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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걱정 끝~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식충 식물 ‘벌레잡이 제비꽃’

장미 모양의 연두색 잎과 낭창낭창 흔들리는 가녀리고 예쁜 꽃대…. 식충 식물은 냄새가 난다거나 특이하게 생겼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단번에 날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식충 식물 벌레잡이 제비꽃입니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일년 내내 꽃을 보여주고 한번 피면 한 달 이상 모양을 유지한답니다. 잎의 표면에 송글송글 점액이 맺혀 있어서 날벌레가 꼼짝없이 붙어 있다가 며칠 후면 어느새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클레오파트라가 벌레 퇴치를 위해 침대 곁에 두고 잤다는 식물이 바로 요녀석이랍니다. 벌레도 잡아주고, 키우기도 쉽고, 예쁘기까지 해, 두루두루 사랑받는 성격 좋~은 식물입니다.

물주기 건조에 강해서 겉흙이 말랐을 때 뿌리만 젖을 정도로 아주 조금 주거나,

화분의 흙이 모두 말랐을 때 흠뻑 주세요.

햇빛 햇빛을 아주 좋아해요. 집 안의 가장 밝은 곳에 두세요.

번식 포기 나누기를 하거나 건강한 잎을 떼어 흙 위에 두면 새잎이 나온답니다.

관리 비료 없이 물과 햇빛만으로도 잘 자라고 추위에도 비교적 강한 편으로

영상 5도 정도면 거뜬하게 월동합니다.

글, 사진 성금미 <산타벨라처럼 쉽게 화초 키우기>의 저자

콩비지 드레싱 송이토마토 샐러드

보통 콩비지는 찌개를 끓이거나 전을 부칠 때 말고는 잘 먹게 되질 않지요.
그래서 오늘은 영양 만점 콩비지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 하나 추천합니다.
보슬보슬하게 볶은 콩비지 드레싱에, 신선한 채소를 곁들여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짭짜름한 깔끔한 맛 때문에 자꾸만 젓가락이 간답니다.
진한 향이 가득한 송이토마토와도 그 맛이 잘 어울립니다.

이양지 자연요리연구가

재료 준비

콩비지 드레싱(콩비지 1컵, 올리브유 2큰술, 다진 마늘 1작은술, 홍고추 1/2개, 소금·후춧가루 조금씩), a(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1 1/2큰술, 파르메산 치즈 가루 1큰술, 레몬즙 1큰술, 간장 1/2작은술), 송이토마토 4개, 쌈채소류 적당량, 식용 꽃(생략 가능) 조금

만들기

① 콩비지 드레싱을 만든다. 홍고추는 씨를 털어내고 얇게 송송 썬다.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을 약한 불에서 볶다가 콩비지와 홍고추를 넣고 보슬보슬한 상태가 될 때까지 약한 불에서 볶는다.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을 한다.
② ① 에 a의 재료를 넣고 섞는다.
③ 송이토마토는 크기를 4등분으로 썰고 쌈채소류는 손으로 한입 크기로 뜯는다.
④ 그릇에 ③을 올리고 ②를 소복하게 얹은 다음 식용 꽃으로 장식한다.

자료 제공 <우리 가족 면역력 높이는 103가지 레시피>(도서출판 소풍) 자연요리 전문가인 이양지씨가 모든 병을 예방해주는 영양소들은 우리가 늘 먹는 식재료에 들어 있다는 요리 철학으로, 면역력을 높이는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다. http://www.macrobiotics.co.kr

사람들 사이에 벽이 있다? No! 벽은 원래 없었다

허민구 부장의 ‘허물없이 편안한 인간관계 만들기’ 대작전 3단계

대학을 졸업하고 영업을 시작했다.
성격이 활달해서 ‘영업 체질’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그러다 8년 차 즈음 되었을 때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몰려왔다.
좌절하고 지치고, 급기야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졌다.
사람들은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왜 이렇게 자기만 아는 걸까,
원망했는데 실은 그게 바로 나의 모습이었다.
나부터 내 안에 쌓아놓은 벽을 하나씩 허물어가기로 했다.

1단계

나의 벽은
어디서 비롯되고
어떻게 생겼나?
자세히 들여다보기

“내 인생 44년을 돌아보니 한 번 꿈꾸고 가는 것 같다. 돈, 일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뒤를 많이 돌아보고 살아라.”

힘든 일이 겹치기로 생기던 즈음, 존경하던 선배까지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조언을 해주셨다. 내가 롤모델로 삼을 만큼 좋아했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떠나다니, 너무나 충격이었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는 모든 것을 접고, 마음수련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세상을 향해 쌓아놓았던 강한 나의 벽을 볼 수 있었다. 내 나이 35살 때였다.

 

★ 사람을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다

사람을 대할 때의 내 마음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사람 좋은 척 다가갔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니 모두 다 내 이기심을 채우기 위한 거였다. 진심으로 위하고 사랑했던 적이 없었다.

★ 돈에 목숨을 걸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따로 사업도 하고 주식 투자도 했다. 장남으로서의 책임감도 있었지만, 모두 내 욕심이었다. 주식도 바닥을 치고 사업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느새 억대 빚쟁이가 되어버렸다. 그 과정에서 믿었던 선배가 딴 주머니를 차는 배신도 겪었지만, 그 선배가 바로 내 모습이었다.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었으니, 나 또한 언제든지 딴 주머니를 찰 수 있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자격지심과 열등감 때문에 돈으로 내 존재감을 찾으려 했다. 내 마음에 돈이 가득하니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 모든 게 남 탓이다

내 인생이 풀리지 않는 게 다 남 탓이라고 생각했다. 환경 탓, 팀원 탓, 고객 탓….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다 문제였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내 마음같이 안 따라주는 거야, 하며 불평만 하고 있었다. 내가 딴 사람보다 인정받아야 한다, 나만 옳다, 내가 우뚝 서야 한다…. 그저 나, 나, 나… 바로 그렇게 나만의 벽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2단계

찾아낸 벽들
하나씩 격파해 버리기

내 인생을 한 편의 드라마 보듯이 바라보았다. 매 사건마다 그 사건의 주인공인 내가, 상대한테 어떻게 했는지가 보였다. 저 허민구라는 애는 어쩜 저럴 수가 있었나, 내가 세상에서 제일 나쁜 놈이었다. 자존심만 강하고 욕심 많고 고집 세고 이기적이고 나만을 위하는 놈.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로 인해서 상처받았던 사람들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 속에 가득 차 있었던 돈도, 나만을 위하는 이기심도, 남 탓하던 마음도 하나씩 버려나갔다. 그러던 한순간 이런 나를 지금까지 봐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함이 우러나왔고 뭔가 뻥 뚫린 듯 속이 시원해졌다. 직감적으로 내 안의 단단한 틀이 무너져 내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지 그 해답을 찾은 기분이었다.

내 안의 장벽들을 허무는 방법, 그 길은 진정한 자기반성과 진실한 참회에 있었다.

 
 

3단계

사람 사이의 벽은
원래 없었다!
허물없이 다가서기

원래 사람 사이의 벽은 없었다. 우리는 그냥 하나의 근원에서 온 하나의 존재였다. 벽이라는 것도 내가 만들어놓은 것일 뿐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누가 잘날 것도 누가 못날 것도 없었다. 저절로 사람에 대한 존중의 마음도 생겼다. 2006년부터 새로운 곳에서 다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다. 세일즈맨으로서의 내 마음도 달라졌고, 주변에서 바라보는 평가도 달라져 있었다.

★ 나는 헬퍼helper다

실적을 우선으로 여기지 않았다. 나는 도움을 주는 사람, ‘헬퍼’라고 생각했다. 예전에는 고객을 만나면 내 이야기를 먼저 하기 바빴지만 도와드릴 것이 없는지, 불편함은 무엇이 있는지를 먼저 묻고 들었다. 당장 나에게 이익이 안 된다 해도, 상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욕심내지 않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겼다. 누군가한테 도움을 준다는 마음으로 하니, 정작 힘이 나는 건 나였다. 사람들 자체에 의미를 두니, 만나는 것도 즐거워지고, 신뢰 관계가 생긴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먼저 찾아주고, 거래 확률도 높아졌다. 왜 나를 선택했는지 물어보면, “진심이 느껴졌다, 믿고 맡기면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라고 말한다. 예전에 그렇게 되려고 발버둥치던, 영업왕도 저절로 하게 되었고 빚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 나 자신부터 낮추기

자기의 벽부터 허물지 않으면 상대에게 다가갈 수가 없다. ‘저 사람도 나하고 똑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겠지’ 생각하면 선배든 후배에게든 먼저 도움이 되고 싶고 다가갈 수 있다. 사람과 트러블이 생길 때, 최소한 내 주관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해가 안 가면 직접 물어본다. 그러면 오해가 풀리기도 하고 서로를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된다. 어느 회사나 영업부와 기술 지원팀은 물과 기름 사이라고 한다. 영업부 한 사람이 보통 세 명의 직원을 먹여 살린다고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영업자들은 자존심이 강하고, 그런 마음으로 다가가니, 지원을 요청해도 선뜻 도와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팀원들에게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우리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말하자. 그리고 우리를 가장 낮게 여기자. “나는 정말 이 부분은 잘 모르겠다, 이것도 모르고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게 부끄럽다. 그러니 좀 도와달라. 도와줌으로써 우리가 하나라도 더 배우고, 이 계약 하나 더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하면서 솔직하게 다가가자고.

실제 그렇게 먼저 나를 오픈하고 진정으로 도와달라고 다가가자, 상대의 마음도 열렸다. 덕분에 우리 회사는 팀원끼리도 부서끼리도 원활하게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내가 먼저 벽을 허물고 다가갈 때 상대의 마음의 벽도 무너지는 것이다.

“허부장님은 일상에서는 개그맨,
업무에서는 맏형 같은 분이에요.”
영업을 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는데, 첫 매출을
허민구씨의 도움으로 해낼 수 있었다는 박현수(32)씨.
누군가 어려움에 처한 듯하면 언제나 먼저 물어봐주고 도와주는 허민구씨의 모습을 닮고 싶다고 한다.

내겐 해바라기와 같은 그녀

내겐 해바라기와 같은 그녀

박완선 48세. 창원시 상남동

그 어디나 밝고 환하게 만들어 버리는 해바라기 같은 그녀를 처음 만나게 된 건 대학 졸업 후 대구의 한 종합병원 신경외과 병동에 같이 배치되면서였다. 교사로 근무하시는 아버지와 함께 산다는 그녀는,  곧잘 나를 불러 맛깔스런 찌개와 밥을 지어주곤 하였다. 저녁 근무인 날에는 따뜻한 점심을 드시게 한다며 아버지 학교로 도시락을 갖다 드리고 출근하던 그녀! 그녀는 여태껏 나 중심적으로 앞만 보고 살아왔던 나와는 분명 다른 따뜻함이 있었다.

3교대를 하며 병실의 환자들의 인계를 주고받을 때 일명 독종(?)으로 통했던 나는 환자에게 하였던 처치나 투약 등을 철두철미하게 따지고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지적하기 일쑤였다. 그것이 환자를 위하는 길이고, 그렇게 해야 유능한 간호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환자나 보호자 편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우선으로 들어주었다. 때로는 원칙을 무시하고 혼날 각오를 하면서까지. 뇌종양 환자가 씻지도 않은 손으로 주는 음식을 스스럼없이 받아먹고, 중풍으로 입원했던 할머니가 혼자 산다는 걸 안 후에는 퇴원 후에도 찾아가 돌봐주던 그녀. 그녀가 근무할 때면 간호사실 앞에 유달리 환자들이 많이 나와 북적거렸다. 한번은 밖에서 같이 차를 마시던 중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니는 밖에서 만나면 참 재밌고 좋은데 병원에서는 무섭데이!”

그녀 말이 맞았다. 나는 그 시절 그런 그녀가 밖에서 만났을 땐 좋았으나 병동 안에서는 왠지 거슬려 외면하곤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다음 말은 내 마음을 한순간에 녹아내리게 했다. “간호사로서 니는 참 유능해. 내가 입원하게 되면 니가 담당해주라. 그럼 정말 안심이겠다!”

그 어떤 사람이든 진심으로 도와주는 그녀의 성품이 나로선 부럽기도 하고 그래서 또 못마땅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질투였는지도 모른다.

얼마 후 그녀는 결혼을 하며 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는 시부모를 모시면서 아이들 키우면서 온 집안을 온 동네를 특유의 허물없음과 초긍정의 마인드로 환하게 바꾸어 놓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끊임없는 그녀의 따뜻함과 배려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너는 어떻게 항상 너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할 수가 있니?” 언젠가 내가 물었다. 그녀의 대답은 이랬다.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복을 받았잖아. 그게 늘 감사해….”

며칠 전 그녀가 문득 그리워 벚꽃이 흩날리는 동영상 카드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답장으로 경주 황남빵과 꽃 편지지가 담긴 소포가 왔다. 그녀가 그랬듯이 나도 고소한 황남빵을 여기저기 나누어 먹었다. 언제나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녀, 그래서 자신보다 남을 먼저 위해줄 줄 아는 그녀, 그 어떠한 상대든 무장해제시키고 마음을 열게 해주는 그녀. 나도 그녀처럼 주위를 환하게 밝히는 해바라기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이은미 선생님, 고맙습니다

조금희 39세. 경기도 양서면

이은미 선생님은 우리 아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아이가 시골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잘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복이 많은 우리 아이는 이은미 선생님을 만났다.

이은미 선생님은 엄마나 아이들을 대할 때 어떤 기준이나 선입견이 없었다. 한번은 반의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걱정된다고 했더니, 다른 아이들과 잘 놀아야 잘 자란다는 고정관념부터 놓아보라고 하시는 게 아닌가. 당장은 부족해 보여도 기다려주자고…. 나로선 놀라운 일이었다. 그 후에도 이은미 선생님은 아이에 대한 욕심과 조바심이 커질 때마다 그 마음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선생님은 학부모에게는 마치 친구 같았다. 아이 때문에 전화했다가 집안 문제까지 2시간을 넘게 통화할 정도로 마음의 벽이 느껴지지 않는 분이었다. 경제적인 문제나 남편, 아이 때문에 힘들다가도 선생님과 이야기하고 나면 마음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실제 선생님도 당신의 아들 때문에 맘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그런 어려움을 겪어서인지 선생님 이전에 한 아이의 엄마로서 학부모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주었다. 지금도 가끔 선생님과 함께 차도 마시고, 1학년 때의 엄마들끼리 연락을 하고 지낸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가 2학년으로 올라가고 새 학기가 시작된 작년 3월 초. 학기 초반이라 엄마들로서는 딱히 학교 갈 일이 없고 심지어 반이 다 갈렸는데도, 이은미 선생님 반 아이들의 학부모들은 자발적으로 학교에 나와 청소를 한 것이다. 모든 게 이은미 선생님의 영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바뀌어갔다.

학부모 모임에서 의견이 다를 경우, 전 같으면 ‘저 엄마 왜 저래’ 하면서 마음의 벽부터 쳤을 텐데 ‘이것도 내 기준이지’ 하면서 나를 먼저 돌아보게 된 것이다. 직장 생활로 바쁜 엄마들이 가끔 아이 때문에 걱정을 쏟아내기도 한다. “차라리 직장을 그만둘까요? 혹시 제가 학교에 자주 못 가면 우리 애한테 문제가 생길까요?” 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친구들의 엄마가 있지 않느냐고 하면서 말이다. 엄마들이 급식 당번을 하려고 모일 때면 “내 자식도 귀하지만 엄마가 못 오는 애들을 생각해서 먼저 그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고, 더 먹으라고 챙겨주자”고 한다. 그렇게 서로 내 아이 남의 아이 구분하지 않고 챙겨주다 보니, 엄마들 사이의 벽이 없어졌다. 이 모든 게 이은미 선생님께 배운 것이다.

“이은미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을 알게 된 것에 감사드립니다.”

나부터 벽을 허물고 다가가기 (3)

같이 도서관에 가고 음식도 해먹고, 일상생활을 공유해요

어릴 적부터 다른 문화권 친구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일본인 가족과 홈스테이를 하기도 하고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가해 20개국이 넘는 나라를 여행하기도 했다. 무수한 첫 만남을 시작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상대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이다. 제2의 가족이라는 마음으로 경계를 풀고 다가가면 상대도 경계를 푸는 것이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담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일상생활부터 함께하는 것이다. 같이 장을 보러 간다든지, 도서관에 간다든지. 특히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의 경우는 그 사람이 좋아하는 재료를 사 들고 방문해 직접 요리를 해주기도 한다. 채소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비빔밥을, 연어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는 한국 스타일 초밥을 만들어준다. 요리 레시피를 공유하면서 대화를 풀어가다 보면 마음이 열리고 어느새 진짜 가족이 된다.

박재영 27세.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 아시아 지역학과 2학년

직장이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가족까지 챙겨주는 곳이라는 믿음을 줍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대부분 일보다는 사람 관계 때문에 힘들다. 2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서로 간에 벽 없이 소통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얻은 결론은 ‘작은 것부터 관심을 갖자’였다. 직장 동료나 후배들의 얼굴 표정이나 옷차림 등을 유심히 살피면서 “오늘 안색이 좋은데…” 하거나 “옷 새로 샀나 봐. 잘 어울려” 하면 대화의 말문도 쉽게 터지고, 이야깃거리가 풍부해진다. 부모님의 안부를 묻는다든지,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가끔 직원의 아내 되는 분들에게 가족의 안부를 묻는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그것은 신입 기자 교육 때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교육 과정에서 신입 기자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만큼 힘든 과정이다. 그럴 때 중간 중간 부모님께 “아주 열심히 잘하고 있습니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문자를 보내고,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니 대부분이 힘든 과정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갔다. 직장이란 곳이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가족들에 대해서도 항상 관심을 가져주는 곳이 된다면 서로 간에 신뢰는 더욱 쌓일 것이다.

윤용태 46세. 언론사 근무. 대구시 수성구 범어2동

정감 있는 말 한마디가 좋은 관계의 시작입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면 잘 나오는 분들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 잘 못 나오게 되는 분들도 있다. 그럴 때 전화해서 다짜고짜 왜 안 나오냐고 묻거나, 형식적인 인사를 건네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안부를 여쭙는다. 혹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몸이 편찮으셨는지 손을 잡으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훨씬 가까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 역시 일이 바빠서 종종 모임에 못 나갈 때가 있었고, 그럴 때 다짜고짜 “왜 못 나왔어?” 하기보다 “일이 바쁘냐, 아니면 무슨 힘든 일 있었어? 보고 싶은데 밥 한번 먹자” 하며 관심 가져줄 때 좋았던 경험 때문인 것 같다. “식사는 하셨어요?” “냉장고에 맛있는 거 있으니까 챙겨 드세요~” 하면서 스스럼없이 대하면 진짜 가족처럼 편하다며 학원에도 더 잘 나오신다. 혹 사정이 생겨도 걱정하지 말라고 미리 전화를 주시는 분들도 많다. 사소한 것 같지만, 정감 있는 말 한마디는 서로의 관계를 따듯하게 맺어주는 것 같다.

송주성 50세. 학원 운영. 일본 후쿠오카 거주

폭넓은 인간관계의 새 장을 열다
‘SNS’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사람들의 소통 수단

송영대 행복경영연구원 원장. @SongYoungDae

SNS(Social Network Service)가 유행을 넘어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트위터를 통하여 행복한 소통을 하고 있다.
본인은 작년 2월부터 트위터를 하기 시작했다. 15년간의 IT엔지니어 직장 생활을 청산하고
‘자기 계발의 동기부여’를 하는 1인 기업가로 인생 2막을 시작하는 데 트위터가 큰 힘이 되어주었다.
트위터를 통해 롤모델과 멘토를 만나게 되었고 그분들로부터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받고 있다.

트위터의 장점은 평소 존경하거나 가까이 하고 싶었던 명사, 연예인, 저자 등 다양한 분들과 편안한 소통을 나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럼으로써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그동안 살아왔던 우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세상. 인터넷상에서 좋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소개한다.

경독하고
반응하자
트윗을 올리면 내 트윗에 대해 팔로워들이 반응해주길 바란다. 반대로 내가 그 누군가의 트윗에 먼저 반응해주는 것은 어떨까. 단, 의견이 나와 다르다고 하여 가르치려 한다거나 험담하는 건 좋지 않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은 나의 편견을 깨고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배워서
남주자
트위터엔 수많은 강연 정보가 올라온다. 꾸준하게 강연을 찾아다니며 자기 계발을 하고 학습한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자. 내가 올린 트윗에 공감하는 분들과 소통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행복한 인맥을 형성하게 된다. 내 경우 1년 동안 꾸준히 자기 계발을 하며 트윗을 올린 결과 명사, 기업가, 정치인, 저자, 방송인, 연예인 등 다양한 분들과 행복한 인맥을 맺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각 분야에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서로 연결해주는 ‘인간허브’ 역할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의미 있는
소통을 하자
트위터 사용 통계를 보면 무의미한 소통(40.55%), 상호 간의 대화를 위한 소통(37.55%), 가치 있는 소통(8.7%), 자기 계발(5.85%), 스팸/바이러스(3.75%), 뉴스(3.6%)라고 한다. 트위터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약한 연결 고리이다. 자기 계발을 통해 가치 있는 소통을 하게 된다면 트위터는 요술 램프와 같이 새로운 인맥을 통하여 본인이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단, 온라인상의 소통이라도 진정성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어렵게 돌아온 고향,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지요

사할린동포후원회 오창석 회장

취재 최창원 사진 홍성훈

“사할린 분들은 고국을 떠나서 젊음을 거기서 다 바친 사람들이에요. 낯선 타국에서 그렇게 고생하다가 돌아왔는데, 외롭게 떠나시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경기도 안산시 고향마을, 사할린 동포 840여 명이 모여 사는 곳이다. 안산에서 장례식장을 운영하는 오창석(63)씨는 이분들에게 ‘참 고마운 사람’으로 통한다.

고향마을이 형성된 것은 지난 2000년 2월 일제 강점기 때 사할린으로 강제 징용을 당했던 분들에게 고향에 돌아올 길이 마련됐다. 하지만 영주 귀국 대상자를 1945년도 광복 이전에 출생한 사람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모두 사할린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고령의 분들이었고, 한두 달도 안 돼 돌아가시는 분들이 생겼다.

하지만 세상 떠나는 길 배웅할 가족조차 없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오창석씨가 직접 수의를 입혀 드리고, 염을 하며 장례식을 치러드리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아예 ‘사할린동포후원회’를 만들어, 설날이면 떡국을 끓여드리고 5월에는 어버이날 잔치도 해드렸다. 마을 회관 짓는 것도 돕고, 11월엔 김장을 해서 나누어드렸다.

“어렵게 찾은 고향에서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지내셨으면 하는 마음이지, 특별한 건 없어요. 진짜 뭐 한다고 하기가 부끄러운데….”

 

쑥스러운 듯 목소리를 낮추는 오창석씨.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미 그를 ‘삶 자체가 봉사인 사람’이라 말한다. 사할린 동포뿐 아니라 평소에도 나누고 사는 게 일상인 사람이라는 것.

그가 이렇게 나누고 사는 걸 당연하게 여기게 된 건 어린 시절 경험 때문이라 한다.

오창석씨는 1948년,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4살 때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일본으로 떠났다. 그 이후 고생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한다. 그는 “나중에 잘살게 되면 나처럼 배고픈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고기잡이, 야채 장사, 노동일….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지만, 외제 물건 장사를 할 만큼 수완과 배짱도 있었다.

생활이 자리 잡히자 젊은 시절의 약속대로 그는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무의탁 노인 시설을 만들어 17년 정도 운영을 했고, 13년 전부터는 장례식장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분들의 장례를 무료로 지내 드렸다. 21년째 많은 양의 김장을 해서 양로원, 고아원 등에 나눠주고, 생면부지의 학생에게 신장을 기증하고…. 그의 나눔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반대를 많이 했어요. 남들한테 해줘야 소용없다면서.
뭐 소용 있으라고 하는 건가요? 그런 거 생각하면 아예 주지 말아야죠.”

앞으로의 계획은 ‘사할린동포후원회’를 전국 단위로 넓히는 것. 그리고 ‘만원의 집’이라는 무료 급식소도 만들고 싶다 한다. 만 명이 모여 만 원씩 내면 1억, 1억이면 1년 365일 무료 급식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남을 돕는다는 게 어려울 거 없어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눠주고,
어려운 사람 옆에 같이 있어주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오창석씨의 선행을 알고 찾아온 분이 그가 운영하는 장례식장에 벽화를 그려주었다.

The generation of completion is the generation of subtracting the human mind

Disconnecting the Link between Money and Job

Newly Defined Concept of Money (3)

Summary Jin Jung Moon

According to a recent poll, 6 out of 10 employees think their jobs are something they do only for money. However, ‘a job’ refers to all activities one does to achieve the precious values in one’s life; not just to maintain one’s life financially. There must be a job where one can devote his life out of a sense of duty, or for self-actualization, even though he may not earn much money.

However, having an ‘occupation’ to earn money is much more prioritized than a ‘vocation’ in the current society. As a result, many high-paid professionals are not sure what their goal in life is, although they are successful in society. They have spent most of the time in their life earning money, but they have not had a chance to think about what they truly value.

So let’s put aside money and think about which job will fulfill your values. If you did not have to worry about money for the rest of your life, how would you want to live? You could travel, devote your time to helping others, or you could live a simple life in the country writing and farming. Or, you may find out that your current job is your vocation.

You may still have to work in a different field other than your ‘true job’, because it may be difficult to manage life by only working at the ‘true job’. However, it will still make a great difference when you start to earn money and plan your life for your ‘true job’, your true vocation. Your internal values and physical outcome will be in harmony, and you will be able to live your life pursuing what you value.

                                If You Disconnect the Link between Money and Occupation…

1. You will have a broader choice of jobs.

If you consider money-making work separately from the vocation that fulfills your values, you can arrange and use time much more freely. For example, you can work for money as a janitor during the daytime and work as a playwright at night;, or you could work at a convenience store for six months, then work as a disaster relief volunteer for the next six months. This will enable you to focus your time on the work you truly want to do.

2. You start to respect unpaid work.

When money and work are not related, you may realize the importance of a job is irrelevant to a high income. Look back at whether you considered taking care of a baby, or working as a volunteer disturbed your work; or whether you disrespected housewives who work without pay. Inexperience or unemployed people are not incompetent. In fact, those who perform unpaid work such as housework or work involving human relations tend to be very creative, respectful and focused.

3. You can enjoy your job like a hobby.

The only difference between a job and a hobby is whether or not you receive a salary. Except for that, a job involves everything (such as competition, cooperation, concentration, technique and satisfaction) just as a hobby does. If you consider your work as a hobby, you will enjoy it more. This way, you can have fun and as a bonus get paid at the end of a month too.

4. Your life after retirement becomes more energetic.

If you relate retirement to negative words which remind you of the end of life, such as “incapability” or ”separation”, it is because you consider one’s financial capability as the measure of success. Yet retirement means retirement from salaried work. Just as you still have your value and talent even though you are not paid, the ‘true work’ continues as long as your life continues. Retirement is not as bad as you think. Look at retirement as a new start where you can spend more time doing what you want.

Reference Vicki Robin, Joe Dominguez.

[Your Money or Your Life: Transforming Your Relationship with Money and Achieving Financial Independence]. Penguin

Blow off the Flight Phobia

So-Hee Shin

When I was a college student, I had to take flights a number of times every year because I studied in China, but flying in an airplane was my greatest fear. The minute the front wheels of the plane left the ground, my hands and feet grew cold and my whole body broke into a cold sweat.

A few years later, my sister got married and moved to the USA. Whenever I visited her, I was overwhelmed with apprehension for the ten long hours of the flight. Later, even looking at an airplane gave me a fright, and at last I gave up going abroad at all.

The following year I started Maum Meditation. A guide at the center said ‘we take pictures with our eyes, ears, nose, mouth and our senses, and these pictures controls our every behavior and thoughts. As I heard that, I could see the cause of my phobia. In fact, I remember that I enjoyed flying until I was in high school. Then one day my cousin told me that his plane almost crashed while he was returning from a business trip.

“My plane was flying and it suddenly dropped for about three seconds. I almost died!” He vividly described his fear at the time. From that time on, I started to relate flying to a frightful ride on a rollercoaster, and my joyful plane trips changed to my greatest fear.

When I started Maum Meditation I finally found hope. ‘I could be changed.’ I discarded all pictures about airplanes in my mind, what I heard and saw, and even what I felt. When I was actually onboard, I continuously threw away the thought that ‘I am on an airplane’; and then I could stay calm as if I was just riding on a bus. My fear about death was another cause of the phobia. After I saw my father pass away from a stroke when I was seven years old, I began to think obsessively that the world is full of danger and I must not die. I discarded those pictures as well.

Now I can go anywhere and face any challenge. I am free of those invisible shackles which had bound me.

The Void I Tried to Fill with Alcohol,

I Discarded Both the Void and Alcohol

Jae-Joo Noh Vice-President of ICHJ co.

In my entire life I had never been confident. When I had something to say, the thought that I could be wrong kept me from speaking up. So I relied on alcohol.

As I grew older, life became very lonely and empty. I was not satisfied at all even though I had my own house and a beloved family. To fill this void, I called my friends to go drinking with me seven days a week. As a result, in my fifty’s I was diagnosed with hyperthyroidism from stress and drinking.

One day, in 2000, an acquaintance of mine introduced me to Maum Meditation. As I meditated, I found out what held me back were my childhood memories and my feelings of inferiority: when I was young I could not eat what I wanted, as much I wanted; and I was embarrassed by my level of education.   I always had been a slave to the past, and had been trying to cure myself with alcohol. As much I discarded the fake mind, that much I came to know the infinite universe was my original self. Nothing lacks in the mind of the universe. Whether how much money I have or whether my life was well-off were not important. Once I realized this, I became confident. I could be easy and composed no matter who I met. There was no need to rely on alcohol anymore.

Since I have a business, there are still times I must have a drink, but I can control the amount I drink naturally by saying “I don’t drink much these days”. Three to four months after beginning Maum Meditation my illness was completely cured. What would I be like if I had not practiced Maum Meditation? I’m just so grateful to this miracle.

-An Honest Relationship Depends on How Much I Open My Mind-SNS: communication by the people and for the people

1. We Go to the Library Together, Have Lunch Together,

and Share Our Daily Lives

Since I was little, I have had many opportunities to meet friends from different cultures. I lived with a Japanese family for a while, and traveled to more than 20 countries as an exchange student. I met many people, and from this I learned sincerity is the key when starting a new relationship. When I think of them as my second family and open my mind, they too open their mind. Sharing a daily routine is the first and the most important step; for example, going to a grocery store or the library together. For foreign friends with whom you cannot communicate well, visiting their house and preparing a meal they will like are good ways to become closer: perhaps Bibimbab, a traditional Korean dish with assorted vegetables and rice for a friend who likes vegetables, or Gimbap, a Korean style sushi, for those who like salmon. When you start talking while you share recipes, you and your friend’s minds will open up to each other, and you will become a real family.

Jae Young Park (27), University Student

2. Trust comes from the workplace that is more than a place for work;

it can involve the families as well.

A workplace can be more than just a place for work;

by involving the families it can establish trust between workers as well.

Office work is difficult not because of the work, but mainly because of the relationships between people. For the past two years, I have been thinking about what would make people communicate without conflict. The answer I found was ‘take interest in little things first’. When I paid close attention to my co-workers and made a compliment like “you look good today” or “that new shirt suits you well”, it was easy to start a conversation, and there was a lot we could talk about. I would often ask how their parents are doing or what their children’s names are, and after being introduced to their spouses I would also send them cheerful messages. When I train new interns to be reporters I use this method also. The training sessions are very difficult, and about half of new reporters drop out during their training period. However, I find that when I send messages to their parents such as “your child is doing well, my thanks to you for rearing them so well,” the majority of the interns do not give up but finish the training session instead. If our workplace becomes not just a place where we work, but a place that shows concern for our beloved family then our trust between each other will grow stronger.

Yong Tae Yoon (42), Reporter

3. An Affectionate Word Begins a Good Relationshi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