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우연처럼 다가와 필연이 되어버린 ‘그대’와의 운명적인 스토리

욕심 비울 때 마주쳐주시는 그대, 산삼

박형중 56세. 산삼감정협회 운영. 서울시 서초구 반포동

그날도 어김없이 집을 나섰다. 평소 산을 좋아해서 주말이면 전국의 산을 다니며 난을 캐곤 했는데, 그날 우연히 산삼을 발견한 것이다! 그 산삼(蔘)은 가족삼이라 하여 엄마삼이 서너 뿌리 되었고 나머지는 자삼 뿌리, 즉 자식 뿌리가 총 열아홉 뿌리였다. 이게 웬 횡재인가 싶어 뛸 듯이 기뻤다.

2년 뒤 내 나이 33살에 본격적으로 심마니 일에 뛰어들었다. 당시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었지만 갑갑함을 느꼈고, 무엇보다 깊은 산 속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 좋았다. 큰돈은 못 벌어도 밥은 먹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해 직장에 과감히 사표를 냈다.

쉽게 뛰어들었다가 몇 달을 못 가서 대부분 그만둔다는 심마니란 직업. 나는 산삼에 인생을 걸고, 동물적인 감각을 키우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삼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전국의 산은 모조리 다니며, 들고 간 식량이 떨어질 때까지 산에서 나오지 않은 일도 허다했다.

하루, 이삼 일은 기본이고, 일주일 혹은 한 달이 넘게, 비닐 한 장으로 나무를 기둥 삼아 텐트를 만들어 지냈다. 수목의 종류, 산의 고도, 주위의 식도, 지형, 바람의 흐름 등이 모두 내겐 공부거리였다. 산삼은 보통 4~11월까지 발견되지만 한겨울에도 부지런히 삼자리를 봐두었다. 겨울은 나뭇잎이 없고 산이 보여 삼자리가 잘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7~8년을 꾸준히 하자 어느 정도 감각을 익히게 되었다. 산에 들어가면 나도 모르게 저절로 발길이 산삼이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런 노력 덕분에 1년에 200~300뿌리를 캘 수 있게 되었고, 2010년부터는 제대로 된 산삼을 보급하고, 무료 감정을 해주기 위해 산삼감정협회도 운영하게 되었다.

산삼은 내게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가르쳐주었다. 특히 위암 말기였던 누나가 산삼을 먹고 회복했을 때의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수술해도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죽음을 준비하던 누이에게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으로 건네주었던 산삼. 정말 기적처럼 누이는 회복했다. 이런 행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소아암 환자와의 인연이다. 8년 전 일이다. 아픈 아들을 위해 산삼을 사고 싶다는 부모의 연락을 받고 병실로 찾아갔는데, 가격이 맞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소아암에 걸린 그 아이, 동환이를 보게 되었다.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를 박박 밀어 새파란 그 아이의 눈이 내 가슴을 쳤다. 그런 아이를 두고 가격 흥정을 하는 게 너무나 부끄러워 그냥 산삼을 전해주고 나왔다. 그 이후 산삼의 10~20%는 저소득층의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전달하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그중 한 사람이라도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동환이가 나에게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작년엔 같은 동네에 살던 백혈병을 앓았던 중학생 아이가 어느덧 취직해서 첫 월급을 탔다며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와 밥을 사겠다고 했을 땐 정말 뭉클했다.

산삼은 곧 생명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어린 산삼을 캐어오는 사람들에겐 혼을 낸다. 10년이 지나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귀중한 산삼이,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그 기회를 빼앗긴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심마니로 살면서 깨닫게 된 것은, 무엇보다 삼을 다룰 땐 욕심 부리지 말고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 심마니들은 민가에 내려와서 잠을 자게 됐을 때, 그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미련 없이 캔 산삼을 조용히 두고 나오는 전통이 있었다고 한다. 행여나 받는 사람이 미안해할까 봐 그 마음조차 일으키지 않도록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도 항상 기도한다. ‘좋은 삼을 보고, 좋은 데 쓰게 해달라고….’ 심마니의 심도 마음 심(心)자를 뜻하듯, 욕심을 갖고 하면 삼을 캐지 못한다. 실제로 손님한테 주문이 들어와서 빨리 캐야겠다는 마음으로 하면 산삼을 캐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정말 희한하게도 마음을 비웠을 때 산삼이 잘 캐진다. 또한 진짜로 필요한 사람한테 주고 싶어 산에 들어갔을 때도 잘 보인다.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하늘은 언제나 먹고살 만큼 내어주었다.

그렇게 우연히 마주친 산삼은 내 인생을 변화시켰다. 아픈 사람에게는 선뜻 내어줄 수 있는 마음, 상대를 배려하는 순수한 마음을 되찾게 해준 것이다.

이왈종 작.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 48×33cm. 한지 부조 위에 혼합. 2007.

나랑 닮았다는 그 사람, 쪼재 형

이연호 22세. 군인. 부산시 연제구 연산5동

작년 10월이었다. 나는 9월 초 입대해서 5주간의 기초군사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3주 동안 내가 배치받은 자대와 관련된 교육을 받을 예정이었다. 나와 동기들은 자대 사람들이 온다는 소식에 들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첫 대면에서 동기들은 긴장한 나머지 얼어 있었다. 순간 나는 내가 분위기를 띄워야 한다는 생각에 질문이란 질문은 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조교들과 교관님 눈에 띄었는데, 그때 한 조교가 날 지목하면서 말했다.

“저 훈련병 자세히 봐봐. 전역한 쪼재랑 똑같이 생겼어!!”

그 말에 조교들과 교관은 날 한 번 훑어보더니 갑자기 웃기 시작했고 나는 영문을 모른 채 어리둥절하게 있었다. 알고 보니 예전에 나랑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조재민!! ‘쪼재’는 그의 별명인데, 나보다 두 살 많고 집도 같은 부산이라 했다.

그때 이후부터 조교들은 모든 질문이란 질문은 나에게 다 하였다. 그리고 훈련 기간 내내 이상한 장난도 많이 쳤다. 나는 ‘쪼재’라는 그 사람이 과거에 안 좋게 해서 조교들이 나에게 화풀이를 하는 줄 알고 불안해졌다. 그래서 한날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질문을 했다. 그때 교관이었던 소대장님의 대답은 이랬다.

“나쁜 사람이었다면 얘기 자체를 꺼내지도 않겠지. 다들 그 사람을 좋아했고 또 그리워하니깐 너에게 관심을 가지는 거다.”

원래 나는 흔한 인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고 살았다. 하지만 누군가와 이렇게 똑같이 생겼다는 얘기를 들은 건 생전 처음이었다. 조금 다른 거라면, 나보다 키가 조금 더 크고, 피부가 더 안 좋아서, 내 얼굴에 귤껍질을 씌웠다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내가 입이 좀 두툼한 편인데, 그 사람도 똑같다고 했다. 그 만화 캐릭터 같은 외모로, 언제나 웃음 메이커였고 분위기 메이커였다고 한다.

무사히 3주간의 교육이 끝나고 자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대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쏠렸다. 다들 ‘쪼재’가 재입대했다, 재림했다 했고, 나를 쪼재 또는 재민이 형이라 불렀다.

“쪼재랑 같이 다시 축구하는 기분이 들어서 즐거웠다”는 선임도 있었고, 전역자들은 “재민이 형 잘 있어. 나 먼저 집에 갈게. 그리고 난 형처럼 재입대하는 일은 죽어도 없을 거야~”라는 말을 하며 떠나곤 했다. 그리고 내가 군 생활 하면서 가장 좋아했던 선임은 자주 이런 말을 했다. “딱 나까지 봤어. 그 재민이 형!”

선임들과 짬밥 차이가 엄청 나는데도 이런 관심을 받으니 솔직히 처음엔 좋았다. 그렇지만 갈수록, “재민이 형은 뭘 해도 잘했는데 넌 왜 이거밖에 못해?” 식으로 비교당하는 일들이 생기자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물론 쪼재 형을 못 보았던 한 선임의 “예전에 조재민의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난 그 사람하고 연호를 왜 그렇게 비교하는지 알 수가 없어. 연호가 훨 귀여운데”라는 말에 조금 위로가 되기는 했지만.

한번은 간담회 때, 고민거리를 말해보라고 하자, 그 사람과 비교당하는 게 부담스럽다 했더니, 최고참 선임이 한마디 했다.

“쪼재는 내 조교였고 항상 잘했다라는 생각밖에 안 들 정도로 잘했었지. 근데 너랑은 다를 수도 있는 건데 그렇게 비교당하는 게 부담스러웠으면 진작 말하지 그랬냐!!”

암튼 그날 이후로 날 그렇게 부르는 사람도 하나 둘씩 줄어들기 시작했고 내 본명 이연호를 찾은 거 같았다. 그리고 이제 ‘쪼재’를 기억하던 사람들도 올해 9월 중순이면 거의 집으로 가버리고 만다. 좀 아쉬울 거 같기도 하다.

어떤 우울한 상황에서도 언제나 개그맨처럼 분위기를 띄워주었다는 쪼재 형, 사람들을 잘 챙기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던 쪼재 형, 사람들 기억 속에 너무나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는 쪼재 형. 이제 군 생활을 한 지도 일년이 다 되어간다. 나도 쪼재 형처럼 선임이나 후임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을까. 휴가나 전역 후에 길을 걷다 나랑 비슷한 사람과 마주치면 무조건 먼저 말을 걸 생각이다. 혹시 그 멋진 쪼재 형일지 모르니까.

“재민이 형, 저랑 같은 동네 산다고 들었어요. 우연이라도 한 번쯤 마주쳤으면 좋겠습니다. 술 한잔 대접하겠습니다. 덕분에 군 생활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왈종 작. <제주 생활의 중도中道> 41×32cm. 장지 위에 혼합. 2011.

두 스님 모두 성불하시기를

이광식 61세. <천문학 콘서트> 저자. 경기도 강화군 내가면

아내가 저녁상에 보기에도 먹음직한 튀각을 올렸다. 가끔씩 대하는 튀각이지만 튀각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다. 20대 초반 젊은 시절, 힘들고 팍팍한 시간에 부닥뜨릴 때마다 나는 늘 버릇처럼 배낭을 꾸려 무작정 집을 나서곤 했다. 텐트와 담요, 석유 버너와 약간의 먹을거리를 챙겨 담다 보면 그것만으로도 배낭의 무게는 내 체력에 부칠 정도였다.

어느 산이었던가? 벌써 여러 날을 산행한 끝이라 체력은 거의 바닥이 났고, 먹을거리도 동이 나 부실하게 점심을 때우고 허적허적 산에서 내려오고 있을 때였다. 오후 해는 서산마루로 달리듯이 기울어가고 피로와 허기는 몰려오는데, 조그만 산사의 마당에서 한 스님이 튀각을 튀기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다.

젊은 스님이 연신 튀각을 튀겨내어 옆의 대소쿠리에다 쏟아붓는다. 배고픈 참이라 여간 먹음직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입을 떼었다.

“스님, 시장해서 그러는데 튀각 좀 주실 수 없을까요?” “스님들 저녁 공양에 올릴 거라 안 돼요.”

더 이상 말을 붙일 염이 나질 않아 주린 배를 달래며 그냥 산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스님들 공양이 중요하지 지나는 나그네 사정까지 살필 여유가 있을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 준비성 없는 자신을 탓할 따름이었다.

튀각 스님을 생각하다 보면 늘 습관처럼 떠오르는 또 다른 한 스님이 있다. 내 나이 일곱 여덟 살 때쯤, 한 스님과 마을 배꼽마당(배꼽처럼 볼록하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에서 딱 마주쳤다. 도시 근교의 시골 마을이었고, 여름 해가 쨍쨍 내리쬐던 한낮이었다. 나는 집에서 좀 떨어진 마을 우물에서 주전자에 물을 길어오던 중이었고, 스님은 등에 바랑을 맨 것으로 보아 나중에 생각해보니 탁발승이었던 듯했다. 스님이 나를 보더니, 목이 마르니 물을 좀 얻어 마실 수 없겠냐고 물었다. 힘들게 길어오는 물을 낯선 사람이 먼저 마시자니 달가울 리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불쑥 내뱉은 말이 이랬다.

“우리 집은 교회 다니는데요….”

물론 거짓말이다. 그 어린 나이에 순간적으로 이런 가증스런 거짓말을 둘러대다니. 나는 어릴 때부터 사악했는가 보다. 스님은 허허 웃더니 발길을 돌렸다.

나이가 들면서, 살아가면서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씁쓸한 웃음을 짓곤 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냥 주전자 뚜껑에 물 좀 따라주면 그만이었을 것을. 여름 땡볕에 탁발을 하러 하루 종일 걸어 다녔을 그 스님이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어린 내게 물 좀 달라고 부탁했을까. 50년도 더 넘는 세월 저쪽의 일이니, 지금은 그 스님도 노스님이 되셨겠지. 물론 맹랑한 거짓말로 물을 거절한 아이와 그 일도 잊어버렸을 거고. 하지만 물 보시가 가장 큰 공덕이라는데, 그것을 매몰차게 거절해버렸으니 나는 극락왕생하기는 애당초 글러버린 것 같다.

튀각을 보면 튀각 스님이 생각나고, 그러면 또 목마른 스님 생각이 난다. 튀각 스님이 내게 튀각을 주지 않은 것은 그 옛날 목마른 스님에게 한 모금 물을 거절한 이 무명 중생에게 뉘우침과 깨달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두 스님 모두 큰스님이 되시어 성불하소서. 합장.

이왈종 작. <자화상> 60×72cm. 장지 위에 혼합. 2012.

버리고 비우는 웰빙라이프의 지혜 (24)

“제가 언제 깨닫게 될까요?”

“보게 될 때 깨닫게 된다.”

스승이 말했습니다.

“무엇을 보게 될 때요?”

“나무와 꽃과 달과 별.”

“네? 그런 것들은 매일 보는 걸요.”

“아니지. 네가 보는 것은 종이 나무와 종이 꽃과

종이 달과 종이 별이다.

너는 실재 속에 사는 게 아니라

네 말과 네 생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승은 덧붙였습니다.

“너는 종이 삶을 살고 있다. 그러다 종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종이 삶이란 생명이 없음을 뜻합니다. 실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저 나무와 꽃인들, 내 개체의 마음세계에서 바라보는 한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내 관념과 틀 속에 가둬놓은 복사물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도 종이 부모, 종이 남편, 종이 아내, 종이 자식, 종이 이웃, 종이 친구들을 보며, 그렇게 종이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요. 내 생각 속, 그 개체의 마음세계에서 벗어날 때, 더 이상 허망하지 않은, 실제 살아 있는 진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빼기가 대안이다

학교가 즐겁고 공부도 스스로 잘하게 되었어요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키워주다

강윤숙 상인천중학교 교사

지금까지 공교육에서는 ‘자기 주도적 학습 방안’을 끊임없이 만들어냈다. 하지만 원하는 만큼의 변화를 이끌어낼 수는 없었다. 그 이유는 대다수가 가치관보다 행동의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람이란 가치관이 변하지 않고는 행동을 변화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아이들의 실천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가치관을 객관적으로 보고, 반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나는 마음수련 교원연수를 받으며 느꼈던 가치관의 변화 경험을 학생들에게 적용시킨다면 학생들도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2009년 4월부터 8개월간 인천 지역 초·중학교 4개 반 140여 명을 대상으로, 마음수련 프로그램을 실행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학습 방해 요인 버리기’였다. 예를 들면 작심삼일 했던 경험, 열등감, 타인의 평가, 싫어하는 과목 등을 집중적으로 버리도록 했고, 학생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반성해 가치관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프로그램을 실행한 교사들의 관찰에 의하면 학급 전체의 성적은 3월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고 학생들의 수업 태도도 월등히 좋아졌으며, 협동학습이 잘되고, ‘왕따’가 없는 반이 되었다고 했다.

즉 마음수련 실행은 생활 면에서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가치관부터 변화시켜 자연스럽게 행동의 변화를 이끌어내므로 스스로 공부하는, 진정한 자기 주도적 학습력을 키우는 대안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려웠던 과목이 쉬워졌고 숙제도 안 밀려요 한 초등학생의 자기 평가

마음 버리기를 하기 전에는 부모님께 많이 혼나고 공부도 스스로 못 하고 학교 오기 싫었다. 그리고 언니한테 대들었다. 또 친구도 별로 없었다. 그리고 마음이 무거웠다.

요즘은 부모님께 별로 혼나지 않고 공부도 스스로 잘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학교 오기 즐거워졌고, 친구도 좀 많아지고 언니한테 대들지도 않게 되었다. 마음수련 하나로 모든 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그리고 내가 달라지니까 상대방도 달라진다. 이젠 생활이 재미있고 즐겁다. 그리고 마음이 가벼워졌고 어려웠던 과목이 쉬워졌다. 또 마음 버리기를 하기 전에는 숙제가 많이 밀렸는데 이젠 숙제가 안 밀려졌다.

자기표현력, 상대에 대한 이해력이 늘었어요 한 학부모의 자녀 관찰 평가지

① 아침에 깨우면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깨우고 일어나고 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에게는 짜증과 화가 쌓이게 되었다. ② 아침밥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는 일이 잦았다. ③ 공부하기를 싫어했다. ④ 손톱과 손가락의 피부를 뜯었다. ⑤ 머리가 자주 아프고, 눈이 잘 안 보인다는 말을 가끔 했다. ⑥ 전혀 대화가 되지 않았다.마음 버리기를 하기 전에는 부모님께 많이 혼나고 공부도 스스로 못 하고 학교 오기 싫었다.

① 아침에 깨우면 쉽게 일어난다. ② 아침밥은 왜 먹어야 하는지 알고 정말 먹기 싫을 때를 제외하고는 꼭 먹고 간다. ③ 학교, 학원 후 자신이 해야 할 과제는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꼭 실행한다. 가끔 공부 양이 너무 많다고 줄여 달라고 타협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완수한다. ④ 손톱과 손가락의 피부를 뜯는 습관이 줄었다. ⑤ 머리 아프다는 말을 가끔 하기는 하지만 예전처럼 많이 하지 않는다. ⑥ 이야기를 유도하면 자기의 생각을 표현하고 엄마의 말을 이해하고 알겠다고 한다.

※이 내용은 2010년 ‘전인교육학회 춘계학술대회’ 때 발표된 바 있습니다.

 

빼기가 나를 바꾼다

답은 마음 안에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누구인지, 왜 태어났고 뭘 해야 되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종교 생활도 해보고 꿈을 통해 자아를 찾는다는 프로그램도 해보고 성경 불경 등 책도 많이 읽었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때 나이 스무 살, 나는 절망스러웠다.

컴퓨터, 피아노, 미술 등 안 가본 학원이 없을 정도로 이것저것 조기 교육을 받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도 없었다.

‘너만 왜 못 따라가냐’는 엄마의 꾸중과 잔소리 때문에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할 때마다 엄청나게 두려워졌다. 어떤 만족도 재미도 없고 발전도 없었다.

내가 누군지, 왜 사는지도 모르니, 게임을 하든, 공부를 하든, 언제 죽든, 나에게는 어차피 다 똑같았다.

그때부터 하루에 12시간씩 게임만 했다. 내가 하는 일이라고는 잠깐의 운동과 게임, 그리고 밥 먹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생활이 인생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건 이미 알고도 남을 나이였지만,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그저 게임을 하는 순간에는 현실을 잊어버릴 수 있었기에 나에겐 가장 편안했던 시간인 셈이다.

그렇게 1~2년을 폐인처럼 보내다가 군대를 갔다. 그런데 전역 후 집에 왔더니 엄마가 악마에서 천사로 보일 정도로 많이 바뀌어 있었다.

온화해진 엄마는 그동안 마음수련을 하셨다고 했다. 엄마의 변화에 놀라, 나도 그해 여름, 마음수련 대학생 캠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마음을 버리자 평생 궁금했던 인생의 질문들이 하나씩 해결이 되었다. 희망의 빛이 보였다.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왜 태어났는지 그 답을 찾다니,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도 나 하나만을 위해 살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으로부터 왔고 세상 모두의 도움으로 여러 번 죽을 뻔했던 고비도 넘기며 여태까지 살아왔는데 그 고마움도 모르고 ‘부모님은 왜 나를 낳았을까’ ‘집을 뛰쳐나갈까’ 등 부정적인 생각만 많았다.

수련을 할수록 그런 마음이 버려지면서 매사에 긍정적인 면을 보게 되었다. 건강하게 낳아주고 키워주신 것에 대해 부모님께 감사했고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도 처음으로 느꼈다.

혼란했던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가 되면서 앞으로 나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모두를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목표가 명확해지니 자신감도 붙었다.

지금 우리 집은 너무나 평화롭다. 부모님은 화내실 일이 없고 나는 게임할 일이 없다. 예전에는 게임을 하면서 힘든 현실을 잊었는데, 이젠 버리면 되니까 현실에서 도망칠 필요가 없다. 항상 혼자 있고 싶었는데 이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좋다. 어느 것에도 구애받지 않으니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너무나 편안하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뭘 해야 될지 그것은 누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비워진 마음 안에 답이 있다. 마음을 버리는 방법을 알게 해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허현식 25세. 영남대학교 무역학과 3학년

참세상에 가려면

새소리가 나누나

이 황량한 사막에도 새가 있고

뱀과 사슴 노루가 있고

다람쥐 쥐도 있구나

비가 오지 않아 나무는 살아 있되 억세고

가시나무로 변하여 있구나

물기가 있는 계곡에는 풀과 나무가

키가 물먹은 만큼 커 있구나

사람이 사막을 이용하여 사는 것은

이 사막이 날씨가 좋고 건조하여

늙은이는 신경통이 없고 혹한이 없어서이라

수많은 오랜 세월 속에 살아온 모든 것은

생명이 없어졌고 형상도 없어졌고

본래인 자연으로 되돌아갔구나

이 대자연에 본바닥인 정신이 있어

대자연이 나왔고 본바닥의 주인이 사람으로 와야

본바닥의 나라에 세상에 있는

만상과 사람을 본바닥으로 데리고 갈 것이라

일체의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세상의 일체를 다 부수고 없애면 본바닥만 남아라

본바닥의 주인이 마음속에 있게 하면

만상은 또 세상은 부활이 되어

본바닥의 재질로 거듭날 수가 있는 것이라

사람의 의식이 죽어 있어

본바닥에 이르지 못하고 자기의 마음속서 사니

이것이 허상이고 이것이 지옥이라

자기의 마음의 세계에 살아

그 속서 윤회 윤회를 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그것이 고통 짐이라

살아서 이 마음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자기가 없으면

본바탕을 볼 수가 있고

본바탕에 갈 수가 있고

본바탕의 주인이 살게 하여 주어야

본바탕의 나라에 살 수가 있는 것이라

이것이 구세주가 와야

세상을 구원할 수가 있다는 뜻이라

거듭나고 다시 난다는 참인 진리의 재질인 영혼으로

거듭나고 다시 나야만이

그것이 참 거듭 다시 나는 것이라

인간이 세상 나 갈 곳이

자기의 마음속의 참의 나라고

자기의 마음속의 참의 나라에

거듭나는 것이 인간이 가야 할 곳이라

산천에 나무가 살다가 늙어 죽어지고

산산이 부서지면 없어지고 우주가 있듯이

이 세상의 일체가 없어져도 우주는 있는 것이라

그 없어지지 않는 만상의 본바탕인 재질로

거듭 다시 나야만이 인간이 영생불사신이 되어

나 속의 참 나라에서 죽지 않을 것이다

살아서 나 속의 참 나라에 부활이 된 자는

이 몸은 성전이고 법당이라

그 속에 참인 나가 살아 죽음이 없을 것이라

만상은 마음이 없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나

인간은 자기의 마음속에서 살고 있기에

참인 자연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자기의 망념의 마음속서 고통 짐을 지고 살아가니

이것이 지옥이라

천국은 나와 나의 마음의 세계 밖에 존재하는 이 세상이라

나와 나의 마음의 세상이 없고

참세상에 되돌아가서 거기서 참세상의 주인이

다시 거듭나게 하여

그 나라 살게 해야 살 수가 있는 것이라

글, 그림 우명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외 영역본 등 다수가 있습니다.

Gwang Yong Lee, Shipbuilder

Mr. Gwang Yong Lee, a shipbuilder for 19 years,

had been living with hard times due to the problems with his family and job when suddenly his wife passed away.

What is it to live? What is it to die?

When he was sinking deeply into loneliness and sorrow, he encountered Maum Meditation.

As he meditated, he came to see the cause of why he was living in agony.

He said he recovered hope in life by completely escaping from his own mind world.

Here is the happy story of Mr. Lee, who now says

“I am happy whenever and wherever I am as I have found my original mind.”

My job is building ships. A ship passes through many processes in the course of production, and my role is to inspect the quality of the vessel in pre- and post-painting.

In Geo-je Island, there are vessels from many countries, not only from South Korea but also from overseas, such as Greece and Great Britain. Ship owners from each country come to supervise the process. Car owners buy a complete, finished product. But ship owners oversee the whole process from construction to the final stages. The ship owners hire the inspectors for electricity, electronics, engines, exteriors, interiors and painting to inspect the ship and make sure it is being well built. Our company provides the technical advice; but most of all, it is especially important to mediate between the ship owners and the shipyards.

I first came to know about Maum Meditation at a subcontractor’s office that I often visited. The atmosphere in the office was very good. I could see the employees working their hardest, no matter if the boss was present or not. It was quite different from other companies I visited. I often felt they were good-natured and sometimes even envied them. After a while, I found out that the boss was practicing Maum Meditation.

As I had a lot of stress at that time, I just started the meditation. What made me feel the worst was my wife’s condition; she was seriously ill. Why couldn’t I have done my best when she was healthy? On one of those days when I was overwhelmed with belated regrets, my wife passed away. The futility of life that I felt as I said goodbye to my wife gave me a feeling of desperation, and I had a guilty conscience that I could not really understand even her, the person who was the closest to me. That I had lived through hardships for my family was also merely a thought that I had held onto only for my own sake. During my meditations I could not help but throw away everything, even that which was buried at the bottom of my mind. Everything was simply because I had lived so wrongfully. I saw that everything about me was pretentious, self-centered and selfish. That’s why I so desperately threw everything away.

When I was in elementary school my grandparents passed away, and I was filled with futility because I realized that just living a life did not have much meaning. Death was the biggest enigma that I ever wanted to solve, but there was no way to solve it; and eventually I quit trying. I vaguely set a life goal of being happy and comfortable when my time came to pass away. Although I strived to reach that goal, the outcome of my life was opposite of my will for my life, and I wanted to escape from the life I had.

While meditating, I found a lot of inferiority and guilty conscience inside me. I was the eldest of the four siblings, yet the mind that I could not make my family safe and secure remained deeply rooted in my mind. As the eldest son I was supposed to help support my mother on behalf of my father, who had passed away at an early age. Even though I was well aware of my duty, in reality I just did what I wanted to and regretted it afterwards. And I treated my wife the same way.

I just saw myself as being so small and immature because I had not done one thing in my life properly. All those things had remained within me as minds and became my guilty conscience. I had never sincerely coped with those things, so I hid behind an unchanging face. You cannot imagine how ashamed I was. As I threw away those minds the enigma and my curiosity about death was solved. Before Maum Meditation I thought that death was when the body dies. However, at the very moment I realized the originally existing universe mind is me and not my body, I overcame my fear of death. So, for the first time with a calm conscience, I could truly let go of my wife. I felt as though she actually left me, having given me the answer to my questions. Although she has taken off her body, I believe that we can be together forever. If I hadn’t done Maum Meditation, I would have been unable to function properly in my life. Fortunately, as I continued to throw away my mind I overcame my agony and my work life became good as well.

For me, Maum Meditation is truly a salvation. Before, living was just like hell. Without the reason and purpose of living, I just lived in lonely empty solitude; feeling as if the routine would be endlessly repeated. As soon as I found Maum Meditation, my life, my mind, has changed.

Stress is ultimately the mind world that you have made. I guess I was able to continue to meditate because I knew that to the extent I discarded my mind I could become freer and happier. The best part of finding Maum Meditation is that I have come to have a purpose and hope for life, and the faith that I could do anything cheerfully and joyfully when I completely escaped from the world of my mind. I have seen the light that there is a method, and that method is in Maum Meditation.

Stress is ultimately the mind world that you have made. I guess I was able to continue to meditate because I knew that to the extent I discarded my mind I could become freer and happier. The best part of finding Maum Meditation is that I have come to have a purpose and hope for life, and the faith that I could do anything cheerfully and joyfully when I completely escaped from the world of my mind. I have seen the light that there is a method, and that method is in Maum Meditation.

There are 25 people working on our team, and there had been many conflicts just because everyone had differing viewpoints. I clenched my teeth and tried to live positively.

I endured it, trying to believe that everything was my fault and trying to do better. But when things went too far and I reached my limit I would explode!

I talked a lot about Maum Meditation to my coworkers. Six of them began doing the meditation, and the workplace ambience has become a lot better ever since. Now I never get stressed out from my coworkers. This may be because when I see others I see the value of them, not their appearance or style. Most of all, I realized while meditating how precious the people are who are around me every moment. I came to see the seed of life that is within them and by which we can eternally live together. Every single person is precious, so instead of criticizing and blaming others I earnestly appreciate and care about all of them.

Because it is my job to inspect the vessels I especially tend to habitually look for what is bad. I used to have the habit of pointing out people’s faults to them. I would first judge them as to whether they were right or wrong. But now, after I listen to their opinions, and accept their viewpoint, I tell them my opinions. In that way, problems are easily solved and everyone enjoys working together.

“Living together” and “harmony” are words that are often tossed about; and many organizations attempt to introduce these concepts into their working environment. However, they find it almost impossible to put them into action. Only when people throw away their minds will they come to know that it happens naturally, not by forcing people to make it happen.

Maum Meditation is the practice that makes you really know about yourself and also about Truth. As people spend their time merely to work for financial stability, they don’t usually think about the reason and purpose of their living. I really hope they give themselves time to think about it. I truly feel sorry when seeing others feeling painful in their mind world, because I suffered pain from there also. We often say that we are looking for the blue bird of happiness, but I insist that everyone should be looking for it inside their mind rather than looking outside of themselves. I sincerely hope that everyone will come to know what the mind is, and can escape from the mind, for then everyone can live happily forever.

 

We are the brothers without agonies through emptying the mind

The Older Brother’s Story: Kim Seong Hwan (26), Life Science Degree

I was not interested in any specific career when I began my university studies so I just took classes according to my academic qualifications. I had a dream to accomplish something when I was a child, but as I matured and started to face reality I basically felt as though I was unable to do anything. From that time on I just cut classes, and began sinking deeply into going out and drinking heavily.

Meanwhile I received my draft notice to report for military duty. I remembered something that adults had said to me: “You become a man after serving in the military!” And the thought just came into my mind: “Oh, yes!! All my problems will be solved after I finish my military service!” However, the two years of military life was just like hell, and I literally wanted to die. Up until then there was no one who had control over me in any aspect of my life, so the structured life of the military made me severely feel like I was in a prison. Eventually I took on a victim’s mentality, and mistakenly thought that all the chit-chat from the other soldiers was gossip about me. This put me into a severe depression. On the second day after I came back into society I joined the Maum Meditation University Students’ Camp.

In my meditations I looked deep into my mind. I found that my grandfather, who was a university professor, and my parents had all graduated from prestigious universities; therefore their expectations of me were quite high. At one time I studied harder than anyone else, but I felt that my grades didn’t get as high as they should have been and I got extremely frustrated. All these thoughts and images had been accumulated in my mind.

I threw away everything; like the memories that I was muddle headed when studying because my head was full of cockeyed thoughts, that I didn’t know what to do so I felt I could do nothing, choosing military service to escape my fear about the future, my pride and selfishness that clashed with the bullying that came from those above me in rank and age, the “myself” who couldn’t endure even a little bit of interference because I wanted to just live in my own way, the memories that made me fall into frustration, and more. As I threw away the suffering mind, the anger and the worries about the future, I came to know they were all false, and surprisingly they all disappeared for real.

I also came to know that what I earnestly wanted to do is to live for those people who are in agony as I had been. Well, for me, escaping from reality or wandering through life aimlessly is now over. I now have faith for myself and conviction for my life. I am truly happy that I became a person who tries to do the best he can do in every moment without any worries about the future.

The Younger Brother’s Story: Kim Ji Hwan (23), Architecture Degree

There was a lot of rage in my mind. I didn’t know exactly why, but I hated my father, who always compared me with my brother, and my mom, who intervened in every single thing in my life. I also had arguments with my teachers. In my senior year in high school, probably due to the stress of the intense studies and all the important exams, my jaws began to ache and I could even hear some sounds coming from them. I was exhausted and I just wanted to rest.

At the suggestion of my mom and brother I joined the Maum Meditation University Students’ Camp. There I recalled the memories of my dad. Yes, that stubborn and egotistical dad; who I hated so much since my childhood that I didn’t even want to be near him. Yet after meditating I was able to change my viewpoint and see the real dad. It was my father who, just for us, had actually faced all those hardships in his life. I felt so grateful to him, and I felt so ashamed and apologetic about it that I cried all night long.

All the images of my father that I hated were actually my own images, which existed only in my mind. I knew I couldn’t go back home this way, not carrying this mind of him. So during my entire vacation I constantly threw it away, until the mind about my dad disappeared completely. I threw away everything; the mind that I wanted to be loved and recognized by my parents, the sense of inferiority to my brother, and, caused by the mind I had about my dad, the times I rebelled against him. When I met my dad again I was surprised to find that I was comfortable around him. Before, every moment around my dad had always been torture and full of fear, but I felt none of that anymore. Now I am able to do something to make him happy, like preparing breakfast for him when my mom is away.

I now know everything is my fault, whereas in the past I believed that everything was others’ fault. Moreover, I feel real freedom and happiness. It would truly be good if everyone knew such happiness is really nearby and available to them. I’d like to say “thank you” to my parents and my brother, who is always with me.

Wisdom of life through throwing away (23)

Subtraction Changes Me

Overcoming panic attacks

 

It is hard to describe panic attacks in words. You feel extreme fear with sudden vertigo, and you feel you just might curl up and die as your head becomes burned up by all the fever coming up from your body.

 Those symptoms can happen at a moment’s notice. Anything, such as hearing the shouts from a soccer stadium, or watching a movie at the theater can set it off. And when I drive a car and stop suddenly or go through a tunnel, I can’t help my body and myself thinking that “I might die inside this car. I want to jump out and run.”  Even though in reality I don’t turn blue nor die, the worst possible scenario plays out fully in my head.

I began feeling these symptoms 10 years ago. At that time I went to the hospital because I felt too dizzy and my head ached a lot. Instead of taking it seriously, I thought it was just because I was weak from all the heavy drinking I was doing at the time. In those days panic attack syndrome was not a commonly known disease, so there were wrong diagnoses given to me, such as saying it was because of the flu or from the drinking. But as the symptoms continued, I took a complete medical checkup and it turned out to be panic attacks.

So I began taking pills, and received treatment for the panic attacks. But instead of getting better, all it did was avoid and calm down the spasm moment.  I took the medicine continuously for four to five months, but I kept being drowsy and dazed and could only manage half of my company’s work, and my social life became very difficult.

Eventually, on my family’s recommendation, I began Maum Meditation. I started throwing away my mind by looking back at my life and myself. I realized that as the head of the household I thought I had to earn a lot of money, and I was always under the pressure of the responsibility to support my family. So I began to drink a lot to overcome that pressure. That had only made the panic attacks worse.

All the emotions and thoughts, which came from specific situations, were stress itself; so I continuously threw away everything I had piled up in my mind during my life. I threw away all the fear, horror, hard memories, anxiety, and nervousness about the panic attacks. At the moment I realized that those minds didn’t originally exist, I could easily control my panic attacks better with Maum Meditation than by any other treatment. As much as I threw away the mind the symptoms became better, so I stopped taking the medicine, and seldom drank any alcohol which I had liked to do so much.

When I was managing the accounting office, I always used to treat others with hostility and interfered with them a lot. But those minds disappeared, and my facial expression changed from a dirty and fussy look to one that was much kinder and softer.  

Even though at times it seemed like the panic attacks might happen again, I could prevent them by throwing away the stress and related minds. I am so grateful to Maum Meditation, and it seems like a dream that I could be released from my mind, which became clean and able to overcome those horrible panic attacks.

I think there might be a lot of panic attacks among middle-aged, head of household men. I pray, as a person who experienced the pain and know that it is a disease of the mind, which every person who suffers from panic attacks will be able to know as soon as possible the reason for the panic attacks and be able to throw the mind away and break away from the pain.

Young Soo Ook (53) Accounting Office Manager

– Enlightenment – The Sounds of Birds, the Wind and Water

Drawings and writings by Woo Myung

Enlightenment is what one comes to know,

when he comes out from his false mind world

and he becomes Truth –

which happens to the extent of how much falseness he has discarded.

Truth emerges as much as one has been absolved of his sin and karma,

and what he comes to know in the moment of realization,

is enlightenment.

When the Bible tells us to believe with the heart,

and confess with the mouth,

it is speaking of enlightenment.

From the starting point of knowing nothing,

man will come to know and be enlightened of many things

along the way to becoming Truth.

The sounds of birds, the wind and water –

the sounds of nature – give my body and mind rest,

but man’s world is foul.

People living in the world find life a struggle,

but they do not know the reason behind their hardships

because they are all living inside their own minds.

A person with nowhere to go is always busy,

uselessly and endlessly busy,

no matter how far he goes and goes and goes.

He goes where his countless desires for achievement lead him,

but no matter how far he follows them, there is no final destination.

My heart is full of pity,

because he does not know that the true world

is where he must truly go.

Woo Myung founded Maum Meditation. For his outstanding dedication to the service of humanity, he was awarded the Mahatma Gandhi Peace Award by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ors for World Peace (IAEWP) in 2002.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ooks including World Beyond World an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which have been published in English. His other books, Where You Become True Is The Place Of Truth, Heaven’s Formula For Saving The World, The Living Eternal World, The Book Of Wisdom, Mind, Nature’s Flow and The Enlightened World are in the process of being translated into English as well as Chinese, French, German, Italian, Japanese, Portuguese, Spanish and Swedish.

동네 노는 아저씨의 친절한 고민 상담소

 

20대 후반 직장 여성입니다. 키도 작고 동안인데다, 막내로 자란 저는

말투나 행동이 참 어린애 같았습니다. 그런 저를 주위에서도 귀여워해줬고요.

그런데 점차 직장에 저보다 어린 후배들도 많이 생겼습니다. 거래처 사람을 만날 때나,

후배들을 대할 때 좀 더 어른스러워야 하는데 하는 압박감이 듭니다.

너무 어린애처럼 행동하는 건가, 자꾸 의식이 되고요.

그런데 어린애 같은 말투나 행동을 참 고치기가 힘듭니다.

제가 40평생을 노안으로 살아서 동안의 고민은 뭘까 하고 검색창에 ‘동안 고민’이라고 쳐봤습니다. ‘몇 주 동안 고민 끝에 질렀습니다.’ ‘일년 동안 고민 끝에 그녀를 보내주기로 결정.’ ‘한 달 동안 고민 중인데요, 텐트 뭐로 사죠?’… 제가 찾고 싶었던 동안 고민은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노안 고민’을 쳐봤습니다. 일일이 열거할 거 없이 언뜻 눈에 들어오는 단어들만 나열해도, 다크서클, 얼굴지방이식, 노안굴욕, 팔자주름, 몸은 초딩인데 얼굴은 노안이라 노안의 슬픔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도와주세요 등등 수두룩 빽빽하고 구구절절 가슴을 저며 오는 사연들이 있었습니다.

20대 후반에 동안이 고민이시군요. 일단 외모에 대한 동안 고민은 나이가 드실수록 축복으로 다가올 테니 그런 고민은 접어두셔도 될 거 같습니다. 본인도 알고 계시겠지만 외모적인 고민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습관이 된 행동과 말투 등이 나이가 먹어가면서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는 게 정확한 고민이군요. 고민녀님은 사회생활에서 흔히 말하는 나잇값을 못 하는 구성원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일종의 콤플렉스로 작용하는 거 같습니다. 그런 콤플렉스가 있다면 고치기는 힘듭니다. 콤플렉스는 고쳐지는 게 아니라 극복이 되어야 합니다. 30여 년 가까이 몸에 밴 말투와 행동들을 자꾸 고치려고 의식하면 오히려 사회생활에 제일 중요한 자신감과 당당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극복할 그 무언가를 찾으시는 게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라든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업무 능력 등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본받고 싶은 롤모델 한 분을 정해서 그분의 행동이라든지 말투를 조금씩 따라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고민을 3일 동안 고민(ㅎ)해 봤는데 결론은 이런 고민을 자각하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고민녀님 마음만은 이미 단군할아버지입니다.ㅎ

동네 노는 아저씨 백일성. 올해 나이 42세.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남매 그리고 1930년대생 부모님과 함께 한집에서 박 터지게 살고 있음. 3년 전 우연히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박 터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됨. 2009년에는 <나야나 가족 만만세>라는 수필집도 발간했음.

다문화가정 기념사진 찍어주는 제주다문화센터 김정림씨

취재 문진정

“아유~ 예쁘다~ 여기 보자!”

찰칵, 찰칵. 제주시 도남동에 위치한 제주다문화센터에는 아기 돌 사진 촬영이 한창입니다. 비록 번듯한 스튜디오는 아니지만 색색의 종이를 배경 삼아 찍고, 컴퓨터의 힘을 약간 빌리면 그럴듯한 돌 사진이 완성됩니다. 돌 사진의 주인공들은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지요. 사진가는 다름 아닌 중국인 김정림(40)씨. 제주다문화센터의 교육팀장이자 결혼이주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다문화센터를 만든 사람입니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던 그녀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사진을 찍던 오명찬(48)씨를 만나 결혼하게 되면서 2006년 제주도로 왔습니다. 당시만 해도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심했을 뿐더러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었지요. 중국과 일본에서 받은 대학 졸업장이 무용지물이 되자 그녀는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해 열 개가 넘는 자격증을 땄고 비로소 안정된 직장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이주 여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어, 중국어, 일어까지 3개 국어가 가능한 김정림씨는 이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부부 싸움 통역, 밀린 아르바이트비 받아주기 등 각지에서 온 이주 여성들을 친동생처럼 챙겼고 어느새 그녀들의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들 사이에서까지 유명 인사가 되지요.

밤낮없이 걸려오는 SOS 전화 덕분(?)에 어렵사리 취직한 직장에 사직서를 내야 했던 그녀는 결국 남편과 함께 2007년 제주다문화센터를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사진작가인 남편에게 이주 여성들을 위한 사진 촬영 봉사를 제안합니다.

“외국 여성이랑 결혼식 올리는 것, 돌잔치 하는 것 하나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또는 돈 때문에 못 하는 분들이 많아요. 나중에 아이들이 자란 후 돌 사진이라도 보여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서 생각하게 됐습니다.”

남편 오명찬씨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다문화가정 부부를 위한 사진 교실도 열었습니다. 남편은 사진 촬영을, 정림씨는 컴퓨터로 사진 보정을 가르쳤지요. 서먹했던 부부들이 사진을 배우면서 소통하게 되고, 배운 사진 기술로 함께 봉사도 하니 1석 3조의 큰 수확이었습니다.

“아픈 사람 마음은 아파 본 사람이 안다고 다문화센터가 아무리 많아도 사람 마음 가는 데는 따로 있잖아요. 임신했을 때 눈치 안 보고 고국 음식 맘껏 해먹을 수 있는 그런 편안한 친정집으로 만들고 싶어요.”

친정엄마처럼 따듯하게 품어주는 정림씨 덕분에 이주 여성들은 매일 이곳에 들러 진심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얻습니다. 2천여 명 회원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족은 몇인지, 직장은 어딘지 자동으로 줄줄 꿰게 되었다는 김정림씨. 365일 하루도 쉬는 날 없이 ‘동생들’을 위해 뛰는 그녀에게 이 일은 그 무엇보다 천직인 듯싶습니다.

“저도 같은 이주 여성이다 보니 더 동질감을 느끼고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모든 이주 여성이, 남편이나 아이들도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사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6년 한국인 오명찬씨와 결혼하며 제주도로 온 중국인 김정림씨는 이주 여성들의 배움터이자 쉼터인 제주다문화센터를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사진봉사단을 만들어 돌 사진과 웨딩 사진을 촬영해주는 등 다문화가정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0 신지식인상’을 수상했습니다.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몸에 대한 예의,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몸이 건강할 수 있도록 잘 먹고 움직이고 자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건강은 습관이고 생활 방식을 나타내주는 결과인데도 말이지요. 몸의 노화에는 유전이나 체질이 아닌 생활 방식이 70~80% 영향력을 끼친다고 합니다. 바빠서, 귀찮아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걸 게을리하지는 않았는지요. 항상 건강하고 건강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것.  

몸에 대한 예의, 그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편집자 주>

지금의 의사는 오직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마음은 고칠 줄 모르니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만 쫓는 격이며 그 근원은 캐지 않고 말류만 손질하는 것이다.

– 동의보감

병도 긴 눈으로 보면 하나의 수양(修養)이다. – 허준

건강에 대한 지나친 걱정만큼 건강에 치명적인 것은 없다.

– 벤자민 프랭클린

건강이 있는 곳에 자유가 있다.

건강은 모든 자유 중에서 으뜸가는 것이다. – H.F. 아미엘

 

자주 움직이지 않고 오래 앉아 있는 생활 습관은 흡연만큼이나 나쁜 영향을 미쳐 ‘의자병’을 부를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미국 메이요 클리닉의 제임스 레빈 박사는 “장기적으로 앉아 있는 것은 여러 가지 건강 문제를 낳을 수 있고, 특히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레빈 박사는 연구 결과 하루에 4시간 이상 TV 앞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2시간 이하로 앉아 있는 사람들에 비해 심혈관계 질병으로 사망할 위험이 80%나 높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위험은 흡연, 음식 등 다른 요소는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레빈은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덜 앉아 있고, 더 많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히 서 있기만 해도 앉아 있는 것보다 3배나 많은 칼로리를 태우게 된다. 서 있으면 근육이 수축되는데, 이는 지방과 당분 분해 과정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앉아 있으면 근육 수축이 중단되면서 이 과정도 멈춘다는 것이다.

건강의 유지는 생리학적 도덕이기 때문에 우리의 의무이다.

이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 스펜

어떤 조건에도 감사하는 것

몸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 몸을 소중히 여기되, 그렇다고 매이지는 않는 것 몸이 힘든 건 마음이 힘들어서임을 아는 것 무엇을 하든 먼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사람들과 꾸준히 등산하는 것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30분씩은 운동하는 것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 이 몸을 관리하는 것 세상을 위해 백 걸음, 천 걸음 걸을 수 있는 것 배의 노를 저어 저 바다로 갈 수 있는 모험 정신을 갖는 것 언제든 시작할 수 있게 체력을 갖추는 것

– ‘몸에 대한 예의’를 떠올리며

  사십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느꼈던 것은 그동안 몸에 한 그대로 돌려받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소홀한 만큼 돌려받고 정성을 들인 만큼 지켜준다. 세상에는 몸에 좋다는 숱한 방법이 있지만 무엇이든 한 가지라도 꾸준히 하면 효과를 보는 것 같다. 보조건강식품도 마찬가지다. 한 가지라도 꾸준히 먹는 사람은 효과를 본다. 건강식품을 사간 사람들에게 모니터 전화를 하곤 한다. 99%가 먹다가 다른 사람 줬어요, 어디 처박혀 있어요, 하고 한두 명 정도가 제대로 용법대로 먹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효과를 봤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오늘 밥 세끼를 먹으면, 내일도 밥 세끼를 먹는 사람, 오늘 아침 운동을 하면 내일도 그렇게 운동하는 사람이다. 그런 꾸준함이 바로 몸에 대한 예의 아닐까.

– 양아선. 42세. 유기농 건강식품 매장 운영

노인정 식사 차리며 되찾은 엄마의 건강

올해 여든여덟이신 엄마는 평생을 아이와 살림밖에 모르고 살아온 전형적인 주부이다. 그런데 올해 초 갑자기 수술을 받게 되면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두 달 동안 병원 생활을 겪고 퇴원하신 후 엄마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가장 놀라운 건 퇴원하자마자 동네 노인정에 가서 식사를 도맡겠다고 나선 것이다. 정말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항상 자식들에게 의지하고, 누가 나 좀 돌봐줬으면 하던 엄마였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심경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병원 생활은 생각보다 끔찍했고, 당신 하고픈 대로 살림하고, 밥 해 먹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느끼신 것이다.

‘짜다’ ‘싱겁다’ 노인정 친구들의 반찬 투정도 듣기 힘들 텐데, 꾸준히 5~6인분의 식사를 준비하시는 걸 보면 놀랍기만 하다.

조금만 아프면 바로 자식들에게 전화하고, 마음 약해서 우시던 엄마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건강도 훨씬 좋아지셨다. 자식들 전화만을 기다리고, 자식이 온다고 하면 노인정 가는 일도 미루셨던 분이 이젠 노인정 식사 준비하는 시간을 피해서 오라고 당당하게 말씀하신다.

엄마 입장에선 그곳이 어엿한 직장인 셈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직장 다니는 자식들 입장도 이해하시게 되었다. “밖에서 일하려니 얼마나 힘드냐. 바쁘겠다, 얼른 가라” 하시면서….

한번은 오빠가 이런 제안을 했다. “이제 부엌일 그만하고 자식들이 차려드리는 진지를 편히 드셨으면 좋겠다”고. 난 오빠를 설득했다.

“엄마가 부엌일을 하시도록 하자. 평생 남편 보필하고 자식 뒷바라지하면서 유일하게 엄마가 당신 맘대로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 곳은 부엌밖에 없었다”고. 무도 마음대로 자르고, 찌개 간도 마음대로 맞추면서…. 엄마를 이해하다 보니 많은 한국 여자들의 애환도 느껴졌다. 엄마는 여자라는 이유로 가족의 뜻을 우선으로 하고 자신의 능력과 꿈은 접은 채 평생을 살아왔다. 이제라도 노인정 친구들의 식사를 차리며 행복해하는 엄마를 보니 내 가슴이 다 시원하다.

– 이영화. 65세. 경기도 평택시 동삭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