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기다려주는 이들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나의 오늘을 있게 한 소중하고 감사한 이야기들, 그 기다림에 관하여….

25 내 생애 가장 길었던 한 시간 박병춘 51세. 교사. 대전시 서구 복수동 1993년 늦봄, 당시 고2 담임 교사였던 나는 대전에서 경기도 송탄까지 차를 몰고 질주를 해야 했다. 무려 보름이 넘게 결석 중인 가출 학생 네 명을 붙잡아오기 위해서였다. 해맑고 순수했던 태경이와 정규, 경준이. 그리고 다른 학교 친구인 규철이도 함께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등 가정불화,… Continue reading

고양이와 망아지

내 기억 속의 첫 유행가는 진송남의 히트송 ‘바보처럼 울었다’이다. 고작 아홉 살이었던 아이가 왜 그렇게 청승맞은 뽕짝을 좋아했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 뽕짝은 온 가족이 함께 즐기던 노래였다. 철물점을 하시던 아버지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얼큰하게 취해서 돌아오는 날이면, 당신은 우리 형제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노래자랑을 시켰다. 부끄럼 많은 열한 살 누나는 이불 속으로… Continue reading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으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머물게 된 나만의 이야기들, 그 사랑스러운 고백을 들어봅니다.

50 희망을 전하는 거짓말쟁이 사회복지사. "오늘따라 너무 예쁘시네요, 무슨 좋은 일 있으셨어요? 오늘만 같으면 아주 금방 나으시겠어요…." 복사꽃 꽃망울이 터질 듯 봄을 알리는 아침, 나는 오늘도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며 어르신 댁에 들어선다. 척추 골절로 인해서 아예 서지를 못하던 80세의 어르신을 살포시 안아드리며 뽀뽀를 해준다. 어르신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그 순간, 그곳은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서… Continue reading

거짓말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왔으나 진실이라는 이름으로 머물게 된 나만의 이야기들, 그 사랑스러운 고백을 들어봅니다.

51 거짓말의 특효약, 믿음 신문자 조선대학교 언어치료학부 교수, 신-언어임상연구소 대표 초등학교 때 일이다. 나는 너무 내성적이어서 선생님이 뭐라 말만 해도 눈물이 나와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더구나 발표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하루는 담임 선생님이 돌아가면서 한 명씩 노래를 부르라고 하셨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앞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마침 종이… Continue reading

꽃 이야기

꽃1 사월 한식 날 엄마하고 아버지 산소 벌초하는데 당신 허리처럼 굽은 호미로 잡초 매시던 우리 엄마 산소 언저리에 홀로 핀 노오란 풀꽃 언뜻 보시더니 그만 눈을 뺏겨 호미 끝으로 마른 흙 톡톡 파시기에 그 꽃 옮겨 가면 집 근처도 못 가 말라 죽을 거라고 낫으로 잡풀 베어 넘기던 내가 쓴소리 건넸더니 우리 엄마 깜짝 놀라… Continue reading

우리는 함께 해야 비로소 완전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65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있었을까 김영지 26세. 어린이집 교사. 서울시 서대문구 아현동 나에겐 언제나 떠올리면 마음이 훈훈해지는 친구가 한 명 있다. 고등학교 동창 지혜다. 지혜를 처음 본 건 학기 초 토론 시간이었다. 어찌나 말이 논리 정연한지 ‘쟤는 대체 누구야?’ 하며 궁금했다. 지혜와 친해진 건 기숙사에서였다. 그 당시 기숙사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사감 선생님이… Continue reading

우리는 함께 해야 비로소 완전해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66 아내야, 사랑하는 나의 아내야 정태하 55세. 구미상록학교 교장 나는 경북 김천시의 조그만 촌락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모두들 그러했듯이 먹고살기가 힘들던 때라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을 하고, 어린 나이에 신문 배달, 구두닦이, 생선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다 스물셋에 나보다 한 살 어린 아내를 운명적으로 만났다. 마치 여고생마냥 머리를 양 갈래로 늘어뜨리고 웃음… Continue reading

당신이 빛날 때

월요일 아침, 직원 회의를 마치고 우르르 교실로 향하던 중, 함께 걷던 오십 대 여선생님이 앞서 가던 이십 대 처녀 선생님에게 말했다. “하선생, 어쩜 그렇게 예쁘고 날씬하노?” 젊디젊은 이십 대 선생님은 뜻하지 않은 찬사에 뒤돌아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이에도 젊음이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오십 대 여선생님도 그런 빛나는 청춘의 세월이 있었을 터이다…. Continue reading

작은 한 걸음,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자기 힘으로 일어서리라 마음먹는 것, 그것이 시작입니다.

84 저에겐 꿈 같은 건 없을 줄 알았습니다 조연희 19세. 학생. 광주시 서구 화정4동 저희 집은 어렸을 때부터 찢어지게 가난했어요. 옆집에서 밥을 얻어먹고 잘 집이 없어서 오빠와 함께 교회에 가서 자기도 했습니다. ‘죽을 만큼 돈을 벌어서 오빠를 먹여 살릴 거야’라고 결심한 게 제가 여섯 살 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절실했던 돈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 하지만 그것은… Continue reading

밴댕이 선생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설이 있지요. 지당한 말씀입니다. 하루 여덟 시간씩 개구쟁이 등살에 속이 상할 대로 상해 나온 것이니 지나가던 견공이 피해 갈 법도 합니다. ‘초등학교 선생들은 쩨쩨하다’는 말 또한 일리가 있습니다. 온종일 철부지들 속에서 아옹다옹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아이 수준이 된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깜짝 놀랍니다. 우리 반 녀석들이 요즘 아주 드러내놓고 나더러… Continue re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