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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마저 내 것이 아님을 알 때 감사함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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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30일, 스물셋의 여대생이었던 저는 여느 때처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오빠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바로 그날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 55퍼센트에 3도의 중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하고, 가망이 없다는 말을 들으며 중환자실로 실려 간 때가 벌써 10년 전입니다.

그동안 30번이 넘는 고통스런 수술과 재활 치료가 있었습니다. 언제나 회복실에서 처음 드는 생각은 ‘이 짓을 대체 몇 번이나 더 해야 할까?’라는 것입니다. 이게 과연 죽기 전에는 끝이 나려나 싶습니다. 그럴 때면 무서운 절망들이 스멀스멀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 찾기! 빛이 새어 들어오는 희망의 틈을 찾는 것입니다.
엄마는 “하루 한 가지씩 감사할 거리를 찾아”라고 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그 상황에서 우리가 사람 사는 것처럼 살 수 있는 길은 ‘감사 찾기’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원망하고 불평할 것밖에 없어 보였는데, 신기하게도 감사할 것을 찾으니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제 발로 걸어서 화장실 갔던 날, 눈물겹게 감사했습니다. 처음 왼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제 입에 밥을 넣을 수 있었던 날에도, 손에 피가 나도록 안간힘을 써도 열지 못했는데, 처음 문고리 잡고 열었던 날엔 문 열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했습니다. 걸어서 계단 몇 층을 올라가면 그날은 그것에 감사하고, 그런 일도 없는 날엔 살아 있어서 가족들과 눈 맞추고, 목소리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내 힘으로 내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보고 나니, 내가 가진 것 어느 것도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내 몸’마저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고, 내게 주어진 것 그리고 남겨진 모든 것을 ‘감사’하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처음엔 입술로 시작한 감사가 내 귀를 통해 다시 나의 마음으로 들어와 그 감사는 점점 진심 어린 고백이 되었습니다. 감사는 그동안 진통제가 줄 수 없었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감사는 미미하지만 어제보다 좋아진 오늘을 발견할 눈을 뜨게 해주었고, 또 오늘보다 좋아질 내일을 소망할 힘을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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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저자의 허락을 받아,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문학동네)와 기존의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사진 제공 문 학 동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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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사고가 났을 때 모두들 저보고 인생이 끝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인생의 끝, 바닥이라는 그곳에서, 저는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피부도 없는 몸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서 정말 ‘꿈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나 같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공부를 하고 싶다”고요.
제가 다치고 나니까, 사회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이전 얼굴이 없어졌을 뿐, 저 자신은 달라지지 않았는데도 완전 주변부로 떨어졌고, 그 상황을 겪으면서야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장애인, 노인 분들, 부모님 없는 아이들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덜 들게끔, 나만의 삶이 있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졌습니다.
2002년 12월에 엄마와 함께 처음으로 미국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면서, 재활 상담 공부라는 미국으로의 유학길이 열리기 시작했고, 어느덧 석사 과정까지 무사히 마치고, 사회복지 박사 과정에 들어갑니다. 바닥에서 찾은 희망이 저를 이곳으로 이끌었습니다.
저는 저를 잃은 후, 진짜 ‘나’를 얻었습니다. 겉모습과 관계없이, 내가 어떻게 보이든 상관없이, 나는 나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진리 아래 누구 때문에, 좋은 일이 있기 때문에 웃는 것뿐 아니라, 지독한 상황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자유는 남들과 비교해 얻는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변하지 않는 것들에서 비롯된 절대적인 행복을 맛보게 해주었습니다.
누군가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아니라고 진심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제가 맛본 행복 때문입니다. 새 봄에 피어난 꽃의 향기를 맡고, 예전엔 보이지 않았던 것을 이제 보게 되는 것. 무형이라서 손에 잡히진 않았지만 이제는 맛볼 수 있는 것. 이게 제가 발견한 행복입니다.

 

이지선님은 ‘한림화상재단’ ‘푸르메재단’ 등의 홍보 대사로 활동해왔으며, 저서로는 <지선아 사랑해> <오늘도 행복합니다> <다시 새롭게 지선아 사랑해>가 있습니다. 2001년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졸업, 2008년 보스턴대 재활상담학 석사,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9월부터 UCLA 사회복지 박사 과정에 들어갑니다.

 

2010. 10. October 월간마음수련

주는 사람 – 그해 겨울은 情다웠네 (2)


주는 사람
그해 겨울은 情다웠네 (2)


 

끝도 없는 얘기를 들어주던
네가 나를 변화시켰어

이순희 / 43세. 경남 거창군 거창읍
 
이웃에 동갑내기 친구가 있습니다.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의 문도 열게 되었지요.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저였지만 그 친구에게만은 확신이 들었습니다. 말할 때 거부당한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거든요. 누군가와 이야기하다가 “그건 아니잖아”란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성격의 저로서는 외면당하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그 친구는 정말 있는 그대로 제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작은 일상부터 깊은 상처로 남아 있는 고통스런 이야기까지….
“딸만 넷이었던 엄마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지. 이번엔 틀림없이 아들이라는 점쟁이의 말을 철떡같이 믿었는데, 다섯째도 또 딸이었어. 그게 바로 나야. 딸만 낳은 엄마의 설움이 얼마나 컸던지, 초등학교 1학년 어느 겨울밤, 내 입술에 ‘머릿니’라는 농약을 발랐다고 했어. 동네 아주머니들한테 말하는 걸 우연히 들었지. 엄마는 우스갯소리처럼 했지만 굉장히 슬펐던 기억이 나. 그 후로 부모님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늘 싹싹하게 대하며 지냈어. 하지만 그 상처로 인해 ‘난 벌레만도 못한 사람’이란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애. 너무 힘들었어.”
어느 날은 펑펑 울기도 하면서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릅니다. 말하는 저 자신조차 지겨울 만큼 말이지요. 그럼에도 그 친구는 4년이란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들어주었습니다. 저 역시 그 친구 앞에서는 엉킨 실타래가 풀리듯 응어리진 말들이 쏟아졌습니다.
늘 따뜻한 차를 대접해주었고,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남편, 아이, 돈 문제…. 어떤 얘기를 해도 끝까지 귀 기울여주되,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물었습니다.
“너는 왜 다 들어주노, 왜 늘 내 편을 들어주노?”
친구는 “네가 얘기하면서 답도 다 말하던데… 니가 다 했잖아” 하며 웃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말해주는 친구가 고마웠습니다. 저는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고, 가슴속에 묻어둔 말들을 털어놓으면서 스스로 해답도 찾게 되었지요.
너무 살기 힘들어서 그러셨구나,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고, 평상시 융통성이 없다고 답답하게만 여겼던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친구가 무조건 내 얘기를 듣고 받아주었듯이, 남편도 그런 걸 느껴보고 싶지 않았을까. 한순간이라도 마누라가 무조건 내 편이란 걸 느꼈을 때 남편도 힘이 나지 않을까….
친구가 한다는 마음수련 명상이 어떤 것인지 해보고 싶어졌고 저도 명상을 하게 되었어요.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동안 저는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것만 옳다고 믿어왔고, 그렇지 않은 건 부정하고 있었어요. 그 겨울, 한 번의 기억으로 부모님과 가족, 주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포기한 겁니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려고 노력해 본 적도 없었고, 늘 열등감에 휩싸여, “엄마 때문에 아무것도 못 했어” 핑계를 대면서 게으른 나를 합리화하고 있었어요.
상대방의 모습도 말도 내 맘대로 해석하고, 오해하니 힘들게 살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주위 사람들에게 소홀히 한 것이 참회가 되었습니다.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잘 들어주었는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 친구는 마음을 버렸기에, 선입견이 없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그냥 인정해 줄 수 있었던 거였습니다. 그만큼 마음의 공간이 큰 친구였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저도 남편과 아이들에게 그 친구같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만약 나중에라도 하늘나라에 갔을 때 혹여 그 친구가 잘못한 게 있다고 하늘이 꾸짖으신다면, 그 친구가 나를 변화시킨 그것 하나만으로도 용서해달라고 빌고 싶습니다. “고마워, 옥란아….”
 

 


 

무뚝뚝한 남편의
들꽃 같은 마음 표현

배점원 / 52세. 교사. 경남 김해시
 
남편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다. 결혼기념일도, 내 생일도 챙겨준 적이 없다. ‘비싼 걸 바라는 것도 아닌데….’ 이런 마음이 불쑥 올라오다가도 한순간 사라지게 만드는 남편만의 애정 표현법이 있다. 어떤 명품보다 효과가 강력한 소박한 마음의 표현이 그것이다.
산책하고 올 때나 산에 다녀오면 도토리나 알밤, 산딸기, 이슬 머금은 달맞이꽃 같은 걸 가져와서 테이블에 올려주면 그렇게 멋스러울 수가 없다. 산에서 꺾은 구절초나 쑥부쟁이로 꽃 화분을 만들어 학교에 갖다 주고, 바닷가에서 예쁜 돌멩이를 주워 와서 손에 꼭 쥐어주면 정겹기 그지 없다. 한번은 반 아이들 놀이지도용 윷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흘려듣지 않고 가벼운 오동나무로 아주 큰 윷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런 선물은 더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내가 과연 이런 걸 받을 만큼 자격이 있나 되돌아보면서 나도 잘 챙기려고 애쓰게 된다.
반 아이들의 일기장에도 한마디라도 더 표현해주려 노력한다.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난 일을 엄마한테 얘기해 웃게 해드리기’ 숙제를 내주거나, 미술 시간에 만든 작품을 부모님께 선물하라며 표현하는 법도 알려주려 한다. 사랑받고 있다는 믿음은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게 해준다. ‘말 안 해도 다 알겠지’가 아니라 서로 표현해주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건망증 실수를 감싸준
‘맥가이버 원장님’

이동호 / 32세. 한의원 사무장. 서울시 영등포구
 
건망증 때문에 계속해서 실수를 저지른 적이 있다. 약을 뽑을 때는 깨끗한 물을 사용해야 하기에 따로 물을 틀어놓는다. 저녁 즈음 약재를 다리려고 물을 틀어놓았다가, 깜빡하고 물도 안 잠근 채 퇴근을 했다. 아침에 왔더니 한의원은 한강이 되어 있었다. 벌써 네 번째다. 나는 왜 이럴까, 자책하며 마음을 졸이고 있는데 원장님의 반응은 의외였다.
“괜찮아,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앞으론 깜박 안 할 거야.”
원장님은 누구나 물이 틀어졌다는 것을 알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원장님은 자꾸 실수를 하는 직원을 야단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방지할까 고민하시고 방법을 찾은 것이다. 이후로는 그런 실수가 없었다.
실수를 할 때 탓하기보다 재발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원장님 덕분에 나 역시 모난 성격도 많이 너그러워지고, 건망증이 심한 걸 고치기 위해 메모 습관도 가지게 됐다. 그리고 나 또한 누군가의 잘못을 봤을 때 탓하기보다는, 무엇을 도와줄까를 생각하게 됐다.

 

 


 

정이 있어
더 따뜻한
주는 사람
되기

바쁠 때도, 부탁 전화도 밝게 반겨주던 ‘훈남’ 형

김일권 / 33세. 회사원. 경기도 부천시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형이 있다. 이 형은 언제, 누구라도, 항상 반갑게 맞아준다. 요즘은 다들 바쁘다 보니 전화를 걸어야 할 때 망설여질 때가 있다. 특히 뭔가 부탁할 때는 더 어렵다. 그런데 이 형은 어떤 상황에서도 “어, 그래, 그래, 일권이구나~” 하면서 밝은 목소리로 반겨준다. 한밤중이든 신새벽이든 전화를 받는 순간만은 상대에게 집중해주는 것이다. 형과 계속 연락을 하다 보니 어느덧 나도 비슷하게 행동하게 되었다. 누구의 전화든 하이톤으로, 언제나 반갑게 받아주게 된 것이다. 그것뿐인데, 어느새 나는 주위에서 꽤 괜찮은 녀석으로 통하게 되었다.
 


 

우리 팀의 피로회복제 ‘리액션의 여왕’

최진혜 / 33세. 방송작가. 경기도 부천시
 
우리 팀에는 항상 약간은 과도한 리액션으로 웃음을 짓게 하는 언니가 있다. 커피라도 타다 주면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타주다니 넌 천사가 분명해”라며 하트를 ‘뿅, 뿅’ 날려준다. 회의를 할 때면 “맞아, 맞아, 어떻게 너는 그런 생각을 하니, 대단하다” 하며 환하게 웃어주는 언니는 우리 팀의 피로회복제다. 언니의 넉넉한 리액션을 받다 보면, 나만 돋보이고 싶어 상대에게 무관심하거나 따듯한 말 한마디 돌려주지 못했던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에게 힘이 나게 해주는 리액션을 해주려 노력하게 된다. 엄지를 치켜들며 “너는 짱이야~!!”라고.
 


 

저녁에 가족이 오면 서로 안아주세요

유정열 / 52세. 고등학교 교사. 인천시 서구
 
우리 집에는 몇 년째 이어오는 관례가 하나 있다. 퇴근을 하고 집에 들어서면 가족이 서로 따뜻하게 안아주는 거다. 아내와 딸을 가만히 안아줄 때,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품에 안긴 아내와 딸아이의 행복한 표정만 봐도, 하루 동안 쌓인 온갖 스트레스와 피로가 다 날아가는 것 같다.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안아주는 것이 큰 힘이 된다. 내 곁에는 함께할 가족이 있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는 것이다. 딸이 요즘 고3이라 많이 힘들어하는데, 안아주고 나면 피곤한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본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 온기의 힘이 있어 밖에 나가서도 사랑을 나눠주게 되는 것 같다.
 


 

책상 닦아주기 35년, 가족 된 동료들

민명숙 / 55세. 공무원. 경남 산청군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일찍 출근해서 직원들의 책상을 닦아준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시작하게 된 책상 닦기가 벌써 35년이 넘었다. 처음에는 “고마 하지 마소~” “와 그라십니까~”라며 사양하던 동료들도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책상을 닦아주고 차라도 한잔 챙겨준다. 동료들도 가족적인 분위기라며 좋아한다. 갈등이 있어도, 서먹한 사이라도 매일 책상을 닦아주다 보면 서로 고마운 마음이 생겨 저절로 풀리게 된다. 조직이 화합이 되니까 자연히 일의 능률도 오른다. 작은 손길 덕에 동료들이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으니 큰 보람인 것이다.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으니 큰 보람인 것이다.


2010. 12. DECEMBER 월간마음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