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수련으로 아이들 마음에 더 가까워집니다”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씨의 이야기

인천법원 소년조사관 김경미(39)씨. 그녀는 학교 폭력, 절도 등으로 법원에 온 청소년들을 미리 조사하고 상담해서, 최종적으로 판사에게 소견서를 내는 일을 한다. 우리나라에 전문조사관이란 직업이 흔치 않았던 2002년부터 이 일을 시작한 그녀는 아이들에게 필요하다 싶으면 상담이나 정신 치료도 받게 하는 등 청소년들을 변화의 길로 이끄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10년 차 조사관이다. 진심으로 아이들을 도와주려면 내 마음부터 긍정적이고 편안해야 하기에 그녀는 매일매일 ‘마음 빼기’를 하며 그 꿈에 한발 더 다가서고 있다.

얼마 전에 중2 여자애를 만난 적이 있어요. 선생님들한테 욕하고 가출하고 온 아이였어요. 근데 이 아이가 첫마디부터 욕이더라고요. 말끝마다 욕을 하는데, 도저히 대화할 수가 없었습니다. 일단 안정이 필요할 것 같아, 3주 후 다시 만났어요.

알고 봤더니 상처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부모가 이혼하는 과정에서 매일 싸우는 모습을 봐야 했고, 이혼 후엔 엄마와 살게 됐는데 엄마는 일 때문에 늘 밖에 있고, 왕따도 당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가 터득한 건 ‘이기려면 욕을 하면 된다’였어요. 그래서 위기 상황이다 생각하면 욕부터 나왔던 거죠. 아이에게 “네 사정은 안타깝지만, 잘못했기 때문에 시설로 보내질 거다”라고 하니까 울면서 그래요. “왜 나만 가야 해요. 나를 왕따시켰던 애들, 맨날 싸우던 부모님, 나를 이해 못 해준 선생님들, 아무도 안 가는데 왜 나만 가야 해요.” 그렇게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저는 “나는 너희 부모도, 널 왕따시켰던 애도, 선생님들도 모른다. 다만 내 앞에 있는 사람은 너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사람도 너다. 같이 노력하면 분명히 좋아질 거다”라고 했죠.

이곳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은 가정 환경이 안 좋아요. 그 아이들에게 세상은 ‘믿을 사람 없고, 두려운 곳’일 뿐이죠. 아마 예전 같았으면 저도 무력감, 슬픔만 느꼈을 것 같아요. 근데 지금은 이렇게 말해줘요. “그렇지 않다. 세상은 좋은 곳이다. 네가 겪은 세계만 그런 것이다. 네가 바뀌면 세상이 얼마나 따듯하고 좋은지 알게 될 거다. 같이 노력해보자.”

제가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일매일 마음수련원에 가서 마음 빼기를 한 덕분입니다. 사실 상담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치유를 해야 하거든요. 아무래도 부정적인 생각들을 계속 대하며 영향을 받다 보니까, 안 그러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힘을 줄 수가 없거든요. 그렇게 쌓인 마음들을 계속 버리고 빼고 하면서, 늘 새로운 에너지로 사람을 대할 수 있게 된 거죠.

김경미씨가 근무하는 인천법원에는 네 명의 전문조사관이 근무하고 있다. 8년 정도는 가사조사관(이혼하려는 부부 조사)을 겸하다가 2년 전부터는 소년조사관만 전담하게 되었다.

아이들을 조사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잘 들어주는 겁니다.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지 않고, 거울처럼 비춰주는 거죠. “그래서 힘들었구나.”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환해지고 마음이 열려요. 왜냐하면 그동안 살아오면서 한 번도 이해받지 못하고, 야단만 맞았던 아이들이니까요.

근데 사실 처음에는 들어주는 게 쉽지 않았어요. 사람 만나고 이야기 들어주는 걸 좋아해서 상담을 전공했지만, 내 틀이 강하니까, 겉으로는 수긍하는 척해도 속으로는 계속 내 잣대로 저건 아닌데, 하며 시비하고 있더라고요. 내 그릇의 한계를 많이 느꼈죠.

그러다 대학원을 다닐 때였는데, 어느 날 정신과 교수님이 굉장히 환해진 얼굴로 오셔서 “마음수련이 어떤 치료보다 마음 치료하는 데 훨씬 더 빠를 것 같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에 저도 마음수련을 시작했는데, 마음수련은 한마디로 자기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또 그렇게 쌓아온 마음을 빼주는 곳이더라고요.

수련하며 처음엔 정말 많이 울었어요. 나 자신만 옳다 생각하고, 상대를 내 뜻대로 하려던 자만심과 이기심…. 그런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서요.

그러다 마음수련 4과정 때였어요. 진짜 그동안의 나는 없어지면서 주변 모든 것과 하나 된다고 할까. 스쳐가는 바람과 하나고, 날아가는 저 새와 하나고, 주위의 모두와 하나 되는 체험을 했지요. 아, 그렇구나. 모양은 다르게 태어났지만 이렇게, 하나로 살아가는 거구나. 그때 진짜 상담을 하며 느꼈던 모든 고민들이 해결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그 무렵 법원에서 조사관 일도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사람은 다 자기가 주체적으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살아온 삶에서 형성된 관념으로 그 관념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잖아요. 특히 아이들은 살아온 삶이 짧다 보니 어른들보다 훨씬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죠. 부모가 싸우고, 왕따당하고 그런 경험만 한 아이들은 그것이 전부라고 믿는 거예요. 그래서 한순간 잘못된 선택을 한 건데, 그걸 어떻게 하겠어요. 단지 이제부터 바뀔 수 있게 도와주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항상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데, 그동안 너는 너에게,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해가 되는 선택을 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보자.”

아이들은 상담을 받게 하거나, 상대방 입장을 생각하게 하거나, 자기 생을 조금만 돌아보게 해줘도 변합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행복할 때는, 나중에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전화해서 “아이가 법원 갔다 와서 눈빛이 확 달라졌다”는 얘기를 하실 때예요. ‘얼어붙은 땅에 봄이 오게 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자신의 모든 걸 받아주는 사람의 따듯함에는 어떤 마음도 녹기 마련이지요. 아이들은 특히 더 빠르고요.

청소년 사건의 경우, 판사며 변호사며 진심으로 아이들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 보면 참 고맙죠. 옛날에는 다 ‘우리 애들’이라고 했잖아요. 지나가는 애들도 자기 자식처럼 야단도 쳐주고 칭찬도 해주고요. 그렇게 지금도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 혹은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마음’ 다 빼고, 모두가 하나 된 마음으로 우리 아이들을 돌보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그런 세상 위해, 저부터 더욱 부지런히 마음 빼기를 하겠습니다.

정리 최창원 & 사진 홍성훈

“어떤 아이한테는 엄하게, 어떤 아이한테는 장난치듯이, 어떤 아이는 따듯하게…. 대하는 방법이 다 달라야 하는데, 저절로 그렇게 대해질 때가 많습니다. 내 관념이나 틀 등 내 마음부터 늘 빼내다 보니 그렇게 상대를 대하는 지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