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균 32세. 비빔밥유랑단 단장
2010년, 서른 살이 되었을 때였다. 나는 직장 생활 2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뭔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지만, 더 이상 미룰 수도 없는 나이.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일일까? 너무 늦기 전에, 무언가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렸다.
같은 뜻을 공유한 다섯 명의 젊은이가 모였다. 그러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젊은이다. 우리의 것을 세계에 제대로 알려보면 어떨까? 고민하던 중 ‘비빔밥’이 떠올랐다.
흔히 “밥 한번 먹자”라는 이야기를 한다. 밥 먹는 자리는 곧 나눔의 자리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를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비빔밥은 최고의 기내식으로 꼽혀 머큐리상을 수상할 정도로, 세계적인 웰빙 트렌드에 맞는 우리 음식이었다. 음식이라는 것을 통해, 세계로 나가, 세계를 배우고 세계와 소통하고 싶었다.
우리는 비빔밥을 제대로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 전주비빔밥 명인 1호이신 김년임 선생님을 찾아갔다. 비빔밥에 대해 알면 알수록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이 더욱 생겼다. 비빔밥에는 시금치, 당근, 계란… 등 건강에 좋은 재료들이 다양하게 포함된다. 미국 뉴트리라이트 건강연구소의 샘 렌보그 박사는 비빔밥을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음식이라며 칭송했을 정도다. 또 비빔밥은 완벽한 컬러푸드 음식이다. ‘컬러푸드 이론’에 따르면, 균형 잡힌 영양을 섭취하려면 다양한 색상의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비빔밥은 그 요건을 만족한다. 게다가 비빔밥은 조화와 평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렇게 8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1년 4월 5일 우리는 드디어 중국 북경으로 출발했다. 아시아와 유럽, 북미와 남미의 주요 도시를 돌며 100번의 시식회를 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상세한 계획까지 세우기는 어려웠지만, 한 가지 원칙만은 정했다. 한 그릇, 한 그릇 정성껏 준비해서 외국인에게 보여주자는 것, 한 분이라도 비빔밥을 제대로 알고 느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빔밥유랑단입니다. 비빔밥이라는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전 세계를 돌며 무료 비빔밥 시식회를 열고 있습니다.”
중국 북경의 첫 행사. 비빔밥을 중국인들에게 드리며, 어떤 음식인지 설명했다. 그렇게 중국, 태국, 인도 등 아시아에서의 행사를 마치고 유럽으로 이동했다.
비빔밥의 인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너무 맛있어요” 하며 심지어 네 그릇까지 드시는 분도 있었다. “비빔밥 어디 가면 먹을 수 있냐?” “고추장 어디서 살 수 있냐”는 질문도 많았다. 그런 외국인들을 보면서, 기쁘고 보람도 많이 느꼈다.
물론 처음 이삼 개월은 보람보다 힘든 게 훨씬 많았다. 하지만 하나씩 이겨내고 나아가면서 탄력이 붙었다. 비빔밥을 완성하는 속도도 빨라지고, 세계인들과 소통하는 재미도 늘어났다. 그리고 우리만의 비빔밥 레시피도 점차 확정되었다.
처음엔 비빔밥의 맛이 나라마다 달라지는 것이 문제였다. 야채의 경우, 그 나라에서 직접 구입하는데, 나라마다 재료의 특성이 다 다르다 보니 맛도 다른 것이다. 구할 수 없는 재료도 있었고, 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비싼 것도 있었다. 또 고사리는 외국에서는 독초라고 여겨지는 것들이었다. 생전 처음 비빔밥을 보는 사람들은 그 안에 재료가 뭔지를 궁금해하는데, 모르는 게 있으면 먹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차츰 우리만의 레시피가 체계화되었다. 표고버섯 대신 현지 사람들에게 익숙하고 구하기 쉬운 송이버섯과 시금치, 계란 흰지단, 노란지단, 무나물, 애호박, 당근, 소고기. 이렇게 8가지였다. 이것은 전 세계 어디나 익숙한 재료들이었다. 외국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많아, 소고기를 넣지 않은 것도 준비했다. 고추장은 취향에 맞게 뿌려드리고, 매운 것을 못 드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간장레몬소스를 만들었다.
스페인, 프랑스, 체코, 이탈리아, 브라질…. 우리의 시식회는 계속 이어졌다. 단체나 기관을 섭외하여 하는 행사와 게릴라식 행사, 때로 홈파티를 한 적도 있었다. 홈파티는 소수지만, 깊이 있게 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한번은 L.A에서 뉴욕타임즈가 주최하는 ‘The Taste’ 푸드페스티벌에 참가를 했다. L.A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각자의 음식을 소개하고 맛도 보는 행사인데, 비빔밥이 제일 인기가 있어서 뿌듯했다. 그곳에서 비빔밥을 드신 분이 다음에 또 하자고 해서, 섭외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우리는 ‘비빔밥의 세계화 가능성’을 점점 확인해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은 “샐러드는 건강에는 좋지만 먹고 나면 먹은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비빔밥은 샐러드 같으면서도 식사로도 적당한 것 같아서 자주 먹고 싶다”는 말이었다.
우리는 12월 12일, 미국 뉴욕에서 99번째 행사를 하고, 드디어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12월 29일 서울 홍대에서, 마지막 100번째 행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255일, 23개 도시, 100회에 걸쳐 약 8,770인분의 비빔밥을 알린, 유랑단 1기의 활동은 끝났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나니, 무엇보다 우리가 내뱉은 말을 다 지킬 수 있었다는 게 뿌듯했다.
그러면서 도전은, 성공에 대한 자신감뿐 아니라, 진실로 우러나오는 마음, 나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다는 확신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이외의 다른 것은 포기하고 오직 그 일에 모든 걸 투자해야만 결과를 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회사를 과감히 그만두고, 비빔밥유랑단을 준비하면서 일년 내내 비빔밥만 생각했다. 비빔밥을 알리는 데 나의 모든 역량과 시간을 썼다. 어떻게 비빔밥을 잘 알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 생각만 하고 움직이니 자연스레 지혜가 생기고 길도 열렸다. 그렇게 몰입하여 진행했기에, 가기 전의 나와 갔다 온 후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는 나의 이야기를 진짜로 할 수 있다.
이제 다시 2기 유랑단을 모아 떠나려 한다. 2기는 더욱 발전된 방향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내가 느낀 비전과 희망, 도전 정신을 심어주고 싶다. 그것이 바로 비빔밥의 힘이니까.
우리는 비빔밥을 먹고 자란 대한민국의 젊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