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 밑 나무 의자에

야영 수련 활동 이틀째, 그 아이가 기어코 사고를 쳤다. 불현듯이 달려들어 반 친구 종윤이를 때린 것이다.
돌발적인 폭력 행사에 놀란 야영 수련원 강사들은 그 아이를 수련원 사무실에 따로 떼어 놓았다.
연락을 받고 서둘러 사무실로 가보니 아이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치리라던 다짐이 또 흔들렸다.
아이는 내가 다가가자 “언제 과자 사 먹으러 가요?” 하고 물었다.
나는 질문을 무시하고 왜 종윤이를 때렸냐, 안 그러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며 다그쳤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과자에 대한 불안정한 집착이었다.

착한 종윤이는 그 아이의 손찌검에 한 번도 맞붙어 싸우거나 되받아치지 않았다. 그때마다 쫓기는 고양이처럼 친구들 사이로 몸을 피했다. 그리고 애써 웃었다. 우리 반 아이들은 그랬다. 마땅히 우리가 그 아이와 함께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작은 악동을 일으켜 다시 실습실로 데리고 갔다.

아이들은 한참 나전칠기 공예 체험에 열중하고 있었다. 나는 강사들의 우려스런 눈길을 피해 그 아이를 제자리에 앉혔다. 맞은편 종윤이도 아까 일을 까맣게 잊은 듯 제 나전칠기 목걸이 꾸미기에 여념이 없었다. 핀셋으로 바늘처럼 얇은 자개 조각을 집어, 동전 크기의 나무 목걸이 면을 꾸미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자개가 너무 얇고 가늘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아쉬운 대로 아이의 이름 석 자를 새겨 보려고 하는데, 설상가상 안경마저 없으니 작은 재료들이 자꾸만 핀셋 끝에서 미끄러졌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조별로 함께 쓰는 접착제를 쏟아 버렸다. 그래서 허겁지겁 끈끈한 액체를 닦아내는데…. 갑자기 서글픔 같은 것이 와락 달려들었다. 나는 망연히 앉아 있는 아이 손을 잡고 실습장을 나왔다.

우리는 야영 수련원을 빠져나와 동네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래서 아이한테 대체 왜 또 종윤이를 때렸냐고 물었다. 아이는 미간을 좁히고 잠시 생각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종윤이한테 아이스크림 사줄 거예요.”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이는 제 돈으로 과자 한 봉지와 아이스크림 두 개를 샀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싶어 서둘러 수련원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이를 수련원 뜰 앞 나무 의자에 앉혀 놓고 실습장으로 갔다. 목걸이 공예는 막바지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무 목걸이에 모양을 다 꾸민 아이들이 줄을 서서 유약 칠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 키 작은 종윤이가 보였다.

종윤이도 자신의 작품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종윤이 손바닥에는 나무 목걸이가 두 개나 있었다. 가만 보니 그중 하나는 아까 우리가 만들다 포기한 나무 목걸이었다. 그 나무 목걸이에는 자신을 끈질기게 손찌검하던 친구의 이름 석 자가 온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아! 가슴이 뭉클했다.

“네가 만든 거냐?”

아이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우리는 수련원 뜰 앞에 있었다. 나뭇가지 사이로 화사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그 햇살이 자디잘게 부서져 내리는 나무 의자 위에, 멀대 같은 어른 한 명과 날개를 숨긴 천사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린 천사들은 약간 녹은 아이스크림과 과자 한 봉지를 뽀시락뽀시락 맛있게 나누어 드시고, 멀대 같은 어른은 저 혼자 행복에 겨워 헤벌쭉 웃고 있었다.

최형식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