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by "월간마음수련"

얼마 전 결혼한 후배 화니에게

백일성

조금 전에 새색시와 포장마차에서 대합탕에 소주 한잔 한다며 전화했었지. 그렇게 한참 깨 볶을 신혼인 너한테 결혼 17년 차 인생 선배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 하나 해줄게…. 그냥 며칠 전 있었던 내 하룻밤 사이의 평범한 일상이야. 언뜻 들으면 뭐가 슬퍼? 하겠지만, 너도 세월이 흐르고 잘 곱씹어 보면 너무 슬픈 이야기니까 들어둬.

우리 부부 며칠 전에 한바탕했어. 큰 싸움은 아니고 그냥 17년 차 부부들이 하는 그런 부부 싸움. 다음 날 아침이면 잊히는 싸움이 있고 며칠이 지나도록 쌓이는 싸움이 있는데 이번 부부 싸움은 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는데 아내에게는 조금 심각하게 다가왔나 봐. 그래서 아내가 한 3일 꽁하니 입을 닫고 있었어. 슬픔의 시작이지.

그러다 금요일 밤에 멍하니 혼자 TV를 보고 있다가 더는 안 되겠다 싶어 방문을 빼꼼 열고 누워 있는 아내에게 말을 걸었어. “형우 엄마~~ 어디 바람 쐬러 갈까?” 이 말에 아내가 반응을 보이며 부스스 일어나더라고. “뭐 어디 갈 데는 있어?” 3일 만에 아내가 입을 열었어. 참 슬픈 일이지.


이렇게 먼저 다가와 줄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을 아내의 마음을 알기에 내가 평소보다 조금 오버를 하고 말았어. “강릉 가서 물회나 한 그릇씩 먹고 올까?” 우리 집 안양인 거 알지? 그리고 시간이 새벽 한 시였거든. 난 당연히 아내가 거기까지 언제 가냐고 가까운 연안 부두나 서해안으로 가자고 할 줄 알았어. 근데, “그럴까? 오랜만에 동해 바람 좀 쐬고. 진짜 물회 먹고 싶다.” 일이 커진 거지 참, 슬픈 일이야.

주차장에서 강릉 주문진항을 찍었더니 소요 시간이 3시간 가까이 나오더구나. 아내는 토요일 쉬지만 난 출근하거든. 참 슬픈 일이지.

그리고 출발한 지 15분 만에 아내는 잠들었어. 난 나머지 2시간 훨씬 넘게 내비 아가씨랑 이야기 나눴어. 오랜 시간 말을 나눴더니 강릉 도착해서는 내비 아가씨한테 말 놓으라고 하고 싶더라고. 참 슬픈 일이지.

주문진항에서 딱 한 군데 그 시간에 문 연 횟집을 찾아서 아내가 좋아하는 물회 한 그릇씩을 하고 서둘러서 올라왔어. 나 출근해야 되니까. 우리 나이에 새벽에 갑작스러운 동해 바다 보러 가기가 생각보다 로맨틱하지는 않더구나. 이런 것도 너무 슬픈 일이야.

그런데 집으로 올라오는 길에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얘기를 들었어. 조금 열린 차창으로 들어오는 바다 냄새를 맡으며 아내가 얘기하더라. “자기야, 우리 이런 바닷가에서 살까? 자기는………… 배 타고.” 나더러 배 타래. 나이 마흔셋에 배를 타래. 나 결혼 생활 17년 동안 직장은 두어 차례 옮겼고 그냥 박봉에 월급쟁이지만 그래도 일주일 이상 놀아본 적 없어. 근데… 결국 배를 타라네…… 참 슬픈 일이지.

화니야~ 너도 지금 제수씨와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와 대합탕에 소주 한잔 하고 있지만, 언젠가 너도 꼼장어랑 대합 직접 잡아 오라며 배 타라고 할지 몰라.

새신랑 화니야~ 가끔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싶으면 슬픈 영화나 책이나 인간극장 같은 거 보지 말고, 주위에 결혼 생활 10년 넘게 한 직장 상사 한 분 잡고 소주 한잔 하자 그래 봐. 그리고 한마디 물어봐. “행복하시죠?” 그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얘기 들을 수 있을 거야.


마지막으로 화니야~~ 신혼인 너한테 이런 슬픈 얘기해서 미안하니까 선배가 한 가지 알려줄게. 너도 몇 년 후에 나같이 이런 사소한 일에도 슬픔을 느낄 때가 있을 거야. 그럴 때… 아내의 눈을 찬찬히 한번 봐! 아내도 참 슬픈 눈을 가지고 있단다. 자신이 슬픔을 느낄 때 배우자는 더 큰 슬픔을 품고 산다는 거 잊지 말고, 먼 훗날 결혼 생활에 슬픔이 다가올 때 거울 안의 너를 보지 말고 아내의 젖은 눈동자에 비춰진 너를 보렴.

참! 그리고 형 며칠 연락 안 되면…… 배 타러 간 줄 알아라~.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문화로놀이짱, 헌 가구를 새 가구로 재탄생시키는 사회적기업

취재 문진정

3개월이 멀다 하고 개업과 폐업, 리모델링을 하느라 엄청난 양의 가구와 폐목재들이 버려지고 있는 홍대 앞 거리. 이렇게 버려진 재료들을 이용해 새로운 가구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다. 바로 사회적기업 ‘문화로(路)놀이짱(場)’이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근처 허허벌판에 자리한 문화로놀이짱 공방은 폐목재와 가구들로 꽉 차 있다. 마포구, 양천구 등지에서 수거된 목재들은 이곳에서 잠시 해체돼 있다가 놀이짱 멤버들의 상상력을 통해 재활용 가구로 재탄생한다. 나의 생활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가구. 그래서 재활용 가구라고 했을 때 선뜻 사기가 망설여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화로놀이짱의 가구를 주문해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뭐든 다 받아주는 ‘할머니 품’처럼 따듯한 느낌의 가구라는 것! 이것이 바로 놀이짱 가구만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초창기에는 개인 가구 위주로 주문이 들어오다가 근래에는 서울시청, 지역아동센터, 마포아트센터 등 공공기관의 공간 전체를 디자인하는 작업이 늘었다고 한다. 2011년부터는 ‘명랑에너지발전소’라는 이름의 마을공방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은 누구나 공구를 빌려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꾸며놓았으며, 더 많은 사람들이 재활용 목공 워크숍을 통해 즐거운 일상을 가꿔나갈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과 강의도 진행하고 있다.

Do It Ourselves!

손이 기쁜 재활용 목공 워크숍  초보자 환영! 소정의 참가비를 내고 스탠드, 티테이블 등 작은 생활 가구를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는 워크숍이 수시로 열리고 있다. 자세한 일정은 문화로놀이짱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www.norizzang.org

해결사들의 수리병원

2010년 어딘가 부서졌지만 버리긴 아까운 추억의 가구들을 고쳐주는 수리병원을 만들었고, 2012년에는 가구는 물론 자전거, 칼, 시계, 구두 등 집안의 작은 물건들까지 보살피는 종합병원(^^)도 열었다. 올해 여름과 가을에도 종합병원은 계속될 예정이니 집안의 아픈 가구들을 데리고 나가보자. 자세한 일정은 홈페이지 참조.

문화로놀이짱 안연정 대표 이야기 2004년 홍대 근처에서 문화 예술 기획을 하면서 예술가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공공 작업장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이름도 길 ‘로(路)’ 자와 마당 ‘장(場)’ 자를 써서 문화로(路)놀이짱(場)으로 지었습니다. 그곳에서 처음 가구라는 걸 만들었는데 그것이 저에겐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무언가에 몰입하는 기쁨, 성취감도 있었고, 만드는 과정에서 가구가 움직이고 서는 이치를 깨달아가는 재미도 있었죠.

목공 작업을 하며 흠집 나고 버려진 가구들이 인간의 생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나무에 더 애정이 가더라고요. 나무를 다듬고 만지다 보면 꼭 땅에 뿌리를 박고 있지 않아도 수축하고 팽창하면서 움직이는 게 보여요. 그걸 보면서 주변의 사물 모든 것에 다 생명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먹을거리들과 개인의 삶에 대한 생각이 전반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런 감성을 공유하고 싶어 마을 공동 작업장 ‘명랑에너지발전소’를 만들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이 ‘손을 쓰는’ 기쁨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일종의 놀이터라고 할 수 있어요. 무언가에 온 마음과 시간을 쏟으면서 생활에 필요한 중간 기술을 터득해나가는 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팍팍한 일상에서도 조금 천천히 갈 수 있는 낭만, 무슨 일이든 정성을 쏟고 싶은 명랑한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을까요.

시아버지께 배우는 느림의 미학

늘 신경이 쓰이던 돌무더기가 있었다. 보고 다니면서 눈에 영 거슬렸다. ‘이걸 어떻게 정리 좀 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당연히 포크레인 같은 기계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돈을 들여가며 포크레인을 부르기엔 그리 아쉬운 게 아니어서 그냥 두고 보기만 했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답답해하면서…. 그런데 시아버지께서 그곳을 예쁜 텃밭으로 바꿔놓으셨다.

시아버지는 참 느린 분이다. 그 느림 때문에 종종 식구들의 눈총을 받기도 하신다. 하지만 어느 식구보다도 일을 잘하신다. 아니 특별히 일을 잘하신다기보단 다른 식구들이 모두 “안 돼~ 그건 할 수 없어~” 할 때 “왜 안 돼? 이거 할 수 있어!” 하시며 아주 천천히 묵묵히 그 일을 하신다. 처음엔 전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어, 변하고 있네. 할 수 있는 거였나?’ 했다가 결국엔 ‘아버지가 이렇게 바꿔놨네!’ 하며 감탄하곤 했다. 그런 일이 늘어나면서 ‘아버지는 일을 참 잘하시는 분이야!’ 하는 명제가 생겨났지 싶다.

밭에 있던 돌무더기도 그렇다. 나는 평소에도 남편에게 그 돌무더기를 치웠으면 한다는 말을 내비쳤고 남편은 어떻게 그것 때문에 포크레인을 부르느냐고 했었다. 한마디로 우리가 직접 그걸 치울 엄두는 아예 내지 못한 것이다.

한데, 시아버지는 그냥 아무 말씀도 없이 장갑을 끼더니 돌들을 하나하나 치우기 시작하셨다. 아무런 말씀도 없이, 아무런 표도 나지 않게. 그냥 돌멩이 하나 치우시는 줄 알았지, 그 커다란 돌무더기를 다 치우시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아버지의 생각을 미리 알았더라면 안 되는 일이라고 분명히 말렸을 터이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흐른 후 가본 우리는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 쓰레기와 나무들, 돌들이 따로따로, 또 차곡차곡 쌓여 있었고 치워진 부분에는 보들보들한 땅이 드러나 있었다. 시아버지는 땅이 참 기름져서 여기다 모종을 심으면 좋겠다 하셨다. 그렇게 며칠 동안을 온종일 거기에 매달려 계시더니 처음의 그 돌무더기는 싹 사라지고 없어진 것이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남편과 나는 감탄에 감탄, 또 감탄!

이번에 돌무더기를 치우고 텃밭 하나를 만드시는 과정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시아버지가 일을 잘하시는 비결은 느림이었다. 힘든 일을 헉헉거리며 용을 쓰며 하면 쉽게 지친다. 지치면 포기하기도 쉽다. 하지만 아버지는 체력을 한순간에 몰아 쓰지 않고 오래 쓸 것을 염두에 두고 조금씩 조금씩 나누어 쓰시는 것 같다. 아주 천천히 즐기시는 듯….

일을 하기에 앞서 나는 성급하게도 성과를 미리 그려본다. ‘언제쯤’ 일을 마칠 수 있을지 생각하고 그 ‘언제’가 쉽게 그려지지 않을 때는 덜컥 겁을 내며 ‘못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아버지는 ‘언제’에 전혀 개의치 않으셨다.

‘하다 보면 다 되는 것이여~’ 하면서.

즉 내가 집중하는 것이 ‘언제’였다면, 아버지가 집중하는 것은 ‘하다 보면’이었다. ‘언제’에 집중한 내가 빨리 해내야 한다는 두려움에 떨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면, ‘하다 보면’에 집중한 아버지는 느리지만 결국 다 해내신다. 결국 과정에 집중한 사람이, 묵묵히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성과도 만들어내는구나 싶다.

며칠 동안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지켜봤다. 움직임이 있는 듯 없는 듯, 그 자리에 계신 듯 안 계신 듯,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 모습에서 나는 장 지오노의 작품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부피에를, 마오우쑤 사막에 숲을 만든 인위쩐을 본다. 시아버지 같은 분이 바로 부피에가 될 수 있고, 인위쩐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아버지를 닮고 싶다.

최복인 43세.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최복인님의 시아버지 허영회님께는

‘참 멋진 울 아버지께 샛며느리(사이 며느리. 제주도 말로 ‘둘째며느리’라는 뜻)가 보냅니다’

라는 문구와 함께 난 화분을 보내드렸습니다.

나에게 감동을 준 사람, 특별한 사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있으신가요?

그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edit@maum.org) 독자님의 마음을 대신 전해드립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

현미밥으로 만든 달걀완자전

5대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는 달걀로 아이의 키를 쑥쑥 크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바로 현미밥과 함께 먹는 것이죠. 간단한 메뉴로도 튼튼한 아이로 키울 수 있습니다.

재료(2인분) 달걀(2개), 당근(1/6개), 애호박(1/6개), 호두(5알), 현미(1공기), 양념 소금(약간)

1 달걀은 소금(약간)을 넣어 푼 뒤 체에 내려 알끈을 제거합니다.

2 당근과 애호박은 잘게 다지고, 호두는 미지근한 물에 헹궈 물기를 닦아 굵게 다집니다.

3 체에 내린 달걀에 현미밥, 당근, 애호박, 호두를 넣어 잘 섞어줍니다.

4 달군 팬에 식용유(1큰술)를 두르고 달걀밥을 한 숟가락씩 동그란 모양으로 올려

앞뒤로 노릇하게 부쳐 마무리합니다.

이보은 요리연구가 & 자료 제공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요리연구가 겸 푸드스타일리스트 이보은님은 20여 년간 건강 요리를 알리는 데 힘써왔습니다. 현재 쿡피아쿠킹스튜디오 대표이며 저서로 <행복한 아침밥상>(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외 다수가 있습니다.

장애인용 레저 자전거 휠사이클

● 이름은?

휠사이클(Wheel+Cycle). 휠체어Wheelchair와 자전거Bicycle의 합성어로 휠체어 형태의 장애인용 레저 자전거다.

● 어떻게 이런 생각을?

친구들과 서울국제발명전시회(SIIF 2013)의 출전을 꿈꾸며 졸업 작품을 준비하던 중 장애인의 비만율이 45% 이상이라는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외면, 운동 시설의 부족으로 장애인들이 고통받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문제점도 해결하고, 그동안 배운 전공 지식을 살려 일종의 재능 기부를 하자는 취지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중점을 둔 부분은?

기존에도 장애인용 자전거는 있었지만 최하 138만 원에서 최고 5,000만 원 선인데, 장애인의 평균 월급은 142만 원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런 고가의 자전거는 현실적이지 못했다. 사회적으로도 ‘장애인이 무슨 운동이냐’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았다. 때문에 레저를 즐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가격도 낮추어 현실적으로 매력 있는 제품을 만들고자 하였다.

● 제품의 특징은?

재활 기구로 널리 이용되는 로잉 머신(노 젓는 방식의 운동 기구)의 원리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통한 레저 스포츠를 즐기는 동시에 재활 치료의 용도로도 손색없도록 했다. 로잉 머신은 상체 근육의 85%를 사용할 수 있어 하지 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효과적인 운동 기구다. 구동 레버(그림에서 16번)를 몸의 앞으로 밀면 12번 레버를 통해 직선운동이 회전운동으로 바뀌고, 체인을 통하여 앞바퀴에 구동력이 전달된다. 구동 레버를 좌우로 밀면 방향이 바뀐다. 등받이(24번)는 구속 장치를 해제하면 23번 시트와 수평이 되어 남의 도움 없이 휠체어에서 바로 미끄러지듯 탑승할 수 있다.

● 어려웠던 점은?

장애인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장애인분들의 삶을 너무나 몰랐던 것 같다. 문을 통과하기 위한 휠체어의 폭, 일부 장애인분들은 자신이 타고 있는 휠체어에서 다른 기구로 옮겨 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등 생각해야 할 사안이 너무 많았다. 휠체어를 사용하시는 교수님께 조언을 듣는 등 장애인분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했다.

● 하고 싶은 말은?

현재 동국대학교와 연계하여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처음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의 마음처럼 수익을 우선하지 않으며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 변화와 동기 부여를 통한 새로운 문화 창출의 시발점이 되고 싶다. 우리의 작지만 무모한 도전이 물결을 흔드는 작은 물방울이 되었으면 하고 장애인 레저 산업 육성 및 인식 변화라는 긍정적인 사회적 현상이 되었으면 한다.

만든 사람 윤정원, 원건희, 이경민, 이승제, 고으뜸

동국대학교 동아리 ‘브레인스토밍’ 2013서울국제발명전 은상

KBS-2TV 인간의 조건

시험 방송 프로그램으로 등장한 <인간의 조건>이 내건 첫 번째 미션은 휴대폰, TV, 컴퓨터 없이 일주일 살기였다. 단 한시도 문명의 이기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던 여섯 남자들은 혹독한 금단 증상을 겪으며 ‘인간다운 삶’으로 되돌아가는 문을 열고 들어섰다.

이렇듯 <인간의 조건>이 내건 첫 번째 미션은 이 프로그램이 지향하는 바를, 아주 명쾌하게 증명해냈다. 찌든 문명의 때를 벗어가면서 조금씩 잊었던 아날로그의 삶을 되찾아가는 여섯 남자의 일주일간의 체험은 그 자체로 보는 사람들에게 ‘힐링’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이제 두 번째 미션, ‘쓰레기 없이 일주일 살기’가 완료되었다. 첫 번째 미션이 인간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과제였다면, 두 번째 미션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삶의 조건 들여다보기였다.

경쟁적으로 쓰레기 줄이기에 돌입한 여섯 남자들은 처음엔 가장 많이 쓰레기를 배출한 사람에 대한 벌칙으로 오밤중에 마당에 세워놓고 찬물 한 바가지 붓는 식의 여느 오락 프로그램에서 늘 하던 식의 가학성 벌을 주었다. 하지만 차츰 ‘쓰레기를 줄여야 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퍼져가면서 거리에 나가 캠페인 벌이기, 쓰레기 처리 현장 방문하기 등의 ‘논리적 인과 관계’를 가진 벌칙으로 자연스레 변화되었다.

또한 자연스레 쓰레기를 줄이자는 캠페인을 자발적으로 하고, 쓰레기를 줄이고자 마지못해 쓰기 시작했던 ‘텀블러’를 나 하나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라는 ‘확산’을 낳았다.

그리고 꼼수이건 잔머리이건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각양각색의 방법들이 <인간의 조건>을 통해 소개되었다. 물론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일주일 동안 눈에 띄게 줄어든 여섯 남자들의 쓰레기 배출량이었다. 주체하지 못하던 쓰레기를 이젠 ‘0’ 만들기 미션에 도전할 만큼 여섯 남자의 쓰레기 배출은 놀라보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건 한시적인 미션일 뿐이다. 미션을 마치고 발표한 소감에서 말했듯이 다시 돌아간 일상에서는 경쟁적으로 쓰레기를 줄이려고 했던 그 시간처럼 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쓰레기 줄이기’라는 과제가 이제는 그들 삶의 일부분으로 둔중하게 자리 잡았다는 것을 여섯 남자 모두가 공감하게 된 것이 가장 큰 실질적 결과인 것이다. 즉, 이제부터가 ‘쓰레기 없이 사는 삶’의 진짜 시작이 된 것이다.

그리고 여섯 남자들의 일주일을 보고 배운 시청자들도 먹을 것을 남기는 데 ‘저어하고’, 재활용의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옥죄어 오고 있는 우리 곁의 ‘쓰레기’에 대해 불편해할 것이다. 김준현의 말처럼, 내 집 안에만 없으면 되는 줄 알았던 쓰레기의 ‘실존’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리고 쓰레기 없이 살기가 ‘우리가 함께’ 해나가야 할 과제라는 인식이 자연스레 심어졌다.

그저 매 주말 ‘쓰레기를 부둥켜안고’ 쩔쩔 매는 일상을 들여다보았을 뿐인데, 여섯 남자가 이뤄낸 일주일의 고군분투는, 김준호 회사나 개그콘서트 회의실의 텀블러 사용처럼, 어쩌면 우리도 노력하면 할 수 있는, 해야 할 무엇에 대한 과제를 안겨주었다.

이정희 & 사진 제공 KBS

천장 없는 미술관, 벨기에

글&사진 이용한 <시인, 여행가>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벨기에의 속담이다.

벨지안들은 아주 심각한 사건에 처했을 때조차 고함을 지르거나 화내기보다는 농담이나 은근한 독설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상황을 비켜나간다. 설령 그 농담이 썰렁한 것일지라도 그들은 기꺼이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긴장과 짜증, 기대와 설렘이 혼합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별것 아닌 것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공연히 사람을 의심하고 주변을 의식하게 된다. 표정은 굳어지고 행동은 부자연스러워진다. 그럴 땐 이렇게 중얼거려 보는 거다. “웃지 않으면 울게 된다.” 억지로 웃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는 것보다는 웃는 게 나으니까.

여자들만 살던 ‘여자들만의 마을’이 있다. 비헤인호프Begijnhof. 벨기에 지역에 남아 있는 비헤인호프는 헨트를 비롯해 브뤼헤와 안트베르펜, 리르, 디스트 등 12곳에서 볼 수 있는데, 모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비헤인호프는 일종의 수도원 보호소로서, 주로 과부(전사한 군인의 부녀자들), 보호자가 없거나 순결을 맹세한 소녀들, 수녀들이 살던 마을을 가리킨다.

헨트 시가지 서북쪽에 위치한 비헤인호프는 사방이 성과 같은 벽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벨기에에서도 비헤인호프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곳으로 손꼽힌다.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고풍스러운 중세의 집들이 성당과 수도원 안뜰을 호위하듯 둥그렇게 에둘러 있다.

비헤인호프가 일반인에게 조금씩 개방되기 시작한 것은 2차 대전 이후인데, 지금은 많은 일반인도 아예 이곳에 들어와 살고 있다. 이곳의 집값은 헨트에서도 가장 비싸기로 유명하다. 당연히 이제는 비헤인호프가 헨트에서 가장 부자들만 사는 곳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향후 99년 동안만 사유 재산이 인정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99년 후에는 다시 국가에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 브뤼헤 종탑에서 바라본 중세도시의 풍경.

▼ 헨트에 있는 여자들만의 마을, 비헤인호프.

이른 아침, 마르크트 광장의 종탑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1년을 상징하는 366계단의 끝자락에 매달린 47개의 종이 댕댕 듣기 좋은 소리를 낸다. 브뤼헤 종탑의 종루는 아름다운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며, 중세 도시의 그윽한 향기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둥그렇게 수로가 감싸고 있는 브뤼헤 도심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세로로 세워놓은 달걀처럼 생겼는데, 그 노른자위에 마르크트 광장과 종탑이 자리해 있다.

종루에 올라 브뤼헤 도심을 내려다보면 북서쪽으로 어스름하게 풍차의 언덕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살바토르 성당과 비헤인호프가, 서북쪽으로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풍스러운 중세 건축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47개의 종을 거느린 브뤼헤의 종탑(13~15세기 건축)은 벨기에의 다른 종탑 29개와 함께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높이는 88m, 종의 무게를 다 합치면 무려 27t에 이른다. 사실상 브뤼헤에 와서 종탑을 오르지 않고는 브뤼헤를 보았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브뤼헤를 가리켜 ‘천장 없는 미술관’이라고 부른다. 또 어떤 사람은 브뤼헤를 일러 ‘서유럽의 베네치아’라고 한다. 고풍스러운 도시와 수로가 제대로 어울린 브뤼헤에게 이 말은 찬사가 아니라 당연한 수식어다.

이용한님은 1968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나 1995년 <실천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습니다. 길에서 만난 순수한 풍경과 사람, 고양이를 담아온 사진가이기도 한 님은 그동안 시집 <안녕, 후두둑 씨>, 문화기행서 <사라져가는 오지마을을 찾아서> <옛집 기행> 고양이 시리즈 <명랑하라 고양이> 등을 펴냈으며 영화 <고양이의 춤>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여행 에세이로는 <티베트 차마고도를 따라가다> <잠시만 어깨를 빌려줘> 등 다수가 있습니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랴, 야생화

왜개연꽃
주로 여름에 시골 작은 냇가나 연못에서 피어난다. 햇살 아래 반짝반짝 빛나는 수면 위의 꽃 무리들이 마치 노란 나비가 날아오르는 듯하다.

사진 & 글 이남희

수생식물은 어려운 조건에서 찍는 것 중 하나다. 허리까지 차는 물속에 들어가 몇 시간을 작은 물결조차 일렁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기다려야 한다. 그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 비로소 만나는 꽃들의 미소는 가히 환상적이다.

▲▲ 으름
넝쿨식물로 가을이면 바나나 모양의 갈색으로 된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고 해서 코리안 바나나라고 불린다.

▲ 좀바늘사초
3~4월 눈이 녹을 때면 꽃대가 올라오는 사초과 식물로, 산자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언 땅이 대수랴. 눈 덮인 대지가 문제랴. 물 위에서도, 진흙 속에서도, 돌산의 바위를 뚫고도 피어나는 것이 꽃이다. 꽃씨가 떨어진 그곳이 ‘바로 내 자리로구나’ 할 뿐, 자리를 탓하지도 주변을 원망하지도 않는다. “어디에 핀들 꽃이 아니겠소” 하며 빛나는 미소 머금을 뿐이다.

▲ 한계령풀
춘설을 맞으며 4월 봄날에 꽃을 피운다. 북방계 식물인데 한계령까지 내려와서 핀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 매서운 추위에도 고개를 떨구며 피어내는 자연의 생명력이 경이롭다.

▲ 변산바람꽃
서해의 작은 섬 풍도에서 핀다고 해서 흔히 풍도바람꽃이라고도 불린다.

꽃은 기다림이다. 이른 봄, 피어나기 위해 매서운 추위를 감내한다. 하지만 요란함도 서두름도 없다. 스스로 예쁘다고 자만하지도 않는다. 언 땅을 뚫고, 비바람에 맞서면서도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피어나는 한 송이 꽃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눈길 주는 이 하나 없어도 꽃은 핀다. 어느 자리에서도….

▼ 동강할미꽃
강원도 동강, 정선 일부 지역에서만 피는 꽃으로, 석회암 지대의 바위 겉에서 잘 자란다.

야생화 보호를 위해 구체적인 장소는 밝히지 않습니다. www.heephoto.kr

어느 날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애들아, 선생님, 동생들, 사정이 있어서 휴대폰을 이제 안 쓸 거야!!! 헤어지려니까 눈물이 나오네 ㅠㅠㅠㅠ  이제 문자는 못 하지만 연락처는 삭제하지 마라죠. 나도 전화번호 다 적어 노을 테니까!! 답은 안 해죠도 되…. 이제….ㅠ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내게 저장되지 않는 번호였다. 우리 반 아이 같은데 대체 무슨 상황일까. 나는 갑자기 당황했다. 답을 보내려 해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손만 떨렸다. 바보같이 안절부절못하다가 ‘아참! 통화!’ 하고 정신을 차렸다. 아이는 정말로 울고 있었다.

“선생님이다. 왜 그래?” “흑흑흑….” “왜 울어? 무슨 일인데?” “흑흑흑….”

전화 속의 우는 목소리는 나이도 성별도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몰라서 미안하다며 네가 누구냐고 물었다.

“흑흑흑… 동수예요.”

아! 동수. 이태 전 학교의 제자이다. 야단을 맞아도 꿀밤을 맞아도 하회탈 웃음으로 넘기는 밝고 명랑한 아이였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지금 꺼이꺼이 운다. 일단 슬픈 아이가 전화를 끊지 않도록 자꾸 말을 시켰다.

“키 크고 잘생긴 동수?” “흑흑… 예.” “요새도 축구 잘하나? 엄마 아빠 잘 계시고?” “흑… 예.” “이제 중학교 가지? 어느 학교에 배정됐냐?” “대양중학교요. 흑.”

아이는 울면서도 묻는 말에 꼬박꼬박 답해 주었고 나도 말을 걸면서 천천히 안정을 찾았다. 휴대폰 때문이었다. 아이는 그것 때문에 아버지에게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래서 제 방에 들어와서 마지막 문자를 띄운 것이다. 나는 얼마나 속상하느냐, 원래 아빠들은 그렇게 버럭 하지 않느냐고 토닥거렸다. 하지만 내가 어찌 그 여린 마음까지 온전하게 느낄 수 있을까.

위로가 길어지면 나도 모르게 노파심으로 중언부언할까 싶어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내 불안해서 문자를 보냈다.

‘동수야, 소나기 같은 슬픔은 금방 지나간단다. 속 풀릴 때까지 실컷 울고 너답게 씩씩하게 일어서기 바란다.’

내가 그날 잔뜩 새가슴이 되어 아이를 달래야 했던 이유가 있다. 바로 며칠 전, 휴대폰 문제로 부모와 갈등을 겪던 옆 반 아이가 불현듯 사라져버린 일이 생겨서이다. 골마루 저쪽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키가 커서 ‘너는 진짜 국제적인 모델감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던 아이.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지만 늘 말수가 적고 쑥스러운 듯이 인사를 하던 아이. 나는 그 아이가 없는 옆 교실 앞을 지날 때마다 떨려오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후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천사들은 그 빛나는 미소로 우리를 쉬게 하고 그 고운 몸짓으로 우리를 위로하고 그 맑고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를 경이롭게 한다. 하지만 가끔 어떤 천사는 아주 바쁜 하늘의 부름 때문에 미처 작별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기도 한다. 천사가 너무 바쁘지 않게 오랫동안 함께 있을 수 있게 어른인 내가 뭔가 해야 한다.

최형식 & 일러스트 유기훈

사진 인생 50년, 인간에 대한 사랑을 말하다

글 & 사진 최민식

출처 <휴먼 선집>(눈빛)

다큐멘터리 사진가 최민식 선생님을 직접 뵌 것은 지난여름입니다. ‘소년시대’라는 주제로 선생님의 사진을 담게 되면서였지요. 처절하게 가난했던 이웃들의 삶을 담아 오신 분이니, 매사 엄하고 진지한 분일 거란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마치 옆집 할아버지처럼 너무나 따듯하게, 유머러스하게 조근조근 말씀해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너무 남루하고 처절해서 때론 외면하고 싶었던 가난한 이들의 삶…. 하지만 선생의 카메라는 50여 년간 그들 곁에 머물렀습니다. 그것은 부디 행복해지길 바라는 선생의 간절한 기도였고,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기에 선생의 사진은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해줍니다.

2월 12일 작고하신 사진가 최민식 선생을 추모하며, 선생님의 글과 사진을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내가 사진에 눈뜨게 된 것은 내 나이 28세이던 1955년, 미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스타이켄(Edward Steichen, 1879-1973)의 사진집 『인간가족(The Family of Man)』을 접하면서부터다. 그때 받았던 감동은 지금 다시 되새겨 봐도 너무 생생하다. 사진가에 의해 포착된 삶의 순간이, 사진의 유한성을 뛰어넘어 훨씬 많은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이후 유진 스미스(Eugene Smith, 1918-1978)의 사진을 보고 나는 또 한 번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무엇보다 휴머니즘으로 일관해 온 작가 정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나도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깊은 울림을 주는 그런 사진을 찍자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 길로 삶의 터전이었던 부산 곳곳을 누비며 서민의 일상을 찍기 시작했다.

나의 사진은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의 험난한 체험을 바탕으로 한다. 쌀을 사 놓으면 연탄이 떨어지고 연탄을 들여놓으면 쌀이 떨어지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집도 팔아야 했기에 밤에만 수돗물이 나오는 달동네에 살기도 했었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내 사진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흑백사진 속에는 희로애락이 공존한다. 가난한 사람들, 지울 수 없는 정겨운 얼굴, 참으로 극적인 순간을 그들과 함께했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진지한 사랑을 담으려고 했다.

부산 자갈치시장은 근 50여 년 동안 내 사진의 소재가 되어 온 장소이다. 최근에 현대식 건물로 변신하는 바람에 과거의 정감과 활력, 투박함 같은 것은 많이 사라졌지만 나에게 자갈치시장은 언제나 영원한 안식처로 다가온다. 왁자지껄한 목소리와 힘찬 몸짓으로 약동하는 자갈치시장은 비릿한 생선 냄새와 함께 생명력이 꿈틀대는 곳이다.

시장 모퉁이에 모여 앉아 허겁지겁 점심을 때우던 아지매들, 비나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혼잡했던 시장통, 그 치열했던 삶의 풍경이 이제 사라진 것 같아 몹시 아쉽다. 내 사진들을 보며 이거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여기면서도 못내 떠나보낸 옛 정경들이 가슴 한편을 시리게 하여 가만히 읊조린다.

“아지매들 다 어디 갔나 모르겠네, 사진 잘 나왔는데….”

나는 지난 50여 년간 ‘사진이란 무엇인가’ ‘사진을 왜 하는가’라는 질문을 한시도 내려놓은 적이 없다. 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 돈이 되는 사진을 찍으라는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도 항시 그런 질문과 싸워왔기 때문이다. 나의 영원한 테마는 인간이다. 사진을 찍으면서 세계 곳곳의 헐벗은 땅, 병들고 굶주린 자들을 목격해왔다. 그들에겐 진정 나눔이라는 배려가 필요하다. 나눔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줄 뿐 아니라 그들과 내가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숨을 쉴 수 있고, 밥을 먹을 수 있고, 비바람을 막아주는 안전한 곳에 있다는 현실에 감사하게 해준다. 어려운 사람을 보살펴줌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워질 수 있다. 이렇듯 나는 사진을 통해 따뜻한 온기를 불어 넣어 휴머니즘이 넘치는 사회를 만들려는 신념으로 사진을 해왔다.

내가 행운아라 생각하는 것은 온갖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사진의 외길을 걸을 수 있는 바보 같은 신념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른 욕심 없이 사진에 미칠 수 있게 해준 가난에 고마워하고, 나를 일깨워주는 이웃들의 눈물과 웃음에 고마워한다. 바로 그 이웃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이 오늘도 나를 이 땅에서 사진가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주었다.

“사진가들이여, 부디 진실하기를….”

사진은 내부에 진실을 갖추고서야 비로소 출발한다. 눈에 보기 좋은 것으로만 만족하거나, 본질과 관계없는 것을 조작하고 표현하는 사진가는 결코 올바른 사진가가 될 수 없다.

내가 의도적으로 연출하지 않은, 생생한 인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자 한 것은 그 현실 자체에 이미 예술이 추구하는 진실이 담겨져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예술가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인간을 존중하고 진심으로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수많은 책과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집을 통해 끊임없이 사진을 배웠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그토록 사진에 몰두하게 한 것은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었다.

우리 모두가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갖고 태어난 신의 피조물이라고 믿는다. 성공한 인생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기준은 이 세상에 무엇을 남겼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남겼는가가 되어야 한다.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사진가 최민식(1928-2013)님은 1928년 황해도 연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57년 일본 도쿄 중앙미술학원을 졸업하고, 독학으로 사진을 연구하면서 인간을 소재로 사진을 찍기 시작합니다. 총 14권의 <휴먼> 시리즈(1968-2010)를 출간하였으며, 2008년 13만여 점의 자료를 국가기록원에 기증하여 민간기증국가기록물 제1호로 선정되기도 한 님은, 한국사진문화상(1974), 예술문화대상(1987), 대한민국 옥관문화훈장(2000), 부산문화대상(2009) 등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는 <낮은 데로 임한 사진> <사람은 무엇으로 가는가> 등 다수가 있으며, 최근에 출간한 <휴먼 선집>은 최민식 선생의 대표작인 <휴먼> 시리즈 14집을 총정리한 책으로서, 그의 사진 철학이 녹아 있는 마지막 유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