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세계를 잇는 커넥터,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씨

‘독도는 한국 땅이다(DOKDO IS KOREAN TERRITORY).
일본 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2005년 7월 27일, 뉴욕타임스에 광고가 실렸다. 국가 현안에 대한 광고로는 아시아인 최초,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던 이 광고를 제작한 이는 서경덕씨였다. 그는 이것을 시발점으로 ‘동해 표기’ ‘위안부 문제’ ‘한글’ ‘비빔밥’…을 알리는 일까지, 전 세계를 향해 누구보다 참신하게, 열정적으로 한국을 알려나갔다. 그리고 그에게는 어느새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직함이 생겨났다.

최창원 사진 홍성훈

2005년 2월 말,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가결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우리가 방심하는 사이 일본은 ‘독도는 일본 땅, 한국이 무단 점거하고 있다’라며 주장을 해왔고, 점차 수위를 높여가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진실을 알릴 수 있을까? 서경덕씨가 선택한 방법은 세계에서 가장 신뢰받는 언론 중 하나인 뉴욕타임스에 광고를 하는 거였다. 철저한 자료 조사, 수많은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테스팅 작업을 거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반박 광고까지 고려하며 몇 개월에 걸친 작업 끝에 드디어 2005년 7월 27일, 뉴욕타임스에 ‘독도’에 대한 광고를 게재한다.

폭발적인 반응을 뒤로한 채 그는 바로 제2탄 광고 작업에 들어간다. 바로 ‘동해’를 알리는 것이다. 일본의 적극적인 홍보로 세계 대부분의 지도에 ‘East Sea(동해)’가 아닌 ‘Sea of Japan(일본해)’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고, 외국인이 볼 때는 당연히 ‘일본해’에 있는 섬이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2천 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의 바다는 ‘동해’로 불려왔다는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었고, 이것을 알리는 일이 시급했다.

동해와 독도가 들어간 대한민국 지도를 넣어, 동해에 독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 광고는 그해 11월 21일, 뉴욕타임스와 함께 미국 신문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실렸다. 당시 월스트리트저널의 광고 담당자는 서경덕씨에게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진다.

“국가적 현안에 대해 개인이 의견 광고를 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훗날 이 광고들은 국제적인 증거 자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09년, 그는 좀 더 과감한 광고에 도전한다. ‘뉴욕타임스의 실수(Error in NYT)’ ‘워싱턴포스트의 실수(Error in WP)’라는 내용으로 일본해로만 표기하는 언론사들에 ‘동해’가 옳은 표기임을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매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 세계로 진실은 퍼져 나갔고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2009년 10월 19일자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처음으로 ‘동해(East Sea)’가 적힌 지도를 신문에 게재한 것이다.

2010년 11월 26일부터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서경덕씨와 함께 진행한, MBC 무한도전 팀이 출연하는 비빔밥 동영상 광고가 상영되었다. 광고판 관계자는 당시 타임스스퀘어 내의 광고 중 가장 화려하고 멋있어 뉴요커들에게 굉장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광고를 게재할 때마다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한번은 뉴욕에서 세탁소를 하시는 교포 분께 광고 파일을 받고 싶다며 연락이 왔어요. 한국에 대한 광고를 보는데 너무나 가슴이 뛰더래요. 그래서 옷을 덮는 비닐 커버에 광고를 인쇄해서 세계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고, 그렇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고 하시는데 가슴이 찡했습니다. 캐나다 택배 회사 회장님은, 택배 박스에 인쇄해서 전 세계에 내보내고 싶다 하셨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회 분들이 조금씩 돈을 모아 그 나라 유력지에 같은 광고를 내겠다며 연락도 주셨습니다. 외국인들의 관심도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해외 언론의 인터뷰 요청도 많았고, 미국의 한 교수님은 광고를 보여주며 그 주제로 학생들끼리 토론을 하게 했다고 하고요.

어떻게 이런 일들을 시작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진실이 왜곡되고 있는데 가만있을 수는 없다 생각했어요. 개인 자격으로 이런 광고를 낸다는 게 어쩌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일지 몰라도, 눈 뜨고 당하는 바보가 되기보다는 계란이라도 던져보자는 마음이었죠. 예상대로 일본인 단체로부터 항의가 빗발쳤어요. 그런데 두렵다기보다는 더 큰 용기가 생겼어요. 제가 생각하는 글로벌 홍보란 ‘우리 것’을 ‘우리 것’이라고 정정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와 실천력이거든요. 반면에 저를 격려해주시는 일본 분도 계셨습니다. 그런 분이 있어 일본이 돌아가는구나 생각했죠. 이렇게 광고를 내는 건 일본과 싸우겠다는 의도가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된다는 거죠. 함께 좋은 관계를 만들려고 해도, 일단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이 중요하잖아요.

처음에는 힘든 점도 많았을 텐데요.

처음 뉴욕타임스 광고를 진행할 때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직원이 독도에 대해서 알지 못했고, 독도에 대한 영문 자료도 많지 않았지요. 아는 어휘를 총망라해 취지를 설명하면서 하나하나씩 해나갔어요. 처음에는 몇 개월이 걸렸는데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죠. 광고비도 처음에는 자비로 했지만, 가수 김장훈씨 등 점차 도움을 주겠다는 분도 많이 생겼고요.

서경덕씨의 마음에 ‘한국 홍보’라는 것이 싹트기 시작한 때는 1996년, 대학교 3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을 떠나면서였다. 당시는 2002년 월드컵 유치가 결정됐을 때였다.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을 벌이기 좋아했던 그는 유럽을 돌며 월드컵을 홍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유럽 사람들 대부분이 중국, 일본에 대해서는 알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심지어는 한국말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이도 있었다.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억울함과 자괴감이 여러 날 동안 지워지지 않았다. 한탄만 하지 말고 뭔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 세계에 한국을 제대로 알려봐야겠다 결심했다. 특히나 독도, 동해, 위안부 문제, 중국의 동북 공정 문제 등은 반드시 진실을 알려야만 하는 큰 문제들이었다.

1996년 ‘한국 홍보’를 결심한 이후 그는 언제나 시대의 흐름에 안테나를 세웠고, 세계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참신하고 새로운 기획을 하기 위해 고민했다. 역사적인 이슈뿐 아니라, 전 세계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에 한국어 음성 서비스 유치, ‘한글 세계 전파 프로젝트’, ‘한식 세계화 프로젝트’ 등 16년간 수많은 분야를 넘나들며, 한국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을 제대로 알리겠다’는 한 개인의 열정과 노력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어느새 그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최초의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직함이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언제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시도한 것의 성공 확률은 30%. 나머지 70%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도 매 순간 최선을 다했고 ‘왜 실패했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되었는지’를 기록하고 돌아보았다.

그렇게 끊임없이 해나갈 수 있는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솔직히 재밌으니까 자꾸 하게 됩니다. 제가 일을 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게 ‘재미’거든요. 기획하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뭔가 일이 이뤄지는 과정들이 참 재밌습니다. 그런데다 이 일은 저 혼자만의 재미가 아니잖아요. 저 같은 경우 돈을 바라고 한 건 아니지만, 기업들의 프로젝트 참여 요청, 특강 요청에다가 계속 한길을 걸어온 것을 인정받아서 교수로도 임용됐어요. 먹고사는 것은 저절로 해결이 된 겁니다. 그래서 젊은 친구들한테도 인생을 너무 조급하게 보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 보람 있는 일에 열정을 바치는 것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노하우(know-how)보다는 노후(know-who)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제가 이렇게 일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일처럼 도와준 선후배들, 친구들 덕분이에요. 요즘은 인터넷에 세상 모든 게 다 나오니까, 인터넷이 전부라고 여기는 젊은이들도 많아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된다는 거죠. 무슨 일이든 성사시키려면 사람을 직접 찾아가 만나는 게 중요해요. 단 5분이라도 서로 눈을 바라보고 직접 대화를 할 때, 비로소 진심이 통할 수 있죠.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나눔의 집 홍보대사, 대학생들을 위한 강연 활동 등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십니다.

이제는 외국인들이 한국에 많이 오기 시작했잖아요. 그 사람들이 한국에 좋은 이미지를 갖는 것도 하나의 홍보 방법이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안에서의 문제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저도 국내의 사회적인 현상에도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내고 싶고, 그분들의 아픔도 얘기하고 싶어요. 그동안은 먹고살기에만 바빴다면 이제는 우리나라도 국가 이미지를 높이기 위한 관심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한국 홍보’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세계 어디를 가나 유태인과 화교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요. 우리 한민족이 그렇게 되는 데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을 하나로 묶는 연결 고리뿐 아니라 우리의 좋은 것들을 다른 나라에게 소개하고 다른 나라의 본받을 점들을 우리에게 알리는 진정한 커넥터가 되고 싶어요. 그렇다고 민족주의로 빠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세상에 공헌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세계화(世界化)에서 세계화(世界和)로요.(웃음)

그의 올해 최고 목표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광장에 한국을 알리는 24시간 전용 전광판을 만드는 것이다.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이곳에 전용 전광판이 만들어진다면, 한국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첫 광고를 냈던 2005년, 서경덕씨의 나이는 32세, 광복 60주년이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나 광복 100주년이 되면 그는 칠순 할아버지가 될 것이다. 그 무렵 우리나라가 세계의 리더 국가가 되고, 우리 한민족이 세계에 우뚝 선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서경덕씨. 그는 오늘도 세계를 향해 한판 크게 벌여보기 위해 배낭을 꾸린다.

2009년 5월 11일.
뉴욕타임스에 실린 전면 광고.

‘뉴욕타임스의 실수(Error in NYT)’라는 주제의 이 광고는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는 뉴욕타임스 측에 ‘동해(East Sea)’가 옳은 표기임을 지적하는 내용이다.

2010년 5월 2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낸
‘기초 한국어’에 대한 광고.

‘안녕하세요’에 이어 ‘고맙습니다’ 광고를 냈다. 한글은 현존하는 문자 중에서 가장 많은 발음을 표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리와 발음 기관이 완벽한 연관성을 갖고 있는 과학적인 문자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정보 통신 강국이 된 것 또한 한글의 우수성과 편리성 덕이 큰 것이다.

2008년 8월 25일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전면 광고.

한 포털사이트를 통해 네티즌 약 10만여 명이 광고 비용을 모아줘서 낸 최초의 독도 관련 ‘국민광고’이다. 광고 게재를 할 때는 한국 역사 홍보
홈페이지인 ‘다음 세대를 위해 (www.forthenextgeneration.com)’ 의 주소를 명기해 더 자세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도록 했다.

2009년 12월 21일
뉴욕타임스 비빔밥 광고.

자국을 대표하는 음식을 가지고 전면 광고를 내는 사례는 처음이라, 더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서경덕씨는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1996년 ‘한국 홍보’의 길로 들어서게 된 그는 독도, 동해 바로 표기하기, 위안부 문제, 동북 공정에 따른 고구려 역사 왜곡 등의 문제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적인 신문에 게재하며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세계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참신한 기획과 아이디어를 내고, 직접 실천하고 행동하여 ‘한국 홍보 전문가’라 불리는 그는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객원교수,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서울시장애인복지시설협회, ‘나눔의 집’ 홍보대사를 역임하고 있으며 저서로 <세계를 향한 무한도전>이 있습니다. www.forthenextgenerati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