 거 같아. 며칠째 밤새 이렇게 휴대폰만 붙잡고 카톡 공부만 하고…ㅜㅜ” “송이야, 아빠가 너 기분 모르는 거 아닌데 좀만 참자. 시험 기간 끝나면 책 맘껏 밤새도록 읽어도 아빠가 아무 말 안 할게. 하지만, 며칠만 제발 책 좀 멀리하고 휴대폰에만 신경 써라! 제발~~ 일단 아빠가 책은 압수한다.”

두어 시간 후 TV에서 인기가요를 합니다. 휴대폰과 씨름하는 딸아이를 불렀습니다.

“송이야, 인기가요 한다. 얼른 나와서 봐라. 시험 기간이라고 특별히 총정리해주나 보다. 얼른 나와서 봐~”

“아빠, 지금 두 시간이나 쉬지 않고 카톡 하고 있는데 30분만 책 좀 읽다가 인기가요 보면 안 돼요?”

“송이야. 네가 30분 동안 책 읽으면서 놀고 있으면 지금 이 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인기가요 보면서 너보다 얼마나 앞서 나가겠니? 지금 앞부분에 한참 중요한 신인 그룹들 나올 시간이란 말이야. 너 요즘 신인 아이돌 너무 신경 안 쓰더라. 조금만 신경 안 쓰면 금방 뒤처지는 게 인기가요 과목인 거 몰라? 기존 아이돌 지식으로는 6월 첫째 주 가요 판세를 모른단 말이야. 전체적인 아웃라인과 흐름을 파악하려면 첫 주가 제일 중요하단 말이야.”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일단 휴대폰은 좀 쉬어도 되죠?”

“송이야, 인기가요 과목은 눈과 귀로 하고 아빠 욕심에는 그래도 휴대폰은 손에 좀 쥐고 있으면 안 될까? 책 같은 건 좀 멀리하고 항상 휴대폰은 가까이하는 버릇을 들여야 하지 않겠니? 그리고 아빠가 다음 달에는 최신 기종으로 바꿔줄게. 태블릿 PC 기능이 강화된 게 나왔다네.” “아빠~~~ 이 휴대폰 산 지 두 달밖에 안 됐어요. 최신 기종 싫어요. 책 산 지가 언젠지 모르겠어요. 친구들은 현대문학전집 산다는데.”

이때 고2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옵니다.

“아빠~~~ 오늘 시험 끝났어요.” “오늘 마지막 과목이 뭐였지?” “서든 어택 저격수 과목하고 이성 교제요.” “잘 봤냐?” “서든은 맵이 조금 까다롭게 나왔는데 그래도 망치지는 않았고요. 이성 교제는 저번 달 수행평가가 워낙 좋아서요. 만점 받았어요~”

장하다, 우리 아들. 수행평가 점수가 좋았구나. 그랬구나. 중학교 때부터 선행학습을 잘하더니. 장하다… 장해.

 

글을 쓰면서 왜 자꾸 눈물이 날까요? 그냥 상상인데. 점심 먹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그냥 쓸데없는 상상 한번 해봤는데. 왜 이리 울컥하죠?

학부형님들 힘내세요.^^

백일성(44)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소외 계층 자립 지원하는 ‘자리(주)’

취재 문진정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통해 위기 청소년들의 꿈을 응원하는 곳이 있다. 희망적인 미래를 위한 꿈 자리, 경제적 자립을 위한 일자리, 마음이 편안한 쉼 자리를 만들어가는 기업 ‘자리(주)’이다. ‘자리’의 신바다(31) 대표가 처음 카페 사업을 시작한 것은 2008년. 경기도 부천에서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한 땀 한 땀 일구어낸 ‘음자리’ 카페였다. 이후 카페가 유명세를 얻으며 2010년에는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의 카페 창업을 맡게 되었고 인천 지역의 청소년 쉼터 아이들과 만나게 된다.

탈학교 청소년들, 취약 계층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배달, 혹은 주유소 아르바이트가 거의 전부. 신대표 역시 고등학교를 자퇴한 경험이 있었기에 청소년들의 문제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고 문제의 해답을 카페 사업에서 찾게 되었다.

2012년 사회적기업 ‘자리’를 설립한 후 그동안 쌓아온 실전 노하우를 바탕으로 서울 홍제동, 선유도역에 차례로 카페를 열었고 장애인, 청소년 그리고 이주 여성들을 채용해왔다.

바리스타 자격증 교육도 개설해, 일반 교육생의 교육비로 위기 청소년들의 바리스타 교육을 후원하는 프로그램도 작년 3월부터 운영 중이다. 커피나 베이커리 교육은 청소년들에게 최고 인기 과목. 그 과정에서 적극성, 배려심도 키울 수 있으며, 손님을 대하면서 소통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작고 어려운 사회적기업이 아니라 서비스가 매력적인 기업, 이윤과 가치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대기업’을 꿈꾸는 신바다 대표. 결코 평범하지 않은 신대표의 경험과 열정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자극제가 되고 앞으로의 새로운 시도들이 사회적기업의 훌륭한 모델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해 본다.

바리스타 자격증 무료 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 작년 한 해 동안 위기 청소년, 장애인, 미혼모, 이주 여성 등 80여 명이 교육을 받았으며 일부는 ‘자리’ 직영 카페에 채용되었다. 청소년들에게는 기술 교육뿐 아니라 소셜벤처 ‘기억발전소’의 협력으로 인문학교육, 문화예술교육도 지원한다. 지난 3월부터는 소망교도소에서 국내 최초로 성인 재소자 대상 커피와 베이커리 자활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www.beanszari.com

신바다 대표 이야기

17살에 자퇴를 선택하고 그 후로 퀵서비스, 막노동 등 많은 경험을 해왔습니다. 제가 처한 환경만 봤을 땐, 저 또한 소위 말하는 탈학교 청소년, 위기 청소년이었던 거죠.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대할 때 스스로도 경계심이 전혀 없고, 공감대 형성도 쉽게 되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눈으로 보면 ‘막 사는’ 것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이지만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어주게 됩니다.

바리스타 교육을 받다가 그만두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주거 문제인데요, 쉼터 아이들은 20살이 되면 쉼터에서 나와 자립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것이 주거 공간이고 올해는 ‘자리’에서도 게스트하우스와 쉼터가 결합된 형태의 새로운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사업을 운영할수록 한 명의 청소년이 어엿한 성인으로 자립한다는 건 아주 장기적이고 어려운 일임을 실감합니다. 지금은 미약한 성과이지만 5년, 10년이 지난 후에는 이 친구들이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해서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성공 케이스라고 말할 때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베트남에는 ‘코토’라는 14년 된 사회적기업이 있는데 150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배우고 일하면서 급여도 받고 기숙사 생활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희 ‘자리’ 또한 코토처럼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뿐 아니라 많은 소외 계층의 빈자리들을 채워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역할이고 개인적으로도 짜릿한 즐거움일 것 같습니다.

학교를 탈바꿈시킨 진정한 스승, 청소 도우미 선생님

내가 근무하는 학교엔 청소를 담당하시는 초로의 아주머니 한 분이 계신다. 학생들은 이분을 봉사 담당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복도나 화장실에서 마주칠 때마다 환한 미소로 인사를 하신다.

이 학교에 처음 왔을 때가 생각난다. 새로 지어진 이전 학교에 비해 대도시 근교에 자리 잡은 이 학교는 어두컴컴한 복도에 출입문조차 덜컹거렸다. 복도 곳곳엔 학생들이 뱉어 놓은 침이 얼룩져 있었고 버려놓은 휴지는 낙엽처럼 뒹굴었다.

내가 부임한 첫해 2학기에 이분이 우리 학교에 오셨다. 한눈에도 성실하게 보이는 분이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3년 반의 세월, 학교는 나날이 달라졌다. ‘그때 그 학교가 맞나?’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 정도다.

30여 평 되는 집의 청소도 실컷 해놓고 돌아서고 나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데 그 백 배가 넘는 학교는 말해 무엇하겠는가? 본관, 후관에 6개나 되는 화장실은 물론이고 교무실과 복도, 그 모든 곳을 60대의 아주머니 한 분이 모두 청소하신다는 사실이 어떤 때는 기적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이분은 한 번도 학생들 험담을 하시는 법이 없다. 아이들의 장점만이 보이시는 모양이다. 이런 긍정적인 시각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전 학교에 근무할 때 두 분의 청소 미화원이 있었다. 당시 학생부를 맡고 있던 나를 만날 때마다 제발 학생들 껌 안 뱉게, 휴지 안 버리게 단속해 달라고 하도 말씀하시는 통에 나중에는 그분들이 복도 끝에 보이면 다른 쪽으로 돌아서 가기도 했다. 수백 명의 학생들이 학교에서 온종일 생활하는데 휴지나 껌을 버리지 않기가 어찌 쉽겠는가?

그러나 우리 학교 학생들은 달라져 갔다. 복도나 건물 밖에서나 휴지가 현저히 줄어갔다. 그리하여 처음 부임할 때 내가 근무했던 학교 중에 시설이나 청결도가 거의 최하급이었던 이 학교는 지금 내가 근무했던 학교 중 가장 깨끗한 학교가 되었다.

<사막에 숲이 있다>라는 책이 있다.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있었던 실화를 소설 형식으로 엮은 책으로, 한 여인이 남편과 함께 사막에 풀씨를 뿌리기 시작해서 비옥한 옥토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다.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 학교에도 작은 기적이 미화원 아주머니를 통해서 일어났다. 낡은 학교가 낡음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학교로 변모한 점이다. 작은 기적은 학생들도 변화시켰다. 복도나 운동장이 학생들이 휴지도 버리지 않고, 침도 뱉지 않는 신성한 공간이 된 것이다. 새로 부임하신 선생님들이 말씀하신다.

“이 학교는 정말 깨끗해요.”
변화를 지켜본 나로서는 그분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교실에서 수업하다가 보면 문밖에서 교실 문 주변까지 청소하시느라 달그닥 소리가 자그맣게 날 때가 있다. 창문에는 그분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선생님이 이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어요. 우리가 공부하고 있을 때도 문밖에서 여러분들이 청소해야 할 복도를 열심히 닦고 계시는 분이세요. 왔다 갔다 하다가 청소하시는 그분과 마주치면 감사의 인사를 꼭 드립니다. 학교의 모든 화장실과 복도, 교무실까지 매일 청소를 하셔요. 꼭 그렇게 다 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게 아닌데도….”

아이들도 진심으로 감탄의 표정을 드러낸다. 저희들은 ‘교실 한 칸 청소하는 것도 힘든데, 할머니가 어떻게 그 많은 곳을 다 청소하실 수 있나?’ 하는 얼굴빛이다.

“저렇게 정성스레 곳곳 구석구석을 청소해 주시는데, 여러분들이 더 깨끗이 써야겠죠?”
조용하지만 빛나는 존재감을 학생들도 안다. 일의 고됨에 비해 그분이 받는 적은 봉급을 생각하면 괜스레 내가 미안해진다. 그분의 일하는 모습을 보며 저절로 배우게 된다. 가히 진정한 ‘선생님’이란 호칭을 받을 만한 분이시다.

박영숙 논공중학교 역사 교사

‘진정한 스승으로 모십니다’
청소 도우미 도춘옥 여사님께
박영숙 선생님의 존경을 담아
꽃바구니를 보내드립니다.

‘나에게 꽃보다 아름다운 그 사람’을
소개해주세요.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도 좋습니다. 소개된 분께는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아라비아 재스민

화려했던 봄꽃들이 자취를 감추고 여름이구나 싶을 때면, 기다리던 ‘아라비안 재스민’ 꽃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꽃 한 송이만으로도 집안 전체에 퍼지는 황홀한 향기~ 향기도 향기이지만 그 소박한 꽃잎에 매료되는 때가 바로 여름입니다. 윤기가 흐르는 진한 초록색 잎 사이로 봉긋하게 솟아오른 하얀 꽃. 기다란 줄기가 덩굴을 이루며 자라기 때문에 그냥 흘러내리게 하거나 지지대를 만들어 감아올리며 키워도 좋은데 밝은 햇빛 아래 두고 겉흙이 말랐을 때 흠뻑 물을 주기만 하면 무탈하게 크는 착한 식물이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재스민차’의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재스민차를 만드는 방법은 보통 꽃차와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되는데, 활짝 핀 꽃을 따서 그대로 끓인 물에 띄워 마시거나, 꽃잎을 잘 말려 보관했다가 마시면 된답니다.
다른 이와 함께도 좋지만 저는 특히 혼자서 차 마시는 시간을 더욱 소중히 여깁니다. 나의 내면을 솔직하고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기 때문이라고나 할까요. 작은 꽃잎 하나가 만들어주는 향기로운 차 한 잔. 그 앞에 조용히 앉아 크게 한 번 숨 고르기를 하다 보면 내 마음을 어지럽히던 소리들과 이미지가 흐려지면서 정신이 해방되는 것을 느낍니다.

‘바쁘다’는 말을 남에게 내보이고 싶은 명함처럼 입에 달고 살면서 실제로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가꾸기 위해 비워두는 시간은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잠시라도 스마트폰에서 떨어지면 불안하고, 늘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만 안심이 되고, 일부러 빡빡한 스케줄을 짜서 그대로 실천해야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착각들이 과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지 생각해 봅니다.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와 마음의 스케줄 정리가 필요한 순간, ‘재스민차’ 한잔 어때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친구, 바로 나 자신과 함께 말입니다.^^

글 & 사진 성금미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의 저자

미네스트로네

재료

베이컨, 샐러리, 감자, 당근, 베이크드 빈, 양파, 마늘, 양배추, 생토마토, 토마토홀

만드는 법

① 마늘은 편으로 썰고, 샐러리는 껍질을 벗겨서 다진다. 다른 야채들도 0.5~1cm 정도로 다진다. 토마토는 껍질을 벗기고, 베이컨도 취향대로 썬다. ② 올리브유를 두르고 편으로 썬 마늘을 볶다가, 양파를 넣고 살짝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③ 베이컨을 넣고 콩을 제외한 나머지 야채를 넣어서 볶다가 토마토홀과 토마토를 넣는다. ④ 토마토가 뭉개지면 육수나 물을 붓고 한 번 헹군 콩을 넣어 끓이다가 후추, 소금으로 간하면 끝. ⑤ 그라나 파다노 치즈와 파슬리를 올려서 먹거나 빵을 구워 곁들이면 더 맛있다.

감기에 걸려서 뇌를 코로 다 풀어낸 듯한 날. 입맛은 없고, 배는 고프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도 뭔가는 해 먹어야 하는 그런 날. 코를 줄줄 흘리면서 집 근처 호수를 두 바퀴 돌다가 마트에 가서 샐러리, 감자, 당근, 베이크드 빈을 사가지고 와 8리터짜리 곰솥에 한가득 만들어 먹었던 미네스트로네. 어릴 적 경양식집에서 크림스프와 야채스프 중에서 선택해야 하면 나는 야채스프를 선택하곤 했다. 언니는 언제나 크림스프. 왜인지는 모르지만 감기가 독하게 걸렸을 때, 꼭 먹고 싶은 이 토마토 야채스프가 나의 소울푸드다. 배가 고플 때는 숏파스타인 펜네를 넣어서 한 사발 말아 먹기도 한다.

국물 별로 없이, 되직하게 끓여서 한 사발만 먹어도 몸이 뜨뜻해지고, 감자와 콩이 들어 있어 더 든든하다.

요리 둥기둥기 블로거 & 그림 최정여

실종 아동 찾는 ‘인페이스’

● 이름은? 인페이스 InFace. ‘얼굴 안에서 찾는다’ ‘얼굴 안에 답이 있다’라는 의미로 지었다. 얼굴만으로 부모와 아이를 만나게 해줄 수 있는 우리의 프로젝트를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이다.

만든 사람
임팩트(전은솜, 박호성, 황의종, 이수민)

● 어떻게 이런 생각을? 마이크로소프트의 학생 파트너 프로그램(Microsoft Student Partners)에 참여하면서 우리 셋(전은솜, 박호성, 황의종)이 만나게 되었고 이수민씨는 이후에 합류했다.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고민하다가, 지인으로부터 시리아 봉사 활동에 관한 이야기를 접했다. 시리아 난민이나 고아들을 도울 방법, 그들의 가족, 엄마를 찾아줄 방법을 생각하다가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평소 즐겨 했던 게임의 부모 캐릭터 얼굴의 외모적 형질을 유전받아 아기 캐릭터가 생성된다는 점에 착안해 얼굴만으로 미아를 찾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되었다.

● 어려웠던 부분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시킬 방법, 그래서 미아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실무적으로 도움을 드릴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얼굴 인식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개인 신상 정보의 문제가 있어서 테스트 대상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기술 구현을 위한 내용이 우리 대학생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으나, 이러한 서비스가 아직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감수하면서 도전했다.

● 주변의 반응은? 2014 이매진컵 한국 파이널에서 월드 시티즌십 분야 1위, 네이버 D2 Award 특별상을 수상했다. 한국 대회 수상 이후 매체에 소개가 되면서, 실제로 이 서비스가 상용화되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프로그램의 필요성도 실감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정말 잘해야겠다’고 느낀다.

● 주변의 반응은? 한국장애인인권포럼에서 주최한 2013년 유니버셜 디자인 공모전에서 특선을 했다. 이 공모전을 진행하면서 지도해주신 교수님이나 주변의 많은 친구들도 지하철을 탈 때마다 힘들고 불편했던 문제였다며 많이 공감해주었다.

● 하고 싶은 말? 여태까지 어려운 점도, 위기도 많았는데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영광이고 감사할 따름이다. 저(전은솜) 또한 팀원으로부터 배워가고 있는 점도 많아서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매 순간 순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이다’라는 영화 대사를 참 좋아하는데, 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앞으로도 더욱 겸손하게, 처음의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겠다. 현재 세계 준결승전(World Semi-Final)에 참가 중인데 Final에 꼭 진출하여 세계인들에게 한국에도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하는 대학생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이 프로젝트가 실용화되어 최대한 많은 사람들, 세계인들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

설 특집으로 방영되었던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가 정규 편성되었다. 방랑 식객 임지호와 이영자가 함께 ‘밥상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라는 취지하에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치유와 치료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다.

임지호와 이영자 그리고 게스트 김혜수는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나고 자란 풀들을 이용하여 첫 만찬을 즐긴다. 즐비하게 자란 조팝나무와 소루쟁이, 임지호씨가 아니라면 그것들이 음식이 될 거라 상상할 수 없는 식물들이, 소루쟁이 된장국과, 참기름 내가 진동하는 조팝나무순 주먹밥으로 재탄생된다.

이영자는 묻는다. 여의도라면 차도 많이 다니고, 먼지도 많은데 이런 걸 먹어도 되냐고. 그런 우문에 대해 임지호씨는 현답을 내린다. 그 오염된 환경에서 뿌리 내린 식물은 이미 그 오염된 환경을 이겨낸 결과물이라고, 사람들이 이 환경 속에서 살아가듯, 그렇게 살아가는 식물들에 대해 선입견을 가질 필요 없다고. 늘 사람이 사는 주변 환경의 식물이 바로 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음식이라는 그의 생각처럼, 한강 고수부지의 식물들은 서울 하늘을 함께 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역시나 필요한 식물이라는 것.

그렇게 첫 만찬을 끝내고서 이들은 차를 달려 첫 번째 의뢰인을 찾아 나선다. 의뢰인은 김재민, 23살의 대학생, 청년은 자신의 부모님들께 밥 한 끼를 대접해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청년이 인도하는 데로 찾아간 곳에 계신 분들은 그의 친 부모님이 아니었다. 그가 가슴으로 맞아들인 부모님은 그의 선배였던, 고 문광욱씨의 부모님이었다.

고 문광욱씨는 해병대에 입대한 후 2010년 11월 11일 연평도에 배치를 받았다가, 11월 23일 연평해전 교전 중에 전사한 해병대원이다. 그리고 김재민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난 문광욱씨의 뒤를 따라 입대한 친구와 후배들 23명 중 한 사람이었다.

아들을 잃은 대신 23명의 아들을 다시 얻었다고 말하는 문광욱씨의 아버지지만, 아들이 죽은 후 5개월 동안 술로 세월을 보내느라 위가 수축되어 지금도 밥을 잘 못 먹는다고 했다. 오늘 아침에도 꿈에서 아들을 만났다고 하는 어머니는 아들이 첫 휴가 때 사가지고 온 쌀을 아직도 뜯지도 못한 채 보관한다. 아버지를 닮아 돼지고기를 좋아했던 아들, 부모님은 아들이 죽은 후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 부모님에게 임지호씨는 말한다. 아들이 사가지고 온 쌀은 그의 기일에 밥을 해서 함께 먹으면서 마음의 상처도 풀어내라고. 그리고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좋아했던 돼지고기를 이용해 만찬을 차린다. 봄의 생기를 머금은 과일과 이제 막 움트기 시작한 군산의 벚꽃 봉오리는 요리의 하이라이트. 열매라는 건 꿈, 그래서 열매를 이용한 요리는 미래를 지향하는 의미를 담는다고 임지호씨는 덧붙인다.

마음으로 얻은 또 다른 아들들과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는 잠시 시름을 잊고 수저를 든다. 이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팽목항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또 다른 부모님들, 그분들도 언젠가 이들처럼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음식을 드실 그날이 올까….

음식을 통한 치유, 나아가 음식을 통해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야무진 시도를 내보인 <잘 먹고 잘 사는 법, 식사하셨어요?>는 하지만 그 시도가 안타깝게 방송 시간은 모처럼 늦잠을 자거나, 혹은 외출하기 좋은 토요일 아침 8시 40분이다. 그래서인가 정지해버린 예능 프로그램들 속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디딘 이 프로그램의 흔적은 희미하다.

예능이 정지된 시간, 그저 언제 다시 시작해 볼까 눈치만 볼 게 아니라, 사실 이 시간에 필요한 것은, 이 정지된 시간들을 채웠던 지난 시간들 속에서, 우리가 그간 너무 흥청망청 웃고 떠들지만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저 시간이 지나 조금 무뎌졌다고 다시 예전처럼 그럴 것이 아니라, 세월호의 부모님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상처를 얻은 이 시간… 치유하는 노력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이정희

짜장면은 어떻게 국민 음식이 되었을까?

짜장면의 시조는 작장면(炸醬麵)으로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작(炸)은 ‘불에 튀기다’, 장(醬)은 말 그대로 된장 등의 발효식품을 말하며, 면(麵)은 밀가루 국수를 뜻한다. 즉 중국식 된장을 기름에 볶아 국수 위에 얹어 먹는 음식이라는 뜻이다.

짜장면에 얽힌 행복한 추억 하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 있을까. 지금도 전국적으로 하루에 대략 600만 그릇을 넘게 먹는다는 짜장면을, 2006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100대 민족문화상징’의 하나로 선정했다. ‘중국에서 유래하였으나 그것과 다르게 우리나라에서 토착화한 음식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표적인 외식 메뉴이며 세계화가 가능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가까이 국민 음식으로 사랑받아온 짜장면의 이야기다. 정리 최창원

참조 도서 <짜장면뎐>(양세욱 | 프로네시스), <식탁 위의 한국사>(주영하 | 휴머니스트), <사물의 민낯>(김지룡, 갈릴레오 SNC | 애플북스), <한국음식문화 박물지>(황교익 | 따비), <처음 만나는 우리 문화>(이이화 | 김영사)

저는 짜장면이라고 합니다. 제가 이 한반도 땅에 살아온 지 어언 100년도 훨씬 넘었네요. 제가 언제 어디서 처음 만들어졌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어요. 다만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들어온 청나라 군인들을 따라 중국 상인들도 조선으로 들어왔고, 그 이후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하지만 그때의 중국식 짜장면과 지금의 한국식 짜장면은 아예 맛이 다릅니다. 짜장면 맛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춘장이라고 부르는 소스예요. 중국의 정식 이름은 면장이라고 하는데 중국 산동 지역이 원산지로, 원래 중국 짜장면은 짠맛이 강했죠.

그런데 1948년 중국 산동성 출신의 화교 왕송산이 ‘사자표 춘장’이라는 한국 최초의 면장을 생산했습니다. 그러다 1950년대 중반 캐러멜을 섞어 달달한 맛을 더했고, 이것이 보편화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맛의 한국식 짜장면이 탄생했습니다. 특히 1960년대에 들어 한국 짜장면 맛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재료가 등장하였는데, 바로 양파였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짜장면은 1960년대 이후 개량된 것이라 보아야 할 거 같네요.

제가 국민 음식의 반열에 오르게 된 데는 정치, 경제, 사회적인 요인이 작용했습니다. 한국 전쟁 후 미국의 잉여 농산물이 원조로 제공됐는데, 밀이 70%를 차지하였어요. 그런데 밀 소비가 정부의 계획대로 확산되지 못하자 정부는 ‘혼, 분식 장려 운동’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당시 밀가루 대용식으로 짜장면이 언급되면서 중국 음식점에 가자는 운동이 일어났지요.

또 서민들은 하루하루 빠듯한 가계를 이어갔지만, 뭔가 특별한 날 외식을 즐기고 싶을 때 주로 찾은 곳이 바로 중국 음식점이었어요. 외식거리로 값이 저렴하면서 집에서 먹기 힘든 별식, 일탈의 음식으로 딱이었던 거죠. 그래서 졸업식 날이면 중국 식당은 꽃다발을 든 졸업생과 학부모들로 북적거렸고 생일, 운동회, 이삿날 등 특별한 날이면 어김없이 짜장면을 먹게 된 것입니다.

저는 1분 1초가 아까운 산업화 시대에 딱 맞는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재료가 준비된 상태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3분, 먹는 데도 얼마 걸리지 않죠. 배달의 문화를 처음으로 만들어낸 것도 저였어요. 단 한 그릇이라도 주문하면 어디든 빠르게 배달됐지요. 중국 음식점이 늘어난 데는 화교들의 고단한 삶도 연관이 있습니다. 1950~60년대 중국 대륙의 공산화와 한반도의 남북 분단, 한국 정부의 ‘화교의 토지 소유 금지 정책’ 등으로 생계가 어려웠던 화교들이 호구지책으로 찾은 게 중국 음식점을 차리는 거였거든요. 통계에 의하면 1948년 332개소였던 중국 음식점이 1972년엔 2,454개로 늘었습니다. 그 수요를 보고 한국인들도 짜장면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유니짜장, 쟁반짜장, 삼선짜장…. 21세기 들어 더 다양해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저의 종류도 다양해졌지요.

1990년대 후반에는 ‘블랙데이(4.14)’까지 생겨서 놀랐어요. 발렌타인데이(2.14)와 화이트데이(3.14) 때 초콜릿이나 사탕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나요.

“짜장면 시키신 분~” 하며 저를 넣고 어디든 같이 다녔던 철가방은 2009년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 선정한 ‘코리아 디자인 목록’ 52개 가운데 하나로도 꼽혔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문화인류학적 소산이라 할 만큼 완전한 디자인’이라는 게 선정 이유였습니다.

고단했던 반세기를 한국 국민과 동고동락해오다 보니 저를 소재로 삼은 영화, 드라마, 연극, 동화, 노래, 소설, 시도 많이 등장했습니다. 이제 다양한 음식 문화들 속에서 외식의 왕자라는 절대 권좌의 자리는 내려놓게 되었지만, 그래도 언제나 저를 사랑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짜장면박물관. 짜장면의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인천시 중구 선린동 일대 차이나타운에 있다. 2012년 4월, 20세기 초 세워진 한국 중화요리사의 상징인 공화춘(근대문화재 제246호, 1983년에 폐업) 건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고빈의 동물 사진

소녀와 염소 :
라자스탄, 인도. 2007.
벽을 움푹하게 파놓은 것은 제단(벽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제단에 제물을 놓고 제사를 지내는 일은 일 년 중 단 며칠에 불과하다. 제단은 제사 지낼 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시간은 염소들의 안락한 휴식처로 사용된다.

살구꽃 :
셰헬리, 아프가니스탄. 2007.

소녀가 환하게 웃으며 들고 있는 것은 살구나무 가지다. 살구꽃은 벚꽃과 비슷한 시기에 피어나며 생긴 모습 또한 비슷하다. 여름이면 꽃이 피었던 자리엔 어느덧 살구가 영글고, 누구나 손만 뻗으면 살구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 먹다가 남은 것들은 건살구로 말려 겨우내 먹는다. 살구씨는 기름을 짜서 약으로 쓰고, 씨앗 안에 행인은 말려서 유용한 식량으로 쓴다.

당나귀의 일상 :
라자스탄, 인도. 2003.

당나귀는 세탁소에서 일을 한다. 아침 일찍 빨래를 싣고 빨래터로 갔다가 오후가 되면 햇볕에 잘 마른 빨래를 싣고 다시 세탁소로 돌아온다. 하루 일과를 마치면 주인은 당나귀에 물린 재갈을 풀어준다. 자유의 몸이 된 당나귀는 마을 이곳 저곳을 마음껏 마실 다니다 해가 저물면 세탁소로 돌아간다.

해변의 개 :
푸리, 인도. 2003.

인도양을 접하고 있는 이 바닷가 마을은 항상 순례자들로 넘쳐난다. 순례자들의 중요한 의식 중 한 가지는 바닷물에 몸을 담그는 침례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이나 동물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도 잊지 않는다. 침례의식을 마친 순례자들이 옷을 말리는 동안 동네 개들은 순례자들 주변을 서성거린다. 누군가가 던져줄 자비로운 빵을 기다리며….

나는 동물이 좋다.
순수한 눈동자를 가진 그들은
인간이 빚어낸 선함과 악함이 스며들지 않아
말과 말, 생각과 생각 사이에서
오해하고 상처받고, 또 슬퍼하지 않는다.
넘치는 말도 없이, 생각의 흔들림도 없이
나도 그들처럼 있는 그대로의 순수가 되고 싶다.
내 마음은 그들에 동화되어
덧없는 생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고
진정 평화로울 수 있었다.

바둑이와 아이들 :
폰티체리, 인도. 2005.
인도의 개들은 대부분 주인도 없이 거리에서 태어나 거리에서 살아간다. 인도 친구에게 물었다. 왜 인도의 개들은 주인이 없느냐고. 그런데 친구는 오히려 “왜 개에게 주인이 있어야 하는가?”라며 되물었다. 그렇다. 비록 거리에서 태어났지만 당당히 자신의 삶을 헤쳐가고 있는 저 생명에게 굳이 주인이 필요한 것일까? 그 삶의 주인은 바로 그 자신일 텐데….

꽃과 고양이 :
라다크, 인도. 2005.
고작 세 가구만 사는 히말라야 오지의 작은 마을. 마을엔 네 명의 아이들과 잿빛 고양이 한 마리도 살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고양이를 데리고 와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영문도 모르고 붙들려온 고양이는 사진을 찍는 내내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편, 아이들은 카메라에 담긴 자신들의 모습을 보며 마냥 즐거워했다. 오지 아이들이라 사진에 찍혀본 일도 거의 없었을 텐데 들꽃까지 꺾어와 멋진 연출까지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그러한 천진무구한 순수가 고양이를 움직인 것일까? 마침내 고양이는 그윽하게 꽃향기를 맡는 포즈까지 취하는 것이었다.

사진가 고빈님은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대학과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습니다. 인도, 네팔, 몽골 지역 등을 여행하며 사람과 동물의 삶, 그 주변의 모습을 친근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건축가 이타미 준

‘물·바람·돌의 건축가’로 불리는 건축가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 40여 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해온 그를 기리는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사람들에겐 낯선 이름이지만 그는 2005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예술문화훈장을 수상하며 세계 건축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어 2010년 한국 국적의 건축가로서 일본 최고 권위의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을 수상하며 일본 건축계에서도 대가로 인정받았다. 자연 앞에 겸손했던 그의 건축은 흙·돌·나무 등 날것의 소재에 빛과 바람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공간을 빚어냈고, 따스한 온기를 담은 건축을 탄생시켰다. 그가 직접 말하는 건축과 인간, 자연에 대한 이야기다.  정리 김혜진 & 사진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건축은 자연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제주도 한라산 중턱에는 특별한 건축물이 하나 있다. 하늘의 교회, 이른바 방주 교회다. 창세기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 건축물은 마치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건물의 지붕은 건축가가 지난하게 고민했던 흔적들을 말해준다. 반짝이는 은빛 철제 지붕은 제주도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의 표정 – 날이 좋은 표정, 흐린 날의 표정 – 등 자연의 모습이 그대로 온전히 담겨지는 것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 그는 한국과 일본 경계 사이에서 늘 이방인의 시선을 받았던 건축가였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존재의 근원에 관심을 갖게 했다. 그것은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일본의 수많은 건축가들은 풍부한 기술로 첨단 건축을 선보였지만, 그는 사물 본래가 가진 모습을 그대로 담으려고 노력했다. 자연은 그에게 최고의 건축 소재였던 것이다.

“건축의 경우에도 의식적으로 흙, 돌, 금속, 유리, 나무 등의 소재를 콘크리트와 대비시킨다. 유리를 통해 비쳐 드는 빛으로 인해 빛나는 금속, 그런 것들에서 소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나무나 돌은 시간의 추이에 따라 거뭇거뭇해지고, 금속은 녹이 슬면서 색이 변하고, 유리의 빛 역시 계절의 변화에 따라 변한다. 예술은 태어난 곳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것이다. 유럽 여행을 하면서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내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일이다. 내가 너무나 감탄한 것은 비 갠 후 물기를 머금은 돌바닥에 비친 기둥들이 만들어낸 빛과 그림자의 아름다움이었다.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 아름다움은 인간의 작위보다 자연이 오히려 한층 더 놀라운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뒤 어떤 형태로든 내게 영감을 주었다. 지금도 그때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하늘의 교회(방주 교회). 2009.
제주도의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을 건축으로 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을 볼 수 있다. 물 위에 떠 있는 배처럼 보이면서 대지 지형이나 주변 자연과 일체화 되는 형태를 추구하였다. 사진_김용관

“건축가는 도공의 마음과 같이 무심(無心)으로 건물을 만들어야 한다”

이타미 준은 고미술 수집가로도 유명하다. 1968년 처음 한국을 방문한 이후로, 매년 한 달에 3~4번씩 꾸준히 한국을 방문했던 그는 한국의 미를 추구했던 건축가였다. 우연히 본 조선 민화에 매료된 이후 민화를 비롯한 고가구와 벼루, 신라의 불상, 그리고 조선시대의 백자 등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 영감을 주었고, 우리 문화재를 적극적으로 수집하기에 이른다. 특히 “진품 백자를 만나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는 고백처럼, 백자는 그에겐 또 다른 스승이었다.

“백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우윳빛 표면을 손으로 만지면 저절로 달라붙는 질감…. 그 온기와 자연의 미를 건축 속에 담고 싶다. 조선 민화나 고가구, 백자 항아리처럼 튀지 않고 자연과 환경에 스며들어 빛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게 내 건축이 지향하는 것이다. 특히 긴장을 풀어주는 은은함을 지닌 조선 자기는 현대 건축에서 가장 부족한 온기와 소박함을 가르쳐준다.”

이타미 준은 ‘이 시대 마지막 아날로그 건축가’라고 불릴 정도로 손의 감각에서 비롯되는 건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치 도공이 도자기를 빚듯이, 손으로 스케치를 하고 드로잉을 했을 때라야 질감 표현과 온기를 담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구상 단계에서부터 구현될 건축을 최대한 사실에 가깝게 표현함으로써 철저히 아날로그 감성을 지키려고 했다.

포도호텔. 2001.

지붕 곡선은 흡사 제주의 산이나 민가, 또는 제주 오름처럼 보인다. 주 출입구 앞의 두 기둥에는 돌, 철판, 나무가 사용되어 기둥 하나에서도 ‘소재의 미’를 발견할 수 있다. 제주의 토착성과 지역성을 건물 형상과 재료 그리고 내부 공간에까지 담으려 했다. 사진_준초이

석 미술관. 2006.

시적 환상을 품은 돌의 공간. 어두운 박스 안 꽃잎 모양으로 열린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빛의 움직임은 사람들에게 환상의 공간을 느끼도록 해준다. 사진_김용관

“건축가는 겸손한 자세로 대지를 대하고 건축을 해야 한다”

특히, 수(水)·풍(風)·석(石) 미술관은 하나의 자연이자 예술이 되는 건축을 꿈꿔왔던 그의 건축 철학이 가장 잘 녹아 있는 건축물로 손꼽힌다. 당시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로 미술관 짓는 것을 고민했던 건축주에게 그가 제안한 건 새로운 형태의 미술관이었다. 그것은 관리가 따로 필요 없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자연인 물, 바람, 돌을 수집한 미술관이었다. 천장이 뚫린 덕분에 물과 하늘이 만나고, 갈대밭의 바람 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어두운 박스 안 꽃잎 모양으로 열린 구멍을 통해 빛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는, 수·풍·석 미술관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탁월한 사상에는 체온 같은 것이 있고, 탁월한 건축에도 따스한 체온이 있다고 생각한 건축가 이타미 준. 그는 인간이 그러하듯 건축 역시 땅에서 와서 땅으로 돌아가는, 영원한 자연에 비하면 잠깐 왔다 가는 아이 같은 존재라고 여겼고,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겸허한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건축은 인간에 대한 찬가이자 자연 속에서 인간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바치는 또 다른 자연이었던 것이다.

건축가 이타미 준은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나 1964년 무사시 공업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4년 뒤 이타미 준 건축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주로 자연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흙, 돌, 나무 같은 소재로 사람의 체온이 느껴지는 건축들을 발표한 그는 ‘현대 미술과 건축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03년에 프랑스 국립 기메 미술관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대표작으로는 <먹의 집> <석채의 교회> <엠 빌딩> <온양미술관> <포도호텔> 등이 있습니다. 이 글은 <돌과 바람의 소리>(학고재) 등을 토대로 정리했음을 밝힙니다.
이타미 준을 기리는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이 오는 7월 27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제5전시실에서 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