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분교, 군부대, 소록도 병원, 캄보디아, 중국….
평소 음악을 접하기 어려운 곳으로 직접 피아노를 들고 찾아가 연주하는 음악인이 있다.
피아니스트이자 대중음악 편곡자인 윤효간씨다.
2005년 <피아노와 이빨>이라는 이름으로 구성된 그의 콘서트 팀은 지난 5월 1,000회째 공연을 끝냈으며, 현재도 계속해서 공연 중이다.
음악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픈 사람, 피아니스트 윤효간씨를 만나보았다.
글 김혜진 사진 홍성훈
“저희 공연은 쉽습니다.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감상하실 수 있어요.”
지난 7월 1일 국립극장에선 피아니스트 윤효간의 피아노 콘서트 ‘피아노와 이빨’ 특별 공연이 있었다. 첫 곡으로 그가 편곡한 비틀즈의 ‘헤이 주드 Hey Jude’가 울려 퍼졌다. 부드러우면서도 열정적인 그만의 연주와 노래에 관객들은 찬사를 보냈다. 그렇게 첫 곡이 끝났을 때였다. 조심조심 공연 시간에 늦은 관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막 연주를 마친 피아니스트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어서 오세요. 차가 많이 막히죠? 근데 앞부분을 못 보셨네요.”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헤이 주드’의 클라이맥스를 다시 한 번 열창했다. 이후로도 입장하는 관객들, 그는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고, 또다시 첫 곡을 열창했다.
그리고 그가 연주하는 곡들은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동요 <엄마야 누나야> <오빠 생각>을 비롯해 팝송 퀸의 <We are the champion> 등 우리에게 친숙한 곡들을 색다르게 편곡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십 대부터 어르신들까지 관객층도 다양했다. 피아노 공연은 어렵다는 고정관념을 깨주고, 관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사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음악은 만인 앞에 평등하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는 피아니스트. 그러기 위해서 그는 피아노를 무대에서 내렸고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1년에 200회 이상의 공연을 하고, 2007년부터는 해외로 발길을 돌렸다. 전 세계 아이들과 교민들을 위한 피아노 공연은 캄보디아를 시작으로 70일간 미국 40개 도시 일주,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중국의 쓰촨성까지 그동안 함께한 관객만 100만 명에 이른다. 화려한 조명과 스피커 대신 초원이, 오지 마을이, 학교 운동장이 최고의 무대가 되어준 것이다.
<피아노와 이빨>이란 콘서트를 처음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마흔 정도 되니까 나만의 음악을 하고 싶더라고요. 나도 최소한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기쁨을 전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피아노와 이빨’에 올인하게 되었어요.
피아노 공연을 하시면서 제일 중점을 둔 것은 무엇인지요.
우선 공연장에 오기 힘든 관객들을 직접 찾아갔어요. 예를 들면 군부대 같은 곳은 직접 가야 하잖아요. 그곳에선 베토벤과 비틀즈가 중요한 게 아니더라구요. 함께하는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기를 바랐고, 그러기 위해 음악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쉽게 전달할까 고민했죠. 음악적 변화를 준다든지 초대 손님을 초청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든지. ‘이빨’이 제 고향 부산 사투리로 ‘이야기’라는 뜻이에요.
이렇게 꾸준히 공연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사실 힘든 점도 많았어요. 무대, 관객, 자본도 있어야 하고 무명의 피아니스트 공연에 과연 누가 올까 싶기도 했고요. 근데 저는 하늘의 힘을 믿어요. 사람이 진정 용기 있게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으면 조금씩 이뤄진다는 걸요. 제일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겠죠. 그렇게 1,000회를 달려온 거고요. 다행히도 관객 분들께서 입소문을 내주시더라고요.(웃음) 공연을 계속하다 보니까 어떤 걸 사람들이 좋아하는지도 느껴져요. 보시다시피 조금 늦게 오는 분들을 위해 다시 연주해 준다던지, 선물 주는 코너도 마련하고요. 먼저 다가가고 찾아가려고 하니까, 좀 착하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지진 피해가 컸던 중국 쓰촨성의 한 학교에서
피아노 연주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지진으로 25만 명이 죽었어요. 그때 살아남은 아이들이죠. 그곳에서 피아노 공연이 열린 건 처음이었다고 해요. 공연이 끝나고 피아노, 세탁기, 냉장고를 기부했는데, 그 아이들이 저한테 수화로 노래 선물을 하는 거예요. 참 감동이었어요.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고 하는데 막상 가 보면 그 반대예요. 오히려 제가 더 많은 걸 받고 더 많은 감동을 얻고 더 착해져서 오거든요. 그래서 이 일을 멈추지 않는 거 같아요. 조금 더 절실한 곳에 조금 더 깊숙이 가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해요.
그가 처음 피아노를 배운 건 7살 때라 한다. 60년대 당시 ‘유엔팔각성냥’으로 유명했던 기업인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배울 만큼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다 열 살 무렵 서울에서 열린 콩쿠르에 참가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20명의 아이들이 마치 한 사람이 치듯 피아노 치는 자세부터 방법까지 똑같았던 것.
그때부터 그에겐 질문이 하나 생겼다. ‘크게 치라는 데서 작게 치고, 작게 치라는 데서 크게 치면 안 될까?’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식에서 벗어나 거꾸로 연주해 보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럴수록 피아노 선생님과 부모님과의 갈등도 점점 커져갔다. 결국 고3 때 집을 나왔고, 이후로 그는 현장에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클럽에서 밴드 키보드를 맡았고, 가수 김현식, 김광석, 이미자 등의 공연과 앨범에 1,000회가 넘게 세션으로도 참여했다. 스물일곱엔 박춘석 악단에 최연소로 들어가 아코디언을 배웠고, 오케스트라 편곡을 익히기 위해 KBS 관현악단에 들어가 키보드 연주자로도 활동한다. 피아니스트, 작곡가, 편곡가, 아코디어니스트, 가수, 음반 제작자…. 음악인으로서 치열했던 그의 삶은 피아노 연주로 녹아내렸고, ‘피아노와 이빨’의 장기 공연을 이끈 원동력이 되었다. 2009년엔 꿈의 무대인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을 하기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음악을 가리켜 ‘기다림’이라고 말한다. 그 길을 가기 위해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돌아보니 피아노를 잘 치기 위한 답이 꼭 피아노에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가 자신을 고졸 학력 음악가라 소개하면서, 매 공연마다 학부모님과 아이들에게 자신이 걸어온 인생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다.
누구나 잘 치는 베토벤이 아닌 나만의 베토벤이 되라고 말씀하셨지요.
피아노를 어떻게 쳐야 잘하는 것인지 묻는 사람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자기 스스로가 베토벤이 돼야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해요. 소리에는 철학과 삶이 들어 있어야 하고, 잘하는 것보다 감동이 있어야 하거든요. 저는 길 위에서 많은 걸 깨달았어요. 나와 다른 환경, 사상, 철학을 가진 상대방의 눈을 보고 대화하고 같은 호흡을 하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학교나 책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지만, 길을 가다 어떤 아이에게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거든요. 피아노 소리도 높고 낮은 여러 화음을 낼 때 아름다워지는데, 우리는 평생 한 가지 소리만 내는 건 아닌가 싶어요. 저 같은 방법으로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요.
공연을 다니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셨나요.
부모님들이 공연을 보고 아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는 말씀을 하실 때예요. 말도 안 듣고 가출도 많이 하고 너무나 가슴 아팠는데,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다는 거예요. 똑같은 방법으로 학업 경쟁을 하게 하기보다 다른 걸 인정하는 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지 않을까 싶어요. 차를 좋아하면 카센터에서 배우게 하고, 공연을 좋아하면 포스터 붙이는 거부터 먼저 해야 된다는 걸, 알려주면 돼요.
스스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셨을 거 같아요.
인간적으로 많이 성숙해졌죠. 옛날엔 내 것 먼저 갖고 싶었는데 이제는 다른 사람을 챙겨주고 싶으니까요. 연주자가 공연할 때는 수많은 스태프들의 수고와 노고가 있는 거잖아요. 그게 화합이 되었을 때 피아노 건반의 화음처럼 아름다운 소리가 나오고 아름다운 가치가 나오는 것이지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배려를 안 하면 결코 아름다운 소리가 나올 수 없어요. 이제는 공연을 통해서 어떻게 하면 조금 더 공익적이고 서로가 사랑할 수 있는 공감과 여유를 만들까 많은 고민을 하게 돼요. 그러면서 이제 ‘피아노와 이빨’이 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공연을 좋아하시는 모든 분들의 것이구나, 그분들에게 돌려드리자, 그런 마음이 가장 크죠.
윤효간의 콘서트 ‘피아노와 이빨’의 가장 큰 바람은 무엇인가요?
사람에 대한 존경을 다시 일으키고 싶어요. 정의, 사랑, 박애주의, 인본주의, 친구, 우정….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것들을 이 사회에 많이 퍼트리고 싶어요. 피아노를 통해서. 또 90살이 되어서도 이 투어를 하고 싶어요. 그땐 저도 더 멋있을 것 같지 않습니까?(웃음)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으며 ‘나의 음악적 스승은 길에서 만난 보통 사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사람들이 건네는 따듯한 눈빛을 통해 가장 큰 감동을 받는다고 했다. 그렇게 모두가 따듯한 눈빛을 주고받는 세상이 될 때까지 그의 열창과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공연 시간에 늦게 들어온 한 명의 관객을 위해, 이미 부른 첫 곡을 다시 부르고, 또 부르는 그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