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이제 여름, 뜨거운 태양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누군가에게 있었던 잊을 수 없는 여름 이야기들.

 

남미 농장에서 보낸 뜨거운 여름

김나영 26세. 직장인.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대학교 졸업 후 나는 갈 길을 못 찾고 방황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일을 해봐도 그다지 나랑 맞지 않았다. 내 스스로 만들어놓은 높은 기준, 하지만 거기에 못 미친다는 열등감 때문에 무기력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 무렵 지인으로부터 ‘남미 농장 봉사 활동’ 제안을 받았다. 그곳은 아몬드를 키워, 남미나 아프리카 등 어려운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쓰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보면, 뭔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산 넘고 물 건너 장장 34시간이 걸려, 아르헨티나의 농장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중국, 멕시코, 일본, 미국 등에서 온 약 300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첫날에는 짐을 풀고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잠이 들었다.

‘빰 빰빰빠라 빰 빠라 빰빰 빰빰빰’ 다음 날 새벽 5시 30분. 기상나팔 소리가 울렸다. 해는 뜨기도 전이라 쏟아질 것 같은 별들과 함께 아침을 먹고,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농장으로 나섰다. 그제야 뜨는 해를 바라보며 트럭을 타고 10분가량을 가는 내내 끝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땅은 마치 바다의 수평선을 보는 것 같았다.

“우리의 임무는 풀과의 전쟁입니다.” 밀짚모자에 하얀색 반팔 면티, 선글라스에 팔토시를 착용한 농장 주인이 우리가 할 일을 설명해주었다. 실제로 아몬드 나무는 아직 우리 키보다 작았고, 그 주위에는 성인 남자보다 더 큰 가시덩굴과 잡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잡초를 제거해야만, 아몬드가 제대로 클 수 있는 것이다.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2인 1조로 팀을 꾸렸다. 그 드넓은 땅엔 아몬드 나무와 풀, 그리고 우리밖에 없었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해가 질 때 농장 일을 끝냈다. 그리고 잠깐 눈만 감은 것 같은데 또다시 들려오는 기상나팔 소리와 함께 농장 일을 시작했다. 하루, 이틀, 삼 일… 계속되는 풀과의 전쟁. 잡초를 제거하던 중 불현듯, ‘나는 아몬드보다 못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참 미안했다. 아몬드도 세상 사람을 위해 쓰이는데 나는 진짜 아무것도 해온 게 없었다. 오직 내 틀 안에 갇혀 나만을 위해 살아왔다.

이 순간만이라도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몬드는 살리고, 나라는 존재는 없어지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잡초를 제거했다. 나보다 더 큰 풀 하나가 뿌리째 뽑혀나갈 때, 내 안의 무기력함과 열등감, 자존심과 이기심도 같이 뽑혀나갔다. 예전의 나는 없어지고 아몬드처럼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 당당히 새롭게 서는 것 같았다.

농장 일을 하며 틀도 많이 깨졌다. 깨끗한 것 좋아하고 매일 씻는 게 습관이었는데, 그곳에서는 그런 여건들이 풍요롭지 않았다. 때문에 씻을 수 있는 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누울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었다.

또한 나 혼자만 잘해서는 되는 게 없었다. 점점 서로 간에 의지하며, 정말 다양한 국적,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갔다. 나보다는 세상을 위한다는 한 가지의 목적으로 모인 300명의 사람들, 그곳에 내가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내가 있는 모든 순간, 내가 설 수 있는 어떤 자리도 감사할 줄 알게 해준 곳. 세상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알려준 아르헨티나의 그 드넓은 농장. 꿈같았던 4주간의 뜨거웠던 여름이 그립다.

 

강석문 작. <너와 함께> 76×72cm. 한지에 먹, 채색. 2007.

 

‘천상의 휴가지’제주에서 알려드립니다

임병도 43세. 전문 블로거. impeter.tistory.com

이제 나에게 ‘여름휴가 어디로 갈 건가요?’ 하고 묻는 사람은 없다. 재작년 아예 제주로 귀촌했기 때문이다. 여름철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보면, 아내와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웃는다. 제주에서도 중산간 지방에 사는 우리 집은 한낮에는 잠깐 덥지만, 저녁이면 서늘하고, 새벽에는 시원하다 못해 춥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사방팔방 모두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침 해가 마당을 비추면 그 상쾌함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다. 집은 낡았어도 잠시 낮잠을 자려고 거실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면, 신선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지인들이 놀러오면 깻잎이며 상추를 따놓고,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다. 지인들은 ‘진짜 너무 환상적이다, 나도 제주도에 내려오고 싶다’고들 한다.

한창 덥다 싶을 땐 그냥 입고 있는 옷 그대로 차를 타고 나간다. 집에서 차로 딱 10분 거리에 바닷가가 있다. 나무숲이 우거진 비자림로를 타고 바다에 가서 몸과 마음을 한 번씩 씻고 오는 그 기분은 경험하지 않은 분들은 모르실 것이다.

예전에 강원도 동해로 바캉스를 떠났다가 고속도로에서만 8시간을 갇혀 있던 기억이 있는 나에게 지금은 하루하루가 휴가이고 여행인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누구나 부러워하는 제주에 살면서 느낀 점은 이 세상에 천상의 낙원은 따로 존재하지 않다는 것이다.

제주도에도 나름 안 좋은 건 있다. 특히 우리 집처럼 숲에 둘러싸인 집은 여름이면 매일 밤 벌레와의 전쟁이다. 거실에 불만 켜놓으면 온갖 벌레가 모두 달려든다. 담배 크기만 한 나방은 아주 애교스럽고, 벼룩이나 바퀴벌레, 풍뎅이, 딱정벌레 등 자연도감에서나 봤을 법한 벌레와 곤충들이 집 안에 수시로 출몰한다. 벌레가 컴퓨터 위를 기어 다니기도 하고, 다리에 올라타기도 한다. 모기약, 모기향, 전자 모기 퇴치기, 바퀴벌레약 등 철저한 대비를 하고, 온 창틈을 테이프로 물샐틈없이 막아도, 어느새인가 벌레들에게 물리기 일쑤다. 만약 일직선으로 물리고 모기 물린 것보다 훨씬 가려우면 벼룩이 문 것이다.(^^)

습기가 많아 제습기를 온종일 틀어놓아도, 벽지에 곰팡이가 끼는 것은 다반사이고, 옷이며 가방, 심지어는 아기 유모차에도 자고 일어나면 곰팡이가 핀다는 문제도 있다. 이곳에서는 열대야보다 무서운 것이 바로 벌레와 습기인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벌레가 나를 일깨워주었다. 세상은 공평하고, 늘 좋은 면과 나쁜 것이 공존한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지금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필요한 것만 생각하면 끝도 없고, 불만과 불평이 나오는 것이 인간이다. 제일 무서운 것은 벌레가 아니라, 내 안에 들어 있던 불만과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무더위나 벌레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활짝 웃는 우리 딸아이의 미소와 지금의 삶에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 제일 무섭다.

아무리 초호화 여행을 하고 나도 집에 도착하면 “아이고, 집이 제일 편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는가. 올여름, 최고의 휴가를 어떤 곳으로 갈 것인가 결정하기보다는 어떤 여행이 내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쉬게 해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다. 그 역시 힘들다면 아이들과 방 안에서 텐트를 치고 함께 즐기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악의 여름휴가는 무엇을 해도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고, 최고의 여름휴가는 바로 내가 어디에 있든지 ‘이곳이 낙원이다’라는 생각으로 지내는 것임을, 천상의 휴가지 제주에서 주민으로 살며 깨닫게 되었다.

 

강석문 작. <붕붕> 50×68cm. 한지에 먹, 채색, 아크릴. 2010.

 

내 동생, 순철이

이기철 64세. 농부. 약물산토종농장 운영.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나는 팔 남매의 장남이다. 순철이는 두 살 차이의 바로 밑에 동생이었다. 천성이 착하고 순했던 순철이는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을 항상 자기 일인 줄 알고 살았다. 집에서는 장남인 나만 고등학교까지 보내주었고, 동생은 그냥 국민학교만 나와 농사일을 도와야 했다. 나만 학교에 다니는 게 미안했지만, 동생은 그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언제나 “형, 공부 열심히 해라” 하고 응원을 해줄 뿐이었다. 틈틈이 마을 서당에서 한문도 배우고, 혼자서 기타도 배워 칠 줄 알고, 농사일도 잘하고, 힘도 세고, 헤엄도 잘 쳤던 내 동생 순철이.

1974년 8월 23일, 그날은 억수로 비가 많이 내렸다. 나는 군대를 막 제대하고 집에 와 있었는데, 잠시 나갔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이웃에 머물러 있었다. 비가 내리니 동생도 집에서 잠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어머니는 식구들 주려고 올해 첫 수확한 감자를 삶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웃 아주머니가 다급하게 순철이를 찾았다. “애들이 떠내려가니 빨리 와서 건져 달라!”고. 당시 우리 마을 앞 강에는 다리가 없어서, 나룻배로 강을 건넜다. 그날은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일찍 귀가를 시켰다. 그런데 뱃사공이 그만 뱃줄을 놓쳐 버리면서 배가 뒤집힌 것이다. 당시 배에 타고 있던 학생들 11명과 할머니 한 분이 대책 없이 물에 떠내려가고 있었다. 서둘러 강가로 달려간 순철이는 온 힘을 다해서 학생들 한 명 한 명씩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곱 명의 학생들을 구해냈다. 그리고 다시 강가로 뛰어든 순간, 그만 나룻배의 부서진 나뭇조각이 이마를 치면서 동생도 그대로 물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떠내려온 동생을 발견한 건, 오후 4시경. 동생이 그렇게 된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강가로 나왔던 나는 그 자리에서 오열하고 말았다.

내 착한 동생 순철이. 어머니는 삶아놓은 감자도 못 먹고 갔다며 참으로 서글피 우셨다. 4명의 학생들과 함께 순철이를 산에 묻었다.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불어나면, 어머니는 항상 강가에서 다슬기를 건져와 장국을 해주셨는데, 동생을 그렇게 보내고는 장국도 끓이지 않으셨고, 생전 물고기도 입에 대지 않으셨다. 동생을 먼저 보낸 후 병이 나서 일찍 가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나는 더 이상 고향에 머무를 수가 없어서 다음 해 서울로 나왔다. 하지만 5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토종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토종이라고 하면, 그전에는 흔하고 진절머리 난다고 했는데, 막상 다시 귀농을 하니 진짜 애착이 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그렇게 토종 종자를 기르고 애를 쓰시던 게 생각이 났다. 토종 농사를 지으면서 토종의 생명력이 강하다는 것을 많이 느낀다. 개량종은 조그마한 재해에도 금세 사그러들지만, 토종은 밟아도 다시 올라온다.

그러다 2006년 8월, 정말로 마을이 다 없어질 정도로 큰 수해가 난 적이 있었다. 강과 밭이 완전히 뒤섞일 정도였다. 그때 아주 희귀 토종인 조개콩도 다 떠내려가버리고 말았다.

종자를 완전히 잃어버렸구나 싶어 속상했는데, 한 달쯤 지나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빗물에 쓸려 내려가다 전봇대에 걸렸던 조개콩이 그 틈에서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었던 것이다. 그렇게 비가 쏟아졌었는데… 그 와중에 살아남다니! 마치 죽은 자식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기뻤다. 그걸 따서, 씨앗으로 보관한 후 다음 해 밭에 심었다. 그 조개콩은 지금도 풍성한 수확을 내면서 잘 자라고 있다.

그 조개콩 꽃이 피어날 무렵이 바로 동생의 기일이다. 동생의 희생 이후 마을에는 많은 발전이 있었다. 나라에서 다리도 놔주고, 지붕 개량도 해준 것이다. 또 동생에게는 공덕비도 세워주고, 대통령 훈장도 나왔다.

한 알의 씨앗이 썩어서 열매를 맺고, 그것이 다시 씨앗이 되고. 그렇게 모습은 없어지지만, 영원히 그 씨앗은 살아 있는 것처럼, 동생의 선량한 마음 또한 그렇게 영원히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순철이 덕분에 우리 형제들도 이렇게 화목하게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네가 살아 있었다면 형제간에 훨씬 더 화목할 텐데. 순철아, 미안하고 참 고맙다.”

 

강석문 작. <꽃놀이> 63×72cm. 한지에 먹, 채색. 2007.

 

버리고 비우는 웰빙라이프의 지혜 (22)

 

석가모니에게 반특이라는 좀 우둔한 제자가 있었습니다.

동료들이 그의 머리 나쁨을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어려운 것을 기억할 수 없으니, 이 글귀나 읽도록 하여라.”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일러주었습니다.

“신체의 동작, 언어, 의지의 작용을 악으로 하지 말지며,

모든 생명이 있는 중생을 상해하지 말 것이며,

오직 바른 생각으로 공(空)을 보면 무익한 고통이 없을지니라.”

그러나 반특은 이 간단한 말씀조차 외울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아무래도 바보 천치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저는 세존의 제자가 되기는 애당초 틀린 모양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석가모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보이면서 스스로 바보인 줄 모르는 사람이 정말 바보다.

너는 스스로 바보인 줄 알고 있으니 정말 바보는 아니다.”

그리고는 비 한 자루를 주며 동료들의 글귀를 더 쉽게 줄여

‘먼지를 닦고 때를 씻으라’는 한마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우둔하지만 정직했던 반특은 열심히 그 말씀을 외우며

동료들 신발의 때를 씻어주고

집 안의 먼지를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그렇게 한 자루의 비와 한 구절의 말씀에 전념한 덕분에

반특은 드디어 자기 마음의 때와 먼지를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난 반특은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훌륭한 부처가 됩니다.

 

어떤 길을 가려 하든 엄청난 교리를 외우거나

학식과 지식을 쌓는 것이 능사는 아닌 듯합니다.

논리와 사상에 매이기보다 먼저 몸을 움직이는 것,

한 자루의 비를 들고 동료의 자리를 쓸어주는 것,

그렇듯 참으로 살아 있는 행동이 먼저 나올 때,

비로소 내가 가고자 하는 그 길의

‘첫걸음을 떼었다’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빼기가 대안이다

고정관념이 우리 행동에 미치는 영향 그 흥미로운 실험들 (1)

정리 편집부 출처 <마음의 시계>(엘렌 랭어 | 사이언스북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생각을 제어할 수 있고 어느 쪽으로든 선택하여 방향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고정관념들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50세가 넘으면 체력이 떨어진다” “나이가 들면 기억력이 나빠지기 마련이다” 등 우리가 살아오며 갖게 되는 수많은 관념들이 말이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교수이자 <마음의 시계>의 저자인 엘렌 랭어는, 30여 년 이상 여러 실험들을 통해 그러한 고정관념들이 우리의 행동과 잠재성을 얼마나 구속하는지에 대해 보여줘 왔다. 우리를 틀에 가두는 것은 신체가 아니라, 신체가 한계를 지닌다고 믿는 스스로의 사고방식이라는 것. 고정관념을 버리고 사소한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삶이 얼마나 행복하게, 긍정적으로 바뀔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다.     

‘여자는 수학을 못한다?’

사전에 자극된 관념이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점화효과라고 한다. 예를 들면 ‘여성들은 수학을 그다지 잘하지 못한다’라는 관념을 자극하면, 그 여성은 수학 실력이 악화될 것이다. 동양인 여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시험을 치르게 하면서, 한 집단은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으로, 다른 집단은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사전 자극했다.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은 수학을 잘한다는 것이고,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은 수학을 잘 못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으로 사전 자극된 집단은 수학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보였고, 동양인이라는 정체성으로 사전 자극된 집단의 점수는 매우 높게 나왔다.

‘높은 가격이 높은 품질을 의미한다?’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시작하기 전인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들이 에너지 강화 음료라고 믿는 음료를 나눠주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음료의 값이 2.89달러라고 알려주었고, 다른 집단에게는 정가 2.89달러의 음료지만 도매로 단돈 89센트라는 할인가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운동을 마친 후 살펴본 결과, ‘할인가’ 집단에 속한 사람들은 ‘정가’ 집단에 비해 운동의 강렬함이 낮았고 운동 후에도 피로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나타났다.

‘가망 없다던 환자’가 ‘곧 퇴원할 환자’들의 병동으로 옮겨졌을 때  

10년간 말을 못 하는 상태로 보호 시설에 있던 여성이 병동을 개보수하는 동안 같은 건물의 다른 층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녀가 지내던 3층 병동은 환자들 사이에서 ‘가망 없는’ 병동으로 알려져 있었다. 반면 새로 옮기게 된 1층 병동은 곧 퇴원할 환자들이 머무는 곳으로, 그곳 환자들은 가까운 곳을 돌아다닐 자유와 같은 특권을 누렸다.

병동을 옮기기 전 검진 결과, 문제의 여성 환자는 말을 하진 못했으나 건강 상태는 탁월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런데 1층 병동으로 옮겨 그곳의 특권을 일부 누리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자, 곧 말을 하더니 이윽고 퍽 사교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3층의 개보수는 곧 끝이 났고, 그 환자는 ‘가망 없는’ 병동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 만에 쓰러져 사망했다. 검시에서는 아무런 의학적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듯 살아오면서 갖게 된, 혹은 주입된 모든 관념들은, 실제 우리의 삶과 신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관념을 바꾸고, 없애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실험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빼기가 나를 바꾼다

음식에 대한 편견을 깨다

 

30대 초반, 나에게는 정신적 멘토라고 여겼던 분이 계셨다. 그분은 요가, 명상에 일가견이 있었고 외모에서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풍겨져 나왔다. 하루는 그분께서 나에게 채식을 해보라며 권하셨다. 그분의 정신세계를 닮고 싶은 마음에 나는 곧바로 채식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육고기는 물론 생선이나 계란도 먹지 않았다. 아침은 야채에 된장, 점심은 도시락을 싸다녔다.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명체를 죽이지 않으니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이론적으로도 내 행동의 당위성을 찾고 싶어 책도 많이 읽었다. 술도 자연스럽게 끊었다. 친구들이 ‘혼자서 천년만년 살 거냐’ 핀잔도 줬지만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단순히 먹고사는 즐거움만 추구하는 ‘그들’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나는 내 입맛 하나를 위해서 사는 동물이 아님을 스스로 인지시키며 나와의 약속은 십 년이 넘게 계속 지켜졌다. 그러던 2010년 호기심에 시작한 마음수련은 내가 생각했던 음식과 마음의 평화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는 과체중이라 열등감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등산, 헬스, 스쿠버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내 인생을 돌아보며 채식과 금주를 포함한 이 모든 것들이 열등감을 포장하기 위한 것임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네와는 달라. 난 정신세계를 추구해.’ 마음에 우월함을 채우며 살아온 세월이 십 년이 넘어가다 보니 고집과 틀이 되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절대 피해 준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도 가족 식사를 즐겁게 해본 기억도 없었다. 아빠와의 외식이라는 애들의 사소한 즐거움을 뺏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아빠였음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진리는 무엇을 먹는가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도 절실히 깨달았다. 오히려 채식한다고 티 내며 나와 남을 구분 짓고 사는 동안 내 삶은 진리와 멀어져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채식도, 내 삶에서 보고 배운 기준과 틀도, 그걸 가진 나도 다 버렸다. 그 후론 몇 달 사이에 먹는 것으로 다른 사람을 시비하지 않게 되었다. 그것은 나 자신부터 자유로워졌기에 가능해진 편안함이었다. 주위 사람들의 마음도 진실로 이해하게 되었다. 상대가 무엇을 먹든,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그것을 시비하고 구분 짓고 있는 내가 있다는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도 알게 되니 이 몸뚱이만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저절로 들었다. 어떤 높은 이상과 정신세계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나부터 참회할 때, 진정한 마음의 평화도 찾아옴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김철기 45세. 자영업. 제주도 제주시 봉개동

인간은 왜 허상인가

글, 그림 우명

세상에는 참과 허가 있다. 참이란 세상이고 인간은 허다.

왜냐하면, 인간은 세상과 겹쳐진 자기의 마음속에

살고 있기에 세상 사는 줄 착각하지만 세상 아닌

자기의 마음의 세계인 허상세계에 살고 있기에

사는 세계도 허상이요, 그 속 사는 인간도 허인 것이다.

세상은 그냥 있으나

자기의 마음의 세계는 없는 것이라 허이듯,

지금 내가 살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허인 귀신의 생각이다.

그곳은 없는 세상이다. 또 자기도 없다.

참인 세상은 아무리 없애도 없어지지 않지만

허는 없애면 없어지니 참에서 보면 없는 것이다.

참에서 다시 나야 없어지지 않는다.

신이란 본래가 형체가 없는 비물질적 실체가 신이라

이 우주의 근원은 정과 신으로 되어 있다

이 존재는 물질이 아니나

이 존재는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라

사람이 아는 것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을 알기에

이 존재가 자기 속에 가져야 알 수가 있는 것이라

참인 이 존재도 자기의 마음속에 가진 만큼

알 수가 있는 것이라

완전한 것은 이 존재 자체로 다시 난 자만

이 존재를 확실히 알 수가 있는 것이라

이 존재는 살아 있되 그 마음이 없어 일체를 넘어선 자리라

일체에 아는 것도 넘어서고

인간세상에 있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벗어난 자리라

세상에 있는 것은 인간의 관념 관습인 마음이 있다

인간의 마음에 있는 것은 모두가 허상이라

인간의 마음에 관념 관습이 떠난

신의 자리는 완전한 자리라

세상의 것이 있되 있음 속에 있지 않고

그 마음조차 없어 자유고 해탈이라

삶을 살되 삶 속에 있지 않고

그냥 존재하는 존재이고 또 영생불사신이라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외 영역본 등 다수가 있습니다.

In life, people experience the sorrow of parting. The stories of people who, through saying farewell, have entered a new world.

Life is Always a Spring Day

Jin Jung Kim, 37, Teacher

One afternoon on a sunny spring day, he was playing basketball with the neighborhood kids.  His concentration as he sweat in the sun caught my eye.

Once again, he was absorbed in basketball as he waited for me to get off from work.  I was four years into my life as a young working woman; he was waiting for his first placement as a teacher.  Both of us were past the worries our peers were going through, and our present and future together looked to be a happy one.

Six months had passed since we broke up and got back together.  We saw each other nearly every day.  After work we strolled along the most beautiful street and visited famous pubs.  I was attracted to his comprehensive knowledge and progressive social consciousness.  He said I had adorably cute expressions.  He always listened to what I had to say and liked the fact we could communicate on the same level, despite my being five years younger.  Of course there were days we fought, but the periods of distance didn’t last long, and our relationship grew to be stronger than before the fight.

That year’s monsoon was particularly long and there was a lot of rain.  Every day came with bad weather. The waiting room of the Intensive Care Unit was full of tired, expressionless people with unkempt hair.  I was there, along with his mother, father, younger sister, all of whom I had just met for the first time.  In the next room, he was relying on a respirator, battling death.  No, rather, he was heading towards death.

His illness came all too suddenly.  On the hottest day of the year, he came to my house.  He said he had a fever.  I figured it was because of the heat.  A bit later, he said he was cold.  I gave him a warm blanket.  A few days later, he was rushed away in an ambulance.  After tests in the morning, I thought he would leave the hospital all better.

Two days after he was admitted to the hospital, I went to see him.  He was diagnosed with malignant lymphoma. He was unconscious.  However whenever treatment to remove something from his neck was performed, he would writhe in pain.  The doctors said that even if he recovered, he would be handicapped.  As the days passed, the doctors tried to persuade us to abandon hope.  After I returned home, I got a phone call saying his situation was serious.  Then another similar phone call came, and as I drove up to the hospital I found out he had passed away.

Maybe it was because of the absence of all the cumbersome machines, but he appeared peaceful as he lay there in the hospital bed.  His chest still seemed warm.  Could it be he was still alive…

After he passed away, the world was no longer like a bright spring day.  I became the cynical self I had been before I met him.  I comforted myself by telling myself I was never interested in love, that I didn’t need love.  I resented him.  I went on trips by myself and immersed myself in movies and music.  I wanted to pour out my feelings for him from my heart.  At the same time, I didn’t want to talk to anybody about him.

I ate, worked, and lived day to day in the same way, but every cell in my body felt full of sadness.  I felt like crying whenever someone provoked me in the slightest.

Then a colleague recommended Maum Meditation to me.  As I mediated, I threw away the ‘me’ that was holding onto him.  I threw away the ‘me’ that lived in the memories of the short time spent with him.  The places we went to together, the memory of him playing basketball, scattering his ashes along a riverbank, me as I cried and laughed, I threw it all away with my mind.

I thought I had truly loved him, but it turned out that wasn’t so.  I had always received, wished for the void in me to be filled, wanted everyday to be fun.  I was ashamed to realize the tears I had shed had actually been for myself, for me now that I lacked those things.  I was wrong, I am sorry…. as I meditated I apologized with all of my heart.

It’s been nine years since he passed away.  Now I can recall him with calmness.  Now that I know where people come from and where they go, I know he has shed his hurting body and is in a good place. Now I live earnestly and in the present.  Always.

By Kyung Sook Chang . <LOVE> 2010.

Wisdom of life through throwing away (21)

Subtraction Changes Me

My Tic Disorder has Disappeared

 

Middle school was hell for me. Starting second year, I needed to focus on studying and because this was such a sensitive time, I constantly argued with my friends and always had big fights once or twice a year.

The looks in the kids’ eyes at school stayed with me and their remarks rang in my ears all day long.  I became more and more sensitive. In order to fill the void, I paid more attention to my appearance. Does it look like I gained weight? What looks better on me? I questioned the people around me endlessly.  Life with these never ending thoughts gave me stomach problems and I would come home and collapse into bed, dead tired.

One day as I sat at the breakfast table, my hand started to shake. “Why is my hand shaking?” My dad said it was because there are a lot of unpleasant things in my mind. Immediately tears welled in my eyes.  He was right.  At that time I was completely stressed out and very sensitive.

After that whenever I had to concentrate on something, my neck would start to tic. While waiting at a traffic light, waiting to get off the bus, waiting in the lunch line, whenever I felt like people were staring at me, even though I tried to stop it, my neck would twitch. Being afraid that people might look at me strange made the tic worse. I fervently wanted to throw away my troubled mind. I remembered my mom telling me about Maum Meditation and I decided to give it a try.

As I meditated and reflected on the past, I recalled an event from elementary school. I had played a secrets game with my friends, but foolishly divulged the secrets. After that I was shunned by my friends, made an outcast.  That memory was very intense and after that I developed social anxiety. I also recalled a time in middle school when my friends made me out to be a weird person. Sometimes when my friends harassed me, I got so angry I wanted to beat them.  However I even threw away those minds.

As I threw away I learned that those minds were false. I realized the reason for my tic was that I was too sensitive and too concerned with what other people thought. I thought that if I just threw those minds away, everything would be okay. I kept meditating during the school year and went to youth camp every break. When I returned to school my friends were shocked to see my skin had cleared up and my tic had disappeared. And I constantly surprised myself as I observed the changes in me that only I could see. Every meal used to be followed by stomach pain, but eventually I was able to eat and digest food with no trouble. I became able to respond to all the events that happened around me with composure. If anxiousness came up as I waited in the lunch line, I was able to remind myself “this doesn’t exist,” throw the mind away, and feel better. Now I don’t have to avoid traffic lights and bus stops. Because those minds don’t exist in the original mind, I can stand up to those minds and walk with confidence now.

These days there are students who suffer from violence in schools, but instead of brooding about it alone, they should ask for help from those around them and throw such minds away. This way they can learn that life is not only pain, and that there is hope.

Joo Hyun Choi, 17

Our Director of Academic Affairs Knows how to Liven up the Atmosphere

Young Sun Na, 51, Middle School Teacher

Our school’s Director of Academic Affairs, Mr. Cho, is an expert at mediation.   The Director’s position requires one to be responsible for all administrative affairs and manage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teachers, principal, and vice principal, as well as oversee the overall atmosphere of the school. Opinions often clash at school, just like any other workplace.   In addition to guiding students, there are demands and tasks handed down from the local education office and the Ministry of Education, and taking into account the opinions of nearly fifty teachers and 30 classes of students, parents of students and making a compromising solution is no easy task.   In particular, when there are instances of school violence, sometimes the parents’ involvement in the matter turns into bigger fights.

However, Director Cho was always able to turn those situations around and calm everyone down. It took less than five minutes for him to advise parents and meet with students to coolly counsel and coach them.

After working with Director Cho for over two years ago, I began to wonder how he was able to pacify people’s minds so well, so one day I approached and asked him.

Director Cho answered he had been practicing Maum Meditation for over three years.   Every year he was Director of School Affairs, Director of Students, or pursued research, and also was a skilled teacher in his subject, but the constant focus on promotion caused Director Cho to become removed from his students. As he realized this he asked himself “What am I doing? How am I living” and began to feel extreme pessimism. It was then when he received a notice for a Maum Meditation Teacher’s Program and began Maum Meditation.

As he persistently emptied his mind, he began to understand people with the heart, not the head, and as he found this freedom he found it easy to mediate difficult situations.

As time passed, the changes in Director Cho were even more noticeable.   His countenance was bright, voice confident, and his cheeriness could lead any atmosphere.   And thanks to Director Cho’s suggestion, I, too, attended the Maum Meditation Teacher’s program last winter break.

In one week I learned,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the way to empty the mind.   The method was easy and simple enough for seventy, eighty year old grandmothers as well as children to practice, and immediately my mind became more at ease.

I was able to reflect deeply on my twenty-five years of life as a teacher.   Instead of placing myself in my students’ shoes, my feelings, my thoughts always came first.   I realized that all this time I had stored the impression of trouble-making students and had greeted with prejudice new students with similar attitudes. I had self-created this stress. I repented as I imagined how hard it must have been for my students.

After I finished the program and returned to school, I was free from the stored-up prejudices and stereotypes and was able to view my students from a completely new perspective.   Teaching students became easier and because students felt more comfortable with me, the synergetic effect caused the overall stress in the class to decrease. Starting this semester I start each morning with twenty minutes of emptying the mind. I do this with the desire that school life be more enjoyable for these middle school students, who have so much school work and are sensitive due to adolescence.

This year, Director Cho was chosen to be Director for an unprecedented third year in a row.   Always a “yes man”, with his dependable ability to liven the atmosphere and his characteristic sense of humor, I look forward to Director Cho creating a thoughtful school with his big and humble mind.

Dong Joon Kim ? Realization of the Complete Self

정리 김혜진 사진 홍성훈

As a science high school alum and KAIST University student, Dong Joon lived with “studying” as his life’s purpose and meaning. However the ever increasing academic competition, loneliness and sense of distance from friends, the fleeting happiness after achieving goals, and days where all that was left was emptiness led Dong Joon to wonder, “Why do I need to study so hard? Is this ultimately what happiness is?” After starting Maum Meditation in 2010 and destroying the barrier of “me,” Dong Joon learned how to treat people sincerely and the joy of sharing happiness. This is the story of one twenty-three year old’s realization of life’s real purpose.

I was always a quiet and passive kid; the only thing I was good at was studying, and this was how I wanted to be acknowledged. I figured this was the way to gain status; this was how I could accomplish anything. So I went to a science high school and got into KAIST University. I majored in mechanical engineering because I always enjoyed physics class. When you’re solving a problem and suddenly the answer falls into place… oh the bliss!

However, after a while, I became distressed. There was always so much studying to do. The minute I finished one assignment and could relax, there was another assignment, always another assignment, always having to study… In fact, I didn’t even know why I needed to study so hard.

I figured this was to be my life. Grad school after college, and even after I started working, I figured this was how I would live. To me, the CEOS of Fortune 500 companies or Bill Gates only seemed to live a difficult life, always competing; they didn’t seem that happy. If that was my fate, I began to wonder: why do I need to study so hard?

Pride, in particular, was a big problem for me when I viewed my friends. Ever since I was young, I was always first in my class and I went to a renowned high school, a place where the best of the best went. Life was one big battle of pride. Only exams, exams, I only needed to do well on exams, better than others. That was my mindset.

In fact, just like me students don’t know why they need to study. They do it because it’s habit, because they’ve done it this far. People think students from a top school like KAIST don’t worry about their future and that everything’s a done deal, but the truth is they are very insecure. They aren’t very good at things other than studying, so they fill that void with academics, but when they arrive at this school they painfully realize they fall behind in that area as well. Therefore, in my case, true friendships were difficult. I was always lonely because I thought of my friends as rivals.

Mealtimes in particular are when one needs a friend, and one’s pride wouldn’t allow eating alone, so meals were stressful. Everyone sends texts asking “Do you want to eat together? Do you have time?” Afraid they might end up eating alone, students get anxious.

I started Maum Meditation after seeing a Maum Meditation flier by chance the winter break of my senior year of college. The people in the flier looked so happy. I wondered if I too could change if I went here. I had heard that I was usually cold to people.

As I meditated, I truly saw myself for the first time. I thought I had taken on all of the work others didn’t want to do because I was good, but it was all just to look good. I had lived only for myself! The thought that if I didn’t finish this meditation, life will always be like this made the future look bleak.

I assumed that if I bought a friend a meal, he’d pay next time. I always reluctantly agreed to favors in case my friend would think badly of me. I didn’t stay in touch with people until I needed them. I saw how I had lived. There was nothing done for others, everything was calculated, only for me. I learned why personal relations were difficult. The only thing I could show off was studying and KAIST so instead of approaching people humanely, I started relationships by showing off. So I was harsh with my words, berated others, and was unable to be warm.

From beginning to end I continuously eliminated that “me” because I truly disliked myself. And I found the roots of my minds: because I had always been told I was a good student, that I was smart and polite, these compliments had only made me more proud. “I’m right, why are you like that?” I had only viewed the world with my fixed notions.

As I threw away those minds I learned how I should treat people. To be one means to stand in another’s shoes, but I didn’t know this. Now that I listen carefully to people from their perspective, I can hear the little things they say off-hand, and I can respond accordingly. Thanks to Maum Meditaiton, my relationships with my friends and younger sibling have improved. Before, I self-created barriers between me and others, and I said I was lonely, and I didn’t know the joy of being with others, but after I knocked down my mind I saw that people were always with me from the start.

As I meditated I found my purpose in life for the first time: to live not for me, but for others. I want to live helping the people around me find happiness. I already know how unhappy it is to live only for one’s self.

I’d like my peers to think about this. Suppose I were to receive the Nobel Prize?would I be satisfied? If I were to be as rich as Bill Gates?would I be happy? There is no end to man’s quest for satisfaction because no matter how much I fill the existence called “me,” there is no fulfillment. This is the reason every moment of happiness was immediately followed by emptiness for me. In middle school I was happy when I received my acceptance letter to a science high school, but the next day I felt empty. This was an endless cycle.

My heart aches when I see on the news stories of students taking their own lives. There is a way to escape from the troubling minds, but those students just didn’t know it. How painful and distressing must it have been for them to the very end.

I think I am now learning, for the first time, the way to live. I’m learning how to clean, how to cook, and how to talk with people. If my brain and a pen were all of me before, now I am realizing every moment that the basis of life is opening the mind and diligently moving the body. That is the start of an admirable life, lived not for me, but for others.

One’s Life After He Has Become Real

  

Drawings and writings by Woo Myung

 None of the events and stories I had in my mind exists in the world; they are all illusions I made. I had stored everything in my mind, and I had lived within it, but now, that world and I do not exist, and the real world – the source – that is existence and the origin remains. I am born from the origin, and my Soul and Spirit is the incarnation of the origin. Because I do not exist, it is freedom; and because I do not exist, it is liberation and great rest. The Creator created the world and he also created man. The Creator must come to the world in human form, for all people to be resurrected as the Creator’s children in the land of the Creator and for man and the world to be born in the real world. Isn’t it a miracle of miracles that this can happen? That man can become complete and live forever is a true miracle, but because man who is false does not know Truth, he does not know what to believe and what is actually true. Shouldn’t we be thankful to the origin, and acknowledge this inconceivable grace – this debt of having become Truth, by becoming of one mind with the will of the origin, and dedicate our whole lives to saving world and its people by helping them to be resurrected and make this world a heaven and paradise?

Now that I have discarded everything and I do not exist, the world is the living heaven, and this itself is eternal blessing and happiness. My mind that had nowhere to go no matter where I went, my mind that only sought to gain, now that it has become Truth and gained everything, it does not lack anything, and all delusional thoughts have completely disappeared, and the five desires and seven sins no longer exist.

I am so thankful; there is only thankfulness,

because none of this was achieved by me, it was all done for me by Truth. Just as it was done unconditionally and without expectations of anything in return, I will live saving the world, also without the mind that I do so. Casting off the meaningless affairs of human life, and amassing blessings in the land of Truth, is what a wise person, a person of Truth, does. It is in heaven that you must have power, by amassing your blessings in that everlasting land. This is what it means when it is said, that the wise store their treasures in heaven, while fools store their treasure on earth. Because I do not exist, it is great freedom, and the world is the land without death, where one knows all the ways of the world. Only a person who lives in that land, knows man’s importance and worth, and the meaning of life.

Man who is at the crossroads of life and death should not hesitate;

he should be born in the world that is true. Looking back from that world, the affairs of human life were all foolish, and now that my false self, the ghost, has gone, there are no regrets at all. It was truly difficult to get rid of myself, and it is amazing and a relief that I have disappeared. I do not even want to look back. My regrets and sighs have fled, and all suffering and burdens have gone. I had tried to gain Truth holding onto myself, but now that I have gone, I have become Truth and my Soul and Spirit of Truth is now truly reborn. Like the bird that flies in the sky, like all things that exist in the world, I can just live, I can lay down all minds. I live having become the mind of nature. It is so wonderful, that I will dedicate my whole body and the rest of my lifetime,   to helping people to come to this world.

Woo Myung founded Maum Meditation. For his outstanding dedication to the service of humanity, he was awarded the Mahatma Gandhi Peace Award by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ors for World Peace (IAEWP) in 2002.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ooks including World Beyond World an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which have been published in English. His other books, Where You Become True Is The Place Of Truth, Heaven’s Formula For Saving The World, The Living Eternal World, The Book Of Wisdom, Mind, Nature’s Flow and The Enlightened World are in the process of being translated into English as well as Chinese, French, German, Italian, Japanese, Portuguese, Spanish and Swedish.

동네 노는 아저씨의 친절한 고민 상담소

 

20대 중반 여성입니다. 저는 눈꺼풀은 처져 있고, 코는 눌려 있어요.

외모를 가지고 놀림도 당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웃지만, 그럴 때마다 주눅이 들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없습니다. 주위에 성형을 해서, 정말 예뻐진 사람들을 보면

저도 정말 정말 성형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보수적인 아빠는 절대로 반대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대로는 자신이 없습니다.

점심시간 직장 동료가 신문에 숨은그림찾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참 진도를 못 나가서 어깨너머로 백조 한 마리를 찾아줬습니다. 그랬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건 백조가 아니라 오리 같은데?” 하길래 한마디 해줬습니다. “숨은그림찾기가 무슨 극사실주의 작품이냐? 누가 순천만 흑두루미 찾으래? 대충 민머리에 주디 튀어나오면 백조나 오리지. 동그라미 쳐~”

처진 눈꺼풀과 눌린 코 때문에 성형을 고민 중이시군요. 세상이 숨은그림찾기의 그림처럼 대충 백조든 오리든 동그라미 치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백조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예쁜 오리 정도는 바라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 성형을 해야 되냐 말아야 되냐 이런 애매한 상황 기준 정해 드리겠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가장 모르는 사람이 본인 자신입니다. 항상 평면에 비친 얼굴만 보게 되고 단점만 눈에 들어오다 보니 스스로 착각하기 쉬운 게 본인 얼굴이라 주위에서 너 누구 닮았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의아해합니다. 자신의 얼굴을 모른다는 거죠.

 

고민하실 필요 없이 주위 사람 20~30명에게 물어보세요. 70~80%가 성형을 권하면 용기를 가지고 무리해서라도 하세요. 반대로 70~80%가 반대하면 굳이 하실 필요 없습니다. 어중간하게 나오면 시간적 여유 가지시고 주머니 사정, 시술 부위 등 이모저모 잘 따져보세요. 주위 사람들은 고민녀님의 전체적인 조화까지 볼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판단보다 더 정확할 겁니다. 그리고 아버님 문제는 넉넉잡고 한 달간 아버님 얼굴 특정 부위 트집 잡으세요. 예를 들어 머리가 크다든지 콧구멍이 짝짝이라든지. 아버님이 짜증 내시면 그때 말하세요. 저는 이런 놀림을 20여 년간 받아왔고 앞으로 70년을 더 받고 살 거라고.

  동료가 놓고 간 신문의 숨은그림찾기에서 오리처럼 보이던 백조 머리에 왕관 하나를 그려 넣었습니다. 약간의 성형(?)을 했더니 이제 누가 봐도 백조네요.^^

동네 노는 아저씨 백일성. 올해 나이 42세.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남매 그리고 1930년대생 부모님과 함께 한집에서 박 터지게 살고 있음. 3년 전 우연히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박 터지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글로 남기게 됨. 2009년에는 <나야나 가족 만만세>라는 수필집도 발간했음.

KOICA 해외 봉사로 제2의 인생 시작한 신찬수씨

취재 문진정

치열한 일터에서 물러나 손자들의 재롱을 즐길 나이에, 편안한 노후를 마다하고 해외 오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사람이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그리고 네팔에서 ‘성자’라 불리며 8년간 봉사 활동을 해온 신찬수(71)씨입니다.

‘못 먹고 못살았던’ 1950년대, 전북 부안의 어촌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신찬수씨는 가난 때문에 서러움을 겪는 이웃들의 모습을 보며 늘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컸다 합니다. 자연스레 농촌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고, 당시 미국에서 파견된 평화봉사단 단원들은 그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었지요.

그렇게 해외 봉사의 오랜 꿈을 키워온 신찬수씨는 31년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친 후 틈틈이 영어와 전문지식을 공부하여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2001년 당시 최고령 봉사 단원으로 뽑히게 됩니다.

“한국 전쟁 직후엔 우리나라가 말도 못하게 가난했어요. 그때 선진국의 원조 덕분에 잘 살게 되었으니 하나라도 보답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습니다.”

첫 근무지인 필리핀에서 그는 가난한 어촌 마을을 1순위로 선택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그에게 고향의 이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의 발전 사례를 보여주며 주민들을 설득했고 도로를 넓히고 우물을 파는 등 그간 쌓아온 농촌 운동의 경험을 모두 쏟아 제2의 새마을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 결과 4년 후에는 그 지역 최우수 마을로 선정될 만큼 많은 발전이 있었지요. 그 외에도 자신의 생활비를 모아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장학금을 마련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필리핀을 짊어지고 갈 생각을 하니 생활은 좀 불편해도 마음만은 가뿐했다”는 신찬수씨.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현지 신문 1면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4년간의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그는 세계 최빈국이었던 네팔에 관한 기사를 읽고 4개월 만에 다시 출국을 결심합니다. 해외에 다녀올 때마다 부쩍 야위어가는 모습에 아내와 두 아들은 만류했지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그의 굳은 의지를 꺾지는 못했습니다.

다행히 네팔에서 생활하는 4년 동안에는 한 번도 앓아누운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습니다. 또한 정신적으로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었다 말합니다.

“처음엔 네팔 사람들에 대해 불만이 많았어요. 밭을 공들여 일궈서 작물을 심어놨는데 정작 농약도, 비료도 주지 않고 방치해 잡초가 무성하고는 했거든요. 그런데 그 잡초로 염소를 키우는 게 소득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걸 뒤늦게 알고서는, 나이를 먹고 경험이 많을수록 오히려 상대를 더욱 존중하고 겸손해야 하는구나 다시금 느꼈었지요.”

2011년, 8년의 봉사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그에게는 해외 봉사 자문단이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이 후배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지금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배우며 전문가 과정을 준비 중이라는 신찬수씨. 그에게 있어 배움과 봉사는 삶의 이유이며 기쁨인 듯합니다.

“세 살배기 손자에게도 모르는 건 배워야지요. 배움에는 부끄러운 게 없어요. 그리고 평생 배운 것을 어디든 쓸 수 있다면 그게 큰 보람이지요. 남은 인생도 해외 봉사하면서 후배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신찬수님은 31년간 농촌지도공무원으로 일한 후 2001년 KOICA 봉사 단원에 지원하여 필리핀과 네팔에서 봉사 활동을 했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제6회 해외봉사상 대통령상을 비롯하여 다수의 상을 수상했습니다. 현재 원광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해외 봉사 전문가 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