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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od of work? We also canbecome it

Summary Kim Hye-jin

& Photographs Choi Chang-won

 

Park Jin-soo (36), a deputy chief of an outsource purchasing team, SK C&C. People often call him, who always seem energetic and flexible, “mànmàndi deputy” or energy-filled “battery.” But he had his share of a difficult time before entering the present position at work, such as experiencing multiple rejections while seeking employment and death of a close friend. He credits his transformation from an irritable and tiresome self to a positive “energizer,” to Maum Meditation. Through a subtraction of his mind, he started to understand the logics of the world which he had questioned; and changed himself fundamentally. The story about wisdom of work life and subtraction by Mr. Park, a deputy for the last 4 years.

“Something good happened, Mr. Park?” “Do you have a trusty backer?”

Because he laughs and gets along easily even in today’s economically challenged times, people tend to comment thusly. I work when I work, I eat when I eat, and I sleep when I sleep…. I am thankful for living a moment by moment to the best of my ability.

When I had just started this job in 2010, I was very irritable and angry person. I fought with my bosses and others when I disagreed with them. They had called me “the fighter”.

My health wasn’t good either. I had insomnia for a long time. In my personal life, there were many deaths. In my twenties, my good friend since high school died and also my brother who I was close to passed away… and then I was having a very difficult time when at twentynine, my best friend passed away.

Park Jin-soo (36), a deputy chief of an outsource purchasing team, SK C&C. People often call him, who always seem energetic and flexible, “mànmàndi deputy” or energy-filled “battery.” But he had his share of a difficult time before entering the present position at work, such as experiencing multiple rejections while seeking employment and death of a close friend. He credits his transformation from an irritable and tiresome self to a positive “energizer,” to Maum Meditation. Through a subtraction of his mind, he started to understand the logics of the world which he had questioned; and changed himself fundamentally. The story about wisdom of work life and subtraction by Mr. Park, a deputy for the last 4 years.

Why were human beings born? How should I live? I felt guilty about not being able to help my friend. I felt like the unluckiest person and that’s when I developed insomnia. I only slept one hour a night, tossing and turning the rest of the night, and then struggling during the daytime hours…. I looked like a zombie. In order to sleep, I exercised and consulted with psychologists, but none of this helped me. My insomnia got worse, as I was rejected for jobs over and over, at least a hundred times, and could not get employment anywhere. I thought since I went to a good college and university with research experience and internship, I would be accepted. Anxiety, selfconsciousness, inferiority complex…all those minds rose up in me and it was a hell. Around that time, I read a monthly magazine called <Maum Meditation> at a health center.

“A man takes pictures in his mind using his eyes, nose, ears, mouth, and body and lives in his own videotape which he made. By eliminating this videotape and becoming the world, he would become and live as a saint with wisdom to know all of the logics of the world.” The writings in “World Beyond World by Woo Myung” inspired me. Ah, this is what I was seeking ~! Fortunately I was accepted for a job position at that time and I soon started Maum Meditation .

From the main center of Maum Meditation in Nonsan, Choongnam.

Jin-soo goes to the main center every weekend. After subtracting his mind in its rural country setting, he says he is energized for yet another week.

During my first level of meditation, I reflected on my life and I was surprised to see that I really lived in my own picture world. After discarding the picture world and the self that was me, I was the vast Universe. Ah, the Universe is me, I never existed…. It was as if I was dreaming and after waking up, I saw that I was living in a non-existing world. One could live a true life by escaping a dream. I started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holy words from scriptures and the logics of the world. I was able to let go of my best friend finally. Soon, I was able to sleep progressively well. I was very, very happy.

The most difficult in work life was human relationships. I had bosses that I hated. The boss who gave all of his own work to his subordinates, the boss who picked on me…during the meditation, I saw that I hated them in a picture world that only I had. I saw me objectively for the first time and realized that I was the worst person. I was often selfish, having been brought up in a family where I was the youngest and only son. I was stubbornly assertive – who would like such a person? I cried a lot, repenting about what I did. I also changed in my attitude toward others. I started to listen and hear others out to see what they really wanted….

“Park Jin-soo really changed these days. I was surprised that he changed.” My bosses, who knew me since I started the job, commented and I also realized, “Ah, I have changed.” I had read many books about a good work life to no avail, but I was amazed at my fundamental transformation through the mind-subtraction.

Long ago I had seen a phrase, “the wealth is in self-satisfaction” in Seokguram, Kyungju. A true happiness really begins with satisfaction about one’s situations. When I reflected on my life, I had lived with a sense of inferiority, being jealous of others with better circumstances. I had lived a good life, but I was jealous of others in better financial situations during my school years. I felt the same way in college, graduate school, and this job. Other jobs and other teams seemed even better than mine…with a mind that constantly compared self with others, one could never be happy no matter what conditions.

Even though I work for a large corporation, there still are many uncertainties, especially uncertainties about economy. Because of this, there are some people who buy lotteries or gamble on stocks. In the past, I also had not lived in the present moment because I was worried about my future, some 10 years later. But the uncertain future was only in my mind and knowing that only this moment exists, I am able to live every day to the best of me.

“Enjoy your work. Focus on this very moment now!”
Becoming the god of work? It’s not hard ~ ^^

열린 고민 상담소

첫아이 출산을 앞둔 산모입니다. 8월 중순이라 더위 때문에 다들 걱정해주시는데요. 여름 산후 조리를 잘하는 방법이 궁금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를 두 명 이상은 낳고 싶은데 요즘 ‘아이=돈’으로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양육할 때에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에 대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조언 부탁드려요.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 선택에 따라 삶은 달라집니다. 선택할 자유가 있고, 그 선택에 따라 펼쳐지는 세계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도 바로 나임을 일깨워주셨던 엄마의 질문. “넌 어떻게 하고 싶어?” “네가 선택해봐. 어떤 것에 더 마음이 끌려?” 그리고 덧붙여지는 사랑스런 말.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해. 그런데 도저히 혼자 힘으로 안 되겠다 싶을 때, 알려줘. 엄마가 도와줄게.” 나의 모든 선택이 엄마의 마음에 들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엄마는 그건 중요하지 않고, 선택을 했으면 믿고 집중하는 것, 그게 중요하다 하셨지요. 마음속 깊은 곳의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들을 수 있기를, 그리고 ‘나’ 자신이 원하는 대로 꿋꿋이 삶을 꾸려가기를 바란 엄마의 마음. 사랑하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기란 정말 어려웠을 텐데 말이에요. 지금 엄마는 눈에 보이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바람이 되었지만 선택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두 가지 명제는 제 마음속 거대한 나무로 뿌리 깊이 심어져 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네가 엄마의 행복’이라던 그 목소리의 울림은 뜬금없이 절망의 구덩이에 빠질 때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살아나가게끔 하는 마르지 않는 샘입니다. 조이연 직장인

이제 장성한 남매를 키운 엄마로서 후회가 되는 게 있다면, 제 생각에 갇혀서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애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기보다는 늘 부족함을 지적하고 고치려 했지요. 만약에 국어 100점을 맞았다 하면, 잘했다 해주면 될 텐데, 그럼 수학은? 하면서 아이를 더 채찍질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잘하는 부분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었더라면 아이들이 자신이 가지고 태어난 긍정적인 부분들을 더 많이 발휘하고 살지 않았을까 싶어요. 오랫동안 유치원 교사를 하면서 느낀 건,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은 가정 형편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엄마와 관계 형성이 잘된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요즘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돈이 없어도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서로서로 엄마들이 재능 기부를 하는 모임도 있고, 공공 기관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교육 기회도 많지요. 아이는 돈이 아니라 관심이 키우는 거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엄마란 본인 스스로 행복한 엄마지요. 그러면 아이도 자연히 행복합니다. 권갑순 전 유치원 교사

돌려서 이쁘게 말해드릴까요, 아니면 직빵으로 정답만 말해드릴까요. 솔직하게 말할게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좋은 정보, 조언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찾아다니지 마세요. 남들이 하는 얘기 다~ 다른데 언제 모든 사람 의견 다 들어가며 애 키울 건데요. 난 이러고 싶은데 남들은 저러래요. 요게 맞는 거 같은데 어른들은 아니래요. 그럴 시간에 공부를 하세요. 육아 공부.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다이어리를 적어가며 본격적인 양육에 관한 공부를 하셔야죠. 돼지를 쳐도 돼지 사육에 관한 책을 적어도 서른 권은 보고 시작합니다. 인터넷 뒤지지 말고 친구들 친지들한테 묻고 다니지 말고 제대로 된 육아서 미친 듯이 읽으며 제대로 아이 키워 이 무시무시한 사회에 제 몫을 하는 인재로 내보내세요. 여름 산후 조리 잘하는 방법 따로 없어요. 애 열심히 젖 물리고 안아주고, 애 잘 때 같이 푹~자고 애 놀 때 같이 눈 맞추고 쫑알거려주면 엄마도 다시 건강한 원래의 몸으로 돌아옵니다. 조물주가 태초부터 그렇게 만들어놓았어요. 돈보다 중요한 건 사랑이죠. 당연히 배려 깊은 사랑, 존재 자체로 바라봐주고 품어주는 뜨거운 사랑. 돈 거의 필요 없어요. 없이 키워야 더 잘 크는 게 앱니다. 김선미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 저자

몇 년 전 이혼한 40대 직장인입니다. 결혼해 두 딸을 낳고 살았는데 배우자의 외도, 폭력, 무능력, 고부간의 갈등으로 이혼하게 되었지요. 현재 친정집에서 지내는데 모아놓은 돈은 없고 오히려 빚만 있는 상태입니다. 섬유과를 전공했으나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어머니의 병간호를 하느라 경력이 단절되어 서비스직을 전전하다 최근에 어느 빌딩의 주차 정산 일을 하고 있어요. 너무 불안하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움이 많은 제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면서 혼자 살아가야 될지 근심이 되네요. 독립을 간절히 하고 싶으나 능력은 안 되고 정말 우울하기만 하네요. 용기를 갖고 힘낼 수 있게 따뜻한 말 한마디 듣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아내의 뻔한 말투 원조를 찾습니다

백일성

17년 결혼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아내가 하는 말 중에 틀에 박힌 말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런 말투의 원조를 한번 찾아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만 해도 몇 가지 그런 말투가 나왔습니다.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하고 거실을 한가롭게 어슬렁거리는 제 곁으로 아내가 다가옵니다. 그리고 한마디 던집니다.

“나한테 뭐 할 말 없어?”

나한테 할 말 없어?…… 이 말…… 이 말 어떤 아줌마가 처음 한 건지? 그 집 남편은 아직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속 시원하게 털어놓고 참회와 갱생의 길을 걷고 있는지? 도대체 이 말을 들으면 어느 시점부터 생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지? 할 말 없다 그러면 정말 더 이상 안 물어 볼 건지?……

“할 말 없냐니까?” 재차 이어지는 아내의 질문에 17년 차의 유연함으로 대답했습니다. “음… 사랑해…” 썩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 사랑은 일단 좀 있다 하고 여기 좀 앉아봐.”

여기 잠깐 앉아봐…… 이 말…… 이 말 어떤 아줌마가 처음 했는지? 정말 잠깐 앉았다만 일어나도 되는지? TV 보면서 들어도 되는지? 소파에 기대어 조금 삐딱하게 누워서 들어도 되는 말인지? 물론 뻔하게 지난달 카드 명세서가 제 앞에 놓여졌습니다. 잠깐이란 아내의 말은 어디 갔는지 다리가 저려옵니다. 마침 반가운 인물이 현관에 들어섭니다. 수학 학원 테스트를 받고 늦게 들어온 고1 아들 녀석입니다. 아내의 관심이 돌아갑니다.

“야 너 지금 몇 시야? 꼴랑 수학 한 과목 테스트받는데 뭐 이리 오래 걸려? 너 어디 딴 데 들렀다 왔지?” 아들 녀석이 뭐라고 웅얼웅얼거립니다. 변성기 지난 지도 꽤 됐는데 요즘 아들 녀석만 들어오면 집안이 알타미라 동굴이 됩니다. 점점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습니다.


“뭐라는 거야? 너 이리 와서 엄마 눈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해봐.”

엄마 눈 보고 얘기해~~…… 이 말……이 말을 처음 한 엄마는 누군지? 아들 눈만 보면 정말 다 알 수 있는지? 그러다 눈 동그랗게 치켜뜬다고 패지는 않는지? 아들 녀석 어릴 때나 눈 내려깔면서 먹혔는지 몰라도 지금 고1 아들 녀석 한참 올려다보면서 고개는 아프지 않은지? 그리고 쟤는 왜 앉아서 얘기 안 하는지? 이 집 변변찮은 남자들의 훈계를 접고 잠깐 잠잠해지려는 찰나… 중2 딸아이가 장롱을 정리하다 말고 한마디 합니다.

“엄마 나 교복 조끼 사야 돼.” “뭔 조끼를 또 사?” “니트로 된 거 말고 단추로 된 게 유행이야. 그걸로 다시 사야 돼. 그리고 평소 입을 옷이 하나도 없다. 좀 사줘.”

아내가 한숨을 쉬며 한마디 합니다. “엄마 팔아서 사라, 가시나야.”

날 팔아라…… 이 말…… 이 말 처음 한 아줌마는 지금쯤 새우잡이 하고 계신지? 정말 팔아도 되는지? 팔면 얼마 받을 수 있는지? 옥션에다 내놔야 되는지 아님 벼룩시장에 내놔야 되는지? 전봇대에 전단지라도 붙여야 되는지……

이래저래 저녁 시간이 지나고 아내와 둘이 거실에서 TV를 보는데 주인공 남녀가 수줍은 키스를 합니다. 그 달달한 장면에 아내가 살며시 얼굴을 제 어깨에 기댑니다. 그리고 절 부릅니다. 아내를 잠깐 돌아봤습니다. 분명 아내와 눈이 마주치긴 했습니다. 그냥 뭐 그러고 다시 TV를 봤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술이나 한잔하고 들어와야 이쁜 마누라네 뭐네 찾고 그냥 맨정신에 좀 찾아봐라. 무슨 마누라 쳐다보는 눈빛이 여동생 쳐다보는 눈빛이냐?”

여동생 보는 눈길…… 이 말…… 이 말 누가 처음 했는지?…. 이 말은 제 아내가 처음 한 건지? 내가 여동생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여동생은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는 건지? 아내를 여동생 보듯이 보면 정말 안 되는 건지?…… 지나가는 아들 녀석에게 물었습니다.

“넌 여동생을 어떻게 보냐?”

마침 딸아이가 오빠 옆을 지나칩니다. 아들 녀석이 물끄러미 딸아이를 바라보더니,

“너……… 집에 있었냐?” 이런……….ㅎ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 최근 <땡큐, 패밀리>를 출간했습니다.

웰던프로젝트,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산수책을 만드는 사람들

취재 문진정

지구 반대편의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아닌 ‘산수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4년 전, 조동희씨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디자이너들의 모임 ‘웰던프로젝트’다. 그녀가 웰던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처음 벌인 일은 엽서를 팔아 아프리카에 식수 펌프를 설치하는 것이었다. ‘엽서를 팔아서 우물을 만든다고?’ 주변의 우려와 반신반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고 지냈던 디자이너들의 재능 기부를 받아 엽서, 텀블러, 티셔츠 등을 제작, 판매했고 1년 만에 콩고에는 3,000여 명의 기부자 이름이 빼곡히 적힌 식수 펌프가 설치되었다.

이후 취지에 공감한 예술가들 20여 명이 함께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해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해오다가 올해 새롭게 시작한 일이 바로 아프리카 ‘산수책 프로젝트’다.

우물을 설치하면서 아프리카 잠비아 아이들을 직접 만나게 된 조동희씨는 단순한 식량 원조보다는 지속적으로 경제 활동을 해나가면서 꿈을 이룰 수 있는 대안으로, 학교, 책 등 교육적인 지원을 생각했다. 다행히 지금은 아프리카의 감성을 반영한 산수책의 틀이 점차 갖춰지고 있다. 이들의 올해 목표는 산수책 500권을 출판하는 것. ‘아프리카는 어차피 안 돼’라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서 ‘지금 당장 우리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웰던프로젝트. 평범한 이들이 이뤄가는 희망 프로젝트이다.

웰던프로젝트는 2009년 자신들의 재능으로 아프리카에 깨끗한 물을 선물하자라는 목적으로 모인 디자이너들의 모임입니다. 2009년 시작된 이후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디자인 등의 재능을 활용하여 식수펌프를 위한 모금에 참여해 왔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아동 도서가 있다면 보내주세요. 아프리카 산수책에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와 후원을 기다립니다.

www.welldonep.com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미대를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가세가 기울게 되면서 미대 진학을 포기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혼자서 디자인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책과 배움의 소중함이 더 마음 깊이 다가왔던 것 같아요.

산수는 전 세계 아이들에게 공통으로 필요한 공부잖아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가더라도 일상에서 즐겁고 유용하게 배울 수 있는 산수책을 만들면 좋겠어요. 저희가 만드는 책이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는 더 큰 세상과 논리력을, 아프리카 이외의 국가 어린이들에게는 셈과 함께 아프리카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알 수 있는 도구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진 게 없어도 내가 가진 작은 재능과 관심, 혹은 클릭 한 번으로 누군가의 삶이 나아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관심과 사랑이 책을 받는 아이들에게도 전달되어, 아이들이 커서도 나누며 공존하는 즐거움을 알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참여해주시는 분들이 모두 함께 성장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윈윈 프로젝트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꿈을 찾아주신 최성욱 교수님

최성욱 교수님과의 첫 만남은 2008년 군대를 제대하고 대학교 1학년으로 복학했을 때다. 그분은 같은 학교와 학과를 졸업한 선배로, 사업가이자 IT컨설턴트로 일하던 중 후배들을 위한 좋은 뜻을 품고, 높은 연봉도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온 30대 후반의 젊은 교수였다.

당시 나는 아무런 꿈과 목표가 없었다. 무기력하고 그저 놀기만 좋아하고 공부와는 담 쌓고 지내던 철없는 대학생이었다. 수학, 영어 실력이 중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던 내가, 등 떠밀려 운 좋게 들어온 대학이었던지라, 빨리 졸업하고 장사나 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시간을 허무하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최성욱 교수님의 수업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책 위주가 아니라, 실생활과 연결하여 풍성하게 설명해주었고, 분명 어려운 전공 지식인데 교수님이 말하면 쉽게 이해가 되고 쏙쏙 들어왔다.

그러던 3학년 어느 날이었다. 교수님께서 나에게 기업 사례를 조사하는 팀 과제에 대한 발표를 시켰다. ‘잘하는 친구들도 많은데 왜 나 같은 불량 학생에게 발표를 시킬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열심히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막상 발표를 해보니 재밌고 신이 났다. 아는 게 아닌데도 술술 말이 나왔다. 발표가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렸고, 나는 엄청난 쾌감을 느꼈다. 무작정 교수님을 찾아가, ‘열심히 준비한 무언가를 남들 앞에서 전달하고 설득하는 행동’이 너무 재밌는데 이런 계통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교수님은 광고, 기술영업, 마케터, 미디어 관련 쪽의 일을 추천해주었다.

꿈을 갖기 시작한 이후 나의 대학 생활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F학점이 A+학점으로 바뀌었고, 이제 학사 경고 문서가 아닌 장학 문서가 돌아왔다.

교수님은 나에게 기본기에 얽매여서도 안 되지만 기본은 중요하다며 전공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것을 권했다. 나는 1년간 휴학하여, 다시 기초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교과서를 들고 영어, 수학을 시작했고, 전공 공부도 차근히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중간 중간 여러 공모전에도 응모했는데 좋은 성과를 거두는 경우가 많아졌다.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은 광고 기획자로, 소셜미디어 디렉터로, 최근 창업한 소셜마케팅 대행사의 대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무엇을 바라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서, 행복해서, 열심히 하다 보면, 훨씬 더 좋은 결과로 돌아온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너는 소양을 더 쌓아야 한다. 이제 인문학 책을 읽어보는 게 어떻겠니?”

너무 급하게 가려 하면 주변을 둘러보라 일러주고, 좀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할 수 있도록 일러주시는 등 필요한 순간마다 인생의 가이드가 되어주었던 교수님. 얼마 전, 오랜만에 교수님을 만났다. 교수님은 시집 한 권을 선물하며 말씀하셨다.

“외면적으로 겸손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내면적으로 겸손한 채 계속해서 배우고자 해라. 배움은 끝이 없다. 지금 그 길 좋다. 도형아, 이제 무소의 뿔처럼 돌진해라.”

처음이었다. 교수님이 새로운 것을 더 해보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너의 길을 가도 좋다고 인정해준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기뻤다. 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속칭 말하는 ‘아웃사이더’였던 나에게 과제 발표를 뜬금없이 시켰던 것을 보면, 어쩌면 교수님은 내가 어떤 성향의 학생이었는지, 어떤 계기를 줘야 할지를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나처럼 방황하는 후배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계실 것이다.

교수님, 교수님 덕분에 꿈을 찾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항상 하시던 말씀처럼, 수평선 너머로 노를 젓고 나아가,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김도형 28세. 소셜마케팅 대행사 광고쟁이 대표

www.admansocialblog.com

삼육대학교 경영정보학과 최성욱 교수님께는

‘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제자 김도형 올림’이라는 문구와 함께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감동을 준 사람, 고마운 그 사람의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그분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 형식의 글도 좋습니다.(edit@maum.org)

소개된 분께는 간단한 문구와 함께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새싹채소 올린 사과고추장 비빔밥

주말엔 간단하면서도 영양 듬뿍 들어간 메뉴로 엄마의 정성을 보여주세요. 포슬포슬 아작아작 씹히는 새싹채소와 달달한 사과의 맛이 일품이랍니다.

필수 재료(4인분)

새싹채소(브로콜리싹, 무싹, 알파파싹 50g), 파프리카(빨강 또는 주황색 1/2개), 현미보리밥(4공기)

사과고추장 소스 – 사과(1/2개), 설탕(1작은술), 물(2큰술), 고추장(3큰술), 참기름(1작은술)

만들기

1 껍질 벗겨 잘게 썬 사과에 사과고추장 소스 재료를 넣고 고루 섞어 사과 향이 배도록 2시간 이상 숙성시킵니다.

2 새싹채소는 깨끗하게 씻어 물기를 털고, 파프리카는 사방 1cm 크기로 썰어둡니다.

3 고슬고슬하게 지은 현미보리밥을 그릇에 담고 파프리카와 새싹채소를 올린 뒤 사과고추장 소스를 얹어 마무리합니다.

이보은 요리연구가 & 자료 제공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 이보은님은 20여 년간 건강 요리를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현재 쿡피아쿠킹스튜디오 대표이며 저서로 <행복한 아침밥상>(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외 다수가 있습니다.

 

잇브러시, 칫솔질이 제일 쉬웠어요

● 이름은?

잇브러시(itbrush). 칫솔헤드가 T자 모양으로 회전하는 칫솔이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치과 의사로서 환자분들께 올바른 양치법 교육을 많이 해왔다. 방법대로 칫솔질만 잘해도 아프지도 않고, 치료비도 적게 들 텐데 하는 생각이 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년 동안 각종 구강 청결 보조 기구를 사용하여 여러 차례 그 방법을 가르쳐드려도 환자분들은 물론이고 우리 가족들도 늘 충치가 생기고, 잇몸병이 재발해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에 오시는 분들도 여전했다. 결국 지금까지의 보조 기구들과 양치법 교육은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치과 질환 예방 교육이라는 것이 치과 의사 중심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환자들의 습관과 개개인의 상황은 고려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아예 다른 해결책을 찾은 것이 남녀노소 누구나 편하게 양치를 할 수 있는 칫솔을 만드는 것이었고 개발을 시작했다.

● 제품의 원리는?

우선 칫솔헤드가 T자형으로 회전이 되기 때문에 앞니를 자유롭게 상하로 칫솔질할 수 있으며 어금니와 치아 안쪽은 일자형으로 회전시켜 일반 칫솔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회전했을 때 칫솔헤드가 15도 꺾이는데, 이는 칫솔이 턱에 걸리지 않고, 적절한 각도로 편하게 닦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한국 성인의 30%가 앓고 있는 치경부 마모증을 예방해주며, 이를 닦을 때 어깨, 손목 관절의 무리를 최소화할 수 있다.

● 중점을 둔 부분은?

우선 칫솔의 크기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었다. T자형 칫솔 아이디어는 기존에 있었지만 크기가 커져 어금니 안쪽까지 닦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여러 종류의 칫솔을 만들기도 하고, 크기를 줄이고, 칫솔헤드에 각도를 주는 등 점점 아이디어를 더해갔다. 제품을 개발하는 6년 동안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여러 치과 의사들의 조언을 구했다.

● 하고 싶은 말은?

회전 칫솔을 사용하시는 환자분들이 “양치하기가 정말 쉽고, 예전에 닦던 것과 남다른 개운함을 느낀다”는 말씀을 해주실 때 보람을 많이 느낀다. 앞으로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더 보완해서 더 편하고 깨끗하게 닦을 수 있는 칫솔을 만들고 싶다. 특히 어르신, 어린아이, 장애인 등의 경우에는 양치를 할 수 있는 횟수도 적고, 올바른 방법으로 하기가 너무 힘이 든다. 또 치과 치료를 받는 것도 어렵다. 그런 분들을 위해, 또 누군가의 양치질을 도와주시는 분들을 위해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기 편리한 칫솔이 되었으면 좋겠다.

만든 사람 김만중 치과 의사, ㈜힌트 대표

구입 문의 www.yeshint.com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SNOWPIERCER

드디어 설국열차에 탑승했다.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홍대 서점에서 선 자리에서 다 보고 판권을 사서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던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430억 원이라는 엄청난 제작비의 글로벌 프로젝트이자 크리스 에반스, 존 허트, 틸다 스윈튼 등 해외 유명 배우들의 출연만으로도 화제를 불러왔다.

지구온난화로 인간은 CW-7을 살포, 그로 인해 신빙하기가 와서 모든 생물이 멸종하고, 지구를 순환하며 달리는 설국열차만이 인류가 살아갈 유일한 공간이란 설정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기차’는 바로 인류가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이고, 폐쇄된 공간이기 때문에 기차에 탑승한 모든 사람은 그 안에서 인위적인 생태계의 법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다. 비극은 바로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피의 전쟁과 같은 아비규환을 겪고 생존 본능 하나만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이 이제 문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기차’라는 공간 안에서만 살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안에서 벌어질 일은 눈으로 보지 않고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기차를 만든 윌포드는 기차 안에서의 인류 문명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되어 지배한다. 인간을 개체화시켜 기차 안의 인구, 식량 배급 등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말이다.

영화는 기차의 계급 질서 맨 아래에 속한 꼬리 칸 사람들의 혁명으로 출발한다. 인류 역사에서도 늘 있어왔던 피지배계급이 지배계급을 향한 저항 운동이 벌어지고 꼬리 칸의 리더 커티스(크리스 에반스 분)는 지배자가 있는 맨 앞 칸으로 한 칸씩 전진해가면서 기차 안의 평등과 자유를 찾고자 한다. 여기서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송강호 분)는 기차의 문을 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등장하고, 그의 딸 요나(고아성 분)는 닫힌 문 너머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아이로 나온다. 이들이 앞 칸으로 한 칸씩 전진해가면서, 칸칸의 자리에서 일하는 각각의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최후의 앞 칸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영화의 주제와 메시지 그리고 반전이 드러난다.

남궁민수가 열고 싶었던 문은 앞 칸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는 문이었던 것. 너무나 오래 닫혀 있어서 문이라고도 인식하지 못했던 밖으로 나가는 문을.

이 영화에서 문은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계급을 나누는 벽이고, 열차 밖과 열차 안이라는 소멸과 생존을 나누는 벽이며,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는 ‘희망’의 유일한 통로를 상징하는 것이다.

커티스는 앞으로만 나아가려 하지만, 남궁민수는 우리의 아이들을 진짜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으로 내보내고자 한다. 그렇게 억압받는 시스템 안에서도 본능적으로 자유와 평등을 찾고자 노력하는 것이 역사의 진리이자 인간이 추구할 궁극의 목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한발 더 나아가서 묻는다. 과연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

온 세상이 설원으로 뒤덮인 멸망한 지구에서 그래도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가려는 ‘인간 의지’를 가졌다. 궁극적으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개척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리고 과연 그 선택은 옳은가?라는 질문까지.

그래서 사실 관객에게 불친절하고, 불편한 영화이기도 하다. 설국열차가 그리는 디스토피아의 세상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봉준호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통찰은 돋보였다. 그는 ‘아이’를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열차에서 태어나 자라온 요나, 열차 안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을 통해 디스토피아의 세상에서도 인간은 꿈꿀 수 있다는 ‘희망’을 전한다. 그래서 난 이 영화 <설국열차>가 좋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 ‘문’ 너머의 희망, 더 나은 삶을 꿈꾸니까.

이상분

 

엄마와 함께한 90일간의 남미 여행

이 일기는 내가 열 살 때 세 달간 남미를 여행하며 적은 거다. 나는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학교를 가는 것보다, 어른이 될 때까지 여행을 가는 것이 세상에 대해 배우는 게 훨씬 많은 것 같다.  

– 오중빈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 중에서

페루의 와카치나라는 마을은 사막으로 둘러싸였는데 한가운데에 오아시스가 있다. 이 오아시스 때문에 와카치나가 유명해진 것이다. 우린 호텔에 짐을 내려놓고 버기카를 탔다. 버기카는 어떤 큰 지프 같은 것이다. 그림을 보면 얼마나 무섭고 재밌었는지 알 것이다. 롤러코스터 같았다. 오늘을 까먹지 않을 것이다.

마추픽추는 생각한 것이랑 조금 달랐다. 집도 어디 좀 초가집 같고 벽도 엄마가 말한 것같이 옆의 돌의 모양과 맞추려고 돌을 자른 티가 전혀 안 났다. 그래도 궁금한 게 있었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수백 미터 위에 있는 마추픽추에 엄청나게 무거운 돌과 물을 날랐을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 거기는 태양신의 신전, 해시계가 있었고 잉카 사람들은 퓨마를 존경해서 엄청 커다란 바위를 퓨마 모양으로 자른 것도 있었다.

볼리비아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다. 버스 파업 때문에 라파스에 오래 있게 되면서 생각해 본 것이다. 여기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물가도 싸서 살기에 되게 좋은 것 같다. 여기서 하루 세 끼 먹는 게 2,400원쯤 된다. 그러니까 한국에 살다 여기에 오면 엄청 부자가 된다. 아주 평화로운 곳 같다. 이 나라를 여행해서 좋다.

아침 8시에 일어나 세계에서 가장 큰 이구아수 폭포를 보러 떠났다. 오늘은 아르헨티나 쪽에서 폭포를 보기 때문에 먼저 아르헨티나로 간다. 중간에 나라를 건너간다고 도장도 찍었다. 작은 벽에 브라질 국기가 쭉 그려져 있었다. 계속 달리다 보니 브라질 국기가 아르헨티나 국기로 바꿔졌다. 우린 거기서 멈췄다. 그리고 난 그 국기 벽을 올라가 한 발은 브라질, 한 발은 아르헨티나에 섰다. 기분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다.

에콰도르 오타발로는 남미에서 제일 큰 시장이 있기로 유명하다. 엄마가 축구공을 사줬다! 시장은 정말 컸다. 정말 구경할 것도 먹을 것도 많았다. 길에서 부모를 돕는 아이들을 보며 대단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난 학교를 여행하느라고 안 가는데 걔네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난 20분만 공부해도 머리가 아픈데 세 살짜리 애도 엄마를 돕고 있었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나는 운이 좋아서 배울 수 있으니 잘 배워야겠다.

칠레에서 볼리비아로 국경을 넘고 4륜구동 지프로 갈아타서 사막을 달리기 시작했다. 라군(호수)에 잠깐 들렀는데 풍경이 아주 대단했다. 뒤에 산, 중간에 호수, 앞에 모래, 위에는 끝없는 새. 정말 대단했다. 아무리 달려도 질리지는 않고 놀라기만 했다. 산을 보면 내가 산이었던 것 같았고, 끝없는 새들을 보면 내가 나는 것 같았다. 인간이 볼 수 있는 것 중에서 제일 환상적인 것 같다. 잠을 자며 생각한 것은 이것뿐이다. 하지만 4,850미터!!!!를 올라가며 힘들었다. 그리고 4,200미터에서 자며 정말 힘들었다. 끝없는 악몽이 아주 괴로웠다. 다음 날 나는 아침을 못 먹고 힘들어했다. 엄마가 꾀병이라고 생각하는 게 속상했다.

드디어 우유니에 도착했다. 그 고생을 하고 힘들었는데 그것의 보답이 됐으면 좋겠다. 보답 맞았다. 정말 이것보다 더 멋진 것은 못 본 것 같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하얀 소금.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열 살이, 아니 어른,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최고다.

“새로운 느낌도 참 많았지만 다른 느낌도 많았다. 이런저런 느낌이 너무 많아서 다 표현할 수 없다. 금 7톤으로 코팅된 교회에 앉아 있을 때는 잠이 확 깨며 바로 옆에 번개가 친 것 같았다. 이구아수 폭포 옆에서는 전기가 물에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나한테 바이올린을 배우는 애들을 보며 자랑스러웠다. 나도 세상을 보고 기억으로 가져가지만 나도 세상에서 줄 수 있는 게 있어서 좋다.”

글&그림 오중빈 사진 오소희

여행 소년 오중빈군은 2001년에 태어났으며 네 살 때부터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녔습니다. 현재까지 제3세계 25개국을 여행했으며, 언젠가 혼자서 극지 탐험을 해보고 싶다는 오중빈의 꿈은 판타지와 SF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10살 여름 방학 때 떠난 90일간의 남미 여행에 대해 직접 쓰고 그린 오중빈군의 여행 일기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북하우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나일강가에

아프리카 우간다의 빅토리아 호수에서 발원하는 백나일강과 에티오피아의 타나 호수에서 발원하는 청나일강이 하나로 만나 흐르는 땅, 누비아사막의 땅, 수단Sudan. 나일강은 누비아사막을 굽이굽이 적시며 이집트와 지중해를 향해 흘러간다. 이런 막막한 누비아사막 곳곳에 씨 뿌리고 경작하고 노래하며 대를 이어온 사람들이 있다. 거대한 모래 폭풍인 하붑이 지나가고 나면 농토는 낙타 발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그동안의 수고는 물거품이 되지만, 농부들은 원망도 불평도 없이 논밭에 쌓인 모래를 거둬내고 다시 씨앗을 뿌린다.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는 듯이…. 사진 & 글 박노해

나 여기 살아 있다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모래 바람을 뚫고 살아남았다.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나를 지켜줄 것은 작은 흙담 하나. 그마저 하붑이 쓸어가 버렸어도 나는 이 자리에서 뿌리를 내려가며 끝내 푸른 잎을 휘날리리라.

나일강가의 저녁 기도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나일강에 붉은 석양이 내리면 수단 사람들은 저문 강에 얼굴을 씻고 네 번째 기도인 마그립을 올린다. 자신이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나일강처럼 나 또한 나의 길을 굽힘 없이 흘러가리라 다짐하면서. 모래에서 태어나 한 줌 모래로 돌아가는 인생을 신의 뜻대로 선하고 의롭게 살아가겠노라고.

엄마의 손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우리에겐 힘든 시간을 걸어온 정직한 두 발이 있단다. 우리에겐 어둠 속을 뚫고 나온 빛나는 두 눈이 있단다. 막막한 사막의 모래바람 속을 걸을지라도 아이야, 네 손을 꼭 잡은 엄마의 믿음의 손이 있단다.

노을녘에 종려나무를 심는 사람

Old Dongola, Nubian, Sudan, 2008.

누비아사막에 석양이 물들면 하루 일을 마치고 종려나무를 심는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치면 말라 죽고 다시 심으면 또 말라 죽어가도 수단 사람들은 날마다 모래 둑을 북돋고 나일강 물을 길어다 종려나무를 심어간다. 이름 없는 사막의 수행자처럼.

뜨거운 하붑이 지나가면

Karima, Nubian, Sudan, 2008.

거대한 모래 폭풍인 하붑이 지나가면 농부들은 논밭에 쌓인 모래를 거둬내고 말린 낙타 똥을 빻은 거름을 뿌린 뒤 나일강 물을 끌어와 씨앗을 뿌린다. 주어진 한계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분투하는 것이 자신의 할 일이라는 듯이.

박노해님은 1957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나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하며 ‘얼굴 없는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졌습니다.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를 설립했으며 2003년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면서 중동, 아프리카 등 세계 분쟁 지역을 돌아다니며 평화 활동을 이어왔습니다. 저서로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등이 있으며,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 <나일강가에>가 2013년 7월 12일에서 11월 13일까지 라 카페 갤러리(www.racafe.kr)에서 열립니다. (무료 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