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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밖에 없는 내 삶의 후회 없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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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시집온 지 18년이 지났다. 결혼 후 한국 생활과 사회에 빨리 익숙해지기 위해 노력해왔고, 항상 밝고 친절한 태도와 미소를 잃지 않으려 했다. 일본인인 나와는 완전히 다른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접할 때마다 많은 갈등을 겪으면서도 겉으로는 맞추려 했다.
조금씩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내 자신이 비참하고 불쌍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때론 너무 괴로워 이불을 뒤집어쓰고 남몰래 운 날도 많았다. 복잡하게 상처받은 마음을 풀기 위해 여러 가지 해소법을 시도했지만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근본적으로 해결해 주진 않았다.
“다 이런 거지, 사람은 누구나가 고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라고 포기하던 어느 날, 나의 인생을 180도 바꾸어준 것은 마음수련 명상이었다.
2007년의 봄, 남편과 친구를 통해 연이어 듣게 된 마음수련 센터에 찾아갔다. 수련 방법을 알려주시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는 외국인인 나에게도 쉬웠고,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었다.
명상을 하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다시 볼 수 있었던 것에 스스로 놀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항상 밖에서 뭔가를 추구해왔던 나에게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명상이었다. 왜냐하면 이 명상 방법은 ‘더하기가 아니고 빼기’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내가 안고 살았던 마음을 버림으로써 ‘나다움’을 상실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되었고, 오만하게도 누구보다 착하고 상냥하고 바르게 살아온 마음을 버려야 한다고 하니 거부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를 내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의 내면과 정면에서 싸웠다. 내 마음세계를 제3자 입장에서, 영화를 감상하듯 바라보았다. 내 인생이 비디오테이프처럼 흘러갔다. 본심을 가리며 살았던 나의 마음속은 이중인격 정도가 아니었다. 몇 겹으로 겹친 양파 껍질을 벗기듯, 얽히고설킨 실이 풀리듯 복잡했던 마음이 하나하나 버려지고 있음이 확인되자 명상이 즐거웠다.
2과정에 이르면서는 속이 완전히 텅 비워진 것같이 느껴지며 상쾌했다. 그러나 단계가 올라가면서 마음 깊숙이 숨어 있던 의외의 마음들도 나왔다. 한마디로 냄새나는 쓰레기통 속에서 썩은 쓰레기를 하나하나 집어내는 작업과 다름없었다. 이렇게 더럽고 천한 쓰레기 같은 마음들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이건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한 단계씩 과정이 올라갈수록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서 환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이 나타나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기도 했고, 때론 나 자신도 놀라운 여러 생각들이 올라와서 집중을 방해했지만 나는 계속 해나갔다. 7과정에 이르자 드디어 터널의 출구에 도착한 것 같은 안도감과 함께 감사의 마음으로 몸도 마음도 가벼워졌다.
8과정에 이르러선 터널 밖의 세계를 맛보았다. 마치 새장의 새가 넓은 하늘을 향해 날갯짓하며 자유를 만끽하듯이, 스스로 만들어낸 마음세계의 테두리로부터 해방되며 평화로운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중3인 아들도 중1 때부터 방학 때면 청소년 캠프에 참가했다. 의식이 굉장히 넓고 커져서인지 변화된 아들의 언행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오랜만에 찾아오신 친척분에게 “진지는 맛있게 드셨습니까?” “필요한 것은 없으세요?” 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또 괴로운 일이 생기거나 불리한 상황에 닥쳐도 변명하거나 피하지 않았다. 무리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항상 안정되어 있는 것이 느껴진다.
우주처럼 웅대한 마음, 대자연과 하나가 된 순수한 마음, 그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는 전인 교육이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을 후회 없는 값진 삶을 살 것인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지만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만나서 정말로 좋았다. 그래서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늘 말한다. “가무사하무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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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September 월간마음수련

“화·짜증, 버리면 버려지는 게 신기해요”

제목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에 해당하는 시기를 ‘1315세대’라고 부른다. 학교 현장에선 통제 불능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걱정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화 중 욕설을 사용하는 비율이 20% 이상 된다는 청소년도 76.6%에 이른다. 화를 조절 못 하고, “짜증 나”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거칠게 말하는 요즘 아이들. 그 공격적인 성향은 그대로 아이들 마음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말해준다. 마음을 비워낸 만큼 변화하는 모습도 놀라운, 아이들의 마음수련 캠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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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요즘 애들’을
위한 변명

이인숙 구산초등학교 교사

내가 처음 부임했던 80년대의 아이들은 화나 짜증이 별로 없었다. 어른과 친구들을 생각할 줄 알고 온순하며, 다혈질이나 공격성이 적어 다투는 일도 없었다. 수업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 한두 명 산만한 아이를 제외하고는 자기 마음을 주체 못 하는 아이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엔 매해 3월 학부모 총회 때마다 “요즘 아이들은~”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해가 갈수록 점점 정이 메말라 가고, 남을 생각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마음수련 명상 1, 2과정 방법을 해보게 했다. 공부에 대한 집착이나 부모, 친구에 대한 미움 등을 떠올려 그 마음을 빼게 한 것. 아이들에겐 스트레스 1순위가 부모이고 2위가 교사라 하지 않던가.
교사가 먼저 편안하게 다가가 공감하며 마음을 버리게 하니 아이들이 밝아지는 것이 눈에 훤히 보였다. 아이들이 차분해지고 집중력이 높아져 학업 성취도가 올라갔고 공격성이 줄어들었다. 잘 다투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바뀌었고, 자기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아이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몇 년 전 일이다. 우울증에 인터넷 중독이었던 기훈이는 한번 화가 나면 자기 감정을 조절 못 하고 씩씩대며, 어른이고 교사고 안 보이던 아이였다. 한번은 친구와 싸워 상담하려고 남으라 했더니, 씩씩거리고 소리 지르다 가방도 놓고 집으로 가버렸다. 예전 같으면 혼내거나 손바닥 매질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울분과 화, 짜증, 열등감을 풀어내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여러 날에 걸쳐 아이가 마음을 버리도록 유도하자 편안한 마음을 찾았다. 표정도 밝아지고 돌출 행동을 덜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대하다 보면, 여지없이 부모의 행동 양식을 그대로 반복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경우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가장 클 시기여서 엄마와 같은 행동을 그대로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 때문에 고민하고 상담하시는 부모님께 꼭 먼저 마음을 버려보시라고 권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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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하고
이중적이며 감사를 모르던 아이

성현우 14세. 경기도 성남시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난 모범생이라 불렸고, 주위에서도 항상 칭찬을 받았다. 그러다가 3학년이 되자 슬슬 교만함을 갖더니 감사함을 모르는 아이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그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나 때문에 울고 힘들어했던 아이들도 꽤 많이 있었다. 친구와 하루에 한 번씩은 치고받고 싸우고, 친구의 약점을 잡아 놀리기도 했다. 열 살 남짓한 나이였기 때문에 내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지 못했다.
어른들 앞에서는 모범생이었지만, 친구들에게는 못되게 굴었으니 난 이중적이었다. 엄마는 나 때문에 우시기도 했다. 너무 삐뚤어져서 잡아 줄 수 없을 지경이 되기 직전, 마음수련 명상을 알게 되었다.
열 살 때였다.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서 명상을 시작해보니 나는 참 이상한 아이였다. 마음속으로 자기가 혐오한다고 생각한 사람이 곧 나 자신이었다. 넌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왜 이렇게 짜증이 많냐고, 왜 배려심이 이렇게 없냐고, 친구들에게 말하고 다녔지만 실은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또 내가 그동안 이런 행동들을 왜 해왔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지나온 시절을 돌아보면서 버리다 보니 그동안 나는 항상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으려 했고 또 항상 받아왔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거의가 친절했었다. 그래서 그 호의를 잃을까 두려워 언제나 내 진심은 꼭꼭 숨겨둔 채 가식의 얼굴만을 내비쳐 왔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안에 억눌려 있던 것이 쌓여 주위 사람들에게 예민해지고, 그것이 굳이 가식을 떨 필요가 없는 친구들에게 표출되었던 것이다.
난 특히 내가 칭찬받았던 기억, 내가 칭찬 받으려고 했던 행동들, 예를 들면 아이답지 않게 선물을 사양하고 친구들 앞에서 아는 체했던 기억들을 버렸다. 버리는 도중에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이렇게 못난 나에게도 친구라고 친절히 대해주던 급우들에게 미안해졌다. 그런 ‘마음 사진’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런 성격이 만들어지고 주위 사람들을 괴롭게 했으리라.
그런데 좀 더 명상을 해보니 이유는 비단 그것만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병약했던 내 건강 탓도 있었다. 몸이 힘들어서 고생했던 기억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주위 사람에게 화를 내는 예민한 사람으로 만들어갔다. 아무리 몸이 힘들어도 웃는 얼굴로 세상을 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또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감사할 줄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찬 투정 같은 것을 포함해서 주위 사람들에게 하는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같은 말들도 모두 잘 보이기 위한 형식에 불과했던 것이다. ‘감사할 줄 모르는 나’가 생겨난 배경을 보니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 받아만 왔던 기억들 때문이었다. 나는 이것도 버렸다.
위에서 말한 것들을 내가 아직도 가지고 있다면, 아마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일 것이다. 다행히 지금의 나는 그렇지 않다. 물론 사춘기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기도 하지만 예전보다 쉽게 짜증을 내거나 하지 않고 먼저 나를 없애본다. 덕분에 요즘은 내가 짜증을 많이 낸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가장 좋은 점은 가식으로써의 내 모습이 아닌 진짜 모습을 주위 어른들께 편하게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어른들과의 대화도 더욱 편해졌다. 예전에 통지표에 항상 좀 예민하다고 쓰셨던 선생님들도 이제는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고 활발하다고 써주신다.
나는 내가 명상을 어린 시절에 만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사진’들을 남기지 않고 바뀐 것에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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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쟁이,
상대의 의사를 묻고 행동하다

김상철 13세. 서울시

어렸을 때부터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우셨다. 동생과 나는 눈치를 보고 자신 없어 하는 성격으로 바뀌고 있었다. 남들보다 관심과 사랑을 많이 받지 못하며 자라가고 있었다.
학교에선 나를 무시하는 것 같으면 화를 참지 못해 친구들이랑 싸움하는 불량 학생이어서 선생님들에게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원래 엄마한테도 화를 잘 내고 기분 상하면 나에게도 화를 내고 그랬다. 동생도 퍽퍽 때리고, 친구들에게 욕을 막 했다. 내가 너무 욕을 많이 써서 ‘욕쟁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엄마가 어느 날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를 가라 하셨을 때 난 가기 싫었다. 열심히 하면 휴대폰을 사주신다는 엄마의 권유와 설득으로 가게 되었을 때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어서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휴대폰이 생긴다는 생각에 매일 열심히 했다. 캠프엔 형, 누나, 동생들로 가득했고 난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을까?” “학교에서처럼 무시당할까?”
이런 생각을 안고 “이제 지옥의 시작이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점점 지옥이 아니라 천국의 문이 열리는 것이었다. 싸우고, 욕하고, 짜증 내는 기억을 버릴수록 내 기분이 좋아지고, 짜증도 나지 않았고 상대방이 나와 같은 존재란 걸 알게 되어 내가 잘못을 하면 바로 사과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하면 할수록 마음이 편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학교생활로 돌아간 후에 친구들은 내 모습을 낯설어했다. 늘 나에게 시비를 걸던 애도 시비를 걸지 않았다. 점점 나는 욕을 하는 일도 사라지고 친구의 의사를 물어보며 대하기 시작했다.
5학년 때부터 나를 자주 괴롭히고, 짜증 나게 하는 한 친구가 있었다. 그런데 3교시에 그 친구가 싸움을 걸었다. 나는 할 수 없이 겁만 주려고 살짝 배만 건드렸는데 그 친구가 갑자기 도망가 버렸다. 4교시에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그 친구가 구급차에 실려갔다는 것이다. 교장실까지 가게 되고 학교에선 내가 나쁜 아이로 찍히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집으로 연락을 하고 엄마가 친구의 어머니를 만나 사과하고 다 책임지겠다고 했다. 내가 때려서 병원에 실려간 것처럼 돼서 억울했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중에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절대로 나는 함부로 때리는 애가 아니고, 그 친구가 스스로 놀라서 쓰러진 거라고 얘기해주셨다. 내가 마음수련 명상을 안 했다면 참지 못하고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아들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동생에게 예전처럼 무시하거나 때리지 않고 엄마가 없을 때 동생을 엄마 대신 보호해주는 형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꼭 의사를 물어보아 행동해서 지금은 동생과 친하게 지내고 있다. 점점 선생님들도 나를 인정해주시고 친구들도 많아지게 됐다. 예전엔 욕과 싸움이 나의 방패였지만 지금은 대화가 나의 방패가 되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지금의 내가 엄청나게 바뀐 것 같아 너무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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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성격을
고치는 최고의 방법,
진짜 신기하다!

이주승 13세. 울산시

옛날에는 친구들이 먼저 시비를 걸어 나를 화나게 만들거나 살짝만 건드려도 나는 정말 참지 못하고 주먹이 날아갔다.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왜 따라오는데?”라고 하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나는 참지 못하고 아이들을 때렸다. 모른 척하고 집에 오니 잠시 후에 그 애 엄마가 우리 집에 와서 엄마가 사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는 그때도 내가 잘못한 게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명상을 해보니 상대방을 괴롭히면 그것이 바로 나한테 온다는 걸 알았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여름 방학 때 마음수련이라는 명상를 배웠다. 처음엔 집에 가고 싶었지만 차근차근 마음을 버렸더니 정말 버려졌다. 그 후로는 성격도 고쳐졌고 특히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다. 이젠 속에서 가짜가 때려라 때려라 해도 진짜 마음이 가짜를 사라져주게 한다. 이것은 최고의 방법이다. 친구가 놀리면 나는 못 들은 척하고 화나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가버린다. 그러니 당연히 친구들과도 싸움을 하지 않는다.
이제는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있다. 내가 안 때리니까 친구들도 나와 친해지려고 한다. 동생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다. 가끔 엄마가 동생을 혼내면 감싸주게 된다.
명상을 배운 뒤, 배우지 않았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 지옥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 한 가지 더! 공부를 예전보다 잘하게 되었다. 집중력, 정서 불안이 나아졌다. 마음수련 명상은 정말 신비로우면서도 감동을 준다.

2010. 9. September 월간마음수련

청소년, 화를 다스리다

제목

중학교 2학년 다운이와 나원이는 같은 해 같은 동네에서 태어났다. 부모님끼리도 잘 아시는 사이라 매일 얼굴을 보다시피 하며 자랐다. 일곱 살 때 다운이가 이사를 가면서 헤어졌던 둘은 3년 후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서 다시 만났다. 친구들이 조금만 건드려도 화가 났던 다운이와 동생과 잘 다투었던 나원이. 마음수련 명상을 하고 난 뒤 이제는 친구들의 친절한 상담자가 될 정도로 너그러워졌단다. ‘그냥 절친’에서 ‘진짜 절친’이 됐다는 두 소녀의 성장 이야기.

정리, 사진 김 혜 균


“니는 돌멩이한테도 화냈다”
다운   나원이 니는 진짜 내성적이었잖어. 낯가리고 말도 잘 안 하고.
나원   니는 진짜 많이 셌어. 다혈질에다 조금만 짜증 나도 발끈발끈하고.
다운   그래. 니가 내 성질 많이 받아줬지. 고맙다 친구야. 역시 베프(베스트 프랜드). 니는 학교보다 집에서 짜증 많이 냈다고 했지. 동생이 말 안 듣는다고.
나원   동생이 자기 멋대로 하고 자기 맘대로 안 되면 드러눕고 떼쓰니까.
다운   난 엄마 때문에 힘들었다. 조금만 잘못해도 혼내니까 무서웠어. 니 알잖아. 엄마가 안 돼, 하면 내는 더 이상 물어보지도 않았던 거. 스트레스받으니까 사소한 것에 짜증 내고, 학교에서 심했지. 맨날 남자애들이랑 싸우고, 막말하고, 그때도 난 멀쩡한데, 개념 있고 착한 나를 사람들이 가만 안 둔다고 생각했어.
나원   나는 맨날 동생한테 시비 걸고 때리고 화내고 그랬어.
다운   만만한 사람이나 친구들한테 그렇게 하게 되잖아.
나원   맞다. 친구들 중에 되게 순했던 친구를 골리기도 했지. 그래두 니는 내가 봐도 진짜 이상했단 말이야. 말하는 자체가 ‘뭐 했어? 왜 상관이야?’ 따지듯이 그랬어, 니는.
다운   그랬지. 누가 밥 먹었니? 물으면, 왜요? 밥이라도 사주게요? 밥 먹었으면 어쩔 건데요? 그러고, 지나가다 그냥 쳐다볼 수 있는 건데도 쳐다본다고 화내고. 날씨가 더우면, ‘우이씨~ 해를 다 뿌셔 버려!’ 그러고.
나원   니는 가만히 있는 돌멩이한테도 화냈다. 진짜 힘들었어.
다운   무조건 내 맘대로 하고, 내 맘대로 안 되면 그 자리에서 퍼부었어. 뇌에 필터가 없었던 것 같애. 할 말을 걸러서 해야 하는데 그냥 막 하는 거야. 근데 5학년 땐가 니가 친구들한테 따돌림을 받고 나서 점점 나처럼 돼가는 거야. 6학년 땐 우리 성격이 서로 바뀌었잖아. 니는 별거 아닌 거에 짜증 내고, 오히려 나는 들어주고.
나원   맞다. 잘 지내던 남자애들이랑 싸우고. 그땐 다 귀찮았단 말이야. 말 거는 것도 싫고.
다운   나두 5학년 때부터 애들이 만만하게 보니까 힘들었다. 찐따찐따 하면서. 엄마한텐 무서워서 말도 못 하고, 니한테 전화 많이 했잖아. 왜 학교에서 이런 취급당해야 하냐면서 울고. 그때 니도 안절부절못했잖아. 죽고 싶다 하니까 조금만 참으라고 괜찮다고. 그땐 살도 많이 쪘었어. 난 내 분에 못 이기면 미친 듯이 먹거든. 말 그대로 성격파탄자였다. 책 다 찢고 문제집 다 던지고, 막 울고.
나원   진짜 한 문장 한 문장 말할 때마다 욕이 들어갔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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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원 평상시엔 온순하다가도 동생과 다툼이 있으면 폭발하는 성격에 별것 아닌 일에 짜증도 잘 냈다고 한다. 하지만 명상 후 엄청나게 변화했다. 소심하고 겁 많은 성격도 크게 바뀌었다.

애들한테 상처 준 게 미안해 펑펑 울었어
다운   그때 정말 맨 밑바닥까지 갔다. 친구 관계도 성적도 부모님하고도. 그때 니한테 하루에 몇 번씩 문자 하면서 청캠(청소년 마음수련 캠프) 가자고 졸랐잖아. 진짜 마지막 소원이다 사람 살리는 셈 치고 제발 같이 가자고. 그전엔 솔직히 엄마가 명상하라 해도 그렇게 절실한 적은 없었다.
나원   난 원래 명상하는 건 재밌었는데. 수영하고, 놀이공원도 가고 새로운 친구도 사귈 수 있었으니까.
다운   명상하면서 선생님, 엄마, 아빠를 떠올리는데, 감정이 복받쳐 올라오니까 처음엔 버리기가 힘들었어. 선생님한테 혼났던 거, 엄마 아빠와 싸웠던 거 버리면서 계속 울었다. 그게 허상인데 버리면 없는 건데, 아무것도 아닌 걸 붙잡고 슬프다고 괴롭다고 죽고 싶다고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냐고, 이거 들고 있으면 내가 만신창이가 되는 걸 아니까, 제발 버리게 도와달라고 목메어 울었데이.
나원   난 동생하고 싸웠던 거, 친구한테 집착하는 마음을 많이 버렸다. 따돌림당했던 것도 버리고….
다운   내도 친구들 많이 버렸다. 근데 진짜 상처 준 게 너무 미안해서 펑펑 울었다. 얼마나 막말하고 못되게 굴었으면 애들이 나한테 그랬을까. 내가 보낸 하나의 화살이 백 개로 돌아오더라. 말을 함부로 뱉으면 안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나원   나도 그랬다. 다행인 건 명상하면서 저 친구도 나고, 이 친구도 나라는 걸 알게 되잖아. 친구한테 나쁜 말을 하면 나한테 한 것과 똑같다는 것도 알게 되고.
다운   엄마한테 왕따당한 거 이야기했을 때 ‘니가 한 만큼 돌아온다. 그건 알아야 된데이’ 이러시는 거라. 처음엔 엄마가 내 편을 안 들어줘서 섭섭했는데 명상하니까 무슨 말씀인지 알겠더라. 사실 어른들이 하는 말을 우리는 잔소리로 듣잖아. 근데 명상하고 달라지는 거 같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말이라는 거 알게 되지.
나원   명언인데!(웃음) 그거 나도 되게 느끼고 있다. 동생 괴롭힌 거, 친구한테 막말한 거 다 미안했다. 엄마한테 짜증 낸 것도 미안하고.
다운   나도 엄마한테 쌓인 게 많았지만, 명상하면서 엄마가 아빠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나한테 푸는 걸 알겠더라. 그냥 엄마가 불쌍했어.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가 우리한테 집착이 강했어. 우리만은 잘됐으면 좋겠고, 좋은 대학 가야 하고. 아빠도 큰딸이라고 날 강하게 키우려 했어. 맨날 기둥이다, 니가 우리 집 짱이다, 니가 잘돼야 동생이 잘된다 하고. 엄마가 수련하고 많이 바뀌었는데도 나는 내 틀로 보니까 엄마가 변한 줄을 몰랐어. 처음엔 엄마가 옛날엔 잘못하면 때렸는데 말로 조용조용하니까 그게 더 무서운 거야. 나중에 확 폭발할까봐. 근데 끝까지 좋은 말로 하시는 거야. 우리 엄마가 왜 그러지? 그랬다.
나원   우리처럼 어른들도 마음을 버리면서 틀이 깨지니까 관대해지고 남의 입장에서 이해를 잘하게 되니까 변하시는 것 같애.
다운   내 틀이 네모난 창틀이라면, 다른 사람은 둥글 수도 있고, 세모일 수도 있잖아. 그 사람을 내가 맞춰줄 수도 있는 건데 내 네모 틀에 맞추려고, 그 사람을 깎아내리거나 상처 주고 잘라 버렸잖아.
나원   맞아. 근데 그런 게 없어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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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운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심리 치료를 권유받을 정도로, 제 분을 참지 못하면 머리카락을 뜯는 습관이 있었다. 지금은 공부도 스스로 하고, 특히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아졌다고 한다.

내 별명이 ‘엄마’야, 편한가봐
다운   정말 명상은 지우개 같아. 그 틀을 조금씩 지워주니까. 옆 창틀도 없어지고 위의 창틀도 없어지고. 텅텅 비워지니까 네모도 세모도 받아줄 수 있고 관대하게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돼.
나원   우리도 이제 사소한 것에 짜증 안 내잖아. 완전 관대, 관대.
다운   대박! 우린 베프(베스트 프렌드) 비비(베스트 오브 베스트)!! (웃음)
나원   난 어쨌든 이 명상 끝까지 할 거야. 어쩔 땐 애들하고 얘기하다 보면 좀 답답할 때 있지 않나? 난 답답하다. 분명히 안 좋을 걸 알면서도 하고 나서 후회하고. 우리는 안 좋은 일 있으면 마음 비우면 되잖아.
다운   싸우고 나서 힘들다고 울고. 사람들이 너무 불쌍해. 자신을 못 이겨서 힘들어하잖아. 한 번만 돌아보면 자기 잘못인 줄 알게 되는데, 무조건 남 탓 하고 자기 탓인 거 인정하기 싫어하잖아.
나원   전엔 동생하고 싸워도 무조건 동생 잘못이다 생각했는데, 마음을 버리니까 내가 잘못했다는 거 알겠어.
다운   나도 친구들한테도 사과했어. 내가 왕따시킨 애한테 전에 못되게 굴었다고 진심으로 사과하니까 그 친구도 나한테 못할 짓 했다고 미안해하더라. 이제 뇌에 큰 필터가 생긴 거 같애. 옛날엔 막말했는데 지금은 할 말만 하고. 그러니까 애들이 나를 좋아해줘. 완전 용 됐지.
나원   니 진짜 달라졌어. 똑같은 말을 해도 기분 나쁘게 안 하고, 성격도 되게 순해졌다. 나도 요즘엔 친구랑도 잘 지내고 엄마랑도 연애상담 하고 그래. 전엔 엄마랑 말할 때 뭔가 편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편해. 난 또 친구 집착이 진짜 강했거든. 화장실도 혼자 못 가고, 혼자 길도 못 다니겠는 거야. 친구 없으면 죽을 거 같고, 외톨이가 된 거 같고, 왕따당할 거 같은 불안감, 그런 게 없어졌다.
다운   내가 그랬잖아. 옛날에 내 주위엔 친구가 없었다고. 전엔 솔직히 너밖에 없었잖아. 근데 요즘은 친구들이 다가와. 상담도 진짜 많이 들어 와. 하루에 5명씩 해주는 거 같다. 내 별명이 ‘엄마’야. 그만큼 편한가봐.(웃음)
나원   나도 애지만 요즘 애들 스트레스 많다.
다운   솔직히 부모님들이 자꾸 자기 틀에 가두려고 하시니까 더 반항하게 되잖아. 근데도 어른들은 자기 탓이라 안 해. 그래서 부모님들이 먼저 명상을 해야 하는 것 같애. 요즘 엄마한테 고마운 게 나를 존중해주셔. 옛날엔 엄마 틀에 맞추려 했는데 지금은 나를 인격체로 대해 줘. 그러니까 나를 믿으시는구나 싶어 안심이 돼. 전엔 뭘 해도 엄마가 무섭고, 혼날 것만 같았거든. 어떻게 변명하나, 무슨 말을 해야 믿어줄까,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 근데 이젠 우리가 알아서 하잖아.
나원   맞아. 요즘 되게 느끼는 게 엄마, 아빠가 명상 안 하고, 성적으로 구속했으면 난 가출했을 거 같아.
다운   세상의 부모님들이 다 명상하셨으면 좋겠다. 그래야 애들도 바뀌고, 엄마도 아빠도 애들도 다 편해지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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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9. September 월간마음수련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목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초심을 지키는 일이다.’
미국 선(禪) 문화의 기초를 닦았던 스즈키 선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첫 마음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 <선심초심>은 ‘선’을 수행할 때의 바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삶에서 무언가를 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바꾸어도 정확히 맞는 말이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道)이기에 진리를 찾아가는 수행과 우리의 삶은 둘이 아니다. 처음으로 일(수행)을 시작할 때의 아홉 가지 마음가짐.

정리 편집부 출처 <선심초심> (스즈키 순류 / 물병자리)

1. 초심을 유지하라
초심은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수행에서는 그 목표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을 항상 유지하는 것에 둔다.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든 항상 준비되어 있고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상태이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스스로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는 무엇을 얻었다’는 생각이 없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모두 우리의 광대한 마음을 제한한다. 무엇을 성취했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 자기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 그것이 진정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2. 바른 자세를 유지하라
마음과 몸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은 바른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바른 자세로 앉으면 저절로 바른 마음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다.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어떤 것도 얻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온존할 수 있다. 바른 자세로 운전을 하고, 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다. 구부정한 자세로 독서를 한다면 맑은 정신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3. 일편단심으로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것은 ‘준비’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수행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음식으로 지극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저 그 일을 할 뿐이어야 한다. 어떤 일이 다른 무엇을 위한 준비인 것은 없다.
구도의 길은 ‘일편단심의 길’ 또는 ‘한 방향으로 달리는 수천 리 철길’이라고 한다. 기차가 다니는 철길의 간격은 언제나 같다. 매 순간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지극한 마음을 표현하는 마음 자체가 철길이다.

4. 반복이 깨달음을 준다
매일같이 똑같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지루하고 싫증나는 일일 수 있다. 반복하는 정신을 잃으면 매우 어렵지만 생기가 충만하면 어렵지 않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하게 되어 있는데 그걸 제대로 하려면 매우 주의 깊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 이를테면 빵을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이 어떻게 빵이 되는지 알게 되면 깨달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실제 수행은 어떻게 빵이 되는지를 알 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것이다.

5. 올바른 노력
무엇을 할 때 보통 무언가를 성취하기를 원하며,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거기에 집착한다. 이럴 때 필요하지 않은 어떤 군더더기 요소들이 개입된다. 수행이 잘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쭐해지는 마음을 갖기 쉽다. 그것이 군더더기이다. 무엇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으리라 기대했던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무엇만 하라. 그러면 그것의 특성이 스스로 드러날 것이며, 그러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6. 흔적 없이
사람들은 한 가지 행동을 하면서 대개 두세 가지 다른 생각을 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새를 잡으려 하기에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렵고, 결국은 한 마리도 못 잡고 만다. 무엇을 할 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면 온 몸과 마음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 하는 일에 집중해서 활활 타는 모닥불처럼 자신을 완전히 태워버려야 한다. 순간순간 자신을 수행에 바쳐야 한다.

7. 낙심하게 될 때
수행을 할 때 대개는 대단히 이상적이 되어 목표를 높게 설정한다. 그러면 무엇을 얻으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얻으려는 생각으로 수행을 하는 한, 어떤 이상이 성취된다고 해도 또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런 태도보다 더 안 좋은 것은, 타인과 경쟁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태도이다.
무엇을 하다 낙심하게 되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약점이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 신호가 나타날 때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 한다. 그럴 때는 태도를 새롭게 고쳐 잡음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8. 한결같이
사람들은 보통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끌어모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는 대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면 어떤 것이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모든 것을 그 자체의 가치대로 음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늘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9. 부정과 긍정을 넘어서는 큰 마음
무엇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저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만 한다. 그것을 지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하거나 자기 생각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들을 때도 자기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모든 일을 좋으냐 나쁘냐 따지지 않고 행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온 몸과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이 곧 수행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할 때, 그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이해시키려 하거나 논쟁하지 말라. 논쟁을 해서 상대방을 굴복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그저 듣기만 해라. 말하는 것과 듣는 것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때로는 그저 듣고 때로는 그저 말하는 것뿐이다.
무엇을 함과 하지 않음이 모두 큰 마음의 표현이다. 큰 마음은 표현해야 할 무엇이지 이렇다 저렇다 짐작할 무엇이 아니다. 큰 마음은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큰 마음을 지니고 있다.


 

제목3

<내 생애 가장 큰 행복> 자서전 펴낸 이호선 할머니

나는 어린 시절 글을 안 배워 평생을 눈 뜬 장님으로 살았다. 공문이 와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 아버지가 오면 ‘이거 왔다’ 하고 갖다 주었다. 그동안은 궁금하지만 애만 태우고 있었다. 살면서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울기도 많이 했다.

이호선 75세. 청주시

스무 살에 시집와서 시부모님 모시고 오 남매를 키우며 사는 동안 내 나이 칠십이 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지관에서 한글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나는 어려서 못 배우면 영 못 배우는지 알았다. 그런데 복지관이 생겨서 배울 수 있다니 너무 좋았다.
첫날은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글씨를 쓰는데 벌벌 떨려서 그냥 앉아 있다가 글자를 보고 따라 그리기만 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너무나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 세월이 너무 좋구나, 너무 신이 나고 맨날 힘이 났다. 어려워도 하루에 한 자씩만이라도 배우면 얼마 정도 댕기면 조금 알겠지.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자꾸 생겨서 자꾸 갔다. 그러면서 조금조금 알아졌다. 배우면 되는구나 싶었다. 무엇이든지 보기만 하면 쓰고 읽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공부하느라 고생했는데 보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했다. 우리가 배운 것도 없이 어떻게 쓰느냐고 했다. 하면 된다고 다 도와준다고 하면서 권했다. 생각나는 대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자꾸 써갔다. 한 번도 안 써보고 이때까지 살았는데 이걸 쓴다는 게 신이 나서 손가락에 못이 배기도록 썼다. 몇 번 못이 배긴 게 떨어져 나가고 새살이 나고를 반복했다.
이 글이 과연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했더니, 작년 말에 <내 생애 가장 큰 행복>(이호선 글 모음)이라는 책이 나왔다. 말도 안 되고 받침도 안 되는 것 만드느라 선생님이 참 고생하셨다. 우리 선생님 아니면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고 보니 내가 이걸 썼나 싶다. 생각하면 대견하기도 하다. 누구한테 자랑도 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을 너무 모른다. 혹시라도 내가 쓴 글을 읽고 웬만한 고생은 이겨내라고 하고 싶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우리같이 힘이 들지는 않겠지. 지금은 그렇게 배고픔은 없겠지. 웬만한 고생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내다가 보면 행복이 오겠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다.
옛날에는 쌀이 없어서 밥을 못 하고 있으면 동네 사람이 저 집 밥 안 한다고 한다 해서 그냥 솥에다 물을 붓고 불을 땠다. 그러면 연기가 나온다. 그거 보고 저 집에 밥한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불을 땠다. 그리고 식구들은 물 한 그릇씩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생활을 해도 누구 하나 불평 안 했다.
지금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고생되면 자살하고 한다. 툭하면 이혼하고 도둑질도 많이 한다. 지금 사람들은 너무 호강하고 살아서 힘든 걸 못 참는다. 꼭꼭 참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텐데 말이다.
내 어려서는 가정이 어려워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친구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책보를 허리에 메고 학교 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어서 혼자 뒤란에서 울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아무 책이나 다 읽을 수 있다. 병원에 가도 접수하는 것도 알겠고, 수납도 하고 은행에서 돈도 찾아올 수 있다. 매사 자신감도 생기고 활력이 넘치고 생기가 난다.
지금도 공부를 계속한다. 맨날 틀리지만 뭐든지 읽고 적는다. 지금이라도 남은 인생을 열심히 배우고 더 많이 배우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이제는 즐겁게 살면서 아프지 말고 내 인생도 돌보고 살아보고 싶다. 앞으로는 컴퓨터도 하고 싶고 서예도 하고 싶다.
나에게는 지금이 진짜 감사하고 고맙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이호선 할머니가 70세 이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틈틈이 써놓은 글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목2

생애 처음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2005년 3월 휴일 아침이었다. 아내가 아픈지 못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먼저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밥을 안치고 갈치찌개를 끓였다. 생전 처음 요리였지만 그냥 어디서 본 대로, 두부, 콩나물, 파, 마늘…. 이것저것 다 듬뿍 넣었다. 결혼한 지 26년 만에, 내 생애 처음으로 아내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 것이다.

박만표 60세. 포항시

50년을 넘게 살아오며 한 번도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었다. 경상도 시골 마을에서 오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남자는 절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단단히 받으며 자랐다. 그러니 결혼해서도 집안일은 당연히 아내의 일이라 생각하고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그날 밥상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정말 아내에게 잘못했구나, 하는 참회를 하면서였다.
나는 아내와 많이 다투면서 살아왔다. 당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이혼 위기의 갈등까지 간 상태였다. 나는 항상 내 기준으로 살려고 했고 아내의 입장에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한다며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아내가 육아에도 신경을 쓰라고 이야기를 해도, 오히려 아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남자라고, 가장이라고, 돈을 벌어온다고, 대접만 받으려고 했었다.
이렇듯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온 내가 백프로 아내 입장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건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였다. 지나온 결혼 생활을 하나하나 떠올려 버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내심 가장 무시하며 많은 상처를 주고 있었다. 한 번도 진심으로 아내를 아껴주고 사랑해준 적이 없었다. 아내는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혼 위기의 갈등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두 다 내 잘못이었다. 명상을 하는 도중 너무나 미안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정말 내가 잘못했소. 이제부터는 당신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겠다 약속하겠소.”
나는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아들, 딸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 이후 내 생활은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었고, ‘내 생애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했다.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내 자신이 놀랍기도 했다.
명상을 하고 난 뒤에 맞은 아내의 첫 생일날이었다. 늘 그냥 외식으로 축하를 전하곤 했지만, 그날은 뭔가 뜻깊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직장에서 100송이 장미 꽃바구니 배달을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내는 처음에 받았을 때 너무 어리둥절했다 한다. 잘못 온 게 아니냐고 몇 번을 확인하다 정말 자기에게 온 것을 알았을 때 너무 행복해서 그 꽃 옆에서 한참 동안 발을 못 뗐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계절별로 옷을 다 갈아입고 딸아이에게 부탁해서 온갖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가끔 보며 힘을 얻었다고.
그 말을 하며 아내는 자신이 봐도 코미디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내 평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놀랐다. 그런 작은 선물 하나에도 그렇게까지 행복해하는구나 싶고 또 여태까지 그런 마음 하나 몰라주었을까 후회도 되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때 생애 처음으로 했던 일들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 아내는 변화한 내 행동을 의아하게 지켜보았지만, 한결같이 실천하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언젠가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고생했지만 나이 들어서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축복인 것 같다. 당신이 나를 왕비로 만들어주니 나도 당신을 왕으로 대접하게 된다”고.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2010. 9. September 월간마음수련

행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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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파랑새를 찾아 헤맸는데 알고 보니 그 행복이 내 마음 안에 있었다는 마테를링크의 동화는 평범한 진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엔 ‘파랑새 증후군’이라는 말에 더 공감하는 듯합니다. 좀처럼 자신의 현재에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까닭입니다. 행복은 내 안에 있지만 찾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더 많이 갖는 것이 아니라, 비우고 나누어주는 것임을 깨닫기까지 ‘나’라는 고비를 숱하게 넘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게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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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특별하고 귀한 선물 하나를 받았다. 영화 속에 나오는 숲속의 통나무집 같은 곳에나 걸려 있을 법한 사슴 박제였다. 자신이 직접 뉴질랜드 북섬의 로토루아 산속에서 사냥한 야생 사슴의 머리 부분을 박제해 놓은 것이라 했다. 뿔이 머리 양옆으로 우아하게 솟아올라 있는 데다가 털 색깔 또한 엷은 갈색의 아주 멋진 사슴 박제였다.
걸어놓고 보니 거실 품격이 확 달라 보일 정도로 멋졌다. 그날 저녁 그 박제를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자정까지 넘겼다. 거실의 환한 불빛을 받아 사슴의 순하고 큰 눈망울들이 살아 있는 듯 반짝였고, 까만 코 또한 윤기가 흘렀다. 죽어 있다는 것 말고는 아무리 보아도 정말 살아 있는 진짜 같았다.
그러다가 퍼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죽은 애완견을 박제로 만들어 곁에 놓고 사는 사람도 있을까? 그런 괴상한 취미를 가진 사람은 없겠지. 이미 세상 떠나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부모, 가족, 친지 등을 박제로 만들어 놓고 가보처럼 모시고 사는 사람들도 있을까? 세상천지에 그런 혐오스럽고 엽기적인 괴물은 절대 없겠지. 그런데… 가만있어 보자. 내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인연의 상相들. 언제나 내 기억 속에 진짜처럼 살아 있으면서 상주하고 있는 그 인연의 상들 또한 실은 박제들이 아니던가? 그렇다. 그것들은 모두가 진짜 같지만 실은 하나같이 죽어 있는 박제들이다. 이렇게 기억 속의 상들이 모두 죽어 있는 박제들임을 시인하자, 그 이후부터는 명상할 때 그것들이 놀랍도록 쉽게 버려졌다. 마음으로 시인하니 믿음과 결의가 커지고, 믿음과 결의가 커진 만큼 잘 버려졌다.
며칠 후 문득 중국의 세계적인 관광 명소가 된 진시황제의 무덤 속 모습이 떠올랐다. 불로초를 구하지 못한 진시황제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도 근위병들이 자신을 호위해주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죽자 그 시위군사들 모두를 실제의 모습 그대로 흙으로 복제하여 구워낸 다음 그의 무덤 속에 대열을 지어 세워 놓았다. 그는 몸은 비록 죽었더라도 영혼만큼은 살아서 그 깜깜한 무덤 속에서나마 자신이 살아온 것과 똑같은 삶의 연극을 영원히 되풀이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에는 진시황제의 그런 무덤 속 사진을 보면서 엄청난 권력을 지녔던 그의 우매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적 욕심 말고는 떠오르는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뜻밖에도 바로 내 안에 수천 년 전의 그런 진시황제가 있다는 것, 아니 그보다 수천 배 더 어리석은 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내 삶 속의 모든 인연과 장소들을 실물 그대로 박제품과 복제품들로 만들어 내 안에 진열해 놓고 그 안에서 살려고 애쓴다는 점에서 나의 어리석음은 진시황제와 하등 다를 바 없었으나, 나는 몸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그러한 짓을 하였으니, 진시황제와는 비할 수도 없는 어리석은 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진시황제의 무덤 속 같은 박제들만이 즐비한 마음의 세계를 계속 만들어내고 그 안에서 내가 만들어 놓은 상들을 진짜라고 믿으며 허송세월만 하고 있는 내 자신을 내려다보니 참으로 기막히게 불쌍하고 우매한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명상하면서 그 마음의 짐들을 자꾸 내려놓았다. 그러자 마음세상은 점차 호수처럼 맑아지고 바깥세상은 점점 더 경이롭고 충만해 보였다. 생활하면서 부딪치는 이런저런 일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경우가 현저히 줄어들었고,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시비 판단하지 않고 그냥 조용히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주위의 모든 인연들과 자연이 나와 마찬가지로, 또한 나와 함께, 우주의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때마다, 즉 정신을 차릴 때마다, 고향에 온 것 같은 하나 됨의 편안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자유롭게 살려면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하고, 정신 차리고 살려면 마음 청소부터 해야 함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는 아침이면 등교하는 어린이처럼 우선 명상센터로 발길을 향한다. 가짜인 나를 청소해 버리기 위함이다.

정경현님은 1996년 뉴질랜드로 이민한 뒤 현지인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가르쳐왔으며, 테니스 코치로 활동 중입니다.


임지호

요리연구가 산당 임지호 님은 1956년 경북 안동 생으로, 자연 재료로 특유의 멋과 맛을 선보이면서 해외에서도 다수의 한국 음식전을 열며 큰 호평을 받은 요리예술가입니다. 저서엔 <마음이 그릇이다, 천지가 밥이다>(샘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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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는 낸 만큼 어리석어지고 없애는 만큼 이익이다. 화가 없어지는 것이 바로 이익인 것이다. 나는 화가 나거나 말거나 그것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저 단순하게 살려고 한다. 행복은 단순한 데 있고 그것은 곧 고요함이다.
내 마음도 그렇듯 고요하게 운영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잘 안되지만 노력하다 보면 몸에 배어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로워진다.
화장실 청소도 좋은 방법. 아내와 나는 우리가 운영하는 식당의 화장실 청소를 매일 한다. 이는 자기 마음을 닦는 것과 같다. 가장 더러운 것을 가장 성스러운 기도로써 닦는 것이다. 그러면 화가 쌓이지 않고 동시에 화장실을 이용하는 손님의 기분도 좋게 한다. 화장실을 쓰는 사람은 청소해준 사람의 배려에 고마운 마음이 든다.
젊었을 때는 열정이 강해서인지 우선 화가 먼저 났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오십이 넘으면서 더 겸허해지고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내가 마음을 닦아서 아주 멋진 인간이 되겠다’는 것보다는 한 땀 한 땀 기워 내는 바느질처럼 마음도 그렇게 하나하나 정리하고 주변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살고 싶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그렇게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으켜주는 것이 행복의 비결인 것 같다.


이수나

연기자 이수나님은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MBC 특채로 연기자가 된 뒤, MBC드라마 <전원일기> <안녕 프란체스카> 등에 출연했습니다. 30년 이상의 연륜에도 아직도 연기를 할 때면 긴장된다는 님은 늘 처음이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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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외도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마음을 안정시킬 곳을 찾다가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됐다. 처음엔 그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차츰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편을 대하던 내 마음을 보게 된 것이다. 잘난 척했고 나보다 못하다며 하대하고, 나한테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모두 내 잘못이었다. 남편을 떠올리며 잘못했다고 참회했다. 그러다 보니 미움도 화도 빠져나갔다. 몇 개월 후 다시 만난 남편과 참 편안했다.
재작년, 친한 동생에게 나로서는 큰 돈을 빌려주었다. 동생은 얼마 후 잠적을 해버렸다. 온갖 마음이 끓어올랐다. 나는 돈에 대한 집착과 동생에 대한 마음들을 버리고 또 버렸고 객관적으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난 어렸을 때부터 돈 욕심과 집착이 강했다. 돈을 빌려준 것도 이자를 많이 쳐준다는 말에, 돈을 더 벌고 싶은 욕심에 빌려준 것이다. 겉으로는 동생의 사정을 이해하는 척하며…. 마음으로 동생을 떠올리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후 동생과 다시 만났을 때 오히려 감싸 안을 수 있게 되었다.
화가 날 땐 나를 먼저 돌아보고, 나의 오만과 교만이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았나 반성한다. 마음을 버리고 버려 진심으로 나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아예 화날 일이 없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버릴 수 있어서 참 좋다.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

이 사람, 행복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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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표가 행복해지는 것이었다는 마지 콘보이씨. 그녀는 사랑과 명예와 돈을 좇으며 그 행복을 가지려 했다. 그러나 갖는 것이 아니라 비움으로써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음을 깨달은 그녀는 그 귀한 경험을 혼자만 알기엔 아까워 보스턴에서 명상 도우미로서 봉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올해 사람들을 안내해준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하버드대학 ‘올해의 여성상’을 수상했다.

취재, 사진  조선혜,  정리  편집부


새 마음으로 살고 싶었어요
저는 보스턴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레스토랑을 하셨어요. 형제가 일곱 명인 대가족이었죠. 부모님이 굉장히 희생적이고 헌신적으로 일을 하셔서 우리는 아주 좋은 교육을 받으며 편안한 환경에서 살았어요. 부모님을 본받아 우리 형제들도 열심히 레스토랑에서 일을 했죠. 하지만 레스토랑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열심히 일했던 아버지는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대가족을 입히고 먹여야 했던 어머니에게도 스트레스가 있었죠.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우리 부모님 사이에 문제가 있었어요. 그걸 보고 자란 저도 훗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고 저의 결혼 생활에도 스트레스가 있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했어요. 세 아이를 낳았고 남편과 저도 레스토랑에서 열심히 일했죠. 이것은 어릴 때 자라면서 보아왔던 부모님의 삶을 반복하는 것이었어요. 저는 밤에 일하고 낮에 아이들을 길렀고, 남편은 낮에 일하고 밤에 아이들과 있었어요. 부모님이 살던 방식 그대로였지요.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가 많았고, 13년 뒤 결국 이혼을 했어요.
저는 마음을 바꿔 먹을 필요가 있었어요. 내가 아는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은행원으로 직업도 바꾸었어요. 사람 관계와 환경을 바꾸면 행복해질 거라 믿었어요. 돈과 명예와 사랑을 추구하며 계속 외부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어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했어요. 휴가도 가고, 요가, 침술, 호흡법도 배우고. 하지만 뭔가를 하려 하면 결국 더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이걸 하기 위해선 이것도 더 해야 했고, 저것도 해야 하니, 대부분은 불편하고, 시끄러운 마음 상태였어요. 미래에 대해서도 굉장히 걱정을 하고 있었어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불안해질까봐 두려웠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행복하지 못할까봐 또한 걱정이었지요. 진짜 행복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나? 그렇다면 그 인생은 정말 의미 없구나, 정말 무서웠어요.
마음수련 명상은 친구가 가져온 책자를 통해 알게 되었는데, 내용을 읽고 ‘아, 이 명상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그 내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었어요. 그 속에는 과거가 쌓인 것이 ‘자기’이며,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마음속에 죽어 있는 기억들을 닦고 버려야 한다고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바로 그 과거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었어요. 저는 마음수련이 말하는 것처럼만 된다면 평생 갈구했던 행복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그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명상을 하며 찾아온 변화는 너무나 대단했어요. 반복되는 일상에서의 스트레스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이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녹아내리더군요. 물론 하루아침에 된 건 아니에요.
명상은 내 마음속에 사진처럼 쌓아둔 이미지를 버려요. 그 이미지에는 온갖 마음들과 감정이 묻어 있기 때문이지요. 내 안에 그 사진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남들이 내 기준과 내 틀에 맞게 행동해야 된다고 주장하게 되고 문제가 생겨요. 그것이 가짜마음인 거죠.

과거에 묶여 살던 내가 없어지더군요
하지만 그 사진들을 버리고, 집착을 놓으면 그지없이 자유로워지고, 더 이상 그들을 내 이기적인 사진세계로 보지 않게 돼요. 이 말은 즉 훨씬 편안해지고 즐길 수 있는 인간관계를 가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명상을 하면서 예전과 달리 어느 곳을 가든지 편안하고 자유로워진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과거에 묶여 살아가던 내가 더 이상 없더군요.
명상을 시작하기 전 저를 굉장히 걱정하게 만들었던 것은 제 딸이 “엄마, 내가 뭐 하는지 왜 자꾸 물어요? 내가 뭐 하는지 관심 있는 것처럼. 내 말은 절대 듣지도 않으면서”라고 말하는 것이었어요. 명상하면서 정말로 나는 그동안 딸들뿐 아니라 어떤 사람의 말도 들을 수 없었구나, 알 수 있었어요. 나만의 사진세계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서 듣고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말도 진짜로 들을 수 있게 되었어요. 지금은 아이들과 가족들과의 관계도 ‘완벽’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얼마 전부터 저의 어머니도 명상을 시작하셨어요. 어머니는 제 가족과 친척들에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마지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세요. 그리고 어떻게 명상이 저를 이렇게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알아내고 싶어 하시죠.(웃음)
이제 제 인생의 목적은 많은 사람들이 이기적인 과거의 사진세계에서 벗어나 세상의 마음으로 바꾸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에요. 세상의 마음이 되면 우리는 세상 전체를 알 수 있고, 진짜 논리, 자연에 대해서 알게 되겠지요.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며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해요.

한국인에게 정말 감사해요
정말 인생의 목적을 찾고 싶다면, 두려움과 스트레스와 분노를 없애고 싶다면, 갈등을 없애고 싶다면, 정말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진짜가 무엇인지 알고 진짜마음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어요. 거기엔 자유가 없죠. 그 과거의 프로그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가짜인 과거의 사진들을 빼내야만 해요. 마음수련 명상은 이것을 굉장히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빼내게 해줍니다.
하버드대학에서 올해의 여성상을 받은 것은 제가 마음수련에서 했던 일 때문이에요. 명상을 하고 너무나 편안하고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고 그렇게 했을 뿐인데, 그 헌신을 하버드에서 인정해준 것이지요. 하지만 상을 받고 제일 놀란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저였어요. 저는 이 상을 받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명상이 얼마나 중요한지와 그 효과를 더욱 알게 된 것 같아요.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한국에서부터 마음수련이 시작되었고, 한국 사람들의 그 관대함과 노력으로 지금 마음수련이 전 세계에 퍼질 수 있었으니까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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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 콘보이 Margie Conboy님은 대학에서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를 전공했으며 은행원으로 근무하던 중 2003년부터 마음수련을 시작하였습니다.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

더하기의 시대에서 빼기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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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21세기는 정신의 시대라고 합니다. 마음의 시대, 감성의 시대라고도 하지요.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나면 사람들은 자아의 성장에 관심을 갖는다고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를 목표로 달려온 인류가 이제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기업, 지식보다 감성을 중요시하는 교육….
물질의 시대가 더하기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빼기의 시대입니다. 사람이 자기가 살아온 삶의 마음들을 빼내고 자기라는 존재를 다 없애면 근원으로 돌아가듯이, 우리네 삶도 마음의 이치와 다르지 않습니다. 옷장에, 주방에, 책상에, 생활에서는 물론이고, 사회와 경제, 예술, 교육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쌓여온 삶의 군더더기들은 소통과 흐름을 막는 우리 마음의 짐이기도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빼기의 흐름은 참된 본성으로 향하는 마음의 길을 알려줍니다. 진정한 ‘웰빙(Well-being)’은 빼는 삶입니다. 그 참된 삶을 위한 생활의 지혜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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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 안에 가득한 옷들. 자주 착용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2년 넘도록 입은 적이 없는 불필요한 옷이라면 부담이 될 뿐이다. 연구에 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옷의 20%만을 입는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80%의 옷은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파레토법칙’이라 불리는 20대 80의 법칙은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물건들, 대부분의 활동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묵은 옷들은 공간만 차지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입을 확률이 거의 없는 이 옷들은 내 기억과 마음까지 차지한 채 나를 묶어둔다. 사계절을 두 번이나 순회하는 긴 시간 동안 입을 마음이 없었다면 이미 나와 인연이 끝난 것이다. 그 옷들을 떠나보내야 할 때다. 옷에는 사람의 체취가 배어 있고, 2년이 넘도록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을 어쩌다 입게 되면 옷과 몸이 맞지 않아 불편할 때가 있다.
물건에는 수명이 있다.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물건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런 물건은 생명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가 정체된다.
묵은 옷들은 과거에 묶인 기억과 같다. 집착의 마음이며 잡동사니를 치우는 과정은 버림에 관한 것이다. 이는 오랫동안 물건을 간직해야 했던 우리의 두려움을 버리는 것이다. 가진 게 적을수록 지금 가진 물건을 더 많이 쓰게 되는 법. 물건을 돌보는 일에 에너지도 덜 빼앗긴다.
버리면 버릴수록 마음이 정리되고 상쾌해진다. ‘버리는 것’은 곧 ‘잃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 반대다. 버리는 것은 ‘새로운 기회와 만남을 불러오는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빼기 방법    2년 이상 한 번도 입지 않고 옷장 속에 묵혀 두었던 옷은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그 기준을 분명히 한다. 어떤 컬러가 나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기분까지 즐겁게 만드는지 파악한다. 부족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남아 있는 옷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기분이 드는지 지켜보자. 모양이나 재질, 착용감, 치수 그밖의 무엇이든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련 없이 버리자.

‘언젠가’의 심리를 버리자.    설문 조사에서는 처리하기 곤란한 물건, 버리려고 해도 버릴 수 없는 물건의 베스트 3은 책, 잡지, 옷이었다. 이것들을 버릴 수 없는 것은 이 ‘언젠가’의 심리 탓. 그러나 언젠가는 결코 오지 않는다.

가능한 한 밝은 색 옷을 입는다.    보는 순간, 만지는 순간 기분이 좋아지고 안심이 되는 그런 옷을 고른다.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주고, 입고 있으면 절로 미소가 번지는 옷, 절로 어깨가 펴지면서 자신감이 생기는 옷, 밝고 경쾌한 인상을 주는 옷이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다. 입으면 긍정적이고 밝은 느낌이 드는 옷이 좋은 옷이다.

버리기 위한 기술 10가지
1. 보지 않고 버린다
2. 그 자리에서 버린다
3. 일정량을 넘으면 버린다
4.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린다
5. 정기적으로 버린다
6. 아직 사용할 수 있어도 버린다
7. ‘버리는 기준’을 정한다
8. ‘버리는 장소’를 많이 만든다
9. 좁은 곳부터 시작해본다
10. 누가 버릴지 역할 분담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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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약혼식 때 사진입니다. 1년 8개월의 연애 끝에 결혼을 약속했지요. 저를 번쩍 들어 안아 입 맞추던 그때, 여자로서 꿈꾸던 로망이 실현되는 순간이었죠. 경찰인 남편은 일이 많았지만 새벽 2, 3시에도 저를 보려고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1시간을 달려 바닷가로 향했고 별도 세고, 달도 세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지요. 무겁다며 제 가방도 들어주고, 못 먹는 멍게도 제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맛있게 먹어주던 자상한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결혼 후 남편은 ‘24시간 근무 중~’ 무뚝뚝한 하숙생이 따로 없었습니다. 첫아이를 낳고 얼마간은 아기와 잘 놀아주더니 곧 나 몰라라 했고, 어쩌다 집에 있을 때면 텔레비전만 끼고 앉아 웃는데, 얼마나 얄밉던지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졌습니다. 결혼한 걸 후회했고 부부싸움도 잦아졌습니다.
그렇게 십 년을 살다가 2007년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 기억 속에 있는 마음의 사진 버리기를 몇 달째, 연애 시절처럼 낭만적이고 자상한 남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자기 일을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남편이 멋져 보이고, 집에 오면 쉬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이해되더군요. 어느 날 남편이 한마디 하더라고요.
“마음수련을 하니 사람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고마워, 감동했다.”
똑같은 약혼식 사진인데, 사진처럼 남편에게 떠받들려지길 바랐던 마음을 버리고 나서 다시 보니, 오직 사랑 가득한 우리 부부입니다. 결혼하길 정말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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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먹는 걸 좋아했다. 세상엔 먹고 싶은 것투성이였다. 배가 불러도 먹고, 먹고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밥도 보통 남자들보다 많이 먹었고, 과자도 애들보다 많이 먹었다. 먼저 먹어야 힘을 내서 일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먹으면 살찌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 때문에 먹으면서도 고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된 나는 다른 엄마들과 나의 차이를 알았다. ‘다른 엄마들은 자식 먼저 챙겨 먹이는데 나는 왜 나부터 먹을까, 내가 왜 이렇게 먹고 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명상을 하며 비로소 내가 과식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살아온 기억을 떠올려 버리다 보니 엄마의 칭찬 한마디가 떠올랐다. “너는 참 밥을 맛있게 먹는구나.”
솔직히 나는 다른 형제들에 비해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다. 그런 내게 엄마가 유일하게 칭찬해준 것이 바로 밥을 잘 먹는다는 거였다. 그 칭찬이 좋았고 더 듣고 싶었다. 점점 더 먹는 것에 집착하기 시작했고 과식을 당연하게 여겼다. 음식만 보면 아이도 신랑도 눈에 보이지 않았고, 자리에 꼼짝 않고 앉아 일단 나의 허기부터 채워야 주위 사람들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아버지도 당신이 드시기 전에 자식들이 먼저 먹는 걸 싫어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버리고 싶어 살아온 내 모습과 내 생각, 관념들을 빼내기 시작했다.
지금 나는 더 이상 먹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먹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사라지고, 옆에서 먹는 얘기를 해도 동요하지 않는다. 이젠 음식을 보면 다른 사람 먼저 챙겨줄 줄도 안다. 그렇게 나는 과식 습관에서 벗어났다.

 

참고 도서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캐런 킹스턴 저 / 도솔
<정리 플래너> 제니퍼 베리 저 / 나무발전소
<성공 정리법> 캐슬린 켄달 택케트 저 / 큰나
<큰 쓰레기통을 사라> 우스이 유키 저 / 산수야
<버리는 기술> 다쓰미 나기사 저 / 이레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

낭만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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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브의추억

김병종 작. <카리브의 추억> 한지, 면천, 먹과 채색. 변형 60호. 2008.

김병종 화백의 낭만 이야기

낭만과 현실을 허락받은 내 삶

지금까지의 나의 삶은 한국인 남성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낭만을 좇는 연속이었다 할 만하다. 어렸을 때부터 문학과 미술을 좋아해서 꿈꾸는 소년이었고, 청년 시절에는 삶의 반경을 조금씩 넓혀서 국내 여러 곳을 다니면서 그 꿈으로 그리는 낭만을 현실의 지평 위에 올려놓곤 했으며, 대학의 교원이 되어서는 방학 때마다 스케치북과 카메라를 들고 지구촌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풍경 속에 내재한 삶의 의미와 여러 모습들을 나 아닌 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록하기도 했다. 흔히들 낭만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경쟁 속에서 개척해야 될 그 무엇이고 청소년이나 청년기에 잠깐 바람처럼 경험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낭만이야말로 삶의 양념이며 향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유교적인 전통 위에서 과묵하고 무뚝뚝한 것이 남성다움의 표상이라고 알려져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곳에서는 나이 든 남자의 낭만을 찾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하늘의 무지개를 보니 내 마음이 뛴다고 했던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고백처럼 낭만이야말로 생명의 상징이며 그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끝까지 잃지 말아야 할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관악의봄

김병종 작. <관악의 봄>
한지에 먹과 채색.
6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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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선 / 48세. 회사원. 이탈리아 제노바

궂은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낭만에 대하여’는 가사와 멜로디가, 중년 가수 최백호씨 특유의 투박하지만 서정적인 음색과 잘 어우러지며, 과거의 향수를 있는 대로 불러일으킨다.
8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가 처음 맞이한 여름 방학이었다. 여고 동창생 친구 두 명과 함께 설악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기차 타고, 버스 타고 내린 곳이 마석이었지 아마. 첫날 민박을 하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대청봉을 넘기 위해 출발했다. 으… 힘들었다. 배낭과 텐트가 너무 무거웠다. 그런데 구세주를 만났다. 대학 3학년 형들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자 선배를 오빠라 하지 않고 형이라 불렀다. 그들도 고등학교 동창들이라고 했고 우리처럼 3명이었다. 짐도 들어주고 텐트도 쳐주고 밥도 해주고…. 3박 4일 코스를 4박 5일 걸려 대청봉을 넘는 동안 길도 모르고 걸음도 느린 우리들을 잘 돌보아주었다.
어느 날 밤, 하루 종일 힘든 산행을 마치고 야영을 하던 그날, 하늘의 별이 쏟아지고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들 중 한 명이 기타를 쳤다. 노래도 불렀다. 참 듣기 좋은 목소리였다. 나는 소위 말하는 음치이기 때문에 노래 잘하는 사람을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좀 반한다. 그때 그 형이 부른 노래는 이장희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였다.
‘저 형이 나를…!’ 분명 나를 향한 노래 같았고 나는 가슴이 뛰었다. 달콤한 밤이었다. 하지만 낭만은 착각이었고 현실은 슬픈 것이었다. 노래하던 형과 내 친구가 사귄다는 사실을 그리 오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순간 뭔가 쌉싸름한 것이 목을 넘어가는 듯하더니 가슴께를 지나며 확실히 씁쓰름해졌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왠지 허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난다. 힘들고 고생스러웠지만 첫 ‘산행’의 경험은 설레는 것이었고 또 그 형들과 함께여서 더욱 즐거웠던 것 같다. 이제 다들 아저씨 아줌마가 되었겠지.
낭만이란 너무 큰 기쁨이거나 가슴이 쿵쿵 뛰는 그런 것이 아니고 약간의 설렘, 약간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 약간의 감미로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본격적인 행복은 아니고 행복에 대한 기대감, 본격적인 사랑은 아니고 사랑에 대한 기대감 같은 것 말이다. 그러기에 낭만은 더욱더 젊은 날의 것으로 생각되어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수 최백호씨도 낭만을 노래하며 ‘잃어버린 것’ ‘다시 못 올 것’이라 하였나 보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낭만을 ‘다시 못 올 것’이라고 단정 지어버린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노래 끝 구절을 내 맘대로 바꿔본다.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사랑으로 채워어~(원래는 ‘못 올 것에 대하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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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 작. <생명의 노래>
닥판에 먹과 채색.
60호.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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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희 / 37세. 간호사. 서울시

어린 시절 일년에 몇 번 이사를 간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계속해서 전학을 가기가 어려워서 몇 달간 버스를 꽤 오래 타고 학교를 다녀야만 했다. 처음으로 혼자 타 보는 버스. 처음에는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잘 탔다. 하지만 길치이면서도 영리하지 못했던 나는 그 버스가 아닌 다른 버스를 타면 왜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말씀하신 번호의 버스가 반대쪽에서도 오는데 왜 그 버스는 타면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기다리는데 버스가 너무도 안 오는 것이다. 건너편 길로는 같은 번호의 버스가 몇 번이고 지나가는데…. 나는 당당히 반대쪽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 있게 탔다. 그리고 내가 아는 동네가 보이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가도 가도 익숙한 동네를 볼 수가 없었던 나는 저녁 시간이 가까워 오자 겁이 나기 시작했다. 뭔가 잘못되었구나…. 부모님에게 연락하고 싶었으나, 그때는 전화라는 것도 흔치 않던 시절이었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나는 버스 안내원 언니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당황스러움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나 보다. 결국은 언니가 먼저 “어디 가니?”라고 물어보았다.
다행이다 싶어 동네 이름을 말했는데 언니가 모르는 것이 아닌가. 어른들이 하던 말을 주워들은 거였는데 그게 정식 명칭이 아니었나 보다. 이렇게 저렇게 꿰맞추던 언니는 “아!” 하더니 “꽤 멀리 왔네. 돈은 있니?” 하며 차비를 챙겨주고 어떻게 가야 할지도 자세히 알려주었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안고 집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오히려 버스를 타는 것에 자신이 붙었던 기억이 난다. 버스를 잘못 타도 안내원 언니들에게 말하면 잘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이후에도 수도 없이 언니들의 도움을 받았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 어린 시절의 그 경험은 세상을 늘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 아이가 커서 좀 더 큰 세상으로 나갈 때도 손을 내밀어 줄 누군가를 만나리라 믿는다. 아이들에게 세상이 얼마나 믿을 만한 곳이고 따뜻한지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카리브

김병종 작. <카리브>
캔버스에 혼합재료.
72x50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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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순 / 57세. 교사. 충남 홍성군

지금보다 훨씬 청춘이었을 때 나도 남 못지않게 ‘한 낭만’ 했었다.
낭만을 찾아 도보 여행, 기차 여행, 하이킹 등등 나 홀로 자유 찾는 방랑자가 되어 보기도 했고, 근사한 추억과 사연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 내 꼬라지에야 번번이 꽝!일 수밖에 없었지만, 바다 건너 작은 섬마을까지 홀로 훌쩍 떠나 보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바다, 산, 들에서 밤새 모닥불 캠핑도 하고. 그리고… 마누라한테 들킬까봐 차마 못 쓰는 사연이 있기도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삶은 지극히 평범한 현실이 되고 “낭만 좋아하네. 뭐 말라빠진 낭만이가. 피곤하다, 피곤해. 편한 게 최고지.” 뭐, 이런 식으로 낭만은 그야말로 ‘개뿔’ 수준이 되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이 오십의 중반이 넘어, 드디어 아무리 탐해도 지나침이 없는 이 세상 최고의 낭만을 찾았고 그 속에서 산다. 낭만이란 무엇이냐? 근사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 감동의 물결이 찰찰 넘치는 것, 아주 그냥 죽여주는 것, 뭐 이런 것 아니겠는가. 즉 최고의 낭만이란 바로 감동이요, 내가 찾은 세상 최고의 감동이란 바로 ‘감사의 마음’이다.
감사의 마음은 내가 대하고 만나는 일체를 모시는 마음일 때 우러난다.
부모를, 아내를, 아이들을, 동료를, 선배를, 그리고 지나가는 그 누구조차 말이다. 진정한 감사는 시비하고 시기하거나 미워하거나 이중적으로 대하는 마음들이 없어질 때 비로소 시작되는데, 다행히도 나는 마음수련 명상을 알게 되고,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배움으로써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은 죽었다 깨도 모를 것이나, 아무튼 나는명상을 통해 마음을 버리고 버리자 결국 남는 것은 나라는 존재를 있게 해준 모든 것들에 대한 감사였다.
그 감사는 자존심을 녹여 세상과 내가 하나이게 해주고, 스트레스도, 외로움도 불안함도 초조함과 우울함도 사라지게 했다. 피곤함을 이겨내게 해, 하는 일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 되게 한다. 지난 일들 또한 나에게 있어야만 했던 일, 기쁜 추억이 되게 해주었다.
심지어 마누라가 이 세상에서 제일 예뻐 보이게 하니 어찌 놀랍지 아니한가. 하늘땅을 통틀어 이보다 더 근사하고 멋진 ‘낭만’이 있으랴.

2010년 10월호, 에세이 앤 갤러리에 함께한 님은 김병종화백입니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님은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수의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한 중견 화가입니다. 그동안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대한민국기독교 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학 시절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이며, 유가(儒家)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1~4권)> <중국회화연구>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

낭만에 대하여… (1)

카리브어락

김병종 작. <카리브 어락> 캔버스에 아크릴과 혼합재료. 227×142.7cm.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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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최백호씨의 ‘낭만에 대하여’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낭만’이라는 말 참 많이 듣게 됩니다. 국어사전에 보면 ‘매우 정서적이며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라고 하지요. 그래서일까요? 낭만이라는 말을 들으면 한 템포 느린 여유와 따스함이 느껴집니다. 하얀 도화지에 고운 빛깔이 스며들듯, 텅 빈 마음에 깃드는 낭만은 아마도 우리가 다가가고픈 순수한 마음일 것입니다. 청춘을 지나, 잊고 있던 것, 잃어버린 것, 우리네 삶이 빛나던 순간의 풍경들. 독자들의 낭만 이야기를 모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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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덕 / 45세. 교사. 대구시

1990년 1월 31일.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은 해의 겨울 방학 마지막 날 밤이었다. 흰 눈이 가득 쌓인 대문 앞에 큰 책가방을 든 한 남자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멈칫하며 가까이 가서 보니 아는 얼굴이었다. 모임에서 몇 번 얼굴을 봤을 뿐, 말 한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여기에 어쩐 일이냐고, 집은 어떻게 알았냐고 다그쳤더니, 예전에 모임이 끝난 후 사람들을 차례대로 집 앞까지 태워다 준 적이 있었고,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한 시간 넘게 헤매어서 찾아왔으며, 무작정 기다린 게 2시간이 넘었다고 했다. “왜요?”라고 묻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봅시다!”
세상에! 이렇게 어색하고, 뻣뻣하고, 우스꽝스럽고…. 이런 말이 어디 있나?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보자니!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용기를 내어 세상에서 가장 촌스러운 방법으로 연애를 제안했던 그는 단칼에 거절당한 후 한동안 단식을 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 후에도 대학생이 된 내 동생에게 선물 공세를 퍼부으며 나를 향한 열정을 변함없이 불살랐다. 하지만 나의 태도는 여전히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던 어느 여름날 밤이었다.
“도둑이야!” 자취방 주인아주머니의 소리가 들렸고, 아주머니는 우리 방문을 두들기며 어떤 남자가 우리 집 담을 넘어오려고 하다가 도망쳤으니,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는 혹시나 하며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오늘 저녁도 그 사람은 변함없이 나를 보러 왔었고, 9시쯤 되어서야 아쉬움을 뒤로하며 집으로 돌아갔었는데….
다음 날, “어젯밤 우리 집 담을 넘으려는 남자가 있었다는데…” 했더니 역시나 그가 빙긋 웃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집으로 돌아가다 아쉬움이 남아 다시 왔는데 방 불은 꺼지고, 대문은 잠기고 이름을 불러도 대답이 없더란다. 그래서 담을 넘어 방문이라도 두드려보려고 올라가려 하는데, 아주머니가 보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정신없이 도망을 갔고, 동네 슈퍼 앞 평상에 앉아 태연한 척 시치미를 떼며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경찰이 지나가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심장이 뛰었다는 것이다. 만약 경찰에 붙잡혔으면 그 창피를 어쨌겠냐며 동생과 나는 배꼽을 쥐고 웃었다. 그날 이후 내 마음은 조금씩 열렸으며, 그 다음 해 4월 우리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내년이면 벌써 결혼 20주년이 된다.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도는 그 어색한 한마디! “우리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봅시다!”
세상에서 제일 촌스럽고 어색했던 연애 제안, 그만큼 순수하고 기교를 부릴 줄 몰랐던 그 시절 그 사람의 말 한마디가 ‘낭만’이라는 단어를 연상시키며 아직도 귓가에 쟁쟁하다.

탱고의발상지라보카

김병종 작. <탱고의 발상지 라보카>
종이에 먹과 아크릴.
53.5x45cm.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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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윤 / 만화가. 인천시

어렸을 적에, 남자 아이들에게 구타를 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지금 와 생각하면 그때 그 아이는 좋아하는 여자애를 괴롭힌다는, 다소 순진하고 귀여운 발상을 조금 거칠게 표현한 것이었을 텐데, 거기에 정색하고 달려든 나로 인해 큰 싸움으로 번졌고 급기야 그 아이는 전교생 앞에서 나에게 때려눕혀진 것처럼 보이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그것은 사고였고, 내 주먹에 맞아 벽에 부딪히며 머리에 살짝 피가 났을 뿐이었다.) 자존심이 크게 상한 그 아이는 같은 반 남자애들을 모아 하교하는 나를 쫓아다니며 복수하려 했다. 다행히 끔찍한 충돌 없이 마무리되긴 했지만 그 일로 인해 나는 남자라면 지긋지긋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니 연애를 하게 될 리 만무하고 그 흔한 총각 선생님에게 가슴 떨려보는 풋풋한 추억 하나 없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다. 졸업할 즈음에야 연애를 한 번쯤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짧고 굵은’ 연애를 했다. 짧고 굵다고 하니 말은 그럴싸하지만 판타지로 시작했다 순식간에 식어버린 찌질한 연애였다. 역시 나는 남자가 싫어,라며 툴툴거리다 두 번째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이 녀석이 술 먹을 때마다 내 절친에게 전화를 하여 좋아한다고 고백했단 사실을 알게 되며 헤어졌다.
그 후에도 연애가 잘 안 풀려 그냥 이렇게 살다 죽지,라며 포기했을 때쯤 지금의 남자 친구를 만났다. 그전까지 질풍노도의 엉망진창 연애만 하다가, 갑자기 평화로운 연애를 하게 되니 마치 연애를 처음 하는 것처럼 낯설었다. 꽃 선물을 받고 나서 ‘아, 내가 몇 놈 만나봤지만 꽃을 받아 본 건 처음이네’라는 걸 깨닫는 씁쓸함과 묘한 기쁨의 혼합이랄까.
나는 여전히 남자에게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고 깊은 불신과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지만 점점 사랑이라는 단어가 불러일으키는 낭만과 애틋함에 대해서는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은 한계가 있고 또 부서지기 쉽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주고받는 진심을 통해 변화되고 좋아지는 것들 또한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내 생에 있어 가장 낭만적인 순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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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식 / 72세. 경북 경산시

이렇게 펜을 드니 쑥스러운 마음 금할 수 없소만 용기 내어 몇 자 적어보네.
당신도 알다시피 나는 빈민 농가에서 5형제 중 넷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행한 일들을 참으로 많이 겪었네. 열한 살 땐 6·25전쟁이 나며 형제들과 뿔뿔이 헤어졌고, 열두 살 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고 열여덟 살 때부터는 몸이 아파 5년 동안 투병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지. 그런 아들이 안됐는지 어머니는 “홀로 있으면 외로우니 결혼하라” 하셨고 나는 입대 전에 원치 않은 결혼을 했었네. 하지만 군 생활 15개월 됐을 즈음 아내마저 7개월 된 딸을 두고 저세상으로 떠나고 말더군. 그 후 재혼을 하며 당신을 만났지.
하지만 불행은 계속해서 내 곁을 맴도는 것 같았소. 예비군 창설 당시 중대장을 했던 나는 아상과 우월감, 열등감 때문에 늘 부딪쳤고, 그럴 때마다 세상을 원망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오. 직장 생활에 적응도 못 했고 당신과도 한 달이 멀다 하고 싸웠지. 가족들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고 무시하고 화도 많이 냈었소.
당신에겐 미안했지만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는지 늘 세상이 싫었고, 마음을 의지할 곳도 없었다오. 그러다 마음수련 명상에 관한 책을 보고는 명상을 시작하게 되었소.
명상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요. 눈물이 흐르고 참회가 되면서 ‘내가 이 세상에 죄인이구나, 죽어도 마땅하다’는 생각이 마구 들더이다. 무엇보다 당신에게 내가 한 짓을 생각하면 정말 부끄러워서 세상에 나가기가 두려울 정도였소.
내 말이 곧 법이라며 가족들의 무조건적인 희생만 바랐던 세월들, 내 말을 안 따르면 화내고 물건을 던지던 나. 얼마나 무서운 아버지였던지 내가 들어서기만 하면 울고 웃던 아이들이 갑자기 조용해지던 모습도 하나하나 떠오릅디다.
‘아~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런 삶을 반복해서 살겠구나.’ 그건 너무도 끔찍할 것 같아 계속 명상을 했소. 집으로 돌아온 내가 당신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자, 당신은 별꼴을 다 보겠다는 듯 방으로 들어갔었지.
그래도 명상하고 내가 참 많이 변하긴 하지 않았소? 지금은 청소도 설거지도 집안일도 하고 말이오. 당신 마음에야 안 들겠지만, 40년 동안 당신이 나를 위해 옷을 빨아주고 청소해주고 밥상을 차려준 거에야 비교할 수도 없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갚고자 하는 내 마음이니 넉넉히 받아주오.
얼마 전인가 당신이 ‘요즘은 날이 새는 게 아까울 정도로 편하고 행복하다’고 했을 때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나 역시 이불을 개고 널면서도 내가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스스로 놀랍고 감사해서 눈물이 난다오. 요즘은 화가 날 상황에도 화가 나지 않으니 참으로 마음이 많이 버려지긴 한 것 같소.
여보, 우리도 젊은이들 신혼처럼 한번 재미나게 지내봅시다. 그동안 나 같은 못난 사람 틀에 맞춰주느라 고생 많았소. 앞으로 남은 여생은 내가 당신 틀에 맞춰 살 테니, 아무 걱정 말고 당신은 그저 건강만 조심해주면 되오.

생명의노래

김병종 작. <생명의 노래>
닥판에 먹과 채색.
100×111.5cm. 2005.

2010년 10월호, 에세이 앤 갤러리에 함께한 님은 김병종화백입니다. 서울대 미대 교수인 님은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고, 다수의 국제 아트페어에 참가한 중견 화가입니다. 그동안 미술기자상, 선미술상, 대한민국기독교 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학 시절 동아일보, 중앙일보의 신춘문예에 당선,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하며 뛰어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이며, 유가(儒家)철학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습니다. <김병종의 화첩기행(1~4권)> <중국회화연구> <바보 예수> <생명의 노래>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

인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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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잠자고 바람도 잠자고
갈 곳 없는 사람만 제 할 일 못하고 바쁘기만 바쁘구나
세상이 분주한 것은 사람이 분주하여 분주하구나
대자연은 그냥 있으나 만상은 그냥 사나
이룰 것 제대로 하나도 못 이루는 사람만 갈팡질팡
제 마음속에 허상의 세계에서
허상인 사진이 찍힌 대로
그 사진의 각본대로 자유가 없이 살아가고 있구나

땅에 제 스스로 갇혀 땅인 허상의 세계에 살아가니
지옥의 세계에 고통 짐을 지고 사나
그것은 생명이 없는
실상세계인 세상에 없으니 허상이라
땅에 난 자는 땅에 산다는 뜻은
땅에 나서 마음의 터널 속에 살고 있으니 그것이 지옥이라
하늘 난 자는 하늘 산다는 것은 하늘의 진리인
실상의 마음이 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그 마음 터널 밖인 하늘에 다시 나니
온 세상과 하나 자체라
하늘나라인 진리나라에 사는 것이라

허가 참 되는 것이 완성이고
허허를 다 없애면 참이 남고
가짜인 내 몸과 마음이 없으면
진짜만 남고 진짜로 다시 나야
인간이 제 할 일을 한 것이고
인간이 완성이 되는 것이라

 
 
 
 
 

인간의 완성은 가짜인 인간을 다 버리고
진짜인 사람으로 다시 나야 완성이 되는 것이라

영생천국도 살아서 영생하고 살아서 천국에 가야 하지 않겠는가
수많은 사람이 세상에 살지만
천국 난 의인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으니
사람은 자기가 죽어도 죽은 줄도 모르고
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사람은 죽은 것도 알고 산 것도 아니
이 세상은 하나의 허상 속 사는 세상이라
아는 자가 없구나

아는 자란 자기가 세상인 진리나라 나 사는 사람이 아는 자라
안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라
세상의 이치란 세상의 근본을 알고
세상의 있음 없음이 하나임 알고
나고 죽고 살고의 의미를 알고
참세상의 이치를 아는 것이 아는 것이고 지혜라

근본인 세상의 본래가 사람으로 와야
세상이 구원이 될 수가 있는 것은
그 나라의 주인이라
살리고 죽이고 있고 없고를 할 수가 있기에
본래의 주인만이 있게 할 수가 있고
없게 할 수가 있기에 그러한 것이라
이것이 살활자재권이라
 
詩_ 우 명

 

우 명 선생은 마음수련의 창시자이며, 저술가이자 시인이다. 깨달음과 진리에 관한 3권의 시집을 포함, 모두 열 권의 책을 펴냈으며, 마음과 우주의 이치, 사람들이 마음을 닦아 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로 미국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기념하는 에릭 호퍼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했으며 철학, 영성, 명상 분야에서 다수의 도서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및 일본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