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없는 학교로 잘 알려진 경기도 고양시 저동중학교. 2012년에는 학교 폭력 예방 우수 사례로 교육부 표창을 받으며 EBS 등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 중심에 인성복지부장을 맡고 있는 정연희(53) 선생님이 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정적인 기억에서 벗어나 밝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마음 빼기 교실을 연 것이다. 자신 역시 마음을 버리면서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었다는 정연희 선생님. 선생님도 아이들도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가는 정연희 선생님의 마음 빼기 이야기이다.
“자, 눈을 감습니다. 나를 힘들게 했던 마음들을 떠올립니다….”
저는 수업을 하기 전, 5분씩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버리고 싶은 마음을 조용히 떠올려보게 합니다. 겉으로는 평범하고 밝아 보이는 아이들도 버리고 싶은 마음을 써보라고 하면 ‘친구가 날 버렸을 때’ ‘아빠에게 죽도록 맞았을 때’ ‘시험에 대한 공포’ ‘중1 때 있었던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 등등 공책을 가득 채웁니다.
친구에게도 부모님께도 말할 수 없는 내면의 상처들이 하나씩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 기억들을 버리고 나면 ‘화가 나거나 슬프지 않다’ ‘뭔가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개운하고 상쾌하다’며 아이들 얼굴이 금세 밝아집니다.
요즘 아이들은 워낙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등에 노출되어서인지 빠른 속도로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고 마음에 쌓아둡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몸은 앉아 있지만 선생님 말이 귀에 안 들어오고, 계속해서 뭔가 말해야 되는 등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가진 아이들도 많습니다. 그렇게 머릿속이 시끄러우니 몸도 공격 성향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외로움도 참 많습니다. 복잡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까요. 각자 자기만의 마음세계 속에 갇혀 있으니, 친구랑 이야기를 해도 각자 자기 말만 하게 됩니다.
왕따 문제나 학교 폭력도 친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를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인해 오해를 하면서 시작됩니다. 순간순간 부정적으로 상대에 대한 사진을 찍어서 그걸 마음에 저장해놓고 그걸 실제인 양 믿어버리지요. 그런 마음 사진들을 버림으로써 친구들 간의 상처와 오해를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학교 폭력 예방의 기본이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문제를 일으킨 아이들에게 징계 대신, 일정 기간 동안 매일 1시간씩 마음을 버리는 활동과 봉사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부정적이고 폭력적인 마음을 버리도록 도와주니 아이들도 마음이 많이 편해졌다며 감사함을 많이 표현합니다. 그런 아이들의 변화를 접하다 보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마음 빼기를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요.
저 역시 12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엄격한 언니와 오빠들 밑에서 자라며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살림을 도맡아 하던 저를 연탄집게로 혼내던 언니의 무서운 모습은 제 마음속 두려움의 근원으로 자리했고 그 불안함과 긴장은 인생 전체에 영향을 미쳤지요. 그 후로는 미술 시간에도 늘 까만색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항상 잘해야 한다, 실수하면 안 된다, 남을 의식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바름에 대한 틀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러다 보니 선생님이 되어서도 우리 반은 공부도 환경 미화도 잘해야 되고 행동도 반듯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방과 후에 남겨서 기를 다 뺄 때까지 잔소리를 해댔지요.
새 학기가 되면 늘 다짐했습니다. ‘올해는 아이들한테 화 안 내고 짜증 안 내고 참 재미있는 교사가 되자.’ 하지만 아이들과는 전혀 가까워질 수가 없었고, 방학마다 보약을 지어 먹어야 할 정도로 몸도 아팠습니다.
이런 삶은 아니구나, 사람의 마음, 내 마음이라는 것이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인의 소개로 마음수련을 알게 되었고 방학을 이용해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3주가 지나니 ‘이제 살겠구나’ 소리가 저절로 나오더군요. 어떤 사람도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유로움을 처음 느꼈습니다. 수련을 하며 남을 의식하는 마음, 열등감, 불안함들을 수없이 반복적으로 버린 결과였습니다.
그동안 교사로, 아내로, 엄마로 살면서 주변 사람을 참 피곤하게 했었구나 싶어 미안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큰아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습니다. 하지 말라는 행동은 다 하는 문제 학생이어서, 아이 학교의 학생부에 불려 다녔지요. 같이 근무했던 동료 교사들 보기도 민망했고, 남의 자식을 지도하고 있는 교사로서 당시 제 심정은 너무나 처참했습니다. 아이는 절대 내 맘대로 할 수 없구나…. 저는 수련을 하며 아이에게 모범적인 삶을 강요했던 것조차 모두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아이도 저의 변화를 알아차렸는지 마음수련 청소년 캠프에 가겠다고 하더군요. 그 후로 수련을 꾸준히 하고 나더니 “어릴 때 엄마 아빠가 다투던 모습이 마음에 남아 늘 답답했고, 엄마도 항상 무섭게 느껴져 학교 가서도 긴장을 하고 식은땀을 흘렸는데, 그때의 사진을 버리고 나니 이제야 숨이 쉬어지는 거 같애. 고마워, 엄마”라고 하는데 정말 감격스러웠지요.
아이와 함께 마음수련을 계속하며 교사로서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달라져갔습니다. 소위 문제 학생이라는 아이들도 학교에서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는 절대 알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말썽을 피우는 아이들도 편견이나 미움 없이 대하게 되고, 무엇보다 아이 마음에 내재된 분노와 화를 버릴 수 있도록 진심으로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축제 등 행사 준비를 할 때도 예전에는 못 미더운 마음에 제가 다 떠맡았다면, 지금은 결과를 떠나 다른 선생님들과 호흡을 맞추고, 또 아이들을 알아가는 과정 자체를 기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겐 아이들이 마음 빼기를 통해 힘든 상처에서 벗어나고 밝게 성장해나가는 걸 지켜보는 것, 그 이상 기쁘고 감사한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청소년기에 꾸준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교육 과정을 선생님들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더욱 넓은 시야로 아이들을 포용하고, 아이들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행복 가득한 학교를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