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술 좀 마시고 폭력 좀 행사하셨다는 그녀. 큰 키에 긴 생머리, 시원한 미소, 훈훈한 외모에 영어 통역 봉사 활동까지 하고 있는 그녀는 레알 능력자였습니다. 1년 전만 해도 못 이길 정도로 술을 마시며 좀비같이 살았다는 그녀는 초면인 저 문기자에게 자신의 흑역사를 거침없이 털어놓을 만큼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마음수련을 하며 술에 매이는 것도, 우울증도 다 날려버리고 활력 가득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그녀와의 리얼 빼기 토크입니다.
술과의 첫 만남은 언제였나? 고2 수학여행 때. 고2 정도면 괜찮지 않나? (응?…;;) 애들이 마시니까 같이 먹었는데 그 후로 계속 먹고 싶었다. 해방된 느낌이었다. 그때는 술집에서 민증(주민등록증) 검사를 철저히 하지 않았다. 피부 탄력만 약간 달랐지, 고2 때 얼굴이랑 지금이랑 똑같았다. 일부러 꾸미지 않고 반바지에 반팔 티 입고 가서 마셨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약간 노안인 듯? 주량은 어느 정도? 주량은 모르고 그냥 끝까지 가는 거다. 그때는 학생이었으니까 일주일에 2번 정도만(?) 마셨다. 안주는 중요하지 않았다. 취하는 게 중요했다.
부모님한테 걸린 적은 없나? 안 취한 척, 이 닦고 향수 뿌리고 들어갔는데 아마 다 아셨을 거다. 내가 술을 마시면 폭력성이 드러난다. 하루는 추워서 깨어 보니까 학교 가는 길에 있는 무슨 아파트 계단에서 자고 있었다. 휴대폰도 빠개져 있고 신발은 없고 가방이랑 옷은 저~ 아래층에 있고. 할 수 없이 공중전화로 엄마한테 전화하고 맨발로 택시 타고 집에 갔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등교할 때마다 ‘언젠가 저기서 뛰어내려야겠다’ 했던 아파트였다. 그래서 취해서 죽을 생각으로 신발부터 벗어놓고 올라가다가 중간에 잠이 든 거다.
음… 생각보다 심각한데? 술 마시면 무조건 필름이 끊기나? 일단 처음엔 기분이 아주 좋아지다가 급격히 다운되고 필름이 끊긴다. 그 뒷이야기는 애들한테 듣는다. 화내고 친구들 때리고 물건 부수고 길거리에서 소리 지른단다.
거참, 겉은 참하게 보이는데, 그렇게 쌓인 게 많았나? 표출하지 못한 게 많았다. 중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는데 고등학교 가니 공부해도 성적은 안 오르고, 친구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거 같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공부 잘하던 애가 못하니까 엄마도 나를 많이 혼내고 때렸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술을 먹길 했나 담배를 피길 했나,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살아야 되나 어차피 혼날 거 내 인생을 놓자. 망가지자 한 거다.
부모님이 충격이 크셨겠다. 그렇다. 그때쯤 부모님 사이도 안 좋으셨고 첫째 동생이 선천적인 장애로 죽었다. 근데 나마저도 공부를 안 했으니 상실감이 크셨을 거다. 나도 나름 노력하는데 혼을 내시니까 ‘나는 왜 이것도 못하고 쓸모없고 멍청한가’ 생각했다. 애들하고 있을 때도 거짓말을 많이 했다. 공부 안 하는 척하려고 흰색 색연필로 줄을 치며 공부했다. 가족도 친구들도 진실된 관계가 없었다. 그러다 엄마도 집을 나가셨다. 그 후로는 남자 친구에게 많이 의존했다. 미저리처럼 1초에 한 번씩 어디야? 뭐해? 답장 안 해? 카톡 보내고. 그때 이미 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편두통이 심했는데 마음이 힘드니까 조금만 아파도 곧 죽을 것 같았다. 결국 남자 친구도 버티고 버티다가 도망가고. 그때부터는 매일 울고 밥도 안 먹어서 한 달 만에 10킬로가 빠졌다. 죽으려고 약을 먹기도 했었는데 배가 너무 아파서 못 죽겠더라. 할머니가 나를 간호하러 오셨는데 그때 생각이 번득 들었다.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다고. 근데 그게 잘 안됐다. 집에 틀어박혀서 페이스북에 힘든 타령을 만날 올렸는데 그걸 보고 고등학교 동창이 마음수련을 같이 해보자고 했다. 걔도 우울증이 많이 좋아졌다고. 그렇게 수련을 하게 됐다.
오~ 대단하다. 그럼 그 이후에는 술을 안 마시나? 마실 기회가 되면 지금도 마신다. 하지만 우울, 스트레스, 허무함, 이런 게 없으니까 기분 풀려고 일부러 찾아서 마시지 않는다. 힘든 마음은 그때그때 빼기를 하면 되니까 따로 술의 힘을 빌려 감정을 분출할 일이 없다. 한마디로 계속 해방이다. 마음수련 처음 시작했을 때 옆에서 나를 도와줬던 언니가 말하길 ‘마음수련을 하고 나면 밥 먹을 때는 밥만 먹고 걸어 다닐 때는 걸어만 다닐 수가 있다’고 했다. 그때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바로 ‘움직이는 좀비’였기 때문에. 길을 걸으면서도 내 생각에 갇혀 아는 사람이 코앞까지 와도 몰랐고, 밥 먹으면서도 수만 가지 생각을 했다. 근데 지금은 그게 바로 내 얘기가 됐다.
지금 생활은 어떤가? 무기력한 게 없어지고 진짜 활력이 들어차는 느낌이다. 또 예전에는 감정 조절 장애가 있어, 기분이 좋을 땐 엄청 좋다가 짜증을 한번 내면 며칠씩 갔다. 나중에는 내가 왜 이렇게 짜증을 내고 있지? 할 정도로. 근데 그런 게 없어졌다. 1년 전의 ‘걔’는 어떻게 지치지도 않고 하루 종일 짜증을 냈을까. 그게 더 신기할 정도다.
마지막으로 술로 세월을 보내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술 먹으면서 잠깐 느끼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거기에 쓰는 돈과 에너지, 체력을 모아서 마음을 좀 비워보라고 말하고 싶다. 술로 풀고 뭐고 할 게 하나도 없다. 합리적으로 따져 봐도 마음수련은 투자 대비 효과가 엄청나다. 스트레스로부터 해방이고 언제나 자유롭고, 남 의식하고 감출 것도 없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