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요~♡

 

사람이 사람에게 감탄을 하는 때는, 그 사람에게서 강한 생명력이 느껴질 때가 아닐까? 나의 이익이 아닌 남을 위해 묵묵히 할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에 패인 주름살, 겉모습은 보잘것없어도 세상을 밝게 보고, 그 사람을 생각만 해도 다시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다져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나의 할머니라서 나는 정말 복이 많은 것 같다.

우리 할머니는 정말 어렵게 자라셨다. 형제도 없는 외동딸이셨는데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 살 즈음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그야말로 혈혈단신으로 살아남으셔야 했다. 그래도 우리 할머니는 억척스럽게 공장에서 일도 성실히 하고 계를 하면 제일 먼저 입금을 하는 등 주위 사람들에게 신용을 많이 쌓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할머니는 옛날에도 무지하게 머리가 좋으셨던 것 같다. 초등학교도 채 마치지 못하셨는데도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데에 있어서는 주변에서 다들 한마디씩 할 정도였다. 그 당시엔 시골에서 돈을 벌러 도시로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었고, 집이 모자라 전셋값이 계속 뛰고 있을 때였다. 할머니는 여기에 착안하셨다. 가진 게 없었지만 그동안 쌓아왔던 신용으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 집을 사고 세를 놓아서 다시 그 빚을 갚고, 계속 그런 방식으로 가난에서 벗어나셨다. 지금 우리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직접 지으셨는데, 건축업자, 자재 공급업자들이 우리 할머니 일 시키는 걸 보고 “아이큐 200이여” 했을 정도라니까 할머니는 정말 웬만한 남자보다도 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이렇게 열심히 살아준 덕분에 우리 엄마를 포함해서 4남매가 대학까지 다 공부할 수가 있었고 원만한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우리 엄마와 아빠가 대학교 캠퍼스 커플로 만나지 않았으면 태어나지 못했으므로 할머니 덕분에 나도 태어났다고 할 수가 있다.(^^)

할머니 옆에 있으면 인생을 사는 지혜를 참 많이 배운다. 할머니 말로는 돈을 꽉 쥐고 안 내놓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는 돈이 안 들어오고, 나가는 돈이든 들어오는 돈이든 만지는 돈이 많은 사람이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셨다. 한마디로 배포가 커야 돈을 벌 수 있다고 하신 것이다. 할머니와 같이 시골에 있는 날이면 더 실감나게 배울 수가 있다. 옆집 할머니든 손주든 손님이 오면 주려고 과자랑 아이스크림, 박카스 같은 자양강장제를 하도 많이 사놓으셔서 내가 우스갯소리로 “할머니는 슈퍼 차려도 되겠다”라고 한 적도 있다. 주는 것을 생활화하시는 할머니에게서 사람은 넉넉한 맛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이렇게 여장부 스타일로 보이는 할머니도 집에서 나랑 단둘이 있을 땐 마냥 소녀 감성이 되신다. 할머니가 젊었을 때 들으셨던 음악 테이프를 틀어놓으시고 개밥을 끓이시거나, 텃밭에 심어놓은 꽃을 보시고 곱다 하신다. 드라마를 보시고 눈물 흘리실 때도 있다. 할머니가 많이 하시는 말은 “아유 불쌍해, 아유 딱하지”다. 외롭고 어려운 시기를 맞는 캔디 같은 드라마 주인공을 보고 혼자여서 더 외롭고 힘들었던 젊으실 때가 떠올라 연민을 느끼시는 거겠지.

예전에 할머니께 추석 보름달을 보면서 무슨 소원 빌었냐고 여쭤봤던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셨다. “아유, 우리 동영이랑 식구들 건강하기만 하면 돼유, 이 할미는 한 번도 돈 많이 벌게 해달라 빈 적 없슈, 부처님에게 매일 우리 식구들 건강하게만 해달라고 빌어유.”

고생을 그렇게 하셨는데도 또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그 마음에 자꾸 눈물이 난다. 할머니는 내 목소리만 들으면 하나도 안 아프시다고 해서 종종 전화를 드리는데, “우리 공주 마마, 하늘만큼 땅만큼 세~계만큼 사랑해요” 하시면, 할머니는 모르셨으면 좋겠지만 또 목이 멘다. “할머니 저도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해요.”

신동영 24세. 약사. 서울시 영등포구 영등포동

김영례님께 ‘사랑하는 할머니께, 할머니의 팬 손녀딸 동영이가 보냅니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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