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난 밤섬이라고 해. 난 서울 살아. 서울하고도 한강, 그중에서도 서강대교와 마포대교 사이에 길게 누워 있는 섬을 본 적 있지? 그게 나야. 근데 내가 밤같이 생겼어? 옛날 지도에는 율도(栗島)라고 적혀 있다는군. 내가 보기엔 오징어처럼 생긴 것 같아. 그렇다고 오징어섬이라고 부르지는 말아줘. 근데 내 나이가 몇 살인지 알아? 섬이니까 몇 백만 살일 거라구? 아니야 틀렸어. 나 마흔여섯 살이야. 깜짝 놀랐지? 섬치고는 젊다구? 아니 난 사춘기 청소년 섬이야. 그 사연을 지금부터 말해줄게.
옛날 옛날 아주 오래된 옛날에 나는 한강과 더불어 생겨났지.
나는 원래 돌로 만들어진 섬이었어. 돌섬이니까 무인도였냐구? 아니야. 사람들도 많이 살았어. 고려 시대에 나라에서 죄인들을 나의 섬으로 귀양 보낸 적이 있었어. 그리고 예전부터 물 건너 마포에 큰 나루터가 있었어. 덕분에 남북으로 한강을 따라 중국과 제주도까지 오가며 무역을 하던 상인과 배를 만드는 목수들, 그리고 그 가족들이 살았지. 세종과 성종 시대에는 나라에서 약초와 뽕나무를 심어서 키웠어. 갖가지 아름다운 나무가 늘어진 언덕에 으리으리한 기와집도 여러 채 있고, 양과 염소가 유유히 풀을 뜯어 먹으며 놀고 있어. 그리고 이태리 베네치아처럼 집과 포구가 붙어 있어서 안방에서 나오면 바로 배 타고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근사한 풍경을 그려봐. 그게 나였어. 겨울에 한강이 꽁꽁 얼면 마포 아이들이 썰매를 타고 이쪽으로 건너와 놀기도 했어. 1960년대까지만 해도 17대에 걸친 500명의 사람이 살고 있었지.
근데 1960년대 당시 한국 정부에서는 왠지 내가 눈에 거슬렸나 봐. 수억 년을 한강과 더불어 잘 살아왔는데 공연히 내가 한강 물의 흐름을 거스른다고 트집을 잡은 거야. 1968년 2월 10일 오후 3시. 결국 엄청난 양의 폭약을 터뜨려서 나를 산산조각 냈어. 그리고 폭파 뒤에 채취된 11만4000m2의 돌과 자갈을 한강 윤중제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만드는 데 가져다 썼지. 그때 난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가 되었어.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 거야. 내가 다시 생겨났어!!
세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내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한 거지. 지금의 나는 한강의 물살이 실어다준 모래와 자갈들이 모이고 뭉쳐서 만들어진 퇴적섬이야. 재미있는 건 내가 원래 있던 그 자리에 다시 생겨났다는 거야. 신기하지 않아? 지금 있는 곳이 내가 원래 있어야 할 바로 그 자리라구!! 지금 내 몸은 두 개로 나뉘어 윗밤섬, 아랫밤섬으로 불리고 있고, 행정상으로는 각각 마포구 상수동과 영등포구 여의도동으로 관할지가 달라. 그런데 그것보다 중요한 사실은, 나는 지금도 자라고 있다는 거야. 일 년에 평균 440m2씩이나! 그래서 1966년에 45,684m2였는데 2013년에는 279,531m2로 6배나 커졌어. 지금의 나는 서울 시청 앞 광장 21개를 합친 것과 같은 면적이야. 계속 자란다니 놀랍지? 즉, 46살은 섬의 나이로 치면 아직 청소년이라고!!
끝으로 나 이런 얘기 해볼게.
근데… 나, 1999년 8월 생태 경관 보전 지역으로, 또 2012년엔 도심 내 물새 서식지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아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어. 겨울이 되면 수많은 철새들이 나에게 찾아와. 그래서 아무 때나 놀러 오라고 초대할 수가 없어서 미안해.
아, 맞다! 나한테 올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해. 1960년대까지 밤섬에 주민들이 살았다고 했잖아. 그때 78가구 443명의 밤섬 주민들은 폭파 직전에 창전동으로 이주를 했어. 홍익대학교 뒷산인 와우산 중턱에 있는 마을이야. 이분들은 그날 이후로 실향민 아닌 실향민이 되었지. 그래서 그들이 1년에 두 번씩 나한테 돌아오는 날이 있어. 1월과 추석 무렵 두 차례 방문이 이루어지는데, 그때는 일반인도 방문 신청을 하면 배를 타고 같이 올 수가 있는 거야.
지금 나 밤섬에는 버드나무와 갈풀, 갈대, 물억새가 숲을 이루고 있어. 그리고 얘네들 포함해서 138종의 풀과 나무가 같이 살고 있고, 해오라기, 청둥오리, 꿩, 붉은머리오목눈이 등등 49종류의 새들이 살고 있거나 겨울철이면 찾아오기도 하지. 강변 양쪽으로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빽빽한 대도시 한복판에 이렇게 물새들이 찾아와 사는 섬은 전 세계에서도 흔하지 않아. 사실 그동안 생태 보전 지역으로 묶어놓고 사람들 출입을 금지한 덕분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해. 그 말은 사람들이 가만 내버려두면 자연은 저절로 회복된다는 이야기야.
필요 없다고 없애버렸지만 나는 그 자리에 다시 생겨났고 또 아무것도 없는 모래밭에서 풀이 자라고 나무가 자라고 동물들이 뛰어다니고 있어. ‘자연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는다’는 얘기야. 너무 짧게, 가깝게만 보지 말아줘. 인간들 판단으로 필요하다 필요하지 않다 정하려 들지 말고 어머니에게 맡겨줘. 자연이 어머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