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조명 바꾸면 무당벌레 살릴 수 있다’ 연구 발표한 소녀 과학자 이환희 양


“아파트 옥상 조명 때문에 수많은 무당벌레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해 말, 한 소녀의 주장이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주인공은 바로 ‘아파트 옥상 조명이 곤충 생태에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으로 무당벌레의 죽음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한 이환희(잠실중 3학년. 16세)양. 2년간 호기심 많은 소녀의 눈에 포착된, 작지만 소중한 무당벌레의 이야기는 테드엑스(TEDx)와 유튜브를 통해 널리 알려졌고, 조명을 끄거나 무자충 램프로 바꿔 무당벌레를 살리자는 소녀의 제안에는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 학자들까지 칭찬과 격려를 쏟아냈다. 작지만 자연을 꼭 닮은 큰마음을 지닌 소녀, 이환희양을 만나보았다.

김혜진 사진 홍성훈

 

2년 전의 그날은 환희에겐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일식을 보러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가 우연히 조명 위에 새까맣게 타 죽은 수십 마리의 무당벌레를 보게 된 것. 그날도 그 다음 날도 하루에 적게는 50마리에서 많게는 70마리까지의 무당벌레가 발견됐다.

“왜 죽었을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텃밭을 가꾸며 생태계의 중요성을 체험한 환희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다. “무당벌레는 어디에서 날아 왔을까?” “만약 이 무당벌레가 살아 있다면 어땠을까?”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들은 관찰과 연구로 이어졌다. 일지를 기록하고 책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조명 전문가의 조언을 들을 수 있었고, 죽음의 원인이 아파트 조명 때문이란 걸 알아냈다. 옥상에 설치된 조명은 ‘메탈할라이드’라는 것으로 자외선을 방출, 무당벌레를 유인했고, 무당벌레는 서식지도 없이 뜨거운 조명의 빛에 그대로 노출되고 마는 것이다.

처음 무당벌레 죽은 걸 보았을 때 어땠나요?

너무 끔찍하고 슬펐어요. 그 얘길 엄마한테 했더니 “정말 이상하다. 왜 죽지? 무당벌레는 되게 중요한 벌레 아니니? 큰일 났다” 하시는 거예요. 저도 계속 관심을 갖게 됐고, 때마침 방학 숙제로 탐구 계획이 있어서 이걸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당벌레가 중요하다는 건 언제부터 알았나요?

유치원 들어가기 전인데, 그때 본 그림책이 너무 생생해요. 진딧물, 개미, 지렁이, 무당벌레랑 돼지가 나와요. 나쁜 돼지가 텃밭을 기르는데, 좋은 곤충을 다 내쫓아요. 대신 진딧물과 배추벌레가 신나게 배추, 무를 막 갉아먹고요. 돼지가 그제야 뜨끔하는 거예요. ‘내가 내쫓은 애들이 좋은 애들이었구나’ 하고 다시 불러들여요. 그래서 다시 배추랑 무도 잘되는 얘기였어요. 무당벌레 한 마리가 일생 동안 잡아먹는 진딧물이 4천 마리래요. 무당벌레는 꼭 필요한 친환경적인 농약이구나, 그때 알았죠.

탐구 숙제로 끝내지 않고 무당벌레를 꼭 살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요?

무당벌레는 대개 갈대밭 아니면 늪지에 살아요. 우리 아파트 근처랑 환경이 비슷한 거예요. 그럼 희귀하고 다양한 무당벌레들이 와서 죽을 수도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어느 날 보니까 진짜로 책에서 봤던 희귀한 애들이 다 있는 거예요. 완전 노란 색깔에 머리가 하얀 무당벌레, 남생이무당벌레도요. 되게 귀여운 애들인데 여기 와서 죽었구나…. 넘 불쌍했어요.

어릴 때부터 자연과 가까이 지낸 편이었나요?

초등학교 때 엄마 아빠가 집 근처에 텃밭을 가꾸셨어요. 배추, 무, 토마토도 심고 소변 받아서 거름도 주고…. 밭일이 재밌어서 저도 매일 갔고, 그렇게 자연하고 친구하면서 키우고 뿌린 만큼 결과가 온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무당벌레 한 마리가 죽은 게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죽은 거라는 걸. 아무런 이유 없이 곤충을 함부로 죽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해로운 곤충이라 해도 다른 좋은 곤충들의 먹이가 되어주어서 생태계가 돌아가는데, 지금은 조명이 무당벌레를 잡아먹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상한 먹이사슬이 됐어요. 작고 여리다고, 나랑 상관없다고 얕보는 걸 보면 속상해요.

환희양은 먼저, ‘조명의 위험성’을 알리고 싶었다 한다. 아파트 주민들에게 홍보지를 나눠주기 시작했다. 호응해주신 분들도 있었지만, 학생이 쓸데없는 짓 한다며 핀잔도 듣고 면박도 당해야 했다. 아파트 관리소장님과 구청 담당자를 찾아가 인터뷰도 요청했다. 하지만 공통된 대답은 ‘어렵다’ ‘안 된다’였다. 옥상 조명을 벌레에 무해한 무자충 램프로 바꾸면 경제적으로 2~3배 더 비용이 들고, 조명을 끄면 최신식 아파트로 보이지 않아 집값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무당벌레의 죽음을 계속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이대로 있을 순 없었다. 당장에 무당벌레 한 마리라도 살리고 싶었던 환희가 문득 생각한 것은 텃밭 가꾸기였다. 스티로폼에 흙을 담아 나르고, 양동이로 물을 길어 나르고…. 무당벌레를 향한 한 소녀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고추, 토마토, 상추 사이로 무당벌레가 살아 움직였다.

옥상 텃밭에서 살아 있는 무당벌레를 처음 발견했을 때 너무 좋았겠어요.

네. (웃음) 손으로 툭 치면 날아가잖아요. 와, 살렸다. 살았다~!! 너무 기뻐서 막 소리를 질렀어요. 생명을 살렸으니까요. 그동안 불을 못 꺼줘서 미안했는데, 조금 덜 미안했고요. 하지만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흙을 옥상까지 옮기는 게 너무 힘들어서 텃밭을 많이 가꾸지는 못했거든요.

어른들이 보기에 환희가 참 기특한데, 환희는 누가 제일 고맙고 감사해요?

엄마요. 솔직히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많이 응원해주고 기다려줬어요. 그래서 호기심을 가지고 꾸준히 할 수 있었어요. 또 엄마 말씀 듣고 초등학교 4학년 때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 다녀온 것도 도움이 됐어요. 수련하면서 우리가 다 하나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뒤로도 그런 생각이나 행동이 저절로 되는 거예요. 덕분에 연구가 잘된 거 같아요. 무당벌레가 슬프면 나도 슬프니까요.

청소년 마음수련 캠프에 다녀오고 무당벌레를 연구하면서 자기 자신도 많이 돌아봤나 봐요.

반성을 많이 했어요. 전엔 제 의견이 안 받아들여지면 화내고 잘 삐쳤거든요. 그럴 때마다 엄마가, 네 생각만 옳은 게 아니니까 다른 사람의 생각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고, 섭섭하고 기분 나쁘다고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다 버리라고 하셨어요. 만약에 마음수련을 안 했다면 엄마 말도 잔소리처럼 들리고, 속상해했을 거예요. 근데 수련하면서 그때그때 마음을 버리니까 지치지 않고 연구도 계속 해나갈 수 있었어요. 다른 의견도 수용할 줄 알게 되니까 동네 어른들도 제 얘기를 들어주시더라고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은 어른들의 칭찬과 격려, 꾸중 덕분이었다”고 환희는 의젓하게 말했다. 계속 연구해보라고 격려해주신 과학 선생님도 있었고, 우연히 알게 된 경원대 정석 교수님은 환희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려주어, 그걸 계기로 테드엑스잠실(TEDx Jamsil)에도 참가할 수 있었다. 테드엑스는 ‘좋은 아이디어를 널리 퍼트리자’는 취지를 살려 독자적으로 개최되는 강연회. 강연 내용이 동영상 전문 인터넷 커뮤니티 ‘유튜브’에 올려지면서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조명을 끄거나 벌레에 해가 없는 무자충 램프로 바꾸어 무당벌레를 살리자는 소녀의 제안에 칭찬과 격려가 쏟아졌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는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부화한 거북이 새끼들도 육지의 빛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기어가는 등 조명 공해가 많은 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참 좋은 연구를 했다”고 격려했다.

앞으로의 계획과 꿈을 말해줄래요?

계속해서 조명을 끄거나, 벌레에 해가 없는 무자충 램프로 바꾸자고 홍보할 거예요. 우리나라는 다 그렇게 환경을 생각하는 조명으로 바꾸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다음에 제인 구달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희망의 자연’이란 책에서요, 동물과 교감하고 자연과 대등하게 사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어요.

꿈과 희망을 말하면서도 환희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이제 곧 5월, 무당벌레는 5월을 기점으로 아파트로 날아들기 때문이다.

“저도 어디에서 읽었는데요, 시애틀의 인디언 추장이 이렇게 말했대요.”

2011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향하는 한 16살 소녀의 간절한 외침이기도 하다.

꼬마 과학자가 내게 진실을 알려주었다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정석 교수

이환희양의 보고서에는 왜 이런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는지의 동기, 무당벌레의 생태와 곤충 자원의 중요성, 그리고 무려 1년에 가까운 관찰 기록이 충실히 담겨 있었다.

유익 곤충인 무당벌레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옥상 조명을 현재의 메탈할라이드 램프에서 곤충을 유인하지 않는 무자충 램프로 교체하자는 것과, 옥상에 무당벌레의 서식 공간이 될 도시텃밭을 가꾸자는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무당벌레의 죽음을 유심히 보고 연구를 시작했던 그 ‘마음’이 참 대단했다. 또한 연구는 협력이 중요한데, 혼자서만 하지 않고 아파트 관리사무소장님, 송파구청 담당자, 또 관련 분야 전문가들을 찾아 의논하고 도움을 받으며 진행한 점들도 좋았다. 그 결과 2개의 답도 스스로 밝혀냈다. 조명 기구 교체와 텃밭 조성. 텃밭은 직접 가꾸며 무당벌레가 살아 있는 것도 확인했다. 학생으로서 나름 큰 성과이며, 연구자로서 필요한 끈기와 협력 등 자질을 고루 갖추고 있다고 보인다.

멋을 내기 위해, 재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비싼 돈을 들여 휘황찬란 불야성을 밝히는 동안 수천 마리의 무당벌레가 죽어가고 있음을 잘 알지 못했던 내게 꼬마 과학자는 진실을 알려주었다. 앞으로 아파트 주민들과 이 문제를 함께 느끼고 마음을 모으는 일도 중요하겠고, 많이 알려져서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함께 나누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