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열린 고민 상담소

고1, 중2 딸 둘을 둔 40대 엄마입니다. 딸들은 서로 부딪히기만 하면 얼굴 붉히며 싸우기가 일쑤입니다. 욕설이 섞인 말이 오가기도 하고 양보라곤 전혀 없습니다. 혼내기도 하고 달래보기도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인성이 바른 딸들로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제 장성한 두 살 터울의 남매를 둔 엄마입니다. 둘 다 시기 질투가 많아 어려서부터 다투기도 많이 했어요. 하루는 작정을 하고 서너 시간 떨어져 있는 친척 집으로 찾아오라는 미션 쪽지를 남기고 먼저 친척 집에 가 있었습니다. 둘이서 기차표를 끊고 버스를 갈아타고 하루 종일 걸려 무사히 그 미션에 성공하더니, 알게 모르게 끈끈한 정이 조금씩 쌓인 것 같더군요. 그 후로는 티격태격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서로 위해주더라고요. 서로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이벤트를 만들어주시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김윤옥 주부

싸우지 않고 자라는 형제는 없을 테니 너무 걱정은 마세요. 저도 처음엔 “니네 왜 싸워, 그만둬” 하며 야단치고 소리를 질렀지요. 그런데 그게 괜히 감정만 보태는 거더라고요. 힘들겠지만 아이들이 싸울 때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봐주고, 나중에 아이들을 불러서 각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었으면 합니다. 아이들도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 들어주기를 바라고, 또 아이들 나름으로는 분명히 싸울 이유가 있는 거니까요. “아, 니가 이래서 동생(언니) 때문에 속상했구나, 힘들었겠다.” 그렇게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마음은 녹습니다. 니가 잘했다, 못했다 가르치려고 하기보다, 그렇게 공감해주면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잘못도 알고 자기 길을 찾아가더라고요. 손미경 주부

저도 어린 연년생 자매를 키우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당연히 싸우면서 크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무엇보다 부모의 모습이 중요하겠지요. 부모가 거울이잖아요. 결국 부모가 하는 행동을 아이들은 따라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면서, 항상 남편하고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쓰게 됐습니다. 속으로는 밉더라도 아이들 앞에서는 포옹하고 따듯하게 말하고. 그런데 일부러라도 그렇게 하다 보면, 실제로 미운 마음도 조금은 사라지더라고요. 항상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요. “엄마 아빠가 짝꿍이듯 니네 둘도 짝꿍이다. 엄마 아빠가 너희처럼 싸우고 그러면 좋겠냐”고요. 그리고 혼자 고민하기보다는 아빠하고 같이 풀어가면 좋겠어요. 분위기 좋은 데 외식하러 가서 아빠가 한마디 해주는 것도 좋고요. 가족의 소중함을 알 수 있는 좋은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요. ♣ 김순열 자영업

저에게는 5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동생을 많이 때리기도 하고 동생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와 기숙사 생활을 하다 보니 문득 동생에게 잘못한 일만 떠오르고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사과를 했더니 동생 역시 자기가 잘못했다면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자녀분들도 서로 떨어져서 서로의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덜 싸우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자매가 서로 부모님께 차별받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저도 부모님께서 동생을 더 좋아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면 더 괴롭혔던 거 같습니다. 한창 사춘기를 겪을 나이이고, 진로에 대해 민감한 시기라서 그럴 수 있으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파이팅입니다.^^ 박남희 대학생

저는 딸 셋의 둘째로 자랐지요. 특히 두 살 차이의 막내 동생과는 정말 엄청 싸웠습니다. 한번 머리끄덩이를 잡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놓지 않았던 기억, 지금은 웃으면서 말할 수 있네요. 사춘기 시절, 마음은 힘들고 여유가 없으니까, 동생을 품어주지 못하고 더 싸웠던 거 같아요. 하지만 잔소리 한번 안 하시고, 늘 열심히 사는 부모님을 보면서, 점점 동생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도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이 열심히 살고 계시다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자녀들이 싸울 때 너무 그 상황에 같이 들어가서 힘들어하지 마시고 조금 큰마음으로 바라보시면서, 자녀분들이 힘든 것은 없는지 대화하는 시간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네요. 우현희 직장인

사회복지사 일을 시작한 지 6개월째, 요즘 직장에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기관 대상자 분들(치매환자 분들)과 보호자 분들 상대하기, 회계 업무에다 상담까지. 6개월이 지나니 몸 마음이 많이 지쳤습니다. 음악 듣기나 영화 보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어보려곤 하는데 도통 매사에 의욕이 나질 않습니다. 운동을 해도 나아지지 않는 이 무기력증, 어쩌지요? ㅠ.ㅠ

우리 집에는 다섯 명의 현인이 삽니다

백일성

거실에 앉아 있는데 부모님 방이 시끄럽습니다. 두 분 다 극에 대한 몰입도가 굉장하십니다. 슬그머니 방으로 들어가서 두 분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극이 끝나갈 쯤 한마디 했습니다. “만날 그게 그거고 뻔한 드라마 뭐가 그렇게 재미있다고 보세요?” 어머니가 힐긋 고개를 돌리고 한마디 합니다. “그래서 너는 술맛을 몰라 만날 처먹고 다니냐?”

43살 범인이 물었습니다.

“뻔한 드라마 뭐 하러 보십니까?”

석수동에 75살 정분순 현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그 아버지는 아직도 아침에 눈뜨면 밥 달라고 한다…

83년 먹어 온 밥맛이 궁금해서 밥 달라고 하겠냐?

연속극도 다 그런 거다.”

아~~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저녁에 동네 아는 사람들과 술 약속이 있어서 아내와 같이 나가려고 하는데 아내가 거울 앞에서 옷을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합니다. “자기야 이 옷 뚱뚱해 보이지?” “아냐 예뻐.” “안 뚱뚱해 보여? 뚱뚱해 보이는데?” “아니라니까.” “좀 이상한데… 뚱뚱해 보이지 않아? 여기 옆 라인 잘 봐.” “괜찮다니까~~ 늦겠다.” “딴 거 한번 입어볼까?” 참다 한마디 했습니다. “열라~~ 뚱뚱해 보여~~~ 됐냐?” 아내가 옷장 문을 다시 열며 중얼거립니다. “거봐… 뚱뚱해 보인다니까.”

43살 범인이 물었습니다.

“아줌마가 뭐 그리 거울 앞에 오래 있습니까?”

석수동 43살 복희 현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음부터는 끝까지 예쁘다 그래라.”

아~~~~~ 네….

고1 아들 녀석이 컴퓨터를 하고 있습니다. 휴일이라 좀 풀어주려고 해도 너무 오래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잔소리를 시작했습니다. “형우야, 아무리 휴일이지만 주절주절… 그리고 취미 생활이나 독서라든지 주절주절… 운동도 하고… 주절주절… 인생이 말이다… 주절주절….” 5분간의 주절거림에 아들 녀석이 짧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43살 범인이 물었습니다.

“내 말 듣습니까?”

석수동 17살 형우 현인께서 말씀하셨습니다.

“…….”

묵언수행 중인 듯합니다.

아~~~~ 더럽게 말 없네, 시끼.


중2 딸아이가 휴일 아침부터 커피를 타오고 흰머리도 뽑아주고 면봉까지 들고 귀를 대라고 합니다. 과도한 서비스에 한마디 했습니다. “뭐냐? 원하는 게?” 딸아이가 면봉을 살짝 거두고 속삭입니다. “우리 오빠들 콘서트하는데 티켓하고 엄마 설득 좀….” 한 달 전부터 듣던 얘기라 내심 못 이기는 척 짧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딸아이가 짧은 환호성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친구한테 전화 한다며 내달았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반대편 귀까지 한 다음에 승낙할 걸.’

43살 범인이 물었습니다.

“중학생 딸들에게 아빠란 존재는 무엇입니까?”

석수동 15살 송이양이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다루기 쉬운 남자.”

아~~~~ 내가 쉬운 남자였구나.

밤에 아버지가 주방에서 서성이십니다. 곧 눈에 익은 장면을 연출하십니다. 아버지 전용 커피 잔에 소주 한 잔을 찰랑찰랑 담으셔서 한 모금 하십니다. “아버지, 이번 달부터 금주하신다면서요?” 갓김치 몇 조각을 그릇에 담으시고 식탁에 앉으시며 아버지가 한마디 하십니다.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말이다… 사람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 같더구나… 술을 술이라고 생각하면 술이지만 술을 물이라고 생각하면 물이 되는 거 아니겠냐? 이걸 물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더 이상 술이 아닌 거지 그냥 물인 거야… 물!”

43살 범인이 물었습니다.

“그럼 아버지는 왜 물을 드시고

김치를 안주 삼아 드십니까?”

석수동 83세 백영춘옹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김치 먹고 물 먹는 거다….”

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술도 물이로다….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무료 영어 학원 ‘한마디로닷컴’ 박기범 대표

취재 문진정

대학 입시, 취업 면접, 승진까지 평생 영어와 씨름해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독학으로 영어를 정복하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조기 교육, 족집게 과외, 어학연수로 1등 영어 실력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우리의 현실. 그 영어 강의를 100% 무료로 제공하는 사람이 있다. 자연이 햇살, 공기, 물 등 소중한 것들을 그냥 내어주는 것처럼 교육 또한 무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 사회적기업 ‘한마디로닷컴’의 박기범 강사다.

7년 동안 종로의 유명 어학원에서 ‘잘나가는’ 토플 강사였던 그는 강사 생활이 결코 편치만은 않았다고 한다. 학생들이 밤새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학원비로 받는다는 게 마음의 빚으로 남았던 것. 오랜 고민 끝에 학원을 그만두고 자신의 영어 강의를 인터넷에 올리기 시작한 게 1년 전이다. 경제적 여건 때문에 사교육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 1등이 아니라 하위 50%를 위한, 기본에 충실한 강의를 만들었다.

새벽 시간, 비어 있는 스튜디오를 빌려 혼자서 촬영하고, 편집하고, 올리기를 수십 차례.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일년 만에 회원 수 1만 명, 강의 재생 수는 74만 건을 넘어섰다. 학생과 학부모는 부담 없이 좋은 강의를 들어 좋고, 참여하는 강사들은 재능을 나눌 수 있어 좋고, 최근에는 수강생들의 관심을 어려운 장애인 시설과 연결시켜 자발적 후원까지 끌어내는 등 모두에게 이로운 강의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영어 외에 수능 시험을 포함한 다양한 강의도 준비 중이라니, 대한민국 사교육의 폭풍이 잠잠해질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hanmadiro.com

박기범 대표  무료 강의를 시작했을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강의의 질입니다. ‘공짜니까 내용이 별로겠지’ 그런 생각이 안 드시도록 더 감동적이고 필요한 강의가 되도록 연구를 합니다. 스스로 훌륭한 강의라고 자만한 적은 없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최고의 노하우를 다 담았습니다. 유료 강의보다 못하지 않다는 믿음은 있는 거죠.^^

학원 강의가 수능 1등급을 위한 전략형 맞춤 강의라면 한마디로닷컴에서 제공하는 강의는 학원 수업을 못 따라가거나 여러 이유 때문에 영어를 포기한 학생들을 위한 것입니다.

영어를 즐겁게 만들어주고 생각하는 힘, 기본을 키워주는 강의죠. 그래서 기존 어학원과 배척점이 생기는 게 아니라 상생할 수 있다는 점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회원들 중에는 아이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서 집에서 직접 가르쳐야 하는 부모님도 계시고, 영어에 한계를 느낀 해외 교포분들도 많습니다. 돈이 없어서 학원을 못 다니는 대학생에게 호주에 계신 분이 책값을 보내주신 적도 있어요. 그 마음들이 너무 고마운 거죠.

교육이라는 것이 판매의 대상이 아니라, 선배가 후배에게 주는 선물이자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당연한 과정임을 많은 분들이 인식하셨으면 좋겠어요. 1등에 대한 기준은 항상 바뀌잖아요. 1등보다는 스스로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고 자신과 사회 모두에게 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 여건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면목동 최고의 오지랖, 최경자 여사

 

나는 우리 면목동의 아름다운 마담 한 분을 소개하고 싶다. 이 마담을 소개하자면 면목시장 내에서 미용실을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는, 면목동에서 제일 오지랖이 넓은 분이다. 나 또한 면목동 토박이로 이 시장에서 20년 이상 사진관을 운영하며 알게 된 분으로, 이분을 앞에 놓고 인정(人情)을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이 마담(애칭)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이른 아침 출근해 양은 쟁반에 열댓 잔의 커피를 타가지고 앞뒤 좌우로 좌판을 벌이는 할머니들께 돌리는 것이 하루의 시작이다.

당연히 내 몫도 한 잔 있다. 때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시라며 주기도 하는데,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노인분들 파마 값은 주면 주는 대로 받고 안 주면 그만이고, 어려운 사정의 시장 분들도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마담의 미용실은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이기도 하다.

그럼 돈은 언제 버냐고? 면목동에서의 세월이 얼만데 그런 걱정을 하랴! 면목동 사람들이라면 우리 예쁜 마담의 예쁜 행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런 걱정은 접어두시라.

마담은 15년 이상 동네 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의 머리를 잘라주는 미용 봉사도 하고 있다. 나도 몇 년간 영정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봉사를 했는데, 그 양반이 노인분들께 해주는 미용 봉사를 보며 마담의 진면목을 알았다. 그분은 노인들을 불쌍하게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친정엄마 대하듯 한다. 노인들 스스로 자신이 무료로 봉사를 받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하는 것이다. 도움을 주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도 없이 그저 격식 없이 대할 뿐이다. 진짜 사람을 좋아해서 그렇게 하는구나가 눈에 보이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영정 촬영 봉사라는 것을 몇 년간 해봤지만, 10년을 넘게 꾸준히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경자 여사에게는 봉사와 생활이 따로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우리 동네 아폴로 미용실의 최경자 여사에게서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법을 배웠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웠다. 남을 이해하고 상처 안 받게 도와주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재물이 있어도 겸손해야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나눔 철학을, 최경자 여사는 아무 바람 없이 이미 몸으로 실천하고 있는 분이었다.

딸들이 어릴 때, 창동 처갓집으로 가는 지하철에는 별나게 시각장애인 분들이 많았다. 그분들이 하모니카를 불고 지하철 안을 다니면 어린 딸들한테 “저분들 드려라” 하며 약간의 돈을 주었다. 그러면서 말하길 “저분을 동정해서가 아니라 저 사람보다 내가 가진 게 조금 더 많아서 나눠서 쓰는 거다”라고 아이들이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그런 이야기를 꼭 해주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내가 조금 더 가졌다 해도 나누지 못하고 살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최경자 여사는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냥 가진 걸 나눌 줄 아는 사람이다. ‘바람은 부는 대로 흘러가고 덕(德)은 쌓는 대로 쌓인다’던가. 면목동 오지랖 최경자 여사는, 몸소 그 경구를 실천해 보이는 분이다. 면목동 아폴로 미용실 최경자 여사 만세 만세!!

조상연 53세. 사진작가.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

최경자님께는 ‘아름다운 최경자 여사께 면목동의 조상연이 보냅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예쁜 난 화분을 보내드렸습니다.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 특별한 사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edit@maum.org) 독자님의 마음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숙주베이컨덮밥

간단한 재료로 손쉽게 해먹을 수 있는 덮밥. 짭짤한 베이컨과 아삭한 숙주, 파의 향긋함이 살아 있어 느끼하지 않고 담백합니다.

재료(2인분) 숙주 100g(한 줌 반 정도), 베이컨 8장, 파 1대, 간장 1큰술, 찬밥 2공기

① 찬밥을 따뜻하게 데운다.
② 숙주는 깨끗이 씻어 물기를 빼고, 베이컨은 송송 썬다. 파도 송송 썰어준다.
③ 달군 프라이팬에 베이컨을 넣고 볶는다.
④ 베이컨이 바짝 익으면 센 불에서 숙주를 넣고 간장을 넣은 후 골고루 버무린다.
⑤ 센 불에서 파를 넣고 한번 골고루 섞어 푸른색이 될 때까지 익힌 후 밥 위에 올려낸다.

Single’s Tip

숙주가 너무 익으면 아삭한 맛이 떨어지니 살짝만 볶아주세요. 남은 숙주는 찬물에 넣어 물을 바꿔줘 가며 보관하면 색이 변하지 않아서 보관 기간을 늘릴 수 있어요.

문인영 / 자료 제공 <메뉴 고민 없는 매일 저녁밥>(지식채널)

문인영님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현재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 중입니다. 다양한 잡지와 방송매체를 통해서 메뉴 개발과 스타일링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 <싱글만찬> <다이어트 야식> <메뉴 고민 없는 매일 저녁밥>이 있습니다.

목도리 떠주는 시계

● 이름은?
365 Knitting Clock(365일 뜨개질하는 시계). 시간이 흘러감과 동시에 365일 24시간 뜨개질을 하여 목도리를 만들어주는 시계이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아주 천천히, 지속적으로 흘러가는 자연의 시간, 그 시간을 사람들에게 시각화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 제품의 소재와 원리는?
소재는 나무, 아크릴판, 울 소재 털실로 되어 있다. 원하는 색의 실타래를 끼워두면 매 30분마다 터빈이 돌면서 한 바퀴씩 뜨개질을 하게 되는데 1년이 지나면 실타래가 2미터 길이의 따듯한 목도리로 변신하게 된다.

● 상용화 계획은?
365 Knitting Clock은 아직 상용화되지 않았지만 ‘Grandfather Knitting Clock(커다란 입식 벽시계)’는 고품질의 8대 한정판으로 판매하고 있다.

● 하고 싶은 말은?
이 시계는 한 땀 한 땀의 뜨개질로 목도리가 완성되듯이, 우리의 삶도 매 분, 매 초의 시간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음을 돌아보게 해준다. 실타래가 목도리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자신의 시간과 삶을 비춰보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을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만든 사람 사이렌 엘리스 빌헴슨(Siren Elise Wilhelmsen) 30세. 디자이너. 독일 거주

MBC-TV 아빠! 어디 가?

“좋은 꿈꿔.”

“아빠도 잘 자고요.”

“고마워.”

“아빠 좋아. 아빠 좋아.”

“아빠 좋아? 어이, 내 아들. 아빠도 좋아.”

불 꺼진 방 안에서 들려오는 아빠와 아들의 이 짤막한 대화에는 끈끈한 사랑이 느껴진다. 평소 아빠를 무서워하며 다가오지 못했던 성동일의 아들 준이. 조금은 자신 없어 보이지만 “아빠 좋아”를 연발하는 아이 앞에서 아빠 성동일은 한없이 푸근해졌을 게다.

‘아빠 어디 가’는 어쩌면 성동일처럼 일에 바빠 조금은 소원해졌던 아이와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보는 이들에게 ‘아빠 미소’를 짓게 만드는 프로그램이다. 아이만큼 아빠를 힐링시켜주는 존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김성주의 아들 민국이는 첫 회에 아빠와 떠난 여행에서 가장 허름한 숙소가 정해지자 폭풍 오열을 했다. 두모리로 떠난 두 번째 여행에서도 최종 목적지에 가장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텐트를 치고 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또 눈물을 쏟아냈다. 아마도 어른들만 떠나는 여행이었다면 눈물까지 흘리며 아쉬워하는 장면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나온다 해도 그 진정성이 묻어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민국이의 눈물은 진짜라는 점에서 보는 이를 웃음 짓게 만든다.

윤민수의 아들 후는 송종국의 딸 지아를 마음에 두고 있다. “어휴, 이 귀염둥이!”라며 마음을 드러낸다. 자신은 숨긴다고 숨기지만 다 드러나는 그 마음은 아빠들을 미소 짓게 한다. 후가 단 몇 차례의 방영만에 ‘국민 아들(?)’로 등극하게 된 것은 본능을 솔직하게 드러냄으로 써 그 순수한 마음을 느낄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삶은 계란을 먹고 싶은 마음과 지아와 민국이 형과 나눠 먹을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다 자신이 다 먹어버리는 모습은 그 솔직한 속내를 잘 보여준다.

저녁 찬거리를 구하러 나온 길에서 만난 강아지나 병아리 때문에 좀체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지아는 그 존재만으로도 아빠 송종국을 ‘딸바보’로 만들어버리는 아이. 송종국이 지아의 발을 닦아주거나 어설픈 솜씨로 아침을 챙겨주는 등 지극정성을 다하는 모습은 이 땅의 모든 ‘딸바보’ 아빠들의 마음 그대로일 게다.

한편 이종혁은 아빠라기보다는 삼촌 같은 모습이다. 귀차니스트들이기 마련인 아빠들의 자화상과 그럼에도 친구처럼 아들과 놀고 싶어 하는, 나이 들어도 여전히 악동 같은 모습이 거기서는 묻어난다.

사실 ‘아빠 어디 가’는 특별히 대단한 이벤트가 있는 예능이 아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골로 떠나 하는 것이라고는 잠잘 방을 택하고, 저녁거리를 구해 챙겨먹고, 함께 잠을 자고 함께 눈을 뜨며 한바탕 시골길을 걷는 정도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더해지기보다는 빼는 것으로써 더 특별해진 예능은 그저 달걀 몇 알만 갖고도 웃음을 전해준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시골로 여행을 떠난다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니 말이다.

무언가 많은 것을 설정하기보다 그저 아날로그적 공간에 아빠와 아이를 내버려두고 그들이 무엇을 하는가를 담담히 포착하는 것만으로 웃음을 전해준다. 이 아이들과 아빠들의 관계가 무르익어가는 과정을 우리는 또 하나의 가족처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현실에 부대끼면서,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가족과 아이들과 함께 시간 보내는 것조차 점점 힘들어지는 게 우리네 아빠들이다. 그런 아빠들에게 ‘아빠 어디 가’는 비타민 같은 웃음을 전해준다. 아이들이 전하는 순수한 웃음은 그 자체로 아빠들에게는 힐링이 될 테니 말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자신의 가족과 아이를 돌아보는 기회가 될 테니.

정덕현 문화칼럼니스트 & 사진 제공 MBC 홍보국

이 멋진 세상을 음미하라 _몽골 2

글 & 사진 이용한 <시인, 여행가>

몽골에서는 여자에게 “암사슴 같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예쁘다’는 최고의 찬사이다. 반면 남자는 “늑대 같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용감하고 멋지다’는 뜻의 찬사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늑대 같다는 표현과는 상반된 의미로 통한다.
몽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처음 늑대와 암사슴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믿고 있고 이런 이야기는 신화로도 전해져온다. 그래서 몽골 사람들은 초원이나 구릉에서 늑대를 만나면 행운이 생길 거라고 말한다. 더러 유목민이 키우는 가축을 늑대가 물어가거나 다치게도 하지만, 몽골 유목민들은 이때에도 늑대를 잡기보다는 쫓아버리기만 한다.

 

이 지구에서 아직도 유일하게 원초적인 자연의 삶을 꾸려나가는 곳이 있다면, 몽골이다. 그러므로 몽골의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선량한 자연의 후손이고 그럴 수밖에 없는 땅의 자식들이다. 몽골의 아이들에겐 초원과 사막이 학교이고, 양 떼와 말과 낙타가 스승이다. 이 아이들은 아장아장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말고삐를 잡는다. 한국의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유치원과 학원에 다닐 때, 이 아이들은 말고삐를 잡고 초원과 사막을 공부한다. 한국의 아이들이 컴퓨터와 TV를 보고 있을 때, 이 아이들은 초원의 지평선과 구름을 시청한다.

어느 쪽이 더 불행한가, 행복한가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이 더 아름다운가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아이들은 그렇게 평생을 살면서도 우리처럼 불평과 불만, 불안 속에 놓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작해야 게르 한 채에 양 떼 50마리를 키우며 살아도 언제나 우리보다는 그들이 더 행복해 보인다. 언제나 부족을 느끼며 더 많이 가지려는 쪽은 우리다. 언제나 남을 딛고 올라서 이기려는 쪽도 우리다. 도대체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그토록 눈에 불을 켜고 입에 칼을 물고 사는 걸까. 세상에는 분명 멈추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그럴 땐 멈춰 서야 한다.

우리는 이 멋진 세계를 천천히 음미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맛있는 알타이의 푸른 바람’ 알타이를 노래한 몽골의 시 한 구절이다. 몽골인들은 바람에도 색깔이 있다고 말한다. 가령 고비의 모래바람은 ‘하얀 바람’, 알타이의 바람은 ‘푸른 바람’. 산자락의 초원이 푸르고, 하늘이 푸르니 바람도 푸르다. 푸른 바람을 뚫고 보르항 보다이(붓다를 뜻함)로 간다. 알타이에서 가까운 만년설산. 가깝다고?

이용한님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순수한 풍경과 사람, 고양이를 담아온 사진가이기도 한 님은 그동안 시집 <안녕, 후두둑 씨>,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옛집 기행> 고양이 시리즈 <명랑하라 고양이> 등을 펴냈으며 영화 <고양이의 춤>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여행 에세이로는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등 다수가 있습니다.

 

여백, 비워야 채워지는 무한의 공간

강화도 해 질 무렵 바닷가.
강화도 동막리. 2011.

사진 & 글 전학출

어린 시절, 꼴망태를 메고 아버지 뒤를 쫓아 나섰다. 안개가 유난히 자욱한 저수지 길을 돌고 돌아 산을 오르면, 한 편의 수묵화 같은 풍경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 기억 때문인가. 지금도 안개 자욱한 풍경과 마주하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풍경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 떨림을 느끼며 새하얀 화선지에 먹으로 채색하듯 오늘도 셔터를 누른다.

말도바다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중국과 가장 가까운 섬이다.
서해의 외딴섬 말도. 2010.

자연은 늘 변화한다. 한 번도 똑같은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분명 같은 장소임에도 똑같지 않다. 어제는 없던 구름이 지나가든, 순간 불어오는 바람에 낙엽이 흔들리든, 자연은 매 순간 변화한다. 여백이라는 주제로 사진을 찍는 동안 자연을 이해하며 순응하게 되었다. 화가는 작가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지만, 사진가는 자연이 응해주지 않으면 그 어떠한 사진도 찍을 수 없다. 그 자연의 오묘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은 자연의 텅 빈 여백을 닮아갔다. 삶이 되어갔다.

느티나무
느티나무 보리밭에서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전북 김제. 2012.

여백은 비어 있는 미완성 상태 같지만 보는 사람의 생각과 감성에 따라 채울 수도 있고 비울 수도 있는 무한의 공간이다. 가득 차 있으면 담을 수 없듯이 비어 있지 않으면 채울 수도 없다. 여백은 누구에게나 무한한 상상력을 주고 그 안의 주인공이 되게 하며 자유롭게 생각하게 한다.

 

나룻배 어부가 전날 쳐놓은 그물을 안개 속에서 걷어 올리고 있다. 남이섬. 2011.

사진가 전학출님은 1946년에 전남 강진에서 태어났으며, 홍익대학원 현대미술 최고위 과정을 수료했습니다. 30년이 넘게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우리나라 자연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담아온 님은 16회의 개인전, 20여 회의 그룹전을 해왔으며, 저서로는 <한국의 풍경 이야기> <한국 풍경 사진 친구들>(공저) 등이 있습니다.

안녕, 당나귀


오랜 세월 잘 버텨온 내 차가 주저앉았다. 견인차를 불러 정비소에 갔더니 사장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엔진을 바꾸든지 폐차를 시키든지 하란다. 일찍이 가난한 집에 와서 고락을 함께한 정든 당나귀처럼, 헤어지려니 마음이 영 좋지 않았다. 그리고 당장에 주말마다 시골 어머니 집에 가야 할 일도 난감했다. 하지만 나는 이 급작스러운 사태를 온전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면 편하고 궁하면 통한다. 나는 나름대로 방안을 강구하고, 토요일 오후 기차를 타고 어머니 집으로 출발했다. 오랜만에 열차에 몸을 싣고 창밖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느리지만 여행하는 기분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순천역에 도착해서 미리 계획한 대로 시민공영자전거 거치대로 갔다. 그곳에 있는 전자판에 회원정보를 입력하니 잠금 쇠가 딸깍 열렸다. 그리고 노란 자전거 한 대가 선물처럼 튀어나왔다. 나는 그 자전거를 타고 도심을 가로질러 변두리에 있는 마지막 공영자전거 거치대에 도착하였다.

공영자전거를 반납하고 이제 걷는 일이 남았다. 논길과 둑길을 하염없이 걷자 하니, 폐차장으로 간 내 당나귀가 그리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무튼 허위허위 그 긴 여정 끝에 시골집에 도착해서 어머니 밭일을 거들었다.

다음 날, 나는 미리 계획한 대로 새벽같이 일어나 창고에 있는 낡은 자전거를 꺼냈다. 그리고 그 자전거를 타고 어제 그 마지막 공영자전거 거치대로 갔다. 나는 또 회원정보를 입력하고 노란 시민공영자전거를 빌렸다. 이제 두 대를 한꺼번에 몰고 집으로 왔다가, 집 자전거를 창고에 넣어둔 다음, 노란 공영자전거를 타고 역으로 가면 성공이다.

나는 집 자전거를 탄 상태에서, 한쪽 손으로 노란 자전거의 핸들을 잡았다. 그리고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채 서서히 페달을 밟았더니 두 대의 자전거는 의좋은 형제처럼 나란히 굴러갔다. 아! 내가 봐도 대단한 기술이었다. 혼자 보기 아까운 그 묘기를 아무도 봐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나는 그렇게 어머니 집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집 자전거를 창고에 넣어 두고, 역을 향해 출발하려는데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 손으로 우산을 펼쳐든 채 노란 자전거에 올랐다. 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 노란 자전거의 한쪽 페달이 없다! 원래 고장 난 것인지, 아니면 아까 몰고 올 때 페달이 빠져버렸는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또 나 홀로 묘기 대행진을 벌였다.

일단 성한 한쪽 페달을 밟고 나서 발등으로 그 페달을 되감아 올린 다음, 다시 밟기를 반복해 보았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이번에는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 양다리를 길게 늘어뜨려, 캥거루처럼 두 발로 땅바닥을 힘껏 차보았다. 자전거는 빌빌거릴 뿐 속도를 내지 못했다. 한 발과 두 발의 차이가 그렇게 클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결국 나는 자전거에서 내려 털레털레 끌고 갔다.

그런데 하늘이 무심치 않았다. 얼마 안 가서 기적처럼 길에 나뒹굴고 있는 자전거 페달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비에 젖은 그 페달을 얼른 주워 돌로 꽝꽝 박아 조립하였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달렸다. 아! 형언할 수 없는 성취감이 온몸을 감쌌다. 그제야 뒤를 돌아보니 멀리 어머니가 서 계셨다. 칠순 노모는 오십 대 아들의 희한한 자전거 행진을 줄곧 지켜보고 계셨던 것이다. 한참을 달리다 개천 다리 밑에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이 해괴한 상황에 노심초사하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벌써 순천역에 도착했느냐고 어머니가 물었다. 나는 막 도착했다고 뻥을 쳤다. 어머니의 감격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구, 우리 아들 장허다. 용감허다. 우리 아들!”

전화를 끊자마자 자전거에 올랐다. 나는 열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또다시 죽어라 페달을 밟아야 했다. 그날 그렇게 한바탕 자전거 쇼를 벌이고 나니, 떠나보낸 당나귀에게 조금 덜 미안했다. 무엇이든 정들다 헤어지면 그런 이별 의식이 필요한 모양이다.

최형식 & 일러스트 유기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