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나를 자꾸만 붙잡아두던 것들을 시원하게 버린 사람들의 버렸기에 얻은 자유와 평화, 그 유쾌한 이야기들.

 

머릿속 잡념들을 TV 전원 끄듯 꺼버리다

이영순 43세. 공무원. 대전시 서구 둔산동

살아 있다는 자체가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기에 먹고 입어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고, 자식 교육도 시켜야 했다.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 청소하고, 반찬 만들고…. 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일상들이 나에게는 참 버거웠다.

배 과수원집의 3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체력이 너무 약했었다. 부모님조차 나에게 그 무엇도 바라는 마음이 없으셨던 거 같다. 그저 내가 숨 쉬고 살아 있는 자체만으로도 대견해하신다 할까. 과수원이 엄청 바쁠 때에도 나한테 맡겨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맡겨지더라도 “엄마 힘들어” 하면 바로 “쉬렴!”이라는 말이 떨어졌다.

그렇게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결혼을 하고 직장 생활까지 겸하게 된 것이다.

첫아이를 낳을 즈음,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 집안일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자신의 공부만 할 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부하 직원의 일까지 하다 보니 둘째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앉아서 밥을 먹을 수도 없고 누워 있으면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직장 생활이 보람 있는 것도 아니었다. 대다수가 나의 위치를 낮게 취급했고, 항상 대접을 받으려고만 했다. 내 존재 가치가 이 정도밖에 되지 못하나? 마음이 참 힘들었다.

병가를 내고 허리 치료를 받은 후, 다시 복직해야 했는데, 계속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나 싶어 눈앞이 깜깜해지고 가슴이 꽉 막혔다. 이런 힘듦 속에 있을 때 친구 소개로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다. 그래, ‘과감하게 버려 보자!’ 생각했다. 살면서 쌓아온 기억들, 그로 인해 뼛속 깊이 배어버린 관념과 관습들, 현재의 삶에 집중할 수 없게 하는 것들을 버리는 수련이었다. 집중 수련을 마친 후 생활 속에서 늘 수련하는 마음으로 살고 싶어 내 나름대로의 방법도 생각해냈다. 내가 TV를 보고 있을 때 TV 속 사람들이 가짜이듯이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을 TV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전원을 꺼버리는 것이다.

‘난 여태까지 힘든 일을 해보지 않았어!’라는 생각이 들면 내 머릿속의 TV를 끄듯 꺼버렸다. 그렇게 머릿속의 잡념들이 사라지니 마음도 편해지고, 힘들었던 일도 점점 수월해졌다.

직장에서 상대가 나를 무시한다고 여길 때, 자존심이 상하고 열등감에 시달릴 때, 이건 가짜지 하며, TV를 끄듯 그 생각을 버렸다. 집안일을 할 때도 이 일을 했더니, 너무 피곤해! 하는 마음을 껐다. 이걸 하고 또 다른 일을 해야 하는데 하는 부담도 하나 둘씩 지워나갔다. 남편에 대한 원망과 미움, 그리고 집착, 남편이 나의 부모처럼 모든 걸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 들 때도 역시 내 머릿속의 TV 전원 스위치를 꺼버렸다. 그렇게 내 머릿속의 쓸데없는 잡념들을 TV 전원을 끄듯이 계속 꺼나갔다.

마음이 가벼워진 만큼 미워했던 사람도 항상 좋은 마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하는 감정들에 이끌리지 않고, 마음 없이 대하다 보니 그 사람들이 모두 좋은 사람들이 되어가는 듯했다. 버리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싶다.

하늘의 해, 달, 별들이 ‘하루 종일 비추고 있으려니 힘들어’라는 마음 없이 그냥 있듯이, ‘그냥 산다는 것’,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전미경 작. <티움> 모시에 나뭇잎, 풀꽃. 36×33cm. 2005.

 

버렸다, 식탐(食貪)!

국승철 59세. 자영업. 서울시 구로구 구로동

워낙 식성이 좋아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나는 항상 식탐에 시달리는 편이었다. 어렸을 때 너무 가난한 환경에서 못 먹고 자랐던 우리 세대의 한이라고 할까. 음식의 질에 상관없이 일단 배가 채워져야 하는 것이다. 음식을 남긴다는 걸 거의 죄악으로 생각했기에, 회식 자리에서도 뒤처리를 하는 사람은 나였다. 덕분에 음식을 준비한 분들에게는 인기 짱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배가 부른데도 끝까지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배가 고플 때면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집에는 항상 먹을 것이 풍족하게 있어야 하고, 밥을 배불리 먹고도 또 다른 빵이나 후식을 먹어야 하는 나.

이렇게 먹을 것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먹는 것 앞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싶고, 먹을 것에 초탈하고 싶었던 나는 나중에 단식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몇 년 전, 직장에서 퇴직하면서 그 기회가 왔다. 퇴직을 변화의 계기로 삼기로 한 나는 그 시작으로 식탐을 버려보기로 했다.

처음 단식은 아내가 먼저 시작했다. 인터넷으로 하루하루의 몸 상태를 상담하고 지도받으면서 일상생활을 똑같이 하는 생활 단식이었다. 아내의 단식을 도와주면서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를 은근히 염탐했다. 준비 단계를 거쳐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내의 단식 과정을 보면서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입으로 들어가는 건 생수와 죽염뿐이라 뱃속은 당연히 텅 비어 있어, 음식 냄새만 맡아도 환장할(?) 상황일 걸로 짐작했는데 아내는 너무도 태연히 아침저녁 가족들 식사 준비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해주는 게 아닌가.

‘저 사람에게 저렇게 독한 면이 있었던가,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구나, 큰일 났다, 이제 와서 결혼을 무르자고 할 수도 없고…. 어쩌랴 이미 엎질러진 물인 걸.’

아내는 단식을 시작하니까 식욕 자체가 없어져서 음식을 봐도 아무렇지 않다고 했다.

이윽고 나도 단식을 시작하고서야 그 상황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나 역시 하루 종일 물과 죽염만 섭취하면서 일상생활을 똑같이 하고, 거기에다 의무 사항인 1일 30분 운동까지 하는데도 배가 고프다는 느낌도 없고 음식을 봐도 먹고 싶다는 식욕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속이 비워지면서 편안함마저 느껴졌다. 단식을 하면서도 친구들과의 모임에도 나가 술과 안주 대신 생수만 마시면서 ‘위하여!’도 하고 2차까지 따라가 분위기를 맞춰주니, 친구들은 “저놈이 저렇게 독한 놈이었냐”는 소리를 해댔다.

단식에 고비가 많다는데, 이상하게 나에겐 고비가 없었다. 3일 계획을 10일로 연장해 도전했다. 단식이 계속되자 그동안 과잉 섭취되어 내 몸 안에 쌓여 있던 온갖 독소들이 분해되면서 나는 냄새는 스스로도 견디기 힘들 만큼 역겨웠다. ‘정말 몸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많이 먹기는 먹었구나.’

그저 입을 즐겁게 해준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내 안에 채워 넣기만 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다. 한편으로는 비움으로써 내 몸 안에 쌓여 있던 해로운 물질들이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숙변이 나오고, 아랫배도 서서히 들어가고 10kg 정도 감량이 되었다.

단식은 나의 식탐 습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먹는 것을 다스려봤다는 것, 어떤 것을 한번 끊어봤다는 경험은 삶에 대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3년 후에 또 한 번의 단식을 했고, 내년에도 다시 할까 생각 중이다. 몸이 비워졌을 때의 즐거움을 알기에 평소에도 적게 먹는 소식을 즐기고 있다.

 

전미경 작. <축제> 종이에 나무껍질, 씨앗. 24.5×28.2cm. 2006.

 

‘왕년의 나’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다

하영준 45세. 기업인. 베트남 호치민 12군

1993년, 내 나이 스물아홉 살, 대기업 그룹 내 최연소 현지 법인장으로서 카자흐스탄에서 근무했다. 현지 법인을 설립하고 여러 해외 국가들과 인연을 맺으며 나름 최고의 자리에서 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잘나갈 줄 알았던 내 인생에 고비가 찾아왔다. 이후 개인 사업을 시작했는데, 약 10여 년 남짓 운영해오던 공장에 화재가 나서 완전히 다 태워 먹고, 지분을 넘기고 투자를 받은 회사가 기업 사기꾼들에게 당하는 바람에 회사를 송두리째 빼앗긴 것이다. 이를 만회하고자 소송을 시작하였고 관련 관공서를 수도 없이 찾아다니며 2년여간을 진행하였으나 끝내 아무 득도 없이 합의를 보는 것으로 허무하게 끝이 났다.

항상 남보다 앞서 살아왔고, 옳다고 믿는 바를 이루어내지 못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동안에 내가 쌓아온 성취가 고스란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이제까지의 내가 이루어 놓은 것들이 너무나 허무하고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곧 마음을 추슬렀다. 과감히 그것들과 결별하고 인생의 제2막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것이 누구의 잘못이면 어떻고, 누가 나쁜 사람이면 또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 옛날을 곱씹으며 세상을 탓하고, 남들을 탓하지 말자, 이제 내가 가진 쓸데없는 자만심과 미래에 대한 욕망을 과감히 벗어 던져버리고, 지금의 굴욕과 두려움과 질시는 기꺼이 받아들이며 다시 준비하자고 다짐했다. 과거에 잘나갔던 것이 무슨 소용인가.

어느 회사의 면접을 보게 되었다. 그 회사는 해외 시장 개척 업무가 꼭 필요한 곳이었다. 나는 “그곳이 어디이건, 회사가 원하는 곳, 회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곳으로 가겠습니다”라고 했고, 베트남 지사장으로 가게 되었다.

나에게 특별히 부여된 임무는 현지(LOCAL)업계 시장 개척이었다. 한 달간의 본사 교육 기간, 나는 내가 접해보지 않은 새로운 분야였기에 시작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해도 뜨지 않은 사무실에 누구보다도 일찍 나와서 제품에 대한 공부와 베트남어를 공부해 나갔다. 저녁이면 생산 부서로 뛰어가 야근하고 있는 분들과 실제 제품 조립도 같이 해보면서 지식을 습득해 나갔다. 그리고 2010년 7월, 마침내 베트남에 도착하여 지사로 들어서니 정리되지 않은 기계들과 치우지 않은 나무 박스들로 뒤엉켜 마치 시골 농기계 판매점 같구나 했는데, 바로 정전이 되었다.

“음… 그래, 이제 베트남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모든 것이 낯선 환경, 하지만 우물쭈물할 시간이 없었다. 이제 처지가 바뀌었으니 아무리 하찮은 일, 아무리 큰일도 거리낌 없이 해나가야 했다. 현실적으로 현지 업계 개척을 위한 준비 상황은 너무나도 열악했다. 현지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여건과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현지인을 같은 인간으로 대해 주는 것이 시작이었다. 먼저 조직을 개편했다. 최대한 현지인들의 자율성을 존중해주었고, 새벽부터 최소 5개~7개 업체를 매일같이 밤낮으로 방문하면서 영업의 기본기를 알려주었다. 이렇게 3개월여가 지나자 직원들의 수도 늘었고, 이전에 4시 반이면 퇴근하던 현지 직원들은 저녁 7시가 넘어서까지도 내일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1년 상반기 베트남 판매 실적 1위, 판매 신장률 1위 등 엄청난 성과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도 더 많고 힘겨운 과제와 도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나간 일과 옛날의 나, 나의 경력과 업적이 오히려 우리의 실행을 방해한다는 생각도 든다. 옛날에…, 왕년에…, 내가 무엇을 할 줄 아는데, 나의 경력은 어떠어떠한데, 그런 사실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나의 미래를 옥죄일 뿐이다.

지금 ‘얼마나 멋진 삶을 살아가느냐’는 ‘얼마나 <내가 왕년에…>를 버릴 수 있느냐’인 것은 아닐까.

 

전미경 작. <여명> 삼베에 나뭇잎, 풀꽃. 65×53cm. 2005.

나를 자꾸만 붙잡아두던 것들을 시원하게 버린 사람들의 버렸기에 얻은 자유와 평화, 그 유쾌한 이야기들.

 

그 추억의 보물상자를 버리다

남명희 49세. 주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난 20년 가까이 일기를 썼다. 나의 일기를 모아 환갑 때 출판기념식을 하리라 기대하며.

결혼 후 두 아들을 키우면서는 나중에 남겨주려고 사진도 많이 찍으러 다녔다. 앨범뿐 아니라 육아일기도 몇 년에 걸쳐 썼다. 기록하는 습관에 자부심을 갖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두 아들을 데리고 설악산으로 등산을 떠났다. 혼자 남은 난 집안을 확~ 뒤집기로 작정하고 묵은 짐을 다 끄집어냈다. 상자째 쌓아놓은 책들, 아이들 장난감 상자, 방 하나가 마치 창고처럼 어수선했던 터라 어지간한 것은 다 버릴 참이었다. 맨 아래 구석진 곳에 포개져 있던 라면 상자 두 개. 열어보니 온통 손때 묻은 노트, 메모장들로 가득했다.

서른 살까지의 내 청춘의 독백들, 결혼 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던 일기장 상자였다. 이사 다닐 때마다 상자째 끌고 다녔던 짐, 행여 누가 보면 어쩌나 싶어 상자에 넣어둔 채로 짐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내겐 너무 소중한 보물인 줄 알았던 일기장들. 기록들 사이로 파노라마처럼 추억들이 지나갔다. 춘천 어느 레스토랑에서 냅킨에 적어놓은 날짜와 동행했던 친구의 이름 약자. 아래쪽엔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또 어느 장에는 부모 곁을 떠나 살던 때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멀리 있는 벗에게 썼던 미완성의 편지 등도 있었고, 어느 장에는 책에서 본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기도 했다. 유행하던 노랫말, 말려서 붙여 놓은 단풍잎이나 꽃잎들, 거기에도 날짜와 생각들이 적혀 있었다. 공연 입장권, 영화표 등을 붙여 놓은 장에는 관람 소감이 빼곡히 적혀 있기도 했다. 또 어느 장에는 산 정상에서 머리 흩날리며 찍은 사진도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신문 기사들까지도 사이사이 다 붙여져 있었다.

그래, 이때는 참 많은 시간을 일기 쓰기에 쏟았지. 돌이켜보니 일기는 내게 비밀 은신처와 같았다. 세상과 마음을 활짝 열고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자꾸만 과거를 붙잡아 놓고 그 속에 숨으려 했던 흔적이었다.

과거의 사연들과 이틀을 보내면서 현재의 내 삶을 돌아보았다. 나는 언제나 그 순간을 살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기록을 남기기 위한 삶. 그 순간이 멋있었다기보다 일단 그럴 듯하게 포장한 후, 재구성된 과거를 보며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느새 10권도 훨씬 넘게 모아둔 가족 앨범들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 사진을 참 많이도 찍었지. 순간 마음에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기록을 위해 현재를 과거 속에 파묻는 것과 같은 짓을 하고 있구나. 항상 “여기 서봐, 이쪽을 보라구, 움직이지 말구, 잠깐만….” 그렇게 현재보다는 기록에 치중했으면서 그 기록들 또한 짐짝처럼 여겼었다. 내 마음을 가두고 박제해둔 상자들, 현재의 나를 그 속에서 꺼내는 것만 같은 체험이었다.

일기를 상자째 버렸다. 그리고 두 아들의 사진도 앨범 한 권씩만 남기고 과감하게 폐기해 버렸다. 책들까지 싹 정리하고 나니 그 홀가분함이란.

이후 나는 일기나 사진 대신 아들의 건강하고 밝은 미소를 더욱 보려 한다. 그리고 자주 웃는다. 여드름이 송송 난 얼굴, 겨드랑이에 털이 많아서 고민이라는 작은아들의 사춘기는 카메라로는 찍을 수 없는, 기록을 위해 멈출 수 없는 현재다. 멈칫거리던 일상의 흐름이 물처럼 바람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해진 건 버려본 후에야 깨달은 소박한 기쁨이다.

 

전미경 작. <나무에 걸린 초승달> 종이에 풀꽃. 36×33cm. 2008.

 

권위와 자존심 버리고 진짜 교사가 되다

김민정 33세. 초등학교 교사. 부산시 해운대구 제송동

심호흡을 하고 교단에 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담임을 맡게 된 김민정 선생님입니다.” 나하고 고작 11살 차이 나는 이 녀석들이 나의 첫 제자들이다.

“선생님이 처음이라 모르는 것이 많아요. 여러분이 잘 가르쳐주세요~.” 이 말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그때는 정말 몰랐다. “선생님~ 애인 있어요?” “선생님~ 어디 살아요?” “선생님~ 우리 자리 좀 남남 여여로 바꿔요.” “선생님~ 청소는 이렇게 하는 게 좋겠어요.” “숙제는….”

30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처음이라 잘 모른다는 선생님을 말 그대로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임 교사였던 나는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아이들이 대견하고, 선생님을 예쁘게 봐주는 게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착하고 어린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자 또한 만만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자기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나에게 제재를 가했다. 농담 따먹기로 분위기를 흐리고, 선생님의 훈육을 장난으로 받아넘기며 무시하기도 했다.

마냥 좋게만 대하면 큰일 나겠다 싶었다. 선생님으로서의 권위와 자존심을 세우려면 좀 더 무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따끔하게 혼을 내고, 정색을 하며 수업 분위기를 잡았다. 아이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고, 아이가 내 뜻대로 따르게 만드는 것만이 교사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2년여의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나는 한 번도 아이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를 내기에 앞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순전히 아이들의 입장에서.

거짓말을 하는 아이도, 선생님을 무시한다고 여겼던 행동도, 알고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아이의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그 마음을 몰라주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이처럼 만들었다는 걸 안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기분이 안 좋아 있는데 아이가 즐거워서 떠들면 선생님한테 반항하는 거라 생각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하고, 교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존심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누르고 윽박질러야만 교사로서의 자존심이 세워진다고 생각했다니…. 아, 나는 정말로 교사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잘못 알고 있었구나. 지금까지의 태도를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8년, 지난 3월이다. 하루 종일 만화책만 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어르고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다. 시종일관 교사는 무시한 채 자기 할 일만 한다. 전담 수업 시간에 또 노래를 부르며 수업을 방해했다고 해서 아이를 불렀다.

“OO야,  전담 수업 시간에 왜 노래를 불렀니?” “심심해서요.” “그랬다면 선생님은 참 속상하구나, OO가 원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아이가 아닌데, 다른 친구들은 다 공부하는데 혼자 노래를 불렀다니. 방해가 될 거란 생각은 안 들었니?” “사실은. 새로운 선생님이 오시니 흥분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노래가 저절로 나왔어요.” “그랬구나. OO는 기분이 좋았겠지만 그 선생님과 친구들에게는 몹시 방해가 되었단다. 다음부터는 어떻게 해야 할까?” “노래 안 해야 돼요.” “흥분되는 마음을 좀 참아볼 수 있겠니?” “네.”

사실 그 아이는 선생님을 무시했던 것이 아니라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것이다. 몇 개월을 지나며 보니, 관심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표현의 차이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기를 바라고, 그것을 잘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가르쳐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이다.

해마다 나는 제자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진심으로 마주하는 순수한 아이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잘못된 자존심은 버리고 교사로서의 진짜 자존심을 갖춰가면서 비로소 가질 수 있었던 기쁨이다.

 

전미경 작. <별과 꽃과 사랑의 이야기> 삼베에 풀꽃. 36×33cm. 2005.

 

내가 버린 건 잡동사니만이 아니었다

전정민 29세. 직장인. 대구시 달서구 성당동

언제나 내 방은 잡동사니로 가득 차 있었다. 학교 준비물, 문제집들, 인형, 장난감, 갈아입으려고 꺼내놓은 옷들…. 어지르기만 할 뿐 치우지 않으니 늘 지저분했다. 내가 잠잘 공간만 겨우 남아 있는 내 방은 내가 보기에도 어지러웠다.

“제발 좀 치워라, 정신 사납다”는 소리를 항상 들었다. 그런 소리가 듣기 싫어 치워야지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크게 불편하지 않았기에,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오랫동안 안 입었지만 언젠가는 입을 것 같은 옷들, 예전에 쓰던 노트, 학년이 바뀐 교과서까지 정이 많이 들었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했다.

반면 친언니는 어릴 적부터 정리 정돈의 달인이었다. 언니는 쓰지 않는 물건들을 정리해서 수시로 버리는 게 생활화되어 있었다. 공짜로 주는 사은품이라도 필요하지 않으면 받지 않았다. 불필요하다고 여기면 아무리 새것 같아도 바로 버렸다. 덕분에 언니의 방은 늘 깨끗했고,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대조적인 방의 모습처럼 언니와 나의 성적도 차이가 났다. 학교 성적이 상위권인 언니는 미술 대회, 주산 대회에 나가서도 늘 수상을 하였다. 반면 비슷하게 노력하는 것 같아도 나는 한 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어느 날이었다. 도저히 안되겠다고 여겼는지 언니는 내 방을 정리해주기 시작했다. “지금 방의 모습이 나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거야.” 언니는 청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명하면서 내 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한 오래된 교과서들, 노트, 필기구들, 어린 시절 재밌게 보던 만화책, 시간이 훌쩍 지난 과월호 잡지들, 오래된 옷들…. 그런 것을 언니는 큰 가방에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나는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나중에 볼 거란 말이야.” “나중에 입을 거란 말이야.” “이건 버리면 안 돼, 이것도 안 돼…”를 외쳤지만 언니는 막무가내였다. “이거 네가 입은 거 몇 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거든, 그럼 앞으로도 안 입어” 하며 큰 가방에 집어넣었다. 어느덧 언니의 큰 가방에 가득 들어찬 내 잡동사니들, 언니는 무겁디무거운 큰 가방을 메고 홀연히 사라졌다.

터엉~! 좁아 보이기만 했던 방이 훤하게 넓어져 있었다. 순간 내 시야도 넓어지는 것 같았다. 일주일 정도 오래된 물건과의 헤어짐에 허전했지만, 곧 비워진 공간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었다. 언니가 큰 가방 안에 넣은 건 단지 잡동사니들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언니 말처럼 버려진 물건을 다시 찾는 일은 없었다.

그 후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은 정리 정돈 하는 습관이 생겼다. 필요 이상으로 잡념이나 고민이 많았던 나는 청소를 하고 정리 정돈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해결책이 떠오르거나, 씻은 듯이 고민이 사라져 버리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더욱더 정리 정돈의 재미를 느꼈다.

시험 성적도 예전에 비해 내 자신이 만족할 만한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같은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니와 내가 왜 그렇게 성적 차이가 났는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물건에 대한 미련과 집착들로 나는 항상 산만했고, 언니는 언제나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내 삶에 가장 필요한 건 바로 ‘버림과 비워냄’일 거라 믿는다. 비어 있을 때 비로소 진정 소중한 것들로 채울 수 있으니까.

 

전미경 작. <무지개 뜨는 언덕> 모시에 나뭇잎, 풀꽃. 36×33cm. 2005.

버리고 비우는 웰빙라이프의 지혜 (14)

“제가 다음 생에서 사람으로 태어날까요?”

할머니는 쌀을 한 움큼 쥐어, 꽂아놓은 바늘 끝에 쏟는다.

“쌀알이 바늘 끝에 서면 얘기해.”

“어떻게 그렇게 돼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란다.

그래서 한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 값진 것이야.”

영화 ‘황구의 동굴’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기까지는 3,000년의 시간이 걸린다고도 하지요.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가장 축복받은 삶이라고 합니다.

그 축복받은 삶을 충분히 누릴 수 있으려면,

먼저 자신이 태어난 이유와 목적을 명확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을 풍경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내 인생에 오직 한 번뿐인 이 순간, 나의 내면과 깊숙이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부디 내가 태어난 이유와 목적을 찾으시기를….

 

 

빼기가 나를 바꾼다

부끄럼쟁이 ‘홍당무’

반장 선거에 출마하다

 

어릴 적 나는 울보에다가 고집도 세고, 언니가 가진 건 나도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 되는 욕심쟁이였다. 게다가 낯가림은 둘째가라면 서러워서 제일 두려운 게 명절 때 친지들이 모두 모이는 것일 정도였다. 학교에서 발표라도 하려면 목소리가 떨리고 얼굴부터 빨개져 ‘홍당무’라는 놀림도 받았다. 남 앞에 잘 나서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고 그런 애들을 볼 때마다 나 자신은 싫어졌다.

그러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 엄마의 권유로 마음수련 청소년 캠프에 가게 되었다. 소심함과 부끄러움이 제발 없어졌으면… 항상 바랐는데 마음을 버릴 수 있다니!

수련을 하면서, 그동안 여러 번 전학을 다니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기적이고 정 없는 친구들, 남을 의식하는 마음, 소심한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마음도 있었다.

‘남들한테 잘 보이고 싶은데…’ ‘애들이 왜 이렇게 쌀쌀맞지?’ 그런 생각들 때문에 항상 머뭇거리고 뒤로 숨게 되었던 거였다. 이 사람은 이래, 저 사람은 저래, 내 멋대로 쌓아둔 변덕스러운 마음들이 길가의 쓰레기보다 더 더럽고 쓸모없게 느껴졌다.

그런 가짜마음들을 다 버리고 2학기를 시작했다. 나는 반장 선거에 출마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물론이고 가족들까지 방학 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저의 튼튼한 다리가 반쪽이 될 때까지 우리 반 50명과 선생님의 다리가 되겠습니다.”

선거 연설을 하는데 하나도 떨리지가 않았다. 친구들은 나를 뽑아주었고 그 후로 매년 학급 임원을 맡고 있다. 고1 때부터는 사물놀이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부장을 맡아 북도 가르치고 봉사 활동도 한다.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은 버리고 따듯한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 챙겨주니 후배들도 나를 ‘아빠(^^)’라고 부르며 잘 따른다.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더러운 거? 씻으면 되잖아. 내 마음이 더 더러운데’ 무대에서 춤을 출 때도 ‘부끄러움? 원래 없는 거잖아’ 생각하니 뭐든 할 수가 있었다.

친구들이랑 얘기를 하다 보면 학교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나 부모님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한다. 그럴 때마다 그런 마음을 버리면 된다고 이야기를 해준다. 잡생각도 스트레스도 버리면 없는 거라고 하면 친구들도 금방 이해를 하는 것 같다.

내 인생에서 마음수련을 만난 것은 말로는 다 표현 못 할 만큼의 설렘과 감사함을 합쳐놓은 것이다. 앞으로도 많은 친구들이 함께 마음을 버려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고 자유롭게 생활했으면 좋겠다. 마음수련 FOREVER!

김소선 고등학교 2학년.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일산동

빼기의 건강법

마음을 비워요,

공황장애 따위는

미미해지리니…

 

학교를 졸업하고 금융권에서 일하게 되었다. 월급은 많았지만 그만큼 혹독한 환경이었다. 여직원의 근무 태도와 성과를 매달 평가해서 공개적으로 등급을 매겼다. 나는 시제 금액의 1원까지 맞춰가며 매번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금융계 감사에게 칭찬받을 정도로 완벽을 추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거칠게 몰아쉬어지고 팔다리가 경직되는 것이었다. 손가락과 팔목이 마구 돌아가고 혀도 마비가 되어서 꼼짝할 수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와중에도 정신은 또렷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고 그 생각이 강해질수록 호흡도 가빠졌다. 응급실에 실려가 위기는 모면했지만 그 이후로도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으면 호흡 곤란이 왔다. 오감이 예민해지면서 말초신경이 경직되고 내가 이러다 잘못되는 건 아닐까 부정적인 생각들이 겹치면서 불안감이 가중됐다.

그러던 중 착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다. 누가 보아도 행복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만 움직여도 금방 피곤해지고 몸살을 앓았다. 일년에 반 이상 감기를 달고 살 정도로 면역력이 떨어졌고, 몸을 사려야 한다는 생각에 내 몸을 더 금덩이처럼 보살폈다. 많이 힘들고 지치면 어김없이 과호흡 증상이 나타났고 또 과호흡을 하게 될까 두려워 나를 더 아꼈다. 그럴수록 체력은 더 떨어지는 바보 같은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이삼 년간 고생을 하다가 지인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어릴 적 풍족하지 못한 가정의 장녀로 태어나 무언의 책임감을 항상 마음에 지고 살아왔다. 완벽주의 때문에 나는 물론이고 세상 어떤 사람도 내 기준으로 바라보고 내 틀에 맞추려고 했었다. 열등감이 너무 많아서 그걸 감추려고 모든 걸 다 잘해야겠단 그 마음이 나를 더 구속했었다는 것도 알았다. 당연히 스트레스가 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련을 하면서 그 모든 것이 나의 좁은 마음그릇 탓임을 알게 되었다. 속 좁은 내 틀과 욕심, 세상을 향한 원망을 버린 만큼 마음은 여유가 생겼고 스트레스는 내가 만드는 거지, 이 세상에는 원래 없는 것이구나, 모두 다가 내 욕심 때문에 그랬구나라고 마음으로 진정 깨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상하게 과호흡 증상이 없어졌다.

지금은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도 다음 날 거뜬히 일어날 만큼 체력도 좋아졌다. 정말 모든 병은 마음에서 온다는 말을 확실히 안 것 같다.

요즘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을 보면 연예인들도 종종 공황장애를 겪는다고 한다. 마음수련 몇 달만 하면 깨끗이 없어질 수 있을 텐데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공황장애는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알고 근본적인 마음의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느새 난 힘들 줄만 알았던 임신도 하고 지금은 17개월 된 사랑스런 아들과, 수련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는 신랑과 함께 세상에 고맙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이런 벅찬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자체가 세상의 기적인 것 같다.

민정현 35세. 경남 창원시 진해구 석동

-참, 허란 -가자 가자

참, 허란

 

산 것이고 죽은 것이고

있는 것이고 없는 것이고

세상에 있으면 참이고

세상에 없으면 허이라

영원히 살고 있고 없어 없고

세상에 있어 있고

세상에 없어 없다

세상에 있는 것은 있고

세상에 없는 것은 없다

수많은 이야기가

세상에 없어 없고

세상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라

다 이룬 자는 완전한 세상 난 자요

못 이룬 자는 완전한 세상 나지 못한 자라

자기의 영혼이 우주의 영혼으로 거듭나야

죽지 않고 살 것이다

가자 가자

 

인간 생에 가졌던 미련과 일체를 두고

영생불멸 신의 나라 가자

인간의 세상에서 가졌던 수많은 것들이

나의 마음에 가짐 되어 있는 것을 버리고 버리고

나가 없고 참만이 있는 세상서 다시 나

새 사람인 새 몸 마음으로 다시 나 살아야 영생불사신이라

인간세상의 것이 하나도 없고

생로병사 희로애락 칠정오욕이 없구나

있어도 있음 속에 있지 않고

살아도 삶 속에 있지 않고

인간의 관념인 수많은 이것이다 저것이다가 없구나

신의 마음은 아는 것으로부터 일체를 떠난 마음이라

신의 마음은 없는 마음이라

없다는 것은 있되 그 마음이 완전하여 없는 것이라

말만 듣던 천국은 사람의 마음이

대우주의 정신 된 자가 가고 있는 나라라

글, 그림 우명

우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외에 영역판 <World Beyond Worl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등 다수가 있습니다.

“I am happy to meet the kids at Seung Ga Won because I can help them”

“I am happy to meet the kids at Seung Ga Won because I can help them”

Young Duk Lee (19), Senior in Chung Ryang High School, Seoul

Young Duk Lee has been suffering from an chronic case of scoliosis.

Young Duk has had more than ten major operations since he was six years old, and he thought he could do nothing in the world like normal people. He had to stay in his bed, just lying there, and the pain was unbearable. He thought, ‘Why must I have to suffer from this pain? Why was I born when I cannot give even the smallest bit of help in the world?’ All that filled his mind was negative thoughts. However, when Young Duk followed his mother’s suggestion he volunteer at Seung Ga Won, a social welfare organization, he met kids who were younger than him and who were going through many severe illnesses. For just the small help Young Duk gave, such as simply playing with the kids or helping with their homework or helping during mealtime, they would say, ‘thank you, that must have been hard work,’ and they would have big smiles on their faces and rub his back for him. Young Duk was happy to find out for the first time in his life that he, too, can give hope to someone else.

Now the smile never fades from Young Duk’s face, because he has friends whom he can help also.

“Thank you Mom” “I love you, my daughter-in-law”

Mechie Maglinte(25) from the Philippines and her mother-in-law, Young Hee Woo(56)

Three years ago Mechie Maglinte married her Korean husband, who had been studying in the Philippines.

At first, she was afraid of her mother-in-law, who was against the marriage. However, after she got married, Mrs. Woo treated her very kindly. When the young bride could not eat the spicy food, Mrs. Woo cooked dishes that were not spicy; or when Mrs. Maglinte returned late from work, Mrs. Woo would pack small dishes with food for her dinner. In this way Mrs. Woo helped Mrs. Maglinte get used to her new life in Korea. Also, Mrs. Maglinte proudly says that Mrs. Woo was a great help when her mother in Philippines had eye surgery, and that she even remodeled the home in the Philippines because the house was very hot.

It is difficult to find a mother-in-law who knows what her new daughter-in-law wants and how she feels. Mrs. Maglinte is always happily thinking about how she can be a better help to her mother-in-law.

We put our arms around each other every day.

Photograph by

Jong Sun Lee

 

Without a word, we understand each other.

‘Thank you, for holding my hand.’

Photograph by

Mi Shik Shin

What hard work it will be to hang

that large thing there.

We should help him, for he is our family.

Photograph by Sun Geu Kim

We come from the one source.

We mustn’t forget that.

Photograph by Sun Geu Kim

Who talks about cat-and-dog life?

Photograph by Min Ho Lee

Teens from different countries are dressed up

in the Korean traditional clothes and form the country’s map.

Oh, look! Ulleung Island and Dokdo Island are holding hands!

Photograph by Sun Geu Kim

Everything forms the immense life, which we call the universe.

All of us are brothers and sisters

The scientific reason that we are one

Jesus said if anyone follows the will of God then

everyone is a sister or a brother, even though they are not related by blood.

Furthermore, he said to love even your enemies,

that though they are enemies or evil, they can still be my brothers and sister

when they repent and follow the will of God.

What Jesus is emphasizing is that all of us can become sisters and brothers.

Interestingly enough, the idea has a scientific basis.

Let us analyze the parts of our bodies such as bones, eyes, hair, flesh, muscles, stomach, intestines and kidneys. If we split the internal organs and the tissues into the smallest unit, we find out they are composed of chemical elements which modern science has already discovered.

Looking at proteins first, which compose our body, we find they are composed of amino acids linked like a chain. Amino acids are composed of chemical elements like carbon, hydrogen, nitrogen and oxygen. Consider that all humans die. When a human body dies, it decomposes and disappears, regardless of whether it is cremated or buried. The chemical elements, which were linked together to form the body, return to nature via the air, earth and water. This might be where the phrase, “whoever is born to the earth shall return to the earth” came from. In the same sense, the body returns to nature and changes into another form. The chemical elements that returned to nature may become components of fertilizers after a long period of time, or become new molecules after they go through many chemical reactions; and some of the molecules will turn into ingredients of the food we eat. A mother who eats the food and takes in the nutrition gestates a baby in her womb. With the nutrition, and via cell division, the baby grows into human form. When the baby is born, it grows up and will return to nature in the form of chemical elements or molecules at some point. In other words, while our appearance is different from each other due to the genes we received from our parents being different, the components of our bodies are the same. These components represent the chemical elements from nature; and this is why all of us are brothers and sisters. In this way, everything in the universe is connected to one another, and nothing in the universe exists alone. Everything forms the immense life, which we call the universe.

Sang Wook Kang author of Science both Jesus and Buddha love

Here is a conversation they had about how two people at opposite ends of the world came to be one.

A model student and a bully come together after cleaning their minds Joong Won Park and Joe Young Kim

Edited by Hye Jin Kim, Photography by Sung Hoon Hong

 
A model student and a bully met.

Joe Young Kim and Joong Won Park, so different are their personalities, hobbies, interests, views of love and relationships that their ways of thinking and their values stand at opposite poles. There was not any similarity between the two. However, through their journey of subtracting their minds, they gradually came to know each other. They found ways they were similar, and built a close friendship, like brothers. Without ‘Maum Meditation’ such would never have been possible.

Here is a conversation they had about how two people at opposite ends of the world came to be one.

 

“I was a studying robot.” “I belonged to a motorcycle gang.”

Kim When I was in school, studying was the only thing I did. I studied every night, and even on Sundays.

So my nickname became the studying robot.

Park You did? I was into motorcycling when I was in ninth and tenth grade.

So I did not go to school much, but rather hung out with other kids in the motorcycle gang. My parents were busy so they rarely stayed at home. So my friends came to my home often. When they ran away from home, they all came to my home. It was a house for runaway kids. Haha!

Kim I was afraid when I saw people like you at school. It was difficult to become close to them. (He smiles.)

Park Well, you know, we didn’t mess with model kids. They are strange beings, so different from us.

Kim Yeah, you are right. By the way, did you have any troubles with your friends?

Park I think I didn’t care about other people at all. I cared only about how noble I was.

Proud kids are like that, you know. No matter what other people said to me, I would think, “You can live your life that way. I am noble and will live my own way.”

Kim Really? Then it is surprising you practiced Maum Meditation.

ParkI went to Maum Meditation Youth Camp when I was in the ninth grade.

I couldn’t continue meditation because I have to study for college and serve the army. Then one day my mom asked me to do Maum Meditation, saying that it was her only request. It was the first time my mom had asked me something so earnestly. She always just accepted whatever I did. Even when I smoked at home, she just changed the ashtray without a word. So I could not refuse her request. That was after I had just finished my service in the army. I was all prepared to have great fun at last, and it was torture to sit and meditate. I thought, “What am I doing. I should be at the club right now.” (He smiles.) That was when we first met.

Kim You’re right. I was in my first year in medical school. My first meditation practice was when I was a junior in high school.

I thought that if I put all my time in studying I would get the highest grade in my class, but I could never be the top of my class. It seemed like one of my classmates was playing all the time, and got the best grades. I was irritated, and a sense of inferiority bothered me. I thought, “This is not even a life,” and I was depressed. Around that time my dad started Maum Meditation and I was able to start as well.

Park So when did you become a model student?

Kim When I was in the 5th grade in elementary school I was left out of everything by my classmates.

After that, it was heartbreaking when my friends didn’t like me. I think I tried to be nice to everyone. And then, when I did well in my math class, they paid attention to me, so I thought, ‘this is my shield.’

Park I am the only son in my family, so they overindulged me when I was young.

But when I entered elementary school, the school teachers did not treat me the same way my family did. I guess that hurt me. I started to build up pride, and as early as the fifth or sixth grade I made my own gang. Ha! That is what a sense of inferiority is, the thought that I am vulnerable but the world hurts me. In reality, it was I who took in that mind. Starting from the ninth grade, I met a group of friends and begin to fill in the emptiness my sense of inferiority made. I blackmailed kids and acted like a gangster. I was doing what you did through studying.

Kim Right. It was all about inferiority.

Park Because I lacked something, I tried to fill that need, and because I was weak and needed more, I tried to fill it even more.

I feel other people’s mind naturally and can understand them

Kim Since now I could see that mind that I had, I had to get rid of that mind.

Then I realized the mind was gone; it really was no longer there and only the universe mind was left, and I could really be at ease. Often I pretended to be so kind, but after I threw that away, I could deal with my friends very easily. I started not talking so seriously, and I could listen to what other people said.

Park As we throw away such minds like pride or inferiority, our mind grows larger to the extent we throw away.

Quite naturally I no longer offend people, and become more conscious of other people. I used to dump my cigarette butts anywhere, but these days I look for trashcans. When I talk to people too, I can feel their mind naturally and I don’t say hurtful things anymore.

KimI had a classmate whom I could not understand. He drew so much attention in a strange way.

But as I looked back on his behavior during meditation, I realized that it was his own way to become close to people; just like I tried to be acknowledged by my studiousness. He was the same as me, and there was nothing great about me that I should judge him. After all, it was I who was wrong. Ever since then I get along well with him.

Park When I get rid of my prejudice of someone first, then the person is at ease in his treatment of me as well.

Kim I agree. You were scary when I first saw you with your eyes glaring. (He smiles.)

But you came up and talked to me first. At some point I began to feel very comfortable around you and to like you.

Park When I started the meditation I was too busy throwing away my mind, and didn’t have a chance to look around.

Then I saw you meditating so diligently, and thought I should work hard like you.

Kim I learned a lot watching you being so confident in whatever you do and being flexible dealing with everything all the time.

I’m not good at those things.

Park When we practice Maum Meditation, we break down the wall we built around us, and everyone can get closer to each other.

Also, at school I find myself taking the lead. My GPA used to be just 1.3, but at some point I received a full scholarship and my grade was the highest in my department; all within the six months I practiced Maum Meditation! I made such a dramatic change. You did too, right? I was surprised when you danced at the Maum Meditation University Club. You are a great dancer.

Kim Am I? (He smiles) Actually, I was very jealous of those kids at school who got up on the stage,

singing and dancing so well. I thought, ‘I want to be up there, but I won’t do as well as they are doing. I should just keep studying’; and so I just stood there as shy as a kitten in a strange room. But once I realized that was also just a frame which locked me in, I tried to escape from the frame.

From a 1.3 GPA to a full scholarship student, from a kitten in a strange room to an expert dancer

Park When I do things to break out of my frame, the process itself is fun regardless of the result.

As I began doing the meditation, I also began to regret the way I lived. I began to study, and maybe because I no longer had distracting thoughts I could easily understand things in an academic sense.

Kim I agree. I, too, am becoming more and more certain about studying oriental medicine.

Oriental medicine deals with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the body and mind, and yin and yang; and we understand those things naturally as we do our meditations.

Park If you do Maum Meditation, engineering is a piece of cake. It just becomes so easy.

In a thick text book, there is only one page to memorize. Principles of engineering are the principles of the world. When you hit something, it breaks and when you rub something, it gets hot. That’s all. (He smiles.) Before, I would attempt to read the original text, but after reading two or three pages I would give up. But now, I can grasp what i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the book and memorize the formula. Then I am able to solve two or three questions in the exercise. Once I make the questions mine, I skim through the book from the beginning, then I can understand everything. It’s like I become one with the book. (He smiles.)

Kim That’s incredible. How much did your grade improved?

Park After I did the meditation, my GPA was never lower than 4.3. (The full GPA score for universities in Korea is 4.3 or 4.5)

Kim Isn’t that almost all A+? Wow! As you said you become one with the book,

How great it will be if we become one with everyone. When I meditate I see that all of us, my friends and I came from the universe, but why can we not live in peace but fight instead? There are so many religions, and divisions among political parties. I wonder why there are so many judgments.

Park Just like we did, everyone should start by throwing away their mind.

We know when we throw them away, that we are one from the beginning. If people can get out of their own perspective and live as the universe mind, then there will be no division among people and everyone can live well. I think that subtraction is the only way.

Kim You are right. That is the key. Subtraction!!

-春夏秋冬


春夏秋冬

華やかな春の日に陽炎があちこちに立ち 背負子(しょいこ)を背負った人はツツジの花を摘み 若菜を採りに出た娘たちは向かいの村の畑で ツツジやヨモギを摘んで 山菜で風呂敷をいっぱいにして頭にのせて?ってくる 村の岩場の泉では 女たちが洗濯をしており 川?では、春の陽?にあらゆる草木が芽を出している 暖かい春には、?畑に畝間が作られ 空にはヒバリがさえずり ?畑の間に?をこしらえたヒバリは 家が?されはしないかと心配している まだ??の施されていない新しい道路には白い埃が舞い上がり 時おり車が通り過ぎ 川のほとりでは貝を採っている人もいる 花煎遊びに興じながら、男女が?をつぶしてス?プを作り 色も鮮やかなチマチョゴリを着た少女たちが 木につるしたブランコに?っている 過ごしやすい春の季節はかつて端境期と呼ばれ 食糧が不足し、食事もまともに取れない人?がいた そのため野草を漬け物にして 飢えをしのぐことも多かった 春が過ぎ、夏が訪れると、山河に樹は?く 牧童たちは山や川に牛を預けたまま 一日じゅう水遊びをして 手足をすっかりふやかせている 他?へ出た兄弟たちが時おり故?を訪ねれば みながあれはどの家の誰?だとわかる 牛に飼い葉をやって家に?ると 子供はカボチャの?煮とそばを 夢中になってかき?んで空腹を?たしている 畑には??が伸び 豆や綿が伸び育ち 山河にはさまざまな墓があるが どの家の誰の墓なのかまでわかる 市場までは一里あまりの距離だ 入り用の品をその市場に買いに出て、?ってきたと思ったら 穀物を?った金で酒を買い へべれけになって手ぶらで?ってきた旦那を 隣の家の女房が叱りつけている 蚊取り線香で少しは蚊から?になれるが それがなければ蚊たちは情け容赦ない 老いも若きも夜には友と語り合い 同じ年頃の男女が一?になって遊んでいる 秋には運動?、仲秋節があり 春夏に育てられた?は 鎌で株ごとに刈り取られ田んぼに積み上げられている 夏には??としていた樹木にも紅葉が色づき始め 草たちも?色い?いを見せ 風も?く吹き始める頃 冬がもう訪れる 冬には薪を集め 夜はキムチを?み食いして、また?肉も?み食いして ?りの下で花札に興じる 夜更けに人?が?る頃には部屋はすっかり冷えきっている はるか遠くの異?の地にも 春夏秋冬がある所もあれば 夏しかない場所もあり 春や秋はなく、夏と冬だけの場所もあり この世にはじつに??な場所があるものだ 若い頃、よく登山をしながら 自分なりに人間の無常さに思いを巡らすことが多かった 春の山河、夏の山河、秋、冬の山河 何度登ってもその山は違うのだ 名高い山の絶景は、まるで神仙が遊ぶ場所のようだった 小さな?から?てみると、ここアメリカは大きく?い ここで、私の意志である、人類が一つとなり あなたの??私の?の?別がない世界を私は作っているのだ

文と? ウ?ミョン

ウミョン(禹明) 韓?にて生まれる。長年にわたって生と死、人生について深い考察を重ね、1996年、?理に?して心の目を開く。同年、「マウンスリョン」を創始。現在はアメリカを中心に世界各?でセミナ?、講演等を精力的に行なっている。著書に「この世界に生きずに、永遠なる幸福の?へ行って生きよう」「本物になれる所が本物だ」「生きて天の人になる方法」他多?。

-Spring, Summer, Fall and Winter

Spring, Summer, Fall and Winter

On a bright spring day, a heat wave undulates; A person comes bearing an a-frame on his back Laden with the azaleas he has picked. The single ladies who have gone to forage for wild edible herbs Pick wild chives and mugwort leaves in a neighboring village field, And come back bearing huge filled baskets on their heads. The married women of the village are doing their laundry in a rocky spring And thanks to the spring air, all sorts of things are sprouting by the stream. When warm spring comes, Men walk in the furrows between the barley fields, But worried that its house built there will come to harm, A lark cries from up in the sky. Once in a while, cars pass by on the new unpaved road, Raising up a cloud of dust. Near the river, there are people digging for clams While the single men and women catch chickens to cook porridge And partake in a traditional pastime of looking at flowers And eating flower pancakes. There are girls swinging on a tree swing, wearing brightly colored han-bok clothing. The lovely season of spring is called the barley hump, Because during this time there are people who do not have enough to eat; Often they can only fill their bellies with seasoned wild herbs. When spring passes, and summer arrives, The trees in the mountains become a lush green, And the children who should be tending the cows, Leave them to graze in the pastures and play in the water all day, Their hands and feet becoming swollen and shriveled like prunes. When from time to time men who have gone abroad come back home,

Everyone knows which families they belong to and who they are. When they return home after the cows are fed, and the hay has been collected, They eat pumpkin mush and noodles, wolfing it down as fast as they can. In the fields, the rice shoots that were planted in the spring are growing, While in another plot, bean and cotton plants are thriving. In the mountains, there are graves here and there, And it is easy to find out whose graves they are, from which family. A man returns from the market that is a few miles away; He comes back drunk and empty-handed, Having spent all the money that was earmarked for groceries. It was earned by selling his precious produce, And his wife’s raised voice can be heard, scolding him. The mosquito smudge drives away the mosquitoes for awhile, But without it, they come back in droves. At night, both the young and old gather with their friends to talk, And the single boys and girls gather together to play. During the fall, there are sports days and the harvest festival, And the crop planted in the spring and summer Are gathered bale by bale, then spread out in the field. The trees that were green in the summer Begin to turn red and orange, While the grass changes to a faded yellow. When strong winds begin to blow, It signals the beginning of winter. In the winter, people go to collect firewood, And at night, they sometimes steal kimchi to eat, Or even chickens, and play cards under a kerosene lamp. Late at night, when they are ready to head home, The floor has cooled and is chilly. In foreign lands, far, far away, Some places have four seasons – spring, summer, fall and winter. In some places it is summer all year long, And there are other places that have only summer and winter, But no fall or spring. There are many different kinds of places in the world. When I was younger, I often went hiking, And in my own way, thought a lot about the futility of life. The scenery of the mountains was always different, In spring, in summer, in fall and winter, No matter how often I went. Famous mountains gained their fame For being similar to the haunts of divine beings. America seems so big and wide to me, Because I come from a small country. Here in this place, my will, my purpose will be fulfilled: A world without divisions between nations is being made, And mankind will become one.

Drawings and writings of Woo Myung

Woo Myung founded Maum Meditation. For his outstanding dedication to the service of humanity, he was awarded the Mahatma Gandhi Peace Award by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ors for World Peace (IAEWP) in 2002.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ooks on discovering Truth including ‘Wisdom for Life’ (1996), ‘The Natural Flow of the Universe’ (1998), ‘True Mind’ (1998),’The Enlightened World’ (1998), ‘World Beyond World’ (2003), ‘Forever Living World’ (2004), ‘The Formula from Heaven that will Save the World'(2005),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2006), ‘The Place where One Becomes Real is the Real Place(2008) and ‘Stop Living on this Land. Go to the Everlasting World of Happiness. Live There Forever(2011).

동네 노는 아저씨의 친절한 고민 상담소

저를 좋아하는 두 명의 남자애가 있어요.
한 명은 인물도 좋고 다 좋은데 취업을 아직 못 했고,
한 명은 의사라서 결혼하기 딱 좋아요.
근데 전 첫 번째 애가 더 좋아요. 어떡하죠?

27살 김OO양 /서울시 강남구 거주 / 사회 초년생

질문녀님은 맘에는 끌리지만 앞날이 조금은 불투명한 분과

느낌은 없지만 안정이 잡힌 분 사이에서 고민하고 계시군요.

첫 번째 외모는 마음에 드는데 술만 마시면 주사를 부린다.

또는 외모도 좋고 직업도 좋은데 7형제의 장남이다. 또는 직업도 성격도 딱인데 외모가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다. 또는 외모, 성격, 직업, 집안 다 좋은데 나한테 관심이 없다. 기타 등등 이런 수많은 경우에 비하면 지금 질문녀님은 아주 간단하죠? 두 분 중에 한 분. 그것도 나를 좋아하는 두 사람이 있다는 건 일단 너무 행복한 일입니다.

두 번째 아마도 질문녀님이 고민하는 이유는 어느 한 분을 선택하게 되면

세월이 지난 후에 다른 선택에 대한 아쉬움의 후회일 겁니다. 하지만 후회 없는 선택은 없습니다. 이 아저씨도 결혼 16년 차 접어들었지만 능동 어린이대공원에서 첫 데이트를 했던 뽀얀 얼굴의 선민이가 생각납니다. 물론 제 아내도 해남 군청 송계장이 가끔 생각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 부부도, 선민이와 송계장이 선택하지 않은 아쉬움과 그리움의 대상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아옹다옹 16년째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 번째 후회 없는 선택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좀 더 나은 선택은 있겠죠.

그 선택의 키워드는 딱 두 글자 바로 ‘추억’입니다. 제가 말하는 추억은 앞으로 둘이서 만들어갈 추억입니다. 눈을 감고 생각해 보세요. 어떤 분과 아침 식사를 하고 싶고 우리 아이를 안고 싶고 우리 집을 장만하고 싶고 10주년 20주년 와인을 마시고 싶은지.

자, 그럼 오늘 당장은 어떤 분과 아메 아메 아메 아메 아메리카노~~ 한잔의 추억을 만들고 싶으세요?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으면 그분과 함께하세요~~.

동네 노는 아저씨 백일성. 올해 나이 41세,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초딩 남매 그리고 1930년대생 부모님과 함께 한집에서 박 터지게 살고 있음. 3년 전 우연히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박 터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됨. 2년 전에는 <나야나 가족 만만세>라는 수필집도 발간했음. 좌우명이라고 할 거는 없지만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자주 들었던 말, “지랄도 많이 하면 는다~”를 한 가지 일에 꾸준히 하라는 말로 새기고 살아오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