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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거울이 되어주는 연애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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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때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이후로 한 후배와 점차 좋아하는 감정이 들었다. 후배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원하는 이상형과 비슷했다. 그 후배도 내게 호감이 있어서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닭살 커플로 유명했다. 어딜 가나 항상 붙어 다녔다. 하지만 얼마 후 번뇌가 시작됐다. 군 입대 때문이었다.

김성환. 대진대 생명과학과 2학년

군에 입대해서도 정성껏 편지도 쓰고 전화도 많이 했다. 입대 5주 만에 100통을 받았고, 전화는 하루에 30분씩은 꼬박꼬박 하곤 했다. 항상 함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점차 나는 여자 친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3월 즈음이면 학교엔 신입생과 복학생들로 붐비는데 불안감은 점점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전화할 때마다 싸우기 시작했다. 여자 친구는 지쳐갔고, 급기야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다시 붙잡고 싶었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군 생활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 같았다. 한편으론 좀 더 잘해줄 걸 후회와 자책도 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 친구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니가 뭔데 날 차는 거야’라며 비난하고 미워했다. 한동안 만나지 않으니 원망하는 마음도 차츰 가라앉아 전역을 앞두고 다시 만났다. 잠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져 있을 때 힘들었던 게 생각나 잘해주지를 못했고, 다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입대 전에 잠시 한 적이 있던 마음수련 명상을 다시 찾았다.
여자 친구와 지냈던 기억들을 버려나갔다. 데이트하면서 좋았던 것부터 헤어지면서 가슴 아팠던 기억과 마음까지도. 그러자 헤어지고 나서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 헤어졌는데도, 내 마음엔 아직 그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잊어야지 하면서 잊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붙잡고 끌려다녔다.
만날 땐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집착일 뿐이었다. 여자 친구의 본래 모습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에 맞추려고만 했었다. 뚱뚱하면 살 빼라 했고, 머리 모양이 맘에 안 들면 바꾸라고 강요했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군대 가서 그렇게 싸운 것도, 기대고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힘든 군 생활로 여자 친구한테 많이 의지하고 싶었지만, 여자 친구 역시 나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서로 부딪쳤다.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사연들을 버리자 마음 한구석이 편해졌다. 내 마음이 편해지니 그 어떤 순간을 떠올려도 동요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그 후배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지없이 편안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명상하기 전에는 여자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거나, 전에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으려고 하면 두려움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과 웃으면서 사진 찍은 모습을 보면 나 없이도 잘 지낸다는 생각에 서운했고, 편지를 보면서도 그때는 이렇게 좋았는데…, 하면서 비교하고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런 마음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신기했다.
연애를 하면 누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설레었던 첫 만남일 것이다. 전엔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때와 같지 않음을 비교했는데, 지금은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즐겁다. 무언가를 해줘도 바라는 마음이 없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전에는 사랑이란 ‘나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내 자신처럼 상대를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정성껏 대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집착인지, 아니면 참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처럼 아끼는 애인에게 하는 것만큼 부모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지, 이웃에게 성의를 다하는지 상대의 입장이 되는지…. 그래서 내 여자 친구는 나의 거울이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예민했던 나, 대인 관계의 고수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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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 읽기와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소심하고 평범한 아이였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잘 받는 예민한 성격이라 대인 관계가 아주 힘들었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문제는 대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였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니 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빠졌다.

왕혜진. 이화여대 한국화과 4학년

고등학교 때와는 모든 게 달랐다. 수업이 끝나면 따로따로 흩어지던 학부 친구들, 적성에 맞지 않던 학과와 전과(轉科)를 반대하시던 부모님,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지고 싶어서 찾아간 동아리도 생각이 나와는 너무 달라 힘들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자유롭게 내 꿈을 펼칠 수 있을 줄만 알았는데, 외롭고, 힘들었고, 별세계에 내던져진 것만 같았다. 점점 지쳐갔다. 학교상담센터를 방문해도, 잠깐의 위로였을 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릴 때부터 가족들과 사이가 안 좋았는데 대학에 들어간 뒤 점점 더 심해졌다. 심하게 다투면 방에 틀어박혀 울거나 집을 뛰쳐나가거나 했다. 그럴 때 전화할 만한 친구도 없었다. 무리 사이에 껴 있으면 항상 겉돌았다. 몸도 늘 무기력하고 피곤했고, 그러다 보니 게으름이 습관이 되었다. 팔, 허리, 어깨 아픈 곳도 많았다. 내가 왜 이러지? 하면서 긍정적으로 마음을 먹어보려고 해도 그때뿐이었다. 나는 심리적인 압박이 너무 커 거의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매일매일 자해하는 망상을 했다. 산다는 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별일도 없는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이 고장 난 걸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특이한 공개강좌가 열렸다. 마음수련 명상이라는 거였는데, 느낌도 좋았고, 명상에도 관심이 있어서 가게 되었다. 그때 나는, 나를 구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그런데 거기 사람들은 정말, 가식이 없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걸 보니 ‘아, 나도 이걸 하면 행복해질 수 있겠다’ 싶어 대학생 캠프를 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뭐가 뭔지 잘 이해도 되지 않았고, 정말로 버려지는지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마음을 버려 가면서, 며칠 지나지 않아 명상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뒤, 몸과 마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난생처음, 행복이라는 것도 느꼈다. 예전의 행복이란 건 내가 원하는 게 이뤄지거나 다른 사람보다 나은 조건에서 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거나 머리로 행복하다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비워지니 그런 것 없이도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마음수련 명상은 내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우선 스트레스가 제로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없다. 평소에도 긴장하고 생각을 많이 하는 타입이라서, 전엔 무언가를 하게 되면 불안에 떨고 이것저것 고민도 많이 하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무척 많았다. 그런데 이젠 새로운 일을 준비해도 불안함이 없다. 마음 없이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 학교에서 하는 전시회도 열등감과 완벽주의, 불안함과 걱정, 자책감과 도망치고 싶은 기분 같은 갖가지 생각에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게 없으니 너무 즐겁고 좋다.
친구들에게도 집착하거나 내 생각이 옳다고 강요하는 경우도 많았다. 친구들이 고민을 이야기하면 그냥 이겨내면 되지 뭘 말하냐는 투로 성의가 없었다. 또 나는 속이 매우 좁은 나머지 친구들을 꼭 한 번씩은 미워했다. 맘에 안 드는 점이 있으면 혼자 미워했다. 상대방이 뭐라 하면, 겉으론 수용하는 척하면서 속으론 ‘너는 틀렸고 내가 옳아’ 시비했다. 상대가 내 말을 안 따라주면, 아무리 나한테 잘해줬어도 미워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런 마음들을 버린 지금은 정말 친구들이 모두 다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놀랍다.
이제는 친구들과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해도 집착이 없으니 관계가 끊길까봐 불안하지 않고, 오랜만에 만나면 있는 그대로 편하게 대할 수 있다. 대화할 때도 저절로 상대에게 맞추게 된다. 또 새로이 누군가와 친해질 때면 전에는 완벽하게 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부담을 느끼곤 했지만 이제는 자유롭다. 얼마 전에 직업적성검사를 했는데 집중력 최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전엔 그림 그릴 때도 30분에 한 번씩 화장실 가거나 일어나서 돌아다닐 정도로 산만했다. 그런데 이제는 집중하면 몇 시간이 훌쩍 흘러갔는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몸도 건강해지고 무기력증도 없어졌다. 하루하루가 감사하고 즐겁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불안 제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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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외국어를 구사하고 전문 지식으로 세계 최고의 다국적 기업에서 CEO로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벌어들인 돈으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것이다.’ 이는 나에게는 선택이 아닌 일종의 사명이었다. 일등을 향한 의지가 강했던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목표를 향해 영어와 전공 공부에 임했고, 토익 고득점 획득, 편입 합격, 교환 학생 파견 등 소위 말하는 ‘취업 스펙’을 갖추었다. 나는 스스로 진취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런데도 나는 늘 불안하고 초조했다.

이진석. 중앙대 경영학과 4학년

바둥거리며 열심히 사는 현실의 삶에도 불구하고 이상은 충족되지 못했다. 현실과 이상의 격차 속에서 불안, 초조, 집착의 마음은 계속해서 눈덩이처럼 커져만 갔다. 그 심리적 고통이 극에 달해 수업을 한 시간만 들어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휴식을 취해야만 했다.
강의 내용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다른 학생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열등감, 발표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마음 등으로 몸도 늘 긴장 상태였고 경직되었다. 수업 후에는 그런 마음으로 에너지가 다 소진되어 무기력해져 버리곤 했다. 달성하려던 목표는 점점 멀어져만 가고 있었다.
이러한 집착의 마음을 바꾸겠노라 마음을 먹어 보았지만,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결과는 더 큰 고통으로 되돌아올 뿐이었다. 이 마음으로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었고, 결국 나는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교내의 학생상담센터에서 6개월간의 상담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는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마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결책을 제시해주신 분은 의외로 아버지셨다. 책을 통해 마음수련 명상을 알게 되었다며, 권해주신 것이다. 나는 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을 뒤로하고 명상을 하러 갔다.
마음수련 명상은 누가 봐도 납득이 가는 방법인지라 해보고 싶은 의지가 생겼다. 나를 옥죄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아 “정말 마음을 버리면 버려지냐”고 몇 차례 물어보기도 했다. 명상을 하면 할수록 마음이 버려진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물론 마음을 버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어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버리는 데에만 남보다 여러 날이 걸렸다. 또 명상 후 달라진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나 끊임없이 의심한 탓에 명상이 굉장히 힘들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여러 번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명상을 시작한 후 2주일이 채 되기 전에, 어린 시절 상대에게 억눌려오고 또 그 상대에게 나중에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앙갚음을 해주겠노라 다짐했던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남을 돕기 위해서 성공하려 한다고 합리화시켰던 그 속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결국은 내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세상에 인정받고 싶어서 그토록 성공에 집착했던 것이었다. ‘항상 남을 위해 산다고 생각해 왔던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었구나.’ 내가 가졌던 완벽주의 또한 나 자신을 치장하기 위한 교묘한 도구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나를 힘들게 했던 불안, 초조, 집착의 근본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나는 항상 나만의 잣대로 내가 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닌, 내가 바라는 목표를 내세워 그것을 고집해 왔다. 그렇게 효율성에 매여 살고 사소한 결과에도 연연하다 보니, 좁은 마음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현재 조건에서 그냥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는데 말이다. 나를 움직여온 수많은 무의식의 마음들이 버려지면서 차츰 혈색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일이든 몸을 먼저 움직여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은 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쉽다. 그만큼 어떤 일이든 잡념과 걱정 없이 하니 재미가 있다. 싫어하던 전공 공부를 수월하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도 보너스처럼 얻은 수확이다.
수업 시간에도 내가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고 넘어가니 훨씬 마음이 편하고 오히려 효율성도 높아졌다. 발표를 할 때도 긴장이 덜 되고 주변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줄도 아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했던 내 모습이 수련을 한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게 느껴진다. 현재 내가 쓰고 있는 이 마음이, 현재 내가 취하고 있는 이 행동이 바로 나다. 내가 생각하고 바라는 미래의 어떤 모습도 내가 아니기에, 더 이상 그 허상에 속아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아이들 마음에 별처럼 빛나는 소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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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 작. <자매> 캔버스에 유화. 116.8×91cm. 2009.

아이들의 소원은 어른의 마음을 흔들어 깨울 때가 많다. 갖고 싶은 물건 하나, 되고 싶은 꿈 하나에도 자기가 아닌 다른 이를 생각하는 아름다운 이유가 있는 아이들의 소원들. ‘잃어버린 소원’ 후원 프로그램 기획자인 정은희씨는 특히 저소득층 아이들은 신발이나 겨울옷, 책이나 학용품, 컴퓨터 같은 것을 갖고 싶어한다고 말한다. 늘 넘쳐나서 귀한 줄 모르는 시대에, 아이들은 귀한 것이 무엇인 줄 안다. 아이들이 소원하는 그 이유 덕에 디지털카메라도, 운동화도, 축구공도, 컴퓨터도…. 소중해진다.

자료 제공 어린이재단 희망나눔센터  * 재단의 요청으로 아이들의 이름은 가명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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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는 초등학교 입학 전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신희가 중학교 2학년 되던 해, 아빠는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돌아가셨다. 신희는 세상 모든 것을 잃은 느낌이었다. 외롭거나 힘들 때면 아빠의 사진을 본다. 그러나 열심히 일만 하신 아빠는 사진도 별로 없었다.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두지 못한 것이 눈물 나도록 아쉽단다. 이제 단 한 명뿐인 할머니와의 행복했던 모습을 많이 담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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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영이와 동생은 자신들을 돌봐주는 위탁모와 함께 산다. 희영이가 네 살 때, 아빠는 “일년만 아줌마 집에서 살고 있으면 돈 많이 벌어서 데리러 온다”고 했다. 그리고 7년이 되었다. 아빠는 2년이 넘어서면서 연락이 끊겨버렸다. 아빠와 다툼 끝에 집을 나간 엄마나 돈 벌러 서울 가신 아빠의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마음 아픈 희영이. 지금 모습을 사진으로 많이 찍어 나중에 아빠를 만나면 보여드리고 싶단다. 희영이는 언제나 아빠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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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자랑스러운 애국가를 울려 퍼지게 하는 것이 지호의 꿈이다. 어릴 때부터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던 지호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실력을 인정받아, 중학교 1학년 때 레슬링으로 입문하게 되었다. 지호의 아버지는 버거병을 앓고 있고, 지호는 몇 해 전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 없는 자리를 채우며 묵묵히 집안일과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하루 12시간씩 이어지는 고된 훈련, 가끔 해진 운동복과 고무가 닳은 운동화가 친구들에게 부끄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지호는 “제가 꼭 레슬링으로 성공해서 부모님과 동생들을 다 책임질 거예요. 지금은 조금 힘들지만 곧 좋은 날이 올 거라고 믿어요”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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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는 할머니, 동생들과 함께 산다. 제주도를 휩쓸고 간 태풍 ‘나리’는 웃음 많은 영아의 얼굴을 눈물로 얼룩지게 했다. 망가져버린 집과 가구, 영아가 가장 좋아하던 컴퓨터도 쓰레기가 되어 버렸다. 평소 영아를 사랑해주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카드 빚을 남기고 가출하자, 술을 마시고 어머니를 찾아 나서다가 교통사고를 내어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영아는 아버지가 해외에서 일하고 있다고 안다. 학교에서 컴퓨터를 배운 이후 아버지에게 편지를 쓴다. 보낼 수도 받을 수도 없는 편지를. 컴퓨터는 어머니를 대신해 숙제도 가르쳐주고, 아버지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게 해주는 벗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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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 작. <풀밭 위의 피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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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 작. <피크닉> 캔버스에 유화. 60.6×50.3cm.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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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철이 누나는 뇌성마비로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낸다. 때로는 엄마가 마치 아기처럼 음식을 떠먹여 주고 있는 누나를 보며 부러워할 때도 있다. 은철이 또한 선천성 심장병으로 인해 몸속에 인공심장박동기를 달고 있는데도 더 아픈 누나에게 부모님의 사랑을 양보할 수밖에 없어 때로는 서럽기도 했단다. 하지만 요즘 건강이 더 악화된 누나를 보면 덜컥 겁이 난다는 은철이에게 소원이 하나 생겼다. 숨 쉬기 힘든 누나에게 산소호흡기를 주는 것. 은철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산소호흡기, 산소호흡기’를 되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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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희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엄마는 7년 전부터 루푸스병을 앓고 있다. 수희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교통사고를 당해, 인공 치아까지 심는 큰 수술을 했는데 지금은 병 때문에 전부 빠져버리고 있다. 그래서 음식도 잘 드시지 못한다. 루푸스병은 빨리 낫는 병은 아니지만, 수희는 틀니가 생겨서 식사도 잘하시고, 약도 잘 드시면 엄마가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친구들이 놀리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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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는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은 지금 상태에 만족하고 있노라며, 오히려 할머니를 위한 작은 소원 하나를 풀어놓았다. 할머니께서는 물을 무서워하신단다. 비좁은 선희네 집은 욕조를 들여놓을 공간이 없는데, 관절이 좋지 못한 할머니는 물을 틀었을 때 갑자기 나오는 찬물에 깜짝깜짝 놀라신단다. 선희는 할머니가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편안하게 목욕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조그만 온수기라도 있으면 따뜻한 물을 받아 놓고 편안히 목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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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오늘도 낡은 가스레인지 앞에서 가스불을 켜기 위해 씨름하신다. 손잡이를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는 할머니의 모습이 정운이는 안쓰럽기만 하다. 할머니는 정운이를 비롯한 네 명의 손자들을 돌보고 계신다. 손자들이 점점 커갈수록 식성도 좋아지니 할머니의 식사 준비도 더 힘들어진다. 반찬 투정 안 하고 잘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시는 할머니. 하지만 요즘 부쩍 고장이 잦은 가스레인지 때문에 매일 속 태우신다. 그런 할머니를 위해 새 가스레인지를, 할 수만 있다면 전자레인지도 사드리고 싶다는 정운이. 하지만 지금 할머니를 위해 해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슬프다고 한다.

2010년 7월호 테마기획의 작가는 김 은 기님입니다. 그동안 월간<마음수련>의 그림 작가로 함께해온 님은, 1995년 홍익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 애니메이션 제작 등 폭넓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6월 14일까지 서울 빛갤러리에서 초대전을 열고 있습니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힘든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싶은 소원이 또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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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발행’ 소원 이룬
소녀 시인 유진이의 희망 이야기

뇌동정맥기형을 앓고 있는 장유진(16)양의 소원은 ‘시집을 내는 것’이었다. 절망 속에서 별빛 같은 희망을 안겨준 것은 시(詩)였다. 그리고 주위의 도움으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을 때, 유진이에겐 또 다른 소원이 싹텄단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것. 자신의 시가 아름다운 희망이 되길 기원하는 유진이의 소원 이야기.

취재, 사진 정하나

저도 이젠 쓸모 있는 사람 된 거 맞죠?
“처음에 시집을 내주신다고 했을 때는 정말 될까, 안 해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받았을 때 벅차고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예전엔 정말 자신감이 없었거든요. 사실은 제가 별 볼일 없잖아요. 옛날에는 울기만 했는데 저도 이제 쓸모가 있는 거 같아요.(웃음)”
유진이는 불과 열 살 때인 6년 전, 첫 시집이 나왔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첫 시집을 내준 복지관에선 이 ‘꼬마 시인’을 위해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마련해주었다.
그날 유진이는 너무 떨려서 잠도 이루지 못했단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유진이는 뇌혈관들이 엉키는 ‘뇌동정맥기형’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여섯 번의 뇌출혈과 그로 인한 마비로 신체 왼쪽이 불편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유진이가 학교 가는 날은 일주일에 나흘, 그것도 4교시 수업만 받는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싶고 친구들과도 놀고 싶지만 몸이 약한 유진이에게는 무리다. 또래 친구들의 일상조차도 유진이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뿐이다.
외롭고 쓸쓸한 유진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시 짓기. 글을 쓰다 보면 자유롭게 꿈꿀 수 있어서란다. 하늘, 바람, 꽃처럼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물론, 때로는 자신을 놀리는 아이에게 상처받은 마음조차도 시를 쓸 땐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다.

거울을 보면 / 슬퍼지는 내 마음… / “왜 이렇게 못나졌을까?” / “난 왜 이래야 하는 걸까?” / 하늘에게 원망도 하지만 / 내 마음에서는 / 자신감이 피어납니다 / “그래, 난 못났지만 열심히 / 노력해서 지금보다 더 착하고 / 예쁜 마음으로 다듬을 거라구” / 그러고 보면 / 거울은 모두에게 / 자신감을 주는 요술 거울인가 봐요 – 거울을 보면

유진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였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구사일생으로 회복했지만 그해 겨울 뇌혈관이 다시 터지면서 마비가 왔다. 그로부터 거의 2년간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걸을 수도 없었다. 수술, 입원과 퇴원의 반복, 온갖 치료들…. 한순간에 장애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아홉 살짜리 꼬마는 “그냥 죽고 싶어!”라며 눈물 흘렸고, 그럴 때마다 병실은 환자들의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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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뤄주는 소원별처럼 더 아픈 이들을 위해 꼭 ‘밥그릇’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병실 창가, 별빛 같은 야경 보고 시를 쓰다
“살기 싫었어요. 건강해서 막 뛰어다녔는데 한순간에 아파서 절뚝절뚝 걷게 되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재활 치료를 다녔는데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가면 택시도 안 태워줬어요. 그때 엄마랑 같이 우울증을 앓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심심하다고 보채는 유진이를 엄마가 병실 창가에 앉혀주었다. 13층 창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꼭 별처럼 예쁜 거예요. 그래서 엄마 저거 뭐야? 반짝거려, 그랬더니 엄마가 야경이래요. 그 느낌을 글로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엄마가 유진아, 너 시도 쓸 줄 알아? 이거 시야, 하시면서 너무너무 잘 쓴다고 칭찬해주시는 거예요. 주변 분들도 그러시고요. 저는 어린 마음에 칭찬을 받으니까 너무 신났어요. 느낌만 써도 칭찬을 받는구나 싶어서 그 이후로는 책이든 가방이든 보기만 하면 느낌을 적기 시작했어요.(웃음)”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픈 것도 잊고 힘과 용기가 생기곤 했다. 또 지나가는 사람이나, 사물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재활 치료를 받을 때 로버트 다리를 가진 아저씨가 있었어요. 제가 엄마보고 저 아저씨 로버트 다리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브이자를 내보이면서 ‘아저씨 로버트 다리야, 멋있지?’ 하면서 가시는 거예요. 저는 그때 서는 연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아저씨는 다리가 없으니까 나보다 더 아픈 건데 저렇게 밝구나 감동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희망을 많이 얻었어요. 웃음도 찾고 시도 많이 쓰게 되었어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하자 / 나보다 더 아픈 양우진 오빠를 생각하자 / 8살 적 그네 타기 실컷 한 것 생각하자… / 가족들 모두 있는 것을 생각하자 /…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있어서 / 건강한 사람을 보면서 / 나 자신과 싸워 이기자 / 웃자 웃자 울지 말고 웃으면서 / 모든 것을 이기고 있는 그대로 생활하자 – ‘좋은 것만 생각하자’ 중에서

유진이는 “자신을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해 힘들어했는데 어느새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시가 벗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를 통해서 절망의 시간을 이겨냈듯이, 자신의 시를 읽고 아픈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소원’이 싹텄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이 시들이 책으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단다. 어머니 이성자씨는 유진이의 시집을 내주고 싶어 여러 출판사에 연락해 보았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유진이는 “보잘것없는 내 시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슬퍼지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소원은 이루어졌다.
2004년, 유진이의 사연을 알게 된 지역 복지관의 도움으로 드디어 첫 시집이 출간됐고, 2007년에는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인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재단’의 도움으로 네 번째 시집을 낼 수 있었다.
시집 출간을 계기로 ‘발달장애우 제주도 첫나들이 기금 마련’ 행사에 초대되어 시 낭송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읽기 시간에 시를 발표하기 위해서 자신의 시집을 학교에 가져간 날, 유진이의 시집은 베스트셀러 못지않은 인기를 모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나는 아무리 왼손을 못 쓰더라도 / 희망을 가지면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지금은 학교도 다니고 / 시도 적고 이제는 TV에도 나왔으니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소원을 이루고 나서 유진이는 큰 희망을 얻었고, 한때는 꼬인 혈관이 다 없어졌다는 기적 같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성장기라 다시 재발되었지만 투병에 임하는 유진이와 어머니의 마음 자세는 이전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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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가 많이 도움을 받았으니까 자기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해요.”
시집을 내는 소원을 이루고 나서 투병에 임하는 유진이와 어머니의 마음자세도 달라졌다 한다.

‘숨겨놓은 친구 같은’ 새벽에 시를 써요
“관심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의미 있는 낱말인 줄 몰랐어요. 부모가 해줄 수 없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니까 되더라고요. 처음엔 너무나 속상해서 비 오는 날 같이 울고 그랬는데 이젠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감사함이 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유진이가 많이 도움을 받았으니까 자기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해요.”
그동안 노트 32권, 5천여 편이 넘는 시를 써온 유진이는 앞으로 시집을 백 권까지 내는 게 꿈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 꿈도 이룰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놀리는 아이들에게도 웃으며 대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지나가다 보면 야, 쟤 걸음 좀 봐봐, 하며 쑥덕거리는 애들이 많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맨날 울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좀 깨달았죠. 어떤 책에서 봤는데, 어떤 순간에든 두 갈래 길이 있대요. 한 길은 밝게 웃는 길, 그 길로 가면 좋은 일만 가득할 거래요. 또 한 길은 좌절하고 슬픈 길이에요. 그걸 읽고 아, 나도 맨날 상처받지 말고 웃음을 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누가 놀려도 그래, 나는 장애인이야, 나도 아프기 전에는 장애인 보고 신기해했잖아, 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해요.”
유진이의 손등에는 ‘웃음 vs 슬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을 때가 많다. 슬픔이 차오르거나 힘겹다고 느낄 때 ‘어느 쪽으로 갈래?’라고 자문하면서 웃고 싶어서다.
유진이는 보통 새벽 5시면 일어나서 기도하고 시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숨겨놓은 친구 같은’ 깨끗한 새벽 시간이 좋단다.
유진이는 바쁜 게 너무나도 좋다. 머리 빡빡 밀고 병원에서만, 집에서만 있을 때 너무나도 그리웠던 생활이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이 순간을 좀 더 누리고 싶단다. 그리고 아프고 힘든 장애인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꼭 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시인도 되고 싶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되고 싶고, 내레이터도 되고 싶다는 유진이.
“저는 희망이 있고, 목표가 있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 시를 써서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로 보답하고 싶어요.”

밥그릇은 좋겠다 /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말이다 / 배부름을 채워주니까 /… / 나도 언젠가는 / 누구를 도울 수 있는 / 밥그릇이 되고 싶다 – ‘밥그릇’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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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보통 새벽 5시면 일어나 시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두 편 이상의 시를 꼭 쓰려고 하는 유진이의 꿈은 앞으로 백 권까지 시집을 내는 것이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사람이 진리를 모르고 못 보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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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에 살지 못하고
세상을 복사한 자기의 마음의 세계에 살고 있기에
진리인 세상의 것은 하나도 모른다
성경이나 불경은 참인 세상에서 이야기한 것인데
자기의 마음속에서 그것을 보니
그 마음의 가짐에 따라 해석이 달라져
수많은 종파가 생겨진 것이라
그렇듯이 사람이 세상과 겹쳐진
마음의 세상에 살고 있어
세상에 살지만 자기 마음속에 살고 있어
진리인 세상을 모르는 것이다
또 세상과 하나가 되어야 세상을 알고
세상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진리인 세상을 못 보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속에 진리인 세상이 없어서이다
참인 진리로 거듭난 자만이
진리를 알 수가 있고 진리를 볼 수가 있다
진리란 세상이고
인간이 세상이 되어 세상에 다시 나면
세상의 이치를 다 알 수가 있고
진리라 죽음이 없을 것이다

詩_ 우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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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명 선생은 마음수련의 창시자이며, 저술가이자 시인이다. 깨달음과 진리에 관한 3권의 시집을 포함, 모두 열 권의 책을 펴냈으며, 마음과 우주의 이치, 사람들이 마음을 닦아 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로 미국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기념하는 에릭 호퍼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했으며 철학, 영성, 명상 분야에서 다수의 도서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및 일본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가짜 허 진짜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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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한 사람도 진짜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 없다. 무한대의 대우주의 하늘이 본래이시고 근원이신 창조주이시다. 이 창조주는 대 영과 혼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이 있으시다. 이 존재는 시작 이전에도 계셨고 세상이 끝나도 계시는 진리 그 자체이시고 천지 만물만상의 어버이이시고 천지 만물만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다.

이 존재는 완전하시어 이 세상에 난 것은 모두가 이 존재의 자식이기에 다 살게 하시고 또 완전하게 창조하셨으나 인간이 이 창조주를 등지고 창조주의 세계와 창조주의 것을 복제하여 자기의 마음속에 복제의 세상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만이 마음의 세계가 있어 가짜인 것이다. 인간이 완성되어 있다면 우리는 종교나 기타의 단체가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짜는 세상이다. 세상은 이미 완성이 되어 있고 세상은 이미 깨쳐 있다. 우리의 마음이 살아계신 대우주 자체의 몸 마음으로 다시 날 때 이 자체는 신이시라 죽음이 없고 지혜라 세상의 이치를 다 알 것이다.

허란 인간이고 참이란 세상이다. 인간은 자기의 마음세계인 허상의 세계에 살 것이 아니고 참인 세상에 나야 할 것이다.

詩_ 우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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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명 선생은 마음수련의 창시자이며, 저술가이자 시인이다. 깨달음과 진리에 관한 3권의 시집을 포함, 모두 열 권의 책을 펴냈으며, 마음과 우주의 이치, 사람들이 마음을 닦아 참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담고 있다.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로 미국의 철학자 에릭 호퍼를 기념하는 에릭 호퍼 어워드에서 몽테뉴 메달을 수상했으며 철학, 영성, 명상 분야에서 다수의 도서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은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스웨덴어 및 일본어를 포함한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출판되었으며, 전 세계를 다니며 강의와 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

“정말 미안해, 버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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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내 마음 편해 보자는 목적이었다.
미국에서 살아야 하는 것 때문에 결혼을 할까 말까 매우 고심하다 결국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시집 식구에게 남편 이름으로 은행 융자를 해주었는데 한 번도 갚지 않고 여태 소식이 끊어진 상태다. 벌써 10년 전 일이다. 이 일로 남편과 자주 싸웠고 이혼 직전까지 가기도 했었다.
한 푼도 써 보지도 못한 이 큰 빚을 우리가 떠안기로 결정하기까지 정말 힘들었다. 매달 지불할 때마다 억울한 생각에 남편에게 뭐라 하면 남편은 언제까지 그럴 거냐며 되레 화를 내곤 했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달래느라 힘들었다.
미국에 살면서 친정 동생들 결혼식에 참석도 못 하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 허무했다. 작년에야 겨우 23년 만에 친정에 다녀올 수 있었다. 당시엔 지금의 내 나이면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살아야 하는데 빚에 허덕이고 있으니 의욕도 잃고 무기력에 빠져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싫었다. 이런저런 일들로 남편과 사이가 꼬이기 시작하더니 점 하나에 님이 남이 된다고 우리 부부는 한집에 같이 사는 동거인일 뿐이었다. 아이들도 직장 때문에, 학교 때문에 기숙사로 다 떠나고 둘만이 남은 상태에서 매일 이런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것이 지겨웠고 스트레스에 편치 않은 마음이어서 그런지 위에도 탈이 나 먹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마음수련을 하고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8개월 전 시작하게 된 이 수련으로 요즈음 나는 아주 편하게 지내고 있다. 내가 남편을 이해하거나 용서하기 위해 애를 써서가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이 저절로 많이 너그러워지고 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에게 먼저 이런저런 말을 할 수도 있게 되고 화도 나지 않게 되었다.
한 예로 남편이 방에 불을 끄지 않고 나올 때가 자주 있는데 예전에는 왜 끄지 않았냐고 한마디 하거나 혼자 궁시렁거리며 가서 껐는데 이제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끄게 된다. 그냥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남편도 내가 원망하거나 불평을 하지 않으니 편안해하는 것 같다. 사실 피해를 준 사람에 대한 원망을 버릴 때는 잘 버려지지가 않아 매우 힘이 들었다. 그래서 한번은 마음으로 그 사람이 앞에 있다 생각하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실컷 다 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쉽게 버려졌다. 나 혼자 불평하고 속 끓이고 옆에 있는 사람까지 불편하게 만든 것이 모두 내 탓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수련 후 하게 되었다.
예전의 마음 버리기, 비우기란 그저 체념이고 포기였다. 하지만 그런 마음들은 차곡차곡 쌓여 있다가 언젠가는 다시 올라오기 마련이다. 때문에 완전히 깨끗이 버려야 하는 것이고 마음수련은 그렇게 해준다.
수련하면서 참회한 것이 많지만 특히 자식에 대해서는 엄마로, 어른으로 잘못한 부분이 많았다는 것을 반성했다. 너희는 어리니까, 자식이니까 하며 아이들 의견은 들을 생각을 안 하고 무조건 명령하고 복종을 강요했다. 수련하고 얼마 후 딸도 수련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딸과 수련 얘기도 하면서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그랬었나?’ 할 정도로 기억에도 없는 일을 아이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딸에게 “미안해, 버려줘~”라고 말한다.
마음수련 후 예전보다 많이 너그러워지고 여유도 생긴 것 같다. 젊어졌다는 소리도 자주 듣는다. 예전에는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꼬리를 물며 떠오르는 생각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데 이제는 바람처럼 흘러 나가 버려 마음에 남지를 않으니 그지없이 편안하다.
마음수련의 방법은 버리기만 하면 되는 매우 쉬운 방법이지만 강하고 끈질긴 ‘나’라는 자기중심적인 관념들 때문에 한편으로 쉽지는 않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갈 목표가 생겼다. 남아 있는 마음들을 완전히 버려 평화롭고 행복한 ‘나’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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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August 월간마음수련

화를 다스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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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내지는 않더라도, 화낼 일이 많은 요즘 사람들이다. 꾹꾹 눌러 참다가 급기야 병을 불러 화병 진단을 받는 이도 매년 늘어나고 있다. 화를 참는 사람만 화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버럭 화를 잘 내는 사람도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심신이 쇠약해지기는 마찬가지다. 화 때문에 대인 관계를 잘 못하고 화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많다. 그런 화 덕에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았다는 사람들이 있다. “화를 보고 나를 보며, 화를 버려 진짜의 나를 찾는다”는 사람들의 이야기.

 

자존심, 열등감, 화와 함께 버려지다

5년 전, 은행에서 명예퇴직한 후, 사업을 하다 IMF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택시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모두들 힘들고 어려운 직업이라고 하듯이 처음엔 16시간 꼬박 운전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늘 짜증과 화로 바람 잘 날이 없었고, 항상 마음이 쫓기는 것 같았다.

엄준용. 대구시

부지런히 움직여야 회사에 사납금을 낼 수 있으니 택시 기사에게 5분, 10분은 돈과 직접 연결된다. 30분 이상 차가 막히는 날은 그야말로 공치는 날이다. 그럴 땐 부지런히 승객을 태워 하루 일당을 채워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차가 막히거나, 신호 대기가 길어지면 짜증이 밀려왔다. 게다가 도로에서 일어나는 끼어들기, 난폭 운전, 운전자끼리의 시비 등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더 힘든 건 승객이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다짜고짜 욕부터 하거나, 불이익을 당한 울분을 토해내거나, 술에 만취해서 갑자기 목이나 어깨, 머리를 잡아끄는 승객까지, 이번에는 과연 어떤 승객이 탈까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의사소통도 어려웠다. 승객에게 조언했다가 오히려 화를 자초하기도 했고, 이번엔 맞장구를 쳐줘야지 했다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네네’ 한다고 바보 취급을 당하기도 하고, 무시한다고 화를 내는 승객도 있었다. 정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난감했다. 속이 두근두근거리면서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승객과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승객이 내리면 차를 세워두고 잠시 명상을 했다. IMF 위기로 어려웠던 시절, 마음을 비우면서 힘든 마음들을 추스릴 수 있었기에 나에게는 마음수련 명상이 큰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방금 전 승객들과의 일들을 버리면서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시간이 날 때면 가까운 지역 명상센터에 들러 집중적으로 버려나갔다.
사실 나는 남에게 지기 싫어하고 따지는 것을 좋아했다. 한편으론 “왕년에 나도 이런 사람이었는데…” 하는 마음도 컸다. 가끔 승객들에게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을 때마다 울컥해지는 것도 그런 마음에서였다. 그건 내 열등감의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 피해 의식이 있다 보니 작은 말에도 금방 상처받고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자존심, 열등감을 버리다보니, 이미 지나가고 없는 과거에 매여 있다는 게 부질없고 우습게 느껴졌다.
승객을 위한답시고 했던 말들이 왜 화를 불러왔는지도 알 수 있었다. 승객한테 맞장구 친다고 무조건 예예, 했던 것도 속마음을 보니 ‘떠드는 게 귀찮으니까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로 건성으로 대답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승객에게 조용히 아무런 대꾸도 안 했던 것도 ‘됐다, 지겹다, 이제 그만해라’ 하면서 무시하고, 무관심했던 마음의 표현이었다.
그런 마음들을 버려나가자 점차 마음이 평온해졌고, 승객을 대하는 것도 달라졌다. 승객을 만날 때도 마음 없이 그냥 들어주고 그 심정을 헤아리다 보니 울분과 화를 토해내던 승객들의 마음도 점차 풀리는 걸 경험한다. 만취해서 하소연하는 승객을 만나도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그러다 보면 처음엔 감정을 주체 못 했던 승객들도 “내가 너무 떠들어서 미안합니다” 하고 하차한다.
전에는 항상 머릿속엔 사납금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급해서 난폭 운전을 하게 되고, 짜증과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마음을 버리고 여유를 갖게 되면서 택시 일이 훨씬 수월하게 느껴진다. 내 마음의 반영인 듯, 돈과 시간, 고객에 쫓기지 않고도 여유 있게 차를 운전하게 되었다. 신기하게 승객들도 더 많이 태우게 된다.
전엔 택시 안이 너무 좁고 갑갑하게 느껴진 나머지 잠잘 때 하루 종일 갇혀 있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이젠 확 트인 내 마음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다. 요즘은 승객 한 분 한 분이 감사하고 내 이웃처럼 소중히 다가온다. 그분들이 있기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위급한 환자나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 다리를 다친 학생을 목적지까지 편안히 모셔다 드렸을 때는 마음이 뿌듯해지면서 보람도 느낀다.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쉬는 날이면 등산을 한다. 스트레스를 풀고 신체 단련을 위해서다. 그것도 좋긴 하지만 나는 명상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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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엄마, 대인배 되다

남편과 부부 싸움을 하고 나면 화를 참지 못했다. 그 분(憤)을 이기지 못해 물건을 던졌다. 남편은 나를 피해서 도망갔고, 그러고 나서도 화가 진정이 안 돼서 계속 씩씩거리곤 했다. 분이 풀릴 때까지 심지어 남편 옷을 찢거나 술을 마시기도 했다. 자제를 하고 싶지만 내 마음을 나도 어찌할 수 없었다.

방인혜. 경기도 고양시

남편한테 불만이 많았다. 사랑받으면서 존재감을 느끼고 싶었지만, 남편은 무뚝뚝했다. 차가운 돌 위에 앉으면 손수건을 털어서 깔아주었던 연애할 때의 자상한 남편은 온데간데없었다. 친구들을 좋아하던 남편은 술 먹고 늦게 들어오거나 외박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 남편이 원망스러웠고, 도대체 이 시간에 뭘 하고 있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남편이 밉다 보니 시댁의 ‘시’자만 들어도 싫었고, 아이들도 싫었다. 그 화는 힘이 약한 아이들한테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이들한테는 괴물 같은 엄마였다. 학습지를 해놓지 않으면 바로 그 앞에서 찢어버리며 혼을 냈다.
화가 많다 보니 늘 몸이 아팠다. 감기가 걸리면 성인용이 아닌 소아용 감기약을 먹고 링거를 맞아야 할 정도로 몸은 쇠약해졌다. 그러다가 이웃의 권유로 마음수련 명상을 하게 되었다. 몸이 좋아지고 특히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말이 내 마음에 각인이 되었다.
명상을 하면서 산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특히 남편에 대한 집착을 많이 버렸다. 남편을 처음 만나 알콩달콩 연애했던 기억부터 부부 싸움하고, 아이들을 혼내고, 시댁과의 기억까지, 화와 관련한 ‘마음 사진’들을 버려나갔다. 내겐 시어머니도 어렵고 힘든 존재였다. 집안 종손인 남편은 시어머니에게 가장 잘난 아들이었다. 하지만 결혼 당시 어머니가 원했던 며느리가 아니었기에, 나를 못마땅해 하셨다. 어머니는 며느리한테 운전면허를 따서 아들 대신 운전하고 다니라 하셨고, 음식도 자식과 손주만 챙기셨다. 시어머니한테 섭섭해서 분을 삭여야 했던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영화 필름 돌아가듯 쏟아져 나왔다.
남편이 내게 사랑을 주지 않아 화를 낸 것도, 결국 어린 시절 외로움에서 비롯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릴 때 난 항상 외톨이였다.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은 항상 밤늦게 들어오셨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집안 살림살이를 도맡아 했다. 그런 기억을 버리자 지금의 내 모습에서 친정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는 게 힘겨워 자식들한테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무서운 엄마. 결혼 전부터도 입버릇처럼 “우린 엄마처럼 안 살 거야” 했던 내가, 우리 엄마처럼 아이들한테 하고 있었다.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지옥 같은 삶을 되풀이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끔찍했다.
명상을 하면서 남편에 대한 감정이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전엔 ‘내가 왜? 뭘 잘못했는데?’ 하는 억울하고 분한 마음뿐이었다면, 명상을 하면서 점차 ‘내 잘못이구나’ 인정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 난 남편한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남편에게 “여보, 내가 정말 잘못했어” 하자, 남편은 “당신 왜 그래? 도대체 무슨 일이야?” 하면서 놀라워했다.
그 다음 날부터 이상하게 남편도 확 바뀌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일도 줄고, 나를 대신해 집안일도 해주고 주말엔 애들과도 놀아준다. 화를 버리면서 몸도 좋아졌다. 지금은 30분만 자도 몸이 쉬이 지치질 않는다.
명상을 하고 난 후 초등학생인 큰아이를 마음수련 청소년 캠프에 보냈다. 마음 한편으론 걱정도 되었다. 내가 그동안 해온 걸 다 기억할 텐데 엄마한테 뭐라 할까…. 아이는 처음엔 엄마가 가장 버리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일 잘 버려졌다고 했다.
“엄마가 잘못했어, 미안해.” 아들에게 사과하자, “엄마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잖아”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날 난 아이를 껴안고 미안하고 고마워서 펑펑 울었다. 전에는 엄마가 집에 있으면 말도 안 하고 조용했던 아이들이 이젠 숙제도 봐달라고 하고 대화도 자주 한다.
나는 화를 통해 나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엔 화가 나면 그 속에 갇혀서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가 없었지만 지금은 그 순간 나를 보게 된다. 마음이 긍정으로 바뀌자, 의욕도 생겨 지금은 회사 일도 하고 쇼핑몰도 운영할 정도로 생활도 활기가 가득해졌다.
내가 표현하는 일체의 감정은 살아온 삶의 찌꺼기다. 때문에 그동안 살아온 산 삶의 마음 사진을 빼지 않고는 답이 없다. 화나 짜증 같은 스트레스를 버리면 삶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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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August 월간마음수련

화를 다스리는 두 남자의 스트레스 극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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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화 때문에 속 끓였던 두 남자가 있다. 오랫동안 축구 선수와 감독 생활을 하면서 생긴 승부욕이 강한 집착이 되며 불같은 화를 주체 못 했던 방계학(60)씨와 직장과 가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화로 나타나면서 항상 피로했다는 이희주(43)씨. 두 남자는 마음수련 명상을 통해 비로소 화를 이겨낼 수 있었다 한다. 스무 살 차이에도 만나자마자 친숙해진 두 사람. 연령도 살아온 환경도 다른 두 남자의 훈훈한 화 이야기.

정리, 사진_ 김혜균 / 대담_ 방계학 교사, 이희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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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하는 성격 때문에 손해 많이 봤지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까지 축구 선수 생활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승부에 대한 집착이 상당히 강했지. 무엇을 하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화가 났으니까. 고등학교 땐 청소년 대표 선수로 추천될 정도로 실력이 좋았거든. 당시 1년 후배가 차범근 감독이었으니까 우리 멤버가 상당했지. 그렇게 선수 생활에다 학교 축구부 코치, 감독도 오래 하다 보니까 점점 더 다혈질이 되더라고.
  저 같은 경우는 성격이 예민한 편이었는데, 92년부터 5년간 유학 생활을 하면서 더 심해졌어요. 혼자 다 해야 하니까 정서적으로 불안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날 도와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 아닌 사람은 적으로 생각하면서 사람에 대한 호불호가 심해졌어요. 적인 사람은 계속 단점만 보이고 괜히 하는 짓마다 화가 나고 그렇게 됐죠.
  나는 내 기준에서 벗어나는 건 용서가 없었던 것 같애. 시합에서 지는 것보다 화나는 게 합숙소 생활하는 아이들이 도망가서 다른 데 있다가 왔을 때야. 가만두질 않았지. 바로 무릎 꿇리고 엎드려뻗쳐시키고. 그걸 본 다른 학생들은 저 선생님한테 걸리면 죽는다고 소문이 쫙~.(웃음) 별명이 호랑이 선생님, 헐크, 뭐 그런 거였어.
  상상이 가네요.
  감독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그만두게 됐어. 근데 선생이 돼서도 감독 시절 성격이 그대로인 거야. 나이 어린 선생들도 날 어려워하더라고.(웃음) 아무튼 애들 혼내는 게 직업이었으니까. 뭐가 걸리면 “야, 이 새끼야, 저기서 손들고 있어” 하면서 욕으로 시작했다가 욕으로 끝나는 거야. 불같은 성격이라 언제 화살이 올 줄 모르니까 주위 사람들이 항상 긴장 상태였지. “어허” 하고 입을 찬다거나 “어허, 참 나” 하기만 하면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거야.
  내 생각에는 이게 맞는데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을 때 화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부하 직원 같은 경우는 지시한 일을 제대로 안 하거나 똑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때 미필적 고의가 아닌가 싶어 화가 났고요. 아내와도 성격 차이가 있어서 신경질도 많이 냈죠.
  어딜 가나 답답한 거지. 어떻게 풀었어?
  담배 피고, 술 먹고 그랬죠. 술은 먹었다 하면 필름이 끊길 때까지 먹었어요. 근데 먹다 보면 마음이 더 올라오는 거예요. 과음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욕을 하고 있고.
  나도 술 잘해. 남자들이 대부분 그렇지. 근데 아마 다 느낄 거야. 처음 마실 땐 좀 풀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 똑같다는 거.

 

화는 내가 맞다는 데서 시작
  남자들 경우 참을 때까지 참다가 욱하고 터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무조건 참는 건 한계가 있더라고요.
  나도 그놈의 욱 때문에 손해 많이 본 사람이야. 내가 보기에 아니다 싶으면 지위 고하 상관없이 화를 냈거든. 교장 교감한테 대들기도 하고, 집에서도 금방 잡아 죽일 듯 화를 내고. 돌아서면 바로 후회할 짓을 자초했지.
  회사에서 가정에서 자꾸 신경질과 짜증이 나니까 불면증에다 피부건조증도 생기고 몸이 지치더라고요.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기사를 보고 명상을 시작하게 됐어요.
  나도 정말로 이 불같은 성격을 왜 갖고 있나, 성격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그러다가 아는 사람 소개로 명상을 하게 됐지. 명상하는데 누구한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어마어마하대. 운동이 내 인생의 전부였더라고. 그동안 축구 경기 했던 거, 이겼을 때 졌을 때, 선수들 지도하고, 화냈던 것들을 모두 버려나갔지. 그러면서 알게 된 게 나는 늘 내 기준에서 봤다는 거야. 넌 왜 나만큼 못하니 하면서 아이들도 야단쳤고. 본의 아니게 감독직을 은퇴했을 때도 나보다 못한 놈들이 내 역할을 하는 게 울화가 치밀고,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게 화가 났지. 무조건 내 입장에서 배타적으로만 생각했어.
  공감이 가요. 저도 명상하면서 화의 원인이 내가 맞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았어요. 나름대로 회사에 이익을 많이 줬거든요. 다 내가 잘나고 일을 잘해서 인정받는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 내 의견에 반대하거나 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한테 화가 나고, 그들이 나를 질투, 시기한다고 생각했죠. 한편으론 가정에서도 남편으로 존중받고 싶은데 충족이 안 되니까 또 화를 내고…. 계속 악순환이었던 거죠.
  화를 낸 것도 결국 이 세상에 나 혼자라는 외로움과 내 능력을 주위 환경이 못 받쳐준다는 원망에서 비롯됐더라고. 하늘에다 삿대질한 거지. 그 마음을 많이 버렸어. 명상하면서 눈물이 쏟아지는데 걷잡을 수가 없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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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성공과 명예 그리고 남한테 좋고 멋있게 보여지는 걸 중요시했더라고요. 내 능력에 비해 주위의 평가는 못 미치니까 화가 났던 거고요. 유학 생활, 학위, 공부했던 것 등 ‘잘난 나’를 많이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전엔 내 일이 중요하고 다른 사람들의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거라 생각했는데, 마음을 비우면서 명예나 성공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채워주는 거란 걸 알게 됐어요. 나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그게 내 착각이었구나. 사람이 겸손해진다고 할까요.
  맞아. 그러니까 상대방의 말을 먼저 경청하게 되고, 수용하게 되더라고. 전엔 그런 게 있나.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하고 대들기부터 했지.(웃음) 이젠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이렇게 말이 나와. 주변 사람들이 저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달라졌나 한다니까.
  명상하고 나서는 저절로 욕이 안 나오더라고요. 화도 오래가지 않고, 아까 화내서 미안하다 사과할 줄도 알게 되고. 다른 일도 내 일처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대인 관계가 달라지더라고요. 무시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사람들의 장점이 먼저 보이는 거예요.
  맞아. 전엔 보기만 해도 미웠던 아이들한테 일부러 한마디라도 걸게 되더라구. 지금은 아이들 지도하는 방법도 달라졌어. “너 그러면 안 되겠지? 안 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노래하듯이 야단치고.(웃음) 청소할 때도 지시하거나 명령했는데 요즘은 나도 빗자루 들고 같이 해. 아이들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잘 따라주니까 고맙지. 무서워서 나한테 오지도 못했던 아이들이 이제 예체능실로 공 빌리러 온다니까. 요즘은 더우니까 애들 등목도 해주고 얼굴에다 칙~ 뿌리기도 하면서 장난치고 그래.
  와~ 정말 많이 달라지셨네요. 저는 가까운 사람들한테 참회가 많이 됐어요. 대개는 화를 내는 대상이 가까운 사람들이잖아요. 아내라든지 회사 동료들…. 돌아보면 그리 화낼 일도 아니었는데 왜그랬을까. 말이나 표정, 시선에서 화난 눈빛으로 째려봤던 것부터가 반성이 됐어요. 그 마음이 얼굴에도 나타나는지, 몇 년 만에 다시 함께 일하게 된 분이 있는데, 저보고 눈빛이 달라졌다 하시더라고요.
  나는 한의사가 진맥하면 이건 사람이 아니다 할 정도였어, 맥이 안 잡힌다면서. 타고난 체력이 좋아도 싸움하고 화내는 데 다 소진시켜 버린 거야. 지금은 마음이 편안하니까 혈액 순환도 잘되고 머리털도 난다니까.(웃음)
  맞아요. 화낼 때 소모되는 에너지가 상당해요. 저도 화가 없어지면서 많이 건강해졌어요. 늘 피곤했는데 밤늦게 들어가도 개운하고, 숙면을 취하더라고요. 올해 KBS <생로병사의 비밀>에서도 명상한 분들의 검사 결과가 나왔잖아요. 기초체력지수가 좋아졌다고. 그걸 보면서 공감이 많이 갔어요.
  이제 우린 화를 다스릴 줄 알게 된 거지. 화가 나면 상대한테 퍼붓는 게 아니라 먼저 내 안의 화를 버리는 거야. 그리고 그 감정이 다 없어졌을 때 말을 하지. 그러니까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가 없어. 전엔 그런 게 있나? 싫으면 니가 나가라 소리부터 질렀지.(웃음)

 

화가 올라올 땐 침묵, 마음부터 버려
  얼마 전엔 저희 동료 한 분이 상대방이 열 받게 하는데 어떻게 화가 안 날 수 있냐고 물으시더라구요. 신기하다고 하시면서요.(웃음) 지금은 가령 화가 올라와도 점잖게 표현하게 되는 거 같아요. 화가 올라왔다는 걸 아니까 순간적으로 버리고 차분하게 상대방한테 표현을 하게 되는 거죠.
  요 며칠 전엔 이런 일이 있었어. 한 아이가 영어 시간에 늦게 들어갔는데 내 이름을 판 거야. 방계학 선생님 심부름 하다가 늦어졌다고. 영어 선생님이 나한테 확인하기에 맞다고, 그랬다고 했지. 나중에 그 녀석을 부르니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더라고. 그래서 “야. 자식아, 핑계를 대도 제대로 대야지, 이게 뭐냐?” 근데 녀석이 그다음부터 나를 엄청 따르더라고. 내 별명이 방개인데 저 멀리서 “방개” “형” 하고 들어가.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던 녀석들이 내 이름을 부르고 접근해온다니까. 마음공부 안 했으면 세월아 네월아 월급만 받고 띵까띵까 했을 텐데 지금은 아이들하고 있는 시간이 너무 소중한 줄 아니까 감사한 마음뿐이야. 아이들에게 더 사랑을 주고, 아이들 마음 열어주는 게 내 할 일이다 싶어.
  마음수련 명상이 수용이잖아요. 수용하게 되면 화가 많이 다스려지는 거 같아요.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게 당연한데 우리는 여름에 왜 덥냐? 겨울엔 왜 춥냐? 하면서 화를 내는 꼴이거든요. 명상하면 여름엔 더워서 좋고 겨울엔 추워서 좋고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마음을 버리면 진짜로 삶이 바뀌잖아. 예전엔 어쩌다 집에 있어도 TV만 보고, 아내가 설거지를 부탁해도 안 했어. 커피나 갖다 줘! 그랬는데 지금은 청소도 하고 밥도 하고 심지어 창작도 한다니까, 요리 창작.(웃음)
  저도 많이 달라졌어요. 우스갯소리도 많이 할 줄 알게 되고, 비서 대신 간식을 사오기도 해요. 전엔 허튼 시간을 쓰면 금전적인 손해라는 생각이 강해서 엄두도 못 냈거든요. 그러니까 예전엔 내가 술 먹자고 할까봐 피했던 사람들이 이제 자기들이 먼저 맥주 한잔 하자고 하더라구요. 내가 바뀌니까 사람들도 같이 변하는 걸 느껴요.
  이 명상의 장점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래서 버린 만큼 확실히 바뀌게 된다는 거 같애. 그러니까 화를 다스리고 싶다면 명상을 해야 하는 거지. 안 그러면 참다가 폭발하든, 못 참아 폭발하든 둘 중 하나거든.
  그러게요. 화내며 사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원래는 화 없이 사는 게 당연하다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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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8. August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