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였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이후로 한 후배와 점차 좋아하는 감정이 들었다. 후배의 행동 하나하나가 내가 원하는 이상형과 비슷했다. 그 후배도 내게 호감이 있어서 사귀게 되었다. 우리는 닭살 커플로 유명했다. 어딜 가나 항상 붙어 다녔다. 하지만 얼마 후 번뇌가 시작됐다. 군 입대 때문이었다.
군 생활 하루하루가 정말 지옥 같았다. 한편으론 좀 더 잘해줄 걸 후회와 자책도 컸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자 여자 친구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니가 뭔데 날 차는 거야’라며 비난하고 미워했다. 한동안 만나지 않으니 원망하는 마음도 차츰 가라앉아 전역을 앞두고 다시 만났다. 잠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헤어져 있을 때 힘들었던 게 생각나 잘해주지를 못했고, 다시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입대 전에 잠시 한 적이 있던 마음수련 명상을 다시 찾았다.
여자 친구와 지냈던 기억들을 버려나갔다. 데이트하면서 좋았던 것부터 헤어지면서 가슴 아팠던 기억과 마음까지도. 그러자 헤어지고 나서 왜 그렇게 아파했는지 알게 되었다. 이미 헤어졌는데도, 내 마음엔 아직 그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잊어야지 하면서 잊지 못했고, 마음속에서 붙잡고 끌려다녔다.
만날 땐 사랑하고 있다고 믿었지만, 그것은 집착일 뿐이었다. 여자 친구의 본래 모습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이상형에 맞추려고만 했었다. 뚱뚱하면 살 빼라 했고, 머리 모양이 맘에 안 들면 바꾸라고 강요했었다. 정말 단 한 번도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없었다.
군대 가서 그렇게 싸운 것도, 기대고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힘든 군 생활로 여자 친구한테 많이 의지하고 싶었지만, 여자 친구 역시 나에게 기대려는 마음이 컸기 때문에 서로 부딪쳤다. 좋았던 순간과 힘들었던 사연들을 버리자 마음 한구석이 편해졌다. 내 마음이 편해지니 그 어떤 순간을 떠올려도 동요가 없었다. 그리고 다시 그 후배를 만났을 때 우리는 그지없이 편안한 사이가 되어 있었다.
명상하기 전에는 여자 친구의 미니홈피에 들어가거나, 전에 주고받았던 편지를 읽으려고 하면 두려움이 일었다. 다른 사람들과 웃으면서 사진 찍은 모습을 보면 나 없이도 잘 지낸다는 생각에 서운했고, 편지를 보면서도 그때는 이렇게 좋았는데…, 하면서 비교하고 힘들어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런 마음도 없이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신기했다.
연애를 하면 누구나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설레었던 첫 만남일 것이다. 전엔 그때의 기억이 너무 강한 나머지, 그때와 같지 않음을 비교했는데, 지금은 만날 때마다 처음 만나는 것처럼 즐겁다. 무언가를 해줘도 바라는 마음이 없고,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전에는 사랑이란 ‘나만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묻는다면 ‘내 자신처럼 상대를 아껴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다른 이들에게도 정성껏 대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이 집착인지, 아니면 참사랑인지 알고 싶다면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몸처럼 아끼는 애인에게 하는 것만큼 부모님 말씀에도 귀를 기울이는지, 이웃에게 성의를 다하는지 상대의 입장이 되는지…. 그래서 내 여자 친구는 나의 거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