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수 소방관. 그가 하는 일은 화재, 교통사고, 산악 사고 등 각종 위급 상황이 발생할 때 출동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직업의 특성상 참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그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겪는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받아야만 했다. 마음 빼기를 하며 비로소 그 기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장학수(46) 소방관. “이제 그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만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뻐꾹뻐꾹~” 출동벨이 울리면 자동적으로 몸이 무조건 달립니다. 빨리 구급차량을 타고 현장으로 출동해야 하니까요. 처음엔 출동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언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는 긴장의 연속인 데다, 인명 구조는 시간이 곧 생명이니까요. 하지만 귀중한 생명을 구했을 때의 뿌듯함과 보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죠.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각종 사고 현장에서 보게 되는 처참한 광경이에요. 제가 처음 죽음을 접했던 건 교통사고 현장이었죠. 중년 여성의 운구를 이송했었는데 뇌리에 오랫동안 남더라고요. 2005년 응급구조사 자격증을 따고 본격적으로 응급구조 업무를 하면서 상황은 더했어요. 추락사, 자살, 교통사고 등 각종 사건 사고들을 접하다 보니 어느새 장면 장면이 진하게 각인이 되더라고요. 일하다가도 문득문득 떠오르고 꿈에도 나타나고 가위눌림도 당하고…. 예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한 현장에 갔을 경우엔 그때 기억이 다시 떠오르니까 참 많이 괴로웠죠. ‘제발 이런 걸 안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굴뚝같았어요. 정말 이직을 하고 싶을 정도였죠.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2002년엔 청양에서 큰 산불이 났었는데, 예산 지역까지 퍼질 정도로 굉장했죠. 산 중턱에 암자가 있어서 불을 끄러 갔다가 순식간에 불에 포위돼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어요. 다행히 소방 헬기가 와서 불을 끄는 바람에 살아날 수 있었죠. 그런 사건들을 겪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출동벨이 울리면 두려운 마음부터 들더라고요.
그러다 2007년 청양파출소에서 3년간 혼자 근무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불이 나면 소방차 끌고 가서 끄고, 환자 생기면 구급차 끌고 가서 병원에 후송하고…. 교대할 때만 사람을 볼 뿐 혼자 하다 보니 ‘단 한 사람이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동료 없이 업무 처리를 하는 부담감, 외로움과 두려움, 매사 의욕도 없어지면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회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무렵 우연히 마음수련에 대해 알게 됐어요. ‘진짜 마음을 비울 수 있을까?’ 생각했지만, 시시때때로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좀 없어졌으면 좋겠다, 거기서 빠져나왔으면 좋겠다, 그 방법을 간절히 찾던 중이라 바로 논산 교육원에 갔습니다.
처음엔 기억을 떠올려 버린다는 게 힘들데요. 특히 죽음과 관련된 사진을 버릴 때는 그 감정 속에 빠져서 허우적대기도 했습니다. 나중엔 ‘어디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하면서 오기 반 간절함 반으로 버려나가 봤어요. 그러다 보니 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히도 컸는지 알게 됐죠. 어릴 적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데 염하는 과정 등을 고스란히 뒷문을 통해서 다 보고 있는 아이. 무서워서 방에도 들어가지 못했던 기억. 그런 산 삶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저장돼 내 마음을 조종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열심히 수련했어요. 그랬더니 어느 순간 ‘아, 이 모든 것이 다 없는 허상이구나’ 하는 걸 마음으로 깨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정말 잘 버려지기 시작하더라고요. 신기한 건 수련한 지 3일이 지났을 뿐인데, 머리만 대면 바로 잠이 든다는 거예요. 수면 장애가 있어서 잠 한번 자려면 한 시간 이상을 뒤척이면서 실랑이를 벌여야 했거든요. 자다가도 3~4번씩 깨니까 늘 피곤했는데, 잠을 푹 자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그렇게 수련하는데 어느 순간, 묵직하게 막혀 있던 게 뻥 뚫리면서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가득 차 있는 충만함이 느껴지면서 우주가 본래 나임을 깨달았지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마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에 갇혀 있다가 한줄기 빛을 만난 듯, 그동안 풀지 못한 숙제가 확 풀리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인터뷰 도중 출동벨이 울리자 구급 출동을 다녀온 장학수 소방관. 임무를 마치고 귀대한 후 다음 출동 대비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을 하다 보니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과 다를 바 없구나 싶어 늘 허무했거든요. 과연 산다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수련을 통해 깨닫게 된 거죠. 이 몸이 사는 게 아니라, 우주와 하나가 돼서 그 정신으로 영원히 사는 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라는 걸…. 휴가가 끝난 후에도 우리 동네 지역 수련회에 나가면서 꾸준히 수련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어느 때부터인가 제가 바뀌어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우선 출동에 대한 두려움들이 조금씩 사라지더라고요. 일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그 일이 또한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일임이 감사하고,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매사 긍정적이 되고, ‘이 일이 천직이구나, 내가 있어야 될 곳이구나’ 하면서 마음 자세가 바뀌는 거예요.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나를 괴롭혔던 그 참담한 기억들의 끄달림에서 벗어났다는 겁니다. 늘 회피하고 싶었던 현장에서 사건 사고를 담담하게 처리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놀라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찾으니까 하루에 10건 이상씩 사고 처리를 해도 피곤한 줄을 모르겠더라고요. 그때 진정한 휴식은 마음에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소방관, 경찰관 등은 다른 직종에 비해 외상 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밝아 보여도 눌러놓고 지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이런 직종의 분들은 특히 마음수련을 했으면 좋겠어요. 집을 새롭게 리모델링하듯이, 우리의 마음도 한 번쯤 싹 리모델링해봤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힘든 마음들 털어내고, 무거운 기억들을 빼내고 나면 새롭게 편안하게 살 수 있으니까요. 요즘은 출동벨이 울리면 그냥 몸이 뛰어나가지, 어떤 번뇌도 생각도 없어요. “가자! 빨리 가자!” 하고, 오직 내가 필요한 그곳을 향해 힘차게 출동할 뿐입니다.
정리 김혜진 & 사진 최창원
119 안전센터에서는 소리로 위급상황을 구분한다. 뱃고동 소리는 구조구급 상황, 뻐꾸기 소리는 구급상황, 기상나팔 소리는 화재가 났음을 의미한다. 장학수 소방관이 화재 진압 시 착용하는 개인 보호 장비를 입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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