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티비를 보다 명품 가방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런데 고1 아들 녀석이 대뜸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아빠는 엄마 명품 가방 몇 개 사줬어?” 갑자기 훅~~ 들어오는 몇 개라는 말에 막말이 나와 버렸습니다. “죽을래?” 아들 녀석이 기죽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합니다. “한 개는 사줬겠지?” 옆에 앉은 아내의 코웃음을 보며 아들 녀석에게 침착하게 한마디 했습니다. “형우야… 명품… Continue reading
"에세이"
정춘수 어른의 가르침
‘어른 말씀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50이 넘어 보니 그 말이 실감이 난다. 나보다 어른들이라면 대개는 60대에서 70대 이상의 분들이다. 그들은 욕심과 거리를 두고 안쓰러운 것들에 눈길을 보낸다. 자신의 젊은 시절을 돌아보며, 그게 누가 되었든 노력하는 젊은이를 위해 손을 걷어붙이고 도움을 주기도 한다. 자신들이 겪었던 어려움, 그 미로에서 헤매는 젊고, 용감하고, 가여운… Continue reading
뭔가 일을 한다는 것은우리 인생의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자, 축복일 것입니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해준 나의 일 김영주 61세. 상품 검수원. 전남 나주시 이창동 근 30년 동안 몸담아오던 직장을 명예 퇴임으로 끝내고 자연인으로 돌아온 날, 거울 앞에 비친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아직은 생기 잃지 않은 동안의 얼굴 그대로인 것 같은데 그동안의 삶의 굴레에서 찌든, 연륜이란 나이테만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씁쓸한 미소를 지어본다. 그동안 수면… Continue reading
뭔가 일을 한다는 것은우리 인생의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자, 축복일 것입니다
북촌을 달리는 행복한 인력거꾼 김형준 서울시 종로구 사직로. 아띠인력거(주) 근무 나는 인력거꾼이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인 서울 북촌에서 자전거로 된 인력거에 손님을 모시고 아름다운 북촌의 모습과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나는 그들이 눈과 귀 그리고 몸으로 북촌을 만났으면 한다. 아직도 내겐 알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은 북촌. 나는 오늘도 세발자전거에 몸을 싣고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다닌다. 그리고… Continue reading
할머니의 잔인한 복수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중학교 2학년 딸아이에게 전해주면 좋을 거라며 아이돌 그룹의 화보집을 선물받았습니다. 반갑게 화보집을 들춰보는 딸아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얘들이 엑스오냐?” 저의 물음에 딸아이가 피식 웃었습니다. “엑스오가 뭐예요, 엑소지.” 딸아이의 썩소에 발끈해 한마디 더 했습니다. “엑스오나 엑소나 그게 그거지, 가시나야.” 그러자 딸아이도 발끈합니다. “엑소를 엑~~스오라 그러면 안 되죠. 아빠가 좋아하는 씨스타를 ‘씨소타’ 뭐 ‘그네타’ 이러면… Continue reading
거친 눈보라에도 꺾이지 않는 들풀을 닮은 내 친구
하늘도 청명했던 지난 봄, 출근길에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따스한 봄 햇살과 시원한 공기가 필요할 것 같은 친구의 소식이 궁금해서다. “어, 나야. 웬일이냐 형한테 전화를 다 하고….” 수신음이 한참 전달된 후 막 끊으려는 순간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눌함이 느껴지지만 목소리에 힘도 있고 무엇보다도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반응이어서 반가웠다. “아침은 먹었냐? 날 좋은데… Continue reading
‘신은 어느 곳이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울 엄마가 가장 행복했던 때 조이연 37세. 직장인. 서울시 강남구 테헤란로 “엄마, 엄마는 지금까지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예요?” 정확한 날짜는 생각나지 않지만 행복이 무엇일까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때였던 것 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엄마에게는 그 순간이 도대체 언제였을지 궁금해 물었다. “너를 임신하고 있었을 때. 그때가 26살이네. 어떻게 생각하면 바보 같을 수도 있는데… Continue reading
‘신은 어느 곳이나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 ‘제일 안전한 피난처는 어머니의 품속이다’….
엄마 생각 김동진 시인, 수필가. 중국 길림성 훈춘시 나로 말하면 눈이 내리는 겨울, 산과 들이 하얗게 소복단장을 하는 세밑이 오면 엄마 생각에 깊이 잠기곤 한다. 그것은 바로 눈이 백포처럼 하얗게 덮인 섣달에 엄마가 하얀 옷을 입으시고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자식치고 어느 누가 아니 그러하랴만 나도 울 엄마 생각을 하면 콧등이 찡해나고 눈물이 핑 도는 것을… Continue reading
‘개딸’이라 불리는 우리 집 딸아이
아침 7시 중학교 2학년 딸아이를 깨우려고 방에 들어갑니다. 방문이 안 밀립니다. 안에서 잠가놓은 건 아닌데 잘 안 밀립니다. 좀 더 힘을 줘서 밀어보니 제 몸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확보됩니다. 문 앞에 딸아이의 책가방이 놓여 있습니다. 어깨끈이 문 밑에 끼어서 잘 안 열렸습니다. 책가방뿐만 아니라 문 앞에 널브러진 물건들이 많습니다. 문 앞에서 딸아이가 누워… Continue reading
이 땅의 진정한 농사꾼, 나의 남편
서울에서 이곳 낯설고 물설은 섬, 무의도로 남편이 좋아 32살에 시집을 왔습니다. 그때만 해도 무의도는 연안부두에서 2시간 배를 타야 올 수 있는 곳이었지요. 농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저는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쯤 농사꾼 남편을 따라 들일을 시작했습니다. 바늘에 실이 따라가듯 매일 함께한 시간이 벌써 26년이네요. “땅은 정직하다. 심은 대로 거둔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늘 남편이 하던…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