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목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일은 초심을 지키는 일이다.’
미국 선(禪) 문화의 기초를 닦았던 스즈키 선사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첫 마음은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 <선심초심>은 ‘선’을 수행할 때의 바른 태도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이는 삶에서 무언가를 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바꾸어도 정확히 맞는 말이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道)이기에 진리를 찾아가는 수행과 우리의 삶은 둘이 아니다. 처음으로 일(수행)을 시작할 때의 아홉 가지 마음가짐.

정리 편집부 출처 <선심초심> (스즈키 순류 / 물병자리)

1. 초심을 유지하라
초심은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수행에서는 그 목표를 시작할 때 가졌던 마음을 항상 유지하는 것에 둔다. 마음이 비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에 대해서든 항상 준비되어 있고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상태이다.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스스로 ‘숙련’된 사람의 마음에는 가능성이 아주 조금밖에 없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나는 무엇을 얻었다’는 생각이 없다. 자기중심적인 생각은 모두 우리의 광대한 마음을 제한한다. 무엇을 성취했다는 생각이 없는 사람, 자기에 대한 생각이 없는 사람, 그것이 진정으로 시작하는 사람이다.

2. 바른 자세를 유지하라
마음과 몸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바른 자세로 앉는 것은 바른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바른 자세로 앉으면 저절로 바른 마음 상태가 되기 때문에, 어떤 특별한 마음 상태를 얻기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다. 무언가를 얻고자 하면 마음은 이리저리 방황하지만, 어떤 것도 얻으려고 애쓰지 않을 때,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온존할 수 있다. 바른 자세로 운전을 하고, 바른 자세로 책을 읽는다. 구부정한 자세로 독서를 한다면 맑은 정신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3. 일편단심으로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것은 ‘준비’가 아니라, 그것 자체가 수행이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누군가를 위해 음식으로 지극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그저 그 일을 할 뿐이어야 한다. 어떤 일이 다른 무엇을 위한 준비인 것은 없다.
구도의 길은 ‘일편단심의 길’ 또는 ‘한 방향으로 달리는 수천 리 철길’이라고 한다. 기차가 다니는 철길의 간격은 언제나 같다. 매 순간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지극한 마음을 표현하는 마음 자체가 철길이다.

4. 반복이 깨달음을 준다
매일같이 똑같은 음식을 만드는 것은 지루하고 싫증나는 일일 수 있다. 반복하는 정신을 잃으면 매우 어렵지만 생기가 충만하면 어렵지 않다.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는 없다. 무엇인가를 하게 되어 있는데 그걸 제대로 하려면 매우 주의 깊고 빈틈이 없어야 한다. 이를테면 빵을 만들 때 밀가루 반죽이 어떻게 빵이 되는지 알게 되면 깨달음이 무엇인지 이해하게 된다. 실제 수행은 어떻게 빵이 되는지를 알 때까지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는 것이다.

5. 올바른 노력
무엇을 할 때 보통 무언가를 성취하기를 원하며, 어떤 결과를 기대하며 거기에 집착한다. 이럴 때 필요하지 않은 어떤 군더더기 요소들이 개입된다. 수행이 잘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쭐해지는 마음을 갖기 쉽다. 그것이 군더더기이다. 무엇을 함으로써 무엇을 얻으리라 기대했던 모든 것을 잊고, 그저 무엇만 하라. 그러면 그것의 특성이 스스로 드러날 것이며, 그러면 그것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6. 흔적 없이
사람들은 한 가지 행동을 하면서 대개 두세 가지 다른 생각을 한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새를 잡으려 하기에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렵고, 결국은 한 마리도 못 잡고 만다. 무엇을 할 때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면 온 몸과 마음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 하는 일에 집중해서 활활 타는 모닥불처럼 자신을 완전히 태워버려야 한다. 순간순간 자신을 수행에 바쳐야 한다.

7. 낙심하게 될 때
수행을 할 때 대개는 대단히 이상적이 되어 목표를 높게 설정한다. 그러면 무엇을 얻으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얻으려는 생각으로 수행을 하는 한, 어떤 이상이 성취된다고 해도 또 다른 것을 만들어내고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런 태도보다 더 안 좋은 것은, 타인과 경쟁하는 식으로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초라하기 그지없는 태도이다.
무엇을 하다 낙심하게 되는 것은 욕심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약점이 있음을 알려주는 경고 신호가 나타날 때 오히려 고맙게 여겨야 한다. 그럴 때는 태도를 새롭게 고쳐 잡음으로써 회복할 수 있다.

8. 한결같이
사람들은 보통 이곳저곳에서 정보를 끌어모은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식을 늘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는 대신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면 어떤 것이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처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사람에게는 무엇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 모든 것을 그 자체의 가치대로 음미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늘 한결같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임으로써 자신의 문제를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9. 부정과 긍정을 넘어서는 큰 마음
무엇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저 그것에 대해서 말하기만 한다. 그것을 지적으로 이해해보려고 하거나 자기 생각을 주장하려고 하지 않는다. 들을 때도 자기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모든 일을 좋으냐 나쁘냐 따지지 않고 행할 수 있다면, 그리고 온 몸과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이 곧 수행이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말할 때, 그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를 이해시키려 하거나 논쟁하지 말라. 논쟁을 해서 상대방을 굴복시켰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다. 그저 듣기만 해라. 말하는 것과 듣는 것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다. 때로는 그저 듣고 때로는 그저 말하는 것뿐이다.
무엇을 함과 하지 않음이 모두 큰 마음의 표현이다. 큰 마음은 표현해야 할 무엇이지 이렇다 저렇다 짐작할 무엇이 아니다. 큰 마음은 찾아야 할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큰 마음을 지니고 있다.


 

제목3

<내 생애 가장 큰 행복> 자서전 펴낸 이호선 할머니

나는 어린 시절 글을 안 배워 평생을 눈 뜬 장님으로 살았다. 공문이 와도 읽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들여다보아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아이 아버지가 오면 ‘이거 왔다’ 하고 갖다 주었다. 그동안은 궁금하지만 애만 태우고 있었다. 살면서 너무 답답하고 속이 상해서 울기도 많이 했다.

이호선 75세. 청주시

스무 살에 시집와서 시부모님 모시고 오 남매를 키우며 사는 동안 내 나이 칠십이 넘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복지관에서 한글을 가르쳐준다고 했다. 나는 어려서 못 배우면 영 못 배우는지 알았다. 그런데 복지관이 생겨서 배울 수 있다니 너무 좋았다.
첫날은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글씨를 쓰는데 벌벌 떨려서 그냥 앉아 있다가 글자를 보고 따라 그리기만 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쁨으로 너무나 좋아서 날아갈 것 같았다. 세월이 너무 좋구나, 너무 신이 나고 맨날 힘이 났다. 어려워도 하루에 한 자씩만이라도 배우면 얼마 정도 댕기면 조금 알겠지. 지금이라도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자꾸 생겨서 자꾸 갔다. 그러면서 조금조금 알아졌다. 배우면 되는구나 싶었다. 무엇이든지 보기만 하면 쓰고 읽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공부하느라 고생했는데 보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서전을 써보라고 권했다. 우리가 배운 것도 없이 어떻게 쓰느냐고 했다. 하면 된다고 다 도와준다고 하면서 권했다. 생각나는 대로 말도 안 되는 것을 자꾸 써갔다. 한 번도 안 써보고 이때까지 살았는데 이걸 쓴다는 게 신이 나서 손가락에 못이 배기도록 썼다. 몇 번 못이 배긴 게 떨어져 나가고 새살이 나고를 반복했다.
이 글이 과연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 했는데 시작이 반이라고 시작을 했더니, 작년 말에 <내 생애 가장 큰 행복>(이호선 글 모음)이라는 책이 나왔다. 말도 안 되고 받침도 안 되는 것 만드느라 선생님이 참 고생하셨다. 우리 선생님 아니면 쓸 수가 없었을 것이다. 하고 보니 내가 이걸 썼나 싶다. 생각하면 대견하기도 하다. 누구한테 자랑도 하고 싶다.
요즘 젊은이들은 고생을 너무 모른다. 혹시라도 내가 쓴 글을 읽고 웬만한 고생은 이겨내라고 하고 싶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우리같이 힘이 들지는 않겠지. 지금은 그렇게 배고픔은 없겠지. 웬만한 고생은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내다가 보면 행복이 오겠지.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살라고 말하고 싶다.
옛날에는 쌀이 없어서 밥을 못 하고 있으면 동네 사람이 저 집 밥 안 한다고 한다 해서 그냥 솥에다 물을 붓고 불을 땠다. 그러면 연기가 나온다. 그거 보고 저 집에 밥한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불을 땠다. 그리고 식구들은 물 한 그릇씩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생활을 해도 누구 하나 불평 안 했다.
지금은 너무 쉽게 포기하고 고생되면 자살하고 한다. 툭하면 이혼하고 도둑질도 많이 한다. 지금 사람들은 너무 호강하고 살아서 힘든 걸 못 참는다. 꼭꼭 참고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올 텐데 말이다.
내 어려서는 가정이 어려워 학교에 다닐 수가 없었다. 친구가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책보를 허리에 메고 학교 가는 것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어서 혼자 뒤란에서 울고는 했다. 그런데 이제는 나도 아무 책이나 다 읽을 수 있다. 병원에 가도 접수하는 것도 알겠고, 수납도 하고 은행에서 돈도 찾아올 수 있다. 매사 자신감도 생기고 활력이 넘치고 생기가 난다.
지금도 공부를 계속한다. 맨날 틀리지만 뭐든지 읽고 적는다. 지금이라도 남은 인생을 열심히 배우고 더 많이 배우고 즐겁게 살려고 한다. 이제는 즐겁게 살면서 아프지 말고 내 인생도 돌보고 살아보고 싶다. 앞으로는 컴퓨터도 하고 싶고 서예도 하고 싶다.
나에게는 지금이 진짜 감사하고 고맙다. 하나님 나에게 이런 행복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글은 이호선 할머니가 70세 이후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해 틈틈이 써놓은 글과, 인터뷰한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제목2

생애 처음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2005년 3월 휴일 아침이었다. 아내가 아픈지 못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는 먼저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밥을 안치고 갈치찌개를 끓였다. 생전 처음 요리였지만 그냥 어디서 본 대로, 두부, 콩나물, 파, 마늘…. 이것저것 다 듬뿍 넣었다. 결혼한 지 26년 만에, 내 생애 처음으로 아내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 것이다.

박만표 60세. 포항시

50년을 넘게 살아오며 한 번도 밥상을 차려본 적이 없었다. 경상도 시골 마을에서 오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남자는 절대 부엌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단단히 받으며 자랐다. 그러니 결혼해서도 집안일은 당연히 아내의 일이라 생각하고 절대 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그날 밥상을 차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정말 아내에게 잘못했구나, 하는 참회를 하면서였다.
나는 아내와 많이 다투면서 살아왔다. 당시 우리는 여러 가지 문제로 이혼 위기의 갈등까지 간 상태였다. 나는 항상 내 기준으로 살려고 했고 아내의 입장에 한 번도 서본 적이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한다며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는 날도 많았다. 아내가 육아에도 신경을 쓰라고 이야기를 해도, 오히려 아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남자라고, 가장이라고, 돈을 벌어온다고, 대접만 받으려고 했었다.
이렇듯 늘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온 내가 백프로 아내 입장에서 나를 돌아볼 수 있게 된 건 마음수련 명상을 하면서였다. 지나온 결혼 생활을 하나하나 떠올려 버리기 시작했다. 돌아보니,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할 사람을 내심 가장 무시하며 많은 상처를 주고 있었다. 한 번도 진심으로 아내를 아껴주고 사랑해준 적이 없었다. 아내는 혼자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혼 위기의 갈등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모두 다 내 잘못이었다. 명상을 하는 도중 너무나 미안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 정말 내가 잘못했소. 이제부터는 당신을 정말 행복하게 해주겠다 약속하겠소.”
나는 한없이 울었다. 그리고 아들, 딸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 이후 내 생활은 하늘과 땅 차이로 바뀌었고, ‘내 생애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 많아졌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참회하는 마음으로 했다. 절대 할 수 없었던 일을 자연스럽게 하는 내 자신이 놀랍기도 했다.
명상을 하고 난 뒤에 맞은 아내의 첫 생일날이었다. 늘 그냥 외식으로 축하를 전하곤 했지만, 그날은 뭔가 뜻깊은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직장에서 100송이 장미 꽃바구니 배달을 보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아내는 처음에 받았을 때 너무 어리둥절했다 한다. 잘못 온 게 아니냐고 몇 번을 확인하다 정말 자기에게 온 것을 알았을 때 너무 행복해서 그 꽃 옆에서 한참 동안 발을 못 뗐었다고 한다. 그리고는 계절별로 옷을 다 갈아입고 딸아이에게 부탁해서 온갖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혼자서만 간직하고 가끔 보며 힘을 얻었다고.
그 말을 하며 아내는 자신이 봐도 코미디라며 웃었다. 하지만 그날은 아내 평생 최고의 날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도 놀랐다. 그런 작은 선물 하나에도 그렇게까지 행복해하는구나 싶고 또 여태까지 그런 마음 하나 몰라주었을까 후회도 되었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때 생애 처음으로 했던 일들이 일상이 되었다. 처음에 아내는 변화한 내 행동을 의아하게 지켜보았지만, 한결같이 실천하는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다. 언젠가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그동안 고생했지만 나이 들어서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게 축복인 것 같다. 당신이 나를 왕비로 만들어주니 나도 당신을 왕으로 대접하게 된다”고. “당신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2010. 9. September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