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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본고향을 아는가 근원이고 본래인 본바닥이 너의 고향이 아닌가

그대는 본고향을 아는가

인간이 태어난 고향이 고향이 아니고

근원이고 본래인 본바닥이 너의 고향이 아닌가

고향에는 걸림이 없고 막힘이 없고 대자유이고

객지 나가 죄 때문에 고향 오기를 싫어하는 이들은

객지에 허상을 많이 가지고 그 속에 살아서

고향을 잊고 고향 따위는 생각조차 않고 있구나

고향의 부모님은 객지에서 떠돌아다니는

고생하는 자식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플 거야

고향의 부모님은 객지에서 고생하지 말고

고향의 세상 다 줄 테니 또 죄를 다 씻게 해줄 테니

돌아와서 깨끗한 몸 마음으로 살으라고 하신다

 

죄 속에서 재미라고 생각하고 죄 속서만 살고 있으나

죄 속임 모르고 있으니 정말이지 가슴 답답한 지경이구나

객지에서 객사하여 자취가 없이 사라지지 말고

고향 와서 객지 죄 벗고 새 사람 되어

영생불사신 되어 고향에서 부모님 모시고 영원히 살자

근심도 없고 걱정도 없고 스트레스도 없고

탐진치칠정오욕이 없고

인간이 가진 고뇌의 일체도 없는

인간의 관념 관습으로부터 벗어나 자유요 해탈이라

인간세상의 모든 것을 넘어선 자리라

이 고향에서 영원히 마음 편히 자유로이 살자

 

우 명(禹明) 선생은 마음수련 창시자로서, 인간 내면의 성찰과 본성 회복, 화해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UN-NGO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교육자협회로부터 ‘마하트마 간디 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 <이 세상 살지 말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 가서 살자> <진짜가 되는 곳이 진짜다> <살아서 하늘사람 되는 방법> <하늘이 낸 세상 구원의 공식> <영원히 살아 있는 세상> <세상 너머의 세상> 외 영역본 등 다수가 있습니다.

기러기에게 배우다

겨울 하늘에 ‘V’자를 수놓으며 기러기 떼가 날아갑니다.
한겨울을 잘 보내기 위해 멀리 시베리아에서 찾아든 것이지요.
그냥 이맘때 흔히 보는 철새 중 하나라 생각했는데,
기러기들이 ‘V’자로 날아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선두부터 서로 날개를 퍼덕이며 공기의 저항을 감소시켜서
뒤의 기러기가 손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문제는 누가 ‘힘들고 위험한 V자 대형의 선두를 맡느냐’입니다.
왜냐하면 선두의 기러기는 거친 맞바람을 가르면서 비행해야 하므로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모해서 병이 들기 쉽고,
천적의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도 크니까요.
그런데 놀랍게도 기러기들은 힘이 센 누구 하나가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가 번갈아가면서 선두 자리를 분담한다는군요.
앞장선 기러기가 지치면 뒤로 물러나고
뒤에 있던 기러기가 차례로 앞으로 나서며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기러기들은 선두에 선 기러기에게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번갈아가며 ‘끼룩끼룩’ 구령도 붙여준다고 합니다.
그렇게 소리로써 자신뿐 아니라 다른 기러기들에게도
‘우리는 함께 멀리 날아갈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을 주는 것이지요.
간혹 대형에서 벗어나는 기러기가 생기면 다른 기러기가 다가와
쪼아대거나 야단치는 등 나름 통제하는 시스템도 있다 합니다.
뿐만 아니라, 먼 거리를 비행하다가 병에 걸리는 기러기가 생기면
가족 또는 동료 두세 마리가 함께 이탈하여 아픈 기러기를 돌보고,
이후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함께 이동한다고 합니다.
아픔도 공유하며 끝까지 함께하는 것이지요.

늘 자연에서 배우지만 기러기에게도 배울 게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리더의 역할과 자세, 소통하고 협동하는 정신 그리고 사랑과 배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코끝을 스칩니다.
그래도 기러기 떼를 떠올리면 왠지 마음만은 훈훈해지는 것 같습니다.
더욱 따뜻하고 행복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아토피 전문 한의사 박치영씨의 마음수련 이야기

아토피 치료에서의 마음빼기 원리를 설명하는 박치영 한의사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피부 계통의 명의로 알려진 박치영 한의사. 그가 환자들에게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오랫동안 심한 피부병을 앓으며 생긴 환자들의 마음의 병까지도 함께 치료해주고 싶기 때문이다.

보통 서양의학에서 아토피는 난치성 질환이라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90% 이상 치료된다고 확신한다. 그 치료법의 근본 원리는 바로 ‘독소 빼기’. 박치영 한의사가 전하는, 행복한 삶을 위한 몸 마음 빼기 이야기. 정리 최창원 사진 김혜진

피부 질환을 고치려면 먼저 그 사람을 이해해야 해요. 살아온 환경은 어떤지, 작업 여건은 어떤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그래서 환자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오랫동안 아토피 같은 피부병을 앓고 나면 마음까지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자신의 꿈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고, 심하면 대인기피증이나 우울증까지 앓기도 하죠.

특히 요즘에는 ‘국민병’이라고 할 만큼 아토피 환자가 많아졌는데, 아이가 어릴수록 부모는 말도 못하게 힘들어요. 통증보다 참기 힘든 게 가려움인데, 하루 종일 긁고 보채고 우는 데다 몸을 하도 긁어서 온몸에 피가 나는 걸 봐야 하니까요. 정말 하루 종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꼭 낫게 해드리고 싶어집니다.

“잘 오셨습니다. 피부병은 고칠 수 있는 병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같이 치료해봐요.”

이런저런 치료 방법들을 시도해보다 좌절하신 분들이 많기에,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피부병이 낫는 데는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해요.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6개월에서 1년 정도의 시간을 잡지요. 점점 염증이 사라지고 깨끗한 새살이 돋아나면서 환자들 얼굴에 웃음이 피어날 때 저도 너무 행복해져요.

피부병 치료의 희망을 기록한 나무

작년 연말 병원 소망트리에 마련된 소망카드에 적은 환자들의 소원. 피부병이 나은 후 희망, 동기를 부여하고 싶어서 만들었다.

사실 서양의학에서는 아토피는 난치성 질환이라고 해요. 하지만 저는 그동안의 경험상 90% 이상은 치료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치료 원리는 단순해요. ‘배독 요법’이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빼기 치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잘못된 식습관이나 생활 습관으로 생긴 내부의 염증이나 독소들을 땀으로 빼내는 거예요. 그래서 한약 처방과 함께 목욕법, 운동법, 식이요법 등을 병행합니다. 좁은 공간에서도 할 수 있는 절 운동을 권하기도 해요. 30분 정도 절을 하면 땀이 나면서 독소도 제거되고, 아무 생각이 없어지면서 스트레스 관리도 되거든요.

피부는 내부 장기의 건강 상태를 반영하는 거울과 같아요. 동의보감에 ‘폐주피모(肺主皮毛)’라는 말이 있는데, 즉 폐가 피부와 털을 주관한다는 말입니다. 아토피를 예를 들면, 폐와 호흡기를 중심으로 한 전신의 불균형에서 온 이상(atophos) 현상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신체에서 발생하는 열이나 탁한 기운이 배출될 수 있도록 폐 기능을 향상시켜 주고, 장기의 균형까지 잡아주는 방법을 통해 근본적인 치료를 하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의 빼기도 정말 중요합니다. 염증(炎症)이라고 할 때, 염은 불 화(火)자 두 개가 붙잖아요. 오늘날 아토피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많아요. 화병이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가 당황하거나 열 받으면 얼굴이 붉어지잖아요. 긴장, 우울, 분노, 근심, 걱정 같은 마음의 스트레스들이 몸의 기혈을 막고, 혈액의 흐름을 정체시키니까, 피부에도 영향을 끼치는 거죠. 그래서 오랫동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피부도 칙칙해져요.

마음빼기를 권하는 아토피 전문 한의사 생기한의원 박치영 원장

생기한의원 로고는 “진심으로 낫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져서, 너무 고마워 뭐라도 해드리고 싶었다”는 디자이너 환자분이 아무 대가 없이 해준 것이다. 그리고 치료된 환자들 중엔 고맙다며 선물을 들고 찾아오는 분들도 많다. 한의원 벽면을 채운 환자들과 찍은 사진 등등을 보면 그가 환자들과 얼마나 진심으로 교감했는지 느낄 수 있다.

스트레스가 많은 분들에게는 마음 빼기를 함께 권해요. 피부 관리 노하우를 묻는 분들에게도 고가의 화장품이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보다 빼는 게 훨씬 더 좋은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 스트레스를 빼내고, 몸에 안 좋은 것을 덜 먹고, 등산 운동 반신욕 등을 통해서 독소를 빼내는 습관이 몸에 배면 피부 건강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빼기 치료’를 이해하게 되고, 한의사로서의 비전을 갖게 된 것은 마음수련을 통해서였습니다. 마음수련은 대학 본과 2학년 때 하게 되었는데, 마음수련의 원리는 정말 과학적이고 간단했어요. 내가 쌓아온 마음을 빼버리면, 원래의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죠. 한의학에서는 사람을 소우주라고 하잖아요. 실제로 마음수련을 하다 보니까 내가 우주고, 사람이 우주더라고요. 그걸 알고 난 뒤로는 한의학이 너무나 잘 이해가 갔어요.

그러다가 운 좋게 공중보건한의사 생활을 하면서 피부 질환 치료에 엄청난 노하우가 있는 한의사분을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그분의 스승님도 만나게 됐는데, 치료의 원리는 빼기였어요. 이미 마음수련을 하면서 빼기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딱 다가왔지요.

제대 후에 한의원을 개원해서, 본격적으로 환자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중증의 아토피 환자, 건선, 지루성피부염, 두드러기, 여드름….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만나고, 치료하면서 모든 피부병이 ‘빼기의 원리’로 나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지요. 그리고 실제 낫는 병인데도 ‘아토피는 불치병’이라고 인식하는 의사들이 많은 게 안타까워서, 책도 쓰고 무료 강의도 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노하우를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거든요.

박치영 한의사의 마음수련 이야기

진료받는 것을 겁내는 어린아이들이 오면 가운을 벗거나, 아예 대기실에서 편안하게 진료를 해주곤 한다.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 옷을 입는 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치료한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제가 단순히 피부의 병만이 아니라 삶의 희망까지 줄 수 있는 의사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에 한 환자분이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내셨어요. 아토피가 너무 심해서 연애 한번 못해본 아가씨였거든요. 온갖 좋다는 방법을 다 써 봐도 안 되니까 마지막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저희 한의원에 온 거였어요. 1년 정도 꾸준히 치료받으면서 나았는데, 그 아가씨의 소원이 연애였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신다니 정말 기쁘잖아요. 그래서 더 많이 연구하고 노력하게 돼요.

“원장님은 행복하십니까?” 언젠가 한 환자분이 진료 중에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느닷없는 질문에 당황했지만 “예, 더 이상 바랄 게 없어요”라는 대답이 저도 모르게 나오더군요. 그분이 보시기에 제가 늘 행복해 보여서, 언젠가 꼭 묻고 싶으셨대요.

사실 한의사라는 직업이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평수 없는 감옥에 산다는 말을 많이 해요. 하루 종일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고 봐야 하는 직업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다행히도 학생 때부터 매일매일 마음을 빼면서 살다 보니까, 갈수록 세상에 대한 믿음도 생기고, 점점 편해져간 거 같아요. 지금도 늘 하루를 돌아보며 저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왜 회의를 하나?

하루에 혹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회의를 하시는지요? 업무회의, 부서회의, 팀장회의, 간부회의에다 소소한 회의까지 합치면 하루가 회의만 하다 끝날 때도 있습니다. 그나마 이왕 시작한 거 깔끔하게 결론이나 나면 좋으련만 이 얘기 저 얘기 하다 산으로 가고, ‘그래서 결론이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할 때도 있고요. 이런 날이 반복되면 ‘회의(會議)가 회의(懷疑)적이군’ 하는 말이 절로 나오지요. 회의를 잘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지금 우리는 어떤 회의를 하고 있는지, 나는 어떤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지 점검해봅니다. – 편집자 주

회의 참석자들의 지위가 다양할 때, 직급이 낮은 직원은 상관 앞에서 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내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에 당신이 의장이라면 분위기를 잘 살펴서 상관이 말을 하기 전에 직급이 낮은 사람들이 먼저 정보를 제공하거나, 의견을 표출할 기회를 마련해 주어라. 이때는 무대 감독의 역할을 어느 정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 수줍음을 많이 타고 말하기를 꺼려하는 사람을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직급이 낮은 사람이 발언하는 것을 환영하고 격려해줘야 한다.

수 비숍

조직이 잘못 짜여 있으면 회의에 그대로 나타난다. 목표를 달성하는 경영자들은 ‘우리가 회의를 개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슨 결정을 내리려고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시켜야 한다.

피터 드러커

직장인들은 주요 업무 중 하나인 회의에 대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54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회의 효율성은 5점 만점에 평균 2.8점에 그쳤다. 회의가 비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결론은 없고 시간만 낭비하기 때문에’가 47%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 ‘항상 결론은 상사가 결정하기 때문’ 26.5%, ‘회의를 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인데 회의를 하기 때문’ 14.6%, ‘의견을 내는 사람만 내기 때문’ 7.3% 순이었다.

또한 전체 응답자의 42.1%는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면 내 일이 될 것 같아서’가 30.7%를 차지했다.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아서’ 28.4%, ‘의견을 내도 반영되지 않아서’ 25.7%,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15.2% 등의 답변도 다수였다. 한편 직장인들은 ‘비효율적인 회의’를 일주일에 평균 3.2회 정도 참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2회’가 44.6%로 가장 많았으며 ‘3~4회’ 26.5%, ‘5~6회’ 15.1%, ‘전혀 하지 않는다’는 응답도 4.6%였다.

2.9:1은 무엇일까? 이를 로사다 비율이라고 하는데, 긍정성과 부정성의 비율을 말한다. 바버라 프레드릭슨(심리학자)과 마셜 로사다(수학자)가 60개 기업의 회의 내용을 녹취해 긍정적 단어와 부정적 단어의 사용 비율을 분석한 결과, 그 비율이 2.9 이상이면 번성하고 그 미만이면 쇠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정적인 말을 한 번 할 때, 긍정적인 말을 세 번 이상 해야 좋은 인간관계가 유지되고 조직이 발전할 수 있으며, 긍정적인 단어 사용이 서로의 이해를 돕고 조직의 성과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회의, 서서 해보면 어떨까요?

미국 미주리대학 연구팀은 미국 내 1백 11개의 회의 운영 실태를 관찰한 결과 의자에 앉아서 하는 회의가 서서 진행하는 회의보다 시간은 더 많이 소요되는 데 비해, 의사 결정의 질적인 측면에서는 결과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19~44세 학생 5명을 한 조로 구성, 56개의 서서 하는 회의와 55개의 앉아서 하는 회의에 참석케 했다. 그 결과 서서 하는 회의보다 앉아서 하는 회의에 34%가량의 시간을 더 많이 빼앗겼지만 서서 하는 회의에 더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앉아서 하는 회의가 더 많은 시간을 들였기 때문에 창조적이고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회의에 대한 예의

1. 지각은 없다. 10시 3분은 10시가 아니다. 2. 아이디어 없이 회의실에 들어오는 것은 무죄, 맑은 머리 없이 회의실에 들어오는 것은 유죄. 3. 누군가 아이디어를 이야기할 땐 마음을 활짝 열 것. 인턴의 아이디어에도 가능성의 씨앗은 숨어 있다. 4. 말을 많이 할 것. 비판과 논쟁과 토론만이 회의를 회의답게 만든다. 5. 회의실 안의 모두는 평등하다. 아무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팀장의 아이디어에 대해서도 무자비해야만 한다. 누가 말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6. 아무리 긴 회의도 한 시간을 넘기지 않는다. 7. 회의실에 들어올 땐 텅 빈 머리일지라도 회의실에서 나갈 땐 각자 할 일을 명확히 알아야만 한다. 다음 회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김민철. <우리 회의나 할까?>(사이언스북스) 중에서

모두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회의 – 자신의 권력을 놓아보자

효율적인 회의에 대해 수많은 조언과 방법이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회의가 비생산적이고 피곤하며 불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장 선진적인 글로벌 컨설팅 회사조차 이런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런 회사들도 회의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무언의 회의’를 자주 경험하곤 한다. 문제는 회의 형식이나 시간, 장소가 아니라 회의 자체에 있다. 회의에는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중요한 사회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직급에 따른 힘(회의 권력)과 관련된다. 특히 수직적인 체계,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한 조직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회의에서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적극적인 사람은 둘 중 하나다. 그 회사 내에서 직급이 높거나 아예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회사에서 직급이 높은 사람은 회의 자체에 큰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회의에서 자신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못하게 된다. 때문에 부장이 주최하는 회의에서 과장은 위험을 느끼고, 사장이 주최하는 회의에서 부장은 움츠러든다. 회의 방식을 아무리 선진적인 형태로 바꾸더라도, 회의의 본질적관계가 변화되지 않으면 여전히 참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을 다물게 된다. 사장은 직원들에게 “우리 한번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자, 다 들어줄게”라고 말하지만, 정작 직원들은 “또 우리를 괴롭히는구나…” 하면서 힘들어할 뿐이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 커피를 마시며 신나게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회의가 시작됨과 동시에 후천적 언어 장애를 겪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매우 어렵다. 누군가 자신의 회의 권력을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곧 편집팀 회의에서 편집장이 자신의 회의 권력을 포기해야 다른 부서 사람들이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회계팀 발표자가 자신만의 특별하고 고유한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 참석자들이 회의 내용을 이해하고 말할 수 있게 되며, 대표이사가 자신의 권력을 근거로 발표자의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으려 할 때 비로소 회의 참석자들이 입을 열게 된다. 결국 회의도 사람과 사람이 만나 행복감을 느끼고 대화할 때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번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회의에 참석하는지 점검해보면 어떨까. 간단하지만 가장 어려운 것, 자신의 직위를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회의에 함께하는 것이 효율적인 회의의 핵심인 것이다.

이준영. 41세. 웹서비스 컨설턴트

그 어떤 평가도 높고 낮음도 의미 없는,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재미에 관한 이야기들

진정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나는 ‘낭만 스타일’

강영순 70세. 직장인.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2동

나의 하루는 새벽 4시에 시작한다. 책도 보고, 운동도 하고, 새벽 5시 50분이면 집을 나선다. 그리고 집에서 지하철, 그리고 또 지하철에서 직장까지 40분을 걸어서 출근을 한다. 그렇게 매일 걷는 것만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다.

노후를 대비해 자동차 운전 기능강사 자격증을 준비했는데, 두 번의 고배 끝에 1, 2차 모두를 합격했다. 그리고 요즘은 직장에 다니면서, 일이 있을 때마다 틈틈이 파트타임으로 운전연수를 해준다. 이 나이에 건강히 일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 칠십 인생을 돌아보면 인생살이가 참 쉽지는 않았다. 가난한 살림에 쉬는 날 없이 근면하게 일을 해왔지만, 재밌게 잘 산다는 게 어려웠다. 인생살이 긴 거 같아도 벌써 왔구나 후회하는 때가 많다. 나머지 인생은 정말 잘하고 재밌게 살아야 될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요새 시라고 할까, 하나 지어놓고 노래 비슷하게 부르는 게 있다. ‘참자송’과 ‘웃자송’이라고 할까. 그냥 트로트 가락을 붙여서 매일 흥얼거린다.

‘참자 참자 참자 참아야 한다 / 참다 보면 행복이 온단다 화가 나도 참고 억울해도 참고 참으면 웃음 온단다 참자 참자 참자 참자 참아야 한다 / 참아야 행복 온단다 웃자 웃자 웃자 웃자 웃어야 한다 웃다 보면은 행복이 온다…’

출퇴근할 때, 그리고 화날 일이 있을 때도 계속 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면 하루가 그냥 즐겁다. 집을 나설 때면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을 할까’ 생각하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강영순, 오늘은 무슨 좋은 일을 할까? 그러면서 차를 타고 가면서 나보다 나이가 적든 많든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자리도 양보하고,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사람 있으면 들어주고 버스 기사와 인사도 주고받고. 그래서 하루에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은 모르는 사람하고 인사를 주고받으니 더 삶이 즐거워지는 거 같다.

작년에는 집사람과 2박 3일 강원도 고향으로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일을 하면서, 즐겁게 인생을 만들어가고 싶다.

이제 결혼하여 가정을 잘 꾸려가고 있는 아들딸들도 이렇게 인생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얼마 전 아들딸에게 ‘서로서로 도우면서 재밌게 살라’는 내용으로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지금부터 55년 전, 나의 고향 문경새재 고개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기호 작.

<무제> 53×45cm

Oil on canvas / 2008

‘아들딸아 55년 된 이야기 하나 하마. 문경새재 99고비를 넘을 때 이야기다. 그때는 포장도 되지 않는 도로를 시골 버스 막차가 막 올라가고 있었다. 근데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버스를 가로막아 그냥 밀어붙이니 호랑이를 피하여 갔다. 그런데 다음 커브 길에 또 버스 앞을 가로막는 것이 아니겠는가. 또 피해서 가기를 여러 번. 계속해서 호랑이가 나타나니 운전수가 말하길 “웃옷을 호랑이에게 던져서 옷을 받는 사람은 여기 남아서 호랑이의 밥이 돼야 한다” 했다. 그리고 운전수가 먼저 던지니 호랑이는 받지 않았다.

 

승객들이 다 던졌는데도 아무도 안 받고 장가도 안 간 삼대독자 노총각이 옷을 던졌더니 그때야 냉큼 호랑이가 받았다. 총각은 울면서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한 할아버지 한 분이 “나는 이제 살 만큼 살았으니 총각은 차에 타라”며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총각 역시 그럴 순 없다며, 할아버지에게 타라고 했다.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두 사람만 남기고 버스는 떠나버렸다. 노총각과 할아버지는 같이 손을 잡고 호랑이를 피하려는데, 10분도 채 안 되어 총각의 옷을 놓고 호랑이는 사라져버렸다. 근데 그때 천둥 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버스가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그 버스가 사고가 날 줄을 안 호랑이는, 그렇게 막아선 것이었고 정 안 되자, 삼대독자라도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남을 돕고자 하는 희생정신 때문에 같이 살았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거 같다. 이 아버지도 다단계라는 지울 수 없는 잘못을 해서, 나와 우리 집안 식구들 모두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느냐. 너희들은 돈을 빨리 벌려고 하면 안 된다. 인생은 길다. 인생길 정답은 없지만 명답은 있단다. 적어도 이십 년, 삼십 년을 내다보고 후회될 일은 하지 마라. 서로 돕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힘든 일은 내가 먼저 하고, 좋은 일은 상대방을 먼저 챙겨주는 습관이 내 몸에 들게 되면 덩달아 나도 잘 풀린다. 좋은 일 하고 나면 내 마음이 흐뭇해져서 항상 웃음 띤 얼굴이 된다.

 

이웃과 함께 형제와 함께 한세상 다하는 날까지 말도 좋은 말만 골라서 하며 살아가야 한다. 건강도, 화목도 친척 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도 내 할 탓임을 명심해다오.

 

사랑하는 아들과 딸 식구들이 열심히 아름답게 살아주니 고맙다. 살다 보면 서운한 일도 있겠지만 이해하고 양보하면서 예쁘게 아름답게 재밌게 살아다오.’

우리는 누구나 산타 스타일

한송이 26세. 중앙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

서울 관악구에는 특별한 우체통이 있다. 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빨간색 우체통이 아닌 지역 주민의 소망이 가득한 파랑 우체통, ‘관악소망우체통’이 바로 그것이다. 관악소망우체통은 지역 주민들이 꼭 이루었으면 하는 소망을 넣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소망은 우리 지역 주민이 힘을 모아 함께 이루게 된다. 지역 주민들 모두가 산타가 되어주는 것이다.

어느 날 ‘편하게 외출하고, 한글 공부를 꼭 하고 싶다’는 한 70대 어르신의 소원이 우체통에 접수되었다. 무릎과 허리가 좋지 않아 집 앞 시장에서 장을 보는 것조차 힘들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으시고,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관계로 간단한 은행 업무도 혼자서 해낼 수 없는 할머니셨다.

소망이 접수된 후 지역 내에 거주하며 활동하는 지역 전문가로 구성된 ‘솔루션위원회’가 모여 회의를 했다. 어떻게 이 어르신의 소원을 이룰 것인가. 무엇보다 어르신이 보다 편하게 외출할 수 있도록 ‘보행보조차’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관악구 내에 보행보조차 같은 실버 제품을 제작하는 업체들에 나눔 제안서를 보냈다. 다행히 한 업체에서 멋진 보행보조차를 무료로 보내주었다. 한글 교육을 위해서는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다. 두 명의 대학생이 번갈아 일주일에 2번씩 어르신 댁에 가서 한글을 가르쳤고, 3개월 정도가 지나면서 이제 어르신은 당신의 이름과 할아버지 이름까지 멋지게 쓰실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소원을 이루고 너무 고맙다며 눈물 흘리시는 모습에 나도 참 기뻤다.

2년 전, 처음 사회복지사로 이 복지관에 오면서 나는 막 시작된 소망우체통 사업의 담당자가 되었다.

정기호 작.

<무제> 90×72cm

Oil on canvas / 2005

소망우체통에는 한 달에 30명 정도의 소원이 들어온다. 아들을 찾고 싶다,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데 내복을 선물해드리고 싶다 등 정말 다양한 사연들이 접수된다. 때로 생활수급비가 끊겨서 앞으로 생활이 걱정이다, 난방이 안 돼서 너무 춥다, 집에 있는 큰 가구가 내려앉았다 등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다. 매달 소원 중에서 네다섯 분 정도를 선정해서 그분들의 소원을 들어줄 산타를 찾기 시작한다. 소원에 따라서 지역 구민들이 가진 물품, 재능, 시간 등을 나눌 수 있는 산타를 찾는 것이다. 자신에게는 작게 보이는 자원들도 함께 모이면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마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시어머니와 멋진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주부의 소원은 지역 내 영화관의 티켓 나눔으로 ‘영화데이트’라는 소망이 성취되었고, 연기를 배우고 싶다는 10대 친구의 소원은 지역 내 극단의 재능 기부로 연극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또한 아내가 치아가 없어 힘들게 식사하는 모습을 안쓰러워했던 한 할아버지의 소원은 지역 내 치과의 재능 기부로 이루어졌고, 아이에게 받아쓰기를 가르쳐달라는 다문화가정의 중국인 엄마의 소원도 자원봉사 대학생들의 지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렇게 소원을 이루는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볼 때마다 우리가 가진 것을 손톱만큼만 나누어도 이 사회가 확 달라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소원을 이뤄드리기 위해 일반 업체에 연락을 하면 50군데를 돌아야 1군데에서 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힘들고 지칠 때도 있지만 마지막 한 군데에서 해주겠다고 하면 정말 49군데에서의 문전박대는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기쁘다.

마음은 있어도 막상 나눔을 어떻게 해야 할 줄 모르는 분들, 아직 자신 안의 산타 스타일을 드러낼 기회를 못 가진 분들도 많은 듯하다. 그런 분들을 찾기 위해 더 열심히 발품을 팔까 한다.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누며 누군가에게 마법을 만들어주고, 그래서 세상이 더욱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우리 안의 산타 스타일이 계속 살아날 수 있기를.

난 불량엄마 스타일

김선미 42세.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 저자

난 불량엄마다. 요즘 개나 소나 다 간다는 주말 캠핑 한번 가본 적 없다. 격주로 다닌다는 가족 나들이며 박물관 미술관 나들이 간 지는 백 년쯤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하나밖에 없는 4학년 딸내미 철철이 새 옷 사준 지도 꽤 된 거 같다. 제대로 돌보지도 못한 사이 소녀시대마냥 쑤욱~ 커버린 녀석의 기럭지 덕분에 엄마 옷 몇 가지 주고 같이 입자고 했더니 녀석 좋다고 입고 다닌다.

학원은 한 개도 안 보낸다. 1시 40분,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연신 논다. 공기놀이, 줄넘기, 책 보기, 장기, 바둑, 자전거 타기, 그림 그리기, DVD 보기…. 일하는 엄마 덕분에 집 앞 할아버지 댁에서 입에 단내가 나도록 놀고 있는 초등 4학년 딸내미를 둔 난, 내가 봐도 불량엄마다.

대한민국 맘이라면 누구나 내 자식 교육에 관해서만큼은 다들 눈에 불을 켠다. 미친 정보력과 촌각을 다투는 내 자식 매니지먼트로 하루하루가 바쁘다. 백만 원이 넘어가는 벤츠급 유모차, 수입 장난감, 알록달록한 메이저 브랜드의 교구, 시간당 3만 원짜리 놀이 수업, 대학 등록금보다 더 비싸다는 영어 유치원과 학원. 그걸 챙겨야 교육에 관심 많고 영리한 엄마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저 세월아 네월아~ 띵까띵까 책만 읽혔다. 그런 불량엄마의 자식으로 태어난 우리 아이 지금 어떻게 됐냐구?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 원~^^.”

내 코가 석자라 내 삶 챙기기도 바쁜 사이 다행히 하은이는 제법 매력적인 아이로 커버렸다. 해리포터는 원서가 재밌다고 읽고 독서 수준 열라 높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녀석의 매너와 센스, 삶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깊은 몰입과 자립심 등등.

어차피 평생 품에서 챙겨줄 수 없는 게 내 자식이다. 그렇다고 네가 알아서 살아라, 방치해서 키워서는 더더욱 안 되는 바. 낳아놨으면 잘 키워야 하는 게 관건이다.

하은이가 지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루며 강력한 내면의 힘으로 생활도, 관계도, 놀이도, 학업도 즐기며 자신 있게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은 사실, 어린 시절 다른 사람 신경 쓰지 않고 녀석과 나누었던 눈빛 나눔, 24시간 징그러운 피부 접촉, 마음 나누기였다. 그리고 그 속엔 책이 항상 있었다. 남들 손가락질받으며 집에 녀석이 읽을 전집과 어미의 양식과도 같은 육아서를 계속 들이고, 새벽 3시가 넘어가도록 애가 원할 때까지 밤새 책을 읽어주며 녀석의 눈빛과 몸짓의 의미를 이해하려 애썼었다. 사실 그게 나이 든 어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도 했다.

남들처럼 밤새 인터넷 뒤져 새로운 육아 정보 꿰차고 휘황찬란한 육아 용품 들여 신식으로 키워야 하는 거 아닌가, 하며 왜 안 불안했겠는가. 헌데 녀석과 24시간 찰싹 붙어 눈과 몸을 비비대며 지내다 보면 내 아이에게 적합한 육아법이 새순 돋아나듯 내 마음과 머릿속에서 오롯이 돋아났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다른 게 아닌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고 믿어주고 허용해주는 거라는 게 세포 사이사이 스며들었다. 미친 듯이 사랑해주고 뽀뽀해주기만 하면 됐다. 아이도 애를 쓰며 맨땅에 헤딩하는 어미의 노력을 그 맑은 눈과 몸으로 느끼며, 어미를 품고 이해하고 신뢰해주었다. 그 신뢰의 힘이 세상으로 이어져 누굴 만나든 생기와 에너지가 넘쳤다. 어찌나 예쁜지, 어찌나 기특한지….

정기호 작.

<여인과 새> 72×60cm

Oil on canvas / 2000

까꿍이 시절 5년을 미친 듯이 육아에 올인한 후 손 탁탁~! 털고 세상으로 나온 엄마. 그로 인해 홀로 헤쳐 나가야 하는 일들이 다른 아이들보다 턱없이 많았지만 녀석은 너무도 잘 이겨내 주었다. 아직 어린애한테 너무한 거 아니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조언을 가장한 비난들. 그래, 총알이 가슴팍을 관통하는 느낌이 그랬으리라. 헌데 지금은 그 힘겨운 시간들이 또 5년을 지나고 나니 홀로 당당히 선 녀석과 내가 있다. 녀석은 녀석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의 삶에 적당히 ‘관여’만 할 뿐, 깊이 간섭하거나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아니 이젠 그러지도 못한다. 숙제도 준비물도 시험도 친구 관계도 아이 스스로 해야만 했던 척박했던 초등 생활. 울고 불며 전화통 붙잡고 허둥대던 모녀의 모습은 추억 속에만 있을 뿐 이젠 편안하게 농담 따먹기 하는 두 친구가 그 자리를 대신해 있다.

난 지금 내 딸의 삶보다 내 삶에 더 관심이 많다. 내가 지금보다 더 멋져지면 녀석은 그대로 따라오니까. 어미의 멋진 뒷모습을 보면서!

One Speaks And Acts According To What His Mind Holds

The mind world of man, filled with what belongs to the world, is not real but false images. One who is inside those false images can only speak of what his mind holds but these are only his preconceptions and opinions. Since those who live in the false human world can only speak and act according to what is in their minds, those who speak and act in a way that fits the time they are in live a slightly better life. Their lives and actions reflect the minds that they have taken in.

In any case, the human mind has made a selfish self-made world that cares only about himself. In this world, doing well for himself, being the best and boasting about himself is everything.

However when his human mind disappears and becomes God’s mind, man will live a truly joyful life. He will live divinely; he will have complete freedom and liberation, be without worries and work in the land of God. Being selfless – literally having no self – he will work for the benefit of others and live amassing blessings in the land of righteousness while he is alive. Since the land of righteousness has no death, he will know the oneness of life and death. The land of forever-living immortals where one does not die after death but lives as God, is the land of righteousness. This is what it means for what is false to become true.

When man becomes a true person and he lives as one, he will also do well in society, in the world. The best path for all people is to become complete and true because the correct definition of living well is to live as Truth and live in the land of righteousness.

The first priority in education should be to teach people to become Truth before teaching them the skills and knowledge to make a living. If this happens, the entire world will become more prosperous. This is because people will live for others if the level of their consciousness become higher, or in other words if they come to their original senses. Only when we change our minds to that of Truth that is God, will we be able to live together as one.

When we are reborn with the mind of the sky – or in Korean, Haneol, which literally means one mind – everyone will have wisdom; no one will behave foolishly, and we will no longer be trapped in our individual mind worlds. Our actions will produce true results and everyone will live well and happily. Changing our minds from the false mind to the true mind is the most urgent matter at hand. When this happens, it will become a world where people can live with ease of mind.

Woo Myung founded Maum Meditation. For his outstanding dedication to the service of humanity, he was awarded the Mahatma Gandhi Peace Award by the United Nations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Educators for World Peace (IAEWP). He is the author of numerous books including World Beyond World, The Way To Become A Person In Heaven While Living, Nature’s Flow, Mind and Stop Living In This Land, Go To The Everlasting World Of Happiness, Live There Forever which have been published in English. His other books, Heaven’s Formula For Saving The World, The Living Eternal World, The Book Of Wisdom, and The Enlightened World are in the process of being translated into English as well as Chinese, French, German, Italian, Japanese, Portuguese, Spanish and Swedish.

The Story Of Eun Hee Kim

Eun Hee Kim is 60 years old and a housewife, artist, and the mother of two. Last October she held her first exhibition entitled “Our Pictures” About 10 years ago she became interested in painting Folk Art. At the exhibition she showed 26 pieces of her work; including “Noh-an-do,” a drawing of wild geese and reeds, and “Chek-ga-do,” a drawing of a bookstand. She says that emptying the mind is like peeling away a cellophane film overlaying the original. This is her story of throwing away the mind.

On a day lit by the autumn sun I opened my first exhibition. It was my intention to prepare a small cozy place for my friends to visit, rather than present my work to the public. But thankfully many people came to the exhibition, so it was a happy time and as lavish as a fully opened yellow chrysanthemum blossom.

When I was nine years old it was my dream to be an artist. I was drawing some dolls, and also some clothes to dress them up with, when my father said to me: “you are very good at that.” Just by him saying that I thought: “Oh, I should be an artist in my life!” Since then I have never thought about another career.

I was accepted into a fine arts college and majored in oriental painting. After graduation I worked in an office, met my husband, got married and raised two children. I stopped painting for ten years in order to fulfill my duty as a mother and a housewife. One day I longed to find my way back to the artist’s life, so I started painting again. I thought this would be enough to make me happy.

At first the fact that I was able to draw again really was enough to make me feel happy. Soon, however, I wanted to exhibit my work. But since I did not have any experience and no reputation I could not enter even the smallest group exhibition. However, I was able to participate in open exhibitions and public contests. Yet I was stressed out when other artists in the exhibition received better awards than I did.

I would think: “I can do better than that… That guy is not that much better than I am…” I really hated the narrow-minded self that kept on making comparisons about others. I even promised myself that I wouldn’t do that again, but I could not escape from such thoughts at all. I kept thinking about which contests I would submit my work to and which award I wanted to receive. Art fettered me, and in the end I came to think it was not the way I wanted. Then, in 2006, I began doing Maum Meditation. Actually, when my sister suggested it to me, my son started doing it first. After he began meditation his mindset changed completely.

My son was always at the top of his classes in school, but he also had a lot of stress because he obsessively thought he had to have those top honors all the time. One day he said to me: “In the past I always had to struggle to maintain my top position in class. But after doing Maum Meditation I just have as my goal to be in the top position. Now I have fun learning more; and I still have the same result except that now I enjoy studying!” His words touched me as he had found the joy of learning and it was not laborious for him anymore. It was right after I saw this change in him that I started Maum Meditation.

While I was looking back on my life and throwing it away in the meditation, from deep down in my mind these words came to me: “It’s Freedom!” I was amazed by this! It really was the first time I had ever felt this much relief. I thought I had lived quite well, happily and freely. I felt as if something I had unknowingly been shackled to had exploded and blown off me. I continued to throw away the mind. Then, I realized that the self I had thought was “me” was not actually me, and the “real me” was the forever-living existence of the mind that is as broad as the infinite Universe. It was just astonishing!

My life had actually gone pretty smoothly. I was raised by good parents, my children turned out really well, my husband’s business was successful, and also my in-laws were very good to me as well. Yet, I didn’t have any gratitude towards anyone or anything. Even though I was doing what I enjoyed doing the most, my artwork, in reality I was only trapped in a sense of inferiority from comparing myself to others. I perceived that what people yearned for most in life was pride. Likewise, my paintings were just a projection of my pride. I felt I had to draw better than others did; I had to get complimented and highly recognized. At that very moment I became distant from my artwork. Painting is a form of expressing one’s mind world, and all of these minds had been portrayed in my paintings.

In my meditations I threw away my minds; they were like tree branches, one leading on to another one and another one after that. I threw away even the memories about painting, like the brushes, the art books, the galleries I had visited and so on. Then one day I became natural and comfortable with painting. Emptying the mind was just like peeling away a layer of cellophane that had been adhered to my life. Although you peel off that cellophane overlay, what was originally underneath is still there. So, after eliminating the colored glasses of the mind, I was able to know what it is to act and live without mind.

Painting itself is a joy to me now. I no longer have such thoughts like I must paint exceptionally well; or that the color selection must be just right. I just paint, and the color comes naturally. Now, the pieces get done.

From time to time I feel that the fine arts people in olden times also had this kind of mindset when they created their artwork. Our ancestors painted to reflect deeply on their inner selves rather than to gain recognition from others. Therefore they tried to empty their minds beforehand. These days I truly feel deeply that one has to subtract one’s mind. If you are full of thoughts then you are overwhelmed by them and cannot faithfully live in the moment, no matter what you do.

A middle aged man who visited my exhibition said “I like your paintings as they portray no self.” I was grateful for him, and honestly liked his comments. Another visitor also told me “I just want to sit and rest here, your gallery is so peaceful.”

It is my wish that my paintings genuinely give comfort when they are hung in a home. There have been many pieces created by many folk artists down thru history. I would like to create pieces that always fit into any home, art that feels like it belonged there from the beginning. I would like to live such a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