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오이소~ 보이소~ 또 오이소~”

산이 솥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부산(釜山). 부산의 명소 중 하나인 용두산공원에 오르면 말 그대로 무쇠 솥 같은 산들이 바다와 접하며 구불구불한 해안선을 만들고 있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집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있고 앞바다는 어선, 여객선, 무역선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자갈치시장, 깡통시장 등 길게 늘어진 삶의 터전에서 울려 퍼지는 아지매, 아저씨들의 진한 외침. 불과 60년 전의 전쟁의 아픔도 희망으로 일구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온 곳. 그래서 언제든 찾아가면 한 바구니 가득 희망을 담아오는 곳이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는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부산으로 향했다.

사진 홍성훈 글 문진정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걸 보여주마.’

부산 하면 자갈치시장, 자갈치시장 하면 부산. 시린 겨울 칼바람에도 새벽부터 나와 삶의 터전을 지키고 있는 아지매들을 보며 ‘삶이 힘들 때면 새벽 시장에 가보라’란 말이 문득 떠오른다. 자갈치시장은 남포동의 ‘자갈치시장’ 신축 건물과 ‘수협자갈치공판장’을 중심으로 하는 갯가 시장 일대를 일컫는데, 해안가에 자갈이 많아 자갈치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바다 내음 물씬 풍기는 자갈치시장의 난전에 들어서면 아지매들의 우렁찬 소리가 들려온다.

“어서 오이소~!”

“아침 6시부터 저녁까지 백 오십여 자루를 갑니다. 칼을 딱 보면 누꺼라는 거 다 알죠. 열심히들 사시니까 일년이면 칼이 다 닳아져요. 몸이 아파도 나와야죠. 제가 안 나오면 할매들이 불편하니까.” 30년 넘게 시장 아지매들의 칼을 갈아주는 칼갈이 김선팔(55)씨. 20년지기 이웃 상인 김선남(57)씨와 기념 사진 한 장 찰칵~!

자갈치 생활 10년은 돼야 자갈치 아지매라 불릴 수 있고, 자갈치 생활 30년은 오래된 것도 아니라는 자갈치시장 아지매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고 장사를 하고 있는 아지매들에게 이곳은 살아가기 위해서 억척스럽게 변할 수밖에 없는 전쟁터와 같은 곳이다. 하지만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여도 먼저 인사를 건네고 먼 데서 왔다며 감을 손에 덥석 쥐어주시는 아지매들의 넉넉한 인심에 금세 마음은 푸근해졌다.

 


“내가 요 자리 있었는 지가 53년 됐어요. 22살 때 와서 이 사람들 아무도 없을 때부텀 내가 요기 있었지. 6.25 때 배운 붕어빵 기술로 지금껏 하고 있는 거야.” 속 뜨듯해지는 붕어빵 아지매 안복순(74)씨.

50년 전만 해도 부산은 한국전쟁의 아픔을 지닌 곳이었다.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은 용두산공원 근처의 영도다리, 남포동, 광복동, 중앙동 일대로 판자촌을 형성하여 아끼던 물건들을 시장에서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바로 그 유명한 깡통시장이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통조림’ 등 각종 과자류를 팔면서 ‘깡통’시장으로 이름 붙여진 이곳은 베트남 전쟁 이후에 군수 물자가 몰려들며 더욱 번성하게 되었다.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좁은 골목길에 모여 있는 70여 곳의 책방을 말한다. 광복 이후 일본인들과 미군들이 남기고 간 잡지뿐만 아니라 피란길에 짊어지고 온 책을 사과 궤짝에 올려놓고 팔던 게 헌책방 거리로 발전했다. 과거 누군가가 보았던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보수동 책방 골목. 앞으로 누군가에겐 또 다른 추억으로 남을 수많은 책들이 새로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네들은 고마 꾸준~하이, 건어물 하나 하면 꾸준히 하고 곰장어 장사 하면 꾸준히 하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여. 내 할 꺼만 이래 하고 있는 거여. 크게 바라는 것도 없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애들 착하게 살면 되는 기라.” 건어물 가게 ‘완도집’ 차영복(70) 아지매의 소박한 새해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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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생활한 지가 40년이고 내 배를 장만한 게 23년째야. 7~8년 남 밑에 있다가, 원양어선, 참치 잡는 배, 오징어 배 기관장 좀 하다가 처음엔 조그만 배 장만해서 지독한 놈이다 소리 들으면서 알뜰히 살았어. 낮 두세 시에 나가면 아침 7시나 돼야 들어오지. 어군 따라서 무작정 가는 거지. 깨끗하게 자기 분수에 맞게 착하게 살면 돼! 뭐든지 잘못되면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내 탓이요, 하면서 열심히 사는 거지.” 오징어잡이 배 김일용(57) 선장님의 인생 철학.

“우리는 고마 꾸준~하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거여.”

50년 넘게 곰장어를 팔아 오신 할머니, 40년 넘게 오징어잡이 배를 타온 아저씨, 30년 이상 보수동 책방 골목을 지켜온 할아버지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 변함없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분들이 있기에 부산은 누구에게나 푸근한 고향으로 기억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그러했듯 새해에도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사람들. 돌아서는 발걸음 뒤로 아지매들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우린 은~제든지 예 있을 꺼니께, 은~제든지 오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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