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처럼

아이가 바삐 강당 계단을 올라간다. 깡총깡총 내딛는 발걸음이 얼마나 날렵한지, 파랑새가 실개천을 스쳐 나는 듯하다. 아이들에게는 어른이 갖지 못한 가벼움의 미학이 있다.

아침이었다. 열한 살 지우양이 교실에 들어오면서 제 자랑을 쏟아놓았다.

“선생님, 우와! 나 어제 대박 났어요.” “뭔데?” “원호가요, 나를 좋아한대요. 문자로 그랬어요.”

덜렁이 원호가 여학생한테 관심을? 그 개구쟁이가? 아무래도 뻥일 것 같았다. 그래서 ‘어디 한번 보자’고 했더니, 망설임 없이 제 휴대폰 화면을 공개하였다.

헐! 진짜였다. 휴대폰 액정 화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열한 살 원호군의 파격적인 사랑 고백이 새의 지저귐으로 내 귀에 들렸다. 나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않고 지우한테 “오, 대단한데!”라고 말해주었다. 지우양도  ‘뭐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죠’라는 도도한 눈빛을 보내고 휘리릭 제 자리로 돌아갔다. 옆에서 지켜보던 서은이가 부러운 듯 내게 말했다.

“선생님, 지우 대따 인기 좋아요. 민혁이도 좋아하고요, 다른 반 남자아이도 좋아해요.”

민혁이까지? 이건 진짜 장난이 아니다. 민혁이가 누군가! 작은 얼굴에 오뚝 선 콧날. 검은 띠 3품을 자랑하는 어린이 태권왕. 지난봄, 우리 반이 공원으로 소풍을 갔을 때, 우연히 같은 장소로 소풍을 온 여중생들이, 제발 사진 한 판 같이 찍자고 졸졸 따라다니던 바로 그 얼짱 아닌가.

마침 노란색 물들인 머리카락을 날리며 민혁이가 교실로 들어왔다.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덜렁덜렁 제 자리로 가는 녀석을 불렀다.

“민혁이, 너 지우 좋아한다며?”

순간 노랑머리는 ‘아니! 그걸 어떻게 알았죠?’ 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대답 대신 빙긋 웃고 자리를 피했다.

초등학교 4학년 여자아이는 감추고 싶은 것보다 드러내고 싶은 것이 훨씬 많다. 첫 시간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우가 또 내 주위를 얼쩡거렸다. 할 말이 있다는 신호다. 지우는 새끼손가락을 치켜들고 다가왔다.

“손가락 다쳤어요.”

겨우 살짝 긁힌 정도의 상처다. 나는 ‘호’ 한 번 해주고 나서, “남자애들이 왜 너를 좋아하냐?”고 물어보았다. 지우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모르겠다며 살짝 튕겼다. 나는 기어코 열한 살 꼬마 아이의 명쾌한 답을 듣고 싶었다.

“선생님이 비밀 잘 지키는 것 알잖아.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진짜!”

아이를 향해 귀를 활짝 열고 기다렸다. 그랬더니 조심조심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예쁜가 봐요. 어제 민혁이가 전화했어요. 내가 예쁘다고요.”

파랑새의 사랑 놀이가 그렇게 곱고 가벼울까. 교실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짹째글짹째글 들렸다. 맑은 실개천을 따라 돌과 수풀과 바람 사이를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파랑새처럼.

최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