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동물 흉내 내는 아내

백일성

저녁 식사가 끝나고 아내가 방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거실에서 뉴스를 보고 저도 방으로 향했습니다. 방문 가까이 다다르자 방 안에서 간헐적인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방문이 열리면서 신음 소리는 좀 더 크게 들렸습니다.

아내가 파란 요가 매트를 깔고 그 위에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눈까지 지그시 감고 두꺼비 자세를 하고 가끔 신음 소리를 내뱉고 다시 자세를 가다듬기를 반복합니다. 어느새 저를 발견했는지 실눈을 뜨고 앞에 놓였던 휴대폰을 턱으로 가리킵니다. “휴대폰 화면에 모델 자세하고 어디 다른 데 없나 한번 체크해줘.”

아내의 휴대폰을 가져다 화면을 봤습니다. 그때서야 지금 자세가 두꺼비 자세가 아니라 고양이 자세인 걸 알았습니다. 언뜻 비슷한 자세를 하고 있는데 모델과 아내의 형상이 저에게는 양서류와 포유류의 차이로 다가왔나 봅니다. 화면 속에 포유류의 유연한 자세를 관찰하고 있는데 아내가 한마디 합니다.

“여보……… 모델 가슴골 그만 보고….”

예리하긴…. 저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보이며 완벽한 자세라고 칭찬해줬습니다. 사실 기럭지의 차이와 두께의 차이… 그리고 접히는 부분의 굴곡의 차이가 있을 뿐 자세는 완벽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한참을 두꺼비 흉내 내는 고양이 자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내가 자세를 바꿨습니다. 뭔가 형상이 떠오릅니다. 조류 같기는 한데… 말끝을 흐리며 숨을 고르고 있는 아내를 향해 넌지시 던졌습니다. “비둘… 기?”

아내가 고개를 까닥이며, “웅… 왕비둘기 자세.”


비둘기치고는 2% 부족한 감이 있었는데 앞에 ‘왕’자가 들어가니까 그 2%가 채워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잠시 후 아내가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어려운 자세인지 자세를 잡자마자 신음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아… 아… 이 자세는… 왜가리.” 아까부터 펭귄이란 단어가 입에 맴돌았는데 말 안 하길 다행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내는 몇 마리의 어류와 조류 그리고 포유류를 넘나들고 나서야 매트 위에 반드시 누워서 안정을 취했습니다.

“효과는 있는 거 같아?” 저의 물음에 아내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효과고 뭐고 이렇게라도 안 움직이면 스트레스받아 죽을 거 같아서 그래.”

깊어 가는 아내의 한숨에 한마디 했습니다. “그렇게 스트레스받을 정도로 안 쪄 보인다니까.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 몸이 좀 붓는 게 당연하지, 아가씨 때하고 똑같기를 바라나? 그렇게 욕심을 내니까 스트레스받는 거지.”

아내가 더 큰 한숨을 내쉬며, “아무렴 내가 아가씨 때 몸매를 바라겠냐? 사실 여자들은 몸무게도 몸무게지만 몸에 유연성이라든지, 주름이라든지, 군살들… 솔직히 말하면 나이 먹는 게 스트레슨 거야~~”

어느새 아내는 일어나서 거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저도 나란히 옆에 서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비친 43살 동갑내기 결혼 17년 차 부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화장대 위에 17년 전 야외 촬영 사진이 조그만 액자에 보였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같은 말을 했습니다. “많이 늙긴 늙었다. ㅎㅎ”

요즘 밤마다 파란 매트 위에서 동물 흉내 내며 용쓰고 있는 아내에게 힘이 되는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습니다.

“당신, 아직 어딜 가도 한창인 나이고~~ 아직 어디서도 기죽지 않을 몸매니까 스트레스받지 말고 건강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하고 힘내라~~” 아내가 제 말에 힘을 얻었는지 다시 요가 매트 위에 가서 앉습니다. 그리고 곧 자세를 잡습니다. 척 봐도 알 것 같아서 말했습니다. “부엉이? 맞지?”

아내가 옆에 쿠션을 집어 던집니다. “그냥 앉아 있었거든~~ 확~~~” 이런….

올해 마흔세 살의 백일성님은 동갑내기 아내와 중딩, 고딩 남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장입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 이야기 방에 ‘나야나’라는 필명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고 있으며, 수필집 <나야나 가족 만만세>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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