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전긍긍 아등바등 안 해도
늘 생기가 돋네!
글 양재일 52세. K은행 본점 부서장. 서울시 동대문구 휘경동
지난 90년대 말 IMF 사태가 준 충격은 컸다.
우리 회사 전체 직원의 30%가 감원되고,
지점에선 많은 동료들이 줄줄이 떠나가게 된 것이다.
떠난 자와 남은 자의 갈림길, 그 속에서 나는 남겨진 자에 속했다.
하지만 남겨진 것에 대한 안도와 감사함 한편으로 회의가 밀려왔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것,
과연 열심히 일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공허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더 이상 여태껏 해온 생활을 반복하면
안 된다는 거였다. 달라져야 했다.
먼저 급변하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현실 감각을 키우고 싶었다. 업무 능력을 키우기 위해 영어 공부는 물론 은행 업무와 관련한 전문 자격증 취득에 매진했다. 덕분에 10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했고, 인사 담당관은 “이제 더 딸 자격증이 없겠네요”라고 했다.
아침 8시, 회사에 1등으로 출근했고, 고객의 전화 한 통이면 무조건 달려갔다. 고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방문을 했다. 토요일, 일요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온 결과, 온종일 내 책상의 전화는 불이 났다. 예금 유치액도 2배 이상 늘어났다. 실적에 자신감이 생겼고, 어느 순간엔 맘만 먹으면 목표 달성액을 이루었다. 그야말로 신바람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부하 직원들의 업무 태도가 눈에 점차 거슬렸다. 9시 출근, 6시면 땡~ 퇴근하는 직원들이 못마땅했다. 고객이 찾으면 휴일도 반납하고 언제든지 달려가는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구 하나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왜 그리 못하냐”면서 직원들을 꾸짖었고, 직원들의 불만도 커졌다. 내 책상 앞으로 고객들은 줄을 섰지만 직원들과는 손발이 맞지 않아 일이 점점 힘겨워졌다.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직장 생활에 대한 허무함도 다시 고개를 들었다. 설사 목표 달성을 하더라도 아무런 보람도 찾을 수가 없었다. 혼자서 바쁘게만 뛰어갈 뿐, 이유도 뜻도 없이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기분이었다. 나름 동기 부여를 하면서 의미를 애써 찾아보았지만,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직장 생활이 이런 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다니려고 직장에 들어온 게 아닌데 나는 왜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전전긍긍하는 내 얼굴이 안되어 보였는지 은행 청원경찰이 내게 마음수련 책자를 건네주었다. 마음을 버릴 수 있다는 문구가 참 맘에 와 닿았다.
그렇게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쫓겨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나. 서글프면서도 씁쓸했다. 나이 먹는다는 게 두렵고 불안한 나. ‘갑자기 잘리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남보다 잘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나. 자기밖에 모른다며 면박을 주었던 직원들. 근데 돌아보니 나야말로 나밖에 몰랐다. 고객을 위한다고 휴일도 반납했지만, 결국 나를 위한 거였다. 실적은 곧 내 명예요, 자존심이었다. 목표를 세워 그 기준에 따라오면 잘한 거고, 못 미치면 못한다고 다그쳤던 직원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다고 했지만 오직 나만을 위한 최선이었다. 직원들은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한 희생양에 다름없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아찔했다. 소의 고삐를 잡고 끌고 가듯 내 잣대에 맞추려고 억지로 끌고 가려 했으니 힘들 수밖에 없었구나….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수많은 굴레에 덮어씌어 있었다. 자식도 잘돼야 했고, 동기들한테 창피 안 당하려면 승진도 해야 했다. 퇴직도 마찬가지였다. ‘직장 생활 30년 했다, 지점장이다’ 등 과거의 타이틀을 부여잡고, 낯선 세상에 던져진다는 게 두려웠다. 아등바등 잘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사이 주변 사람들은 이미 깊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 내가 오히려 그들을 힘겹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미안했다.
마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자 주위 사람들이 점차 눈에 들어왔다. 내 잣대로 바라본 세상이 불만투성이였다면, 나로부터 벗어나 바라본 세상은 온전히 나를 거두어주는 한없이 따듯한 세상이었다. 하나하나가 다 감사했다. 잘 커주는 아이들, 아내가 정성스레 끓여준 된장국,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 그들이 달리 보였다. 그 자리에 있는 이유와 가치를 인정하게 되었고, 내 방식대로 무언가를 강요하거나 요구하는 게 줄어들었다.
직원들의 의견을 많이 듣고 존중하려 했다. 혹여 할 일을 잊어버린 거 같으면 메시지를 띄워주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해주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좀 더 많이 웃으면서 대했을 뿐인데 직원들은 그 이상으로 열심히 해주었다. 그 결과 우리 지점은 고객만족도평가에서 아주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욕심으로 일을 할 땐 하는 것 없이 힘만 들더니, 지금은 많은 일을 해도 늘 생기가 돋는다.
내가 무수히 그어놓았던 선을 지우니 그 자유와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앞으로 다가올 퇴직도 이젠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내 인생 제2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이제야 제대로 된 자격증을 딴 기분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건 참되게 살아갈 수 있는, 생애에서 가장 멋진 자격증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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