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의사 윤진영씨

치과 의사 윤진영(39)씨의 꿈은 ‘자유로운 삶’이었습니다. 매스컴에서 보이는 것처럼 커리어우먼이 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치과 의사가 되고 학회 활동과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며 인정도 받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어깨를 짓누르는 듯한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웠지요. 마음을 버리며 그녀는, 진정한 자유란 성공과 행복, 명예를 좇는, 바로 그 ‘나’가 없을 때 찾아든다는 걸 알게 됩니다. 이제 10년 전, 처음 병원을 개원했을 때의 그 행복과 설렘으로 매일매일 환자를 만나고 있다는, 그녀의 마음 빼기 이야기입니다.

저는 교정 전문 치과 의사입니다. 개원을 한 지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네요. 저희 병원 곳곳엔 그림이며 인형들이 있습니다. 환자분들이 선물로 주신 거예요. 교정 치료는 대개 2~3년 걸리기 때문에 환자분들과도 마치 가족 같아지지요. 마냥 답답해서 늘 벗어나고 싶었던 이 공간이, 이렇게 가장 소중한 곳이 되었다는 것도 저에겐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저는 딸만 셋인 집안의 장녀로 자랐어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 보니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에다가 장녀로서의 책임감도 있었죠. 근데 현실에 처한 제 모습은 맘에 안 들었습니다. 몸이 약해서 며칠간 학교에 못 간 적도 많았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삶이 참 허무했어요.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사는 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행복하게 열심히 사는데 난 왜 그러지 못할까? 어떻게 하면 이 삶을 지탱해 나갈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죠. 치대에 간 것도 그런 허무함에서 벗어나 좀 현실적으로 살아보고 싶어서였어요. TV에 나오는 커리어우먼처럼 살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근데 막상 치대 공부가 잘 맞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학업 경쟁이 치열해서 애환이 많았죠. 게다가 미래도 제가 꿈꾸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거예요. 하루 종일 조그만 병원에서 있어야 하는 답답함. 넓은 세상을 누비면서 살고 싶었는데 그게 안 되니까 힘들었죠.

그런 어느 날, 본과 4학년 졸업을 앞두고 지도교수님께서 교정연구회에서 치아 교정을 배워보는 게 어떠냐고 권유해주셨어요. 이거다 싶었죠. 저도 어릴 때 치열이 고르지 못해서 잘 웃지 못한 게 콤플렉스였거든요. 제 자신이 환자였고 교정해서 좋아졌으니까, 환자들한테 해드릴 게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학술 교류 세미나라든지 해외에 나가 배울 기회도 많았고, 그 기술을 중국이나 중앙아시아 같은 곳에도 나눠주는 봉사 활동도 했습니다. 실제로 배움에 목말랐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은 다 다녔어요.

그러다 2002년 스물아홉에 치과를 개원하였습니다. 치아 교정하면서 어두웠던 환자분 얼굴이 밝아지고, 취업이 잘돼 행복해하시는 걸 보니까 정말 보람 있었어요. 그렇게 2~3년이 지나면서 환자도 점점 많아지고, 해외 활동도 왕성하게 하면서 인정받는데도, 이상하게 어깨 위로 짐 덩어리가 짓누르는 것 같은 거예요. 마치 쇠사슬로 칭칭 감긴 느낌이랄까. 항상 마음이 쪼이고 부담스럽고 쫓기는 기분….

처음엔 병원을 운영하면서 책임지는 게 많아지니까 그러나 보다 했어요. 그렇게 몸 마음이 지쳐갈 때 문득 마음수련이 떠올랐어요. 자기 개발 세미나에서 알게 된 분을 통해 우연히 들었거든요. 너무 지쳐서 쉬고 싶은 마음에 동네에 있는 지역 수련원에 찾아갔어요.

수련을 하며 돌아보니 하루 24시간을 바쁘게 안 살면 도태되고, 큰일 나는 줄 알았더라고요.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 해외 활동을 많이 하려면 체력도 좋고 언어도 잘해야 하는데, 몸이 약해서 못 따라가니까 몸이 망가지고 있었어요. 그동안 얼마나 몸을 혹사시켰는지 수련할 때는 온몸이 몸살 난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근데 계속 수련을 하다 보니 힘든 기억들이 아련해지면서 몸도 편안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이건 정말 해야 하는 거구나, 이거 아니면 인생의 해답을 풀 방법이 없겠구나 싶어 더 열심히 수련했죠.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너무 편안해지면서 신기하게도 나를 짓누르던 쇠사슬이 풀려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저는 정말 자유롭게 살고 싶었거든요. 근데 우주 입장에서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그동안 ‘나’란 좁은 의식에 갇혀 그 안에서 살려고 발버둥치고 있더라고요. 나는 행복해야 하고, 자유로워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면서. 바로 그 ‘나’가 자유를 구속하고 있다는 것, 그 나가 없으면 나 자체가 세상이고, 세상 자체가 자유라는 걸 마음을 버리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전엔 원하는 것 사고, 가고 싶은 데 가는 게 자유인 줄 알았는데, 진정한 자유란 내가 없을 때 있는 거였어요.

그 후부터는 병원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대해도 마음속 깊이 자유와 행복이 샘솟았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나’라고 생각해온 나의 마음들. 자존심, 명예, 욕심 등을 하나씩 버릴수록 느껴지는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었어요.

결국 마음수련이 말하는, 인간마음으로 살아온 ‘나’는 다 버리고 ‘우주마음’으로 산다는 건 내 앞에 어떤 사람이 있든 또 어떤 조건이 오든, 세상 마음이 되어 상대를 받아주고 수용하게 되는 것이더라고요.

사실 의사라는 직업이 스트레스가 많아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다 환자들의 기대치도 있으니까요. 또한 항시 응급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데다, 수많은 병원들과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습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 한편으로, ‘난 의사다’ 하는 잘난 마음도 있다 보니, 환자에게 겉으론 친절해도 스스로 불편함이 있었어요.

근데, 그런 마음을 버린 만큼 분별이나 가식이 없어지니까, 환자의 고충을 잘 듣고 도와드리게 되고, 말 한마디도 따듯하게 해드리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환자분들이 입소문으로 찾아오시거나 다른 병원에서 추천해주셔서 오시기도 해요.

이렇게 지금처럼 내가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세상과 교류하고 나누며 살면 되는 거였는데 항상 먼 곳만 보고 살았구나….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기분입니다.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누구나 있잖아요. 왜 사는지 모르고 휩쓸려 살다가 그렇게 죽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진짜 삶의 의미를 알고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를 아는 게 사람의 도리인데, 그걸 모르고 사니까 참 힘들고 괴로웠더라고요. 그 도리를 알고 나니까 상식적으로 사는 게 뭔지를 알게 되고,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거 같아요. 남보다 잘나가는 게 행복이 아니라, 그냥 지금 내 옆에 있는 형제, 이웃끼리 따듯한 밥, 따듯한 체온을 나누고 살면 되는 거였는데, 그런 소소한 행복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어요.

이제 진짜 의사가 된 기분입니다. 10년 전, 처음 개원해 설레는 맘으로 환자를 보고 좋아지는 모습에 진심으로 기뻐했던, 그 초심을 비로소 되찾게 된 거죠.(웃음)

정리 김혜진 & 사진 홍성훈

막내 권수정 코디네이터(좌)와, 병원 개원부터 10년간 함께 일해온 치위생사 양영숙 실장(우). 현재 양영숙 실장은 함께 마음수련을 하고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