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암 환아들을 위한 동물교실

류성용 ‘휴애니원’ 운영

서울대학교 수의과대학 본과 4학년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부터 할게요. 얘네 이름은 샤인, 뭉치, 후추, 테라, 구름이에요.”

지난 1월, 서울대 수의과대학에서 열린 소아암 환아들을 위한 ‘동물교실’. 귀여운 동물들이 나타나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인다. 아이들은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며 어릴 때부터 아프면서 겪었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고 한다. 2010년 여름 방학부터 소아암 환아들을 위한 ‘동물매개치료교실’을 열어온 류성용과 친구들의 훈훈한 이야기.

– 편집자 주

“선생님, 얘는 이름이 뭐예요?” “어떻게 만져야 해요?” “뭘 좋아해요?”

재작년 겨울 방학 동물교실 때였다. 수업 시간 내내 눈 한번 안 마주치며, 짜증만 부렸던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강아지를 보더니 우리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아이가 관심을 가진 강아지는 하얀 털이 특징인 비숑이라는 귀여운 강아지였다. 강아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아이의 얼굴은 훨씬 밝아져 있었다.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은 마음까지 아픈 경우가 많다. 어린 시절부터 병원 생활을 하다 보니, 또래 친구들과도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굉장히 위축돼 있기도 하고, 사람에 대한 배려나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도 많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런 아이들도 동물과 만나면, 대부분 먼저 다가가고 싶어 하고 친해지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이런 교실을 열어주는 학생들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아이가 아프면 가족 모두 마음이 아픈데, 이런 교실을 계기로 한 번이라도 아이의 웃음을 보게 되면 너무 기쁘지요.”1회부터 4년째 동물교실에 참가해온 천송이(14세) 양과 어머니 김성희씨. 송이 양도 이런 활동을 다른 친구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고 한다.

온순하고 귀여운 동물들을 보자마자 표정부터 환해지는 아이들, 심지어 소아암으로 인해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해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가, 귀여운 동물을 보더니 스스로 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기도 했다.

‘온순한 동물을 만나다 보면, 아이들의 마음까지도 치료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것은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시작되었다.

2007년 대학교에 입학한 후, 자취를 시작하면서 나를 둘러싼 많은 환경이 달라졌다. 여러 가지 어렵고 혼란스러운 일들이 많이 일어났는데, 가장 큰 것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었다.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재, 어머니의 빈자리, 그걸 감당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혼자 방에 멍하니 누워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우울해졌다. 근데 그즈음 내가 만나게 된 아이가 길에 버려진 아주 조그만 삼색 아기 고양이였다. 꼭 엄마를 잃은 내 모습 같기도 하고, 구슬프게 우는 것이 가여워서, ‘삼순이’라고 이름 붙여주고 데려와 키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멍하니 누워 있을 때면 삼순이도 옆에 와서 가만히 누워 있곤 했다. 삼순이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2년 후 소아암 환아들을 위한 학습 봉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정서적인 도움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심은 선하지만 어떻게 사람에게 다가가야 하는지 ‘관계 맺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은 배려심이 떨어진다거나 하는 부분 때문에 병원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간다 해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따돌림으로 인해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받기도 한다. 그때 삼순이가 떠올랐다. 삼순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다 보면, 관계 맺는 법도 배우고 따듯하고 부드러운 동물들을 쓰다듬는 것만으로도 정서적으로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지난 1월 열린 동물교실 현장. 20여 명의 소아암 환아들이 참가했다.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전문 동물매개 치료사 분들과 샤인, 뭉치, 후추, 테라, 구름이 등 동물치료를 위해 훈련받은 개들이 함께했다. 개들과 친구 되기, 아픈 개들 만져주기 등 수업이 끝난 후 아이들의 표정은 훨씬 밝아져 있었다.

현재 동물교실은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다. 동물교실은 방학 때마다 서울대 강의실에서 열리는데, 약 한 달가량 10회 정도의 수업이 진행된다. 종강 후에는, 아이들과 즐거운 소풍 시간도 갖는다.

몇 개월간의 준비 과정 끝에, 2010년 여름 방학을 맞아 제1회 동물교실을 열었다. 먼저 한국소아암재단에서 받은 소아암 환아의 연락처로 일일이 전화를 해서 15여 명의 참가자를 받고, 과 친구들에게는 자기가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를 가져와달라고 부탁했다.

처음엔 개와 고양이 등 동물에 대한 기본 상식을 가르쳐준 후, 동물을 만지고 이름을 불러보고 간식을 만들어주는 시간도 가졌다. 동물도 무조건 다가간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동물도 좋아하는 것이 있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 아이들은 ‘이 동물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면서, 상대에 대해 배려하는 법을 배워갔다.

전문적인 동물매개치료 분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는 전문가들도 초청을 했다. ‘동물매개치료’는 동물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신체적, 정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이들의 치료에 도움을 주는 심리 치료의 한 분야였던 것이다.

동물은 참 단순하다. 동물은 동시에 두 가지 이상의 감정을 품는 ‘양가감정’을 갖지 않는다고 한다. 사랑하거나 싫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등 한 감정을 품는 동안에는 그 감정만을 생각한다.

반면 사람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고 좋아하면서도 질투하는 등 한 번에 여러 감정을 품을 수 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상처를 받게 되는데, 단순한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나 피로감을 보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는 동물을 보면서, 상처받은 마음도 치유받고, 또 나를 받아주는 동물을 보며 자신감도 갖게 되는 아이들도 많이 보아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1회부터 참가했던 당시 초등학생 2학년 여자아이다. 백혈병 치료 중인 그 아이는, 학교에서 놀림도 당하고, 따돌림을 많이 당해서 위축되어 보였다. 그런데 방학 때마다 동물교실에 참가하던 어느 날 ‘수의사’라는 꿈을 갖게 되었고, 그 후부터는 어떻게든 걸으려 하고 밥도 잘 먹으려 하는 등 건강해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표정도 점점 밝아졌다. 아이의 어머니가 감사하다며 눈물을 보이실 때는 정말 찡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독한 병을 앓은 아이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먹는 거라고 한다. ‘동물교실’이 그런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것에 나도 감사했다.

방학마다 진행하다 보니, 관심을 갖는 친구, 후배들도 늘어났다. 우리는 아예 ‘휴애니원(Human + Animal = One)’이라는 ‘동물교실’ 팀을 꾸리게 되었다. 앞으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정서 치료로, 동물교실을 넓혀볼까 한다.

동물교실을 여는 것이 나에게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활동 하나가 어떤 친구에게는 꿈을 주고, 희망을 주는 삶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니, 작은 나눔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더 느끼게 된다.

누구나 시작은 미약하지만, 작은 발걸음이라도 내민다면, 그 하나하나가 모여 정말 이 사회에 멋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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