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다스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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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화낼 일이 많은 요즘 사람들이다. 꾹꾹 눌러 참다가 급기야 병을 불러 화병 진단을 받는 이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화를 참는 사람만 화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심신이 쇠약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화 때문에 대인 관계를 잘 못하고 화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그런 화 덕에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화를 보고 나를 보며, 화를 버려 진짜의 나를 찾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존심, 열등감, 화와 함께 버려지다

5년 전, 은행에서 명예퇴직한 후, 사업을 하다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들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라고 하듯이 처음엔 16시간 꼬박 운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늘 짜증과 화로 바람 잘 날이 없었고, 항상 마음이 쫓기는 것 같았다.

엄준용. 대구시

부지런히 움직여야 회사에 사납금을 낼 수 있으니 택시 기사에게 5분, 10분은 돈과 직접 연결된다. 30분 이상 차가 막히는 날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다. 그럴 땐 부지런히 승객을 태워 하루 일당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차가 막히거나, 신호 대기가 길어지면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도로에서 일어나는 끼어들기, 난폭 운전, 운전자끼리의 시비 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힘든 건 승객이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다짜고짜 욕부터 하거나, 불이익을 당한 울분을 토해내거나, 술에 만취해서 갑자기 목이나 어깨, 머리를 잡아끄는 승객까지, 이번에는 과연 어떤 승객이 탈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승객에게 조언했다가 오히려 화를 자초하기도 했고, 이번엔 맞장구를 쳐줘야지 했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네네’ 한다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승객도 있었다. 정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했다. 속이 두근두근거리면서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승객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승객이 내리면 차를 세워두고 잠시 명상을 했다. IMF 위기로 어려웠던 시절, 마음을 비우면서 힘든 마음들을 추스릴 수 있었기에 나에게는 마음수련 명상이 큰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방금 전 승객들과의 일들을 버리면서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시간이 날 때면 가까운 지역 명상센터에 들러 집중적으로 버려나갔다.
사실 나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따지는 것을 좋아했다. 한편으론 “왕년에 나도 이런 사람이었는데…” 하는 마음도 컸다. 가끔 승객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때마다 울컥해지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그건 내 열등감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피해 의식이 있다 보니 작은 말에도 금방 상처받고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자존심, 열등감을 버리다보니, 이미 지나가고 없는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게 부질없고 우습게 느껴졌다.
승객을 위한답시고 했던 말들이 왜 화를 불러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승객한테 맞장구 친다고 무조건 예예, 했던 것도 속마음을 보니 ‘떠드는 게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로 건성으로 대답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승객에게 조용히 아무런 대꾸도 안 했던 것도 ‘됐다, 지겹다, 이제 그만해라’ 하면서 무시하고, 무관심했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런 마음들을 버려나가자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고, 승객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다. 승객을 만날 때도 마음 없이 그냥 들어주고 그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울분과 화를 토해내던 승객들의 마음도 점차 풀리는 걸 경험한다. 만취해서 하소연하는 승객을 만나도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엔 감정을 주체 못 했던 승객들도 “내가 너무 떠들어서 미안합니다” 하고 하차한다.
전에는 항상 머릿속엔 사납금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급해서 난폭 운전을 하게 되고, 짜증과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갖게 되면서 택시 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내 마음의 반영인 듯, 돈과 시간, 고객에 쫓기지 않고도 여유 있게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승객들도 더 많이 태우게 된다.
전엔 택시 안이 너무 좁고 갑갑하게 느껴진 나머지 잠잘 때 하루 종일 갇혀 있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이젠 확 트인 내 마음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다. 요즘은 승객 한 분 한 분이 감사하고 내 이웃처럼 소중히 다가온다. 그분들이 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위급한 환자나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 다리를 다친 학생을 목적지까지 편안히 모셔다 드렸을 때는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보람도 느낀다.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쉬는 날이면 등산을 한다. 스트레스를 풀고 신체 단련을 위해서다. 그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명상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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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엄마, 대인배 되다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화를 참지 못했다. 그 분(憤)을 이기지 못해 물건을 던졌다. 남편은 나를 피해서 도망갔고, 그러고 나서도 화가 진정이 안 돼서 계속 씩씩거리곤 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심지어 남편 옷을 찢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자제를 하고 싶지만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방인혜. 경기도 고양시

남편한테 불만이 많았다. 사랑받으면서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남편은 무뚝뚝했다. 차가운 돌 위에 앉으면 손수건을 털어서 깔아주었던 연애할 때의 자상한 남편은 온데간데없었다. 친구들을 좋아하던 남편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도대체 이 시간에 뭘 하고 있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남편이 밉다 보니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싫었고, 아이들도 싫었다. 그 화는 힘이 약한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들한테는 괴물 같은 엄마였다. 학습지를 해놓지 않으면 바로 그 앞에서 찢어버리며 혼을 냈다.
화가 많다 보니 늘 몸이 아팠다. 감기가 걸리면 성인용이 아닌 소아용 감기약을 먹고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몸은 쇠약해졌다. 그러다가 이웃의 권유로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되었다. 몸이 좋아지고 특히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이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다.
명상을 하면서 산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남편에 대한 집착을 많이 버렸다. 남편을 처음 만나 알콩달콩 연애했던 기억부터 부부 싸움하고, 아이들을 혼내고, 시댁과의 기억까지, 화와 관련한 ‘마음 사진’들을 버려나갔다. 내겐 시어머니도 어렵고 힘든 존재였다. 집안 종손인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가장 잘난 아들이었다. 하지만 결혼 당시 어머니가 원했던 며느리가 아니었기에,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운전면허를 따서 아들 대신 운전하고 다니라 하셨고, 음식도 자식과 손주만 챙기셨다. 시어머니한테 섭섭해서 분을 삭여야 했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아 화를 낸 것도, 결국 어린 시절 외로움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난 항상 외톨이였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은 항상 밤늦게 들어오셨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안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다. 그런 기억을 버리자 지금의 내 모습에서 친정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는 게 힘겨워 자식들한테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무서운 엄마. 결혼 전부터도 입버릇처럼 “우린 엄마처럼 안 살 거야” 했던 내가,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한테 하고 있었다.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지옥 같은 삶을 되풀이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명상을 하면서 남편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전엔 ‘내가 왜? 뭘 잘못했는데?’ 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뿐이었다면, 명상을 하면서 점차 ‘내 잘못이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난 남편한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여보, 내가 정말 잘못했어” 하자, 남편은 “당신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면서 놀라워했다.
그 다음 날부터 이상하게 남편도 확 바뀌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일도 줄고, 나를 대신해 집안일도 해주고 주말엔 애들과도 놀아준다. 화를 버리면서 몸도 좋아졌다. 지금은 30분만 자도 몸이 쉬이 지치질 않는다.
명상을 하고 난 후 초등학생인 큰아이를 마음수련 청소년 캠프에 보냈다. 마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내가 그동안 해온 걸 다 기억할 텐데 엄마한테 뭐라 할까…. 아이는 처음엔 엄마가 가장 버리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일 잘 버려졌다고 했다.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아들에게 사과하자, “엄마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날 난 아이를 껴안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펑펑 울었다. 전에는 엄마가 집에 있으면 말도 안 하고 조용했던 아이들이 이젠 숙제도 봐달라고 하고 대화도 자주 한다.
나는 화를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엔 화가 나면 그 속에 갇혀서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 순간 나를 보게 된다. 마음이 긍정으로 바뀌자, 의욕도 생겨 지금은 회사 일도 하고 쇼핑몰도 운영할 정도로 생활도 활기가 가득해졌다.
내가 표현하는 일체의 감정은 살아온 삶의 찌꺼기다. 때문에 그동안 살아온 산 삶의 마음 사진을 빼지 않고는 답이 없다. 화나 짜증 같은 스트레스를 버리면 삶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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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August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