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사람들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싶은 소원이 또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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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발행’ 소원 이룬
소녀 시인 유진이의 희망 이야기

뇌동정맥기형을 앓고 있는 장유진(16)양의 소원은 ‘시집을 내는 것’이었다. 절망 속에서 별빛 같은 희망을 안겨준 것은 시(詩)였다. 그리고 주위의 도움으로 그 ‘소원’을 이루게 되었을 때, 유진이에겐 또 다른 소원이 싹텄단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것. 자신의 시가 아름다운 희망이 되길 기원하는 유진이의 소원 이야기.

취재, 사진 정하나

저도 이젠 쓸모 있는 사람 된 거 맞죠?
“처음에 시집을 내주신다고 했을 때는 정말 될까, 안 해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었어요. 그런데 시집을 받았을 때 벅차고 제 자신이 자랑스러웠어요. 예전엔 정말 자신감이 없었거든요. 사실은 제가 별 볼일 없잖아요. 옛날에는 울기만 했는데 저도 이제 쓸모가 있는 거 같아요.(웃음)”
유진이는 불과 열 살 때인 6년 전, 첫 시집이 나왔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첫 시집을 내준 복지관에선 이 ‘꼬마 시인’을 위해 조촐한 출판기념회도 마련해주었다.
그날 유진이는 너무 떨려서 잠도 이루지 못했단다.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유진이는 뇌혈관들이 엉키는 ‘뇌동정맥기형’이라는 병을 앓고 있다. 여섯 번의 뇌출혈과 그로 인한 마비로 신체 왼쪽이 불편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다. 유진이가 학교 가는 날은 일주일에 나흘, 그것도 4교시 수업만 받는다.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싶고 친구들과도 놀고 싶지만 몸이 약한 유진이에게는 무리다. 또래 친구들의 일상조차도 유진이에게는 간절한 ‘소망’일 뿐이다.
외롭고 쓸쓸한 유진이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시 짓기. 글을 쓰다 보면 자유롭게 꿈꿀 수 있어서란다. 하늘, 바람, 꽃처럼 자신을 기쁘게 해주는 것은 물론, 때로는 자신을 놀리는 아이에게 상처받은 마음조차도 시를 쓸 땐 담담하게 풀어낼 수 있다.

거울을 보면 / 슬퍼지는 내 마음… / “왜 이렇게 못나졌을까?” / “난 왜 이래야 하는 걸까?” / 하늘에게 원망도 하지만 / 내 마음에서는 / 자신감이 피어납니다 / “그래, 난 못났지만 열심히 / 노력해서 지금보다 더 착하고 / 예쁜 마음으로 다듬을 거라구” / 그러고 보면 / 거울은 모두에게 / 자신감을 주는 요술 거울인가 봐요 – 거울을 보면

유진이가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여름,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서였다. 장시간의 수술 끝에 구사일생으로 회복했지만 그해 겨울 뇌혈관이 다시 터지면서 마비가 왔다. 그로부터 거의 2년간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걸을 수도 없었다. 수술, 입원과 퇴원의 반복, 온갖 치료들…. 한순간에 장애인이 된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아홉 살짜리 꼬마는 “그냥 죽고 싶어!”라며 눈물 흘렸고, 그럴 때마다 병실은 환자들의 울음바다가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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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을 이뤄주는 소원별처럼 더 아픈 이들을 위해 꼭 ‘밥그릇’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병실 창가, 별빛 같은 야경 보고 시를 쓰다
“살기 싫었어요. 건강해서 막 뛰어다녔는데 한순간에 아파서 절뚝절뚝 걷게 되고. 다니다 보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 재활 치료를 다녔는데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가면 택시도 안 태워줬어요. 그때 엄마랑 같이 우울증을 앓았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심심하다고 보채는 유진이를 엄마가 병실 창가에 앉혀주었다. 13층 창밖으로 도시의 야경이 펼쳐졌다.
“꼭 별처럼 예쁜 거예요. 그래서 엄마 저거 뭐야? 반짝거려, 그랬더니 엄마가 야경이래요. 그 느낌을 글로 쓰고 그림도 그렸는데, 엄마가 유진아, 너 시도 쓸 줄 알아? 이거 시야, 하시면서 너무너무 잘 쓴다고 칭찬해주시는 거예요. 주변 분들도 그러시고요. 저는 어린 마음에 칭찬을 받으니까 너무 신났어요. 느낌만 써도 칭찬을 받는구나 싶어서 그 이후로는 책이든 가방이든 보기만 하면 느낌을 적기 시작했어요.(웃음)”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아픈 것도 잊고 힘과 용기가 생기곤 했다. 또 지나가는 사람이나, 사물 하나하나가 새롭게 보였다.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재활 치료를 받을 때 로버트 다리를 가진 아저씨가 있었어요. 제가 엄마보고 저 아저씨 로버트 다리다! 그랬더니 그 아저씨가 브이자를 내보이면서 ‘아저씨 로버트 다리야, 멋있지?’ 하면서 가시는 거예요. 저는 그때 서는 연습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아저씨는 다리가 없으니까 나보다 더 아픈 건데 저렇게 밝구나 감동했어요. 그런 사람들을 보고 희망을 많이 얻었어요. 웃음도 찾고 시도 많이 쓰게 되었어요.”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생각하자 / 나보다 더 아픈 양우진 오빠를 생각하자 / 8살 적 그네 타기 실컷 한 것 생각하자… / 가족들 모두 있는 것을 생각하자 /…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있어서 / 건강한 사람을 보면서 / 나 자신과 싸워 이기자 / 웃자 웃자 울지 말고 웃으면서 / 모든 것을 이기고 있는 그대로 생활하자 – ‘좋은 것만 생각하자’ 중에서

유진이는 “자신을 제일 불행하다고 생각해 힘들어했는데 어느새 감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시가 벗이 돼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시를 통해서 절망의 시간을 이겨냈듯이, 자신의 시를 읽고 아픈 사람들이 희망을 얻었으면 하는 ‘소원’이 싹텄다. 그러면서 언젠가부터 이 시들이 책으로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단다. 어머니 이성자씨는 유진이의 시집을 내주고 싶어 여러 출판사에 연락해 보았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유진이는 “보잘것없는 내 시에 관심을 가져주는 이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면 슬퍼지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소원은 이루어졌다.
2004년, 유진이의 사연을 알게 된 지역 복지관의 도움으로 드디어 첫 시집이 출간됐고, 2007년에는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단체인 ‘메이크어위시(Make -A- Wish)재단’의 도움으로 네 번째 시집을 낼 수 있었다.
시집 출간을 계기로 ‘발달장애우 제주도 첫나들이 기금 마련’ 행사에 초대되어 시 낭송도 하고,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었다. 읽기 시간에 시를 발표하기 위해서 자신의 시집을 학교에 가져간 날, 유진이의 시집은 베스트셀러 못지않은 인기를 모았다.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나는 아무리 왼손을 못 쓰더라도 / 희망을 가지면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지금은 학교도 다니고 / 시도 적고 이제는 TV에도 나왔으니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 나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소원을 이루고 나서 유진이는 큰 희망을 얻었고, 한때는 꼬인 혈관이 다 없어졌다는 기적 같은 판정을 받기도 했다. 성장기라 다시 재발되었지만 투병에 임하는 유진이와 어머니의 마음 자세는 이전과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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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가 많이 도움을 받았으니까 자기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해요.”
시집을 내는 소원을 이루고 나서 투병에 임하는 유진이와 어머니의 마음자세도 달라졌다 한다.

‘숨겨놓은 친구 같은’ 새벽에 시를 써요
“관심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의미 있는 낱말인 줄 몰랐어요. 부모가 해줄 수 없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힘을 모으니까 되더라고요. 처음엔 너무나 속상해서 비 오는 날 같이 울고 그랬는데 이젠 저도 많이 바뀌었어요. 지금은 감사함이 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리고 유진이가 많이 도움을 받았으니까 자기보다 약하고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면 해요.”
그동안 노트 32권, 5천여 편이 넘는 시를 써온 유진이는 앞으로 시집을 백 권까지 내는 게 꿈이다. 열심히 노력하면 이 꿈도 이룰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그리고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놀리는 아이들에게도 웃으며 대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지나가다 보면 야, 쟤 걸음 좀 봐봐, 하며 쑥덕거리는 애들이 많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맨날 울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좀 깨달았죠. 어떤 책에서 봤는데, 어떤 순간에든 두 갈래 길이 있대요. 한 길은 밝게 웃는 길, 그 길로 가면 좋은 일만 가득할 거래요. 또 한 길은 좌절하고 슬픈 길이에요. 그걸 읽고 아, 나도 맨날 상처받지 말고 웃음을 택해야겠구나 싶었어요. 누가 놀려도 그래, 나는 장애인이야, 나도 아프기 전에는 장애인 보고 신기해했잖아, 하면서 제 자신을 위로해요.”
유진이의 손등에는 ‘웃음 vs 슬픔’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을 때가 많다. 슬픔이 차오르거나 힘겹다고 느낄 때 ‘어느 쪽으로 갈래?’라고 자문하면서 웃고 싶어서다.
유진이는 보통 새벽 5시면 일어나서 기도하고 시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숨겨놓은 친구 같은’ 깨끗한 새벽 시간이 좋단다.
유진이는 바쁜 게 너무나도 좋다. 머리 빡빡 밀고 병원에서만, 집에서만 있을 때 너무나도 그리웠던 생활이었다.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이 순간을 좀 더 누리고 싶단다. 그리고 아프고 힘든 장애인들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나보다 더 아픈 사람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꼭 주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 시인도 되고 싶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되고 싶고, 내레이터도 되고 싶다는 유진이.
“저는 희망이 있고, 목표가 있어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더 열심히 시를 써서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로 보답하고 싶어요.”

밥그릇은 좋겠다 / 누군가를 도울 수 있어서 말이다 / 배부름을 채워주니까 /… / 나도 언젠가는 / 누구를 도울 수 있는 / 밥그릇이 되고 싶다 – ‘밥그릇’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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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이는 보통 새벽 5시면 일어나 시를 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두 편 이상의 시를 꼭 쓰려고 하는 유진이의 꿈은 앞으로 백 권까지 시집을 내는 것이다.

 

2010. 7. July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