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엄마 손 잡고 외갓집에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두메산골 외갓집에는 외증조할머니와 외할아버지 그리고 작은 외할머니 슬하로, 입대를 앞둔 큰삼촌부터 여섯 살 꼬맹이 이모까지, 모두 열두 명의 식솔이 와글와글 살고 있었다. 그중에서 영미이모와 영희이모는 참 대조적이었다. 열다섯 살 영미이모는 산골 소녀답지 않게 얼굴이 예쁘장하고 손도 빨라 시키는 일을 척척 잘했다. 하지만 촌스럽게 생긴 열네… Continue reading
"에세이"
나를 자꾸만 붙잡아두던 것들을 시원하게 버린 사람들의 버렸기에 얻은 자유와 평화, 그 유쾌한 이야기들.
232 그 추억의 보물상자를 버리다 남명희 49세. 주부.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대화동 난 20년 가까이 일기를 썼다. 나의 일기를 모아 환갑 때 출판기념식을 하리라 기대하며. 결혼 후 두 아들을 키우면서는 나중에 남겨주려고 사진도 많이 찍으러 다녔다. 앨범뿐 아니라 육아일기도 몇 년에 걸쳐 썼다. 기록하는 습관에 자부심을 갖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두… Continue reading
나를 자꾸만 붙잡아두던 것들을 시원하게 버린 사람들의 버렸기에 얻은 자유와 평화, 그 유쾌한 이야기들.
233 머릿속 잡념들을 TV 전원 끄듯 꺼버리다 이영순 43세. 공무원. 대전시 서구 둔산동 살아 있다는 자체가 참 힘들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기에 먹고 입어야 했고 돈도 벌어야 했고, 자식 교육도 시켜야 했다. 직장에서 일하고 집에서 청소하고, 반찬 만들고…. 살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일상들이 나에게는 참 버거웠다. 배 과수원집의 3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난 나는 어릴… Continue reading
탑리역에서
지난여름, 새내기 대학생 딸이 생애 첫 기차 여행을 하였다. 사박 오일의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딸은 어느 간이역에서 본 그림 같은 광경을 이야기해 주었다. 동해역에서 출발한 기차를 탔어요. 차창 너머로 생전 처음 보는 풍경들이 영화처럼 지나고 있었어요. 얼마나 달렸을까. 긴 철길이 들판과 마을 사이를 지나는 곳에 탑리역이 있었어요. 기차가 정차하자 사람들은 분주한 걸음으로 플랫폼을 빠져나갔어요. 그런데… Continue reading
‘7’이라 쓰고 행운이라 부른다 하는 럭키lucky7! 이달엔 행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8 엄마, 아파도 괜찮아, 엄마에겐 착한 딸이 있잖아 황의선 34세. 직장인.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엄마는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다. 간경화, 류머티즘, 재생불능성빈혈, 갑상선에 비장비대…. 내가 핏덩어리였을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자, 엄마는 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셨단다. 젊은 엄마는 자식 셋을 홀로 키우기 위해 당신의 체력 이상으로 에너지를 소진하셨을 것이다. 덕분에 먹고살 걱정 없이 살게는 되었지만, 엄마는… Continue reading
‘7’이라 쓰고 행운이라 부른다 하는 럭키lucky7! 이달엔 행운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209 일명 ‘럭키 가이Lucky Guy’의 고백 황휘 서울 상문고등학교 3학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3회 금메달 수상 나는 운이 잘 따르는 편이다. 럭키 가이라고나 할까^^. 아무 생각도 없었는데 구독하는 잡지 이벤트에 당첨이 되고, 우연히 돌아다니다가 TV 인터뷰에 나오기도 하는 등, 당첨 운은 기본이고 뭔가 지원해서 한 번도 떨어져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도전, 연속 7개의 컴퓨터 자격증을… Continue reading
고양이가 사는 법
어머니는 찰떡같이 약속해놓고, 내가 방심한 사이 옷 보따리를 싸 들고 잽싸게 진주역으로 달아났다. 낌새를 채고 역으로 갔을 때, 진주발 순천행 9시 30분 기차는 이미 떠나고 선로에는 장대 같은 빗줄기만 퍼붓고 있었다. 호우주의보가 해제되면 내 차로 함께 시골집에 가기로 한 약속을 어머니는 단박에 깨뜨린 것이다. 오로지 그놈의 고양이들 때문에. 결국 어머니 뒤를 쫓아 시골집으로 차를 몰았다…. Continue reading
한 번쯤 그 입장에서 생각해준다면, 서로의 차이는 오히려 서로를 알게 되는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189 ‘지윤’이와 ‘윤식’이 사이 윤지윤 30세. 선박검사관. 부산시 수영구 수영동 나는 여성스럽다, 남성스럽다는 말에 유감이 많다. 여성은 여성이고, 남성은 남성이지, ‘스럽다’라는 표현은 왜 필요했을까? 이미 짐작했겠지만 나는 남자 같은 아이었다. 갓난아기 때 나의 어머니는 “아드님이 참 잘생기셨어요”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사촌들도 모두 남자였다.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오빠들의 옷을 물려 입고, 권총 장난감을 들고 뛰어다니며 오빠들이… Continue reading
한 번쯤 그 입장에서 생각해준다면, 서로의 차이는 오히려 서로를 알게 되는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요?
190 도로 위의 무법자 ‘김여사’가 내 아내일 줄이야 이대영 42세. 직장인. 충남 아산시 배방읍 몇 개월 전 퇴근 후 집에 오니, 아내가 조용히 나에게 말을 한다. “당신, 며칠 차 타지 마.” “왜? 사고 났어?” “아니, 주차장에서 차 빼다 기둥을 박아서 문짝이 찌그러졌어. 좀 심해. 펴올 테니까 다음에 타.” “끙~~” 그리고 고친다 고친다 하더니 바쁘다며 안… Continue reading
그늘 밑 나무 의자에
야영 수련 활동 이틀째, 그 아이가 기어코 사고를 쳤다. 불현듯이 달려들어 반 친구 종윤이를 때린 것이다. 돌발적인 폭력 행사에 놀란 야영 수련원 강사들은 그 아이를 수련원 사무실에 따로 떼어 놓았다. 연락을 받고 서둘러 사무실로 가보니 아이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치리라던 다짐이 또 흔들렸다. 아이는 내가 다가가자 “언제 과자…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