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맑은 겨울 수요일 아침이다. 교실에는 토수가 제일 먼저 와서 혼자 책을 읽고 있다. 신입 사원처럼 단정한 토수와 인사를 나누고, 휴게실에 가서 커피 한 잔을 타서 다시 교실로 돌아오니 우진이와 주환이가 아침 인사를 한다. 둘은 입을 맞춘 듯 내게 “선생님 오늘 뭐 해요?” 하고 물었다. 오늘은 졸업 예행 연습하는 날이라고 대답하니, 둘은 멀뚱한 표정으로 “졸업식 연습을 왜 해요?”라며 반문한다. 내일의 주인공이 자신들임을 아직 모르는 초딩들.
올 한 해 너희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새삼스럽다.
생전 처음 남자 담임 선생님을 만나 잔뜩 긴장하던 가휘의 커다란 눈망울부터, 이제 청소년 티가 완연한 정주의 잔잔한 미소까지 우리는 그동안 참 많은 희로애락을 나누어 가졌다. 영빈이의 소젖 짜기 발언과 종민이의 찢어진 바지 사건, 그리고 교실을 왁자지껄하게 만든 잔디파 놀이.
끼리끼리 어쩜 그렇게 잘 노는지, 마치 덤불 속과 하늘을 거침없이 휩쓸고 다니는 참새 떼 같았다.
무엇보다 내 입장을 잘 이해하고 말을 잘 들어준 착한 아이들아. 고맙다. 너희들이 아니면 나는 아마 폭삭 늙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너희들이 예쁜 짓 고운 짓을 할 때마다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내가 선생님으로 느낀 즐거움은 다 너희들이 준 선물이다. 이제 학교를 떠나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도, 너희가 내게 준 그 고귀한 선물을 고루 나누어주기 바란다.
까불고 말썽 피우던 아이들아. 너희들도 수고 많았다. 네 녀석들과 아옹다옹 싸우다 보니 어느새 새록새록 정이 들었다. 생각하면 그 성장기에 맞춰 그 수준만큼 만끽한 미운 짓이었는데, 내가 왜 그렇게 뾰쪽하게 반응하고 닦달했는지 모르겠다. 성격 좋고 뒤끝 없는 너희들이 이해해다오. 난 네 녀석들 덕에 미운 정도 고운 정만큼 깊고 따뜻한 감정임을 깨달았단다.
이제 너희들이 떠나고 나면 빈 교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서랍에 남겨진 색종이 한 장마저도 소중한 기억으로 옮겨 갈 것이고, 때로 너희들이 그립겠다. 하지만 보고 싶은 건 얼굴이 아니라 그 눈짓이나 몸짓 또는 미소나 손길 같은 것이란다. 부디 해맑은 눈빛과 풋풋한 미소 그리고 다정한 말투를 오래오래 간직하기 바란다.
얘들아.
오늘은 너희들이 없는 금요일이다. 창문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화사한데, 졸업식이 끝나고 선생님은 빈 교실에 혼자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주인 없는 빈 책상과 걸상의 줄을 맞추고 있다. 이젠 진짜 이별이구나. 안녕! 작은 친구들!
글 최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