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이렇게 소심해?
김하정 콜롬비아 보고타 거주
울 엄마를 장장 17년(이제 18년 다 되어간다) 동안 보아온 나의 감상문(?)을 쓰자면 꼭 처음은 이렇게 시작해야 속이 시원할 것 같다. 울 엄마는 딸내미인 내가 봐도, 킹왕짱 소심쟁이가 틀림없다. 항상 스마일 페이스에, 착한 성격 그 이름도 착할 선(善)! 심지어 일명, 빡센 아빠와(아빠 미안!) 같이 알콩달콩 애정스러운 말다툼을 자주 하곤 한다.
어느 날은 정말 두 분이 싸우시는 줄 알고 지나가던 오빠가 물었더랬다.
“둘이 진짜 싸워요?” 그러자 우리 아빠, 비실 웃으며, “아니야, 우리 같이 노는 건데, 그렇지?” 그리고는 엄마를 응시한다. 눈치 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마주치는 것 같기도 한 오묘한 아빠의 눈빛에 약간 삐친 것 같았던 엄마도 어느새 밝게 웃으며 답해준다.
“당연하지!!”
어쩜 두 분께선 지금까지도 유치하게 잘 노시는지,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그 착한 이미지 때문인지, 아니면 엄청 소심한 건지 우리 엄마는 집 밖에서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다. 아무리 화나도,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티 안 내고 이름처럼 착하게 사느라 노력하는 그 모습이 어찌 보면 참, 엄마에게는 기립박수를 수여하고 싶다. 하지만 가끔 정말 그런 착한 엄마가 너무 답답해서 어느 날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이렇게 말했더랬다.
“울 엄마는… 너무 착한 게 문제예요!”
뒤이어 터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지금 그때를 생각해보니 당돌한 딸내미의 멱살을 잡지 아니하고 같이 웃어주신 엄마는, 진짜 착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이런 우리 엄마가 가끔은 어쩜 그리 귀여운지 모른다.
한날은 내가 “엄마는 왜 이렇게 귀여워?” 하고 물으니, “야… 무슨 엄마보고 귀엽다고 그러냐…”라며 작게 투정 부리는, 울 엄마는 왜 저렇게 소심하고도 귀여운지! 아니 소심해서 귀엽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
그런 엄마가 좋아서 항상 우리 남매는 텔레비전을 볼 때도 엄마 무릎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이고는 했었다. 다 자랐다면 자란 자식들이 그러고 있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그 쟁탈전은 참 유치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 자리에 만약 아빠가 있었더라면 아마 “내 거야!” 하며 같이 쟁탈전에 참여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하며 피식 웃어본다.
한때(여기서 한때란, 그 이름도 유명한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 시절 되시겠다)는, 그런 엄마에게 거짓말도 밥 먹듯 하고, 속도 어지간히 썩이던 그때의 나, 그 시절의 하정이와 할 수만 있다면 주먹의 대화를 나누고도 싶다.
물론 엄마가 항상 소심한 것은 아니다. 자식들에게 올바른 길을 인도해주기 위해서라면 그 어느 때보다도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우리를 꾸짖으셨다.
한때는 미웠던 당신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무엇보다도 응원하고 계셨던 그 엄마의 모습을.
지금은 비록 지구 반대편에서 열심히 언어 공부를 하고 있는 터라, 직접 엄마를 볼 수 없지만, 이따금씩 영상 통화로 연락할 때 비치는 엄마의 얼굴은 항상 대한민국 아줌마일 것 같았던 그 모습이 아닌, 많이 늙어버린 모습에 왜 진작 잘해주지 못했을까 싶어, 살짝 울컥한다. 가끔은 어렸을 적 엄마 냄새가 좋답시고 엄마의 치마에 얼굴을 묻고 하루 종일 냄새를 맡던 그 순간도, 그리고 엄마의 소심한 애교도, 한겨울 “하정아, 추워! 같이 가자!” 하며 펭귄처럼 통통 튀어오던 그 엄마의 추억이 아직 내 가슴 한켠에 남아 반짝인다.
나도 엄마 딸이라 그런 건지. 어째 그렇게 맘에 안 들던(?) 엄마의 소심한 모습은, 이제 훌쩍 커버린 나의 성격이 되어버렸다. 어쩔 수 없는 유전의 법칙인 걸까…?
그래도 이젠 그 ‘소심’이라는 단어가 그리 싫게 들리지는 않는다. 지금 나에게 소심이라는 단어는 그리운 엄마의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운 그 냄새도, 얼굴도, 그리고 소심한 성격일지라도 반듯한 신념으로 자식들에게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신 엄마가, 나는 좋다.
마지막으로, 매달 이 ‘월간 마음수련’ 책을 보시는 엄마에게 외친다!
“엄마, 이 글이 거의 다 끝나가니까 하나만 물어봐도 돼? 엄마는 왜 이렇게 소심해? 사랑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