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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의 효과, 연구논문 발표한 보아스 유 교수

마음수련의 효과 경험한 홀리 패밀리 대학 보아스 유 교수

정리 & 사진 김혜진

지난 5월 25일, <행복, 마음에 묻다 Happiness, Ask the Mind>란 주제로 제1회 전인교육학회 국제학술대회가 서울대에서 열렸다. 전 세계에서 관련 분야의 학자들이 방문했고, 다양한 사례 발표와 패널 토론도 이어졌다. 그들 중에는 미국에서 온 홀리 패밀리 대학 간호학과 보아스 유(Boas Yu, 46) 교수도 있었다. 마음수련을 하면서 놀라운 내면의 변화를 경험했다는 그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해소 대안으로 마음수련을 권했다. 마음을 비워 우리의 본성을 회복했을 때라야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마음수련의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여러 연구를 하고 있다는 보아스 유 교수, 그의 마음 빼기 이야기다.

저는 10여 년간 대학에서 간호대학원생들에게 간호 경영, 리더십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번에 <마음수련이 활력과 웰빙에 미치는 영향(The Effect of Maum Meditation on Power and Well-Being)>이란 주제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됐죠. 덕분에 스웨덴, 대만, 미국 등지에서 온 학자들의 멋진 발표들을 들으며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었고, 행복에 이르는 여러 제안을 공유하는 등 매우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가 마음수련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게 된 건, 개인적으로 마음수련을 통해 너무나 많은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동료 교수인 캐스린 헤이즈 박사, 이글스턴 박사와 함께 연구를 시작했어요. 학교에 마음수련 프로그램을 개설, 교수, 교직원, 학생들 99명을 대상으로 2011년 1월부터 1년 반 동안 일주일에 30분씩 4번 진행을 했습니다. 그 결과 마음수련을 한 사람들의 활력과 웰빙 점수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상승이 확실하게 있었어요. 신기한 건 학생들은 명상을 잠깐만 해도 얼굴이 금방 환해지고 좋아진다는 거예요.

미국은 특히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사회여서, 작년 미국 내 다양한 학술대회에서 발표했을 때도 많은 관심을 모았습니다. 저 역시 마음수련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12살 때 온 가족이 이민을 오게 되면서 가족 문제, 일 등 여러 문제가 있었고,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었거든요. 특히 미국인 남편과의 갈등이 심했어요. 남편은 사업이 어려워지자 무척 힘들어했고, 밖에서 도는 일이 잦았죠. 갈수록 의사소통이 어려워지면서 부딪치는 일이 많았어요. 더 이상 같이 살긴 어렵다는 생각에 이혼을 제안했고, 남편은 그런 제가 괘씸했는지 고소를 해왔어요. 3년 이상 법정에 다닐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방황이 시작됐어요. ‘그동안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신앙에 매달렸지만 허한 마음은 채울 수가 없었어요. 여행도 다니고, 명상이나 참선 등도 해봤지만 그냥 사는 게 아무 의미 없게 느껴졌어요.

그런 어느 날 어머니가 마음수련 안내 책자를 주셨고,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거기엔 방법이 있는 거예요! 제가 다양한 명상을 경험해봤지만, 사실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거든요.

당장에 마음수련을 시작했고, 과거 경험, 감정, 좌절 등 내 마음의 모든 짐이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알려준 방법대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버리면서 점점 내면의 평안을 찾을 수 있었죠. 그렇게 1과정을 마칠 즈음 ‘아, 우주가 나구나’란 깨침이 조용히 오는 거예요. 정말 놀랍고 감사했어요. 그러면서 알게 됐죠. 깨침은 내가 찾는 것이 아닌, 내 안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마음을 버리면 내 안의 본성이 드러나면서 저절로 알게 된다는 것을요.

 

제1회 전인교육학회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보아스 유 교수

2과정부터는 방학을 이용해 한국에 있는 메인센터에서 명상을 했어요. 그렇게 다시 내 삶을 바라보는데 어찌나 부끄럽던지…. 나는 늘 좋은 사람이다, 그런 게 있었거든요. 목회자의 딸로 자라면서 무조건 착해야 하고 남을 도와야 한다는 그런 맘이 있었으니까요. 근데 돌아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잘난 척하는 마음에 상대방을 잘 이해하지 못했죠. 전에는 화를 잘 내고 모두 남 탓을 했어요. 항상 다른 사람의 잘못이고, 스트레스는 내가 아니라 남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명상하면서 진실로 잘못한 건 나이고, 내 마음속에 사진 찍어 놓은 내 관념 탓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덕분에 전 남편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감사하게 되었답니다. 명상을 통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으니까요.

만성적인 소화불량도 좋아지는 등 건강도 덤으로 얻었습니다. 저의 변화에 가장 놀란 건 부모님이에요. 찌든 얼굴이 확 펴지고 아주 평화로워 보인다고 말씀하실 정도죠. 한번은 아버지께서 교인들에게 설교하시면서 “마음수련을 해봐라” 권유하시는데 저도 깜짝 놀랐답니다. 가장 힘든 순간을 묵묵히 지켜보셨던 분들인지라 저의 변화를 더 실감하신 거겠죠. 그야말로 스트레스 없는 삶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은 140여 명의 노인간호학 간호사 또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음수련을 한 후 학문적 성취와 태도 등에 어떤 변화를 보이는가입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학업 경쟁이 워낙 심해 스트레스가 많은 데다 간호사들 역시 업무상 스트레스가 많거든요. 아무래도 아픈 사람을 보살펴야 하는 일이니 더욱 그렇죠. 그런 분들에게 제 연구가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 박사학위 논문을 간병인들을 주제로 쓴 적이 있어요. 8명의 간병인들을 만나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심도 있게 인터뷰를 하는 등 그 내용을 토대로 분석했죠. 근데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와서 매우 흥미로웠어요. 간병인이니까 아무래도 스트레스와 보람 이야기가 주로 나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잘난 사람일지라도 나이 들어 병드는 모습을 지켜보니 인생이 참 허무하다는 게 공통적인 얘기였어요. 맞는 말이지요? 사람이 태어난 이유가 그렇게 아등바등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는 게 다라면 허무할 수밖에요.

제가 마음수련을 하며 알게 된 건, 사람이 태어난 이유도 목적도 분명이 있다는 겁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그 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간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답은 오직 마음을 비워 자신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때 비로소 찾을 수 있습니다.

보아스 유 교수가 경험한 마음수련의 스트레스 감소 효과

행복의 씨앗

최고의 신 제우스가 어느 날 행복의 신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행복’이라는 씨앗이다. 적절한 곳에 숨겨두고 오너라.”
행복 씨앗을 받은 행복의 신은 어디에 숨겨둘지 고민했습니다.
이윽고 결심을 한 그가 길을 떠나려 할 때, 제우스가 물었습니다.
“그래, 어디에 숨기기로 했느냐?”
행복의 신이 대답했습니다.
“아무래도 바다 깊은 곳이 좋을 것 같습니다.
거친 파도와 풍랑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찾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하지만 제우스는 말없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습니다.
그러자 행복의 신이 잠시 생각한 후 다시 말했습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 위는 어떻습니까?
용기와 도전 정신을 지닌 사람만이 찾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하지만 제우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깊은 바다와 높은 산을 찾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사람이 가장 찾기 어려운 곳은 바로 자신의 마음속이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씩 뿌려 두고 오거라.”
 
깊은 바다를 건너는 것도 높은 산을 넘는 것도 쉬운 일인데
어찌해서 우리 마음속 들여다보는 건 이리도 힘들까요.
너무 가까이에 있어 찾기 힘들다는 우리의 행복….
이제 ‘행복 찾기’가 가장 쉬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합니다.
당신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합니다.

깨침이란 원수가 사랑이 되는 경지

이 세상에는 허와 참이 있다.

허란 세상의 것을 복사하여 사는 인간의 마음이고

참은 세상이다.

인간은 세상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있지 않고

세상을 사진 찍어 겹쳐진 세상과 함께 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자기의 마음속에 산다는 것이다.

그 마음속에 진리인 세상의 마음이 들어온 만큼

알아지는 것이 깨침이다.

인간의 마음이 허상인 사진이기에

그 사진을 버린 만큼 참이 들어와 알아지는 것이 깨침이다.

자기가 회개를 할 때만 깨침이 있고

또 참의 자리인 완성의 자리에 갈 수가 있다.

때 묻은 옷자락처럼 씻은 만큼 본래의 옷으로 돌아가는 이치다.

지우개로 낙서를 지운 만큼 깨끗한 종이만 남듯

깨끗할 때 참인 종이를 아는 것과 같다.

 

사람은 완전한 신의 나라에 나 있지 않고는

원수가 사랑이 되지 않는다.

마음수련을 하다 보면 자기의 가짜의 마음을 버린 만큼 참이 들어오니

참이 된 만큼 알아지는 것이 깨침이다.

자기의 죄를 씻어 진리가 된 만큼 참으로 다가가게 되는 것이다.

자기의 관념 관습의 일체가 남음이 없고

자기라는 존재가 하나도 없이 다 죽어야 자기의 의식이

완성이 된 경지에 이른다.

이 완성이 된 경지란 자기의 의식이 진리인 본래의 의식 자체가 되어

그 나라에 난 자가 진리이고 죽지 않는 완성자인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다고 해서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의식이 신의 나라가 되고 그 나라 나 있어야

원수가 자기의 마음에서 없어져 원수를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의 세계에서는 원수가 있는 것이다.

살아서 진리나라인 천극락에 난 자만이

원수를 사랑할 수가 있다.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등 다수가 있습니다. 특히 최근작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의 영역본 <Stop Living In This Land, Go To The Everlasting World Of Happiness, Live There Forever>는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주간 종합 1위를 기록했으며, 국제도서 시상식 IPPY, NIEA, IBA 그리고 eLit Awards에서 영성, 정신, 철학 분야 금메달을 수상했습니다.

The Story Of Shin Young-tae

Summary Kim Hye-jin

& Photographs Choi Chang-won

Shin Young-tae(40), a Korean classical musician. He is a great drum player and was a part of many events such as: 2001 closing ceremony concert for Peking Universiade; 2002 opening ceremony for FIFA World Cup; and 2012 MBC drama <Horse Doctor>. Even though he was successful in many renowned concerts, he says at a certain point in his life, he could not find his performances to be worthwhile or fun. ‘Why is this happening?’ While struggling, he found Maum Meditation and regained the joy of being on a stage. This is a mind-subtraction story of Shin Young-tae.

 
‘Bangbang~ bangbang~ bangbang~’

“The origin of drum started when people from a long ago killed animals to eat and banged on leathers to comfort their sorrowful minds. The drum sounds are similar to a person’s heartbeats.  Normally the heart would beat rub-dub, but when strained it goes faster. Without realizing it, a person is performing all his life from birth till death.  As you watch the concert today, please see how your heartbeats are sometimes soft, and sometimes fast.”  

I am currently doing a national tour of Maum Talk Concert and I say the above as an opening.  This concert was planned with a purpose of providing a healing path of self-reflection to alleviate stress suffered by the contemporary people.  It would be good to self-reflect on one’s own mind as one listens to own heartbeats during the concert.  I feel it is very worthwhile when the concert attendees say “We were suffocating before we came here; now our chests have lightened.”

In the beginning, my dream was to be a singer.  I liked the feeling of something being pulled out from me while singing.  But with my family being poor, I couldn’t think of getting music lessons and I decided to attend Haeyang University which assisted me with paying for tuitions.  Getting up in the morning to a military-style roll call and a morning run, and wearing uniforms to school – it felt like being in a military.  Then by coincidence, I went with my friend to Seoul student club activities and that’s when I first heard the Korean classical music. Other students my age were singing in the Korean classical styles and rudely playing around; and this was a cultural shock to me.  When I heard such lively but also soulful music, I felt uplifted…..  Since then I started to learn the Korean classical music. I was more and more attracted to the Korean classical music as I experienced the moments of full immersion during performances.

  

 

In 1999, I joined an artistic performance group and became a full-fledged Korean classical musician. Since then, I started to perform with a great drum and other sets of drums. I especially remember the 2002 World Cup opening ceremony concert. I came down a high wire to perform on drums and there were thunderous applauses and roars from the thousands of people in the audience – it was thrilling.  After the World Cup, I had a plenty of concert offers, but starting at some point, I wasn’t happy.  I had started this work due to a sense of duty and pride I had about the Korean classical music, but the reality was it wasn’t any different from any other show business.  Between the idealistic view and the reality, there was a separateness causing conflicts….  Many people around me were envious, “it’s great that you are well-known and was offered many concert performances.” But as time passed, I could not find the reason for performing music and my own identity as a musician.  Every time I was on stage, I was fearful and wanted to avoid the attention of audience…  At that time, my wife recommended the Maum meditation.

As I meditated, I found that I was wrong to think that I lived a good life like others.  The Korean classical music which I truly enjoyed all of sudden became my job and I started to work to build relationships with well-known teachers; and as I did not major in Korean classical music in college, I felt a sense of inferiority and continued my endeavor to learn so as not to hurt my pride…  Instead of worrying about “how should I play the rhythm for the audience?” I was chasing after money and prestige.  As I threw away those minds one by one, at one point, I was enlightened to the Universe being me. I was filled with such a deep happiness. The Universe is originally full of such joy! I understood then when one lives with the true mind, such joy naturally occurs.

The true joy is possible when I am completely emptied. Only then, the original power and sound of Korean classical music can be revealed.

With Yi Jung-hoon, chairman of Goru artistic performance group

Through throwing my mind away, I also understood why I felt drained after performing.  As I was putting more efforts only on me to perform well, it made the performances much farther removed from the original meaning of Korean classical music and drums. After that, my mindset when performing started to change a little each time.  I started to see the importance of a whole performance, not just my own.  Originally, the Korean classical music has a meaning, “a bright music that creates a big oneness.”  So when one reviews the Korean classical music, one does not say “a good performance,” but say “it was profound.” When the Korean classical music is played in a village and people gather to enjoy, even enemies become friends through the music – the joy of music allows them to become one.

I think about this these days. I feel suffering in their minds as I play on a stage – and my job is to ease their minds… The meaning of ‘poong-mul’ means something that makes wind. It seems like through stimulating yin’s energy beautiful sounds are made and they become a rain of blossom to ease their suffering minds. As I clearly understand this logic of music, I am very happy to performing these days.

Going forward, I want to comfort and give joy through the drum sounds all over the world. As the drum sounds alerted a victory of war long ago, I hope people beat the drums of victory by winning their fights with selves through throwing away of their false minds to rediscover their true minds.

Traveling to Anuta Islands of coexistence and sharing


Anuta Island is situated in Southern Pacific.

Last fall, to film documentary <Last of the Empire>,

I got into a sailboat toward Anuta Island.

I was traveling to find an alternative to materialism, having arrived at its limitation due

to human greed and infinite competition.

But traveling toward the island wasn’t easy.

Using stars as a guide for four days, we arrived

at Anuta Island after a long voyage.

Written and photo by Park Jong-woo

As soon as we arrived, children came to greet us. White sandy beach, jade green sea, palm trees that covered the island – such gift of nature made us think of a paradise.

But this wasn’t a land of plenty. The small island the size of 600 meters or so was mostly hills and surrounded by rocks which was barren; and unable to have boats to come in. To them, the ocean was the base of their lives and sometimes, fearful war zone. Due to the natural disasters or hurricanes, family members can be lost; also it’s not easy to go fishing due to the changing weather.

But amazingly, singing and dancing in the village continues. Innocent children playing naked. Joy and rhythm learned since childhood rings all over the island.

People in Anuta Island solve everything together. It’s natural to help bring up children who lost their parents; every other house has someone who adapted a child. When a child is born, until the mother is able to, people take turns helping. If unable to fish, whatever fish was caught is shared among 24 houses equally. Anuta Islanders call this ‘aropa.’ It means ‘love, compassion, sympathy’; it is a value of ‘sharing and coexistence’ which they feel is the most important.

Through ‘aropa’ they learn the wisdom to live helping one another. About 300 years ago, ‘aropa’ became the root of life philosophy. At that time, in order to monopolize limited resources, many people fought for power and died, leaving only four people alive and at a danger of extinction. The enlightenment that people must help each other spread as ‘aropa’; a rule to live with each other.

About the time all names of 280 islanders were memorized, after a month’s filming, we left the island. Before the boat left, about a half of the islanders came to the beach and cried. And sang us a song of goodbye. Anuta informed us that how human beings lived originally for many years was different from how we lived today in frontlines of materialism. I wished that the word of hope ‘aropa’ is spread to our more and more difficult reality.

Park Jong-woo, a documentary photographer, graduated from Hankook Uni. of Foreign Studies and also completed graduate degree at Joong-ang Uni. He was a photojournalist with Hankook Ilbo and became a documentarist to record minority cultural groups all over the world. His major works include documentary <The Record of 1000 Days of Chamagodo> <Sa-hwang-ji-ro> and <Last of the Empire>.

Man Tries To Attain Truth Through Possession But Nothing Can Be Attained By Possession

Human life has only taught us to have and possess more. That mind of possession and attachment arises from one’s feelings of inferiority. Many seek do Truth or the Way – not for the purpose of becoming a true saint but to use what he learns from do to earn money or to trick ignorant people into thinking that they are great.

However do is not about possessing or attaining; it is about discarding. Discarding one’s false self and becoming true is do. A person who tries to possess things is foolish for he will not be able to possess anything; and he who seeks is also foolish for he will not be able to find what he is seeking. Rather, such a person will add to his burdens and suffering eventually leading to a mental breakdown. For someone who achieves something through gain or possession, his achievements reside in his false self.

The more one discards what is in his mind, the more Truth will enter his mind and the more he will be able to know Truth. If he continues to discard, and discard again, all of one’s desires – to become great or to achieve something – which arise from his feelings of inferiority will vanish. He will then be able to go to the world beyond these minds – the land of God – and everything that he had desired in the world will all be fulfilled.

Fulfillment or achievement comes from casting off all of one’s preconceptions and habits; it does not come from giving in to the greed of one’s feelings of inferiority. This only leads to committing more sins and such a person ultimately becomes possessed by greed.

Woo Myung is the founder of Maum Meditation, an author, and a poet. He has been teaching the Way to the Truth through world tour lecture every year. He is the author of many books about Truth. The English edition of his most recent book, Stop Living In This Land Go To The Everlasting World Of Happiness Live There Forever, hit #1 Overall Weekly Bestseller in Amazon and won 4 international book awards such as IBA, NIEA, IPPY, and eLit in the categories of Self-Help, Philosophy, Spirituality, and Meditation.

열린 고민 상담소

20대의 여성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잠시 쉬고 있습니다. 일을 그만두게 된 이유는 이것이 진정 나의 일인가 하는 의문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저는 진짜 내 삶을 살고 싶어,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며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부모님은 이런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중요하지 이렇게 살든, 저렇게 살든 결국 삶은 똑같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부모님과 저와의 생각과 가치관의 차이, 이런 간극을 좁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조언을 구했으면 합니다.

저도 님과 같은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 반대에도 나중에 후회와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근데 지금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막상 그 길에 접어드니 제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거든요.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때는 그 일밖에 없을 것 같아서 매달렸었는데,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면 또 다른 멋진 경험들을 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얼마나 확신이 있는지 그 부분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지금 당장 말로써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애쓰지는 마세요. 님께서 좋아하는 일을 하시게 되면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한 모습을 진실로 보여주세요. 그 모습을 보면 조금씩 가치관이 좁혀질 거예요.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해진 만큼 부모님께도 잘해드리세요. 그 열정과 긍정적인 에너지가 부모님도 감동시키리라 믿습니다.^^ 이세희 직장인

아직 한 번밖에 살아보지 못한 인생 아마추어(이승철님의 노래 ‘아마추어’를 한번 들어보시길^^)로서, 채 30년을 못 산 인생 초보자로서 제가 답변을 드려도 되나 고민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민녀님과 같은 고민을 했던 20대 친구로서 제 이야기를 들려드려 보겠습니다.

저는 대기업 입사가 제 꿈이었다고 믿으며, 스펙 쌓기와 치열한 경쟁 끝에 대기업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 꿈이라고 믿고 살았던 꿈이, 제 꿈이 아니란 걸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분께서 ‘가짜 꿈이 흔들려야 진짜 꿈을 찾는다’라고 하셨는데 딱 이 말과 같았습니다. 잘나가는 대기업 간판은 제 꿈이 아니었고, 저는 마치 황무지 한가운데 길을 잃고 서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질문을 뒤늦게 시작했습니다. 제가 추구하고 싶은 가치는 ‘물질’보단 ‘공생, 공존, 공유’와 같은 가치였고, 그런 고민을 하는 시점에 사회적기업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감히 사표를 내고 이직했습니다. 당장 연봉은 반 토막이 났고, 부모님은 실망하셨지만, 제 인생은 저만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기업에서 미련 없이, 후회 없이 일하며 성장했고, 이를 통해 더 선명해진 제 꿈을 따라 지금은 비영리 영역에서 순간순간 감사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크게 반대하던 부모님께서도 이제는 저를 지켜봐주고 계십니다. 부모님께 드린 약속이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달리려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타인의 삶을 사느라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했고 웹툰 ‘무한동력’에는 ‘죽을 때 생각나는 것은 지금 먹지 못한 밥이 아니라, 이루지 못한 꿈이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을 잘 생각해 보시고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삶의 주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김영광 직장인

딸을 이해 안 해주는 부모님이 답답하게 생각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모님이 살아온 삶에서 본다면 당연한 거지요. 그 세대만 해도 당장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까요. 저도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겠다며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나온 딸을 걱정하는 마음이 충분히 이해됩니다. 당장 부모님께 이해받으려 하기보다 우선 부모님의 걱정을 풀어주세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의 비전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도록 제시를 하세요. 아직 어떤 일을 할지 고민 중이라면, 기간을 두고 그때까지만 지켜봐달라고 양해를 구하세요. 요즘처럼 어려울 때 계속 백수로 있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실 테니까요. 그리고 되도록 경제적인 부분에서 독립하세요. 부모님께 의존하면서 나의 길을 가겠다고 하면 더 걱정이 되지요. 그리고 부모님께 약속한 것을 하나하나 지켜나가세요. 따님에게 믿음을 가질 수 있게.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따님의 길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요. 배점옥 직장인

저는 어린 아이들을 둔 가장입니다. 제가 원래 위가 안 좋았는데, 한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나서 위와 식도염이 생긴 이후로 걱정이 많습니다. 병원에서는 약 먹으면 낫는 병이라지만 계속 병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끊이지 않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할 때도 있습니다. 애들은 어린데, 혹시 쟤들이 크기 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더 악화되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들이 점점 더 몸을 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먹어도 살로도 안 가고, 자꾸 살이 빠지는 것도 신경 쓰입니다. 막연한 불안을 없애는 방법, 마음을 좀 더 편안하고 대범하게 바꾸고 몸도 마음도 평안하게 할 방법이 있을까요?

밤마다 동물 흉내 내는 아내

백일성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내가 방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저도 방으로 향했습니다. 방문 가까이 다다르자 방 안에서 간헐적인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문이 열리면서 신음 소리는 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아내가 파란 요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눈까지 지그시 감고 두꺼비 자세를 하고 가끔 신음 소리를 내뱉고 다시 자세를 가다듬기를 반복합니다. 어느새 저를 발견했는지 실눈을 뜨고 앞에 놓였던 휴대폰을 턱으로 가리킵니다. “휴대폰 화면에 모델 자세하고 어디 다른 데 없나 한번 체크해줘.”

아내의 휴대폰을 가져다 화면을 봤습니다. 그때서야 지금 자세가 두꺼비 자세가 아니라 고양이 자세인 걸 알았습니다. 언뜻 비슷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모델과 아내의 형상이 저에게는 양서류와 포유류의 차이로 다가왔나 봅니다. 화면 속에 포유류의 유연한 자세를 관찰하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여보……… 모델 가슴골 그만 보고….”

예리하긴…. 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며 완벽한 자세라고 칭찬해줬습니다. 사실 기럭지의 차이와 두께의 차이… 그리고 접히는 부분의 굴곡의 차이가 있을 뿐 자세는 완벽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한참을 두꺼비 흉내 내는 고양이 자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내가 자세를 바꿨습니다. 뭔가 형상이 떠오릅니다. 조류 같기는 한데… 말끝을 흐리며 숨을 고르고 있는 아내를 향해 넌지시 던졌습니다. “비둘… 기?”

아내가 고개를 까닥이며, “웅… 왕비둘기 자세.”


비둘기치고는 2%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앞에 ‘왕’자가 들어가니까 그 2%가 채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자세인지 자세를 잡자마자 신음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아… 아… 이 자세는… 왜가리.” 아까부터 펭귄이란 단어가 입에 맴돌았는데 말 안 하길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몇 마리의 어류와 조류 그리고 포유류를 넘나들고 나서야 매트 위에 반드시 누워서 안정을 취했습니다.

“효과는 있는 거 같아?” 저의 물음에 아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효과고 뭐고 이렇게라도 안 움직이면 스트레스받아 죽을 거 같아서 그래.”

깊어 가는 아내의 한숨에 한마디 했습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안 쪄 보인다니까.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몸이 좀 붓는 게 당연하지, 아가씨 때하고 똑같기를 바라나? 그렇게 욕심을 내니까 스트레스받는 거지.”

아내가 더 큰 한숨을 내쉬며, “아무렴 내가 아가씨 때 몸매를 바라겠냐? 사실 여자들은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몸에 유연성이라든지, 주름이라든지, 군살들… 솔직히 말하면 나이 먹는 게 스트레슨 거야~~”

어느새 아내는 일어나서 거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도 나란히 옆에 서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43살 동갑내기 결혼 17년 차 부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화장대 위에 17년 전 야외 촬영 사진이 조그만 액자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많이 늙긴 늙었다. ㅎㅎ”

요즘 밤마다 파란 매트 위에서 동물 흉내 내며 용쓰고 있는 아내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 아직 어딜 가도 한창인 나이고~~ 아직 어디서도 기죽지 않을 몸매니까 스트레스받지 말고 건강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고 힘내라~~” 아내가 제 말에 힘을 얻었는지 다시 요가 매트 위에 가서 앉습니다. 그리고 곧 자세를 잡습니다. 척 봐도 알 것 같아서 말했습니다. “부엉이? 맞지?”

아내가 옆에 쿠션을 집어 던집니다. “그냥 앉아 있었거든~~ 확~~~” 이런….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옥수수로 만드는 착한 양말 ‘콘삭스’

취재 문진정

이게 옥수수로 만든 양말이라고?! 은은한 파스텔 톤, 부드러운 촉감, 어디선가 구수한 향기가 날 것만 같은 친환경 옥수수 양말, 이름하여 콘삭스(Cornsox) 앞에서 사람들의 첫 반응은 놀람이다. 이 옥수수 양말을 만든 사람은 강원도 출신의 청년 이태성씨. 사회적기업 ‘더뉴히어로즈’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장애인 시설 등에 봉사 활동을 다닌 덕분인지 늘 사회적기업을 생각했다 한다.

그러던 중 구멍이 나면 곧장 버려지는, 왠지 모를 애틋함과 따뜻한 정서가 묻어 있는 ‘양말’이라는 아이템으로 착한 소비를 전달할 수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고, 2011년 봄 옥수수 양말 ‘콘삭스’를 만들게 된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원료에서 실을 뽑아 양말을 만드는 것 자체가 ‘국내 최초’의 일이라 원료를 수입하고 옥수수 전분으로 실을 뽑고 양말을 만들어 염색하고 판매하는 모든 과정이 어느 것 하나 순조로웠던 적이 없었다. 지인들로부터 안될 거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 초기 창업 멤버들도 하나 둘 떠나갔지만, 그는 1년여를 넘게 홀로 섬유 연구와 브랜드 홍보에 매진했다. 그 결과 디자인 숍과 해외 업계에서도 품질과 디자인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이태성씨. 요즘은 사업 초기부터 진행했던 옥수수 양말 판매 수익금의 기부 프로젝트도 결실을 맺고 있는데, 현재는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에 20여 개의 옥수수 농장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도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길에 용감히 뛰어든 청년 기업 더뉴히어로즈. 당신의 발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옥수수 양말 한 켤레 신고 그 길을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옥수수 양말 ‘콘삭스’만의 장점

1 원료 중 옥수수 전분이 90% 이상으로 화석 연료로 만든 기존 양말에 비해 친환경적이다.

2 다 신은 양말을 땅에 묻으면 6개월~1년 후 100% 생분해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3 옥수수 섬유는 약산성을 띠고 있어 세균 증식이 어렵고, 투습성이 좋아 예민하거나 아토피 질환이 있는 피부에 좋다.

4 양말 수익금의 10%를 기부해 아프리카 빈곤 국가에 옥수수 종자를 선물할 수 있다. www.cornsox.co.kr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집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양말 한 켤레를 사면 빈곤 국가에 옥수수 종자를 선물해주는 기부 모델입니다. ‘탐스슈즈’에서 신발 한 켤레를 사면 한 켤레를 빈곤 국가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것처럼요. 곡물로 의류를 만드는 기업으로서 빈민국의 식량 문제를 외면할 수만은 없었어요. 옥수수 양말을 만드느라 옥수수 가격을 저희가 조정할 일은 없겠지만 작게나마 책임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국제옥수수재단과 업무 협약을 체결해 양말 수익금의 10%를 기부하고 있습니다. 옥수수는 재배가 쉽고 다모작이 가능한 작물이에요. 또 쌀, 밀에 비해 생산량이 세계적으로 가장 많습니다. 밀과 쌀을 재배할 경우 1억 명의 배를 채울 수 있다면 옥수수는 1억 5천만 명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된다고 해요.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까지는 조금 오래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약하나마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양말로 환경과 소비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만 음악이나 영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많은 사람들과 소비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제가 ‘히어로물’을 좋아하거든요. 저희 회사 이름 ‘더뉴히어로즈’처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항상 가지고 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진심의 힘 알려준 대만 바이어 부부

나는 우리 매장의 가장 큰 바이어 부부를 소개하고 싶다. 바로 윈과 그의 아내 링. 대만에서 굉장히 큰 액세서리 도매 숍을 운영하는 중년의 동갑내기 부부다.

이들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여름이었다. 액세서리 도매 매장엔 한국 물건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대만,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등 외국 바이어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남의 나라에 왔으니 더 큰 성과를 내야 하고, 또 괜히 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인지 상대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어떻게든 가격을 깎으려고 머리를 굴리는 바이어들을 대하다 보면 정말 지치게 된다.

그런데 이들 부부는 전혀 달랐다. 처음엔 부인인 링 혼자 방문했는데, 작은 체구에 눈빛이 따듯하고 포근한 사람이었다. 원하는 물건을 고른 후 우리가 가격을 말하니 오히려 그 가격에 해도 괜찮은 건지, 우리를 먼저 걱정해주면서 바로 계약을 했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링은 우리를 너무 따듯하게 포옹해주었다. 다른 바이어들처럼 경계하는 것이 전혀 없이, 거리낌 없이 안아주는 모습에 내 마음도 녹는 것만 같았다. 이런 바이어는 처음이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신랑 윈과 함께 왔는데, 큰 키에 후덕하게 생긴 모습이 링이 주는 느낌과 닮은 사람이었다. 우리를 전적으로 믿고 구입해주는 이들의 물건을 만들 때면 나도 모르게 더 정성을 기울였다. 이들의 사업이 더 잘되기를 기도하게 되었다. 이게 바로 진심의 힘이라는 것일까.

나중에 사장님께 이야기를 들었는데 처음 이분들과 거래를 맺은 것은 2011년. 당시 한참 장사가 잘 안 될 때였는데 이분들이 와서 소량의 물품을 구입해갔다고 한다. 그게 너무 고마워서 수출 물품을 보낼 때 감사의 편지를 같이 보냈다고 한다. 영어가 짧다 보니 영어 단어와 단어, 그리고 표현이 안 되는 것은 웃는 이모티콘, 그림 등등을 섞어 보냈다고 한다. 마치 상형문자 비슷한 그 편지에는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준 그분들에 대한 감사, 이들 부부의 사업이 더 번창했으면 하는 사장님의 진심 어린 마음이 들어 있었다.

6주 뒤 이들 부부가 다시 매장을 찾아왔다고 한다. 바로 그 상형문자 편지를 들고. “독특한 편지에 정말 즐거웠다”며 처음보다 더 많은 물량을 구입해갔다고 한다. 그렇게 진심이 통하는 거래가 이어지면서, 거래량도 점점 늘어가더니 이제는 우리의 가장 큰 바이어가 된 것이다.

그분들은 언제나 제일 먼저 우리 매장에 들러 인사부터 한다. 그리고 다른 상가들을 다 둘러보고 돌아갈 때면 다시 우리 집에 와서 작별의 인사를 하고 간다. 단순히 비즈니스를 떠나 그냥 보기만 해도 반갑고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사람 간에 일이 잘못되는 것은 모두 제 잘못이지요. ‘잘못했습니다’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부정적인 마음이 멈추게 됩니다.” 작년 겨울 함께 저녁 먹는 자리에서 남편 윈이 들려준 이야기였다. 윈은 엄청나게 부유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 돈 때문에 인간관계에서 회의를 느낄 때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다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해주는 아내를 만나게 되면서 감동을 받았고, 아내가 하는 마음 수양을 같이 하게 됐다고 했다. 그걸 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얼마나 잘못 살아왔는지 깨닫고 생전 처음 눈물 흘렸다는 윈.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어떻게 그런 사업 마인드를 가지게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 상대에 대한 존중감 없이 철저히 비즈니스로만 다가오는 바이어들. 그들을 보며 나도 물건만 잘 팔면 된다는 마음으로 대했다면, 그들 부부 덕분에 점점 진심으로 대하게 된 것이다.

언어와 외모는 달라도, 사업으로 만났어도, 진심으로 다가간다면, 가족 같은 관계가 될 수 있고 서로에게 진정으로 긍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윈 & 링 부부에게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황현정 액세서리 도매 매장 직원

대만의 바이어 부부에게는 황현정님의 마음을 담아

‘고마운 윈 & 링 부부에게’

라는 문구와 함께 꽃바구니가 전달됩니다.

감동을 준 사람, 고마운 그 사람의 사연을 소개해주세요.

그분에게 미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담은 편지 형식의 글도 좋습니다.(edit@maum.org)

소개된 분께는 간단한 문구와 함께 꽃바구니 혹은 난 화분을 보내드립니다.

협찬 예삐꽃방 www.yepp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