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몬 향처럼 싱그러운 목소리가 매력적인 17년 차 중견 가수 박혜경.
7개의 정규 앨범과 27편의 CF 배경음악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한 목소리인 그녀가
요즘 음반 활동 외에 관심을 기울이는 분야가 있다.
바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는 재능기부 봉사다.
그녀가 트위터를 통해 결성한 ‘레몬트리 공작단’에는
그녀의 생각에 공감하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단다.
레몬처럼 상큼하고, 동화처럼 맑은 세상을 꿈꾼다는
가수 박혜경을 만나보았다.
글 김혜진 사진 홍성훈
지난 4월 말 화요일, 강남의 한 카페로 레몬트리 공작단 회원들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레몬트리 공작단’은 가수 박혜경씨가 지난 1월 트위터(twitter)에 올린 글에 공감한 사람들의 봉사 활동 모임으로, 그녀의 히트곡 ‘레몬트리’에서 이름을 따왔다.
‘더 새롭게 더 예쁘게 온 세상을 상큼하게 할 거야~♪
가슴에 가득히 내 꿈에 숨겨온 널 위해 가꿔온 노란 빛깔 레몬 트리 Lemon Tree~♬’
어떤 계기로 레몬트리 공작단을 결성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다른 사람을 위해 시간을 보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거나 독거노인분들도 찾아뵙고, 미혼모의 아이들도 돌봐주고…. 그러면서 그날 있었던 소감이나 이야기들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함께하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사람들이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걸 알았고, 그걸 연결해주고 싶었어요. 시작은 혼자였지만 지금은 우리 레몬트리 공작단이 파트별로 나누어서 잘하고 있어요 제가 일을 저질러 놓으면 그분들이 다 수습하시고 그러는 거죠.(웃음)
여러 기부 방법 중에도 특히 재능기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셨는데요?
재능기부가 좋은 건 섞인다는 거예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자꾸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 똑같아져요. 재능기부란 특별한 게 아니에요. 같이 밥 먹고, 이야기 나누고, 손잡아주는 거거든요. 알면서도 바빠서 못 하고 마음은 있어도 어색해서 잘 못 하고 그러던 것들이 생활이 되면서 자연스러워지는 거죠.
최근에 쌍용자동차 파업 후유증으로 인해 갑자기 부모 잃은 남매들을 도와주셨지요?
특별한 뭔가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연을 접하고 걱정이 돼서 연락해 보았는데, 아이들이 응해줘서 그냥 친구 만나듯이 만나서 밥도 먹고 같이 미용실 가서 머리도 하고, 그러면서 놀았어요. 사실 쌍용자동차 가족 분들은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힘이 된다고 좋아하세요. 2009년 77일간의 전쟁 같은 파업과 대규모 정리 해고로 평범한 일상을 잃어 버리고, 깊은 절망 속에서 가족의 고통, 동료들의 죽음마저 지켜봐야 했던 분들이잖아요. 큰 상실감 때문인지 우는 것조차 힘들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거에 익숙하지 않다고 하세요. 요즘엔 이분들 심리 치유 상담을 8주간 진행하는데 그분들이 치유받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어요. 다행히 조금씩 자기 아픈 것도 말하고, 감정을 표현할 줄 알아지시는 것 같아요. 서울에서 평택까지 매주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선생님을 비롯해서, 그 주에 시간이 되신 분들 20~30명이 늘 함께해주고 계세요.
박혜경씨에게도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겠지요?
그럼요. 그동안 나를 지탱해준 건 가족이었어요. 내 인생을 잘 꾸려가야 한다는 책임감도 도움이 되었고요. 최근에 읽은 책에 나온 내용인데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강을 건널 때 무거운 짐을 들고 가잖아요. 강 건너는 것도 힘든데 무거운 짐을 들고 건너야 하니까 더 힘이 들 것 같지만 오히려 강 물살에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건널 수 있다고 해요. 그것처럼 때로는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들이 날 지탱해주었던 것 같아요. 물살에 흔들리지 않게. 뿐만 아니라 우연히 길을 가다가 마주친 사람부터 친구들까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손을 잡아준 많은 분들이 있었어요. 지금 레몬트리 공작단 분들도 그렇고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혹은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자기의 꿈을 줄이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자연스레 외로웠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를 여의고 아버지의 빈자리를 대신해 엄마를 돕고, 동생들의 학비를 대면서 지내야 했던 시간들. 그럼에도 어려운 시절을 잘 지낼 수 있었던 건 주변에 좋은 분들이 도와주었기 때문이었다. 중학교 시절, 혼자 서울로 올라와 지내고 있을 때 격려해주셨던 자취방 주인아주머니부터, 독서실에서 만난 선배, 선생님,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에게 언니, 누나가 되어주고 싶었다 한다. 가다가 꺾일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고, 시들해질 수 있던 아이들이 제대로 피어나도록 햇빛과 물을 주는 일은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는 것. 다행히도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자고 손을 내밀어 주었다.
“혜경씨는 마음만 있고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도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는 것 같아요. 쉽게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열어준 거지요. 저 역시 트위터를 통해 가입해 하루 정도만 갔다 오지 뭐, 하고 시작했다가 어느새 또 가게 되고, 또 가게 되더라고요. 봉사가 특별한 일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요. 저 같은 경우는 뉴스도 잘 안 봤거든요. 그러다가 아이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의 아픔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문제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세상을 보는 시야 자체가 넓어진 거 같아요.” 레몬트리 공작단 회원 엄태기씨의 말이다.
자신이 타고 다니던 차까지 팔면서 재능기부 활동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박혜경씨가 하고자 하는 일의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다는 게 제일 커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면 꿈을 포기하거나 방향을 아예 바꾸게 되잖아요. 그게 안타까워요. 그 꿈을 지켜주고 싶어요. 무언가 거창한 게 아니라, 그냥 관심 있게 바라봐주고 호응해주고 격려해주고 싶은 거죠.
박혜경씨의 꿈은 원래 가수였나요?
네. 6살 때쯤인가부터 꿈이 그냥 가수였어요. 어릴 때 교회에서 합창을 하면 선생님들이 제 목소리가 특이하다고 하셨어요. 합창에는 어울리지 않았던 거죠. 그래도 노래를 부를 때 제일 신이 났어요. 연예인이 되었으면 하는 막연한 꿈도 있었어요. 노래를 잘해서 스타가 되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고, 삶도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생각했죠.
가수라는 꿈을 이루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합니다.
중학교 때 시골에서 처음 와서는 가수가 되는 길을 잘 모르니까 대학로에서 뮤지컬 연극이나 아동극 무대에 많이 올랐어요. 대학에 들어간 것도 강변가요제에 나가기 위해서였고…. 각종 팝 경연 대회 등 무대에 많이 서려고 노력했어요. 덕분에 상도 많이 받았고요. 데뷔한 후에는 오로지 일만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이게 다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좀 더 아름답고 의미 있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는데, 결론이 나눔과 봉사로 나던데요.(웃음)
팬들은 가수로서의 박혜경씨도 보고 싶어 합니다.
요즘 인기인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주면 좋겠다는 의견들이 많던데요.
아유, 부끄러워라.(웃음) 그 프로가 장단점이 있지만 저는 좋은 쪽으로 생각해요. 노래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잖아요. 옛날 노래도 찾아보게 되고, 노래라는 게 뭔지 생각해 보게 하고….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단지 노래만이 아닌 독특한 프로그램의 방식으로 극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내려 한다는 거죠. 우린 언제나 똑같이 노래했는데, 마치 지금에서야 가수다운 가수를 보는 것같이 만들잖아요. 하지만 노래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자체만으로 좋은 거 같아요.
박혜경씨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맑고 상쾌해집니다.
최근에 발표한 ‘라라, 소년을 만나다’도 그렇고, 한 편의 동화 같기도 하고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동화는 우리를 지탱해주는 작은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작은 힘이 무엇을 해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막연히 가슴 한편에 남아 있는 무엇….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될 수도 있고, 내 양심을 지켜주는 작은 희망일 수도 있고요.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어릴 적의 맑고 순수한 마음이 바로 동심이죠. 그 마음이 있기에 바빠서 표현 못 하거나 잊고 있다가도 기회만 오면 바로 자기 역할을 해내는 것 같아요. ‘남을 도웁시다’ 한마디에 이렇게 모이는 것처럼요.
결국 사람들의 마음 안에 있는 동심을 깨어나게 하고 모으는 역할을 하시는 거네요?
그런 마음을 깨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너무 좋아요. 어른들은 누구나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피터팬을 동경하잖아요. 저 역시 노래를 하든, 봉사를 통해서든, 희망과 사랑, 행복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항상 내가 피터팬이란 생각을 하고 살아요. 모습이 아니라 마음이….(웃음)
“당신의 나라엔 어둠이 내려도 조금도 무섭지 않네요~ 작은 별들 모두 이곳으로 와 우릴 밝혀주죠.
당신의 세상엔 천둥이 쳐도 하나도 겁나지 않네요~ 아름드리 나무 커다란 키로 우릴 감싸주죠~♪” 박혜경의 노래 <동화> 중에서
그녀의 노래 가사가 그녀와 꼭 닮은 듯하다. 마치 동화 속의 요정이 요술 봉을 들고 나타나 사람들의 동심을 일깨워 주듯이, 그녀는 빨간 머리 피터팬처럼 사람들의 동심을 깨울 것이다. 이 세상이, 그리고 우리의 아이들 마음이 레몬트리처럼 상큼한 향기로 가득해지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